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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극복의 영적 함의

다니엘 9: 1 ~ 19

김경진 목사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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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9: 1 ~ 19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려는 이 시기, 지난날을 잠잠히 되돌아봅니다.>

기쁨의 부활절 절기를 보내면서 전통적으로 불려 왔던 부활절 환호와 더불어 오늘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큰 소망입니다. 이 부활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이번 부활절과 더불어 마치 짙은 안개가 걷히듯 2년여 동안 지속되어 온 코로나 감염병 극복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정부가 거리 두기 제한을 풀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개별적으로 코로나에 대처하며 생활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리는 상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봅니다. 코로나가 세상에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 후베이성의 우한시에서였습니다. 2019년 11월 17일에 보도가 처음 되었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우한에서 신종 폐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2019년 12월경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발생했다가 사라질 질병 정도로 여겼던 우한 폐렴은 세계적인 전염병이 됨으로써 ‘코로나19’ 또는 ‘COVID-19’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1월 둘째 주일, 그러니까 아직은 우리나라에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단계였는데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서 ‘포로에게 말씀하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이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예레미야 29:5~6)

새해 두 번째 주일에 전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해 보이는 말씀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서 전해 드렸는데 돌이켜 보니 ‘우리가 정말 포로 생활을 했구나’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집을 짓기도 했고 텃밭을 가꾸기도 했고 그 열매를 먹기도 했습니다. 아내를 맞이하고 남편을 맞이하고 자녀를 낳기도 했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처럼, 코로나의 위력 앞에서 힘없는 노예처럼 살아 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더불어 일어난 세계적 사건을 바벨론 포로기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에게는 제가 그렇게 말씀을 전하였고, 이후 코로나 확산과 함께 많은 강단에서 그와 같은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예배당 폐쇄라는 상황을 경험하며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2020년 2월 23일 오후에 대통령의 코로나19 심각 단계 발표가 있은 이후, 우리 교회는 즉시 예배당 문을 닫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교회들이 예배당 문을 차례로 닫으면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포로기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영적 포로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분들이 눈물로 기도했고 회개했습니다. 속히 예배당 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예배당 문을 붙잡고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전염병의 창궐이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훼손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깊은 반성과 회개가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대자연이 인간에게 돌려주는 형벌이라는 관점에서 반성과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의 발전으로 공기는 이미 탁하게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하는지도 모르는 채 열심히 달리고 움직이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전염병의 발병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돌아온 길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는가?’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나약함도 보게 되었고, 죽음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와 있는지도 실감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면서 그동안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 왔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입을 다물라고 말씀하시며 입에 재갈을 물리시는 듯한 하나님의 손길 같았습니다. 동시에 예배당 문이 닫히면서 우리는 예배당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나는 바른 예배자였는가?’ 스스로를 향해 질문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발병과 더불어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진리를 알지 못한 채 또 다른 포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진정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지와 같은 반성이 교회 앞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허물어진 도성을 보면서 울었듯이 허물어진 것만 같은 교회를 보며 함께 울기도 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예배당에서 내쫓으신 건 아닌지 반성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너희는 예배할 자격이 없다. 이곳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이 집을 찾을 것이다. 너희는 자격이 없다.”고 들리는 듯한 주님의 음성을 채찍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배당에서 쫓겨난 이후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2년여의 시간을 보내 왔습니다. 세상으로 내쫓긴 상황에서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던 교회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이기적으로 보인 그리스도인의 모습,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며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때서야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 자연은 2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새로운 하늘을 선물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늘 잿빛이던 하늘이 새파란 하늘로 돌아왔습니다. 무분별한 만남이 줄어들자 감기와 같은 작은 질병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재택근무 등으로 가족들이 더 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엄마 아빠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좋아졌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한번 솔직히 돌아봅시다. 우리는 과연 감염병이 창궐하여 예배당 문이 닫혔을 때 가졌던 반성과 회개를 이루었을까요? 예배당 문이 처음 닫혔을 때 신앙에 대해서, 예배에 대해서 질문하며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는데 그 마음가짐을 그대로 유지하며 목표에 도달해 있습니까?

<포로기와도 같았던 지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울고 회개했지만 그리 변화되지 못한 모습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극복이라는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포로기를 지나 고향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럴 만한 회개를 했습니까? 정말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달라졌나요? 글쎄요. 적응은 된 것 같습니다. 포로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눈물만 나던 현실이 어느새 덤덤해졌지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일도 매우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회개는 있었나요? 본질의 회복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가 와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예배당으로 돌아오고 있는지를 두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다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고 현실입니다. 예배당에서 쫓겨나고 코로나19로 인해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맞이하면서 회개하고 애통해 하며 눈물 흘린 시간이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별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포로기를 보낸 우리에게 다시금 회복의 시간을 주고 계실까요? 이 회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로기와도 같았던 코로나19의 시간을 지나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와 열매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우리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또다시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까요?
오늘 본문인 다니엘서 9장 말씀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앞부분에 그가 기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 9:1~3)

예레미야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니엘은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려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날이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러나 이 일은 이스라엘의 변화된 행위 때문이 아니라 기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또한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주권에 의해서 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데에는 그들의 완전한 회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삶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한 변화된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70년이라는 형벌의 시간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형벌의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그들의 신앙과 행동, 삶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은 영원히 형벌에서 벗어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포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이 발견한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와 달라진 삶을 기준으로 형벌의 기간을 정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복음이 되죠. 우리의 변화된 삶의 여부로 판단하신다면 코로나 극복의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가 되고 바른 신앙이 되고 자연을 잘 다스리는 책임 있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코로나 극복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코로나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때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다니엘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먼저 그는 포로로 잡혀 오게 된 원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말합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단 9:4~6)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 다 주께서 쫒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단 9:7 중) 라고 고백합니다. 또다시 다니엘이 기도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단 9:11)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종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된 원인을 분석한 다니엘은 이어서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 기도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단 9:13)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면 삶을 돌이키고 회개하여서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형벌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그 재앙 속에서 사람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다니엘이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어들이게 하실 만큼 바뀌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기도를 드립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단 9:18~19 중)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로 그분을 기도로서 붙잡게 하시며,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잠시 회개하는 듯하지만 또다시 죄악의 길로 접어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는 선언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마음에 의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달라고 탄원합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말한다면 이스라엘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통해서만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할 때가 있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로로 잡혀가시는 듯한 상황으로 몰고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주님께 바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의 현실입니다. 역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긍휼하심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그분께서 주신다는 것이죠. 우리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보면서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는 “그대로 기도했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선언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서 29장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0~13)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제 너희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삶을 바르게 하면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는 선포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바뀌어야만 돌아올 수 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이미 평안의 길이고 희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희망이 되겠습니까? 이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기도하는 길에 접어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학자들마다 70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3,4년 정도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고 해석하기도 하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면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향해 기도의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할 때에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이 아닌 미래와 희망을 보여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 역시 회개의 삶을 원하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회개하며 살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단 한 가지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붙들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와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입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빨리 코로나를 없애 주십시오.”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극복될 수 있게 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주님께 기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기도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계속해서 이어지며, 포로와 같은 삶을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4월 24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코로나 극복의 영적함의” (단 9:1-3, 16-19)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70장, 37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단 9:1-3, 16-19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4월 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아직 이르고 조심스러운 감이 있지만, 이번 부활절과 더불어 2년여 동안 지속되어온 코로나의 극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종식은 아직 아니지만, 적어도 거리두기의 제한이 풀리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설교의 요약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처럼, 그렇게 코로나의 위력 앞에서 힘없는 노예처럼 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살아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더불어 일어난 세계적 사건을 우리는 영적으로 바벨론 포로기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예배당 폐쇄라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배당의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포로기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영적인 포로기 속에서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회개와 성찰의 기회를 삼았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피조세계에 대한 다스림의 권한을 우리가 잘못 사용함으로 피조세계가 우리들에게, 대 자연이 우리들에게 도려주고 있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성과 회개를 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장을 멈추게 했고, 우리를 각자의 집으로 돌려 보냈으며, 우리가 살아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배당의 문이 닫히면서 우리가 그토록 즐겨 찾던 예배당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느헤미야가 허물어진 도성을 보고 울었듯이, 우리는 이 시대의 무너진 도성 같은 교회를 보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코로나의 발병으로 인해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모습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잘못된 진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등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2년이 지나고 코로나로 인해 여러 가지 제한조치가 풀리는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처음의 그 반성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나요? 처음 예배당의 문이 닫혔을 때 느끼던 우리의 신앙과 예배에 대한 반성과 회개를 넘어,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요? 우리는 지금 코로나 극복이라는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마치 포로기를 지나 고향집으로 돌아온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럴만한 회개를 한 것입니까? 우리의 삶이 바뀌었습니까? 우리가 정말 달라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지 70년이 되었을 때, 다니엘은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주권이 오직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 때문에 해방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역시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지 못합니다. 재앙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실만큼 철저한 회개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때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과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나누기

1. 코로나로 인한 지난 2년여 동안, 느끼고 깨달은 점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코로나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더욱 신앙이 깊어진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기도

    우리 앞의 재앙들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이 크고 신실하신 은혜와 사랑을 더욱 간절히 구하며 찾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재앙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우리 삶에 가득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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