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 – 침묵

여호수아 6: 8 ~ 21

김경진 목사

2022.05.29

btn_switch

여호수아 6: 8 ~ 21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리고성 공격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침묵을 명하십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쓰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 쓰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죠. 이처럼 삶의 모습은 한 사람의 단면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까지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삶의 양식 때문에 어떤 사람은 존경받지만 또 어떤 사람은 비난받기도 합니다. 개인에게만 삶의 양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집단적인 삶의 양식이 있죠. 집단이 공통적으로 지키는 고유한 삶의 양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군대와 같은 조직 집단이 그렇습니다. 군대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나름의 규율과 법을 가집니다. 목숨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명하복이 매우 중요한 가치 체계가 됩니다. 작전 명령이 떨어지면 그 명령에 따라서 병사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만 군대는 성공적인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소망교회는 어떠한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고, 목적이나 내용에 따라서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분과 종종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 서론으로서 오늘 설교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앞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요단강을 건너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에 머물고 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명령을 따라 요단을 건너가게 됩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들고 앞장섰고 그들의 발이 요단강에 머물자 물의 흐름이 끊어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경험하며 요단강을 건넌 그들은 길가에 잠시 머물며 전열을 재정비했고, 그곳에서 할례받지 못한 남자들은 할례를 받게 됩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백성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첫 번째 과제를 주셨는데, 바로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든든한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가오자 문을 단단히 잠가 두고 방어 태세를 갖춥니다.
이제 여리고성을 어떻게 공격해서 함락시킬지 중요한 작전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앞서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여리고성으로 보낼 만큼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지만, 정작 여리고성을 공격하는 작전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단순하게 주어집니다.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수 6:2~5)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그러나 놀라운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명령을 받아들고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전열을 가다듬고 성을 돕니다. 무장한 사람들이 앞에 서고 제사장 일곱이 양각 나팔 일곱을 붙잡고 행진하고 그 뒤에는 언약궤가 서고, 그 뒤에는 그를 따르는 후군들이 배치됩니다. 그렇게 매일 같이 한 번씩 돌고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명령이 덧붙여집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수 6:10)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작전 지시는 이렇게 주어집니다. “여리고성을 공격하는데 말을 하지 말라.” 한마디로 떠들지 말고 침묵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돌고 있는 백성들을 상상해 봅니다. 나팔소리가 울리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길게 늘어선 군인들과 백성들이 외침 없이 조용하게, 매일 같이 성을 한 바퀴씩 돕니다. 그런 그들이 적군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조금 우스꽝스러운 행렬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이스라엘 전력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기도 했겠죠. 어찌 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도리어 고함을 왁자지껄 외치며 여리고성을 돌았다면 성 안의 사람들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하여 믿음 없는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을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는 주된 내용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돌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여호수아를 따르던 사람들은 여리고성을 돌면서 믿음으로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백성들은 의심하며 불만을 드러냈을 겁니다.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아서 어쩌라는 거지?’ 생각하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을 법합니다. 성을 돌다가 혹시라도 일어날 적군의 공격에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질문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받은 계시가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을 수도 있죠. 누군가는 성 안으로 쳐들어가는 방식이 훨씬 더 좋은 전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을 돌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날, 둘째 날, 그렇게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 안에 불신앙의 이야기가 지속되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일곱째 날이 되었을 때에는 아무도 여리고성의 함락에 대해서 희망을 갖거나 기대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로 향하는 이 장면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와 탈출하는 장면과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마른 땅을 건너듯이,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거닐고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했던 모습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성경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으로 갔는데, 딸린 아이들 외에, 장정만 해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다른 여러 민족들이 많이 그들을 따라 나섰고, 양과 소 등 수많은 집짐승 떼가 그들을 따랐다. (출 12:37~38, 새번역)

성경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선택된 백성들만 있었다고 증언하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이 함께했다고 말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이들을 일컬어 ‘중다한 잡족’이라고 표현하는데, 개역개정 성경에는 ‘수많은 잡족’이라고 고쳐 번역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다른 민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고 믿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종교적 이유가 아닌, 즉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한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자 사이에 끼어 있는 비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고, 교회 안에 있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다른 민족이 함께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민수기는 이런 잡족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악영향을 미친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민수기 11장 4~6절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민 11:4~6)

민수기 말씀도 동일하게 섞여 사는 인종들을 이야기하며, 다른 목적으로 함께 나온 그들이 탐욕과 불만으로 늘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다시 말해 불신자의 불만이 신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 주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시는데도 그들은 충분치 못하다 여기며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불만을 표출합니다. 이 불만을 부추긴 사람들이 다름 아닌 이방민족, 곧 섞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여호수아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그곳에도 섞여 사는 민족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할례를 베풀도록 명하시며 새 출발을 하도록 하십니다. 믿음의 공동체로 만드신 후에 여리고성을 돌도록 명령하신 셈이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명령하셨습니다. 침묵의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말할 수 있지만 모든 말이 하나님의 일에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약 3:2, 새번역)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교회에도 이어지며 침묵으로서 기적을 낳는 일에 동참하기를 요청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가장 귀한 사역을 감당하실 때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수많은 선동과 거짓 증언 앞에서도 주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마 26:62~63 중)

예수님은 침묵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그 침묵은 마지막에 던지신 한마디, “다 이루었다.”는 선포로 끝이 납니다. 끝까지 참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께서 그 한마디를 마지막에 선포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정복하신 것입니다. 7일간 매일 침묵하며 여리고성을 돌고 마지막 날, 마침내 이스라엘이 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함성을 울립니다. 그 함성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종종 어려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는 항상 ‘말’이 있습니다. 믿음 없는 말이 존재하죠. 섞여 사는 무리가 내뱉은 믿음 없는 말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신앙생활을 혼란스럽게 할 때가 꽤나 많습니다. 듣기에는 그럴 듯한 말이지만 믿음 없는 말입니다. 교회에 말이 많아서 도움된 적은 별로 없습니다. 군대의 생활 양식이 있다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한 삶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일하면서 어떤 말을 하였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그 말이 믿음의 말이었습니까? 아니면 불신의 말이었습니까? 한번 판단해 보십시다.
말을 많이 한다고 리더십이 있는 건 아닙니다. 도리어 말을 줄이고 침묵하는 사람들이 진정 믿음의 리더가 되는 법입니다. 수난의 자리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주옥과도 같은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중), “다 이루었다” (요 19:30 중)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얼마나 힘 있는 말입니까! 쓸데없는 곳에 말을 낭비하지 않으셨기에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더욱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미가 살아납니다. 우리에게도 침묵과 더불어 나오는 믿음의 언어들이 너무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침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말을 삼가라는 뜻이 아니라, 믿음 없는 말을 멈추고 믿음의 언어가 들리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예배당 문을 닫게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가장 먼저 예배당 문을 닫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회가 예상되는 상황을 지혜롭게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믿음의 판단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소망교회 교우들이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 주셨고 침묵함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도리어 늘어났습니다. 헌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소망교회 교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것이 침묵하며 함께하는 신앙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외치라!”는 신호를 기다렸다가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예배당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이며,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꾸로 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예배당 문 닫는다고 소리치다가 정작 문이 열리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본래 믿음 없음을 스스로 증명할 뿐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을 증명하는 데는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침묵 가운데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언어, 믿음의 말이 많아지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더욱 크게 일어날 것이고, 우리가 그 기적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소망교회가 조용하지만 강한 침묵을 배우고, 이 침묵을 통해 강력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공허한 소리침이 사라지고 믿음의 언어가 가득 찬 교회, 믿음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소망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5월 2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침묵” (수 6:8-16, 20-2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190, 53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수 6:8-16, 20-2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2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저마다 사람에겐 삶의 양식이 있습니다삶의 양식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이로 인해 존경을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특별한 목적의 집단도 성공적인 목표를 위해 나름의 양식을 갖고 있지요교회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맡긴 특별한 일들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믿음의 양식들이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떤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까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자 우리 교회에 필요한 믿음의 양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과정의 말씀입니다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리고 성을 점령할 명령을 내리십니다매일 같이 성을 한 번씩 돌고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라고 하시며 중요한 명령을 하나 덧붙이셨습니다그건 바로 침묵입니다왜 주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점령할 작전 지시를 주시며 침묵에 대해 말씀 하셨을까요? ‘침묵을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주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나왔던 수많은 잡족이 있었습니다이들 중에는 믿음 없이 다른 목적을 갖고 나온 자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민수기 말씀(민 11:4-6)엔 이들의 탐욕과 불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끊임없이 악영향을 끼쳤음을 말합니다불만이 불신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두고도 40여년의 광야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들 모두에게 할례를 베풀도록 하시고믿음의 공동체로 재차 세우셨습니다그리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과정에 이처럼 침묵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침묵을 사용하십니다예수님께서도 수많은 거짓 선동과 증언 앞에서 침묵으로 그 소명을 이루셨습니다그리고 그 침묵은 결국 세상을 정복하시고 구원하신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한 마디 외침으로 끝이 납니다여리고 성 앞에서 명령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은 이와 같습니다. 7일간 매일 침묵하며 여리고 성을 돌던 이들이 마지막 침묵 명령을 마치고 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함성을 울렸을 때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침묵이라는 믿음의 생활양식은 무조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말을 삼가라는 것이 아닙니다이젠 믿음 없는 말을 멈추고믿음의 언어가 들리게 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이것은 조용하고 엄숙한 교회로 만들라는 것이 아닌믿음의 언어가 더 크게 들리도록 외치라는 의미입니다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이끄는 사람들은 침묵하면서도 순종으로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그리고 믿음의 언어믿음의 말로 끊임없이 격려하는 사람들입니다믿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믿음을 증명하는 데는 사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믿음 없이 섞여 있는 민족과 같은 이들이 아니라침묵을 통한 믿음의 생활양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역사는 더욱 크게 일어날 것이고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누기

1.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무슨 말을 많이 하였습니까믿음의 말입니까불신의 말입니까?

2. 내 삶의 자리에서 침묵하라는 주님 명령이 어떻게 들리십니까순종으로 답할 것은 무엇일지 돌아봅시다.

마무리기도

    주님가벼운 모습믿음 없는 말로 교회 공동체를 어지럽혔던 우리 모습을 용서하여 주소서침묵을 통해 믿음의 언어를 더욱 살려내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고참된 믿음의 생활양식으로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는 일꾼 되게 하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