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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역사의식
<새해를 시작하며 여전히 답답한 현실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지 말씀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2025년 새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관심을 두곤 합니다. 올해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집안에 어떤 일이 있을까,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기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승진이나 결혼, 대학 입학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합니다. 궁금한 마음에 점집이나 용하다는 사람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미래를 안다면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법사, 스승, 도사, 보살 등의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사람들을 불러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나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입니다.
2025년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두렵고 걱정되는 새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큰 우려와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면 이 나라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생각이 듭니다. 2025년에 대한민국의 미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멋진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펼쳐질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걱정됩니다.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수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역사가의 선택적 기술이 있습니다. 일어난 일을 반추하고 정리해서 과거의 일을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삼습니다. 더 나은 세상과 더 좋은 미래를 만들려는 일이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사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사건을 정리하고 해석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각기 사관에는 그들이 바라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역사를 경험하고 배워 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상을 보면 과연 이것이 역사의 진보일지 생각이 듭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 전쟁이 그러하고, 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국과 심지어 교회 교단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프닝 같은 일들도 그러합니다. 과연 역사가 발전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면 여러 분야에서 날마다 더 수준 높고 나은 행동들이 일어나야 할 텐데, 왜 역사의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참 답답합니다. 아마 나라의 현실뿐만 아니라 여러분 개인의 현실에도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최근 국가적인 상황을 신앙인으로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현실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역사관이 역사서의 맨 앞과 맨 마지막에 반복되는 말씀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 답답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오늘의 본문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위치와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 성경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나눕니다. 이 중에서 구약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 사용한 경전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구약(Old Testament)은 ‘오래된 약속’이라 부르고 신약(New Testament)을 새로운 약속이라고 부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물론 구약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약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내려오고 있는 경전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조금 긴 제목으로 자신의 경전을 부릅니다.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부릅니다. 히브리말로는 『Torah Nebhim Ketubhim』(토라 네비임 케투빔)입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과 내용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일치되지만, 순서와 배열 등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구약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말라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전은 우선 토라가 있고 그다음에 네비임, 케투빔이 이어집니다. 그중 율법서(토라)는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세 오경을 전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순서가 달라집니다. 다음으로 오는 예언서(네비임)는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전기예언서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12개의 소예언서가 후기예언서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경전의 중간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성문서(케투빔)입니다. 여기에는 시편, 잠언, 욥기가 있고,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는 다섯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데 한 권처럼 되어 있어서 하나로 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가 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는 후기 이스라엘을 다루는 역사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성문서 중 후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입니다.
조금 길게 유대인 경전의 순서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의 위치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위치는 히브리 성경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우리는 역대기상·하로 나누고 있지만 유대교에는 역대기로만 되어 있는데, 마지막 부분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즉 오늘 본문이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의 맺는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후기 역사를 어떻게 적고 있을까요? 포로에서 돌아왔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적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함께 한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대하 36:22~23)
이 내용이 유대인들의 경전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맨 마지막 문구입니다. 그렇다면 후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서 중에 첫 번째인 에스라서 맨 앞부분은 어떻게 시작하고 있을까요? 에스라서 1장 1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이것도 같이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 1:1~2)
이 내용을 보면 성문서(케투빔) 중 역사서의 첫 부분이 포로에서 귀환했던 내용의 일부를 전하고 있고, 같은 내용이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또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의 맨 앞부분과 맨 마지막이 같은 내용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언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잣대가 역사서의 앞과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관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왜 유대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이 문장을 앞과 뒤에 놓았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문장이 이들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역사에 대한 관점입니다. 그들이 고백하는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유대인들이 겪은 포로에서의 해방은 어떠한 정치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의 투쟁을 통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가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셨다는 기술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일을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가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일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 문장, 한 글자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통치, 하나님의 선물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있었던 해방은 이렇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서의 맨 앞과 맨 마지막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은 성경의 전체를 관통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 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도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라고는 탄원, 탄식과 불평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하나님 자신의 의지로 모세를 선택하시고 자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그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 주변만을 돌도록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역사의 흐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운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입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역사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역사관입니다. 이러한 역사관이 모세가 홍해를 앞에 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내용 가운데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하나님이 만드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역사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입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이야기, 아워 스토리(Our Story)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이야기, 히스 스토리(His Story) 곧 히스토리(History)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의도와 결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하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이니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반응입니다. 인간의 회개, 인간의 탄원, 인간의 불순종과 같은 일들이 역사를 바꾸고 엎어뜨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결단을 바꾸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도가 이런 곳에 있습니다.
시편 106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흐름을 잘 표현합니다. 여러 사례가 나오는데, 그중 인간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던 사건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시 106:19~23)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가운데 사람의 행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멀리하며 우상을 만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주님 앞에 드린 중보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여러 변곡점마다 사람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탄원과 회개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역사는 바뀌었고 하나님은 또 다른 역사를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봅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하였습니다. 애국 운동이자, 정치적 운동,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그 저항 운동에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참여하였고 기독교인들도 다수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3·1절이 될 때마다 선조들의 아름다운 저항을 기억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해방이 과연 3·1운동 때문에 왔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3·1운동이 지나고 오랜 후 예상하지 않던 때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뜻 가운데 해방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대한의 독립은 새벽마다 주님께 울부짖었던 교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놀랄 만한 번영과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선조들의 간절한 기도가 바탕에 있습니다.
<절대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저는 작년 2024년 여름에 다음 해인 올해 교회의 주제를 고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일생일벗’이라는 주제를 드렸죠. “한 영혼이라도 우리가 구원하자”라는 말씀을 드렸고 교우들께서 한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여름에 저는 다음 해에 우리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함께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권면은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기도를 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저에게 계속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쯤 몇 분들에게 “내년 주제는 기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음을 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선이 악을 징벌하고 악이 완전히 멸절되는 상황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한다면 그렇게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은 당연히 들어주실 것이지만, 역사의 흐름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더 악한 백성과 왕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쳤던 그 왕을 또 다른 왕이 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저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의 겉모습 때문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는지 우리는 때로 조급한 마음으로 일희일비할 때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역사가 들려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현재가 불투명하고 어려우며 힘들지라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참여하는 길은 기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우리의 미래가 걱정됩니까? 나라의 미래, 자녀의 미래가 걱정되죠.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선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탄원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시편 46편 말씀, 제가 늘 좋아하는 말씀이자 제가 투병할 때 붙잡고 있던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46:1~3)
나라와 정치가 혼란스럽고 요동치며 모든 것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것 같은 상황입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며 바닷물이 솟아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란 중에 만날 도우미시다.’ 이 믿음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1,35,37)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뛰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걱정이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신앙이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두려워하면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합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정치적인 소견을 가지고 나라의 앞날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관입니다. 이 역사관만큼은 신앙인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많은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니 괜찮아. 안심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이 믿음으로 모든 백성을 위로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소망의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Historical Awareness of Christians
2 Chronicles 36:22-23
When a new year starts, peoplebecome very curious about the future. What good fortune will I come across this year? What will happen to my family? Will anything bad happen? What will happen to the company? What about me? Will I get a promotion? Get married? Will I get into college? Out of curiosity people visitfortune-tellers and so-called prophets. They do this because of afear of an unknown future. They think they might be better prepared if they know what’s coming.
Recently, Buddhist monks and gurus are being connected to the president and politicians. We hadour doubts, but now it seems undeniable that President Yoon and the first lady were dependent on them. Although the president and politicians had sought the advice of these self-proclaimed prophets, it seems they had had no idea they would be in this current mess. This is unfortunate.
In 2025 we have more to worry and to be afraid about than ever.
Anyone living in Korea will be worried and distressed about the current, ongoing situation. What will happen to Korea if things go on like this? How will itshistoryunravel? We are afraid.
How will Korea’s historyproceed in 2025?
To this date, Korea has written a magnificent history. However we are now worried about its future history.
You will have heard of E. H. Carr’s bookWhat Is History?But even without quoting from his book, it is common knowledge that history written by man is not simply a collection of events but the historian’s selective description of events. The writing of history is about reflecting on and evaluating past events to gain lessons for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rough this we try to build a better world, a better future. That is why views of history are critical. The view we take in evaluating and interpreting historical events is crucial. Furthermore, each view contains the historian’s expectation and blueprint for abetter future. But it seems that in Korea todayeven the views of historyare clashing, adding to the confusion.
These days I often wonder, ‘Can we really say history progresses, considering the Russia-Ukraine war, the war in the Middle East, the imposition of martial law and the impeachmentof the president in Korea, and the problems in the church and our denomination?’
Why hasn’t a better world arrived? We would imagine that if mankind has learned from history,peoplewould be takingimproved, more mature actions in various fields. But why aren’t we seeing such historical progress?
Many Christians are frustrated by the current situation in Korea. The situation seems truly hopeless. Some have even quit watching the news. Just listening to it is so distressing that they would rather ignore it. A denial of reality. I sometimes feel the same way. I sometimes wish we could escape this painful reality.
However, what must we be thinking in this reality? How must we view the current events and situation? Particularly as Christians, what view of history must we take as we look at and evaluate the problems in Korea today?
To find the answer to this frustrating problem, I want to study today’s passage from 2 Chronicles.
First, to understand the text properly we must have some understanding of the Hebrew Bible, the Bible of the Jews.
We call it the Old Testament, but what do the Jews call it? Since they do not accept the New Testament, it would not be the Old Testament for them. So what do they call it?
Jews use a rather long name for their Bible: The Law, the Prophets, and the Writings, which in Hebrew is “Torah Nebhim Ketubhim.”Many of you will have heard it for the first time. Torah Nebhim Ketubhim is the name of the Hebrew Bible.
Although the contents of the Hebrew Bible, or Torah Nebhim Ketubhim, are the same as that of the Old Testament, the order of the books is different. The Old Testament starts with Genesis and ends with Malachi. But the Hebrew Bible follows a different order.
The Torah, the Law, comes first. The Torah refers to The Five Books of Moses. So the first parts of the Hebrew Bible and of the Old Testament are the same. But after that, they diverge. The next section of the Hebrew Bible isNebhim, the Prophets. Nebhim is divided into the early prophets and the latter ones. Joshua, Judges, Samuel, Kings are includedin the former, while Isaiah, Jeremiah, Ezekiel, andThe Twelve Minor Prophetsare included in the latter.
The last section of the Hebrew Bible is Ketubhim, the Writings. Ketubhim includes books of songs and wisdom—such as Psalms, Proverbs, and Job—and other books, such as The Song of Songs, Ruth, Lamentations, Ecclesiastes, Esther, Daniel, Ezra-Nehemiah, and Chronicles.
I gave quite a lengthy explanation on the Hebrew Bible—for a reason.
I wanted to stress that the very last book in the Hebrew Bible is none other than Chronicles. So, from the Jewish perspective, today’s passage from Chronicles is the very last sentences of the Hebrew Bible.
What would the Jews have thought as they read these verses? Let’s read them again, imagining their thoughts:
“In the first year of Cyrus king of Persia, in order to fulfill the word of the Lord spoken by Jeremiah, the Lord moved the heart of Cyrus king of Persia to make a proclamation throughout his realm and also to put it in writing: ‘This is what Cyrus king of Persia says: The Lord, the God of heaven, has given me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and he has appointed me to build a temple for him at Jerusalem in Judah. Any of his people among you may go up, and may the Lord their God be with them.’”(2 Chronicles 36:22-23)
There is another book in Ketubhim, besides Chronicles, that relates to Jewish history: Ezra-Nehemiah. Ezra-Nehemiah comes first and then comes Chronicles.
So from the perspective of Jews, what would be the first sentence of the books on history in their Bible?
“In the first year of Cyrus king of Persia, in order to fulfill the word of the Lord spoken by Jeremiah, the Lord moved the heart of Cyrus king of Persia to make a proclamation throughout his realm and also to put it in writing: ‘This is what Cyrus king of Persia says: The Lord, the God of heaven, has given me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and he has appointed me to build a temple for him at Jerusalem in Judah.’”(Ezra 1:1-2)
Surprisingly, the above is exactlythe very last sentences of Chronicles. In short, the historical books of the Hebrew Bible start and end with the same verses. Of course, the history of the Jews written in the Hebrew Bible have to do with the Babylonian captivity. At least this is the history written inKetubhim.
Why did the Jews place these verses in the beginning and at the end of their history? Simply put, these words are a clear manifestation of their view of history.
To them history is one guided by God. Their liberation from Babylonian captivity was not the result of any political endeavor. God moved the heart of Cyrus king of Persia and sent the Jews back to their homeland.
This was how they gained the freedom that they had so craved. This is why the Jews placedthese words at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their historical books.
This Jewish view of history runs through the entire Bible. The Bible continuously reminds us of it.
This view is shown in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All they did was complain. But God chose Moses, led His people out into the wilderness, parted the Red Sea, and led them into the land of Canaan.
A similar thing happens in the fall of Jericho. God simply made the Israelites circle the city. God allowed them to see Himworking. God made them see that it was not they who destroyed the city but God Himself.
The view of history that the Bible imparts to us is this: history starts from God; it is gifted to us from Him; we do not make it.
This view of history is most clear in Moses’ declaration to the Israelites at the Red Sea:
“Moses answered the people, ‘Do not be afraid. Stand firm and you will see the deliverance the Lord will bring you today. The Egyptians you see today you will never see again. The Lord will fight for you; you need only to be still.’”(Exodus 14:13-14)
The Biblical view of history is that God is the Author and Creator of history. Indeed, history is not “ourstory” but “History.”
The important variable, however, in this God-driven history is man’s attitude. Our attitude toward God. Psalm 106 reviews our relationship with God well. Among the many examples given in this psalm, theIsrael’s worship of the golden calf is described as follows:
“At Horeb they made a calf and worshiped an idol cast from metal. They exchanged their glorious God for an image of a bull, which eats grass. They forgot the God who saved them, who had done great things in Egypt, miracles in the land of Ham and awesome deeds by the Red Sea. So he said he would destroy them— had not Moses, his chosen one, stood in the breach before him to keep his wrath from destroying them.”(Psalm 106:19-23)
This shows how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the Israelites creates an inflection point in Israel’s history. Furthermore, it teaches us that Moses’ intercessions also had an impact on Israel’s history.
This is the very reason we must pray for our country. It is because Korea’s fate lies in God’s hands.
Let’s review Korea’s history. Koreans fought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rough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t was a political action. A resistance based on non-violence. Although many Koreans of many religions took part in it, Christians took up the largest group. We Christians are proud of this fact.
But when we think about it, Korea’s liberation arrived not because of any politicalmovementinitiated by Koreans such as the March First Movement. Our liberationwas the authoritative will and determination of God.
I believe God gave Koreaindependence through theprayers of Christians who cried out to God each dawn. Korea’s astonishing prosperity and development today are also God’s gift to us; and I believe the earnest prayers of our ancestorsare at the bottom of them.
Last summer I was praying to God about how I should lead Somang Church and our congregation in 2025. Last year, as you know, we had the goal of bringing one friend to God to be saved.
But last summer God began to move my heart, speaking about a need for prayer. So I told a few close acquaintances that next year’s theme would most likely be prayer. Now, as we greet the New Year, I have come to understand more clearly why and for what we must pray. I am certain that God desires us to pray.
How should we pray then? The situation is so complex that we aren’t even sure what to pray about. Yet we must pray. God guides us in ways that we can never think or imagine.
For example, don’t we confess that God judges the world in righteousness? But what is the reality we seebefore our eyes? Do good people really prevail, and is justice always done? Sometimes the very opposite occurs. Evil prevails and good loses. We see people dying under injustice and the wicked seem to win.
When we see such things, we get anxious and angry becauseit appears our prayers are not answered. Our faith becomes weak. But look at the Bible. God uses the victory of the wicked to judge Israel; but the wicked is, in turn, judged by someone/something even more evil. This was what happened to Nebuchadnezzar.
Even ifit seems incomprehensiblefrom our perspective, God is theAuthor of history. AndHe never errs.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Even if our current reality is obscure and distressing and incomprehensible, God willultimately achieve good by making all things work together. God will fulfill history. That history will be the expression of His love for us; it will be prosperity: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Jeremiah 29:11)
Dear Church, are youworried about the country’s future?Are you anxious about your future? About your children’s?
All these are in God’s hands. Faith is to believeit. God desires to save us, to give us what is good. A Christian is someone who believes this.
How do you think the history of Korea will unfold? Whatever happens, God will guide us well. All we must do is pray earnestly to Him. To beafraid and to be anxious about the future is not the attitude of a Christian. Whatever happens, we will not be shaken.
This is a verse from Psalm 46. It is one of my favorite verses—a verse I constantly memorized and meditated on when I was fighting illness: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Therefore we will not fear, though the earth give way and the mountains fall into the heart of the sea, though its waters roar and foam and the mountains quake with their surging.”(Psalm 46:1-3)
“What, then, shall we say in response to these things?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Romans 8:31, 35, 37)
Are you worried about the future? Are you worried about Korea’s future? Let’s pray. God is with us and He will make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his is the historical awareness of Christians.
역대하 36:22~23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새해를 시작하며 여전히 답답한 현실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지 말씀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2025년 새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관심을 두곤 합니다. 올해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집안에 어떤 일이 있을까,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기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승진이나 결혼, 대학 입학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합니다. 궁금한 마음에 점집이나 용하다는 사람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미래를 안다면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법사, 스승, 도사, 보살 등의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사람들을 불러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나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입니다.
2025년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두렵고 걱정되는 새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큰 우려와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면 이 나라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생각이 듭니다. 2025년에 대한민국의 미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멋진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펼쳐질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걱정됩니다.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수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역사가의 선택적 기술이 있습니다. 일어난 일을 반추하고 정리해서 과거의 일을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삼습니다. 더 나은 세상과 더 좋은 미래를 만들려는 일이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사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사건을 정리하고 해석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각기 사관에는 그들이 바라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역사를 경험하고 배워 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상을 보면 과연 이것이 역사의 진보일지 생각이 듭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 전쟁이 그러하고, 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국과 심지어 교회 교단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프닝 같은 일들도 그러합니다. 과연 역사가 발전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면 여러 분야에서 날마다 더 수준 높고 나은 행동들이 일어나야 할 텐데, 왜 역사의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참 답답합니다. 아마 나라의 현실뿐만 아니라 여러분 개인의 현실에도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참 많이 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최근 국가적인 상황을 신앙인으로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현실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역사관이 역사서의 맨 앞과 맨 마지막에 반복되는 말씀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 답답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오늘의 본문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위치와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 성경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나눕니다. 이 중에서 구약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 사용한 경전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구약(Old Testament)은 ‘오래된 약속’이라 부르고 신약(New Testament)을 새로운 약속이라고 부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물론 구약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약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내려오고 있는 경전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조금 긴 제목으로 자신의 경전을 부릅니다.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부릅니다. 히브리말로는 『Torah Nebhim Ketubhim』(토라 네비임 케투빔)입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과 내용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일치되지만, 순서와 배열 등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구약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말라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전은 우선 토라가 있고 그다음에 네비임, 케투빔이 이어집니다. 그중 율법서(토라)는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세 오경을 전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순서가 달라집니다. 다음으로 오는 예언서(네비임)는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전기예언서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12개의 소예언서가 후기예언서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경전의 중간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성문서(케투빔)입니다. 여기에는 시편, 잠언, 욥기가 있고,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는 다섯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데 한 권처럼 되어 있어서 하나로 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가 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는 후기 이스라엘을 다루는 역사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성문서 중 후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입니다.
조금 길게 유대인 경전의 순서를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의 위치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위치는 히브리 성경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우리는 역대기상·하로 나누고 있지만 유대교에는 역대기로만 되어 있는데, 마지막 부분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즉 오늘 본문이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의 맺는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후기 역사를 어떻게 적고 있을까요? 포로에서 돌아왔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적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함께 한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대하 36:22~23)
이 내용이 유대인들의 경전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맨 마지막 문구입니다. 그렇다면 후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서 중에 첫 번째인 에스라서 맨 앞부분은 어떻게 시작하고 있을까요? 에스라서 1장 1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이것도 같이 읽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 1:1~2)
이 내용을 보면 성문서(케투빔) 중 역사서의 첫 부분이 포로에서 귀환했던 내용의 일부를 전하고 있고, 같은 내용이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또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의 맨 앞부분과 맨 마지막이 같은 내용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언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잣대가 역사서의 앞과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관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왜 유대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이 문장을 앞과 뒤에 놓았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문장이 이들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역사에 대한 관점입니다. 그들이 고백하는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유대인들이 겪은 포로에서의 해방은 어떠한 정치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의 투쟁을 통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가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셨다는 기술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일을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가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일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 문장, 한 글자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통치, 하나님의 선물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있었던 해방은 이렇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서의 맨 앞과 맨 마지막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은 성경의 전체를 관통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 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도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라고는 탄원, 탄식과 불평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하나님 자신의 의지로 모세를 선택하시고 자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그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 주변만을 돌도록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역사의 흐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운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입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역사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역사관입니다. 이러한 역사관이 모세가 홍해를 앞에 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내용 가운데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하나님이 만드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역사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입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이야기, 아워 스토리(Our Story)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이야기, 히스 스토리(His Story) 곧 히스토리(History)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의도와 결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하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이니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반응입니다. 인간의 회개, 인간의 탄원, 인간의 불순종과 같은 일들이 역사를 바꾸고 엎어뜨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결단을 바꾸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도가 이런 곳에 있습니다.
시편 106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흐름을 잘 표현합니다. 여러 사례가 나오는데, 그중 인간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던 사건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시 106:19~23)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가운데 사람의 행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멀리하며 우상을 만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주님 앞에 드린 중보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여러 변곡점마다 사람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탄원과 회개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역사는 바뀌었고 하나님은 또 다른 역사를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봅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하였습니다. 애국 운동이자, 정치적 운동,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그 저항 운동에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참여하였고 기독교인들도 다수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3·1절이 될 때마다 선조들의 아름다운 저항을 기억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해방이 과연 3·1운동 때문에 왔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3·1운동이 지나고 오랜 후 예상하지 않던 때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뜻 가운데 해방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대한의 독립은 새벽마다 주님께 울부짖었던 교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놀랄 만한 번영과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선조들의 간절한 기도가 바탕에 있습니다.
<절대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저는 작년 2024년 여름에 다음 해인 올해 교회의 주제를 고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일생일벗’이라는 주제를 드렸죠. “한 영혼이라도 우리가 구원하자”라는 말씀을 드렸고 교우들께서 한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여름에 저는 다음 해에 우리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함께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권면은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기도를 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저에게 계속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쯤 몇 분들에게 “내년 주제는 기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음을 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선이 악을 징벌하고 악이 완전히 멸절되는 상황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한다면 그렇게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은 당연히 들어주실 것이지만, 역사의 흐름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더 악한 백성과 왕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쳤던 그 왕을 또 다른 왕이 치도록 하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저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의 겉모습 때문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는지 우리는 때로 조급한 마음으로 일희일비할 때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역사가 들려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현재가 불투명하고 어려우며 힘들지라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참여하는 길은 기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우리의 미래가 걱정됩니까? 나라의 미래, 자녀의 미래가 걱정되죠.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선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탄원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시편 46편 말씀, 제가 늘 좋아하는 말씀이자 제가 투병할 때 붙잡고 있던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46:1~3)
나라와 정치가 혼란스럽고 요동치며 모든 것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것 같은 상황입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며 바닷물이 솟아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란 중에 만날 도우미시다.’ 이 믿음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1,35,37)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뛰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걱정이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신앙이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두려워하면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합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정치적인 소견을 가지고 나라의 앞날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관입니다. 이 역사관만큼은 신앙인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많은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니 괜찮아. 안심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이 믿음으로 모든 백성을 위로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소망의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5년 1월 5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신앙인의 역사의식” (대하 36:22~2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52장, 7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새해, 우리에게 일어날 어떤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좋은 일과 나쁜 일, 사업, 직장, 결혼, 대입 등 여러 일들에 대해 어떻게 예상하고 있거나, 기대 혹은 걱정과 염려 가운데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2025년 어느 때보다 두렵고 걱정되는 새해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사건의 수집이 아니라, 역사의 선택적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사건을 정리하고 해석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과연 역사는 발전하고 있습니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 중동 전쟁,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계엄과 탄핵 정국, 심지어 교회와 교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싶습니다. 절망적인 모습들을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워서 뉴스를 안본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대인들의 역사인식을 먼저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구약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말라기서로 끝이 나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서, 예언서, 그리고 마지막에 성문서 순서로 배열합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책이 바로 역대기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성경의 제일 마지막 문장인 것입니다. 역대기의 앞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있습니다. 에스라를 시작하는 1:1~4 내용도 역대기의 마지막 말씀과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앞(에스라) 뒤(역대기)에 넣은 이유는 이들의 사관에는, 유대인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역사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그들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내가 만드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역사,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큰 변곡점이 있었지만, 그 때에 모세의 중보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독립은 교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번영과 발전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선조들의 간절한 기도가 바탕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악이 기승을 부리고 선이 묻히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끄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렘29:11)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잘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간절히 기도하는 일입니다.(시46:1~3, 롬8:31,35,37)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역사의식입니다.
<나누기>
1. 풍랑 가운데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일들이 어떠한 일들이 있습니까?
2. 말씀을 생각하며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우리의 삶을 이끄시기에 괜찮다고 근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미래가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걱정을 내려놓고 올 한 해를 넉넉히 살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미래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