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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출애굽기 26: 30 ~ 37

김경진 목사

2021.10.03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소망교회의 미래를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가 세워진 지 4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제법 짧은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소망교회는 80년대 이후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귀한 교회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부족한 제가 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벌써 세 번째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합니다. 교회를 창립하시고 지금까지 교회를 가꾸어 오신 곽선희 원로목사님의 노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어려운 시간을 거쳐가면서도 소망교회를 잘 정착시키시고 아름답게 가꾸어 오신 김지철 은퇴목사님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 창립 초기부터 교회 설립과 발전에 크게 헌신하신 원로장로님과 은퇴장로님, 은퇴권사님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무명으로 교회를 설립하시며 함께해 주신 수많은 소망의 성도님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참회의 기도 시간에 소망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참회하고 기도했지만 그동안 우리 소망교회는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쳐 왔고,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은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주일을 지키며 경건한 예배를 드려 왔고, 새벽기도회를 정규적으로 드리면서 일상화해 왔습니다. 자발적인 헌신, 익명의 헌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도와 온 교회가 바로 우리 소망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직제 안에서도 계급 없는 비귀족화를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쳐 왔고, 또 많은 은혜를 나눠 온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알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리라 믿고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우리가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썰렁하기도 하고 참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코로나19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쳐 왔고, 문화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배당 가득 함께 앉아 예배드리던 일이 이제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함께 예배드리던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어느새 온라인 예배도 많이 익숙해지셨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분들도 많아져서 코로나19가 끝나면 이전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와 예배드릴 수 있을까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44주년을 맞이하며, 또 한 번 새롭게 45주년으로 접어드는 소망교회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저도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고,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코로나19로 나타나는 많은 결과들을 보면서 변화된 세상의 구조 안에 적합한 교회의 틀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이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그저 우연하게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 이 땅에 내려 주신 하나의 사인이고 징조이지 않은가?’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자만하였던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이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던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또 다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를 다시금 흔들어 내심으로써 보다 더 올바른 자리에 들어가기를, 바른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상황, 그리고 창립 44주년 이후 소망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저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적응하는 일보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며, 바른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어느 날 저에게 짧은 영상이 전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유현준 교수님이 대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 공간이 가지는 힘,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유현준 교수님은 교회가 강대상을 중심으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강대상에 시선이 집중된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예배학을 공부했던 저로서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연구하던 내용이었지만, 건축학자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다른 의미에서 다가왔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기능의 관점에서 생각해 온 교회 건물의 구조가 힘의 관점에서 진단될 때, ‘아, 모습이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설교가 잘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장의자 가운데 앉아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그때 예배당의 힘을 느꼈다는 대담 내용을 들으면서 목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설교를 들으시다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나가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아니면 누워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오늘의 상황입니다.
대담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저는 기독교가 원래 힘을 가진 구조였을지, 예배당이 지금의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보니 기독교의 출발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 성전에서 벗어나 가정에서 드렸고, 카타콤이라는 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박해를 피하고자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검이 널려 있는 자리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며 죽음을 경멸했고, 죽음을 조롱하며 부활 신앙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보다는 죽음에 대한 강한 도전이 나타나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와 가톨릭교회 시대를 거치면서, 또 중세 교회를 거쳐 개신교회가 만들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말씀의 틀이 중심이 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힘의 구조가 나타나게 된 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개신교가 가진 특별한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꿈꿔야 할 예배와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본래 설계하신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예배당의 구조는 어떠했을까?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성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출애굽기서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 설계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성전에 관한 설계도를 주셨죠. 이후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향하여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성전의 크기, 재료,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처음 설계하신 예배의 모습, 교회의 모습, 예배당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성막의 구조를 전부 살펴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너무나도 방대하고 상당히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하나씩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오늘은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예배라는 관점에서 크게 세 가지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성막에는 조각목이 사용되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조각목은 성막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입니다. 언약궤나 진설병, 성막의 널판, 기둥, 제단을 만들 때 모두 조각목이 사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단단한 구조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조각목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조각목이라는 이름을 한글로 들으면 조각을 모아서 만든 나무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나무는 하나의 종자가 있는 특별한 나무를 상징합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아카시아 나무로 번역되어 있고, 새번역 성경 역시 아카시아 나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이 나무는 ‘싯딤나무’(shittim Wood)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번역서는 싯딤나무 그대로 고유명사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싯딤나무는 유대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나무입니다. 지나가다가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나무입니다. 가장 많이 있는 나무이면서도 사막 광야에서 자라나는 만큼 앙상한 가지를 보여 주는 나무입니다. 삭막한 곳에서 물기도 없이 나뭇잎이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조각목은 크게 자랄 수도 없는 나무입니다. 둘레가 클 수 없는 거죠. 자그마하게 자라는 나무이고, 가시들이 있는 나무입니다.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조각목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백향목이라는 큰 나무가 사용되었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막을 지을 때 조각목을 사용하도록 하셨을까요? 실제적인 이유가 있으셨겠죠.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는 이 조각목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멀리 가서 나무를 가져올 수는 없었을 테니 가까이 보이는 곳에 있는 조각목을 사용하라는 현실적인 이유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싯딤나무는 옹이도 많이 져 있고, 방향도 제각각 뒤틀려 있고, 심지어 가시도 많아서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려운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조각목, 싯딤나무를 가지고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며 교회를 설계하십니다.
말씀을 읽으며 조각목이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험난한 광야에서 살아남느라 옹이도 생기고 방향도 제각각이던 조각목이 광야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다가 망가져 버린 듯한 우리는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 쓸모없어 보이는 우리를 사용하길 원하셨습니다. 재미있게도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을 그대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뒤틀어지고 엉켜지고 옹이가 있는 나무를 순금으로 싸라고 명령하십니다.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달도록 하십니다. 그저 두면 뒤틀어지고 갈라지고 부서질 나무인데, 금으로 씌우고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걸치니 단단한 나무가 되고 균형 잡힌 바른 모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나무 위에 금을 입혀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최근에 말씀드리고 있는 세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화요조찬을 통해 세례의 의미를 나누고 있는데, 제가 물의 이미지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로 옷 입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세례를 받으시며 물 위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듯이 우리 역시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똑같은 옷을 입고 올라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금을 두른 조각목과 같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속은 썩고 뒤틀리고 가시는 돋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는 금을 입은 조각목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에 금을 입히신 다음, 성막을 이루는 곳곳에 조각목을 두십니다. 어떤 것은 언약궤를 만드는 곳에 쓰이고 어떤 것은 진설병 상을 만드는 곳에 쓰이고, 어떤 것은 기둥 만드는 곳에, 어떤 것은 널빤지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져서 성막을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연약한 이들을 부르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고 의롭다 여겨 주시며 각자의 자리에 세워 주시고 사용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처음 세우시며 설계하신 모습입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각자가 보혈의 은총을 힘입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 어떤 이는 기둥이 되고 또 다른 이는 언약궤의 자리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교회가 아름답게 모양 잡혀가는 것,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의 설계도입니다.

<하나님은 조각목을 선택하신 데 이어 보혈을 상징하는 덮개로 성막을 덮으셨고, 바닥은 그대로 두셨습니다.>

두 번째로 성막을 덮는 덮개가 있습니다. 덮개는 네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 휘장이 있습니다. 이 휘장은 천사, 그룹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수놓아 있는 천입니다. 그 위에는 염소 털로 만든 천이 있고, 그 위에는 숫양으로 만든 또 다른 덮개가 놓입니다. 그리고 맨 위에는 해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놓고 성막을 덮습니다. 해달 가죽은 보기에 그리 멋지지는 않습니다. 외모는 화려하지 않지만 햇빛과 바람에 강한 가죽이죠. 어쩌면 초라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드실 때 외관을 화려하게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방어해 내는, 실제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해달 가죽 아래에는 두 개의 층, 하나는 숫양의 가죽으로 된 천과 염소 털로 짜진 천이 놓여 있습니다.
숫양과 염소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짐승이죠. 자신의 몸을 내어서 피를 흘리고 누군가의 죄를 속죄함으로써 남겨 놓은 가죽으로 천을 만든 것입니다. 이들의 가죽이 성막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득 덮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래쪽에는 멋진 휘장이 놓여 있는데, 휘장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출애굽기 26장 1~3절입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매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 (출애굽기 26장 1~3절)

말씀에 보면 천이 나오고 실들이 나옵니다. 푸른색 실, 붉은색 실, 다양한 실들이 나오고 서로 연결되면서 그룹, 다시 말하면 천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천이 되어 멋진 모습으로 성막 안을 비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직조할 때 실의 색깔을 배합하여 직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을 상징하는 그룹들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성막 휘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실들은 무엇일까요? 이 천사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을 상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사람은 푸른 실이고 어떤 사람은 붉은 실이고 어떤 사람은 베실이고, 어떤 사람은 큰 조각이고 …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모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천사들을 표현해 내고 그 위에는 속죄의 은총이 함께하는 모습,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설계하신 교회의 설계도가 아닐까요? 에베소서 2장 20~22절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으며 서로 조화롭게 연결된 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22절)

마지막으로 또 다른 한 가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막의 바닥입니다. 성막은 울타리로 안과 밖이 구별되죠. 가름대와 갈고리와 받침과 말뚝과 휘장 등으로 하나의 벽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동쪽 뜰의 문은 청색, 자색, 홍색, 베실로 짠 휘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경계가 나눠지면 그 안에 하나의 공간이 남게 됩니다. 바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닥을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닥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것도 놓을 필요가 없는, 광야 그 자체가 바닥입니다. 광야를 지나다가 터를 잡고 성막을 짓게 되면 위에는 천을 드리우고 금으로 치장한 조각목으로는 기둥을 세우지만, 바닥은 그저 바람이 일면 모래가 나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막 바닥을 조금 더 멋지게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널빤지로 깔거나 특별한 것으로 만들거나, 금으로 도장하거나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면 예배의 공간은 훨씬 더 화려하게 느껴졌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광야 그대로, 바위가 있으면 바위 그대로, 그 땅을 그렇게 두길 원하셨습니다. 성막을 통해 이 땅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올라오기를, 이 땅의 고통 소리가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이 없는 거친 광야 그대로, 물이 많은 질척한 땅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듣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곳 바로 그곳에 법궤가 놓이고 언약궤가 놓이고 진설병 상이 그대로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모래 바닥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예배당의 모습입니다.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고 외식함으로 치장하지 않고, 오직 진실함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배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하게 영광 돌리는 소망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예배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성막의 비밀을 다시 한 번 펼쳐 봅니다. 아무 쓸모없는 조각목 위에 금을 씌우시고 성전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각자의 위치에 두시며 영광스러운 일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성막 위에 여러 개의 층으로 막을 만드시되, 가장 아래의 천을 정교하게 짜셔서 우리가 가진 모든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예배당의 설계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그리고 땅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 그 소리를 그대로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설계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외식 없는 모습으로, 고통이 있으면 고통스런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자리, 그런 교회를 꿈꿔 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든 아니면 온라인으로 모이든, 각자가 있는 예배의 자리가 진솔한 광야의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작은 조각목과 같은 우리이지만 금으로 싸여진 보배로운 도구로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설계도, 이것을 꼭 가지시고 멋진 교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 보십시다.

The Church God Designed

Exodus 26: 30-37

Today we celebrate the 44th anniversary of Somang Church. Although our history is short compared to that of the Korean Church, we grew rapidly from the 1980s and became a representative church in Korea, greatly impacting Korean society and churches to this day.

This is the third anniversary since being appointed Senior Pastor of this precious church. I want to express my gratitude to; Pastor Emeritus Kwak Sun-hee who founded Somang Church and played a pivotal role in reviving it; and his successor Pastor Emeritus Kim Ji-chul whogrew this church beautifully. I also want to thank all the elders emeritus who gave themselves to planting and raising Somang Church as well as all the senior deaconesses emeritus and all our congregants who served this church from its birth.

This year, too, the pandemic has prevented us from gathering on this joyous day. As we look at all our past photos showing worship halls packed with people, we are shocked by a sense unfamiliarity and wonder, ‘Will we ever be able to worship like that again?’

Covid-19 has transformed and unsettled our culture. Many predict that this change will not be reversed even after the pandemic. One major change is the culture of Christian communities that gathered each Sunday for worship. Manyworry that Christians who have now become so used toworshipping online in the comfort of their homes will not return to church after the pandemic.

What will become of the Korean Church in the future? What direction should Somang Church take? While the coronavirus continues to shake up the whole world, I believe God is using this pandemic to stir up and awaken the Korean Church. It is clear that the coronavirus is not just a passing infectious disease, but a major driver of change that will transform all existing systems and frameworks of life.

Many wonder, ‘Who will be the survivors in a changed post-pandemic world?’ Christians, too, are now thinking about the future of churches from this perspective. Many of them focus on creating a church structure and framework fit for survival in a changed world. Such reactions are only inevitable and natural for human beings who haveconstantly adapted to change in their environment.

However, for Korean churches tostand and to have meaning in this world,I believe we must think from “God’s” perspective and ask, ‘What kind of church does He want us to be? How does He want us to approach Him?’—rather than try to adapt to the world and its new environment, although this may also be necessary.

The reason I think so is because I am certain that the pandemic was a special revelation from God to us humans. It wasn’t some random occurrence. I believe God intended it to happen because He wants to wake and shake us, and, therefore, it conceals His loving will to make us return to the basics.

Then what is the church that we must return to? What is the true church that God wants us to become?

One day, I received a short video via Kakao Talk. It was an interview with Yoo Hyun-joon, the professor/architect, on religion and space. In particular, Professor Yoodiscussed the power of religious spaces,focusing on churches. He talked about how the church space is usually a long rectangle, with the pulpit at the front and center—which naturally makes power flow to it. He also talked about how he once wanted to leave during a church service but couldn’t because he was trapped in a pew. The bulk of the interview was based on his book The Future of Space which many of you may have read.

His points were aspectsthat I had considered as a person who studied liturgy, but the interview helped me understandthemfrom an architect’s perspective. His comments, which prompts us to rethink space from the perspective of power rather than from that of utility, provided much food for thought.

As a pastor I felt sorry that he felt “trapped” in his seat after finding the sermon uninteresting. Perhaps those of you listening to this sermon online now are freer than him from the “power of the pulpit” for you can easily turn the channel andmove about.

After watching the interview, I became more interested in God’s original design for space. What was God’s original design for the space of worship? And if that space could talk, what is it saying to us?

In Exodus 25-31, God tells us, in minute detail, His design for the tabernacle as a place that reveals His presence. The Bible especially records God’s detailed and direct instructions for building the tabernacle. Today, when everything is changing due to the coronavirus and as Somang Church celebratesits 44thanniversary, I want to study the structure of the tabernaclethrough today’s Scripture which holds God’s true and original design for the church. I hope the Spirit will guide me in our search for the church that we must dream of.

Since we cannot deal with all theological and symbolic aspects of the tabernacle’s structure in this time, I willtouch upon a few important ones.

What was the most-used material in building the tabernacle? Probably, acacia wood.

“Have them make an ark of acacia wood—two and a half cubits long, a cubit and a half wide, and a cubit and a half high.”(Exodus 25: 10)

“Make a table of acacia wood—two cubits long, a cubit wide, and a cubit and a half high.”(Exodus 25: 23)

“Make upright frames of acacia wood for the tabernacle. Each frame is to be ten cubits long and a cubit and a half wide.”(Exodus 26: 15-16)

Acacia wood was used for almost every part of the tabernacle, except for the lampstand—including the ark of the covenant, the table for the bread of the Presence, the frames, the pillars, and the altar.

Acacia wood, translated “shittim wood” in the KJV, is a skinny thorn commonly found in the desert. So, it was a common material.

Since it was thin and thorny, acacia wood was almost never used for construction—except for the tabernacle. That is why Solomon used cedars instead of acacia wood. But in God’s design in Exodus even the pillars of the tabernacle were made of acacia wood. The shittah tree was a small tree.

It also had many thorns, which meant it was hard to handle. It was a tree that struggled to survive in the desert. It survived with only drops of water. It broke easily. It also had many gnarls, which made it fragile and hard to work.

But God commanded His people to make the tabernacle with acacia wood. He designed His church with it.

Acacia wood was not used as it is. It had to be overlayed with pure gold, a gold molding had to go around it, and it had to be fastened with rings. If this was not done, it would break, twist, or rot. This is why gold overlays, gold moldings, and gold rings were needed.

“Make a table of acacia wood—two cubits long, a cubit wide and a cubit and a half high. Overlay it with pure gold and make a gold molding around it.” (Exodus 25: 23-24)

“Make gold hooks for this curtain and five posts of acacia wood overlaid with gold.” (Exodus 26: 37)

“Saints clothed in Christ” refer to people who have been baptized. A church is made up of weak and sinful people clothed in Christ. This is the true church that God designed.

The covering of the tabernacle was made of four layers. From the outside in, the first andoutermost covering was made of the durable hides of sea cows; the second covering of ram skins dyed red; the third curtain of goats hair; and the fourth and innermost curtain of finely twisted linen and blue, purple, and scarlet yarn, with cherubim woven into them.

“Make curtains of goat hair for the tent over the tabernacle—eleven altogether.” (Exodus 26:7)

“Make for the tent a covering of ram skins dyed red, and over that a covering of the other durable leather.” (Exodus 26: 14)

The hides of sea cows were very durable. They were tough, sun-resistant, and strong against the wind—but not fancy. Their appearance was rather humble. This may be the church’s appearance from the outside, in the eyes of the world. The ram skins came from an animal used as a sacrifice for man’s sins. Symbolizing sacrificial blood, they point to the church clothed in the blood of Christ. The curtains of goats hair are neither visible from the inside nor the outside of the tabernacle. They, too, come from a sacrificial animal.

Then what about the curtains of finely twisted linen and blue, purple, and scarlet yarn with cherubim woven into them?

“Make the tabernacle with ten curtains of finely twisted lien and blue, purple and scarlet yarn, with cherubim woven into them by a skillful worker. All the curtains are to be the same size—twenty-eight cubits long and four cubits wide. Join five of the curtains together, and do the same with the other five.” (Exodus 26:1-3)

These innermost curtains were made by weaving various colors together. The cherubim symbolize the angels surrounding the throne of God. All these had to be beautifully connected. This was the secret of the tabernacle curtains.

This is God’s design for the church.

When members of the church come together and connect beautifully like the warp and the weft of the tabernacle curtains, the church becomes the true, beautiful church that God designed. The colors of each thread, their connection, and the weaving are important. This is how a magnificent church is made.

“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hief cornerstone. In him the whole building is joined together and rises to become a holy temple in the Lord. And in him you too are being built together to become a dwelling in which God lives by his Spirit.” (Ephesians 2:20-22)

The tabernacle had a fence that separated its holy ground from the outside. The fence was made up of;posts with bronze bases, silver hooks,and silver bands; and curtains of finely twisted linen. On theeast entrance, however,there were curtains of blue, purple, and scarlet yarn.

Curtains of finely twisted linen made up the fence excluding the gate. The south and north sides of the fence each had 20 posts and 20 bronze bases, while the west side had 10 posts and 10 bronze bases. The hooks and bands of the posts were made of silver. The east side was made up of a total of 10 posts, including 4 for the gate at the center and 3 at each side.

The floor of the tabernacle was just sand, that is, the very ground of the desert. The floor of God’s holy and beautiful dwelling was just dirt. Even all the golden sacred objects were placed on just sand, on the same ground as that of the camp outside. These sacred objects had a place in the very midst of the people’s lives. They were set apart only by the curtain symbolizing the presence of God.

The church is also in the very midst of our lives, our pain, our hurt, and our grief. It does not look fancy on the outside. The church is “us” giving our entire lives to God.

The church must be a space that reveals the presence of God. The tabernacle’s outermost cover was made of hides of sea cows. So did it look beautiful and fancy on the outside? No. But, inside, it had acacia wood overlayed with gold and elegant curtains with intricate designs. As such, God’s design for the church was that it be built up beautifully in cooperation and harmony. Most of all, the church must be a community of people clothed in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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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6: 30 ~ 37

30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31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34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35

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36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37

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소망교회의 미래를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가 세워진 지 4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제법 짧은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소망교회는 80년대 이후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귀한 교회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부족한 제가 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벌써 세 번째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합니다. 교회를 창립하시고 지금까지 교회를 가꾸어 오신 곽선희 원로목사님의 노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어려운 시간을 거쳐가면서도 소망교회를 잘 정착시키시고 아름답게 가꾸어 오신 김지철 은퇴목사님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 창립 초기부터 교회 설립과 발전에 크게 헌신하신 원로장로님과 은퇴장로님, 은퇴권사님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무명으로 교회를 설립하시며 함께해 주신 수많은 소망의 성도님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참회의 기도 시간에 소망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참회하고 기도했지만 그동안 우리 소망교회는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쳐 왔고,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은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주일을 지키며 경건한 예배를 드려 왔고, 새벽기도회를 정규적으로 드리면서 일상화해 왔습니다. 자발적인 헌신, 익명의 헌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도와 온 교회가 바로 우리 소망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직제 안에서도 계급 없는 비귀족화를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쳐 왔고, 또 많은 은혜를 나눠 온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알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리라 믿고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우리가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썰렁하기도 하고 참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코로나19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쳐 왔고, 문화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배당 가득 함께 앉아 예배드리던 일이 이제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함께 예배드리던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어느새 온라인 예배도 많이 익숙해지셨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분들도 많아져서 코로나19가 끝나면 이전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와 예배드릴 수 있을까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44주년을 맞이하며, 또 한 번 새롭게 45주년으로 접어드는 소망교회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저도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고,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코로나19로 나타나는 많은 결과들을 보면서 변화된 세상의 구조 안에 적합한 교회의 틀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이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그저 우연하게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 이 땅에 내려 주신 하나의 사인이고 징조이지 않은가?’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자만하였던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이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던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또 다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를 다시금 흔들어 내심으로써 보다 더 올바른 자리에 들어가기를, 바른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상황, 그리고 창립 44주년 이후 소망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저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적응하는 일보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며, 바른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어느 날 저에게 짧은 영상이 전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유현준 교수님이 대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 공간이 가지는 힘,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유현준 교수님은 교회가 강대상을 중심으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강대상에 시선이 집중된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예배학을 공부했던 저로서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연구하던 내용이었지만, 건축학자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다른 의미에서 다가왔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기능의 관점에서 생각해 온 교회 건물의 구조가 힘의 관점에서 진단될 때, ‘아, 모습이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설교가 잘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장의자 가운데 앉아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그때 예배당의 힘을 느꼈다는 대담 내용을 들으면서 목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설교를 들으시다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나가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분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아니면 누워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오늘의 상황입니다.
대담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저는 기독교가 원래 힘을 가진 구조였을지, 예배당이 지금의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보니 기독교의 출발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 성전에서 벗어나 가정에서 드렸고, 카타콤이라는 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박해를 피하고자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검이 널려 있는 자리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며 죽음을 경멸했고, 죽음을 조롱하며 부활 신앙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보다는 죽음에 대한 강한 도전이 나타나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와 가톨릭교회 시대를 거치면서, 또 중세 교회를 거쳐 개신교회가 만들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말씀의 틀이 중심이 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힘의 구조가 나타나게 된 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개신교가 가진 특별한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꿈꿔야 할 예배와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본래 설계하신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예배당의 구조는 어떠했을까?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성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출애굽기서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 설계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성전에 관한 설계도를 주셨죠. 이후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향하여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성전의 크기, 재료,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처음 설계하신 예배의 모습, 교회의 모습, 예배당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성막의 구조를 전부 살펴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너무나도 방대하고 상당히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하나씩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오늘은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예배라는 관점에서 크게 세 가지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성막에는 조각목이 사용되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조각목은 성막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입니다. 언약궤나 진설병, 성막의 널판, 기둥, 제단을 만들 때 모두 조각목이 사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단단한 구조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조각목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조각목이라는 이름을 한글로 들으면 조각을 모아서 만든 나무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나무는 하나의 종자가 있는 특별한 나무를 상징합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아카시아 나무로 번역되어 있고, 새번역 성경 역시 아카시아 나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이 나무는 ‘싯딤나무’(shittim Wood)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번역서는 싯딤나무 그대로 고유명사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싯딤나무는 유대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나무입니다. 지나가다가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나무입니다. 가장 많이 있는 나무이면서도 사막 광야에서 자라나는 만큼 앙상한 가지를 보여 주는 나무입니다. 삭막한 곳에서 물기도 없이 나뭇잎이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조각목은 크게 자랄 수도 없는 나무입니다. 둘레가 클 수 없는 거죠. 자그마하게 자라는 나무이고, 가시들이 있는 나무입니다.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건축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조각목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백향목이라는 큰 나무가 사용되었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막을 지을 때 조각목을 사용하도록 하셨을까요? 실제적인 이유가 있으셨겠죠.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는 이 조각목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멀리 가서 나무를 가져올 수는 없었을 테니 가까이 보이는 곳에 있는 조각목을 사용하라는 현실적인 이유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싯딤나무는 옹이도 많이 져 있고, 방향도 제각각 뒤틀려 있고, 심지어 가시도 많아서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려운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조각목, 싯딤나무를 가지고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며 교회를 설계하십니다.
말씀을 읽으며 조각목이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험난한 광야에서 살아남느라 옹이도 생기고 방향도 제각각이던 조각목이 광야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다가 망가져 버린 듯한 우리는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 쓸모없어 보이는 우리를 사용하길 원하셨습니다. 재미있게도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을 그대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뒤틀어지고 엉켜지고 옹이가 있는 나무를 순금으로 싸라고 명령하십니다.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달도록 하십니다. 그저 두면 뒤틀어지고 갈라지고 부서질 나무인데, 금으로 씌우고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걸치니 단단한 나무가 되고 균형 잡힌 바른 모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쓸모없는 나무 위에 금을 입혀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최근에 말씀드리고 있는 세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화요조찬을 통해 세례의 의미를 나누고 있는데, 제가 물의 이미지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로 옷 입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세례를 받으시며 물 위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듯이 우리 역시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똑같은 옷을 입고 올라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금을 두른 조각목과 같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속은 썩고 뒤틀리고 가시는 돋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는 금을 입은 조각목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에 금을 입히신 다음, 성막을 이루는 곳곳에 조각목을 두십니다. 어떤 것은 언약궤를 만드는 곳에 쓰이고 어떤 것은 진설병 상을 만드는 곳에 쓰이고, 어떤 것은 기둥 만드는 곳에, 어떤 것은 널빤지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져서 성막을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연약한 이들을 부르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고 의롭다 여겨 주시며 각자의 자리에 세워 주시고 사용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처음 세우시며 설계하신 모습입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각자가 보혈의 은총을 힘입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 어떤 이는 기둥이 되고 또 다른 이는 언약궤의 자리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교회가 아름답게 모양 잡혀가는 것,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의 설계도입니다.

<하나님은 조각목을 선택하신 데 이어 보혈을 상징하는 덮개로 성막을 덮으셨고, 바닥은 그대로 두셨습니다.>

두 번째로 성막을 덮는 덮개가 있습니다. 덮개는 네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 휘장이 있습니다. 이 휘장은 천사, 그룹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수놓아 있는 천입니다. 그 위에는 염소 털로 만든 천이 있고, 그 위에는 숫양으로 만든 또 다른 덮개가 놓입니다. 그리고 맨 위에는 해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놓고 성막을 덮습니다. 해달 가죽은 보기에 그리 멋지지는 않습니다. 외모는 화려하지 않지만 햇빛과 바람에 강한 가죽이죠. 어쩌면 초라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드실 때 외관을 화려하게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방어해 내는, 실제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해달 가죽 아래에는 두 개의 층, 하나는 숫양의 가죽으로 된 천과 염소 털로 짜진 천이 놓여 있습니다.
숫양과 염소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짐승이죠. 자신의 몸을 내어서 피를 흘리고 누군가의 죄를 속죄함으로써 남겨 놓은 가죽으로 천을 만든 것입니다. 이들의 가죽이 성막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득 덮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래쪽에는 멋진 휘장이 놓여 있는데, 휘장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출애굽기 26장 1~3절입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매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 (출애굽기 26장 1~3절)

말씀에 보면 천이 나오고 실들이 나옵니다. 푸른색 실, 붉은색 실, 다양한 실들이 나오고 서로 연결되면서 그룹, 다시 말하면 천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천이 되어 멋진 모습으로 성막 안을 비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직조할 때 실의 색깔을 배합하여 직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을 상징하는 그룹들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성막 휘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실들은 무엇일까요? 이 천사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을 상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사람은 푸른 실이고 어떤 사람은 붉은 실이고 어떤 사람은 베실이고, 어떤 사람은 큰 조각이고 …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모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천사들을 표현해 내고 그 위에는 속죄의 은총이 함께하는 모습,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설계하신 교회의 설계도가 아닐까요? 에베소서 2장 20~22절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으며 서로 조화롭게 연결된 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22절)

마지막으로 또 다른 한 가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막의 바닥입니다. 성막은 울타리로 안과 밖이 구별되죠. 가름대와 갈고리와 받침과 말뚝과 휘장 등으로 하나의 벽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동쪽 뜰의 문은 청색, 자색, 홍색, 베실로 짠 휘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경계가 나눠지면 그 안에 하나의 공간이 남게 됩니다. 바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닥을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닥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것도 놓을 필요가 없는, 광야 그 자체가 바닥입니다. 광야를 지나다가 터를 잡고 성막을 짓게 되면 위에는 천을 드리우고 금으로 치장한 조각목으로는 기둥을 세우지만, 바닥은 그저 바람이 일면 모래가 나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막 바닥을 조금 더 멋지게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널빤지로 깔거나 특별한 것으로 만들거나, 금으로 도장하거나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면 예배의 공간은 훨씬 더 화려하게 느껴졌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광야 그대로, 바위가 있으면 바위 그대로, 그 땅을 그렇게 두길 원하셨습니다. 성막을 통해 이 땅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올라오기를, 이 땅의 고통 소리가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이 없는 거친 광야 그대로, 물이 많은 질척한 땅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듣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곳 바로 그곳에 법궤가 놓이고 언약궤가 놓이고 진설병 상이 그대로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모래 바닥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예배당의 모습입니다.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고 외식함으로 치장하지 않고, 오직 진실함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배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하게 영광 돌리는 소망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 44주년을 맞이하며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예배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성막의 비밀을 다시 한 번 펼쳐 봅니다. 아무 쓸모없는 조각목 위에 금을 씌우시고 성전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각자의 위치에 두시며 영광스러운 일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성막 위에 여러 개의 층으로 막을 만드시되, 가장 아래의 천을 정교하게 짜셔서 우리가 가진 모든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예배당의 설계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그리고 땅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 그 소리를 그대로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설계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외식 없는 모습으로, 고통이 있으면 고통스런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자리, 그런 교회를 꿈꿔 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든 아니면 온라인으로 모이든, 각자가 있는 예배의 자리가 진솔한 광야의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작은 조각목과 같은 우리이지만 금으로 싸여진 보배로운 도구로서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설계도, 이것을 꼭 가지시고 멋진 교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 보십시다.

2021년 10월 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출 26:30-3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08장, 60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출 26:30-3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소망교회가 세워진지 44주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소망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하였고 사회와 교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교회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 속이지만, ‘성막의 구조’를 통해 – 창립주일을 맞아 –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길 원합니다. 

 설교의 요약

    첫째로 성막을 만드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를 통해 교회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성막에서 제일 많이 사용된 재료는 ‘조각목’입니다: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출 25:10),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출 25:23). 조각목은 성막을 만드는데 거의 모든 곳(언약궤, 진설병상, 기둥, 제단 등)에 빠짐없이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Acacia Wood)로도 번역되지만, KJV 성경에서는 싯딤나무(Shittim Wood)로 번역됩니다. 싯딤나무는 광야에서 볼 수 있는 앙상한 가시나무입니다.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무입니다. 가시와 옹이가 많아 다루기 곤란한 나무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조각목을 순금으로 싸고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를 걸도록 하였습니다 (출 26:37). 교회는 조각목처럼 연약한 우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세례로 옷 입히시고 교회로 세우십니다. 

    둘째로 성막을 덮은 네 겹의 덮개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성막을 덮은 덮개는 네 겹으로 되어있습니다. 겉으로부터 해달의 가죽, 수양의 가죽, 염소 털로 짠 앙장(휘장), 백색·청색·자색·홍색 실로 공교히 수놓은 앙장입니다. 해달의 가죽은 질기고 햇빛과 바람에 강한 가죽이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초라한 느낌을 줍니다. 교회가 강하나 초라하게 보이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수양의 가죽과 염소 털로 짠 앙장은 제사에 사용된 제물의 가죽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보혈로 덮임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네 가지 색으로 공교히 수놓아 만든 휘장의 의미(출 26:1-3)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교회의 구성원들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서로 교차함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멋진 휘장을 만들 듯이, 서로 연결될 때 진정한 교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엡 2:21).

    이렇듯 하나님은 가시나무와 같이 부족한 우리를 통해 교회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 위에 금을 덮어주시고 금테를 두르셔서 가치 있게 만들 듯, 세례를 통해 우리를 세우십니다. 또한 성막을 덮은 네 겹의 덮개처럼 겉으로는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안에는 서로 연결된 수놓아진 휘장이 있듯, 우리가 서로 연결될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막과 같은 그런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나누기

 1. 소망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는 무엇인지 서로 나눠보겠습니다.  

 2. 가시나무(조각목)처럼 부족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 연결할 때 아름다운 휘장으로 만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내가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소망교회 창립 44주년을 맞으며 우리 교회의 모습을 주님께서 설계하신 성막의 모습을 통하여 다시 깊이 생각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진정한 은혜와 감사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귀한 교회로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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