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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의 목회 지역은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케이프코드(Cape Cod) 지역까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교우들이 살면서 구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케이프코드에 내려가서 구역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도 함께하곤 했습니다. 가족들을 초청해 주셔서 저녁 식사도 종종 같이 하였는데 그때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저의 어린 아이가 함께 갔다가 무척 깜깜해진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집으로 올라올 때마다 굉장히 졸렸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올라오던 우리 아이가 “아직 멀었어?” 하고 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이에게 영어도 가르쳐 줄 겸 “We are almost there!”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매우 지쳤는지 “아빠, 아직도 멀었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금 “We are almost there”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우리 아이가 “엄마, 아직도 많이 남았대.” 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생각하는 ‘almost’와 우리 아이가 생각하는 ‘almost’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이 단어에서 느끼는 시간의 간격이 사람들마다 서로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almost가 우리 인간에는 어떤 느낌일까 생각도 해 보았고, 우리 인간에게서 almost가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 중)는 말씀에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말을 하는 아주 독특한 본문입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질문하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도 소개되고 있는 평행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이 이 이야기를 가장 짧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5~40절)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걸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죠. 반면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에는 ‘어? 왜 이런 말씀이 들어 있지?’ 조금은 의아스러운 듯한 표현이 있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4절에는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라는 말씀이 나오며, 주님이 서기관의 말을 어떻게 판단하셨는지 보여 줍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말씀하시며 서기관을 칭찬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참으로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서기관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시며 많은 책망을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서기관을 향한 예수님의 칭찬이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의 전후 사정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해석의 열쇠가 마가복음 12장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마가복음 12장 13절)
이것이 본문의 전체적인 상황입니다. 즉 마가복음 12장은 예수가 하는 말을 가지고 책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예수님께 나오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는 계속해서 트집을 잡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본문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적인 상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마가복음 12장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13절 이후에 나오는데요.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세금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2장 14절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마가복음 12장 14절 중)
질문만 보면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 뒤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15절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2장 15절 중, 새번역)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가복음 12장 17절 중)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경탄했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말꼬리를 잡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 시도는 끝이 나고,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두 번째 시도가 이어집니다.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에 형이 자식 없이 아내만 남겨두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서 자식을 낳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 묻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던진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깨우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마가복음 12장 27절 중)
그렇게 해서 사두개인들의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이 변론의 과정을 듣다가 끼어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마가복음 12장 28절 중)
다시 말해 이 서기관 역시 앞서 질문하던 사람들의 의도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정황을 조금 더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마태복음 22장 34~35절, 새번역)
마태복음에 나와 있듯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은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을 듣고 우연히 끼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리새인들이 작전을 짜고 보낸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흐름상 맞아 보입니다. 본문이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로 마친다는 점에서 세 번째 이야기 역시 예수님 자신을 공격해 오는 서기관의 시도를 말씀으로 적절하게 방어하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의 배경적인 상황은 이 정도로 정리를 하고, 이제 서기관의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배경적인 상황을 염두에 둘 때에 오늘 본문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기관은 율법학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공인 율법을 들고 예수님께 나와서는 한마디로 질문합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유대인들은 613개의 율법 조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365개가 금지 조항이었고, 248개가 하라는 조항이었습니다. 서기관은 지금 이토록 많은 율법들 중에서 최고가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많은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요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안 탈무드는 랍비 전통의 힐렐 학파가 다음과 같이 율법을 요약했다고 합니다. “너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율법의 요약을 요구하던 율법학자 서기관을 향해 예수님은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쉐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렇게 요약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장 29~31절 중)
물론 신명기 말씀에는 하나님 사랑만이 명령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하시며 율법을 요약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자가 말꼬리를 물으며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마가복음 12장 32절 중)
율법학자가 왜 이 말을 했을까요? 그는 지금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배경에는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께서 본문 말씀 뒤에 그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막 12:35 중)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서기관들의 말에는 결국 주님을 한 인간, 한 예언자로서 볼 뿐이지 하나님은 될 수 없다는 사고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나 본질적으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며 서기관들의 주장을 반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는 서기관의 주장은 예수님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습니다.
동시에 서기관은 예수님의 율법 요약을 재인용하며 대단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마가복음 12장 33절)
그러나 서기관의 평가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 것이 아니라 이미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다는 또 다른 지적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마치 놀란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새 것이 아니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서기관 사이에 명 질문과 명 대답이 오고 가는 장면은 동양으로 말하면 선문답이 오고 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질문이 오고 가는 와중에 성경은 예수님께서 서기관을 보시면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이 본문을 두고 많은 고민과 묵상을 했습니다. 본문이 어딘가 미완성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칭찬이었을까요? 서기관이 구원을 얻었다는 뜻일까요? 이후에 그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성경은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이야기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하나님 나라로의 실질적인 참여를 요구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칭찬은 들었는데 기분은 썩 좋지 않은 경험을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수험생을 곁에서 보는 부모님 마음은 굉장히 힘듭니다. 결국 참고 참다가 묻죠. “오늘 공부할 것 다 했니?” 이런 경우에 아이들 대부분은 “다 했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공부를 다 했다는 아이를 두고 부모님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됐네, 수고했다. 쉬어라.” 이 말 밖에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이 칭찬일까요? 사실은 다른 마음이 들어 있는 찜찜한 칭찬입니다.
주님께서 서기관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씀이 이와 같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율법을 잘 알고 있고 요약하는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시지만 “오늘 너에게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를 두고 있다”, “네가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한 상태이다”, “너는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구나”는 뜻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율법학자의 부족함을 지적하셨다는 사실은 38절 말씀 이후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마가복음 12장 38~40절 중)
서기관이 다녀간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은 말하지만 하나님을 얻지는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은 요약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를 잘 다니셨는데 요즘은 다니시지 않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교인은 이래야 하지 않겠냐”, “교회라면 이래야 하지 않겠냐”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면 틀림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비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고 하시진 않을까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에 물든 교회, 물질주의에 잠식된 교회, 기복 신앙에 좌우된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그러나 여전히 거리가 있는, almost 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섰다면 멋진 이야기로 끝이 났겠죠.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 이야기에서 그리고 평행되는 다른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순 없습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나누신 대화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서기관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0장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여기에 한 가지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그 비유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37절 중)
멀리 있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은 서로 다릅니다. 멀리 있지 않은 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삶 속에서 이루며 살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멀리 있지 않다’, ‘조금 알아가는 듯하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다. 우리에게는 아직, ‘almost’의 거리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다면 삶의 현장에 끌어들여야만 합니다. 조금의 깨달음이라도 나의 삶에 끌어들여 생명의 꽃을 피워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자, 아는 것은 많으나 살지 않았던 바리새인을 예수님께서 그토록 나무라셨던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는 말씀 속에서 안심하지 마십시다. 도리어 우리 인생 길에서 하나님을 확실하게 만나고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길로 나서는 존재가 되십시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Praise or Rebuke?
Mark 12: 28-34
“How much farther?”
“Almost there!”
“That means we still have far to go!”
This conversation makes me see people’s vastly different notions of “almost.”How do we feel about God’s “almost,” and how does God feel about ours?
Second Peter says, “With the Lord a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re like a day.” (2 Peter 3:8) How true! Today’s passage ends withJesus’ words that can be interpreted in two vastly separate ways.
It records a conversation—a series of questions and answers—between Jesus and a teacher of the law, which is also written in the books of Matthew and Luke. The conversation is most succinctly described in Matthew 22:34-40:
“One of them, an expert in the law, tested him with this question: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Matthew 22:35-40)
The books of Mark and Luke convey the story with more detail than the above. In Mark, in particular, there is apuzzling statement by Jesus: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Jesus says this, which on the surface seems like a praise, to the expert in the law who came and asked him questions. Verse 34 says, “When Jesus saw that he had answered wisely, he said to him.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Mark 12:34)
These words are puzzling. It is more so when we consider the fact that Jesususually rebuked the teachers of the law and was firm with them.
Was Jesus really “praising” this teacher of the law? To understand what happened in this scene more accurately we must carefully examine what happened before and after this conversation.
An important key is found in Mark 12:13, a verse preceding today’s text: “Later they sent some of the Pharisees and Herodians to Jesus to catch him in his words.” (Mark 12:13) This sentence provides the context for today’s passage.
We must interpret today’s passage in light of the situation Jesus was in: People were eager to find a fault in Jesus’ words and continued to send diverse groups, including Pharisees and Herodians, to catch him in his words.
First, in verse 13 and beyond, the Pharisees and Herodians came to Jesus and asked him about the problem of taxes:
“Teacher, we know that you are a man of integrity. You aren’t swayed by others, because you pay no attention to who they are; but you teach the way of God in accordance with the truth. Is it right to pay the imperial tax to Caesar or not?”(Mark 12:14)
On the surface, this question seems like a brilliant one asked out of respect and reverence of Jesus, but its true intention was far from it. The Bible says that “Jesus knew their hypocrisy” and replied, “Why are you trying to trap me?”(Mark 12: 15)Our Lordalso said, “Give back to Caesar what is Caesar’s and to God what is God’s.”(Mark 12: 17)This left the Pharisees and the Herodians stunned, and they could not find fault in his words.
After that, some Sadducees came and asked whose wife a woman would be at the resurrection, if she was first married to a man, but was later remarried to his brother after the man’s death. They asked this in connection with the law of Moses, which states that if a man’s brother dies and leaves a wife with no children, the man must marry the widow and raise up offspring of his brother. Jesus replied, “Are you not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Mark 12:24) He also said,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You are badly mistaken!”(Mark 12: 27)
Then comes today’s passage. After hearing these conversations, an expert of the law came and intervened:
“One of the teachers of the law came and heard them debating. Noticing that Jesus had given them a good answer, he asked him […]” (Mark 12: 28)
Therefore, we can assume that the intention of this teacher was no different from that of all the other people who hadcome to Jesus with questions in the preceding verses. The book of Matthew describes this context in more detail: “Hearing that Jesus had silenced the Sadducees, the Pharisees got together. One of them, an expert in the law, tested him with this question.” (Matthew 22:34-35)
So, although it appears in Mark that the expert in the law “happened to” intervene with no ill intention, what was really happening, according to Matthew, was that the Pharisees had gathered and were plotting against Jesus when this expert in the law was sent. This explains why Mark 12:34 records that “no one dared to ask him any more questions” after Jesus spoke with the teacher of the law.
Consequently, this interaction between Jesus and the teacher of the law was akin to an “oral test”handed out to Jesus by the Pharisees, the Sadduc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ho were set on attacking him. Jesus defended himself splendidly with wise words.
Now that we have grasped the context, let’s study the expert’s question more deeply. This man was a teacher of the law, which is why he used his expertise to test Jesus. He asked, “Of all the commandments, which is the most important?”
At the time, the Jews observed 613 articles of theLaw. Of them, 365 were prohibitions, while 248 were imperatives that commanded them to do a certain thing. Then how could one sum up these numerouslaws? This was what the expert was asking Jesus. It was a question concerning his field of expertise.
It is known that at the time the teachers of the law tried to summarize the Law in one word or one sentence. Accordingly, there were diverse summaries of the law. For example, the Babylonian Talmud records that the House of Hillel, a school of the Law with strong rabbinic traditions, summed up the Law with this “Golden Rule”: “That which is hateful to you, do not do to your fellow.”What the expert was asking Jesus was to givea summary such as this one.
Jesus responded with a summary by quoting Deuteronomy 6:
“The most important one,” answered Jesus,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Mark 12: 29-31)
Of course, Deuteronomy only contains God’s command to love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But Jesus summed up the Law by connecting love of one’s neighbor to this command, stressing that one’s love for God must be manifested in one’s love for his fellows.
Immediately, the teacher of the law made a comment: “‘Well said, teacher,’ the man replied. ‘You are right in saying that God is one and there is no other but him.’” (Mark 12:32) In pointing out that “God is one,” he is trying to say that Jesus is not God.
This intent is made clear to us by Jesus’ words in verse 35 and beyond. Jesus observed that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the Messiah is the son of David, implying that he is only a man and a prophet, and not God or the Son of God. But Jesus refuted this claim by stating that although the Messiah was David’s son in terms of his body, in essence he is David’s Lord. This was Jesus’ sharp counterattack against the expert’s claim that “God is one.”
The expert saw that Jesus’ summary of the Law was excellent. He said, “To love him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understanding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s more important than all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Mark 12: 33)He was responding to Jesus by confirming that Jesus’s words had already been said in 1 Samuel 15:22. Such a conversation is not unlike the Zen dialogue made up of skillful questions and insightful answers.
The Bible describes this expert, a man with sharp questions and a deep knowledge of the Law, as “wise”: “When Jesus saw that he had answered wisely, […].” (Mark 12:34) Our Lord said to him,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Mark 12:34) Then the Bible says that no one dared ask any further questions to Jesus.
As I was preparing for this sermon, I pondered this text deeply. The story somehow felt unfinished. Think about it.“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Is this statement a praise? Does it mean that the expertreached salvation?
The Bible does not say anything about what happened after—whether this man had followed Jesus or not. (I assume he continued to study the Law, even after meeting the Lord. He may even have sought out other great men, asking the same question he asked our Lord.)
Then what is God’s true message in today’s text? Fascinatingly, I believe a core message lies hidden in the uncanny feeling that the story is somehow not complete, and Jesus’ praise is somehow “not” a praise.
Let’s say you have a lazy son preparing for the CSAT. He is set to take the test, but he is not studying at all. You can’t show you’re angry, so you ask, “Son, have you done your studies for today?” He confidently answers, “Of course!”, which is what most slack students say. This leaves you speechless. All you can say is, “Well, good.” Jesus was responding similarly.
Jesus said to this man who was so knowledgeable in the law,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He didn’t say that salvation is here for you today. In other words, Jesus is saying that he is keeping a certain distance from God, that heis not in the kingdom of God yet, that although he knows, he is still lacking.
The fact that Jesus was pointing out his lack becomes clearer when we look at verse 38 and beyond. Jesus said, “Watch out for the teachers of the law. They like to walk around in flowing robes and be greeted with respect in the marketplaces,and have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and the places of honor at banquets.They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show make lengthy prayers. These men will be punished most severely.”(Mark 12: 38-40)As such, Jesus’ view of the teachers of the law was far from favorable.
They discussed the law, but didn’t know God. They could summarize the law in a word, but didn’t practice God’s love or love for their neighbors.
Oftentimes we meet criticizing people who say they used to go to church but don’t anymore because the church failed to do this, and failed to do that, and so on. They ask, ‘How can Christians act in a such way if they have faith?’
Criticism is good. Summarizing Christianity as a “religion of love” is great. But what does our Lord say to such people who do so?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This goes for our church, too. We argue that a church steeped in secularism, materialism, and a prosperity gospel is not a true church. What does our Lord say to us who debate such things?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Today’s passage ends in a way that leaves us wanting more. If the expert in the law had followed Jesus after hearing his words, the story would have ended magnificently. But no such ending is mentioned in Mark.
The book of Luke, however, beefs up the story by elaborating that Jesus told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to the teacher of the law. Furthermore,Luke concludes the story with these words, “Go and do likewise.” (Luke 10:37)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God’s kingdom being not far from you and God’s kingdom having come. Should we be satisfied with the former? Or should we pursue the latter, living to buildhis kingdom?
You are not far… You seem to know some… You might reach the kingdom of God…
Don’t be fooled by these words. You must practice the little you know. You must live outthe little you understand, so that it may flourish and bear fruit.
This is why Jesus rebuked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They knew much but didn’t live out their knowledge.
Dear Church, do not let these words give you a false sense of comfort: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Instead, have real encounters with God, be saved, love the Lord with all you heart, and live out your love for your neighbors.
Don’t remain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Remember that our Lord finally said to that man, “Goand do likewise.”
마가복음 12: 28 ~ 34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의 목회 지역은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케이프코드(Cape Cod) 지역까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교우들이 살면서 구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케이프코드에 내려가서 구역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도 함께하곤 했습니다. 가족들을 초청해 주셔서 저녁 식사도 종종 같이 하였는데 그때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저의 어린 아이가 함께 갔다가 무척 깜깜해진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집으로 올라올 때마다 굉장히 졸렸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올라오던 우리 아이가 “아직 멀었어?” 하고 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이에게 영어도 가르쳐 줄 겸 “We are almost there!”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매우 지쳤는지 “아빠, 아직도 멀었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금 “We are almost there”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우리 아이가 “엄마, 아직도 많이 남았대.” 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생각하는 ‘almost’와 우리 아이가 생각하는 ‘almost’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이 단어에서 느끼는 시간의 간격이 사람들마다 서로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almost가 우리 인간에는 어떤 느낌일까 생각도 해 보았고, 우리 인간에게서 almost가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 중)는 말씀에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말을 하는 아주 독특한 본문입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질문하고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도 소개되고 있는 평행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이 이 이야기를 가장 짧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5~40절)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걸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죠. 반면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에는 ‘어? 왜 이런 말씀이 들어 있지?’ 조금은 의아스러운 듯한 표현이 있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4절에는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라는 말씀이 나오며, 주님이 서기관의 말을 어떻게 판단하셨는지 보여 줍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말씀하시며 서기관을 칭찬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참으로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서기관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시며 많은 책망을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서기관을 향한 예수님의 칭찬이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의 전후 사정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해석의 열쇠가 마가복음 12장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마가복음 12장 13절)
이것이 본문의 전체적인 상황입니다. 즉 마가복음 12장은 예수가 하는 말을 가지고 책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예수님께 나오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는 계속해서 트집을 잡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본문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적인 상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마가복음 12장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13절 이후에 나오는데요.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세금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2장 14절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마가복음 12장 14절 중)
질문만 보면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 뒤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15절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2장 15절 중, 새번역)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가복음 12장 17절 중)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경탄했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말꼬리를 잡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 시도는 끝이 나고,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두 번째 시도가 이어집니다.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에 형이 자식 없이 아내만 남겨두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서 자식을 낳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 묻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던진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깨우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마가복음 12장 27절 중)
그렇게 해서 사두개인들의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이 변론의 과정을 듣다가 끼어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마가복음 12장 28절 중)
다시 말해 이 서기관 역시 앞서 질문하던 사람들의 의도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정황을 조금 더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마태복음 22장 34~35절, 새번역)
마태복음에 나와 있듯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은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을 듣고 우연히 끼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리새인들이 작전을 짜고 보낸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흐름상 맞아 보입니다. 본문이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로 마친다는 점에서 세 번째 이야기 역시 예수님 자신을 공격해 오는 서기관의 시도를 말씀으로 적절하게 방어하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의 배경적인 상황은 이 정도로 정리를 하고, 이제 서기관의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배경적인 상황을 염두에 둘 때에 오늘 본문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기관은 율법학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공인 율법을 들고 예수님께 나와서는 한마디로 질문합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유대인들은 613개의 율법 조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365개가 금지 조항이었고, 248개가 하라는 조항이었습니다. 서기관은 지금 이토록 많은 율법들 중에서 최고가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많은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요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안 탈무드는 랍비 전통의 힐렐 학파가 다음과 같이 율법을 요약했다고 합니다. “너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율법의 요약을 요구하던 율법학자 서기관을 향해 예수님은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쉐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렇게 요약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장 29~31절 중)
물론 신명기 말씀에는 하나님 사랑만이 명령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하시며 율법을 요약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자가 말꼬리를 물으며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마가복음 12장 32절 중)
율법학자가 왜 이 말을 했을까요? 그는 지금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배경에는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께서 본문 말씀 뒤에 그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막 12:35 중)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서기관들의 말에는 결국 주님을 한 인간, 한 예언자로서 볼 뿐이지 하나님은 될 수 없다는 사고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나 본질적으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며 서기관들의 주장을 반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는 서기관의 주장은 예수님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습니다.
동시에 서기관은 예수님의 율법 요약을 재인용하며 대단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마가복음 12장 33절)
그러나 서기관의 평가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 것이 아니라 이미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다는 또 다른 지적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마치 놀란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새 것이 아니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서기관 사이에 명 질문과 명 대답이 오고 가는 장면은 동양으로 말하면 선문답이 오고 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질문이 오고 가는 와중에 성경은 예수님께서 서기관을 보시면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이 본문을 두고 많은 고민과 묵상을 했습니다. 본문이 어딘가 미완성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칭찬이었을까요? 서기관이 구원을 얻었다는 뜻일까요? 이후에 그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성경은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이야기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하나님 나라로의 실질적인 참여를 요구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칭찬은 들었는데 기분은 썩 좋지 않은 경험을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수험생을 곁에서 보는 부모님 마음은 굉장히 힘듭니다. 결국 참고 참다가 묻죠. “오늘 공부할 것 다 했니?” 이런 경우에 아이들 대부분은 “다 했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공부를 다 했다는 아이를 두고 부모님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됐네, 수고했다. 쉬어라.” 이 말 밖에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이 칭찬일까요? 사실은 다른 마음이 들어 있는 찜찜한 칭찬입니다.
주님께서 서기관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씀이 이와 같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율법을 잘 알고 있고 요약하는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시지만 “오늘 너에게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를 두고 있다”, “네가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한 상태이다”, “너는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구나”는 뜻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율법학자의 부족함을 지적하셨다는 사실은 38절 말씀 이후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마가복음 12장 38~40절 중)
서기관이 다녀간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은 말하지만 하나님을 얻지는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은 요약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를 잘 다니셨는데 요즘은 다니시지 않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교인은 이래야 하지 않겠냐”, “교회라면 이래야 하지 않겠냐”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면 틀림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비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고 하시진 않을까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에 물든 교회, 물질주의에 잠식된 교회, 기복 신앙에 좌우된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그러나 여전히 거리가 있는, almost 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섰다면 멋진 이야기로 끝이 났겠죠.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 이야기에서 그리고 평행되는 다른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순 없습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나누신 대화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서기관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0장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여기에 한 가지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그 비유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37절 중)
멀리 있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은 서로 다릅니다. 멀리 있지 않은 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삶 속에서 이루며 살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멀리 있지 않다’, ‘조금 알아가는 듯하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다. 우리에게는 아직, ‘almost’의 거리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다면 삶의 현장에 끌어들여야만 합니다. 조금의 깨달음이라도 나의 삶에 끌어들여 생명의 꽃을 피워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자, 아는 것은 많으나 살지 않았던 바리새인을 예수님께서 그토록 나무라셨던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는 말씀 속에서 안심하지 마십시다. 도리어 우리 인생 길에서 하나님을 확실하게 만나고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길로 나서는 존재가 되십시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21년 8월 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은 칭찬인가” (막 12:28~3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28장, 21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막 12:28~3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 나라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은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와 질문을 던졌던 서기관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예수님 말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서기관을 칭찬하신 걸까요? 아니면 책망일까요? 서기관이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일까요? 만약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 말씀 속 예수님을 찾아왔던 여러 율법학자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질문만으로 보면 그럴듯하고 예수님을 존경하는 듯 보이는 미사여구를 사용하였지만 그들의 의도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의 질문도 우연히 끼어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질문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쉐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죠. 그때 서기관이 예수님께 크게 동조하면서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참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없음을 의도한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그럼에도 이 서기관이 지혜 있게 대답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리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서기관을 향해 칭찬인지, 책망인지 미완성 같은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 이후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든지, 명확한 언급 없이 서기관 이야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미완성 같은 말씀은 당시 서기관에게, 또 말씀 앞에 선 오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셨지 구원이 네게 임하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후 38절 이하의 말씀에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외식으로 치장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잘 알고 분석하며 아주 멋지게 요약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이 없다는 예수님의 책망이었습니다.
종종 세속주의, 물질주의, 기복신앙에 잠식된 교회를 비판하며 진정한 믿음, 교회는 이래야 되지 않겠느냐며 실망스러워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분들을 만납니다. 훌륭한 비판이고, 교회와 참 믿음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주님은 뭐라 말씀하실까요?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면, 나의 삶의 현장에 끌어들여서 생명으로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은데 그렇게 살지 않는 율법학자들을 향해 주님은 그렇게도 나무라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으면서 너희들이 하나님 나라에 임하려면 이렇게 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누기
1.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인으로 오늘을 사는 내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2.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립니까? 복음을 아는 만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까?
마무리 기도
아버지 하나님, 아는 것에 멈추지 않게 하시고 말씀으로 정죄하는 일에 앞장서지 않게 하시며, 말씀을 살아내며 생명으로 꽃 피우는 신앙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음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한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