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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손, 우리의 손

마태복음 26: 20 ~ 25

김경진 목사

2019.04.07

< 우리는 손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

2017년 2월경 예술의 전당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전시회를 방문해 작품을 감상했는데, 아주 특별한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열린 손>이었습니다. 작품 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한 손 가득 받았고, 한 손 가득 주었다.”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문구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 그렇지! 손이란 그런 것이지. 한 손 가득 받았다 한 손 가득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었는가? 또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갖거나 잡았는가? 나아가 내가 잡은 것들을 누구에게 건네주게 될까? 내가 전하는 것을 건네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건네게 될까?’
손이란 무엇입니까? 손은 여러 기능을 담당합니다. 우선 손은 ‘창조’적 역할을 감당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아름다운 조각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손으로 집을 짓기도 하고, 멋진 연주도 합니다. 어느 문학가의 손에 펜이 잡히면 멋진 작품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창조의 손은 양면성을 지닙니다. 한 손으로 둑을 세울 수도, 또 다른 한 손으로 둑을 허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을 가진 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손은 ‘의미’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칭찬하기 위해 손뼉을 칩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경례를 하기도 합니다. 또 포기하거나 항복할 때는 두 손을 높이 올립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는 손으로 사인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으로 여러 의사를 전하며, 의미를 교환합니다.
또 한편 손은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손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손을 내민다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하셨겠지만, 가장 가슴 설레는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이 그 손을 잡아주면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때 상대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으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손 같지만, 얼마든지 큰 의미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파 누워 있을 때 엄마가 아이의 배에 손을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엄마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 같아도 사실은 그 안에 큰 사랑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잠을 잘 때도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잠이 듭니다. 그 손에는 사랑이 담겨 있고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참 다양한 손이 있습니다. 주는 손이 있고, 받는 손이 있습니다. 움켜쥔 손이 있고, 열린 손이 있습니다. 지적하는 손이 있고, 박수치는 손이 있습니다. 연주하는 손이 있고, 건물을 짓는 손이 있습니다. 수술하며 치료하는 손이 있고, 무언가를 파괴하는 손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다양한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손은 창조와 구속의 손입니다. >

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손을 갖고 계실까?’ 물론 하나님을 인간의 모습에서 상상한 것이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을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본문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손입니다. 이사야 48장 13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이사야 48:13)

하나님은 온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셨고, 사람의 손을 만드셨으며, 에덴동산의 온갖 나무와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의 손입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창조사 속에 나타난 인간의 손은 어떤 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창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손, 눈에 띄는 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손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에 손을 댄 손입니다. 아담의 손은 하와의 죄를 지적하는 손이었습니다. 하와의 손 역시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손이었습니다.
이후 나타난 가인의 손에도 무언가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돌입니다. 아벨을 쳐 죽이기 위한 돌이 가인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11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4:11)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대비되는 인간의 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창조사 속에 분명히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성경에는 많은 손이 나타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나타난 인간의 손은 벽돌을 굽는 손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데 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린 손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단 위에 놓는 데 자신의 손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손은 보다 웅장하게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손이 출애굽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타납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애굽기 7:5 중)

출애굽 과정에 나타난 많은 사건 가운데 수많은 손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가운데 결정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그 본문에서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모습이 묘사되며,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과 손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승리로 끝을 맺습니다. 이렇듯 출애굽 사건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손은 자신의 백성을 이끄시며 강한 힘과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손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손은 어떤 손이었을까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손이 있습니다. 바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던 손입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손수 돌판에 자신의 뜻인 계명을 새기고 계실 때, 또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적힌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그 시점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손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손은 이처럼 늘 하나님을 배반하는 손, 하나님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사건이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중 한 말씀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6)

끝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다고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손은 치유와 회복, 자비의 손입니다.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과 인간의 손을 언급하자면, 아마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도 손을 사용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수십 년간 아버지 요셉과 목수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은 공생애 기간부터 본격적으로 주목 받게 됩니다.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신 이유를 전하시며, 우리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도 우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죽음의 권세나 사탄의 권세도 주님의 자녀인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보내시며 가장 많이 자신의 손을 사용하신 때는 ‘치유’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치유와 회복의 손이었습니다. 나병환자가 주님께 나왔을 때, 주님은 손을 내밀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8:3) 또 열병으로 누워 있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으시며 그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마8:15). 야이로의 딸에게도 찾아가 소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마9:25). 길을 가시다 맹인 된 사람을 보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시며 그를 고쳐주셨습니다(요 9장). 이처럼 예수님의 손은 분명 치유의 손입니다.
또 다른 예수님의 손도 보입니다. 바로 ‘먹이시는 손’입니다. 배고픈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고, 사천 명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먹을 것을 나눠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도 주님의 손은 먹이시는 손이었습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손에는 떡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떡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이것을 받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손에 떡을 들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디베랴 바닷가로 나갔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셔서 조반을 차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손은 먹이시는 손입니다. 그분의 손에는 언제나 생명의 양식이 들려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또 다른 손은 ‘기도하며 축복하는 손’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아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고, 펴신 팔로 안아주셨습니다. 또 겟세마네에서는 손을 들어 깊은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늘 한적한 자리로 나가셔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곤 하셨습니다. 당신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은 기도의 손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손은 ‘섬김의 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의 손입니다. 수난을 준비하던 목요일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마지막 교훈과 연결시키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하느냐? 이제 내가 선생으로서 너희에게 본을 보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주님의 이 마지막 교훈은 섬김의 손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 우리의 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 앞에 선 우리 인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손은 ‘예수님을 파는 손’입니다. 갈릴리에 모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2~23절입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태복음 17:22~23 중)

또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손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빵과 잔을 나누어 주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넘길 한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은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유다는 뻔뻔하게도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은 대접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순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후 유다의 손에는 은 삼십이 들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손입니다.
또 다른 손이 등장합니다. 빌라도가 대야를 가져다 자신의 손을 씻으며 말하길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으니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며 예수를 내어주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손짓입니다. 나만 살겠다는 손입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손입니다.
또 다른 손이 등장합니다. 손을 들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손이 보입니다. 채찍을 들고 예수님을 내리치는 손이 보입니다. 조롱하는 손, 예수의 옷을 나눠 가지는 군병들의 손도 보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손도 있습니다.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도 있습니다. 모두가 증오의 손이요, 폭력의 손입니다. 배신의 손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더럽고 추한 일들을 자행한 손입니다.
마침내 그들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는 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하늘과 땅을 펴시고, 인간과 모든 것을 빚으신, 또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그 손입니다. 강한 팔과 펴신 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며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권능의 손입니다. 병자들을 찾아가 안수하시고 그들을 고치신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빵과 생선을 나눠 주시며 잔치를 베풀어 주신 자애로운 손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 주시며 섬기셨던 겸손의 손입니다. 바로 그 손, 그 손에 우리는 못을 박았습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손에, 바로 그 손바닥에 우리가 못을 박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분의 도우시는 손을 거부합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선사하시는 그분의 손도 거절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손도 거부합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겠다는 손도 거절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분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벽돌을 굽고 우리의 이름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할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우리가 파멸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펴신 팔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

바로 그 손으로 행한 일의 종국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손, 곧 하나님의 손을 못 박은 그 손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힘없이 자신을 위해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못 박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팔이 펼쳐집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 팔, 아무 힘없어 보이는 그 팔이 저는 이제 이렇게 보입니다. 마치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승리가 전개되었듯이,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펴신 팔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펴신 팔은 아론과 훌이 붙잡았던 모세의 팔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박아 놓은 그 십자가 못이 예수님의 팔을 벌려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십자가 위에서, 그 펴신 팔을 통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모세의 팔을 붙잡게 하심으로 새로운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내셨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팔을 붙잡으심으로써 새로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주님의 펴신 팔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세력이 굴복됩니다. 죽음의 영과 거짓의 영이 주님의 펴신 팔 아래 멸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애통하며, 동시에 희망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그분의 손길을 거부한 죄, 그분의 손을 뿌리친 죄를 애통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길을 뿌리친 죄를 회개합시다. 나아가 우리는 기뻐하며 희망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펴신 팔로 우리를 안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펴신 팔이 마침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 우리가 함께 주님의 손을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손이 무엇을 했는지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손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그 손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어떤 손이었습니까? 피 묻은 주님의 손이 우리의 손을 만져 주시길 원합니다. 이 한 주간 주님 앞에 기도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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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 20 ~ 25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 우리는 손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

2017년 2월경 예술의 전당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전시회를 방문해 작품을 감상했는데, 아주 특별한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열린 손>이었습니다. 작품 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한 손 가득 받았고, 한 손 가득 주었다.”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문구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 그렇지! 손이란 그런 것이지. 한 손 가득 받았다 한 손 가득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었는가? 또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갖거나 잡았는가? 나아가 내가 잡은 것들을 누구에게 건네주게 될까? 내가 전하는 것을 건네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건네게 될까?’
손이란 무엇입니까? 손은 여러 기능을 담당합니다. 우선 손은 ‘창조’적 역할을 감당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아름다운 조각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손으로 집을 짓기도 하고, 멋진 연주도 합니다. 어느 문학가의 손에 펜이 잡히면 멋진 작품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창조의 손은 양면성을 지닙니다. 한 손으로 둑을 세울 수도, 또 다른 한 손으로 둑을 허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을 가진 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손은 ‘의미’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칭찬하기 위해 손뼉을 칩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경례를 하기도 합니다. 또 포기하거나 항복할 때는 두 손을 높이 올립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는 손으로 사인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으로 여러 의사를 전하며, 의미를 교환합니다.
또 한편 손은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손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손을 내민다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하셨겠지만, 가장 가슴 설레는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이 그 손을 잡아주면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때 상대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으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손 같지만, 얼마든지 큰 의미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파 누워 있을 때 엄마가 아이의 배에 손을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엄마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 같아도 사실은 그 안에 큰 사랑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잠을 잘 때도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잠이 듭니다. 그 손에는 사랑이 담겨 있고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참 다양한 손이 있습니다. 주는 손이 있고, 받는 손이 있습니다. 움켜쥔 손이 있고, 열린 손이 있습니다. 지적하는 손이 있고, 박수치는 손이 있습니다. 연주하는 손이 있고, 건물을 짓는 손이 있습니다. 수술하며 치료하는 손이 있고, 무언가를 파괴하는 손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다양한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손은 창조와 구속의 손입니다. >

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손을 갖고 계실까?’ 물론 하나님을 인간의 모습에서 상상한 것이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을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본문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손입니다. 이사야 48장 13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이사야 48:13)

하나님은 온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셨고, 사람의 손을 만드셨으며, 에덴동산의 온갖 나무와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의 손입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창조사 속에 나타난 인간의 손은 어떤 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창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손, 눈에 띄는 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손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에 손을 댄 손입니다. 아담의 손은 하와의 죄를 지적하는 손이었습니다. 하와의 손 역시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손이었습니다.
이후 나타난 가인의 손에도 무언가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돌입니다. 아벨을 쳐 죽이기 위한 돌이 가인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11절에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4:11)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대비되는 인간의 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창조사 속에 분명히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성경에는 많은 손이 나타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나타난 인간의 손은 벽돌을 굽는 손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데 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린 손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단 위에 놓는 데 자신의 손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손은 보다 웅장하게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손이 출애굽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타납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애굽기 7:5 중)

출애굽 과정에 나타난 많은 사건 가운데 수많은 손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가운데 결정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그 본문에서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모습이 묘사되며,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과 손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승리로 끝을 맺습니다. 이렇듯 출애굽 사건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손은 자신의 백성을 이끄시며 강한 힘과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손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손은 어떤 손이었을까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손이 있습니다. 바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던 손입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손수 돌판에 자신의 뜻인 계명을 새기고 계실 때, 또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적힌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그 시점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손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손은 이처럼 늘 하나님을 배반하는 손, 하나님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사건이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중 한 말씀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6)

끝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손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다고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손은 치유와 회복, 자비의 손입니다.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과 인간의 손을 언급하자면, 아마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도 손을 사용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수십 년간 아버지 요셉과 목수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은 공생애 기간부터 본격적으로 주목 받게 됩니다.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신 이유를 전하시며, 우리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도 우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죽음의 권세나 사탄의 권세도 주님의 자녀인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보내시며 가장 많이 자신의 손을 사용하신 때는 ‘치유’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치유와 회복의 손이었습니다. 나병환자가 주님께 나왔을 때, 주님은 손을 내밀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8:3) 또 열병으로 누워 있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으시며 그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마8:15). 야이로의 딸에게도 찾아가 소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마9:25). 길을 가시다 맹인 된 사람을 보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시며 그를 고쳐주셨습니다(요 9장). 이처럼 예수님의 손은 분명 치유의 손입니다.
또 다른 예수님의 손도 보입니다. 바로 ‘먹이시는 손’입니다. 배고픈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고, 사천 명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먹을 것을 나눠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도 주님의 손은 먹이시는 손이었습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손에는 떡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떡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며 “이것을 받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손에 떡을 들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디베랴 바닷가로 나갔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셔서 조반을 차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손은 먹이시는 손입니다. 그분의 손에는 언제나 생명의 양식이 들려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또 다른 손은 ‘기도하며 축복하는 손’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아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고, 펴신 팔로 안아주셨습니다. 또 겟세마네에서는 손을 들어 깊은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늘 한적한 자리로 나가셔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곤 하셨습니다. 당신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손은 기도의 손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손은 ‘섬김의 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의 손입니다. 수난을 준비하던 목요일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마지막 교훈과 연결시키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하느냐? 이제 내가 선생으로서 너희에게 본을 보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주님의 이 마지막 교훈은 섬김의 손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 우리의 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의 손 앞에 선 우리 인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손은 ‘예수님을 파는 손’입니다. 갈릴리에 모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2~23절입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태복음 17:22~23 중)

또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손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빵과 잔을 나누어 주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넘길 한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은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유다는 뻔뻔하게도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은 대접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순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후 유다의 손에는 은 삼십이 들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손입니다.
또 다른 손이 등장합니다. 빌라도가 대야를 가져다 자신의 손을 씻으며 말하길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으니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며 예수를 내어주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손짓입니다. 나만 살겠다는 손입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손입니다.
또 다른 손이 등장합니다. 손을 들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손이 보입니다. 채찍을 들고 예수님을 내리치는 손이 보입니다. 조롱하는 손, 예수의 옷을 나눠 가지는 군병들의 손도 보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손도 있습니다.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도 있습니다. 모두가 증오의 손이요, 폭력의 손입니다. 배신의 손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더럽고 추한 일들을 자행한 손입니다.
마침내 그들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는 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하늘과 땅을 펴시고, 인간과 모든 것을 빚으신, 또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그 손입니다. 강한 팔과 펴신 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며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권능의 손입니다. 병자들을 찾아가 안수하시고 그들을 고치신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빵과 생선을 나눠 주시며 잔치를 베풀어 주신 자애로운 손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 주시며 섬기셨던 겸손의 손입니다. 바로 그 손, 그 손에 우리는 못을 박았습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손에, 바로 그 손바닥에 우리가 못을 박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분의 도우시는 손을 거부합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선사하시는 그분의 손도 거절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손도 거부합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겠다는 손도 거절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분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벽돌을 굽고 우리의 이름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할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우리가 파멸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펴신 팔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

바로 그 손으로 행한 일의 종국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손, 곧 하나님의 손을 못 박은 그 손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힘없이 자신을 위해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못 박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팔이 펼쳐집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 팔, 아무 힘없어 보이는 그 팔이 저는 이제 이렇게 보입니다. 마치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승리가 전개되었듯이,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펴신 팔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펴신 팔은 아론과 훌이 붙잡았던 모세의 팔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박아 놓은 그 십자가 못이 예수님의 팔을 벌려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십자가 위에서, 그 펴신 팔을 통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모세의 팔을 붙잡게 하심으로 새로운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내셨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팔을 붙잡으심으로써 새로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주님의 펴신 팔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세력이 굴복됩니다. 죽음의 영과 거짓의 영이 주님의 펴신 팔 아래 멸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애통하며, 동시에 희망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그분의 손길을 거부한 죄, 그분의 손을 뿌리친 죄를 애통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길을 뿌리친 죄를 회개합시다. 나아가 우리는 기뻐하며 희망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펴신 팔로 우리를 안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펴신 팔이 마침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 우리가 함께 주님의 손을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손이 무엇을 했는지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손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그 손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어떤 손이었습니까? 피 묻은 주님의 손이 우리의 손을 만져 주시길 원합니다. 이 한 주간 주님 앞에 기도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년 4월 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주님의 손, 우리의 손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44장, 147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마26:20-2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손이 가지는 매력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손은 교환을 하는 통로이며 무엇을 잡고, 받아들게 됩니다. 손은 교환, 교제, 교통을 만들어 내는 도구입니다. 손은 창조의 작업도 합니다. 무엇보다 손은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칭찬할 때면 손뼉을 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경계를 그리고 포기하거나 항복할 때는 빈손을 높이 쳐듭니다. 반가운 마음을 전할 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합니다.

설교의 요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일까?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손이었습니다(사48:13). 하지만 인간의 손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는 손이었습니다. 아담의 손은 하와의 죄를 지적하는 손이었고, 하와의 손은 뱀에게 핑계를 대는 손이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손으로 아벨을 쳐 죽이는 손이었습니다(창4:11).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인간의 손은 벽돌을 굽는 손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데 손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손이었습니다.

출애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손은 자신의 백성을 이끌어 내시며 강한 힘과 능력을 보호하시는 손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은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던 하나님을 배반하는 손, 하나님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늘 치료하시는 손이었습니다(마8:3, 15, 막9:25, 요9). 또 다른 예수님의 손은 먹이시는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기도하시며 축복하시는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섬김의 손입니다. 사람이 많으신 우리 주님! 예수님의 손은 섬김의 손이었고, 사랑의 손이었습니다. 축복의 손이며 치유의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인간을 향해 열려 있으신 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들고 인간들의 손에 내어 주시기를 원하셨던 그런 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세리, 여인들에게도 열린 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그 시간에 인간의 손은 어떤 손이었을까? 먼저는 예수님을 파는 손이었습니다(마17:22-23).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손이었습니다. 또 다른 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손, 나만 살겠다는 손, 불의와 타협하는 빌라도의 손입니다. 손을 들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손입니다. 채찍을 들고 예수님을 내리치는 손, 조롱하는 손,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는 군사들의 손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손,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입니다. 모두가 증오의 손이요 폭력의 손이었습니다. 인간이 손으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더럽고 추한 모습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손에 망치를 들고,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습니다. 그 손에 우리는 못을 박았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우리는 거부하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그 분의 손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힘없이 자신을 위해 손도 한번 써 보시지 못하신 채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예수의 손에 못을 박고 십자가 위에 달아 놓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팔이 펴지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승리가 시작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시도록 못을 박아 놓은 그 십자가… 그런데 그 십자가에서 기적이 그리고 승리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분의 손길을 거부한 죄! 그 분의 손길을 뿌리친 죄를 애통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어 달은 그 십자가 위에서 펴신 팔로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에 기뻐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손과 우리의 손을 깊이 묵상하사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손이 무엇을 하였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함께 나눠보세요.

우리의 손이 주님의 손을 닮아가도록 서로를 축복하고,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늘 열린 손으로 다가오셨는데, 우리는 늘 그 손으로 주님을 떠났으며 거부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피 뭍은 손을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떠나려는 우리의 손을 다시 붙잡고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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