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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앞에서 잠잠하라

하박국 2:1~4, 20

김경진 목사

2025.04.06

<하박국은 나라의 위기를 직면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서는 구약에 나오는 12개의 소예언서 중의 하나인 3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책입니다. 하박국은 주전 600년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이미 앗수르에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100여 년이 흘러가는 지점입니다. 그 사이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남유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에는 이집트 같은 거대한 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이스라엘을 이미 삼켜 버린 앗수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신흥 국가인 바벨론이 막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유다의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상당히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612년경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함락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역사는 보다 더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남쪽에 이집트의 왕 느고는 잔류하고 있던 앗수르의 군사들을 돕기 위해서 북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남유다 왕 요시야에게 길을 열어서 북쪽으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그 길을 막아섭니다. 이집트의 군대를 막아서고 일어난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유다는 자연스럽게 이집트의 지배 아래 잠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집트 왕 느고는 여호야김을 남유다의 왕으로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후에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그러면서 남유다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오는 참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성전에 있는 기구들도 바벨론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여호야긴왕과 시드기야왕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친이집트 정책을 추구하다가 발각되어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주전 586년에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남유다가 멸망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남유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박국이 활동하고 있었던 시기는 이때의 중간 지점에 해당합니다. 요시야왕이 이집트 왕 느고의 북진을 막았던 때부터, 이집트와 바벨론의 지배를 거쳐 여호야김 시대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였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언한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은 죄와 징벌 가운데 있는 백성을 외면하시는 듯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하박국서는 세 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다른 선지서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항변과 항의입니다. 시작점은 이렇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합 1:2)
하박국은 안타까운 역사의 전개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함께하시지 않는지, 우리의 기도를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우선 하박국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 안에 만연한 죄악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합 1:3~4)

하박국은 유다 백성들 안에 있는 패역함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다는 말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의인이 희생되고 악인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보면서 한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을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정의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떠나 있습니다. 왜 주님의 백성들을 그냥 놓아두십니까?” 안타까운 선지자의 절규입니다. 어떻게 징계를 하셔서라도 이 백성을 다시 바르게 세워 주셔야 하지 않겠냐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항변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항의를 듣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합 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점령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강포를 행하러 와서 왕들을 멸시할 것이며, 모든 경고한 성을 비웃고 예루살렘을 점령할 것이다”(합 1:9-1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놀랍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탄원한 것은 유다의 백성들을 다시 돌이켜 바르게 세워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들을 벌하시겠다는 엄청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남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시는 것일까요? 세속 역사의 흐름과 거대한 나라인 바벨론의 등장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박국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합 1:13)

한마디로 어찌 유다의 죄악을 징벌하기 위해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악하고 패역하며, 사납고, 성급하고 더 정의롭지 못한 바벨론이 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부분을 하박국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항의는 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강력한 호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오늘날 혼란한 현실 속 우리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하박국의 항의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항의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백성이 악한 삶의 자리에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방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의인을 에워싸고 정의가 굽어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까? 하박국 자신도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그 기도도 듣지 않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시는가? 이것이 하박국의 첫 번째 항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박국의 항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굳이 바벨론 갈대아 사람을 사용하셔야만 하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잘못했기로, 갈대아 사람들보다 더 잘못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하실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질문은 “세상의 역사가 왜 이렇습니까?”라는 항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왜 이렇게 멸시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십니까? 무자비한 백성들에게 왜 넘기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장에 답이 없으신가? 왜 억울하게 힘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 속에 하나님은 개입하시지 않으시는가? 악이 점점 커져 가는 우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고만 계시는 것인가? 도리어 그들을 좀 징계하셨더라면, 하나님의 정의가 바르게 세워지지 않았을까?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곧 입이 비뚤어지게 만드시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셨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토록 방자하게 하나님을 떠났을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니 악이 승하고, 악한 이들이 거짓을 행하기에 두려움이 없으며, 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지금도 가만히 계십니까?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이들은 건강한데, 우리가 도리어 병에 걸려 일찍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도리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는 것 같고, 무신론자들이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이며,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이 더 오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오고, 매일같이 새벽 기도에 나와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봉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왜 박대하시는 것 같이 느껴집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한바탕 항의한 후에 이렇게 합니다. 이제 망대에 가서 한번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대답을 들어 보기로 생각하고 망대로 갑니다. 2장 1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합 2:1)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악인을 향한 화를 다섯 가지 묵시로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그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2~3)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달려가는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이 보게 하여라. 이 묵시가 곧 이루어질 것이다. 조금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기다려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화 있을진저”라는 하나님의 다섯 가지 묵시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첫 번째는 6~8절의 말씀입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모으는 자들, 노략질하는 자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는 또 누군가에게 노략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합 2:8)

두 번째 “화 있을진저”는 9~11절 말씀입니다. “자신의 집을 위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는 사람, 자신의 집을 위해 창피한 일을 꾸미는 사람,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합 2:11)

자신의 집을 위해 부당한 것을 쌓은 자들, 그렇게 지어진 담과 들보가 들썩이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집이 무너질 것임이라는 암시입니다.
세 번째 “화 있을진저”는 12~14절 말씀입니다. “피로 성읍을 건설한 사람, 불의로 성을 건축한 사람,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네가 백성들을 잡아다가 부렸지만, 그들이 애써 한 일이 다 헛수고가 되고, 그들이 세운 것이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나 만군의 주가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합 2:13, 새번역)

억지로 사람들을 불러서 피를 흘리게 하며 성을 건설한 자는 그것을 누리는 듯하지만, 결국 그 성이 무너지고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 번째 “화 있을진저”는 15~17절 말씀입니다. “술 취하게 하여 다른 이의 알몸을 헤쳐 보는 자, 그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이제는 네가 마시고 곯아떨어져 네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 주의 오른손에 들린 심판의 잔이 네게 이를 것이다.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릴 것이다. 네가 레바논에서 저지른 폭력이 이제, 네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합 2:16~17a, 새번역)

다른 이에게 성적으로 폭행을 하고 알몸을 드러내게 한 대가를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화 있을진저”는 1~19절 말씀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들, 자기가 부어 만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합 2:19b)

<혼란한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주어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이 혼란하고 모순덩어리같이 보이는 세상, 이 땅에 계신다. 성전에 존재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시며 지금도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신다”라는 말씀입니다. 노략질하는 사람들, 부당하게 속이는 사람들,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 피로 성읍을 건설하는 사람들, 남의 알몸을 들여다보는 이들,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응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한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3)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거짓되지 않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아 말씀하십니다.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이것이 하박국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대답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 정의롭게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항의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이 말씀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여기서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 ‘에무나(אֱמוּנָה[emuwnah], faithfulness, fidelity, steadfastness, trust, faith)’는 ‘믿음’이라는 뜻도 포함되지만, 주로 ‘성실함’, ‘충성됨’ 혹은 ‘신실함’, ‘정직함’ 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말씀은 “나의 마음으로 믿는다”라는 뜻을 넘어서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내게 맡기신 일을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하며 살아간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세상이 혼란하고 나라가 멸망하며, 포로로 잡혀가고 또다시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의는 믿음으로 산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부당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신 예수님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부당하며 불합리했던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어디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함락당한 그 장소일까요? 아닙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자리야말로 가장 부당하고 부정의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죄인들의 손에 의해 의인이 희생된 십자가 자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부당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셨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당당히 십자가를 지고 인류 구원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를 알게 된 하박국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듣고서 나의 창자가 흔들렸고,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렸습니다. 나의 뼛속이 썩고 있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쳐들어오는 백성에게 닥칠 어려운 날을! (합 3:16, 새한글성경)

지금 바벨론이 남유다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유다를 속국으로 삼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아갈 것입니다. 지금 그 시점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그 너머를 봅니다. 지금 쳐들어오고 있는 바벨론이 또 다른 나라에게 침략당하고, 그들에게 닥칠 어려운 날을 미리 내다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미리 내다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깨달은 하박국은 고난 속에서도 노래합니다. 징벌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기뻐합니다. 아무리 소출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이 시간 이해가 되지 않는 억울한 일,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뒤틀어진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계신다.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 주님께서 알고 계신다. 그러니 잠잠하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니라.” 기도하겠습니다.

Be Silent Before the Lord

Habakkuk 2:1-4, 20

Today’s Scripture is from the Book of Habakkuk, one of the twelve books of the minor prophets in the Old Testament. It is a very short book composed of three chapters.

Habakkuk was written in 7C BC. TheKingdom of Israel had already fallen to Assyria, and the Kingdom of Judah was scrambling to survive among many surrounding powers.

As Assyria, Israel’s conqueror, began to weaken and the Babylonian Empire, called the Chaldeans, started to grow in power, Judah was left deliberating its diplomatic policies.

Then history becomes convoluted with the destruction of Assyria’s capital Nineveh by the Babylonians in 612 BC.

Necho, Pharaoh of Egypt, in the south marches north to help the remaining Assyrian army fight against the Babylonians. But King Josiah of Judah dies in battle trying to stop Necho. This leaves Judah under the rule of Egypt, and Necho later sets up Jehoiakim as Judah’s king, making him pay a tribute to Egypt.

However, as Egypt is defeated by Babylon in the Battle of Carchemish, Babylon comes to rule Judah afterinvading Jerusalem. It was at this time that many people of Judah were taken captive to Babylon, as well as many temple treasures.

But as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 is defeated by Egypt in another battle in 601 BC, Jehoiachin, son of Jehoiakim, returns to a pro-Egypt policy. This makes Nebuchadnezzar invade Judah again, taking Jehoiachin, many palace officials, and people as captives.

Nebuchadnezzar leaves a puppet king on the throne of Judah—Zedekiah. But even Zedekiah betrays Babylon, making Nebuchadnezzar besiege and burn down Jerusalem in 586 BC and take its people as captives. This was the fall of Judah.

It is surmised that Habakkuk lived and prophesied in this very era. It appears he delivered the message of God as a prophet particularly from the late period of Josiah to the reign of Jehoiakim.

Foreseeing the collapse of Judah, he viewed the rise of Babylon with a fearful heart. The Book of Habakkuk is Habakkuk’s earnest appeal to and conversation with God as he predicts the great catastrophe ahead, Judah’s demise.

Unlike other books in the Bible, Habakkuk starts with a defiant protest against God:

“How long, LORD, must I call for help, but you do not listen? Or cry out to you, ‘Violence!’ but you do not save?”(Habakkuk 1:2)

As Habakkuk senses the tragic flow of history, he protests to God about His inaction and why He does not watch over His people.

First, Habakkuk expresses his sadness for the rampant sins in Jerusalem among the people of Judah:

“Why do you make me look at injustice? Why do you tolerate wrongdoing? Destruction and violence are before me; there is strife, and conflict abounds.Therefore the law is paralyzed, and justice never prevails. The wicked hem in the righteous, so that justice is perverted.”(Habakkuk 1:3-4)

Habakkuk sees all the depravity of his people. The Law is violated and the society is devoid of justice. By stating that “the wicked hem in the righteous,” he draws a vivid picture of the depraved state of his people. Righteous men are sacrificed, the wicked grow stronger, and injustice prevails.

So he asks, “Lord, Your people have left You. They have abandoned justice. They have abandoned Your Word, Your Law. Why aren’t you doing anything about this? Shouldn’t you punish them, hit them with a rod and correct them?” This is his protest.

And this is God’s reply to his protest:

“I am raising up the Babylonians,that ruthless and impetuous people, who sweep across the whole earth to seize dwellings not their own.”(Habakkuk 1:6)

God is saying that the Babylonians will come to inflict violence upon them, to treat Judah’s kings with contempt, to scorn all their strong cities, and to conquer Jerusalem and Judah.

God is saying He will raise up the Chaldeans to conquer Jerusalem in order to punish His people of Jerusalem and Judah who have turned away from Him. Habakkuk is startled by this message. He asks God why He is doing nothing about His people who are sinning and have turned away from Him. The reason for such a protest was to plead with God to make the people of Judah return to Him, but God’s answer is that He will therefore raise up the Babylonians to destroy Judah.

Why on earth is God doing this? Habakkuk makes the following protest to God as he views the rise of Babylon and the flow of secular history:

“Your eyes are too pure to look on evil; you cannot tolerate wrongdoing. Why then do you tolerate the treacherous? Why are you silent while the wicked swallow up those more righteous than themselves?”(Habakkuk 1:13)

In short, Habakkuk is questioning God why He plans to use Babylon, a nation more evil than Judah, to punish Judah’s sins. How can Babylon, a nation more evil, more treacherous, more unjust, more impetuous, and more violent, be God’s tool of punishment?

These words of Habakkuk may be seen as a strong protest against God as he faces an unbending flow of history and an imminent destruction and captivity of his people.

Habakkuk’s protest is largely twofold. First, why doesn’t God get specifically involved in the lives of His people? Why is He doing nothing when the wicked are hemming in the righteous and righteousness is being perverted? Furthermore, how many are crying out to Him because of such problems? How can He be silent and do nothing as if deaf to their cries?

We can imagine the prophet weeping before God as he sees his country fall into demise and believes God is not even listening to their prayers.

Habakkuk’s second protest was this. “God, I cannot understand how You can raise up the Chaldeans to punish Your people. Yes, Your people have sinned. But the Chaldeans are far worse than them! The Chaldeans don’t even know Your name; they serve other Gods. How can You raise up such a people to destroy Your people?”

In a word, he is defiantly questioning, “Why is the world’s history in such a mess?” How can You hand over Your people to such merciless people?

Why don’t you answer the cries, the prayers, of the righteous who are being attacked ruthlessly? Why didn’t You answer us? Why were You silent when the righteous were dying and withering away? Why did You allow evil to grow stronger?

Such prayers will be our earnest prayers today. Why are You silent? Why do you let the wicked have their way when the righteous are being so unjustly attacked? Why do You only make the wicked stronger? If You had hit the mouths of liars and struck the evil with lightning, would the people of Judah be as arrogant as they are now andhave left You? Are not the wicked prevailing and roaming the streets and liars thriving because You have done nothing? Why are You silent as if You do not exist?

How can You talk about punishing Judah all of a sudden through a more evil nation after being so silent? What kind of God are You if you allow a godless nation that does not even know You to become strong and enslave Your people who have called upon Your name and served You?

Why is the world’s historygoing onlike this? How should we view this history that allows a godless nation that despises Your name to prosper and to rule over the nation that calls upon Your name?

Why do You make us, faithful believers of Christ, fail in this world? Why do you make us get sick and die early?

It appears unbelievers are more successful, agnostics are happier, and people serving other gods are enjoying a longer life. How can you let this happen?

This is Habakkuk’s protest. Suchhistoryis repeated in our livestoo. It is something we experiencecontinuously in our reality.

Habakkuk represents our such frustrations well. This is how he protests to God. Sensing history’sunbending flow, he protests to God who seems to be guiding this paradox ofhistory.

Then he waits for God’s answer.

Let’s look at 2:1:

“I will stand at my watch and station myself on the ramparts; I will look to see what he will say to me, and what answer I am to give to this complaint.”(Habakkuk 2:1)

Today’s Scripture is God’s response to Habakkuk at this very moment:

“Then the LORD replied:‘Write down the revelation and make it plain ontablets so that a herald may run with it.For the revelation awaits an appointed time; it speaks of the end and will not prove false. Though it linger, wait for it; it will certainly come and will not delay.’”(Habakkuk 2:2-3)

Then God talks about five points,repeating the phrase “Woe to him.” The first “Woe to him” comes in verses 6-8. God says, “Woe to him who piles up stolen goods and makes himselfwealthy by extortion.” Someone else will plunder him:

“Because you have plundered many nations, the peoples who are left will plunder you.”(Habakkuk 2:8)

Thesecond“Woe to him” appears in verses 9-11. God says there will be woe to the one who builds his house by unjust gain and shames his own house:

“The stones of the wall will cry out, and the beams of the woodwork will echo it.”(Habakkuk 2:11)

The third “Woe to him” is seen in verses 12-14. Woe to him who builds a city with bloodshed and establishes a town by injustice:

“Has not the LORD Almighty determined that the people’s labor is only fuel for the fire, that the nations exhaust themselves for nothing?”(Habakkuk 2:13)

The fourth “Woe to him” appears in verses 15-17. Woe to the man who gives drink to his neighbors so that he can gaze on their naked bodies:

“You will be filled with shame instead of glory. Now it is your turn! Drink and let your nakedness be exposed ! The cup from the LORD’s right hand is coming around to you, and disgrace will cover your glory.The violence you have done to Lebanon will overwhelm you, […].”(Habakkuk 2:16-17a)

The fifth “Woe to him” is found in verses 18-19. Woe to him who serves idols, teaches lies, and trusts in his own creations:

“It is covered with gold and silver; there is no breath in it.”(Habakkuk 2:19b)

Finally, this is what God says at the end:

“The LORD is in his holy temple; let all the earth be silent before him.”(Habakkuk 2:20)

In short, God is saying He is alive. God is in His holy temple. God rules all things and is in control of everything.

He will punish those who plunder, those who deceive, those who do violence, those who build cities by bloodshed, those who look upon their neighbor’s nakedness, and those who worship worthless idols. The end will come. That day will soon come.

Therefore God says:

“For the revelation awaits an appointed time; it speaks of the end and will not prove false. Though it linger, wait for it; it will certainly come and will not delay.”(Habakkuk 2:3)

Gods’ justice will surely be done. God makes it clear that this will not prove false. He tells Habakkuk to wait even though it seems slow in coming. He promises that it will certainly come to pass.

Then the Lord says:

“but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 —”(Habakkuk 2:4)

This was God’s answer and prescription to Habakkuk.

Habakkuk made a protest to God who appeared to be silent and abandoning justice. And God’s answer to that protest was this.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

The Hebrew word for “faithfulness” here is “אֱמוּנָה (emuwnah),” meaning “faithfulness, fidelity, steadfastness, trust, or faith.”It is a word that encompasses the meaning of faithfulness, fidelity, steadfastness, and trust.

Therefore, the above verse means that the man of God lives faithfully, steadfastly, and honestly—whatever the circumstances. This is what it means by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

In conclusion, God is alive and working, controlling and guiding all things—even in confusions and turmoil in history and in our lives of pain. The attitude of saints must be to live faithfully,believing this.

Habakkuk who now knows the great plans and providence of God confesses:

“I heard and my heart pounded, my lips quivered at the sound; decay crept into my bones, and my legs trembled. Yet I will wait patiently for the day of calamity to come on the nation invading us.”(Habakkuk 3:16)

He sings he will silently wait for the wrath that will come upon Babylon who plundered and violated his people. That is why his heart trembles. God will make all things right. This is a faith that believes that God will make all things right and just again. Therefore, Habakkuk sings: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Habakkuk 3:17-18)

Habakkuk, who now understands the rule and providence of God, sings even in tribulation. He rejoices even in times of punishment. He sings even when there are no crops or food. He gives thanks even if he does not understand.

Dear brothers and sisters, are you going through a hard time or experiencing aninjustice that you cannot understand? Are you frustratedbecause it seems God is not answering your prayers? Does it seem everything is thwarted? Does there seem to be a grave error inhistory?

“The LORD is in his holy temple; let all the earth be silent before him.” May these words comfort you. And may we all live faithfully, holding on to these words: “but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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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1~4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20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하박국은 나라의 위기를 직면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서는 구약에 나오는 12개의 소예언서 중의 하나인 3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책입니다. 하박국은 주전 600년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이미 앗수르에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100여 년이 흘러가는 지점입니다. 그 사이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남유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에는 이집트 같은 거대한 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이스라엘을 이미 삼켜 버린 앗수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신흥 국가인 바벨론이 막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유다의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상당히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612년경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함락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역사는 보다 더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남쪽에 이집트의 왕 느고는 잔류하고 있던 앗수르의 군사들을 돕기 위해서 북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남유다 왕 요시야에게 길을 열어서 북쪽으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그 길을 막아섭니다. 이집트의 군대를 막아서고 일어난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유다는 자연스럽게 이집트의 지배 아래 잠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집트 왕 느고는 여호야김을 남유다의 왕으로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후에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그러면서 남유다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오는 참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성전에 있는 기구들도 바벨론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여호야긴왕과 시드기야왕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친이집트 정책을 추구하다가 발각되어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주전 586년에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남유다가 멸망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남유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박국이 활동하고 있었던 시기는 이때의 중간 지점에 해당합니다. 요시야왕이 이집트 왕 느고의 북진을 막았던 때부터, 이집트와 바벨론의 지배를 거쳐 여호야김 시대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였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언한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은 죄와 징벌 가운데 있는 백성을 외면하시는 듯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하박국서는 세 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다른 선지서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항변과 항의입니다. 시작점은 이렇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합 1:2)
하박국은 안타까운 역사의 전개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함께하시지 않는지, 우리의 기도를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우선 하박국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 안에 만연한 죄악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합 1:3~4)

하박국은 유다 백성들 안에 있는 패역함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다는 말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의인이 희생되고 악인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보면서 한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을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정의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떠나 있습니다. 왜 주님의 백성들을 그냥 놓아두십니까?” 안타까운 선지자의 절규입니다. 어떻게 징계를 하셔서라도 이 백성을 다시 바르게 세워 주셔야 하지 않겠냐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항변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항의를 듣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합 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을 징벌하기 위하여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점령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강포를 행하러 와서 왕들을 멸시할 것이며, 모든 경고한 성을 비웃고 예루살렘을 점령할 것이다”(합 1:9-1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놀랍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탄원한 것은 유다의 백성들을 다시 돌이켜 바르게 세워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들을 벌하시겠다는 엄청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남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시는 것일까요? 세속 역사의 흐름과 거대한 나라인 바벨론의 등장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박국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합 1:13)

한마디로 어찌 유다의 죄악을 징벌하기 위해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악하고 패역하며, 사납고, 성급하고 더 정의롭지 못한 바벨론이 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부분을 하박국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항의는 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강력한 호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오늘날 혼란한 현실 속 우리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하박국의 항의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항의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백성이 악한 삶의 자리에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방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의인을 에워싸고 정의가 굽어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까? 하박국 자신도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그 기도도 듣지 않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시는가? 이것이 하박국의 첫 번째 항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박국의 항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굳이 바벨론 갈대아 사람을 사용하셔야만 하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잘못했기로, 갈대아 사람들보다 더 잘못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하실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질문은 “세상의 역사가 왜 이렇습니까?”라는 항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왜 이렇게 멸시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십니까? 무자비한 백성들에게 왜 넘기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장에 답이 없으신가? 왜 억울하게 힘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 속에 하나님은 개입하시지 않으시는가? 악이 점점 커져 가는 우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고만 계시는 것인가? 도리어 그들을 좀 징계하셨더라면, 하나님의 정의가 바르게 세워지지 않았을까?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곧 입이 비뚤어지게 만드시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셨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토록 방자하게 하나님을 떠났을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니 악이 승하고, 악한 이들이 거짓을 행하기에 두려움이 없으며, 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지금도 가만히 계십니까?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이들은 건강한데, 우리가 도리어 병에 걸려 일찍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도리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는 것 같고, 무신론자들이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이며,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이 더 오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오고, 매일같이 새벽 기도에 나와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봉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왜 박대하시는 것 같이 느껴집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한바탕 항의한 후에 이렇게 합니다. 이제 망대에 가서 한번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대답을 들어 보기로 생각하고 망대로 갑니다. 2장 1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합 2:1)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악인을 향한 화를 다섯 가지 묵시로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그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2~3)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달려가는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이 보게 하여라. 이 묵시가 곧 이루어질 것이다. 조금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기다려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화 있을진저”라는 하나님의 다섯 가지 묵시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첫 번째는 6~8절의 말씀입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모으는 자들, 노략질하는 자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는 또 누군가에게 노략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합 2:8)

두 번째 “화 있을진저”는 9~11절 말씀입니다. “자신의 집을 위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는 사람, 자신의 집을 위해 창피한 일을 꾸미는 사람,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합 2:11)

자신의 집을 위해 부당한 것을 쌓은 자들, 그렇게 지어진 담과 들보가 들썩이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집이 무너질 것임이라는 암시입니다.
세 번째 “화 있을진저”는 12~14절 말씀입니다. “피로 성읍을 건설한 사람, 불의로 성을 건축한 사람,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네가 백성들을 잡아다가 부렸지만, 그들이 애써 한 일이 다 헛수고가 되고, 그들이 세운 것이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나 만군의 주가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합 2:13, 새번역)

억지로 사람들을 불러서 피를 흘리게 하며 성을 건설한 자는 그것을 누리는 듯하지만, 결국 그 성이 무너지고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 번째 “화 있을진저”는 15~17절 말씀입니다. “술 취하게 하여 다른 이의 알몸을 헤쳐 보는 자, 그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이제는 네가 마시고 곯아떨어져 네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 주의 오른손에 들린 심판의 잔이 네게 이를 것이다.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릴 것이다. 네가 레바논에서 저지른 폭력이 이제, 네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합 2:16~17a, 새번역)

다른 이에게 성적으로 폭행을 하고 알몸을 드러내게 한 대가를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화 있을진저”는 1~19절 말씀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들, 자기가 부어 만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합 2:19b)

<혼란한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주어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이 혼란하고 모순덩어리같이 보이는 세상, 이 땅에 계신다. 성전에 존재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시며 지금도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신다”라는 말씀입니다. 노략질하는 사람들, 부당하게 속이는 사람들,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 피로 성읍을 건설하는 사람들, 남의 알몸을 들여다보는 이들,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응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한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3)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거짓되지 않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아 말씀하십니다.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이것이 하박국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대답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나님, 정의롭게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항의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이 말씀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여기서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 ‘에무나(אֱמוּנָה[emuwnah], faithfulness, fidelity, steadfastness, trust, faith)’는 ‘믿음’이라는 뜻도 포함되지만, 주로 ‘성실함’, ‘충성됨’ 혹은 ‘신실함’, ‘정직함’ 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말씀은 “나의 마음으로 믿는다”라는 뜻을 넘어서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내게 맡기신 일을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하며 살아간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세상이 혼란하고 나라가 멸망하며, 포로로 잡혀가고 또다시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의는 믿음으로 산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부당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신 예수님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부당하며 불합리했던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어디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함락당한 그 장소일까요? 아닙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자리야말로 가장 부당하고 부정의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죄인들의 손에 의해 의인이 희생된 십자가 자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부당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셨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당당히 십자가를 지고 인류 구원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를 알게 된 하박국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듣고서 나의 창자가 흔들렸고,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렸습니다. 나의 뼛속이 썩고 있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쳐들어오는 백성에게 닥칠 어려운 날을! (합 3:16, 새한글성경)

지금 바벨론이 남유다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유다를 속국으로 삼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아갈 것입니다. 지금 그 시점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그 너머를 봅니다. 지금 쳐들어오고 있는 바벨론이 또 다른 나라에게 침략당하고, 그들에게 닥칠 어려운 날을 미리 내다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미리 내다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깨달은 하박국은 고난 속에서도 노래합니다. 징벌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기뻐합니다. 아무리 소출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이 시간 이해가 되지 않는 억울한 일,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뒤틀어진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계신다.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 주님께서 알고 계신다. 그러니 잠잠하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니라.” 기도하겠습니다.

“주 앞에서 잠잠하라” (합2:1~4,20)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94장, 30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이 불의한 세상을 왜 그냥 두십니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해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설교의 요약>

  하박국은 나라가 무너져 가는 현실, 악이 성하고 의인이 억울하게 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두 가지 항의를 합니다. 첫째로,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1:2)라며 남유다의 불의를 그냥 두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놀랍습니다. 유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오히려 바벨론, 곧 유다보다 더 악한 자들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하박국은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13)라며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박국이 파수꾼처럼 성루에 올라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자, 하나님께서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과 함께 다섯 부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이 모든 심판 선언 가운데 하나님은 핵심 메시지를 주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여기서 ‘믿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2:20)고 선언하시며,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주권자로 통치하고 계심을 확증하십니다.

  하박국은 마침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리라”(3:17–18)고 고백하며, 황폐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시간 속에서도 “주님은 성전에 계시니 잠잠할지어다”라는 위로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진리를 붙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누기>

1.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2. “주님은 성전에 계시니 잠잠할지어다”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구역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무리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섬세하신 계획과 섭리가 있는 줄 믿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 믿음으로 위로를 얻게 하시고, 고통당하는 이들이 이 믿음으로 힘을 얻게 하시며, 절망하는 이들이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위로하시며 이 믿음을 확증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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