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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과 사랑에 기초한 각 교회 공동체의 방향을 존중합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거리에 차량도 뜸하고, 집에서 아이들과 계속 시간을 보내느라 많이 지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구들과 오늘도 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먼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잘 할게요.” 이렇게 인사해 보겠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이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난 주일에 보여 주신 아름다운 모습은 저에게도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습니다. 예배 후 많은 교우께서 예배드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내 주셨습니다. 중등부와 고등부 학생들이 집중해 예배드리는 사진도 있었고, 유·초등부 어린아이들이 예쁘게 예배드리는 모습,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참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께서 온라인 헌금으로 보여 주신 사랑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웃을 위한 사랑의 모금에 많은 분이 정성껏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정성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지정 헌금을 보내 주신 분들도 계셨고, 큰 헌금을 보내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1부부터 5부까지 소망교회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립니다. 동시에 실제로 이 시간 우리 소망교회 예배당에서 열다섯 분 정도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반주자, 독창자, 카메라를 담당하시는 분, 음향을 맡으신 분, 헌금 위원, 기도자, 그리고 몇 분의 교역자가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곳에 수천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인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현재 많은 분이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형식이지만, 지금도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전히 ‘예배당을 열 것인가? 또 예배당을 닫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신학적으로 또 성서적으로 온라인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실천적인 관점에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교회가 우리 소망교회처럼 온라인예배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각 교회 공동체의 양심과 판단에 맡겨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편입니다. 때문에 일일이 예배자를 관리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적은 인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협력하여 전염병을 예방하며 예배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3.1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께서 50여 명과 함께하였듯이, 그 정도의 인원이라면 얼마든지 예배당에서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당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각 교회의 상황과 양심에 따라 결정될 일입니다. 예배당을 닫았기 때문에 비난할 일도 아니고, 예배당을 열었기 때문에 비난할 일도 아니며, 반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닙니다. 모두가 양심과 상황에 따라 일할 뿐입니다.
< 이단의 구조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경험하면서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라고 절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놀랍게도 코로나19의 확산만큼이나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게 있는데, 바로 ‘신천지’라고 불리는 종교 단체입니다. 최근 많은 매체에서 신천지에 대한 영상과 자료를 접하셨을 것입니다.
20만 명이 넘는, 아니 3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신천지 교도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가르치며,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이나 유니폼 같은 복장을 착용한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공포스럽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신천지가 동시에 주목받게 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신천지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접촉하면 안 된다는 것과 접촉하면 전염된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단으로 분류되는 많은 종파가 있는데, 그 종파의 신도 수가 2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의 교세가 약 20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단의 신도 수만큼 되는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져 있다는 충격적인 수치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공격적이어서 사회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단들은 우리나라 각 분야, 각 방면에서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가에게 이단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연예계, 언론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많은 이단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 교회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과 공격이 늘어나는 것도 이단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천지 교도들이 약 9개월 동안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그곳에 무언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한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들어가서 공부해 보고, 그런 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서 공부하다 보면, 그 속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허술한 신학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개월 동안 함께 공부하다 보면 그 안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고 맙니다.
저는 인터넷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않지만, 우리 아이들이 종종 게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볼 땐 참 말도 안 되는 게임 같았습니다. 그림도 이상하고, 설정도 그렇고,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템의 의미도 알게 되고, 기능도 알게 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이 참여하게 되고, 그 가치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점차 게임의 구조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게임에서 이겨 더 좋은 아이템이 생기면, 열광하면서 더 깊이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빠질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게임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듯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나름의 신호를 발견하며, 함께 열광하고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교주의 사진만 봐도 열광하고, 그분이 지나갔다는 것만으로도 흥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은 그저 게임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단은 훨씬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실제 삶의 영역까지 그 영향이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안의 사람들이 연결돼 있고, 그곳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이단의 폐해가 매우 심각합니다. 그러니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얼마든지 신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로 들어가게 되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이단은 인간의 욕망과 교만을 자극하며 유혹합니다. >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게임에 빠집니까? 현실이 답답하고 힘들 때 게임에 들어가면 새로운 질서가 보입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위치도 생깁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위치지만, 마치 다단계의 유인술처럼 곧 성공할 것이라고 우리를 유도합니다. 계속하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포인트를 얻으면 조금씩 위치가 달라지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고, 많은 것을 갖게 되고, 힘도 세지고, 능력도 많아지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게임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서 그와 같은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내 자리가 생기고, 구조가 생깁니다. 그 안에서 점차 성장하고 희열을 느낍니다.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성장하는 느낌을 얻습니다. 특히 이단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14만4천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유혹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경쟁을 자극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맹렬히 노력합니다. 이미 그 구조 안에 들어갔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점수를 얻으려 하고, 전도해서 포인트를 얻으려 하며, 출석해서 포인트를 얻으려 하는 등 열광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원인은 바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 욕심, 그리고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풀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비밀을 모두 풀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꼭 14만4천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욕심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물리쳐서라도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망입니다. 종교도 신앙도 아닙니다. 게임이고, 일종의 사업이며,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겸손한 것 같고, 지혜를 얻는 것 같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나만이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하는, 나만이 신앙의 비밀을 깨우치려고 하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4~15)
거짓 영이 우리를 미혹하고 끌어들이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소망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님들도 있으실 것이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교회에서 말씀의 꼴을 먹으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교회마다 특징이 있고, 목사님마다 특징이 있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명을 잘하시고, 어떤 목사님은 말씀을 잘 풀어내시고, 어떤 목사님은 뜨거운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어떤 목사님은 신령한 은사를 보여 주십니다. 모두 다 같은 은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장단점이 있을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실은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신앙의 체계는 하나님의 커리큘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건과 말씀과 우리의 인생을 통해 알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커리큘럼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꼭 14만4천의 비밀을 알아야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비밀을 풀어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구원은 미련한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명료하고 분명합니다. 더하거나 덜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이 모자라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부족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도 아니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제대로 배운 것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삶으로 신앙을 적용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말씀대로 살아보았는가? 말씀대로 실행해 보았는가? 말씀대로 기도해 보았는가? 말씀대로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구제를 해 보았는가? 그리고 그 이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경험해 보았는가?”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정말로 맞는 말씀입니다.
“기도만 해서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저는 이 말에도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봅니다.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기도만 해서 되겠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나름대로 여러 이론을 들어 기도를 풀어내려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능력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배우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 자체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아가 기도를 통해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 건강한 신앙생활은 진리와 자유에 기초합니다. >
운동할 때 도와주는 사람을 PT라고 부릅니다. 물론 PT 선생님 중에 좋은 선생님도 있고, 조금 부족한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동기부여를 잘해 주는 분들도 있고,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적절하게 내게 맞는 운동법을 찾아내 주는 유능한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십시오. PT 선생님이 없어서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합니까? 내 건강을 내가 유지하지 못합니까?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합니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스스로 운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운동해서 내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까? 그래야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마 오늘 설교를 듣는 분 중에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대학가에 가면 많은 이단이 유혹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과 접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여러분의 교회를 깊이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꼴을 먹으며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교회일지라도, 작은 교회일지라도, 늘 힘들어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일지라도, 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결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연습하는 일들을 실행하십시오. 평생 그 안에서 자라나며, 신앙을 성장시켜 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누가 어디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하면, 가능하면 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주위에 유혹하는 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교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유혹의 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밀스러운 성경공부는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공부는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소통하면서, 여러분의 교회 목사님과 소통하면서 얼마든지 성경공부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비밀스럽게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면 거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더 있나, 어디에 더 좋은 꼴이 있나,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거짓 교사에게 또는 미혹하는 영에게 붙잡힐 수 있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비밀스러운 성경공부는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꼭 부모님과 소통하면서, 또 교회 목사님과 소통하면서 해야 합니다. 한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의 공동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만든 이름이 아닙니다. 당시 안디옥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니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게 아닙니다.
신천지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독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포교를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습니다. 연극과 연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속아서 교인이 되었는데, 속이는 일에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되거든, 그들이 어떤 이단이든지 어떠한 종파이든지 즉시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거짓과 하나님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땅에 발을 딛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진리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거짓말하여 끌고 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단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정당화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속임수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이미 그들이 진리와 멀어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단들은 말합니다. 지금 자신들이 초대교회처럼 박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이 박해받은 이유는 비윤리적이거나 속여서거나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박해받았던 이유는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했기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결코 비윤리성이나 비도덕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은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중)
이 고백과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 박해를 받았지만, 결코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거짓이 있고 속임수가 정당화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우리의 신앙이 설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얻은 안디옥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세상을 넘어서는 비전과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비전을 선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교회는 항상 사회와 현실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피해 숨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착한 바나바라는 표현은 당시 안디옥교회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거침없이 선포했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교회는 부조를 보내 도왔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이 땅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 위에 떠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어려움을 함께 겪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희망, 우리의 비전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은 이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피안의 세계만을 바라보는 것은 참다운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과제요, 소명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돕기 위해,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잠시지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늘 위에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다소 설교의 틀을 벗어났지만, 목회자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이단과 관련해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욕심과 욕망을 위해 신앙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 거짓과 속임수는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거짓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거짓과 속임수는 신앙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세상과 맞닿지 않는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사실을 마음에 꼭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떤 신앙이 바른 신앙인가를 고민하게 될 때, 제가 오늘 말씀드린 세 가지만큼은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만,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A Good Christian
Acts 11:19-30
Dear Church, how have you been? The corona virus has emptied the streets and forced us to live a vastly different way of life. Parents are having a hard time with the closure of schools. Some of you may feel guilty for not coming to church for worship.
I want to thank and encourage you all in this time of crisis. I was touched by those who came by church to pray outside. The pictures you sent me of parents and children worshiping at home together were truly beautiful. I thank you also for the generous offerings which, as we announced, will be used to provide emergency medical assistance to Daegu and North Gyeongsang Province. I can’t wait to meet you all face to face when we gather again.
As I explained last week, Somang Church has started to worship online. Just like any other Sunday,services are being held five times a day here in Somang Church—except with fewer people. There are now about 15 of us here, including pastors and the camera crew, and the rest of you are at home worshipping with us. I pray that in this time the Sprit will make us one by His abounding grace.
I mention this again because there may be different opinions on whether we should worship at church or at home. I do not believe that all churches must worship online like us. Each church, with its own conscience and circumstance, are entitled to make its own judgement. Smaller churches may not have the resources to offer online services. And, with the right precautionary measures, a small number of people may gather for worship—just as President Moon celebrated Liberation Day with 50 participants.
The Covid-19 has changed our way of life fundamentally. Churches are worshipping online. Stores and businesses are seeing their sales and customers plummet. It seems Korea has come to a standstill.
However, it’s not just the outbreak that has shaken us. We are shocked by Shincheonji. We are shocked by their number, 200,000 followers, and their fervor to spread false doctrines. Their uniform-like attire and systematized worship look ridiculous, but, at the same time, scare us. Knowing Shincheonji’s proselytizing tactics, we may assume there are some followers even in Somang Church.
The number of heretics in Korea is estimated at 2 million. This is equivalent to the number of Christians in Somang Church’s denomination,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Heretics have become an influential group in Korean society. Politicians can no longer ignore them. As was reported, Shincheonji wields influence in many areas, including politics, media, entertainment, and business. According to news reports, they receive 9 months of intensive training before becoming a full member and gaining access to worship halls with fingerprint registration.
Out of curiosity, some say there must be something special about this sect if followers are willing to devote up to 9 months of their time to studying its doctrine, evensuggesting to“check it out.” But many such curious people have become entrapped by Shincheonji. Why?
I believe it’s like becoming addicted to internet games.
Let’s say you don’t like internet games. But your son likes them. You don’t understand the characters one bit or why your son is so into them, but you start to follow the rules. You find out there are cool weapons and shields, and you become more familiar to the game. At one point, you find yourself pointing out, “Son, that’s a bad strategy! You should have gotten that one!” You participate in the game, little by little, and its rules and values start to influence you.Later, you even become excited about a cool item. You even pay for better, cooler items. You become subject to the game’s paradigm, way of thinking, and structure. You start to crave certain items and characters, which have no value in real life. Your thoughts are slowly controlled by the designers of the game.
A heresy works in a similar way. Followers slowly adapt themselves to its structure and paradigm, becoming emotional by even looking at their leader’s photo. A game is just a game, and there’s no harm done to others. However,a heresy has a detrimental impact on the real lives of real people. The best defenseis not to set foot on it at all.
Then why do people become addicted to games? It’s because life is hard and frustrating, but, in a game, you find a new order, a role, and a status. At first, you are just a soldier, but as you continue the game and earn more points, you become an invincible warrior. Without such excitement, a player will not be able to continue.
Likewise, people become enslaved to heresies because they find a new status in that new world. Inside that structure, they grow and reach a higher position. In particular, heresies stir up a greater desire and competition for salvation, such as wanting to be among “the chosen 144,000” or desiring a crown of gold in heaven.
In other words, when someone becomes devoted to a heresy, he/she is not actually becoming more pious, but only his/her hidden desire is becoming greater. Such a person only wants to attain a higher position and possess more in heaven. Once he has entered the “game”, he must attend more services and recruit more converts to get more points.
People fall for heresies because they are desperate to find meaning in life, because they are tricked, or because of relationships and business opportunities. But deep down, they fall for them because of an endless desire, greed, and pride.Like Adam and Eve who committed the original sin, they want to become like God.
Some people are bent on solving the Bible’s mysteries, the mystery of God. They feel satisfied in thinking they know more about the Bible than others. They want to be among “the chosen 144,000,” instead of simply being saved by Jesus. Heresies stimulate a person’s desire—the desire to succeed anddominate. It’s like a game where you want to get the coolest, most expensive weapon and the greatest score. You want to win. Therefore, heresies are not a religion or a faith. They are just a “game”, a manifestation of man’s desires.
The fundamental cause behind one being captivated by them is lust, pride, and desire. Heretics appear humble, wisdom-seeking, and God-seeking. But deep down they want to monopolize God. The Bible says:
“But each person is tempted when they are dragged away by their own evil desire and enticed.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James 1: 14-15)
Today, I would like to share some very important advice and admonishment with you.
First, whether you attend Somang Church or another church, “graze”and grow in the church where you belong.
Each church has its own characteristics, strengths, and weaknesses. Some pastors are loving, some are excellent preachers, and some have spiritual gifts. Everyone is different. If your faith is not yet mature, it is not because of the way you pastor preaches or the way he leads Bible study. Christians want to learn the Bible systematically, but it is God who allows a system of study. By learning and absorbing the Word day by day, according to God’s curriculum, we grow. We do not have to solve the mystery of “the chosen 144,000.”
God’s salvation is clear even to the foolish. You cannot add to or subtract from it. The problem does not lie in a lack of the Word, but our failure to live by it.We have not put into practice what we have learned in the Bible. The Word has not been lived out. Have you lived by the Word? Have you given selflessly to others and experienced His great grace that comes from it?
Learning about the power of prayer is important, but praying itself is more important. By praying and experiencing firsthand how our prayers are answered,we grow in faith. Good personal trainers help us keep in shape, but doing what they tell us is the critical part.
Second, to the young people listening to this sermon, I would like to stress a few things.
Most of all, love your church deeply andgraze in its pasture. Choose one church, serve it, and grow in it by practicing your faith.
If someone invites you to a Bible study somewhere, it’s best not to go. Sadly, there are too many deceivers out there. In particular, any “secret” Bible studies must be avoided at all costs. And you must always communicate with your parents and pastors.
Don’t wander around. Don’t graze here and there looking for better pasture. Because the real problem is in you. When you wander, false teachers may tempt you.
Dearbrothers and sisters of Somang Church, we have set aside worshipping inside the church building for a little while, and are worshipping in a way that God has allowed us. I hope this will be an opportunity for us to deeply reflect on our faith. Dear Church, look back on whether you have considered your faith and church life“a game.” Furthermore, reflect on your deep motives forfaith life. If you have been driven by desire, greed, sense of achievement, or other desires, then purify your hearts and come back to the Lord with a sincere heart.
Today’s passage records that the believers in Antioch were first called “Christians.” The name “Christian” wasn’t made up by Christians themselves, but by the people of the time who were impressed by the believers in Antioch.
It is truly unfortunate that Shincheonji encourages all kinds of lies and deceit in the name of guarding their “truth”. Its followers resort to all kinds of lies,maneuvers, and schemes to recruit new converts. If anyone of you, young people, that I so dearly love spots such activities of Shincheonji, I urge you to leave that person or that place at once. Lies and God do not coexist.
What does it mean to follow the truth? The furthest thing from it would be deceiving others, causing them harm, and dragging them along with lies. To avoid persecution, heresies justify lies and use manipulation to recruit more followers. These acts, in themselves, tell us that heresies are not the truth.
The Early Church was also persecuted by the world, but it was not because of its immorality. Rather, it was because of its irrationality, or “ultra-rationality.” They were persecuted for telling mysteries that the world could not understand, not for inflicting social damage. Like the famous verse in Romans chapter 1, they were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first to the Jew, then to the Gentile.” Early Christians did not use lies or deceit to spread their vision.
If lies and deceit are justified somewhere, then escape that place. We should not pursue faith there.It is not where God wants us to be. We must leave that place.
Third, the Antioch Church that received the wonderful name “Christians” was a church that served the world. Although it had a vision and hope that went beyond the world and declared mysteries that the world could not understand, it alwaysstayed relevant to society and reality. The description of Barnabas a “good man” is an important indicator of the Antioch Church.
The Antioch Church declared the truth without falsehood, yet did not ignore real-life problems. As today’s passage tells us, it provided help to the people in Judea when a famine struck.
Dear Church, ignoring problems in this world and looking only to the afterlife is not true faith. God gave us this world as a blessing, calling, and mission.
Dear Church, I strayed a little from the usual sermon today. But, as a pastor, I wanted to share with you my most heartfelt advice and admonishment. Don’t pursue faith out of desire or greed. Lies and deceit are not from God. They can never coexist with our faith. A faith that disregards reality and does not come into contact with the world is meaningless. While having our eyes set on the kingdom of God, we must remember that we live in this world.
Dear Church, I have talked about many things. May you have victory in Christ this week and may the Lord protect you from all evil.
사도행전 11: 19 ~ 30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양심과 사랑에 기초한 각 교회 공동체의 방향을 존중합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거리에 차량도 뜸하고, 집에서 아이들과 계속 시간을 보내느라 많이 지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구들과 오늘도 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먼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잘 할게요.” 이렇게 인사해 보겠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이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난 주일에 보여 주신 아름다운 모습은 저에게도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습니다. 예배 후 많은 교우께서 예배드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내 주셨습니다. 중등부와 고등부 학생들이 집중해 예배드리는 사진도 있었고, 유·초등부 어린아이들이 예쁘게 예배드리는 모습,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참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께서 온라인 헌금으로 보여 주신 사랑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웃을 위한 사랑의 모금에 많은 분이 정성껏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정성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지정 헌금을 보내 주신 분들도 계셨고, 큰 헌금을 보내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1부부터 5부까지 소망교회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립니다. 동시에 실제로 이 시간 우리 소망교회 예배당에서 열다섯 분 정도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반주자, 독창자, 카메라를 담당하시는 분, 음향을 맡으신 분, 헌금 위원, 기도자, 그리고 몇 분의 교역자가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곳에 수천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인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현재 많은 분이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형식이지만, 지금도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전히 ‘예배당을 열 것인가? 또 예배당을 닫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신학적으로 또 성서적으로 온라인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실천적인 관점에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교회가 우리 소망교회처럼 온라인예배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각 교회 공동체의 양심과 판단에 맡겨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편입니다. 때문에 일일이 예배자를 관리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적은 인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협력하여 전염병을 예방하며 예배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3.1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께서 50여 명과 함께하였듯이, 그 정도의 인원이라면 얼마든지 예배당에서 적절한 예방조치를 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당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각 교회의 상황과 양심에 따라 결정될 일입니다. 예배당을 닫았기 때문에 비난할 일도 아니고, 예배당을 열었기 때문에 비난할 일도 아니며, 반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닙니다. 모두가 양심과 상황에 따라 일할 뿐입니다.
< 이단의 구조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경험하면서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라고 절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놀랍게도 코로나19의 확산만큼이나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게 있는데, 바로 ‘신천지’라고 불리는 종교 단체입니다. 최근 많은 매체에서 신천지에 대한 영상과 자료를 접하셨을 것입니다.
20만 명이 넘는, 아니 3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신천지 교도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가르치며,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이나 유니폼 같은 복장을 착용한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공포스럽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신천지가 동시에 주목받게 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신천지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접촉하면 안 된다는 것과 접촉하면 전염된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단으로 분류되는 많은 종파가 있는데, 그 종파의 신도 수가 2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의 교세가 약 20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단의 신도 수만큼 되는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져 있다는 충격적인 수치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공격적이어서 사회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단들은 우리나라 각 분야, 각 방면에서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가에게 이단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연예계, 언론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많은 이단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 교회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과 공격이 늘어나는 것도 이단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천지 교도들이 약 9개월 동안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그곳에 무언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한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들어가서 공부해 보고, 그런 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서 공부하다 보면, 그 속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허술한 신학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개월 동안 함께 공부하다 보면 그 안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고 맙니다.
저는 인터넷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않지만, 우리 아이들이 종종 게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볼 땐 참 말도 안 되는 게임 같았습니다. 그림도 이상하고, 설정도 그렇고,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템의 의미도 알게 되고, 기능도 알게 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이 참여하게 되고, 그 가치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점차 게임의 구조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게임에서 이겨 더 좋은 아이템이 생기면, 열광하면서 더 깊이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빠질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게임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듯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나름의 신호를 발견하며, 함께 열광하고 기뻐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교주의 사진만 봐도 열광하고, 그분이 지나갔다는 것만으로도 흥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은 그저 게임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단은 훨씬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실제 삶의 영역까지 그 영향이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안의 사람들이 연결돼 있고, 그곳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이단의 폐해가 매우 심각합니다. 그러니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얼마든지 신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로 들어가게 되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이단은 인간의 욕망과 교만을 자극하며 유혹합니다. >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게임에 빠집니까? 현실이 답답하고 힘들 때 게임에 들어가면 새로운 질서가 보입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위치도 생깁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위치지만, 마치 다단계의 유인술처럼 곧 성공할 것이라고 우리를 유도합니다. 계속하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포인트를 얻으면 조금씩 위치가 달라지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고, 많은 것을 갖게 되고, 힘도 세지고, 능력도 많아지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게임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서 그와 같은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내 자리가 생기고, 구조가 생깁니다. 그 안에서 점차 성장하고 희열을 느낍니다.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성장하는 느낌을 얻습니다. 특히 이단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14만4천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유혹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경쟁을 자극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맹렬히 노력합니다. 이미 그 구조 안에 들어갔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점수를 얻으려 하고, 전도해서 포인트를 얻으려 하며, 출석해서 포인트를 얻으려 하는 등 열광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원인은 바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 욕심, 그리고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풀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비밀을 모두 풀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꼭 14만4천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욕심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물리쳐서라도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망입니다. 종교도 신앙도 아닙니다. 게임이고, 일종의 사업이며,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겸손한 것 같고, 지혜를 얻는 것 같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나만이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하는, 나만이 신앙의 비밀을 깨우치려고 하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4~15)
거짓 영이 우리를 미혹하고 끌어들이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소망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님들도 있으실 것이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교회에서 말씀의 꼴을 먹으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교회마다 특징이 있고, 목사님마다 특징이 있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명을 잘하시고, 어떤 목사님은 말씀을 잘 풀어내시고, 어떤 목사님은 뜨거운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어떤 목사님은 신령한 은사를 보여 주십니다. 모두 다 같은 은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장단점이 있을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실은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신앙의 체계는 하나님의 커리큘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건과 말씀과 우리의 인생을 통해 알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커리큘럼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꼭 14만4천의 비밀을 알아야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비밀을 풀어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구원은 미련한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명료하고 분명합니다. 더하거나 덜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이 모자라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부족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도 아니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제대로 배운 것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삶으로 신앙을 적용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말씀대로 살아보았는가? 말씀대로 실행해 보았는가? 말씀대로 기도해 보았는가? 말씀대로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구제를 해 보았는가? 그리고 그 이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경험해 보았는가?”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정말로 맞는 말씀입니다.
“기도만 해서 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저는 이 말에도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봅니다.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기도만 해서 되겠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나름대로 여러 이론을 들어 기도를 풀어내려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능력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배우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 자체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아가 기도를 통해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 건강한 신앙생활은 진리와 자유에 기초합니다. >
운동할 때 도와주는 사람을 PT라고 부릅니다. 물론 PT 선생님 중에 좋은 선생님도 있고, 조금 부족한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동기부여를 잘해 주는 분들도 있고,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적절하게 내게 맞는 운동법을 찾아내 주는 유능한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십시오. PT 선생님이 없어서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합니까? 내 건강을 내가 유지하지 못합니까?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합니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스스로 운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운동해서 내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까? 그래야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마 오늘 설교를 듣는 분 중에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대학가에 가면 많은 이단이 유혹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과 접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여러분의 교회를 깊이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꼴을 먹으며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교회일지라도, 작은 교회일지라도, 늘 힘들어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일지라도, 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결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연습하는 일들을 실행하십시오. 평생 그 안에서 자라나며, 신앙을 성장시켜 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누가 어디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하면, 가능하면 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주위에 유혹하는 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교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유혹의 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밀스러운 성경공부는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공부는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소통하면서, 여러분의 교회 목사님과 소통하면서 얼마든지 성경공부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비밀스럽게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면 거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더 있나, 어디에 더 좋은 꼴이 있나,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거짓 교사에게 또는 미혹하는 영에게 붙잡힐 수 있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비밀스러운 성경공부는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꼭 부모님과 소통하면서, 또 교회 목사님과 소통하면서 해야 합니다. 한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의 공동체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만든 이름이 아닙니다. 당시 안디옥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니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게 아닙니다.
신천지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독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포교를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습니다. 연극과 연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속아서 교인이 되었는데, 속이는 일에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되거든, 그들이 어떤 이단이든지 어떠한 종파이든지 즉시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거짓과 하나님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땅에 발을 딛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진리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거짓말하여 끌고 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단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정당화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속임수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이미 그들이 진리와 멀어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단들은 말합니다. 지금 자신들이 초대교회처럼 박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이 박해받은 이유는 비윤리적이거나 속여서거나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박해받았던 이유는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했기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결코 비윤리성이나 비도덕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은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중)
이 고백과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 박해를 받았지만, 결코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거짓이 있고 속임수가 정당화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우리의 신앙이 설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얻은 안디옥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세상을 넘어서는 비전과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비전을 선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교회는 항상 사회와 현실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피해 숨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착한 바나바라는 표현은 당시 안디옥교회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거침없이 선포했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교회는 부조를 보내 도왔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이 땅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 위에 떠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어려움을 함께 겪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희망, 우리의 비전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은 이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피안의 세계만을 바라보는 것은 참다운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과제요, 소명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돕기 위해,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잠시지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늘 위에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다소 설교의 틀을 벗어났지만, 목회자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이단과 관련해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욕심과 욕망을 위해 신앙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 거짓과 속임수는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거짓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거짓과 속임수는 신앙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세상과 맞닿지 않는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사실을 마음에 꼭 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떤 신앙이 바른 신앙인가를 고민하게 될 때, 제가 오늘 말씀드린 세 가지만큼은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만,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