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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모든 열심을 아낌없이 드렸던 선조들의 신앙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믿고 있는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어떻게 헌금을 드리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것과 신의 것을 나누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의 신에게 선물을 드릴 때 이렇게 한다네. 한 가운데 밑줄을 하나 쭉 그어 놓고 하늘로 재물을 올려드리면서 나의 신에게 말한다네. ‘하나님 내 것은 왼쪽으로 남겨 주시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 높이 던지면 내 것에 떨어진 것은 내가 갖고 또 오른쪽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한 신앙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원을 하나 그려 놓고는, 하늘로 나의 재물을 올려드리면서 말한다네. ‘하나님 나의 것은 원 바깥에 떨어지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것은 원 안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재물을 던져서 원 안에 들어간 것만 하나님께 드린다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한 사람이 핀잔을 주면서 말합니다. “자네들은 믿음이 약하구만. 나는 땅에다가 밑줄을 긋지도 않고 원을 긋지도 않는다네. 나는 아무것도 긋지 않는다네. 나는 하늘로 완전히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린다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네. ‘하나님의 것은 하늘에서 받으시고 조금만 저에게 땅으로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재물을 던지면 대부분 다 땅으로 떨어진다네. 하나님이 나에게 다 주시는 거라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현대판 탈무드 유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하나님의 것과 우리의 것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종종 저는 헌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예화가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가 추수한 것 중에 얼마만큼이 하나님의 것일까요? 얼마만큼이 나의 것일까요? 헌금과 관련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원칙은 딱 한 가지 있습니다. 10의 1조인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자세하게 규명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소산의 10의 1을 드리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저의 선친은 매달 작은 사례비에서 십일조를 만들어 드리곤 하셨습니다. 물론 목회자이셨으니까 당연히 하실 일이었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놀라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1년 동안의 전체 사례비, 즉 요즘으로 말하면 연봉에 해당하는 사례비에서 십일조를 따로 드리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 때가 되면 저희 가족은 조금 긴장하곤 했습니다. 계산해 보면 결국 10의 2조를 하나님께 늘 드리곤 하셨습니다.
물론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죠. 부수적인 수입들을 잘 모으셨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동네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사서 나누어 주곤 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네 자녀들이 있었고 결코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런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렇게 무식하게 헌신하시고 헌금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났는데, 한 번도 굶은 적은 없었습니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옛 신앙인들은 놀라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지어서 바친 분들도 참 많이 있으셨고요. 전 재산을 주님께 바친 분들도 정말 많이 있으셨습니다. 철야 기도나 새벽 기도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던 분들도 참 많으셨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되는 일들이 옛날에는 많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열심이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도 신앙생활에도 열심을 내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모델입니다. 선조들 중에 이런 분들이 참 많았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 중에도 선조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증조할머니가 이런 헌신을 하셨더라고 했는데’ 생각하며 그분들이 떠오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옛 신앙의 선조들은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부유하고자 하였고, 자신에 대하여서는 청빙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과 헌신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이끌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실 추수감사절 헌금을 어느 정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던 과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발걸음을 한 번쯤 다시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보다 더 못 누렸던 그 시절에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바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고 싶습니다.
<놀라운 감사의 역사는 회복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옛날 일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할 때 일인데, 저희 아버님께서 첫 목회는 아버지와 함께 1년만 하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님께서 목회하시던 곳에서 1년간 영·유아·유치부를 맡아서 전도사로 봉사하고 그다음에 다른 사역지로 나갔습니다. 그 1년 동안 아버님의 목회를 주위에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매달 말이 되면 교역자들에게 사례를 주곤 했습니다. 매주 마지막 주일 예배가 다 끝나면 교육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사례비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례비를 나누어 주셨던 아버님의 모습이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례비가 적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사례비가 많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고, 사례비가 적다고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의 감사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여러분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주세요.”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그 말씀과 모습이 지금도 저의 머릿속에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면서 옛날 그 어른들의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뜨겁게 사랑했던 교회를 사랑하셨던 분들의 헌신이 그렇게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첫 번째 추수 감사절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에 몸을 싣고 바다를 항해해 나왔습니다. 102명이 탔었는데 그사이에 1명이 태어나서 103명이 되었다가, 또 그사이에 1명이 세상을 떠나서 다시 102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 지역에 정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겨울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듬해 봄에 그들은 힘내서 일어났고 원주민들이 나누어 주는 씨앗을 가지고 옥수수와 호박, 콩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그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감사가 가능했을까? 적어도 한 가정에 한 명 정도씩은 가족을 잃었을 법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에는 이미 제임스타운 등 신대륙에 정착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역을 하는 사람, 노예상인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미 신대륙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지역에 정착한 이들의 정신이 미국의 정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신앙 안에서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감사로부터 시작된 나라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감사를 놓치지 않았던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으로 이룬 나라가 미국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이 누려 보지 못했던 부유함과 위대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저는 우리 선조들의 신앙과 기도, 그리고 감사에서 왔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감사를 꼭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감사와 신앙을 아래 세대로 흘려보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수에 관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재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9~10)
이 말씀은 추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밭에서 곡식들을 추수할 때, 추수의 원칙을 설명합니다. 추수 감사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곡식을 주님께 드리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곡식을 얻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우리의 재산의 축적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추수할 때, 그 과정에 공의와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10의 1조를 바치느냐 10의 2조를 바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소득을 그 어떻게 얻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끝부분에 곡식들을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거두다가 떨어진 이삭이 있다면 그 이삭은 다시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거류민들과 가난한 자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이런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밭에서 곡식 한 알 한 톨도 남김없이 모아서 다 쌓아 놓고, 그것의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바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상대적으로 밭모퉁이와 여기저기 남은 부분들을 그대로 둔 채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보다 곡식의 양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다 거두지 말고 곡식단 일부를 남겨 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곡식단을 모두 거두어서 그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면 좋지 않겠느냐. 잘 거두어서 직접 배분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쁨도 있고 훨씬 더 잘 나눠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남겨 두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가난이 무슨 벼슬이냐. 가난한 사람들중에는 게으르고 악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왜 하나님은 그런 가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남겨진 곡식단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신다는 말이냐. 차라리 우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도울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이 말씀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곡식단의 일부 모퉁이를 남겨 두라는 말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은 이차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의 편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밑에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레 19:15)
여기 보면 재판할 때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편을 들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공의와 정의로 판단하라고 말씀합니다. 부자라고 호의를 베풀지도 말 것이지만, 가난하다고 호의를 베풀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만 위해서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차라리 곡식을 모두 거두어서 적절하게 나눠 주는 것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그냥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차적인 관심사이고, 사실은 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 관심은 추수 재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추수의 과정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곡식을 거두고 바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있는 레위기 19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1~2)
레위기 19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하라는 말씀을 서두로 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뒤의 말씀들은 어떻게 거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첫 번째로 우선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주시죠.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모두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레 19:9, 새번역)
이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추수한 것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곡식단을 다 거두지 말고 이삭을 줍지 말라는 말씀은 거룩하게 되기 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과 관련하여서 거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매우 중요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명령이라기보다는, 재물과 관련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인 너희는 어떻게 거룩하여질 수 있는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추수하는 모든 곡식단 중에서 일부는 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거룩에 닿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추수하는 모든 곡식단은 나의 밭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그럼에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요?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일 수도, 어떤 가난한 사람의 것일 수도 있고, 또 지나가던 사람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드러내 보이면서 실천하는 것이 경건이자 거룩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b)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10)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추수할 수 있는 곳에서 한 공간, 한 자리를 비워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손을 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가든지,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경건의 모습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누리는 거룩한 자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여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하나님, 내가 얻은 재물 및 곡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내어놓을 수 있는 모습이 진정한 거룩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마음으로 주님께 바치고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Celebrate Thanksgiving This Way
Leviticus 19:9-10
Let me tell you a joke. Three religious people were talking among themselves about tithing. The first man says, “When I give to God, I draw a line on the ground and throw the offering into the air. Then I say to God, ‘What falls on the left is Yours and what falls on the right is mine.’” The seconds man says, “I do things a bit differently. I draw a circle on the ground and say to God, ‘What falls into the circle is Yours and what falls outside it is mine.’” Finally,the third man speaks:“How little your faithis! I don’t draw anything on the ground. I simply throw everything up into the air to God. Then I say,‘Lord, take whatever You need and send the rest back down.’”
How much will you give back to God? How much of what we harvest is His?
Our fathers of faith were very passionate about giving tothe Lord. I believe that the Korean church has been able to grow this much thanks to their commitment.
If there was one principle that God commandedregarding offerings, it would be tithing. Tithing meansgiving a tenth of all that we have or earn.
My father tithed on his meager monthly salary as a pastor. Furthermore, every Thanksgiving he would give back to the Lord a tenth of hisannual income. So, in effect, he gave two tenths of his earnings to God.
It didn’t end there. He saved up all his extra, irregular income and used it to buy shoes for poor, fatherless children in our neighborhood every Christmas.
I had three siblings and my father’s salary was never enough for the family. Yet he gave to the Lord in this way, which sometimes frustrated me.
As I grew older, I thought my mother would share my feelings, so I confessed my bitterness. But her response was entirely the opposite. “Isn’t your dad just magnificent?”
I grew up in such a faithful family. Looking back, as I grew up under such parents who “recklessly”committed themselves and gave back to the Lord, God filled all our needs by giving us our daily bread—even though our lives were not splendid.
Our ancestors of faith were truly amazing. Someoffered an entire church to the Lord after building it. Others gave their entire possession to the Lord. Hearing such stories today, we are awed at their complete commitment to the Lord. Many of our fathers of faith were that passionateabout God.
They were enthusiastic about helping neighbors in need. They pursued their faith with great zeal. We cannot even begin to followin their footsteps; yet we are deeply proud that our fathers of faith were such passionate Christians.
They were rich toward God, while they themselves lived in honest poverty.I believe it was theirspirit and commitment that founded and grew the Korean church.
Hearing their stories, some of us may feel a tinge of shame. I do too. To us today living in a society powerfully ruled by capitalism, in a world where a deluge of information allows us to easily spy on the lives of the rich, tithing or giving two tenths of our earnings is hard to imagine—let alone practice.
Today I did not come to speak about “how much” we should offer to the Lord on Thanksgiving.
I want to reflect on the footsteps of our ancestors whose faith was so recklessly beautiful. Living in times more destitute and lacking than ours, they gave generously to God in gratitude. I want to emulate their faith.
In my very first year of ministry I worked as a youth pastor for kindergarten and elementary school children in my father’s church. All the ministers would receivetheir pay in an envelope handed out by my father on the evening of the last Sunday each month. My father would say, “I apologize for the meager salary. But I have experienced that an ample salary does not give us comfort; neither does a small salary fail to fulfill our needs. I hope you will receive this with a heart of gratitude, for it holds the gratitude of our congregation.”
Celebrating Thanksgiving Sunday today, I was remined of the old days. And my appreciation for the shining faith of our ancestors that led us to where we are today is renewed.
Let’s think of the very first Thanksgiving.
In 1620 the Pilgrims started a long journey across the ocean on the Mayflower in pursuit of religious freedom. At the end of their long, dangerous journey, 102 (or 103)passengers reached Plymouth, Massachusetts. In the first harsh winter in America more than half of the settlers died of illness and from the cold; the process of settling was extremely difficult,and survival, not settling, became their greatest concern. After barely surviving the winter, they learned how to farm the land from the natives. They started to grow corn, pumpkin, and beans, and in the fall they finally had a harvest. Rejoicing in their survival and first harvest, the Pilgrims held a three-day festival with the natives to give thanks to God. This was the first Thanksgiving in America.
How was such a thanksgiving possible? How could they give thanks in such dire circumstances?
Although many groups of immigrants settled in America—including traders who settled in Jamestown, slavetraders, and others—the early American leaders adopted the spirit of the Pilgrims, who traveled across the Atlantic and settled in Plymouth, in building a great nation based on faith.
Therefore, 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whose very start was thanksgiving.The American fathers of faith, who did not give up giving thanks even in the most adverse conditions, received this country from God.
I believe the Republic of Korea is the same. Today, Korea enjoys prosperity and greatness never once witnessed in its millennia-old history. This amazing blessing, I believe, is a result of the faith and prayers and thanksgiving of our ancestors of faith.
How much did they give to the Lord? What is more important, however, than whether our ancestors gave a tenth or two tenths is that their sincere and wholehearted thanksgiving pleased God.
May we revive such a heart of gratitude. And may our heart of gratitude be passed down to our future generations as well.
I have digressed a lot. Let’s return to today’s Scripture. This text from Leviticus containsGod’s laws regarding harvest.
This is God’s command to His people:
“When you reap the harvest of your land, do not reap to the very edges of your field or gather the gleanings of your harvest. Do not go over your vineyard a second time or pick up the grapes that have fallen. Leave them for the poor and the foreigner. I am the Lord your God.”(Leviticus 19:9-10 NIV)
The above teaches us about the heart and attitude of the harvester. God talks about how the potential worshiper, who will bring his harvest to the temple as a thanksgivingofferingto the Lord, must reap his harvest. In short, this text teaches us what kind of lifethe worshiper must live prior to offering his thanksgiving sacrifice to the Lord.
It talks about what the worshiper must do—that is, his duty—before mentioning how great a sacrifice he must bring to the Lord. In fact, as we give thanks to the Lord in this season of harvest, how much we give is important. But, how we gain our harvest is consequential as well. In other words, the process of wealth accumulation is vital.
God teaches us that when we reap our harvest, it must be done in righteousness and love. In other words, whether we tithe or give two tenths is not important; but the matter of how we havegained that income is of extreme importance.
God commands His people not to collect their harvest to the very edges of their fields. He tells them to leave some crops at the edges. Furthermore, the fallen grains must not be picked up. He commands His people not to pick up the fallen grapes either. These are to be left for the poor and the foreigners.
There would have been people who got a harvest from their fields, reaped everything down to the last grain, piled them up, and accurately gave a tenth to the Lord. Such people would have given more to the Lord than the ones who refrained from reaping their harvest to the edges of their fields. But this was not what God wanted.
God commands His people not to reap the entire harvest but to leave some on the field. Then you may wonder, ‘What if we collect it all and give away part of it to the poor? Wouldn’t this be a better way? Then the giver will also feel joy.’
But God commands His people to simply leave the grains on the field so that the poor and the foreigners will not be embarrassed. If charity is handed out to them, they might feel shame. But a small, considerate act of leaving somecrops in the field will give the poor a chance to labor and collect their own grain, encouraging them. This command, therefore,reflectsGod’sthoughtfulness.
We may also think, ‘Poverty is not a privilege! Some poor people are lazy and evil. Why does God command us to leave crops for even such worthless people? Wouldn’t it be better and more effective if we reap all our harvest and then give it out appropriately to those who are really in need?’
In fact, God is not unilaterally on the side of the poor. This what He says in a verse that comes after today’s text:
“Do not pervert justice;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great, but judge your neighbor fairly.”(Leviticus 19:15 NIV)
God is not a God who sides with the poor unconditionally. Then why doesn’t He tell His people to share their harvest with the most needy and the most appropriategroups after collecting all the harvest? Why does He command the Israelites to leave some on the fields so that anyone can come and collect the remainders?
This has to do with the person offering a thanksgiving sacrifice to God, not with the matter of how charity must be given to the poor. Although the process of harvest most certainly considers the poor, what is more important is the heart and attitude of the person offering his harvest to God.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is part clearly.
Leviticus 19, from which today’s text is taken, starts with these words:
“The Lord said to Moses, ‘Speak to the entire assembly of Israel and say to them: Be holy because I, the Lord your God, am holy.’”(Leviticus 19:1-2 NIV)
This is how God begins His words on how His people should live in holiness. He thengoes through the aspects of holy life one by one.
First, God commands His people to honor their parents and to observe the Sabbath.
“Each of you must respect your mother and father, and you must observe my Sabbaths. I am the Lord your God.”(Leviticus 19:3)
The theme of holiness which starts like this continues with God’s ban on making idols and the laws on giving proper sacrifice.
Then comes today’s Scripture:
“When you harvest the crops of your land, do not harvest the grain along the edges of your fields, and do not pick up what the harvesters drop.”(Leviticus 19:9 NLT)
These words are about how the Israelites must live in holiness before God. Although they appear to consider the poor, a greater emphasis is on God’s command to His people to live holy lives before Him. The holy life is lived by not collecting all the harvest and by not picking up fallen grain.
This is a criticalperspectiveof God on how we must live holy lives in terms of wealth.
How should we help the poor?
Today’s Scripture from Leviticus does not reflect God’s concern for how we ought to help the poor by excluding the lazy and the evil and by picking out the truly needy who are sick and destitute. It is about how we as God’s people can live holy lives and how we can become holy with the wealth we possess.
Through today’s passage, God is not commanding us to help the poor; He is commanding us to accede that part of our earnings and harvest is actually His. This ought to be the heart of the worshiper before he gives his thanksgiving offering to the Lord. When we are able give to the Lord thinking this way and admitting that our harvest is not ours, we will be able to draw near to God’s holiness.
Therefore the Lord says:
“Be holy because I, the Lord you God, am holy.”(Leviticus 19:2bNIV)
“Do not go over your vineyard a second time or pick up the grapes that have fallen. Leave them for the poor and the foreigner. I am the Lord your God.”(Leviticus 19:10 NIV)
As we celebrate Thanksgiving Sunday today, may we become holy before the Lord. Another face of this holiness is to give what we have harvested to the Lord confessing it is not ours, as we consider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God, betweenthe wealth and crops I have gained and God.
May we offer a service of thanksgiving to the Lord today with such a heart.
레위기 19:9~10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 모든 열심을 아낌없이 드렸던 선조들의 신앙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믿고 있는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어떻게 헌금을 드리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것과 신의 것을 나누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의 신에게 선물을 드릴 때 이렇게 한다네. 한 가운데 밑줄을 하나 쭉 그어 놓고 하늘로 재물을 올려드리면서 나의 신에게 말한다네. ‘하나님 내 것은 왼쪽으로 남겨 주시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 높이 던지면 내 것에 떨어진 것은 내가 갖고 또 오른쪽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한 신앙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원을 하나 그려 놓고는, 하늘로 나의 재물을 올려드리면서 말한다네. ‘하나님 나의 것은 원 바깥에 떨어지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것은 원 안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재물을 던져서 원 안에 들어간 것만 하나님께 드린다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한 사람이 핀잔을 주면서 말합니다. “자네들은 믿음이 약하구만. 나는 땅에다가 밑줄을 긋지도 않고 원을 긋지도 않는다네. 나는 아무것도 긋지 않는다네. 나는 하늘로 완전히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린다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네. ‘하나님의 것은 하늘에서 받으시고 조금만 저에게 땅으로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재물을 던지면 대부분 다 땅으로 떨어진다네. 하나님이 나에게 다 주시는 거라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현대판 탈무드 유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하나님의 것과 우리의 것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종종 저는 헌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예화가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가 추수한 것 중에 얼마만큼이 하나님의 것일까요? 얼마만큼이 나의 것일까요? 헌금과 관련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원칙은 딱 한 가지 있습니다. 10의 1조인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자세하게 규명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소산의 10의 1을 드리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저의 선친은 매달 작은 사례비에서 십일조를 만들어 드리곤 하셨습니다. 물론 목회자이셨으니까 당연히 하실 일이었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놀라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1년 동안의 전체 사례비, 즉 요즘으로 말하면 연봉에 해당하는 사례비에서 십일조를 따로 드리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 때가 되면 저희 가족은 조금 긴장하곤 했습니다. 계산해 보면 결국 10의 2조를 하나님께 늘 드리곤 하셨습니다.
물론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죠. 부수적인 수입들을 잘 모으셨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동네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사서 나누어 주곤 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네 자녀들이 있었고 결코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런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렇게 무식하게 헌신하시고 헌금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났는데, 한 번도 굶은 적은 없었습니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옛 신앙인들은 놀라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지어서 바친 분들도 참 많이 있으셨고요. 전 재산을 주님께 바친 분들도 정말 많이 있으셨습니다. 철야 기도나 새벽 기도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던 분들도 참 많으셨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되는 일들이 옛날에는 많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열심이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도 신앙생활에도 열심을 내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모델입니다. 선조들 중에 이런 분들이 참 많았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 중에도 선조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증조할머니가 이런 헌신을 하셨더라고 했는데’ 생각하며 그분들이 떠오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옛 신앙의 선조들은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부유하고자 하였고, 자신에 대하여서는 청빙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과 헌신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이끌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실 추수감사절 헌금을 어느 정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던 과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발걸음을 한 번쯤 다시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보다 더 못 누렸던 그 시절에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바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고 싶습니다.
<놀라운 감사의 역사는 회복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옛날 일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할 때 일인데, 저희 아버님께서 첫 목회는 아버지와 함께 1년만 하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님께서 목회하시던 곳에서 1년간 영·유아·유치부를 맡아서 전도사로 봉사하고 그다음에 다른 사역지로 나갔습니다. 그 1년 동안 아버님의 목회를 주위에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매달 말이 되면 교역자들에게 사례를 주곤 했습니다. 매주 마지막 주일 예배가 다 끝나면 교육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사례비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례비를 나누어 주셨던 아버님의 모습이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례비가 적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사례비가 많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고, 사례비가 적다고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의 감사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여러분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주세요.”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그 말씀과 모습이 지금도 저의 머릿속에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면서 옛날 그 어른들의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뜨겁게 사랑했던 교회를 사랑하셨던 분들의 헌신이 그렇게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첫 번째 추수 감사절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에 몸을 싣고 바다를 항해해 나왔습니다. 102명이 탔었는데 그사이에 1명이 태어나서 103명이 되었다가, 또 그사이에 1명이 세상을 떠나서 다시 102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 지역에 정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겨울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듬해 봄에 그들은 힘내서 일어났고 원주민들이 나누어 주는 씨앗을 가지고 옥수수와 호박, 콩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그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감사가 가능했을까? 적어도 한 가정에 한 명 정도씩은 가족을 잃었을 법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에는 이미 제임스타운 등 신대륙에 정착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역을 하는 사람, 노예상인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미 신대륙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지역에 정착한 이들의 정신이 미국의 정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신앙 안에서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감사로부터 시작된 나라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감사를 놓치지 않았던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으로 이룬 나라가 미국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이 누려 보지 못했던 부유함과 위대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저는 우리 선조들의 신앙과 기도, 그리고 감사에서 왔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감사를 꼭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감사와 신앙을 아래 세대로 흘려보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수에 관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재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9~10)
이 말씀은 추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밭에서 곡식들을 추수할 때, 추수의 원칙을 설명합니다. 추수 감사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곡식을 주님께 드리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곡식을 얻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우리의 재산의 축적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추수할 때, 그 과정에 공의와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10의 1조를 바치느냐 10의 2조를 바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소득을 그 어떻게 얻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끝부분에 곡식들을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거두다가 떨어진 이삭이 있다면 그 이삭은 다시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거류민들과 가난한 자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이런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밭에서 곡식 한 알 한 톨도 남김없이 모아서 다 쌓아 놓고, 그것의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바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상대적으로 밭모퉁이와 여기저기 남은 부분들을 그대로 둔 채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보다 곡식의 양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다 거두지 말고 곡식단 일부를 남겨 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곡식단을 모두 거두어서 그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면 좋지 않겠느냐. 잘 거두어서 직접 배분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쁨도 있고 훨씬 더 잘 나눠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남겨 두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가난이 무슨 벼슬이냐. 가난한 사람들중에는 게으르고 악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왜 하나님은 그런 가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남겨진 곡식단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신다는 말이냐. 차라리 우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도울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이 말씀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곡식단의 일부 모퉁이를 남겨 두라는 말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은 이차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의 편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밑에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레 19:15)
여기 보면 재판할 때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편을 들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공의와 정의로 판단하라고 말씀합니다. 부자라고 호의를 베풀지도 말 것이지만, 가난하다고 호의를 베풀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만 위해서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차라리 곡식을 모두 거두어서 적절하게 나눠 주는 것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그냥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차적인 관심사이고, 사실은 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 관심은 추수 재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추수의 과정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곡식을 거두고 바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있는 레위기 19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1~2)
레위기 19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하라는 말씀을 서두로 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뒤의 말씀들은 어떻게 거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첫 번째로 우선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주시죠.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모두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레 19:9, 새번역)
이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추수한 것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곡식단을 다 거두지 말고 이삭을 줍지 말라는 말씀은 거룩하게 되기 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과 관련하여서 거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매우 중요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명령이라기보다는, 재물과 관련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인 너희는 어떻게 거룩하여질 수 있는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추수하는 모든 곡식단 중에서 일부는 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거룩에 닿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추수하는 모든 곡식단은 나의 밭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그럼에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왜요?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일 수도, 어떤 가난한 사람의 것일 수도 있고, 또 지나가던 사람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드러내 보이면서 실천하는 것이 경건이자 거룩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b)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10)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추수할 수 있는 곳에서 한 공간, 한 자리를 비워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손을 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가든지,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경건의 모습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누리는 거룩한 자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여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하나님, 내가 얻은 재물 및 곡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내어놓을 수 있는 모습이 진정한 거룩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마음으로 주님께 바치고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17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추수감사, 이렇게 하라” (레 19장 9-10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90장, 58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레 19장 9-10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1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우리는 얼마만큼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야 할까요? 우리가 추수한 것 중에 어느 정도가 하나님의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의 말씀은 추수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례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추수를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의 태도를 말해주고 추수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올 잠재적 예배자가 어떻게 추수를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추수감사제물을 바치기 전에 예배자는 추수와 관련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제물을 가지고 올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곡식을 얻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산의 축적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추수를 할 때 그 과정 안에 공의와 사랑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두다가 떨어진 이삭은 다시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무조건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추수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추수의 과정에는 분명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레위기 19장 1-2절의 내용인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거룩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곡식단을 다 거두지 말고 이삭을 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난한 자를 돕기 이전에 내가 가진 재산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를 드리기 전에 예배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여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하나님, 내가 얻은 재물과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하며 내 것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며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거룩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마음으로 주님께 아낌없이 바치고 드리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추수감사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마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룩의 모습이라는 내용에서 깨닫고 생각하는 바를 함께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지난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생명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음이 은혜입니다. 내가 얻은 소산을 들고 주님 앞에 섭니다. 거룩한 감사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고백하며 주님께 감사의 제물을 들고 성전으로 올라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오늘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내 것을 나누며, 기쁨으로 감사의 찬양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