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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시작된 나라입니다. 삶을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것이 제자도이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향해 귀신이 도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일에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세계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성서정과의 본문 말씀이기도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는 그들과 함께 가버나움 동네로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안식일을 맞으셨고, 그날에 회당에서 많은 유대인들과 말씀을 읽으시며 토론하셨습니다. 유대인 공동체는 안식일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모든 남성들은 그날의 성경 말씀을 화두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자격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해석하여 주시며,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장면 곧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사건을 전하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본문을 읽으시며 말씀을 전해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장 22절)
본문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일반 사람들과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서기관들과도 같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날, 거룩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시간에 가버나움에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회당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곳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은 회당 안에 ‘귀신들린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전해 줍니다.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 ‘거룩한 공간’인 회당에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 거룩하지 않은 귀신들린 자도 함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귀신들린 자를 두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더러운(ἀκαθάρτῳ)’이라는 표현은 ‘거룩하다’와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시간, 거룩한 공간에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이 상황을 문제 삼지 않으실 분도 계실 듯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귀신의 엄청난 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거룩한 안식일, 거룩한 공간인 회당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더러운 영, 거짓된 영인 귀신이 침범해 온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또는 가정 안에서 우리는 귀신이 침투해 오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교회 안에도 거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합니다. 악한 영, 나쁜 마음, 이단의 정신을 가졌거나 예배가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척하지만 사실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귀신들린 사람이 거룩한 공동체 안에 숨어들어 온 것처럼 말입니다.
‘귀신들린 자’라는 표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곧 거룩한 존재이자 고매한 인격으로 지어진 인간 속에 귀신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멋진 존재로 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이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감탄까지 하셨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게 창조된 인간, 하나님의 모습을 가진 인간 안에 그를 지배하는 귀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귀신의 지배를 받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살지 못한 채 귀신의 조종을 당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귀신들린 사람들은 있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귀신 외에도 다른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예욕이나 재물의 욕심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인기라는 허망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자식에게 혹은 가족에게 매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따르는 이념에 사로잡혀서 지배를 당하는 불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지배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귀신들린 자와 동일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도 공격합니다.>
회당에서 숨어 있던 귀신들린 자가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마가복음 1장 24절)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바른 고백까지 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귀신들린 자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안에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하는데 ‘가르치다(διδαχή)’라는 단어입니다. 무려 4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고 할 때 사용된 표현이 이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가르친다’라고 한다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시도를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깨달음을 전달하고, 앎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는 게 ‘가르침’이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전하신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성경 말씀을 읽어 주시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해석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메시야라는 말씀이 정점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가 자신이심을 이야기하시며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을 설파하시길 원하셨다면, 이것이 그분의 가르침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본문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마도 수업을 가장 잘 들은 모범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마가복음 1장 24절, 새번역)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후에 어떻게 하실 지도 알았습니다. “나를 멸하시려고 오셨습니까?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목적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실 지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에 그리고 정의와 공의,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귀신들린 자처럼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신앙고백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고백하면서도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앎으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앎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학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명하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가복음 1장 25절 중)
오늘 본문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신 단 한마디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 속에서 나오라.”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귀신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마가복음 1장 26절)
그러자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장 27절)
27절 말씀 속에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을 때, 귀신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야 놀랍다! 귀신이 나왔구나! 주님의 능력이 대단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디다케’라는 단어가 한 번 더 사용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위 있는 가르침’,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이미 놀랐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권위 있는 자와 같지 않고 서기관과도 같지 않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27절 말씀에도 ‘권위 있다’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 것입니다.
‘권위’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원어는 ‘엑수시아(ἐξουσία)’입니다. 이 말은 ‘권위’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나, ‘능력’으로도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즉 ‘능력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품격이 있다거나 아름답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전파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말씀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귀신이 사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다시 평가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참으로 능력 있는 말씀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새로운 관점을 주는 깨달음의 차원을 넘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자 모든 것을 이루시는 ‘근원’이라는 점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을 때에 새 창조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증언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죠. 그러므로 말씀은 설득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창조가 일어납니다.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셨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1~3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적에 함께 계셨던 주님, 말씀이신 그분, 그분이 이 땅에 오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향하여 한마디를 건네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며, 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가까이 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가십니다. 말씀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설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명으로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디어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한 사람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설득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멘’으로 받을 때에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안식일을 침범해 회당까지 들어왔습니다. 버젓이 거룩한 사람 행세를 합니다. 사탄의 침략으로 망가져 버린 세상, 우리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우리 가운데서 주님은 새로운 나라를 말씀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하십니다. 첫 번째 장소가 거룩한 곳 ‘회당’입니다. “잠잠하고 그곳에서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우리 모두가 매였던 것에서 해방되고 사탄의 권세, 마귀의 권세로부터 놓임 받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설명으로 보이십니까? 설득으로 보이시나요? 부탁으로 보이십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실행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말씀의 능력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붙잡고 실행하면 말씀이 능력이 되고, 실재가 되고, 우리 삶 속에 드러납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설득된다. 설득되었다’는 마음으로 돌아가시지 않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모심으로 그 말씀이 창조하는 능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는 무엇인가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처럼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The Creator’s WordDrives Out Demons
Mark 1:21-28
Last week’s sermon reaffirmed that the kingdom of God, started by Jesus, has come among us. We enter God’s kingdom through a life-changing repentance and by accepting the gospel given to us by the Lord.
When Jesus called the disciples, they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immediately. Through the example of the disciples,Jesus showed us true repentance and faith, which is to go on an adventure with Jesus, following His teaching and guidance. This isrepentance, faith, discipleship, and the way to the kingdom of God.
Today’s Scripture, a continuation of last week’s passage, is one of the lectionary readings for January 31, 2021 for churches across the world.
After starting His ministry, Jesus called the disciples and entered Capernaum with Simon, Andrew, James, and John. On the Sabbath He went into the synagogue and taught.
Jews would gather in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for worship which includedScripture reading. Any male Jew was entitled to voice his opinion on the topics raised from the Scripture. Accordingly, Jesus also entered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read the Scripture, and interpreted and taught the word of God. In fact, Jesus taught in many synagogues after this.
The Bible describes how people responded to His teachings and their results. It says in verse 22, “the people were amazed at his teaching, because he taught them as one who had authority, not as the teachers of the law.”(Mark 1: 22)Although it is not said what and how He taught, the Bibles clearly describes the people’s reactions.They were amazed because He spoke as one who had authority unlike other teachers of the law.
Furthermore, something happens there at the synagogue. A man possessed by an impure spirit shouts at Jesus. This story has many fascinating elements.
It was the Sabbath, a holy day set apart by God. It was a holy time. The Jews in Capernaum were reading the Scripture and worshiping God in the synagogue in that special time according to the law. Yet a demon-possessed man was among them. All the people were gathered in a holy space. God’s holy people were gathered in a holy space, at a holy time. But the Bible says that a “man possessed by an impure spirit” was in the synagogue with them. The adjective “impure (ἀκαθάρτῳ)” is used to describe him. An unholy man has come into a holy place.
Some may consider it a mere coincidence. Some may think, “What’s the problem?”Upon a closer scrutiny, however, we will find that a demon-possessed man in the synagoguesignifies a serious challenge posed by the enemy.
This is the synagogue, God’s holy place. It is the holy Sabbath. God’s holy people have gathered for worship. Yet an impure spirit infiltrated this place and time. It was a blatant attack, a violation. The enemy had invaded a holy sphere. An impure, lying spirit had invaded God’s space.
Am I being too mystical? Some of you may think so.But I have experienced mysterious things in my life. In 2007 I saw a vision during a morning prayer service at the church I was serving. Ihad a deep encounter with Jesus. As I was praying, I saw my church being introduced to Jesus one by one as they entered the worship hall. I couldn’t see Jesus because He shone ever so brightly, but I could sense that He was laying His hands on the people and embracing them. In the very last scene of this vision, I saw a church member who had been absent for a long time sitting in church. Thispowerful vision was constantly on my mind as I prepared and gave my sermon. Amazingly, I saw the man in my vision really sitting in front of me as I gave the sermon. Can you imagine my surprise? I was deeply moved by what happened. I thanked God for letting that vision come to pass.
But there is a twist to this story. After the man returned to church, he started to have a lot of fellowship. Then he started to borrow large sums of money and luredmany of our congregantsto invest in his business. Two years later, our church faced great troubles and tests. Many of our church members went through a difficult time.
In retrospect,I should have realized that God was trying to warn me of an infiltrator.At that time, I just thanked God for His kind grace because it seemed that He had made my vision a reality by making the man show up on Sunday. Even now, I regret failing to recognize His warning.
This was quite a heavy story, wasn’t it? Returning to the Scripture, a man possessed by an impure spirit is in the synagogue, a holy community. He is in the midst of worshipers worshiping God in a holy time.
After creating the world, God commanded man to rule it. But man sinned, letting Satan rule him, instead of governing the world. Satan crossed a holy line and entered God’s space. The enemy does not fear a holy time, a holy place, or a holy people.
The expression “possessed by demons” has great significance. What is a demon-possessed man? God made man in His image, into a holy being with a noble character and a magnificent body. And God was greatly pleased with His creations, Adam and Eve.
Yet, the enemy has entered this man, God’s creation. Once Satan enters him, he is ruled and manipulated by this infiltrator. It is the demon that controls him now. He cannot live as he wishes. He becomes a poor creature controlled by Satan. This is a demon-possessed man.
Even today, there are such people—people who are possessed by evil spirits. To take this further, there are a lot of people possessed by “something”, if not by demons. Some are infatuated with honor, some with money and wealth, and some with popularity, which is just mist. Some are so caught up with their children and family that they are blind to everything else. Some are ruled by an idea, just as a demon rules a man. No matter what that is, if we are possessed by something, then we are no different from a demon-possessed man.
When Jesus taught in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the hiding demon-possessed man was revealed. The impure spirit said,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Mark 1: 24)
How fascinating and surprising! The man possessed by an impure spirit recognized Jesus right away. He confessed,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The man makes an unexpected confession about Jesus.
Here God wants us to gain a critical perspective.
Interestingly, one expression is repeated four times in the passage: to teach or “didache (διδαχή)” in Greek. Why did Jesus teach in the synagogue? Generally, teaching means to impar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Jesus would have explained and interpreted God’s true will based on the Scripture. So, we may first define His teaching as one that imparts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course, the culmination of this must be a realization that Jesus is the Holy One, the Son of God.
As such, teaching is normally understood as an act of explaining something. We see it as a process that enlightens someone on things that he/she did not know. This applies to sermons, too. We focus on how the preacher explains and persuades. We pursue a broadening of our knowledge and understanding.
Now, let’s think of it this way. If Jesus wanted to explain who He was through the Scripture and if that was the crux of His teaching, then what would have been the response of the demon-possessed man? This man—how can we describe him? Wasn’t he the “best student” in the synagogue? He had the best answer, didn’t he? This is what he said about Jesus: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Mark 1: 24)This man knew all too well who Jesus was and what He wanted with the evil spirits.So, what is there to teach?
Even among people who acknowledge Jesus as the Holy One,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talk about love, peace, righteousness, and justice, many are possessed by something. This is true even within the church. Knowing is not the end of our faith. Neither is making the right confession. Our Lord clearly shows this to us through today’s Scripture.
What did Jesus do to this demon-possessed man? He sternly said, “Be quiet. Come out of him!”(Mark 1:25)
These are the only words spoken by Jesus in this passage. Yet when He spoke them, the impure spirit came out with a shriek: “The impure spirit shook the man violently and came out of him with a shriek.” (Mark 1: 26) At this, “the people were all so amazed that they asked each other, ‘What is this? A new teaching—and with authority! He even gives orders to impure spirits and they obey him.’”(Mark 1: 27)
Through verse 27 the Lord reveals something important. After the people heard Jesus’ command and saw how it cast out the demon, they exclaimed, “A new teaching—and with authority!”
When Jesus taught in the synagogue, the people had already begun to think that Jesus’ teaching was amazing because He spoke as one with “authority” unlike the teachers of the law. The original Greek word for authority is “exousia(ἐξουσία)” which is also translated as power. This means that Jesus’ teaching had not only authority but power. Authoritative teaching did not mean dignified teaching. It meant it had power.
What is the critical perspective that the Lord gives us today? It is that Jesus’ words go beyond explaining the gospel and imparting a new perspective or understanding. His word is the very power that drives out demons, the very foundation of everything.
The Bible testifies that God created the world with His wor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od’s word is not an explanation or a persuasion. It is power itself. The moment it is spoken, creation occurs.
And the Word came to this world. The Bible declares,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John 1: 1-3)
The Word, Jesus, came to earth. This was all that He said to the demon-possessed man: “Be quiet. Come out of him!” And the impure spirit came out with a shriek. This is power. Jesus’ word is power. It creates.
The Lord came to earth as the Word. Jesus says that God’s kingdom has come near. If our Lord says so, then it is.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The Lord is building the kingdom of God on earth. Wherever the Word goes, God’s kingdom is established. This kingdom is built not by persuasion, explanation, or new ideas. It is established bythe word of Jesus. Where His word becomes power, His kingdom is raised.
Dear Church, please do not just be“persuaded” by this message, the word of God. When you receive His word with “amen,” it must become power. The word must be manifested. It must create anew. This is the true word. The word is power.
A demon-possessed man infiltrated a holy space on the Sabbath. He entered the synagogue and sat among holy people. This shows our world, our state today. Satan has invaded and destroyed us and our world.
Yet,with His word, His power,our Lord is rebuilding a new kingdom in this devastated world, in the destroyed synagogues, and among us. His work starts from the synagogue. Jesus says, “Be quiet. Come out of him!”
Our Lord wants to free us from Satan’s grip and from all the things that bind us—with His word which has power.
Today, He speaks to us again with words of authority and power.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John 13:34)
This is not an instruction. It is not a persuasion, a request, or a plea.
It is power itself. Where there is love, there will new creations.
마가복음 1: 21 ~ 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지난 주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시작된 나라입니다. 삶을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것이 제자도이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향해 귀신이 도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일에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세계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성서정과의 본문 말씀이기도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는 그들과 함께 가버나움 동네로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안식일을 맞으셨고, 그날에 회당에서 많은 유대인들과 말씀을 읽으시며 토론하셨습니다. 유대인 공동체는 안식일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모든 남성들은 그날의 성경 말씀을 화두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자격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해석하여 주시며,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장면 곧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사건을 전하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떤 본문을 읽으시며 말씀을 전해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장 22절)
본문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일반 사람들과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서기관들과도 같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날, 거룩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시간에 가버나움에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회당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곳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은 회당 안에 ‘귀신들린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전해 줍니다.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 ‘거룩한 공간’인 회당에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 거룩하지 않은 귀신들린 자도 함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귀신들린 자를 두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더러운(ἀκαθάρτῳ)’이라는 표현은 ‘거룩하다’와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시간, 거룩한 공간에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이 상황을 문제 삼지 않으실 분도 계실 듯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귀신의 엄청난 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거룩한 안식일, 거룩한 공간인 회당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더러운 영, 거짓된 영인 귀신이 침범해 온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또는 가정 안에서 우리는 귀신이 침투해 오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교회 안에도 거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합니다. 악한 영, 나쁜 마음, 이단의 정신을 가졌거나 예배가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척하지만 사실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귀신들린 사람이 거룩한 공동체 안에 숨어들어 온 것처럼 말입니다.
‘귀신들린 자’라는 표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곧 거룩한 존재이자 고매한 인격으로 지어진 인간 속에 귀신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멋진 존재로 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이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감탄까지 하셨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게 창조된 인간, 하나님의 모습을 가진 인간 안에 그를 지배하는 귀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귀신의 지배를 받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살지 못한 채 귀신의 조종을 당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귀신들린 사람들은 있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귀신 외에도 다른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예욕이나 재물의 욕심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인기라는 허망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자식에게 혹은 가족에게 매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따르는 이념에 사로잡혀서 지배를 당하는 불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지배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귀신들린 자와 동일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도 공격합니다.>
회당에서 숨어 있던 귀신들린 자가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마가복음 1장 24절)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바른 고백까지 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귀신들린 자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안에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하는데 ‘가르치다(διδαχή)’라는 단어입니다. 무려 4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고 할 때 사용된 표현이 이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가르친다’라고 한다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시도를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깨달음을 전달하고, 앎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는 게 ‘가르침’이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전하신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성경 말씀을 읽어 주시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해석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메시야라는 말씀이 정점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가 자신이심을 이야기하시며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을 설파하시길 원하셨다면, 이것이 그분의 가르침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본문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마도 수업을 가장 잘 들은 모범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마가복음 1장 24절, 새번역)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후에 어떻게 하실 지도 알았습니다. “나를 멸하시려고 오셨습니까?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목적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실 지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에 그리고 정의와 공의,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귀신들린 자처럼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신앙고백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고백하면서도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앎으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앎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학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명하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가복음 1장 25절 중)
오늘 본문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신 단 한마디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 속에서 나오라.”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귀신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마가복음 1장 26절)
그러자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장 27절)
27절 말씀 속에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을 때, 귀신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야 놀랍다! 귀신이 나왔구나! 주님의 능력이 대단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디다케’라는 단어가 한 번 더 사용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위 있는 가르침’,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이미 놀랐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권위 있는 자와 같지 않고 서기관과도 같지 않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27절 말씀에도 ‘권위 있다’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 것입니다.
‘권위’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원어는 ‘엑수시아(ἐξουσία)’입니다. 이 말은 ‘권위’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나, ‘능력’으로도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즉 ‘능력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품격이 있다거나 아름답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전파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말씀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귀신이 사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다시 평가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참으로 능력 있는 말씀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새로운 관점을 주는 깨달음의 차원을 넘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자 모든 것을 이루시는 ‘근원’이라는 점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을 때에 새 창조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증언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죠. 그러므로 말씀은 설득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창조가 일어납니다.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셨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1~3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적에 함께 계셨던 주님, 말씀이신 그분, 그분이 이 땅에 오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향하여 한마디를 건네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며, 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가까이 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가십니다. 말씀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설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설명으로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디어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한 사람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설득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멘’으로 받을 때에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안식일을 침범해 회당까지 들어왔습니다. 버젓이 거룩한 사람 행세를 합니다. 사탄의 침략으로 망가져 버린 세상, 우리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우리 가운데서 주님은 새로운 나라를 말씀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하십니다. 첫 번째 장소가 거룩한 곳 ‘회당’입니다. “잠잠하고 그곳에서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우리 모두가 매였던 것에서 해방되고 사탄의 권세, 마귀의 권세로부터 놓임 받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설명으로 보이십니까? 설득으로 보이시나요? 부탁으로 보이십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실행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말씀의 능력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붙잡고 실행하면 말씀이 능력이 되고, 실재가 되고, 우리 삶 속에 드러납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설득된다. 설득되었다’는 마음으로 돌아가시지 않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모심으로 그 말씀이 창조하는 능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는 무엇인가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처럼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1년 1월 3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창조의 말씀, 귀신을 쫓으시다” (막 1:21~28)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67장, 8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막 1:21~28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월 3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안식일의 거룩한 시간, 회당이라는 거룩한 공간, 거룩한 백성들이 모여 있던 곳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도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숨어있던 그 귀신 들린 자가 드러났습니다. 예수께서 귀신 들린 자를 향하여 명령하셨고 그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회당 안에서 예수의 가르치심을 듣고 그 교훈에 놀랐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귀신 들린 자를 향해 명령하신 것, 그리고 그 귀신이 쫓겨나오는 것을 보고서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 안에서 이들이 보고 놀라며 고백한 ‘권위 있는 새 교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거룩한 영역 안으로 들어온 ‘더러운 귀신 들린 자’라는 표현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의 몸 안에 귀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귀신의 조종을 받고 지배를 받으며 불쌍한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재물, 명예욕, 이념이나 가족에 매여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붙잡혀 사는 사람들 또한 돌아보면 귀신들린 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 회당 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허망한 것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해석하고 설명하였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귀신들린 자도 그 가르침을 듣고서 나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안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었겠습니까? 귀신 들린 자를 향하여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에게 명령하시며 귀신을 그 몸에서 쫓아내셨습니다.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귀신에게 명령하여 쫓아내시는 그 권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여기서 ‘권위’는 단지 품위만이 아닙니다. ‘능력’으로 번역하여 곧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설명하고, 새로운 관점의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또한 깨달음과 바른 신앙 고백만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며 모든 것을 이루는 근원이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득과 깨달음을 넘어서 창조이고 능력입니다. 주님은 권위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사탄이 침투로 망가진 세상, 우리 삶의 자리의 오염된 것들을 물리쳐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가십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삶의 자리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창조와 능력이 있습니다.
나누기
1. 하나님 말씀을 선포와 깨달음을 넘어서 능력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2.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내 안에서 쫓아내야 할,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믿는 자들이 오늘도 내일도 주님 말씀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창조와 능력을 힘입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