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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가 기록된 소중한 말씀입니다.>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7장은 아주 특별한 성격을 가집니다. 예수님의 기도 전문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제외하고 예수님의 기도가 전체적으로 실린 곳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기도가 드려진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요한복음과 기도 내용의 흐름을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이후에 올리신 기도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내용의 흐름상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셨던 시점이거나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던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의 기도 장면, 이 결정적인 기도 장면을 보게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내용을 친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과연 예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알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매우 가치 있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우주적인 섭리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가 가진 특별한 점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당면하신 문제를 다루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영원의 관점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할지 배우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요한복음 17장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요한복음 17장의 기록을 살펴보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절 중)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시며 자신의 관점에서 말씀하시기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 때가 이르렀습니다.” 구속의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시면서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들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는 요한복음 첫 부분부터 잘 나타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아들의 영광을 드러낸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2장 11절 말씀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베푸신 표적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11절)
1장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통해, 2장에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을 통해 영광이 드러났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후로도 예수님의 영광에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그 뜻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제 때가 이르렀습니다.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지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고난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속 역사의 관점에서 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게 분별하셨고, 구속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시면서 남겨진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한복음 17장 20절)
매우 뜻깊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단지 현재를 살고 있는 제자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먼 미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함께 있는 열두 명의 제자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긴 미래를 내다보시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함께할 수많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날 주님의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이미 보셨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우리를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대상에 바로 나, 우리가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우리 존재를 바라보시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려 주신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나 신앙의 여러 선배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가 있지요. 그분들이 기도를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워합니까?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미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니, 2000년 전 십자가를 지시는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참 좋아합니다. 기도에서 예수님의 품격과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셨는지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남겨진 제자들을 향하여서 얼마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또한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을 변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기도 속에 우리를 향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1~5절 말씀으로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기도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나를 영화롭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는 짧게는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결단이 들어있고, 크게는 예수님의 전 생애가 담겨 있습니다. 4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저는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이 마지막 기도를 마음에 늘 새기곤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두 번째 단락은 6절 이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남겨진 제자들을 생각하시며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유언장과도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심으로써 그 말씀이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9절)
9절에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고(6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8절). 그리고 9절에서 예수님은 한 가지 말씀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아버지의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자들이란 누구인가?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주님은 제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그분의 말씀을 전해 주셨던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은 남겨진 제자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10 중)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완료 형태로 표현하시며 그들이 이 일을 이루어 낼 것임을 확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가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제자들을 위해 드리신 예수님의 세 가지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남겨진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제일 먼저 이들의 ‘하나 됨’을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를 향한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예수님은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측하시면서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왜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이유가 2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21절)
주님께서 제자들의 하나 됨을 두고 기도하신 이유는 ‘복음 전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참된 구원자가 예수님 자신이심을 세상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하나 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힙을 합쳐야 한다는 뜻일까요? 힘을 합해서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내용을 조금 뒤에 살펴보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앞서 어떻게 제자들의 하나 됨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십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23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 됨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제자들끼리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해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신 제자들의 하나 됨이란 예수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연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 안에 있다’는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제자들과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하나 될 때, 그들은 하나님과도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 되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교제 안에 제자들도 함께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에는 성령님이 전제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기도는 이 땅에 내려오시는 성령님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하나 됨을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꿈꾸신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 된 제자들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교제를 누리는 삶이었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마지막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겨진 제자들의 ‘기쁨’과 ‘거룩한 삶’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가 이어집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분리되어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척박한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경험을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요한복음 17장 15~16절)
세상과의 분리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세상 안에서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 구별됩니다.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이 됩니까? 그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평안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은 고통의 삶입니다. 박해를 당할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순교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를 지시며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그 순간에도 평화를 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고통과 박해, 죽음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기도하신 두 번째 기도이십니다. 세 번째 기도가 이어집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장 17절)
여기에서 ‘거룩’은 ‘구별된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되는 일은 첫 번째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능하고, 두 번째는 말씀을 따라 진리 안에 사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세상에 사는 제자들이 세상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방법인 것입니다. 8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그들이 이 말씀을 지켰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니 진리로 이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기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청년 주일이자 성령강림절을 앞둔 마지막 부활절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주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주님은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세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과 긴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 성부, 성자, 성령님과 하나 됨을 누리며 그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하나 됨을 이루는 것, 이를 통해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나아가 성부, 성자, 성령님과 긴밀한 교제 속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해 주님이 요청하시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속에는 우리를 향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들로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와 저와 성령이 하나 되듯 저들도 하나 되어 우리 성품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해 주십시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저들이 우리 안의 참된 평화와 기쁨으로 넘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들이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붙잡으며 구별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Sanctify Them By The Truth
John 17: 11-19
Today’s text from John chapter 17 is special. It contains the whole text of Jesus’ prayer.
How did Jesus pray to God? John 17 would be your best answer. We do not know when exactly Jesus said this prayer, but considering the flow of the Book of John, we suspect that it was right before He was arrested. The prayer may have beensaid when He was having his last supper with the disciples, or when He was praying earnestly to Go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God made the disciple John see Jesus pray this prayer and revealed it to us through the Holy Spirit. God kindly allowed us to seeJesus’ heart for us through this prayer.
A special trait of this prayer is that it reveals God’s cosmic history and everlasting providence. Jesus does not merely pray about a man’s needs. He prays from the perspective of God’s great providence and eternity.
First, He starts the prayer with these words: “Father, the hour has come. Glorify your Son, that your Son may glorify you.” (John 17: 1)Jesus considered the cross He would soon bear from the perspective of God’s great salvation plan.
This is what John chapter 1 says about the incarnation of Christ: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Son,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John 1: 14)
It also says in chapter 2, “What Jesus did here in Cana of Galilee was the first of the signs through which he reveal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believed in him.” (John 2: 11)
Therefore, the very first part of Jesus’ prayer in John 17 is being prayed from the perspective of God’s redeeming history. Jesus understood his identity from the perspective of God’s plan to save humanity and prayed to God for the remaining people, as He faithfully didhispart in that salvation plan.
“My prayer is not for them alone. I pray also for those who will believe in me through their message,” (John 17: 20)
Furthermore, Jesus’ prayer was not just for the disciples who were with Him, but for all who would become his disciples in the generations to come.He prayed for the latter, too. Consequently, He prayed also for us. In this sense, Jesus’ prayer was nothing short of incredible.
In fact, many people love this prayer because it tells us about Jesus’ heart and noble character. We also discover his amazingly intimate conversations with his Father. The prayer alsoreveals Jesus’ deep love and concern for his disciples whom He would have to leave behind. This prayer touches us with a deep warmth as Jesus cares for, loves, and defends his disciples in it.
Then what did Jesus pray for specifically? Jesus’ prayer can be divided into largely two parts. The first part from verse 1 to 5 ishis request to God. He prays that He would be glorified, so that God would be glorified. The second part from verse 6 onwards is a prayer not for Himself, but for his disciples who would be left behind. Although it is also a prayer to God, it almost sounds like a death wish spoken to his disciples, for it talks about how He wants them to live, what they must ask for, and so on.
This is the very beginning of Jesus’ prayer for his disciples: “I pray for them. I am not praying for the world, but for those you have given me, for they are yours.” (John 17: 9)
In preceding verses,from 6 to 8, Jesus says that He has revealed God to his disciples and have given them God’s words. Jesus mentions that they, therefore, know God and believe that God has sent Him. In Jesus’ eyes, this was the identity of the disciples.
Furthermore, Jesus says thathis disciples will glorify Him in the end. Although it has not yet come to pass, Jesus prays in the past perfect—as if they have already glorified Him—for He is certain that they will.
Then comes today’s passage John 17:11-19. In this prayer, Jesus prays for largely three things in terms ofhis disciples. This prayer is also his prayer for us today.
First, He prayed that the disciples would become one: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 the name you gave me, 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John 17: 11)
Jesus knew that his time to departfrom the world had come. Now, He must go to heaven, to his Father. As He anticipated his departure, He prayed earnestly that his disciples would become one. Then why must they become one?
“[…] that all of them may be one, Father, just as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May they also be in u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you have sent me.” (John 17: 21)
Our Lord wanted his disciples to become one so that the message would be spread. In other words, Jesus prayed for unity of the disciple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Jesus was the true Savior sent by God.
Then how can their oneness open up the way for the gospel? Jesus prayed, “I in them and you in me—so that they may be brought to complete unity. Then the world will know that you sent me and have loved them even as you have loved me.” (John 17: 23)
It wasn’t just about unity among the disciples. Nor about becoming strong as one, as Jesus was one. At the center of this oneness is Christ Himself. Jesus wanted Himself to remain in them. Yes. This oneness refers to a unity between Christ and his disciples.
Here we must remember that Jesus was one with God, and also one with the Spirit. Therefore, a unity between Jesus and the disciples also means that the disciples must one with 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too. It means to havea deep fellowship with the Holy Trinity.
Although Jesusdid notmention the Holy Spirit in his prayer, the Spiritis a premise of his prayer. Jesus already said that He would go to his Father, which means that both the Son and the Father would no longer be on this earth. Yet, Jesus speaks about a unity between Him and his disciples. How is this possible? By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Jesus already told his disciples that the Spirit would come only when He has departed.
This was his dream for his disciples: that they would be one with Him through the Holy Spirit, that they would be one with the Father, and that they would belong to the Father and have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who always hasa close fellowship with the Holy Trinity. By becoming so, the disciples would reveal God’s love to the world.
The oneness that Jesus had in mind for his disciples was not about building a unified organization in the physical sense. It was not about creating an institution or reaching decisions through healthy discussions and good coordination. The oneness that He envisioned was to have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 the Holy Spirit, thereby revealing God’s character to the world. Through this, the gospel would be preached. This was what Jesus wanted forhis disciples.
Thus, the second part of Jesus’ prayer is deeply connected tothe first part. This is how He prays: “I am coming to you now, but I say these things while I am still in the world, so that they may have the full measure of my joy within them.” (John 17: 13)
The second thing that Jesus prayed for was that his disciples would be full of the joy of being in Christ, that they would enjoy the peace of Christ, the peace of remaining in Him.
This peace is not found in a special place by separating oneself from the world. The reality of the disciples was harsh. They faced persecution. They lived like everyone else in this world. But this was the Lord’s prayer for them: “My prayer is not that you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protect them from the evil one.They are not of the world, even as I am not of it.” (John 17:15-16)
Jesus did not want them to be separated from the world, but to be set apart. They would live in the world, but not be of it. That is, they would live in this world as those set apart. Then how can they be set apart? They had a joy and a peace that camefrom Jesus.
As Jesus went to the Father, He asked God that his disciples would be full of the joy that He had. How would this be possible? Through the Holy Spirit who is a gift to us. In this prayer, too, Jesus does not mention the Holy Spirit, but He presumes what is to come through the Spirit.
Finally, this was Jesus’ third prayer for his disciples: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John 17: 17)
Here sanctification means to be set apart. How can we be set apart from this world? First, we need the peace the Lord gives us. Second, we must live by the truth. That is, we must live according to his word. This is another way of being set apart in this world.
In verse 8, Jesus prayed that God’s word had already been given to his disciples and that they had kept it. Then He prayed again—for his future disciples in the ages to come. He prayed that they would be sanctified in the truth for the word of God is the truth.
God’s words are needed not just for a mental reminder, but for his people to be set apart. When we live by God’s word, we become set apart from the world. When we live out the word, we make it true.
Today is Youth Sunday and the last Sunday before Pentecost. How should our beloved youth live? How must they live as the Lord’s disciples? The Lord gives a clear answer through his prayer. They must enter into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Holy Spirit and become one with other believers, so that the love of Jesus may be revealed in this world. They must enjoy true peace and joy in that deep relationship,live according to God’s word,the truth in this barren land, and thereby live a holy life set apart from the word. This is the faith that the Lord wants from us today.
요한복음 17: 11 ~ 19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가 기록된 소중한 말씀입니다.>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7장은 아주 특별한 성격을 가집니다. 예수님의 기도 전문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제외하고 예수님의 기도가 전체적으로 실린 곳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기도가 드려진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요한복음과 기도 내용의 흐름을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이후에 올리신 기도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내용의 흐름상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셨던 시점이거나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던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의 기도 장면, 이 결정적인 기도 장면을 보게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내용을 친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과연 예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알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매우 가치 있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우주적인 섭리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가 가진 특별한 점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당면하신 문제를 다루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영원의 관점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할지 배우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요한복음 17장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요한복음 17장의 기록을 살펴보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절 중)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시작하시며 자신의 관점에서 말씀하시기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 때가 이르렀습니다.” 구속의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시면서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들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는 요한복음 첫 부분부터 잘 나타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아들의 영광을 드러낸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2장 11절 말씀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베푸신 표적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11절)
1장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통해, 2장에서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을 통해 영광이 드러났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후로도 예수님의 영광에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그 뜻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제 때가 이르렀습니다.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지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고난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속 역사의 관점에서 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게 분별하셨고, 구속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시면서 남겨진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한복음 17장 20절)
매우 뜻깊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단지 현재를 살고 있는 제자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먼 미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함께 있는 열두 명의 제자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긴 미래를 내다보시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함께할 수많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날 주님의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이미 보셨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우리를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대상에 바로 나, 우리가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우리 존재를 바라보시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려 주신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나 신앙의 여러 선배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가 있지요. 그분들이 기도를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워합니까?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미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니, 2000년 전 십자가를 지시는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참 좋아합니다. 기도에서 예수님의 품격과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셨는지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남겨진 제자들을 향하여서 얼마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또한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을 변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기도 속에 우리를 향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1~5절 말씀으로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기도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나를 영화롭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는 짧게는 십자가를 지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결단이 들어있고, 크게는 예수님의 전 생애가 담겨 있습니다. 4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저는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이 마지막 기도를 마음에 늘 새기곤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두 번째 단락은 6절 이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남겨진 제자들을 생각하시며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유언장과도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심으로써 그 말씀이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9절)
9절에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고(6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8절). 그리고 9절에서 예수님은 한 가지 말씀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아버지의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자들이란 누구인가?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주님은 제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그분의 말씀을 전해 주셨던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은 남겨진 제자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10 중)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완료 형태로 표현하시며 그들이 이 일을 이루어 낼 것임을 확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가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제자들을 위해 드리신 예수님의 세 가지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남겨진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제일 먼저 이들의 ‘하나 됨’을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를 향한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예수님은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측하시면서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왜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이유가 2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21절)
주님께서 제자들의 하나 됨을 두고 기도하신 이유는 ‘복음 전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참된 구원자가 예수님 자신이심을 세상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하나 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힙을 합쳐야 한다는 뜻일까요? 힘을 합해서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내용을 조금 뒤에 살펴보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앞서 어떻게 제자들의 하나 됨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십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 23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나 됨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제자들끼리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해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신 제자들의 하나 됨이란 예수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연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 안에 있다’는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제자들과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하나 될 때, 그들은 하나님과도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 되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교제 안에 제자들도 함께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에는 성령님이 전제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기도는 이 땅에 내려오시는 성령님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통해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하나 됨을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꿈꾸신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 된 제자들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교제를 누리는 삶이었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마지막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겨진 제자들의 ‘기쁨’과 ‘거룩한 삶’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가 이어집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분리되어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척박한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경험을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요한복음 17장 15~16절)
세상과의 분리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세상 안에서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 구별됩니다.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이 됩니까? 그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평안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은 고통의 삶입니다. 박해를 당할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순교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를 지시며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그 순간에도 평화를 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고통과 박해, 죽음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기도하신 두 번째 기도이십니다. 세 번째 기도가 이어집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장 17절)
여기에서 ‘거룩’은 ‘구별된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되는 일은 첫 번째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능하고, 두 번째는 말씀을 따라 진리 안에 사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세상에 사는 제자들이 세상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방법인 것입니다. 8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그들이 이 말씀을 지켰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니 진리로 이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기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청년 주일이자 성령강림절을 앞둔 마지막 부활절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주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주님은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세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과 긴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 성부, 성자, 성령님과 하나 됨을 누리며 그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하나 됨을 이루는 것, 이를 통해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나아가 성부, 성자, 성령님과 긴밀한 교제 속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해 주님이 요청하시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속에는 우리를 향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들로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와 저와 성령이 하나 되듯 저들도 하나 되어 우리 성품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해 주십시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저들이 우리 안의 참된 평화와 기쁨으로 넘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들이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붙잡으며 구별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2021년 5월 1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요 17:11~19)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26장, 51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17:11~1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1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를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 그리고 영원의 관점에서 드리는 기도이며, 당시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현재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려 주는 기도입니다. 남겨진 제자들 뿐만 아니라, 긴 미래를 내다보시며 함께 이 땅을 살아갈 수많은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청하신 예수님의 기도 속 그 사랑의 마음과 애틋한 당부를 들으며, 주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자 합니다.
설교의 요약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예수님의 결단, 공생에 속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고 이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길 원한다는 기도(요 17:1~5)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막바지에서 주님 앞에 이런 고백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 번째 부분은 6절 이하의 남겨진 제자들을 생각하며 드린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탄원의 기도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유언장과 같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주신 이 제자들, 사람들은 곧 아버지 하나님의 소유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기도 속에서 제자 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며, 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는 제자들이 궁극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리게 될 것임을 기도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남겨진 제자들, 또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바람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요 17:11~19)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빌어주신 기도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가 됨은 물리적 조직체로서의 하나 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는 하나 됨의 간청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 됨 같이, 우리도 그 안에 하나 되게 하시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일고, 하나님의 품성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렇게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기쁨과 평화는 세상과 분리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구별입니다. 어떻게 구별됩니까? 고통과 환난 박해 속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거룩은 구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이 구별되기 위해선 바로 진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주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뇌하는 자들에게 기도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 되는 것,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 주님과의 그 깊은 교제 속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 척박한 세상 속에서 진리의 말씀 붙들고 삶으로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요청하시는 참 된 신앙의 모습이자 오늘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나누기
1. 최근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거나, 간절한 기도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까?
2. 신앙인들이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어떻게 기도하고 간청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결단하는 내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그 기도의 당부를 통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안으로 끌어 주시고,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진리의 말씀 따라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참된 주님의 제자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