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지혜 – 하나님의 현존의식

시편 94: 3 ~ 11

김경진 목사

2020.10.25

< 지혜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관심이 존재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성경에서도 지혜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나타납니다. 혹시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 사람, 참 지혜롭다!’라고 감탄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공동체를 조화롭게 인도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유연하게 맡겨진 일들을 수행해 가는 사람을 볼 때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편 고대 중국 무협 소설을 보면, ‘지혜롭다’는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사용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 적군을 능히 무찌를 때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 진실, 만물의 근원이 되는 이치를 찾아 나서는 것을 ‘지혜’로 보기도 합니다. 만물의 이치를 깨우쳐 알게 되는 것을 ‘지혜’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약이라도 먹어서 지혜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지혜는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긴 시간 축적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혜도 쌓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 때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도, 좋은 친구와 사귈 때도, 악한 친구를 만날 때도 지혜가 쌓일 수 있습니다. 즉 지혜란 삶의 연륜과도 비슷합니다. 지혜가 쌓이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도 익히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배양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혜를 얻을 때쯤이면 나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게 많아지니, 후배들이나 자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는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네요.” 그랬더니 이런 화답이 되돌아오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나 때는 말이야’인 걸 왜 모르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또 다른 지혜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지혜라는 것을 말입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내 인생을 통해 얻은 지혜를 자녀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게 정말 많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다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하실 말씀과 교훈이 굉장히 많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을 허락해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 세상 지식이 아닌 하늘의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

성경에는 두 가지 지혜의 형태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지식이며,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특히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세상의 지식과 하늘의 지식이 날카롭게 비교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고린도전서 1:27 중)

이때 ‘지혜 있는 자들’은 세상적으로 지혜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서로 견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늘의 지혜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잠언 8장 1절과 5절입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잠언 8:1)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잠언 8:5)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하늘의 지혜’를 가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지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지혜에 관해 나눠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윗 구절인 시편 94편 1~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시편 94:1~2)

하나님께 절규하는 시인의 모습입니다.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며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복수와 심판을 기대하는 시인의 청원입니다. 이어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간구하는 시인의 이유가 나타납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시편 94:3~7)

시인이 애통하게 하나님을 부르짖는 이유가 있습니다. 득세하는 악인들, 마구 지껄이는 그들의 행태가 역겹습니다. 오만한 행동에 분노가 치밉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연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악인의 횡포에 시인은 절규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호소합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도 종종 이런 일을 마주하곤 합니다. 악인이 승리하고 연약한 자들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대면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호소하며 탄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시편 94:8)

하나님께 절규하는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가 언제쯤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도리어 반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시편 94:9~11)

“너희가 왜 아직까지 지혜롭지 못하냐?”라고 꾸짖으시며 주님께서 한마디를 더하셨는데, 요약하면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을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아신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을 통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진정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지혜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도록 명하셨습니다. 성막의 설계도까지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5장 10절입니다.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출애굽기 35:10)

이때 ‘지혜로운 자’란 어떤 뜻일까요? 창의력이 높은 사람? 무언가 더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무언가 적응 능력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당시 하나님께서 모든 디자인을 하셨습니다. 색도 규정하셨고, 크기도 알려 주셨으며, 모양도 정해 주셨습니다. 보석의 종류도 일일이 지정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천의 종류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도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지혜로운 자를 뽑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어떤 의미일까요? 조금 더 멋지고 훌륭하게 성막을 지을 사람이 필요해서 세상 지식을 동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를 뽑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여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일컬으신 것입니다. 성막을 지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완성해 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말 중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에 관련해 얼마나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는가를 가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요즘은 성인지 감수성이 한 사람의 인성을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주제와 관련해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인지 감수성’, ‘신 인지 감수성’이라고 말입니다. 즉 ‘지혜’를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라고 정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나를 알고 계시며,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심을 신뢰하는 사람을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하나님의 현존 의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올해로 503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볼 때, 참담한 심정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바른 교회를 세우겠다고 시작된 개신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요? 저는 ‘우리에게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것은 아닐까?’ 하고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 감수성이 없다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려다 결국 파멸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의식, 하나님의 현존 의식이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삶을 온전하게 채워 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목사들에게 이런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목사님, 예수님 잘 믿으세요.” 이 말씀을 오늘의 주제인 ‘지혜’와 관련해 적용한다면,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목사님들, 그리고 성도님들, 예수님이 내 옆에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십시오.”
최근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께서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나와 봉사하시며,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기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 권사님 중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집을 정리하시고 십의 일조를 떼어 헌금으로 가져와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같이 온 아들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많은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권사님은 아들에게 사업 자금을 챙겨 주는 대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권사님의 말씀이 이런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하나님께 저금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아들의 사업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정말로 귀한 마음이자 소중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동행하심을 신뢰하기에, 이렇게 결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지혜’, 곧 ‘신 의식 능력’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현존하심을 느끼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우리가 지혜로워지며, 우리의 삶도 더욱 풍성해질 줄 믿습니다.

Wisdom: Consciousness of His Existence

Psalm 94: 3-11

What is wisdom? It is a concept hard to define and cannot be expressed in a word. How do you define wisdom? As you try to make ends meet, you may not have mulled over this question. Then let me rephrase it. When you consider someone “wise,” what about him/her makes you think so?

Traditionally, when Korean mothers-in-law praised a daughter-in-law for being “wise,” it was usually because she was good at relationships within the family and served the family well. Generally, a person is called wise when he/she knows how to get on in the world. When someone understands others’ thoughts well, diagnoses a situation well, and acts in a way that benefits the community, that person is called wise. Particularly, in Korean culture a person is considered wise when he/she benefits the community.

In short, wisdom is something good.

In old Chinese novels, wise men appear. These men usually have the power to foresee the future or to detect risks. In a world full of wars and struggles, they defended their country and community from enemies. Such characters were depicted as wise men.

In eastern religions such as Buddhism, wisdom is a kind of deep realization. It is to understand how the universe moves and to be free of obsession with the material world. In a word, wisdom is something good, something that one must simply possess.

Then how can we gain wisdom? Can it be obtained by a miracle drug? Oh, how wonderful that would be! But, alas, wisdom can only be gained little by little. Sometimes pain—and sometimes joy—imparts wisdom. Both the good and the bad lead to wisdom.

Both good friends and evil people give us wisdom. As time passes, wisdom grows. And, so, wisdom lives in people. It’s sad that men die after gaining wisdom. A person grows and becomes wise, but then he dies. That’s life.

That is why many people read books to gain wisdom from others. They try to find answers to life in books, which are in fact quite helpful. The more you read and learn, the wiser you become.

Have you ever thought of becoming terminally ill? I once wondered what I would do if I only had months to live. This might sound a bit selfish, but I thought I would hand down whatever wisdom I gained in life—whether it be from experience, my studies, observation of people, or life lessons—to my children in writing or otherwise.

When I told a friend about this, he said something that woke me up. “Do you think your children would want to hear about all that from their dad? Despite all your learning, you don’t know this.” These words were wisdom to me. I also came to think, ‘If I wanted to impart my meager wisdom to my children, then how much more would our almighty Creator want to share His wisdom with us?’

Then what is the wisdom that our Lord shares with us through Scripture? In the Bible, there are two kinds of wisdom: worldly wisdom and heavenly wisdom. In the New Testament the distinction between these two is particularly clear.

In 2 Corinthians 1:27 it says, “But God chose the foolish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wise.” Here “the wise” refer to people with worldly wisdom. But God tells us that we need heavenly wisdom, not a worldly one.

The Bibles talk about the importance of gaining true wisdom in many places. For example, in Proverbs 8:1 it says, “Does not wisdom call out? Does not understanding raise her voice?” Also Proverbs 8:5 says, “You who are simple, gain prudence; you who are foolish, set your hearts on it.”

Then what is heavenly wisdom, that is, the wisdom that God wants from us? What is the essence of it? I pray that the Lord will open our eyes to see that wisdom by studying today’s passage.

Psalm 94 begins with anger. The psalmist makes an appeal, as if he has been wronged: “The Lord is a God who avenges. O God who avenges, shine forth. Rise up, Judge of the earth; pay back to the proud what they deserve.” (Psalm 94: 1-2)

The reason for this anger is explained in the following verses: “How long, Lord, will the wicked, how long will the wicked be jubilant? They pour out arrogant words; all the evildoers are full of boasting. They crush your people, Lord; they oppress your inheritance. They slay the widow and the foreigner; they murder the fatherless. They say, ‘The Lord does not see; the God of Jacob takes no notice.’” (Psalm 94: 3-7)

The psalmist is frustrated by the success of the wicked. How can such evildoers live so well? Their speech is arrogant, they are proud, and they crush the innocent and steal from the people. They murder the widow, the foreigner, and the fatherless. Furthermore, they say, “The Lord does not see.”

I can imagine the deep anger and frustration of the psalmist. And it is only natural that he feels that way. We, too, experience such things in life. We see the wicked prevail, crushing the good. We hear the cries of the weak. How can the wicked survive even after treating God’s name in contempt? The good and the faithful cry out in disappointment and pain.

Then God speaks: “Take notice, you senseless ones among the people; you fools, when will you become wise?” (Psalm 94: 8) God is scolding those who are pained over the success of the wicked. He calls them unwise. He rebukes them, “When will you become wise?”

Then God adds, “Does he who fashioned the ear not hear? Does he who formed the eye not see? Does he who disciplines nations not punish? Does he who teaches mankind lack knowledge? The Lord knows all human plans; he knows that they are futile.” (Psalm 94: 9-11)

“The Lord knows.” This is wisdom. God sees, He knows, and He will punish. This is wisdom.

What is wisdom? Wisdom helps us understand how the world and the universe move. It is a treasure that must be gained. It is absolutely necessary in order to live well. Then what is that wisdom?

It is to know that God exists, that He knows us, that He sees and will punish. Therefore, Proverbs 9:10 tells us clearly what wisdom is: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Proverbs 9:10)

Therefore, a wise man is one who knows and fears the Lord, one who lives being conscious of Him.

In Exodus, after God gives Moses the design of the tabernacle, He tells him to have the “wise hearted” do the work: “And every wise hearted among you shall come, and make all that the Lord hath commanded.” (Exodus 35: 10 KJV)

This is a fascinating verse. What did God mean by “the wise hearted”?

The wise hearted were probably skilled and talented. But God probably did not mean that they were creative people, since He had already given Moses a detailed blueprint for the tabernacle, including its size, shape, color, and even the type of fabric. So there wasn’t much independent thinking involved. In this sense, “the wise hearted” were probably not creative people. God sought people who were conscious of Him, who would dedicate themselves to making the tabernacle as if they were in God’s presence the whole time. This is “the wise hearted.”

These days, the term “gender sensitivity” is used a lot. This refers to the ability to be sensitive about gender issues and gender discrimination. Unlike in the past, such an ability is required today, which is only fitting.

In light of the theme of today’s message, why don’t we coin a new phrase “God sensitivity”? Does God exist? Does He see us? Is He all-knowing? Will He surely punish evil? I believe that “God sensitivity” is the ability to confidently say “Yes!” to these questions.

Today we celebrate the Reformation. But I am saddened by the reality of the Korean Church today: Is this the result of the Reformation? If there is one perspective that must be revived on this special day, I believe it would be “God sensitivity.”

God is watching. God knows. He will surely punish.

Without this sensitivity, we will surely fail in our lives. We will be tempted by evil, money, and power. We will be given over to lust, destroying the Church and our own lives.

When we have a consciousness of His presence and existence, we will not be disappointed. We will not be frustrated by the jubilee of the wicked. We will be able to live each day calmly and confidently. We will be able to keep our faith.

Finally, I wish to read to you from Psalm 37, which I read to our senior deacons last Wednesday. I want you to close your eyes and listen to the Lord’s words carefully.

Do not fret because of those who are evil
or be envious of those who do wrong;
for like the grass they will soon wither,
like green plants they will soon die away.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
He will make your righteous reward shine like the dawn,
your vindication like the noonday sun.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when people succeed in their ways,
when they carry out their wicked schemes.
Refrain from anger and turn from wrath;
do not fret—it leads only to evil.
For those who are evil will be destroyed,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inherit the land.
A little while, and the wicked will be no more;
though you look for them, they will not be found.
But the meek will inherit the land
and enjoy peace and prosperity. (Psalm 37:1-11)

btn_switch

시편 94: 3 ~ 11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 지혜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관심이 존재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성경에서도 지혜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나타납니다. 혹시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 사람, 참 지혜롭다!’라고 감탄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공동체를 조화롭게 인도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유연하게 맡겨진 일들을 수행해 가는 사람을 볼 때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편 고대 중국 무협 소설을 보면, ‘지혜롭다’는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사용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 적군을 능히 무찌를 때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 진실, 만물의 근원이 되는 이치를 찾아 나서는 것을 ‘지혜’로 보기도 합니다. 만물의 이치를 깨우쳐 알게 되는 것을 ‘지혜’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약이라도 먹어서 지혜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지혜는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긴 시간 축적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혜도 쌓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 때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도, 좋은 친구와 사귈 때도, 악한 친구를 만날 때도 지혜가 쌓일 수 있습니다. 즉 지혜란 삶의 연륜과도 비슷합니다. 지혜가 쌓이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도 익히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배양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혜를 얻을 때쯤이면 나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게 많아지니, 후배들이나 자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는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네요.” 그랬더니 이런 화답이 되돌아오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나 때는 말이야’인 걸 왜 모르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또 다른 지혜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지혜라는 것을 말입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내 인생을 통해 얻은 지혜를 자녀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게 정말 많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다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하실 말씀과 교훈이 굉장히 많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을 허락해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 세상 지식이 아닌 하늘의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

성경에는 두 가지 지혜의 형태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지식이며,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특히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세상의 지식과 하늘의 지식이 날카롭게 비교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고린도전서 1:27 중)

이때 ‘지혜 있는 자들’은 세상적으로 지혜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서로 견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늘의 지혜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잠언 8장 1절과 5절입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잠언 8:1)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잠언 8:5)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하늘의 지혜’를 가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지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지혜에 관해 나눠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윗 구절인 시편 94편 1~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시편 94:1~2)

하나님께 절규하는 시인의 모습입니다.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며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복수와 심판을 기대하는 시인의 청원입니다. 이어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간구하는 시인의 이유가 나타납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시편 94:3~7)

시인이 애통하게 하나님을 부르짖는 이유가 있습니다. 득세하는 악인들, 마구 지껄이는 그들의 행태가 역겹습니다. 오만한 행동에 분노가 치밉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연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악인의 횡포에 시인은 절규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호소합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도 종종 이런 일을 마주하곤 합니다. 악인이 승리하고 연약한 자들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대면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호소하며 탄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시편 94:8)

하나님께 절규하는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가 언제쯤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도리어 반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시편 94:9~11)

“너희가 왜 아직까지 지혜롭지 못하냐?”라고 꾸짖으시며 주님께서 한마디를 더하셨는데, 요약하면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을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아신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을 통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진정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지혜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도록 명하셨습니다. 성막의 설계도까지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5장 10절입니다.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출애굽기 35:10)

이때 ‘지혜로운 자’란 어떤 뜻일까요? 창의력이 높은 사람? 무언가 더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무언가 적응 능력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당시 하나님께서 모든 디자인을 하셨습니다. 색도 규정하셨고, 크기도 알려 주셨으며, 모양도 정해 주셨습니다. 보석의 종류도 일일이 지정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천의 종류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도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지혜로운 자를 뽑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어떤 의미일까요? 조금 더 멋지고 훌륭하게 성막을 지을 사람이 필요해서 세상 지식을 동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를 뽑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여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일컬으신 것입니다. 성막을 지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완성해 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말 중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에 관련해 얼마나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는가를 가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요즘은 성인지 감수성이 한 사람의 인성을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주제와 관련해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인지 감수성’, ‘신 인지 감수성’이라고 말입니다. 즉 ‘지혜’를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라고 정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나를 알고 계시며,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심을 신뢰하는 사람을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하나님의 현존 의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올해로 503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볼 때, 참담한 심정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바른 교회를 세우겠다고 시작된 개신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요? 저는 ‘우리에게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것은 아닐까?’ 하고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 감수성이 없다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려다 결국 파멸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의식, 하나님의 현존 의식이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삶을 온전하게 채워 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목사들에게 이런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목사님, 예수님 잘 믿으세요.” 이 말씀을 오늘의 주제인 ‘지혜’와 관련해 적용한다면, 이런 내용이 될 것입니다. “목사님들, 그리고 성도님들, 예수님이 내 옆에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십시오.”
최근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께서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나와 봉사하시며,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기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 권사님 중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집을 정리하시고 십의 일조를 떼어 헌금으로 가져와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같이 온 아들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많은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권사님은 아들에게 사업 자금을 챙겨 주는 대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권사님의 말씀이 이런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하나님께 저금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아들의 사업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정말로 귀한 마음이자 소중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동행하심을 신뢰하기에, 이렇게 결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지혜’, 곧 ‘신 의식 능력’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현존하심을 느끼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우리가 지혜로워지며, 우리의 삶도 더욱 풍성해질 줄 믿습니다.

2020년 10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지혜-하나님의 현존의식” (시 94:3-1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10장, 32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 94:3-1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지혜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고,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지요. 여러분은 지혜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지혜를 정의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지혜’와 다른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은 화가 난 듯 시작이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호소인 듯합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시 94:3-4).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시 94:8).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지혜롭지 못함을 안타깝게 말씀하시며 지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시 94:11).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의 이치를 꿰어서 맞추어 사물의 움직임을 깨닫게 되는 지혜. 사람들이 꼭 알아야만 하는 그 지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그 지혜. 그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지혜, 우리를 아시고, 보고 계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 남녀차별의 문제에 대한 감각능력을 말합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하여 이 표현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나님 인지 감수성, 신인지 감수성’: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악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태도, 신앙의 태도가 바로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아닐까요?

    오늘은 503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보내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 ‘이것이 종교개혁의 결과인가?’라는 한탄의 마음이 듭니다. 오늘 이 종교개혁주일에 우리가 다시 얻어야 할 관점이 있다면, ‘하나님 인지 감수성’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반드시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반드시 심판하신다!’ 이 감수성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 것이고, 돈의 유혹에, 권력의 손길에 넘어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임재 의식, 현존의 의식이 있을 때에 우리는 실망하지 않으며 어떠한 악의 승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누기

 1. 나는 오늘 하루, 어디에서(장소) 그리고 어떤 순간(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나요?

 2. 그렇게 ‘하나님 인지 감수성’(하나님의 임재)을 내 삶에서 알아차리면(인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구역 식구들과 나눠보아요.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시며, 지키고 계시며, 심판하실 것을 알게 하옵소서.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