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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복음으로 새로워진 바울이 육체의 자랑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면서 붙잡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부를 때 버릇처럼 ‘사도’를 덧붙여서 사용하곤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라는 표현이 매우 익숙하죠. 하지만 누군가가 바울이 정말 사도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조심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했던 이들 중에서도 특별한 제자들만을 일컫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열두 사도’라는 말처럼 예수님의 지근거리에서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을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 같은 표현이 마땅하고 옳은 표현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경우는 조금 복잡합니다. 바울의 옛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베드로와 제자들이 성령의 강림으로 복음을 외칠 때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사울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그곳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다고까지 기록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에 극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 후에 사울은 바울이 되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바울은 사도라고 칭해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위대한 설교자, 위대한 전도자 정도로 불려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서신마다 자신을 사도라고 하며 서신을 보냅니다. 왜 그는 이렇게 사도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을까요? 사도라는 말이 부럽거나 교만해서 그런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잘못된 판단이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모두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빌립보서 3장에서 말합니다. 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혈통과 젊음, 가진 것도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의 베냐민 지파 중 한 사람이었고,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인이자 바리새인이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다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왜 사도라는 칭호를 붙잡고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가 자신을 서신의 서두마다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방해와 노력이 당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울의 사도권 논쟁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바울을 물고 늘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서신입니다.
당시 가장 큰 이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훼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복음이자 거짓 교사의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항하면서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권위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거짓 교사들은 바울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면서 그의 지도력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변덕이 심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비용을 받지 않고 선교하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자격이 없어서 비용을 요구할 수 없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또는 그의 글을 읽을 때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며 외모나 언변이 볼품없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서신마다 자신을 사도라고 강조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상황이 직접적인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권위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후, 한 가지 유일하게 붙잡았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것 한 가지만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라는 이름을 끝까지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새 언약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따라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배경 아래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고후 6:1a)
바울은 자신과 함께하는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들을 지칭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지고 있던 자기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하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며 자기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맡았다고 생각했을까요? 바울의 서신 여러 곳에 다양한 내용이 나오지만, 고린도후서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자신을 가리켜서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
자신을 새로운 언약의 일꾼으로 말하면서, 옛 언약의 일꾼으로는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과거 구약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던 모세의 사역을 옛 언약의 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역은 끝이 났고, 바울은 자신이 모세를 넘어서서 새로운 언약의 일꾼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갖게 된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의 영광은 모세가 일찍이 가졌던 것보다 더 귀하다고 평가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이 맡은 일이 모세의 일보다 더 놀라우며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명이 어떤 것인지, 새 언약의 일꾼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앞에 있는 5장에서 자세히 설명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8~19)
새 언약의 일꾼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셨다. 율법의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일은 온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는 일이다.” 이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첫째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렇게나 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일을 가볍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자칫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은혜를 아무렇게나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까지 멈춰 있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을 맡기시는 분이 ‘아직 아니다. 너는 아직 아니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불러 주시는 은혜의 무게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되, 그 일이 얼마나 엄중하고 놀라운 축복이 있는 일인지를 알면서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여러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기도 하고,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찬양대로, 선교부원으로, 제직 회원으로, 또 여전도회와 남선교회 회원으로, 또는 부장이나 회장, 회계, 서기, 임원 등 다양한 자리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일들은 언뜻 보기에는 세상의 일이나 사회의 일반 조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취미 활동이나 동호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이 모든 일들의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바울은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이라는 의미를 다시 세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할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받은 소명은 내일이나 나중에 준비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중한 소명은 바로 오늘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지금, 구원의 때에 우리에게 주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이 얼마나 엄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초청은 ‘지금’ 결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과 동역자로 부르심 받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한 바울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 갑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방식으로 사역을 감당해 왔는지를 열어 보여줍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후 6:4~5)
여기에서 앞부분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라는 부분이 자신을 스스로 추천했다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넘어서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서 자신의 삶 자체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자체로 하나님의 일꾼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은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고후 6:4~5, 새번역)
바울 사도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서 제일 먼저 마음잡았던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하리라’라는 각오입니다. 그 각오는 첫 번째로 그의 고난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맡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나섰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잠을 자지 못함, 환란과 궁핍 등 수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이 고난의 이야기를 바울 사도는 11장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그가 하나님과 동역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막중한 일입니까? 그러나 실상은 바울의 경우만 보아도 너무나 참혹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과연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종종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일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떠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사도라고 여기며 자신을 가리켜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답게 살겠다고 노력하면서 그 일을 이겨 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바울 사도는 그 비밀을 알려 줍니다. 그는 이미 고린도후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첫 부분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후 1:3~4, 새번역)
하나님과 동역하는 삶을 살면서 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고난을 겪으면서 또 다른 한 가지를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난일 뿐이고 처참해 보입니다. 아무 볼품없는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위로해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위로 때문에 다른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힘까지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자답게 살기로 작정했다는 표현에서 또 한 가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가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을 감수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고백을 합니다. ‘흠 없는 성품을 가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고후 6:6~8, 새번역)
그는 고난 중에서도 순결하게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으로 그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칭찬받았을 때도, 수치를 당할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일관되게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나아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으로서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이었습니다. 고난과 비난, 수치를 받으면서도 순결하고 인내하며 친절합니다. 끝까지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맡은 일을 해 나갑니다.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꿋꿋하게 미련한 듯이 친절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후 6:8~10, 새번역)
언뜻 보기에 이 일은 너무나도 작은 일 같습니다. 사회에서 큰일을 하며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작아 보이는 일을 시간 내서 감당할 수 있을까요? 경제적이지 않고 볼품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주님의 일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기고 부유한 일이 일어나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의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또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다운 삶의 방식을 한 가지 더 덧붙입니다.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고후 6: 11~13, 새번역)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는 조금씩 마음을 넓혀 갔습니다. 바울에게는 어렵고 힘든 상황과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거짓 교사라고, 못생겼다고, 말을 잘 못한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마음을 넓혀 갔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보여 주었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그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긴박성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 인내와 성령의 열매로 순결함을 지키고 마음을 넓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동역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2025년이 마무리되고 2026년이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맡은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이곳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리다. 나는 사도로서 일한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 품고 주님을 섬기는 귀한 주님의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People who Work with God
2 Corinthians 6:1-13
When we refer to Paul, we habitually add the title “apostle.” Thus, the expression “the Apostle Paul” is very familiar to us. However, if someone asks whether Paul truly qualifies as an apostle, our answer becomes somewhat cautious.
This is because the term “apostle” is generally used to refer to the disciples who accompanied Jesus during His public ministry. Expressions like “the Apostle Peter” and “the Apostle John” are therefore fitting and correct. However, Paul’s case is a bit more complicated.
Paul’s old name was Saul. He never physically met Jesus while He was alive. In fact, after Jesus’ resurrection and ascension, when Peter and the other disciples were proclaiming the Gospel by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Saul hated and persecuted Christians. In Acts 7, Saul was present when Stephen the deacon was stoned to death while preaching the Gospel. Saul approved of that death.
His dramatic conversion to faith in Jesus occurred when he encountered the resurrected Jesus on his way to Damascus to arrest and imprison believers. After that encounter, Saul became Paul and became a witness to the risen Christ.
From this perspective, Paul does not seem to qualify to be called an apostle. He could be called an evangelist, perhaps.
Yet, Paul refers to himself as an apostle in several of his letters. Why did he use the term “apostle” so assertively?
Was it because he deeply envied that title? Was it out of pride? Did he desire to stand shoulder to shoulder with Jesus’ disciples, like Peter and James, which led him to call himself an apostle? Or was it perhaps a slight psychological delusion?
Paul confesses in Philippians 3 that, after meeting Christ, he considered everything a loss. He had many things to boast about. He was of the tribe of Benjamin, a Hebrew among Hebrews, a Pharisee in regard to the law, and blameless regarding the righteousness of the law. Yet, he states that he considers all these garbage. So, why was he so attached to the title of apostle?
There is actually a hidden reason for why he calls himself an apostle of Christ at the beginning of his letters. It is because, at the time, there were constant hindrances and efforts to deny his leadership.
In more technical terms, this situation of Paul may be expressed as the “Pauline Apostolic Controversy.” In particular, 2 Corinthians, our text for today, and Galatians well illustrate how persistently the forces that denied Paul’s authority attacked him.
The biggest issue was that Jewish Christians taught Gentile Christians to be circumcised. They also taught that Gentile Christians must observe the law. Paul referred to these teachings as those of false teachers. He even called them acts that distort the Gospel.
The false teachers even attempted to destroy Paul’s leadership by constantly belittling him.
For example, they described Paul as unpredictable and therefore untrustworthy, or criticized his appearance and eloquence as unimpressive. In such a situation, Paul likely felt the need to strongly assert his leadership. This may be the direct reason he emphasized that he was an apostle in each of his letters.
Now, we need to look at today’s passage in such a context.
Today’s passage begins like this:
“As God’s co-workers we urge you […]” (2 Corinthians 6:1a NIV)
Paul refers to himself and his fellow workers, like Timothy, as “God’s co-workers.”
This was Paul’s identity.
He calls himself an “apostle.” He also confirms his identity as “God’s co-worker.”
Earlier in 2 Corinthians 3, he confesses that he was called to be a “minister of a new covenant.”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2 Corinthians 3:6 NIV)
This “minister of a new covenant” is contrasted with Moses, a minister of the old covenant, and its ministry is far more glorious than Moses’ ministry. In 2 Corinthians 5, Paul also mentions that God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All this is from God, who reconciled us to himself through Christ and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that God was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in Christ, not counting people’s sins against them. And he has committed to us the message of reconciliation.” (2 Corinthians 5:18-19 NIV)
To summarize, we are God’s co-workers. He has appointed us ministers of a new covenant. It is not a work of the law, but of the Spirit. He has called us to this task. And that task is a ministry of reconciliation. Through this ministry of reconciliation, we work together with God.
Now, Paul teaches us about the attitude we must have as partners in God’s ministry and His workers.
First, Paul says this:
“As God’s co-workers we urge you not to receive God’s grace in vain.” (2 Corinthians 6:1 NIV)
That we have been called to be God’s co-workers is grace. But Paul tells us not to receive that grace in vain. What does this mean?
Wouldn’t it mean that we must not take lightly the call to work together with God? This statement does not suggest that we should avoid accepting this grace. Neither does it mean that we should delay receiving that grace until we are confident that we will not receive it in vain.
It emphasizes the weight of God’s grace in calling us to be His co-workers. That is, we must recognize the seriousness of our calling.
We must respond to that precious call, reflecting on how God has called us to such a valuable work.
Working with God is an immense privilege and grace.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value of this grace. This is the attitude of the person who desires to work with God.
Paul goes on to write:
“For He says: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2 Corinthians 6:2 NIV)
Paul quotes Isaiah 49:8, emphasizing the significance of the present moment.
Paul says that now is the time for grace… now is the day of salvation. The important thing is not tomorrow, but now. Now is the time of grace. The calling to work with God is not for tomorrow. It is for today. Now.
Therefore, Paul conveys how serious and precious God’s invitation to work with Him is, while also emphasizing that this invitation is for today, right now. We must not miss the opportunity when we receive God’s calling to work with Him.
Then Paul lists three things that people who work with God should do. First, those who work with God must accept even suffering with joy.
Ministers must prove themselves with much patience. Just because they are working with God does not mean they will not face pain. Rather, difficulties may arise.
Paul lists the hardships he endured. These are the difficulties faced by those who work with God:
“Rather, as servants of God we commend ourselves in every way: in great endurance; in troubles, hardships and distresses; in beatings, imprisonments and riots; in hard work, sleepless nights and hunger;” (2 Corinthians 6:4-5 NIV)
To commend oneself as a minister of God does not mean to recommend oneself, but to prove it through one’s entire life. It means to demonstrate that one is a servant of God through a life of suffering, through one’s whole life.
Therefore, the New Living Translation says:
“In everything we do, we show that we are true ministers of God. We patiently endure troubles and hardships and calamities of every kind. We have been beaten, been put in prison, faced angry mobs, worked to exhaustion, endured sleepless nights, and gone without food.” (2 Corinthians 6:4-5 NLT)
Didn’t Jesus live such a life? Before the Cross, He voluntarily entered into suffering to fulfill God’s will. Even in the midst of this suffering, Jesus remained silent and calmly walked that path. This is the meaning of commending oneself as a servant of God.
As we work with God, we face suffering. However, that suffering is our participation in Christ’s suffering. Therefore, we share in the suffering with God. In chapter 11 Paul writes in more detail about the sufferings and tribulations he experienced:
“Are they servants of Christ? I know I sound like a madman, but I have served him far more! I have worked harder, been put in prison more often, been whipped times without number, and faced death again and again. Five different times the Jewish leaders gave me thirty-nine lashes.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stoned.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Once I spent a whole night and a day adrift at sea. I have been constantly on the move. I have been in danger from rivers, in danger from bandits, in danger from my fellow Jews, in danger from Gentiles; in danger in the city, in danger in the country, in danger at sea; and in danger from false believers. I have labored and toiled and have often gone without sleep; I have known hunger and thirst and have often gone without food; I have been cold and naked.” (2 Corinthians 11:23-27 NIV)
As such, those who work with God face suffering. The great Paul did, and many Christians have as well.
However, Paul informs us that God’s grace is present in this process of suffering. It is an incredible truth that God’s comfort comes along with suffering.
“For just as we share abundantly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also our comfort abounds through Christ.” (2 Corinthians 1:5 NIV)
Accordingly, Paul praises God in the beginning of his letter to the Corinthians:
“All praise to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God is our merciful Father and the source of all comfort. He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others. When they are troubled, we will be able to give them the same comfort God has given us.” (2 Corinthians 1:3-4 NLT)
Those who work with God also share in His sufferings. However, they receive comfort from God along with the suffering. And with that comfort, they can comfort others.
This is the blessing that comes to those who work with God.
Second, those who work with God must endure external suffering while being equipped internally with a blameless character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Paul says:
“We prove ourselves by our purity, our understanding, our patience, our kindness, by the Holy Spirit within us, and by our sincere love. We faithfully preach the truth. God’s power is working in us. We use the weapons of righteousness in the right hand for attack and the left hand for defense. We serve God whether people honor us or despise us, whether they slander us or praise us. We are honest, but they call us impostors.” (2 Corinthians 6:6-8 NLT)
Even while suffering, they remain pure; even while enduring shame and criticism, they are patient and kind. They carry out God’s work, relying on the word of truth and the power of God until the end.
Thus, Paul proclaims:
“We serve God whether people honor us or despise us, whether they slander us or praise us. We are honest, but they call us impostors. We are ignored, even though we are well known. We live close to death, but we are still alive. We have been beaten, but we have not been killed. Our hearts ache, but we always have joy. We are poor, but we give spiritual riches to others. We own nothing, and yet we have everything.” (2 Corinthians 6:8-10 NLT)
This describes those who work together with God. They seem dead yet are alive; they always rejoice and make many rich. This is the work of God.
Finally, Paul speaks to those who work with God about opening wide their hearts:
“We have spoken freely to you, Corinthians, and opened wide our hearts to you. We are not withholding our affection from you, but you are withholding yours from us. As a fair exchange—I speak as to my children—open wide your hearts also.” (2 Corinthians 6:11-13 NIV)
Today, we confirmed that, as God’s co-workers, our ministry becomes most glorious when we endure in suffering, maintain purity through the fruit of the Spirit, and expand our hearts in love.
The world seeks success, comfort, and fame, but the glory of a true minister shines in a paradoxical life of “dying yet living on, having nothing yet possessing everything” (6:9-10). It is in our weakness that Christ’s power rests upon us.
In conclusion, today’s passage from 2 Corinthians 6:1-13 is Paul’s most candid and powerful self-defense and his self-portrait as a true minister that, showing how he dedicated his life as “God’s co-worker.” It clearly illustrates why Paul refers to himself as an apostle. How should God’s co-workers, those who work with God, live? Through Paul’s message today, I hope new commitments will be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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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today, God seeks those who will work with Him. May we become God’s co-workers who bring joy to His heart by realizing the preciousness of His grace before His calling, understanding the urgency of that calling, maintaining purity amidst suffering through perseverance and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and expanding our hearts.
고린도후서 6:1~13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복음으로 새로워진 바울이 육체의 자랑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면서 붙잡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부를 때 버릇처럼 ‘사도’를 덧붙여서 사용하곤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라는 표현이 매우 익숙하죠. 하지만 누군가가 바울이 정말 사도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조심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했던 이들 중에서도 특별한 제자들만을 일컫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열두 사도’라는 말처럼 예수님의 지근거리에서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을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 같은 표현이 마땅하고 옳은 표현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경우는 조금 복잡합니다. 바울의 옛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베드로와 제자들이 성령의 강림으로 복음을 외칠 때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사울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그곳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다고까지 기록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에 극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 후에 사울은 바울이 되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바울은 사도라고 칭해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위대한 설교자, 위대한 전도자 정도로 불려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서신마다 자신을 사도라고 하며 서신을 보냅니다. 왜 그는 이렇게 사도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을까요? 사도라는 말이 부럽거나 교만해서 그런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잘못된 판단이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모두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빌립보서 3장에서 말합니다. 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혈통과 젊음, 가진 것도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의 베냐민 지파 중 한 사람이었고,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인이자 바리새인이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다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왜 사도라는 칭호를 붙잡고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가 자신을 서신의 서두마다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방해와 노력이 당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울의 사도권 논쟁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바울을 물고 늘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서신입니다.
당시 가장 큰 이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훼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복음이자 거짓 교사의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항하면서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권위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거짓 교사들은 바울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면서 그의 지도력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변덕이 심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비용을 받지 않고 선교하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자격이 없어서 비용을 요구할 수 없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또는 그의 글을 읽을 때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며 외모나 언변이 볼품없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서신마다 자신을 사도라고 강조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상황이 직접적인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권위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후, 한 가지 유일하게 붙잡았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것 한 가지만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라는 이름을 끝까지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새 언약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따라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배경 아래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고후 6:1a)
바울은 자신과 함께하는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들을 지칭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지고 있던 자기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하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며 자기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맡았다고 생각했을까요? 바울의 서신 여러 곳에 다양한 내용이 나오지만, 고린도후서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자신을 가리켜서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
자신을 새로운 언약의 일꾼으로 말하면서, 옛 언약의 일꾼으로는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과거 구약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던 모세의 사역을 옛 언약의 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역은 끝이 났고, 바울은 자신이 모세를 넘어서서 새로운 언약의 일꾼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갖게 된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의 영광은 모세가 일찍이 가졌던 것보다 더 귀하다고 평가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이 맡은 일이 모세의 일보다 더 놀라우며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명이 어떤 것인지, 새 언약의 일꾼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앞에 있는 5장에서 자세히 설명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8~19)
새 언약의 일꾼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셨다. 율법의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일은 온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는 일이다.” 이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첫째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렇게나 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일을 가볍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자칫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은혜를 아무렇게나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까지 멈춰 있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을 맡기시는 분이 ‘아직 아니다. 너는 아직 아니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불러 주시는 은혜의 무게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되, 그 일이 얼마나 엄중하고 놀라운 축복이 있는 일인지를 알면서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여러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기도 하고,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찬양대로, 선교부원으로, 제직 회원으로, 또 여전도회와 남선교회 회원으로, 또는 부장이나 회장, 회계, 서기, 임원 등 다양한 자리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일들은 언뜻 보기에는 세상의 일이나 사회의 일반 조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취미 활동이나 동호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이 모든 일들의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바울은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이라는 의미를 다시 세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할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받은 소명은 내일이나 나중에 준비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중한 소명은 바로 오늘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지금, 구원의 때에 우리에게 주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이 얼마나 엄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초청은 ‘지금’ 결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과 동역자로 부르심 받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한 바울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 갑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방식으로 사역을 감당해 왔는지를 열어 보여줍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후 6:4~5)
여기에서 앞부분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라는 부분이 자신을 스스로 추천했다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넘어서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서 자신의 삶 자체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자체로 하나님의 일꾼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은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고후 6:4~5, 새번역)
바울 사도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서 제일 먼저 마음잡았던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하리라’라는 각오입니다. 그 각오는 첫 번째로 그의 고난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맡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나섰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잠을 자지 못함, 환란과 궁핍 등 수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이 고난의 이야기를 바울 사도는 11장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그가 하나님과 동역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막중한 일입니까? 그러나 실상은 바울의 경우만 보아도 너무나 참혹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과연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종종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일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떠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사도라고 여기며 자신을 가리켜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답게 살겠다고 노력하면서 그 일을 이겨 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바울 사도는 그 비밀을 알려 줍니다. 그는 이미 고린도후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첫 부분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후 1:3~4, 새번역)
하나님과 동역하는 삶을 살면서 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고난을 겪으면서 또 다른 한 가지를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난일 뿐이고 처참해 보입니다. 아무 볼품없는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위로해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위로 때문에 다른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힘까지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자답게 살기로 작정했다는 표현에서 또 한 가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가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을 감수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고백을 합니다. ‘흠 없는 성품을 가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고후 6:6~8, 새번역)
그는 고난 중에서도 순결하게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으로 그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칭찬받았을 때도, 수치를 당할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일관되게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나아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으로서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이었습니다. 고난과 비난, 수치를 받으면서도 순결하고 인내하며 친절합니다. 끝까지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맡은 일을 해 나갑니다.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꿋꿋하게 미련한 듯이 친절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후 6:8~10, 새번역)
언뜻 보기에 이 일은 너무나도 작은 일 같습니다. 사회에서 큰일을 하며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작아 보이는 일을 시간 내서 감당할 수 있을까요? 경제적이지 않고 볼품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주님의 일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기고 부유한 일이 일어나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의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또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다운 삶의 방식을 한 가지 더 덧붙입니다.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고후 6: 11~13, 새번역)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는 조금씩 마음을 넓혀 갔습니다. 바울에게는 어렵고 힘든 상황과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거짓 교사라고, 못생겼다고, 말을 잘 못한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마음을 넓혀 갔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보여 주었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그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긴박성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 인내와 성령의 열매로 순결함을 지키고 마음을 넓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동역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2025년이 마무리되고 2026년이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맡은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이곳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리다. 나는 사도로서 일한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 품고 주님을 섬기는 귀한 주님의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고후6:1~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06, 328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이번 주에 교회나 일상에서 감당했던 작은 봉사나 섬김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제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사도”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짓 교사들이 끊임없이 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한 가지 정체성만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라는 바로 그 정체성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새 언약의 일꾼”이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 정의합니다. 이는 율법이 아닌 영으로 살리는 일이며,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일에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로 이 일을 위해 부름받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부르심의 엄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한 일에 부르셨는지 그 무게를 알고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강조합니다. 아직 부족하다고,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미루지 말고 하나님의 긴급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고난 중에도 인내로 증명하며 성령의 열매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환난, 궁핍, 매 맞음, 갇힘을 견뎠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역설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봉사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명이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은혜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부르심의 긴박성을 알며,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누어 봅시다.
2. 미루고 있던 헌신이나 결단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격려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사울 같은 사람도 들어서 사도 바울로 귀하게 쓰신 주신 주님,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택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게을렀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소원하는 마음,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비록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진실함으로, 그리고 너그러움으로 바울 같은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