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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12~18

김경진 목사

2024.09.29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큰 주제를 어떻게 한 편의 설교에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조그마한 부분을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오늘 설교와 똑같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가 쓴 『하나님의 뜻』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2000)입니다. 2000년에 처음 출간되어 한국어로는 2005년에 발간되었습니다. 꽤 오래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지금까지 사랑받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자인 싯처는 의사가 되려고 하다가 목사가 된 분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린다와 두 딸 및 두 아들과 함께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모든 가족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불행도 이 가정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의 행복은 1991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막을 내립니다. 한 음주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서 싯처 목사님의 가족이 탄 미니밴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아내 린다와 딸 다이애나 제인, 그리고 마침 함께 타고 있던 그의 어머니 그레이스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만 생존합니다. 당시 2살이었던 존과 7살 데이빗, 그리고 8살 캐서린과 싯처 목사님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하고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린다와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고,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고,

우리가 함께 누리던 행복하고 안정되고 순조로운 삶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생각하던 하나님의 뜻은 1991년 어느 날 갑자기 막을 내렸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이제 나에겐 일생일대의 큰 상처를 안은 채 세 자녀의 편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과거에 행복하게 살 때에는 행복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채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린다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딸 그레이스 제인은 죽고 캐서린은 살아남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마침 그날 차를 몰고 온 가족이 나서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우리 가족이 엄청난 사고를 당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늘 이렇게 하나씩 물어 가면서 궁금함을 풀어 가려고 합니다. 그는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불행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터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니, 그때에서야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탐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책은 이러한 탐구의 과정이자 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을 함께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숨바꼭질이나 미래에 이룰 어떤 목적으로 보는 잘못된 통념들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통념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접근합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하나님의 뜻’의 전통적인 관점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전통적인 접근의 방식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그 길과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제 나름대로 이것에 해석을 붙이면 이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길거리에는 놀이로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 놀이에서 그들은 고무줄 두 개 중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것을 보여 주고는 꼭지를 바깥으로 내밀고 손으로 말아 쥐었습니다. 그 다음에 긴 것을 찾아내면 상품을 주고, 짧은 것을 찾아내면 꽝이었습니다. 호기심에서 그것을 하다가 모든 걸 잃었던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긴 줄 하나와 짧은 줄 하나를 손에 거머쥐고 “한번 뽑아 봐라.” 하시는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마치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것은 꽝이다.” 또는 “이것은 정답이다.” 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꽤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력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력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과연 하나는 정답이고 다른 하나는 오답일까요?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는 “잘못 선택했어.”라고 하면서 우리를 놀리실까요? 그런 놀리는 하나님이시라면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맞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어떤 이유로든지 자신의 뜻을 숨기고 우리로 찾게 만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숨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겠습니까? 알 수 없는 미래를 숨기고 “너의 능력껏 한번 찾아봐라.”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참으로 짓궂고 사실은 사랑의 하나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던 일에 문제가 생기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또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 이런 자책을 할 때가 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선택해서 어려움을 당하는가? 다시 돌아가야 하나?’ 불행을 내가 잘못 선택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사업,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업, 저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뽑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책하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이 막히거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어서 나를 막으시는 것일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아니죠. 실제로 자신의 실력이 안 되어서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나의 잘못으로 야기된 문제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미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셨다’라고 핑계를 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정답 하나를 숨겨 두고 수많은 오답들을 늘어놓으신 후에 우리로 정답을 찾게 하는 유치한 분이실까요?

언젠가 어느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오랫동안 고민하시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사실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으로 오랫동안 봉직하신 분이셨는데, 저에게 그렇게 물었던 이유는 많은 고민을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서원하였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나 의료 분쟁이 생길 때마다 ‘내가 목사가 되어야 했는데 잘못된 길로 와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빨리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제가 그분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신학을 공부하시면 얼마 정도 목회를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한 4~5년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었습니다. “4~5년 동안 잠시 있다가 사라질 그 뜻을 이제 찾으시는 겁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그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어떤 하나의 성취되는 지점을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지를 생각하죠. ‘내가 어떤 직위를 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지점을 찍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어떤 목사가 되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합니다. 그저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만 물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를 맡건 간에 얼마나 그곳에 머무르겠습니까? 얼마나 그곳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 자리에 오르는 것까지가 하나님의 뜻일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잠시의 그 시간이 여러분이 가진 인생의 최고의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그 자리에 있는 순간뿐일 것입니다. 목적지 자리 위치가 하나님의 뜻이 되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먼 미래의 어떤 지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머지는 과정에 불구하고 그저 무시해도 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과정은 무의미한 시간일까요? 그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유예 기간이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감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의사로 봉직했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은 그저 목사가 되기 위한 유예 기간이었습니까? 실패의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떤 목적이나 미래에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된다’, ‘어떻게 무엇을 한다’라는 거대한 사업이나 어떤 직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특정한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 이 자리, 그리고 매일의 순간에서 찾아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싯처 목사님도 그 부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거창하게 하고 싶어 하는 큰 일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는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순종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섬기고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의 친구가 되고, 부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며, 무엇보다 당신을 먼저 구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평범한 삶의 상황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 139)

 

싯처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여 있는 선물 상자’를 예로 듭니다. 많은 선물 상자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물 상자들을 놓고 “그중에 네 것이 하나 있으니 정답을 맞춰 봐라” 하며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선물 상자들이 다 가능성이 있고 다 모두 나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많은 선물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에게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선택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것을 붙잡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롯과 아브라함이 가축들이 너무 많아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자신들의 경계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고 우하면 좌할 것이다”(창 13: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 약속의 땅이 어디입니까?”라고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롯에게 “네 마음대로 해라” 하며 자유를 줍니다. 그리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있는 곳을 선택하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헤브론 땅, 상수리나무 수풀이 있는 땅이 남겨집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4절부터 하나님께서는 롯이 떠나간 다음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 너와 너의 자손들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 13:15).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이 먼저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하는 땅이 원래 헤브론 땅이었던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나머지 땅을 가졌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자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이 약속의 땅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갔지만, 기근이 들자 그는 스스로 결정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갈 때도 함께 계셨고, 가나안으로 다시 올라올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벧엘에 있을 때에도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자리,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창세기 28장에서도 야곱이 고향을 떠나 벧엘에서 잠들었다가 하나님을 뵙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지 않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창 28:15).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선한 능력과 더불어 걸어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아주 분명한 말씀이 들어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b)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본문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지는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넓게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조금 좁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이루는 내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고 오래 참으며,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세워 주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 5:14~15)

 

“부자가 되는 것,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고통을 당하는 것,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 세워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뒤에 우리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오죠. 좁게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 구절입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a)

 

이 세 절 모두 한가지의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어떤 정점이나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성취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항상, 끊임없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서든지 모든 일 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존재하고, 우리의 성공과 화려함 등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목적지 한 지점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끊임없이 쉬지 않고 범사에 그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기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시죠. 자녀가 무엇이 되면 좋겠다는 뜻을 보통 가집니다. 판사가 되면 좋겠다. 혹은 의사, 예술인, 목사, 교수 등 무엇이 되면 좋겠다.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의 저변에 숨겨 있는 뜻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아닐까요? 아이가 인생을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그러기 위해 어떻게 살면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보니 판사쯤 되면 좋겠고, 의사나 예술가 등 어떤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마음 저변에 있는 말을 접고, “판사가 되면 좋겠어.”, “이런 직업을 가지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희가 좀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국면에서도 기쁨을 발견하고, 높은 자리에서나 낮은 자리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좌절하며 불행하게 살지 말고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예배당에서 새벽부터 철야를 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 말씀도 포함되겠지만 기도하는 자세로 평생을 살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기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살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께 아뢰어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범사’라는 말은 모든 일이라는 뜻이죠.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늘 기억하면서 어려운 일이든 좋은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에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이 말씀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서 궁금하셨습니까?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기뻐하며 사십시오. 기도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며 사십시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Will of God

 

1 Thessalonians 5:12-18

 

This is the story of a faithful daughter of God, a fourth-generation Christian, who attended church since she was a baby and never went astray. Her mother, a senior deaconess, attended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every day, desired the Word, and evangelized passionately. After getting married, the daughter had a beautiful baby girl, a fifth-generation Christian. Everyone thought this family would know no misfortune. But one day the clock of happiness stopped.

The young mother in her thirtiesbecame seriously ill. Despite her disease, she prayed earnestly to God and receivedtreatment with afaith that God would heal her. Everyone prayed earnestly for her, awaitingGod’s grace and thinking, ‘Who would God help if not such a family?’ However, not long after she died, leaving behind her faithful mother, her beloved baby, and her husband.

 

Why did such a thing happen? What did God do? ‘God, You’ve made a mistake. This cannot be.’Although such endless protests came out, tragic events had already happened.

 

Faithful Christians consoled the family:“Although we cannot know it all, there will be a greater will of God.” Such comfort is given for a lack of words, but it can be hurtful to the bereaved.

 

“Do you mean to say it was God’s will that a lovely, young mother in her thirties should die?Is it God’s will that her baby should live without a mother? Is it God’s will that the young widower should raise that baby alone?”

 

How can we say such things? All we can do is weep and cry with the bereaved.

 

A similar storyappears in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Written by Gerald L. Sittser in 2000, it is a truly precious book. It was translated and first published in Korea in 2005.

 

Sittser, who had originally wanted to be a doctor, became a pastor. He enjoyed a blessed life with his wife Lynda,two daughters, andtwo sons. He and his family believed that such happiness was God’s will. They thought no misfortune would threaten them.

 

But on in the autumn of 1991, the bliss of Pastor Sittser’s family was destroyed. A drunk driver who drove over the centerline crashed into their minivan. This horrible accident killed his wife, his daughter Dianna-Jane, and his mother Grace on the spot, leaving behind the four other family members. Only Pastor Sittser, his 2-year-old son John, his 7-year-old son David, and 8-year-old daughter Catherine survived.

 

Sittser writes in his book that the tragedy made him deeply reflect on the will of God. He had thought marrying Lynda was God’s will, that this happy family of six was His will, and that their happy, stable, and peaceful life together was His will.

 

But one autumn day of 1991 this notion of God’s will suddenly evaporated. Howcan such a horrible thing happen? How can God let such a tragedy happen? Was it now God’s will that he live a permanently scarred life as a single father raising three kids on his own? What was God’s will? Through the accident, he came to reconsider all that he had previously thought was“God’s will.”

 

Where had it gone wrong? Was it not God’s will that he marry Lynda? Was it God’s will that Grace-Jane should die but that Catherine should live? Was it  against God’s will that they left their house that day? Was it God’s will that his family should meet a tragic accident?

 

Since Sittser had believed that his former happiness was God’s will, he could not but question,‘God, is this Your will?’, when tragedy struck.

 

Through such questions, he realized that his former notions of “God’s will” were connected to certain conditions and that they were misguided.

 

Let’s look at what he discovered.

 

First, he realized how wrong the traditional approach to God’s will is. The conventional belief is that the all-knowing God haspredetermined our path, and therefore our duty is to find it, the correct answer.

 

Let me add my own interpretation to this. The traditional approach may be compared to a game that we used to play. Hiding the short and long ends, we hold out two sticks,askingthe player to choose the long one.

 

Sometimes we feel this is what God is doing to us, that He is handing out two sticks, hiding the short and long ends. Is God such a God?

 

Let’s say there are two men. One is rich and the other smart. Is it God’s will to marry the rich one or the smart one? Is one the right answer and the other the wrong answer?

 

Is God a God who goads and mocks us when we pick the “wrong” choice?

 

If we believe in such a God, God would be a God who hides His will forsome reason or another and makes us find it. He becomes an evasive God who plays“hide-and-seek”with us. Is our God truly such a God?

 

If God is a God who hides an unfathomable future and makes us find the “answer,” that would make Him a mean God, not a God of love.

 

Yet we often consider God’s will from this perspective.

 

When troubles arise, when things don’t go as planned, when misfortune strikes, we often blame ourselves:‘Did this happen because I pursued my will, instead of God’s?’

 

Sometimes we believe that our wrong choices caused our misfortunes and blame ourselves. ‘I should have chosen well, but I chose wrong! I should have pursued that business, not this one. I should have picked that person, not this one…’

 

Or we think, ‘Is God stopping me like thisbecause His will lies elsewhere?’

 

Sometimes we beautify our faults, saying thatthe problem caused by them was God’s will—when in fact we failed a test because of our incompetence. God is not a God who hides the right answer and scattersnumerous false ones,making us find it.

 

Once a man asked me, “Pastor, do you think it is God’s will that I become a pastor?”

 

As a doctor, he had been healing many people. The reason he asked, however, is becausehis mother had once made a vow to God about him. Because of this, he always felt somewhat anxious as a doctor. When troubles came, or when a medical dispute arose, he thought he had perhaps made the wrong choice in becoming a doctorwhen he should have become a pastorinstead.

 

He asked me how long he would be able to serve if he went to seminary. According to my calculation, he wouldserve as a pastor for about five years. So I said to him, “Would you seek and pursue ‘God’s will’ that would last only a fleeting period of 5 years?”

 

God’s will is not an achievement. It is not a destination.

 

Is it God’s will to become the president? It is God’s will to becomea national assemblyman? Is it God’s will to become the CEO or an executive of a company?

 

How long will we remain in that position if we get there? How long will we do a certain work if we get that opportunity? What will we be able to do when we rise to that position? What do you plan to do? Is it God’s will to reach a certain position such as the presidency or a national assemblyman?

 

Would that short term be God’s will for your life? Would the rest of your life only be a process? Canthe rest of your time be ignored? Would it be meaningless? Would it be just a preparation period until you reach yourdestination?

 

Oftentimes we consider God’s will to be a certain goal or a certain future. But God’s will is not something grand or extraordinary. It lies not in a certain achievement.

 

Therefore, we must find God’s will in our today, in this place, and in every moment of our daily lives. This is what Pastor Sittser discovered.

 

He confesses that the true will of God is made up the little things we must do every day—not the grand goals we wish to achieve. God wants us to obey Him every day. He wants us to serve the poor, love our children, be friends with our neighbors, live honestly in this dishonest world, and above all seek Him first. Obeying Him in our ordinary daily circumstances is God’s will for our lives.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Now let’s look at today’s passage.This text clearly has these words:“this is God’s will”: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1 Thessalonians 5:18b)

 

The scope of “God’s will” in the above verse may vary, depending on which of the preceding verses we take to be included in it. But one thing is clear. God’s will here does not refer to becoming an elder, or becoming a deacon, or achieving a special goal.

 

God’s will is described as living in peace with each other, being patient, encouraging the timid, helping the weak, not repaying evil for evil, and always doing good:

 

“And we urge you, brothers, warn those who are idle, encourage the timid, help the weak, be patient with everyone.Make sure that nobody pays back wrong for wrong, but always try to be kind to each other and to everyone else.”(1 Thessalonians 5:14-15)

 

Furthermore, thethree versesfollowing the above are most familiarto us. We will study this section in more detail:

 

“Be joyful always;pray continually;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1 Thessalonians 5:16-18a)

 

Here a series of words,which in effect are synonymous,isrepeated: “always,”“continually,” and“in all circumstances.”This is stressing that we must live with such a constant perspective—that is, always, in all things, and continually.

 

This text tells us that this is God’s will. That is, God’s will does not lie in a climax, a destination, or a point in time, but in a continual, ceaseless state and in all circumstances.

 

Then what must we docontinually each day in order to do God’s will?

 

“Be joyful always.”(1 Thessalonians 5:16)

 

It is God’s will that we always be joyful. God does not want us to become something, but to be joyful. What is a parent’s deepest desire for their child? To become a doctor, a judge, a pastor, or a businessman? True, some parents may have such wishes. They raise their children thinking about the best career path for them.

 

But think again. Wouldn’t a parent’s deepest wish be that their child should live a happy and joyful life? Don’t they encourage a certain career because they think it will make them happy? But we often lose sight of what is truly important.

 

Recently, the prayer request of a senior deaconess moved us. She made this prayer request at the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It was for her autistic grandson. For the past two and a half years, their family had struggled, visiting many hospitals and payingexpensivemedicalbills. Their life was like that of the woman with an issue of blood. The senior deaconess’ prayer for her grandson was clear:“May God protect him, bless him with good teachers, good education, and good friends, so that he may grow in happiness.”She did not pray for her grandson to become a doctor or a judge. Her prayerasked God to help her grandson live in joy.

 

This I believeis the hope of every parent for their child. May our children be happy and joyful. Isn’t this the hidden hope of all true parents?

 

God too desires this of us. He wants us tolive in joy—continually, in all life’s circumstances. God’s will for us is that we discover joy in all things and live joyfully.

 

God’s second will for us is this:

 

“Pray continually.”(1 Thessalonians 5:17)

 

God’s will is that we pray continually. What does it meant to pray? It is to be connected to God. It is to discuss things with God, to tell God about everything, to seek His help, and to call on Him.

 

However, the Bible tells us that we must pray without ceasing.

 

That is, we must live in a constant relationship with God. Such things as enacting a law by becoming the president or a national assemblymanare not God’s will. God’s will is to converse with Him in our daily lives, praying continually.

 

As we pray and live joyfully continually, we may become the president or a national assemblyman. Or we may become a doctor or a judge. We might fail in a test or come across adversities as we pray. We may even becomeseriously ill.

 

But whatever circumstance we may face, our Lord wants us to live prayerful lives. This is God’s will.

 

The next will of God is to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1 Thessalonians 5:18)

 

“In all circumstances” means “in all things.” Whatever we may face, we must have a grateful heart. Always remembering our good God, we must always have trust and faith in God and give thanks—whether we face troubles or happiness. This is God’s will.

 

Dear Church, are you wondering what God’s will is for you? His will lies not far away, but is near. It lies not in the distant future, but here in the present. God’s will is in everything, always, and continually.

 

God’s will is that we live joyfully, that we walk with Him in prayer, and to give thanks.

 

May this will of God be done in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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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12~18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큰 주제를 어떻게 한 편의 설교에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조그마한 부분을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오늘 설교와 똑같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가 쓴 『하나님의 뜻』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2000)입니다. 2000년에 처음 출간되어 한국어로는 2005년에 발간되었습니다. 꽤 오래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지금까지 사랑받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자인 싯처는 의사가 되려고 하다가 목사가 된 분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린다와 두 딸 및 두 아들과 함께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모든 가족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불행도 이 가정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의 행복은 1991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막을 내립니다. 한 음주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서 싯처 목사님의 가족이 탄 미니밴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아내 린다와 딸 다이애나 제인, 그리고 마침 함께 타고 있던 그의 어머니 그레이스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만 생존합니다. 당시 2살이었던 존과 7살 데이빗, 그리고 8살 캐서린과 싯처 목사님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하고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린다와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고,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고,

우리가 함께 누리던 행복하고 안정되고 순조로운 삶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생각하던 하나님의 뜻은 1991년 어느 날 갑자기 막을 내렸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이제 나에겐 일생일대의 큰 상처를 안은 채 세 자녀의 편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과거에 행복하게 살 때에는 행복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채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린다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딸 그레이스 제인은 죽고 캐서린은 살아남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마침 그날 차를 몰고 온 가족이 나서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우리 가족이 엄청난 사고를 당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늘 이렇게 하나씩 물어 가면서 궁금함을 풀어 가려고 합니다. 그는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불행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터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니, 그때에서야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탐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책은 이러한 탐구의 과정이자 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을 함께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숨바꼭질이나 미래에 이룰 어떤 목적으로 보는 잘못된 통념들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통념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접근합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하나님의 뜻’의 전통적인 관점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전통적인 접근의 방식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그 길과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제 나름대로 이것에 해석을 붙이면 이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길거리에는 놀이로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 놀이에서 그들은 고무줄 두 개 중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것을 보여 주고는 꼭지를 바깥으로 내밀고 손으로 말아 쥐었습니다. 그 다음에 긴 것을 찾아내면 상품을 주고, 짧은 것을 찾아내면 꽝이었습니다. 호기심에서 그것을 하다가 모든 걸 잃었던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긴 줄 하나와 짧은 줄 하나를 손에 거머쥐고 “한번 뽑아 봐라.” 하시는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마치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것은 꽝이다.” 또는 “이것은 정답이다.” 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꽤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력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력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과연 하나는 정답이고 다른 하나는 오답일까요?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는 “잘못 선택했어.”라고 하면서 우리를 놀리실까요? 그런 놀리는 하나님이시라면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맞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어떤 이유로든지 자신의 뜻을 숨기고 우리로 찾게 만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숨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겠습니까? 알 수 없는 미래를 숨기고 “너의 능력껏 한번 찾아봐라.”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참으로 짓궂고 사실은 사랑의 하나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던 일에 문제가 생기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또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 이런 자책을 할 때가 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선택해서 어려움을 당하는가? 다시 돌아가야 하나?’ 불행을 내가 잘못 선택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사업,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업, 저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뽑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책하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이 막히거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어서 나를 막으시는 것일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아니죠. 실제로 자신의 실력이 안 되어서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나의 잘못으로 야기된 문제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미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셨다’라고 핑계를 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정답 하나를 숨겨 두고 수많은 오답들을 늘어놓으신 후에 우리로 정답을 찾게 하는 유치한 분이실까요?

언젠가 어느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오랫동안 고민하시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사실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으로 오랫동안 봉직하신 분이셨는데, 저에게 그렇게 물었던 이유는 많은 고민을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서원하였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나 의료 분쟁이 생길 때마다 ‘내가 목사가 되어야 했는데 잘못된 길로 와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빨리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제가 그분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신학을 공부하시면 얼마 정도 목회를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한 4~5년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었습니다. “4~5년 동안 잠시 있다가 사라질 그 뜻을 이제 찾으시는 겁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그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어떤 하나의 성취되는 지점을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지를 생각하죠. ‘내가 어떤 직위를 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지점을 찍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어떤 목사가 되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합니다. 그저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만 물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를 맡건 간에 얼마나 그곳에 머무르겠습니까? 얼마나 그곳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 자리에 오르는 것까지가 하나님의 뜻일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잠시의 그 시간이 여러분이 가진 인생의 최고의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그 자리에 있는 순간뿐일 것입니다. 목적지 자리 위치가 하나님의 뜻이 되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먼 미래의 어떤 지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머지는 과정에 불구하고 그저 무시해도 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과정은 무의미한 시간일까요? 그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유예 기간이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에게 제가 감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의사로 봉직했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은 그저 목사가 되기 위한 유예 기간이었습니까? 실패의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떤 목적이나 미래에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된다’, ‘어떻게 무엇을 한다’라는 거대한 사업이나 어떤 직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특정한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 이 자리, 그리고 매일의 순간에서 찾아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싯처 목사님도 그 부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거창하게 하고 싶어 하는 큰 일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는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순종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섬기고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의 친구가 되고, 부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며, 무엇보다 당신을 먼저 구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평범한 삶의 상황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 139)

 

싯처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여 있는 선물 상자’를 예로 듭니다. 많은 선물 상자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물 상자들을 놓고 “그중에 네 것이 하나 있으니 정답을 맞춰 봐라” 하며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선물 상자들이 다 가능성이 있고 다 모두 나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많은 선물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에게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선택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것을 붙잡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롯과 아브라함이 가축들이 너무 많아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자신들의 경계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고 우하면 좌할 것이다”(창 13: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 약속의 땅이 어디입니까?”라고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롯에게 “네 마음대로 해라” 하며 자유를 줍니다. 그리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있는 곳을 선택하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헤브론 땅, 상수리나무 수풀이 있는 땅이 남겨집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4절부터 하나님께서는 롯이 떠나간 다음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 너와 너의 자손들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 13:15).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이 먼저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하는 땅이 원래 헤브론 땅이었던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나머지 땅을 가졌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자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이 약속의 땅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갔지만, 기근이 들자 그는 스스로 결정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갈 때도 함께 계셨고, 가나안으로 다시 올라올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벧엘에 있을 때에도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자리,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창세기 28장에서도 야곱이 고향을 떠나 벧엘에서 잠들었다가 하나님을 뵙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지 않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창 28:15).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선한 능력과 더불어 걸어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아주 분명한 말씀이 들어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b)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본문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지는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넓게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조금 좁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이루는 내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고 오래 참으며,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세워 주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 5:14~15)

 

“부자가 되는 것,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고통을 당하는 것,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 세워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뒤에 우리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오죠. 좁게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 구절입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a)

 

이 세 절 모두 한가지의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어떤 정점이나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성취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항상, 끊임없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서든지 모든 일 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존재하고, 우리의 성공과 화려함 등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목적지 한 지점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끊임없이 쉬지 않고 범사에 그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기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시죠. 자녀가 무엇이 되면 좋겠다는 뜻을 보통 가집니다. 판사가 되면 좋겠다. 혹은 의사, 예술인, 목사, 교수 등 무엇이 되면 좋겠다.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의 저변에 숨겨 있는 뜻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아닐까요? 아이가 인생을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그러기 위해 어떻게 살면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보니 판사쯤 되면 좋겠고, 의사나 예술가 등 어떤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마음 저변에 있는 말을 접고, “판사가 되면 좋겠어.”, “이런 직업을 가지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희가 좀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국면에서도 기쁨을 발견하고, 높은 자리에서나 낮은 자리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좌절하며 불행하게 살지 말고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예배당에서 새벽부터 철야를 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 말씀도 포함되겠지만 기도하는 자세로 평생을 살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기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살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께 아뢰어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범사’라는 말은 모든 일이라는 뜻이죠.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늘 기억하면서 어려운 일이든 좋은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에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이 말씀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서 궁금하셨습니까?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기뻐하며 사십시오. 기도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며 사십시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9월 2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의 뜻” (살전 5장 12-18)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63장, 30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살전 5장 12-18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9월 2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행복의 시간이 멈추고 고통과 불행이 시작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게 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슬픔과 안타까운 비극을 경험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보통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시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정해 놓으셨고 우리의 책임은 그 길과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미래를 숨겨두시고 정답을 찾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사랑의 하나님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혹은 갑자기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이런 자책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내가 내 뜻대로 해서 이렇게 되었나?”“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어서 이렇게 나를 막으시는 건가?”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성취나 목적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목적이나 미래에 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오늘 이 자리 그리고 매일의 순간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사람들과 화목하며 서로 오래 참으며 약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을 격려하며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항상 선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살전 5:14-15).

 

하나님의 뜻은 ‘항상’, ‘언제나’, ‘범사’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항상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6).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살전 5:17).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 5:18). 범사라는 말은 ‘모든 일에’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일을 만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언제나, 끊임없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고통과 불행을 당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하며 기도해본 적이 있나요? 함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하나님의 뜻을 주로 성공과 성취에서 찾지는 않았나요?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가장하며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나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주님,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늘 주님과 교제를 나누며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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