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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한두 가지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소녀 ‘이소정’ 양 영상, 2분 38초)
여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시력이 같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안 보이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물건이나 가구에 부딪혀서 너무 많이 다치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 속상하고 아프고 그랬어요.”
하지만 소녀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깨닫습니다.
“저는 노래하는 게 가장 행복해요.”
5살 무렵, CCM 음반을 작업하면서 시작한 노래가
이제 그녀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2016년 SBS 스타킹 출연,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 참가,
2020년 KBS 불후의 명곡 최종 우승,
그리고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켜 준 소중한 엄마.
“엄마는 나의 눈이 되어 주는 존재예요.
엄마는 그냥 저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희망을 갖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노래하는 게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이소정입니다.”
“내 눈이 보인다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엄마.” 지난 5월 8일 한국일보에 실린 인터뷰 제목입니다. ‘이소정’이란 낯익은 이름이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김지은 논설위원이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회학교 학생이어서 더 반가웠고, 그 마음으로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이소정 양이 노래할 때도 함께 응원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어서 참 흐뭇했습니다. “내 눈이 보인다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엄마.” 이 제목을 들으면서 여러분도 많은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제목을 읽는 제 눈에도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이소정 양은 16살이 되었습니다. ‘레베르시신경위축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빛을 보고 느낄 순 있지만 사물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괜찮아서 빛을 차단하는 고글을 쓰면 조금은 큰 글씨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눈이 나빠져서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소정 양은 빛을 본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소정 양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빛이라는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커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되게 좋고요. 태어나서 빛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천적 전맹인 시각장애인도 있거든요.”
이소정 양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나는 사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잘 안 보이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 동생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애들만큼 난 보이지 않더라고. 나는 그런 게 되게 궁금해. 자연 말이야. 내 주위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은 만져보면 감각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자연은 그렇지 못하니까. 새는 어떻게 날까? 또 잠자리는? 눈이 오는 풍경, 하늘의 구름, 파도치는 모습은 어떨까? 그런 자연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 나는 너무 해 보고 싶어. 나한테는 밤에 길바닥 물웅덩이 같은 데 빛이 비쳐서 반짝거리는 것도 너무 예쁘게 보이거든.”
빛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빛을 느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들인가!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글 제목 때문이었는지 저는 측은한 마음으로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엄마의 얼굴이 보고 싶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점차 도리어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소정 양의 인터뷰에는 강한 긍정과 감사가 넘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강한 긍정의 정신이 저로 하여금 제 삶을 돌아보도록 되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정 양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우리 모두가 소정 양과 같은 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정 양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잘 보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피부가 약해 늘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귀가 남들보다 잘 들리지 않는데, 모르고 계속 자라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늘 밥을 먹기만 하면 배탈이 나는데, ‘남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뛰고 싶어도 달리기가 잘 안 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발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늘 우울한 아이들도 있고, 늘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남들도 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늘 고생하며 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태어나 ‘세상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배고픔에 익숙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는 소망부 친구들이 있고, 베데스다와 그룹홈에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누구도 완전함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이가 많아 ‘노환’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난’이라는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암’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고, 어떤 이는 ‘비만’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노래가 안 되는 ‘음치’라는 장애를 가진 이가 있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치’라는 장애를 겪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 중에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희귀한 장애를 가진 이들만을 모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면, 늘상 스스로가 참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자기만 알고 있는 마음의 고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이 안 돼 보이고, 자신이 늘 애틋합니다.
< 무엇을 바라보고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
그런 관점에서 소정 양을 다시 보았더니,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한두 가지 장애와 문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소정 양은 당당히 이겨 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게 아닌, 이미 주어진 것을 생각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염려하며 걱정해 주는 마음이 참 예뻤습니다. “엄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는 감사한 게 참 많아. 빛은 알잖아. 빛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너무 크니까. 빛이라는 존재를 아예 모르는 시각장애인도 있잖아.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안 보인 것도 다행이다 싶어. 보이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더 무섭고 절망하고 적응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노래, 내겐 노래가 있잖아. 커서 뭘 하고 싶으냐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노래야.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노래는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
참 멋지지 않습니까? ‘소정 양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도 각자의 장애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들어 아픈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 이미 젊었을 때 행복한 시간을 가져 봤잖아.’ ‘암에 걸려 치료받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괜찮아. 나는 이미 건강을 가져 보았잖아.’ ‘난 차라리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 싶어. 잘 살다가 갑자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면, 나는 못 견뎠을 것 같거든.’ 이런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목사로서 소정 양의 이야기에서 믿는 사람들의 특권이랄까, 축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정 양은 빛을 느끼고 보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빛을 보는 것과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빛을 아는 것과 빛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다르다는, 매우 중요한 관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전해 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빛을 보고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이 빛을 알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4~5)
생명의 빛을 통해 우리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히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희미한 정도로만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른거리는 빛을 느끼는 정도일지라도, 그 영원한 생명의 빛의 존재를 알고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됩니다.
다시 소정 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보고 들으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의 마음으로 도전하는 멋진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이 소정 양을 그렇게 움직이게 해 주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소정 양은 보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불평하는 데 힘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습니다. “내게는 노래가 있잖아. 무슨 일을 하든지 노래는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 소정 양에게 노래가 있다는 것이 너무 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까지 빌려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귀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소정 양을 통해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래입니까? 춤입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관련하여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회자되었습니다. 취업난과 장기적인 불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다고 해서 ‘오포세대’라는 말도 등장했습니다. 이어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해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까지 회자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혜롭게 위기를 잘 극복하는 우리나라의 대처를 지켜보면서,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사실 그다지 크게 바뀐 상황은 없습니다. 도리어 코로나19로 인해 불황이 더 심해졌고, 경제적인 여건은 더 나빠졌습니다. 취업의 여건도 더 안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려움, 문제, 단점, 장애만 본다면, 우리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돌린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소정 양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노래하고, 노래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노래를 통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도 함께 응원해 주고, 함께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소정 양이 지금 이 예배당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금 후에 봉헌 찬양을 해 줄 것입니다. 소정 양의 아름다운 노래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으로 멋지게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단에서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미래도 잘 보이지 않고, 앞날도 캄캄합니다. 아무리 일해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 청년뿐이겠습니까? 우리의 문제와 상황을 살펴본다면, 참으로 비관적인 자리에 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눈이 잘 안 보이는 것만으로 말한다면, 소정 양은 약자고 장애인입니다.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또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소정 양은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찾고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함께 걷는 길에서 희망의 삶이 꽃핍니다. >
또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소정 양이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소정 양과 늘 함께하는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언뜻 소정 양을 보면, 시각장애인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나도 어떤 때는 네가 안 보인다는 것을 깜빡해.”라고 엄마가 농담할 정도라고 합니다. 모든 게 엄마의 노력과 섬세한 돌봄 덕분일 것입니다.
소정 양은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을까? 사람들이 나한테 ‘엄마 닮았네.’ 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 그런데 내가 진짜로 엄마를 닮았는지 너무 궁금해. 내게 바람이 있다면, 내 가족이나 친구 같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딱 한 번만이라도 보는 거야. 그럼 기억해 놓을 수가 있잖아. 그중에서도 나는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어. 엄마, 기억나? 내가 생각나는 가장 어린 시절, 세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 엄마랑 이불 속에서 불빛 찾기 놀이를 했던 것 말이야.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시력이 나았으니까. 그런 내게 조금이라도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하려던 것이었겠지? 엄마는 그때부터 늘 내 옆에 있어 줬지. 내게 세상을 알려준 것도 엄마야. 뭐든지 만지게 하면서 생김새를 알려주고, 내가 익힐 수 있게 도왔어. 초록은 숲의 색, 하늘색은 시원한 느낌, 빨강은 뜨거운 느낌. 나는 그런 감각으로 세상을 보잖아. 엄마,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짜증 부렸던 것 기억나? 언젠가부터 엄마가 계단이 나타나도 말을 안 해 주더라고. 엄마를 잡고 걸으니까 넘어지진 않더라도 갑자기 발이 툭 떨어지니까 얼마나 무서워.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내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내가 안 보이는 것 알면서 왜 계단이라고 미리 말 안 해 주는 거야?’라고 했지?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말을 안 해도 옆에서 걷는 느낌으로 “계단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도록 훈련시키려고 그런 거야. 그래야 시각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 다닐 때, 일일이 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다치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거든.’ 그때 ‘엄마가 그런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엄마의 마음은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깊구나.’ 싶어서 감동 받았어.”
저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소정 양의 어머니가 다시 보였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소정 양의 어머니가 참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의 소정 양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좌절하고,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는 소정 양을 일으켜 세워 주고, 희망을 주고, 격려해 주었기에, 소정 양이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여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연약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가 많아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한 사람도 행복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늪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소정 양의 어머니 같은,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적인 사랑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 장애인들이 일어서고, 실망한 이가 회복되고, 비탄에 빠진 사람이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존재를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천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소정 양은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베데스다와 그룹홈의 부모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아이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어떤 사람에게 이 아이를 맡기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연약한 아이를 맡기면 책임감 있게 키워 줄까?’라며 살펴보시고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러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우의 부모님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경외심이 생깁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연약한 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며, 하나님을 보게 되는 까닭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8,10)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은 때로는 사건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돕는 손길을 통해 나타나고, 사람들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돕는 자들 뒤에는, 모든 도움의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각자 약함을 가진 장애인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홀로 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함이나 약함을 불평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약함이 크게 보이고 부족함이 우리를 덮어 버려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들을 찾아내는 것, 우리를 돕는 엄마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연약한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에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 너머에는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배경으로 계십니다. 좋은 의도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뒤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소정 양의 엄마가 소정 양이 계단을 내려갈 때 말해 주지 않은 이유를 엄마로서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 하나님도 가까이에 계시면서도 마치 계시지 않는 듯 일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조차 하나님의 좋은 마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소정은 이 정도면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행복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물으니 ‘마카롱을 먹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마카롱을 앞에 밀어주자 소정은 더듬더듬 손으로 집어 하나를 쥐더니 마카롱의 향부터 맡았다. 한 입 베어 문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행복하고요.’”
A Road Traveled Together
Isaiah 41: 8-13
[Subtitles of a video on Lee Sojung, a visually impaired singer]
Here is a girl.
A girl who was born with a visual impairment.
“I thought everybody else couldn’t see, like me, but I later found out that it was just me.”
“When I was little, I would bump into furniture and things lying around millions of times.”
But this girl knows when she is happiest.
“It’s when I sing.”
She started singing at five when she participated in a CCM recording.
Singing is now her greatest joy.
In 2016, she appeared in the TV show Star King.
In 2018, she sang at the Pyeongchang Paralympics opening ceremony.
In 2020, she won first place in the KBS singing contest Immortal Song.
Mommy, who was always there for her, is the most precious person in the whole wide world.
“She is my eyes. She is me.”
“I always try to have hope.”
“I am Lee Sojung, a girl happiest when she is singing, a girl who sees the world with her heart.”
[Beginning of Sermon]
“Mommy’s Face: the Face I Most Want to See, If I Could See” was the title of an interview of Lee Sojung published in the Hankook Ilbo on May 8, 2020. I was happy to see an article on Sojung and was touched by the piece written by Kim Jieun. As Sojung attends the church of a close pastor friend, I had prayed for her and cheered her on when she sang at the opening ceremony of the 2018 Pyeongchang Paralympics.
The title itself was packed with meaning. My eyes welled up with tears even before I got to the article.
Sojung, now 16 years old, was born with a rare disease called Leber’s hereditary optic neuropathy (LHON). She could sense light but could not distinguish objects. When she was younger, she could make out big letters by wearing dark goggles, but now even this is impossible as her eyesight has deteriorated.
Still, Sojung is grateful that she can at least sense light. In her interview she says, “There’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light and not knowing it. It’s really good to know if it’s night or day. Some people are born completely blind, which means they have never seen the light their whole life.”
“Mom, when I was very little, I thought everyone else had poor eyesight like I did. But one day I knew. I found out that I couldn’t see like my brothers. You know, I’m really curious about things, like nature. Nature is different. I can’t touch it or guess, like I do with the things and people around me. How do birds fly? And dragonflies? A snow-covered field, clouds in the sky, crashing waves… what do they look like? I just really want to gaze at nature for hours on end.”
As I read these words of this beautiful teenager who was even grateful for being able to sense light, I realized that the things I took for granted everyday were truly precious. The things I enjoy were such a blessing.
I first started reading the interview with compassion, imagining her heartfelt longing to see mommy’s face. But as I read on, sympathy turned to embarrassment for myself. Sojung was a profoundly grateful and positive young lady. And that made me look back on myself.
I realized that we are all like her. When she was little, Sojung thought everyone had poor eyesight like herself. Aren’t we like this all? Some children are born with weak skin like atopic dermatitis, some with poor hearing, and some with weak bowels. But many of us believe others have the same condition. Some kids simply can’t run as fast as they want to, and some are inherently depressed or sensitive. Some are born into poor families and suffer, some are born in places like Africa, and some are born in North Korea, becoming used to hunger and believing that life is not so different for others.
Somang Church also has a ministry for children with special needs and the Bethesda Ministry and the Group Home Ministry. Thinking about all this, I realized that none of us are born perfect, and none of us live perfect lives.
In fact, from a broader perspective, we all have a disability or another. Old age, poverty, cancer, and obesity can all be seen as a form of disability. Some are tone deaf, and some can’t dance. None of us are without disability. But we call people with rare diseases “the disabled.” When we take a closer look at ourselves, we will all feel sorry for ourselves, which makes Sojung all the more amazing. Everyone is born with a defect or two, but Sojung has boldly overcome hers. Instead of feeling sorry for herself, she is willing to help others with her gifts.
“Mom, I have so much to be thankful for. I know what light is. Being able to sense it and not being able to are so different. Some visually impaired people don’t even know what light is. I’m also thankful that I was born with visual loss. If I had lost my eyesight later, I might have been more scared and more desperate. And singing! I can sing! When someone asks me what I want to be, the first thing that I think of is singing. Whatever I do, I think I’ll be singing.”
Isn’t she beautiful? If we could think like her, won’t we all overcome our disabilities? ‘I am sick in my old age, but that’s fine. I had a happy youth, didn’t I? It’s hard fighting cancer now, but I enjoyed good health before this, didn’t I? It’s actually better that I was born poor because I don’t think I could have handled riches to rags.’ Wouldn’t it be great to have this mindset?
This is a slightly different topic, but I reflected on the blessing and privilege of believers as I read Sojung’s interview. Sojung appreciated her ability to sense the light, saying that there wa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having this ability and not having it. This represents an especially important perspective for us believers.
Believers are people who can see the light of eternal life. We testify the light. We shine it on the world that does not know it. How happy we are to know this light?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John 1:4-5)
How great it would be if we could see all things clearly through the light of life! But we cannot see it perfectly. If only we could see this light of life as Sojung senses the light!
Getting back to Sojung’s story, I was deeply impressed by her calm acceptance of her condition, her positivism, and her challenge-loving spirit. What made her so?
First, she did not focus on the fact she could not see or spend time complaining about it, but concentrated on what she wanted to do. “I have my singing! Whatever I do in the future, I will be singing!” It’s splendid that she has her singing. Dear Church, we learn from beautiful lives, even without reaching for the Word. What do “we” have? What can you do and want to do? What makes you happy?
Up until recently, a buzz word in Korea was “Hell Korea,” a satirical term that refers to the hopelessness and adverse conditions of Korean society. Words like “Sampo Generation”— loosely translated as “Three Give-Up Generation”—express the particularly difficult situation of Korea’s young generation who have all but given up on dating, getting married, and having children due to rising unemployment and a prolonged recession. However, with Korea’s astonishing success in curbing Covid-19, unparalleled elsewhere in the world, Korea’s young generation are feeling more pride in their nation.
It’s fascinating that the word “Hell Korea” all but vanished when actually the situation has stayed pretty much the same—or, to be more precise, got worse in terms of the economy due to the coronavirus.
It’s what we see—and what we focus on—that is important. If we focus on the problems, the defects, our disabilities, we will surely become pessimistic. But, if we choose to concentrate on what we can do and what we want to do, we will become positive. I wish Sojung sings to her heart’s delight in the days ahead, receiving applauses, feeling happiness, and overcoming her disability.
In fact, Sojung is here with us now at this service. She will sing a praise for us after my message. I pray that her beautiful singing will give glory to God, becoming a praise filling this place.
Today is Youth Sunday according to our denomination, although our church does not observe it in a special way. I would like to encourage the youth in our church. Many of you may feel desperate with a hard time landing jobs, a bleak future, and difficult situations. Not only the young, but perhaps others may feel pessimistic about the future, if they focus only their problems.
If we just looked at her eyesight, Sojung would be just a weak, disabled girl. But, if we focus on her singing and her passion for it, she is a most promising young lady with amazing talent. It’s what we see that is important. Don’t feel depressed because of the things you don’t have, but find the things that you do, and discover hope in them.
Another important thing. Sojung could live positively and confidently, overcoming her disabilities, because of her mom who was always at her side. People don’t even notice that she is visually impaired. Her mom even jokes, “I even sometimes forget that you can’t see.” All this owes to the loving care and sacrifice of her mom. This is what Sojung says to her mom in the interview:
“Mom, do I look a lot like you? I love it when people say that I take after you. But I’m just so curious to know how much we look alike. If I had one wish, it would be to see the faces of my family and friends—just once. Then I’ll be able to remember. And among all those faces, I want to see yours the most.”
“Mommy, do you remember? It was when I was 3 years old, I think. We used to play ‘Find the Light’ under the sheets. I could see better then, and I think you wanted me to know the joy of seeing—well, at least, a little.”
“Ever since, you have always been by my side. You showed me the world. You let me touch everything, described what they looked like, and helped me learn. Green is the color of the forest, blue is a color that feels cool, red is hot… I see the world through my sense, don’t I?”
“Mommy, do you remember when I got really frustrated at steps? All of a sudden, you didn’t warn me about them. I didn’t fall down, of course, because I was holding on to you, but it was really frightening to suddenly step into midair. When this happened again and again, I got angry at you and shouted, ‘Why didn’t you warn me about the steps when you knew I couldn’t see?’ And you said, ‘I’m trying to train you to feel that steps are coming up so that when you walk with people who aren’t trained like me and don’t warn you every time, you’ll be able to sense that steps are nearing.’ I realized then that you did things for me for a reason, that your love for me was immeasurable.”
Reading this interview, I saw Sojung’s mom in a new light. Actually, I had admired and respected her from the very start. I believe Sojung is who she is today because of her mom, because of her love and commitment. She encouraged her daughter who could easily have despaired and given up. She gave her hope so she could grow up to be the amazing person she is today.
Dear Church, we all have our disabilities. If we are pessimistic, none of us will be happy, and we would all be mired in despair.
There is, however, one thing that gets a person out of that mire: people like Sojung’s mom. People who are with that person. People who help those in need with total commitment and love. Through their sacrifices, disabled persons can get up on their feet, the despaired can recover, and the hopeless can hope. I want to call them agents of God or angels of God. Through her mom, Sojung experiences God’s love and help. She learns about God through her mom.
I have so much respect for our church members who serve in the Bethesda Ministry and Group Home Ministry. I believe they are God’s angels sent to the weak and weary who need mothers and fathers in this world. I also have a deep respect for the parents of children with special needs. They are agents of God, angels of God.
Through them, the weak will see Him and know Him. In today’s scripture, God says to Israel:
“But you, Israel, my servant, Jacob, whom I have chosen, you descendants of Abraham my friend, […].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Isaiah 41: 8,10)
We believers believe that God is on our side and is with us. This is manifested in life events as well as those who help us. And behind every helping hand, there is God.
Dear Church, we, with our weaknesses, are all handicapped. We are weak and insufficient. We cannot live alone. But complaining about our weaknesses and defects doesn’t help at all. We get trapped in a mire, overwhelmed by our weaknesses and defects.
Amid our weaknesses, we must find things that give us joy—like people such as Sojung’s mom who walk with the weak. They are God’s shadows, a pathway of His revelation.
Furthermore, we ourselves must become God’s agents for the weak. We must walk with them. Since we are human, we are weak. But, beyond ourselves, there is God who loves us deeply and is with us. Beyond, there is God who helps us according to His good will.
Therefore,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Do not be afraid. Find God’s will in all circumstances. Discover songs of joy in hard, painful times. And meet God who is with you. God reveals Himself through the people who stand by your side.
Sojung’s mom explained why she didn’t warn Sojung about steps. Our God is like that, too. Sometimes, He works invisibly even though he is near. But His intentions are always good and loving. Remember that.
Dear Church, I hope you too will meet God who reveals Himself to us, like He did to Sojung through her mom. Being only human, Sojung’s mom has faults, hurts, and disabilities, too. But beyond her weakness lies God, our perfect God, who is always at our side.
Let me read to you from the last part of Sojung’s interview:
“Sojung said she was happy enough. I asked her what was good about today. She answered, ‘I had macaron.’ When I gave her macarons as a snack during the interview, the first thing she did was to fumble for it, grasp one, and smell it. After one bite, she looked as if she owned the world. She added, ‘I also happy to have this talk with you.’”
이사야 41: 8 ~ 13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 우리는 모두 한두 가지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소녀 ‘이소정’ 양 영상, 2분 38초)
여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시력이 같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안 보이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물건이나 가구에 부딪혀서 너무 많이 다치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 속상하고 아프고 그랬어요.”
하지만 소녀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깨닫습니다.
“저는 노래하는 게 가장 행복해요.”
5살 무렵, CCM 음반을 작업하면서 시작한 노래가
이제 그녀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2016년 SBS 스타킹 출연,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 참가,
2020년 KBS 불후의 명곡 최종 우승,
그리고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켜 준 소중한 엄마.
“엄마는 나의 눈이 되어 주는 존재예요.
엄마는 그냥 저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희망을 갖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노래하는 게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이소정입니다.”
“내 눈이 보인다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엄마.” 지난 5월 8일 한국일보에 실린 인터뷰 제목입니다. ‘이소정’이란 낯익은 이름이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김지은 논설위원이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회학교 학생이어서 더 반가웠고, 그 마음으로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이소정 양이 노래할 때도 함께 응원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어서 참 흐뭇했습니다. “내 눈이 보인다면 가장 보고 싶은 얼굴, 엄마.” 이 제목을 들으면서 여러분도 많은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제목을 읽는 제 눈에도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이소정 양은 16살이 되었습니다. ‘레베르시신경위축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빛을 보고 느낄 순 있지만 사물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괜찮아서 빛을 차단하는 고글을 쓰면 조금은 큰 글씨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눈이 나빠져서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소정 양은 빛을 본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소정 양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빛이라는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커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되게 좋고요. 태어나서 빛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천적 전맹인 시각장애인도 있거든요.”
이소정 양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나는 사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잘 안 보이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 동생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애들만큼 난 보이지 않더라고. 나는 그런 게 되게 궁금해. 자연 말이야. 내 주위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은 만져보면 감각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자연은 그렇지 못하니까. 새는 어떻게 날까? 또 잠자리는? 눈이 오는 풍경, 하늘의 구름, 파도치는 모습은 어떨까? 그런 자연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 나는 너무 해 보고 싶어. 나한테는 밤에 길바닥 물웅덩이 같은 데 빛이 비쳐서 반짝거리는 것도 너무 예쁘게 보이거든.”
빛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빛을 느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들인가!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글 제목 때문이었는지 저는 측은한 마음으로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엄마의 얼굴이 보고 싶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점차 도리어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소정 양의 인터뷰에는 강한 긍정과 감사가 넘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강한 긍정의 정신이 저로 하여금 제 삶을 돌아보도록 되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정 양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우리 모두가 소정 양과 같은 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정 양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잘 보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피부가 약해 늘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귀가 남들보다 잘 들리지 않는데, 모르고 계속 자라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늘 밥을 먹기만 하면 배탈이 나는데, ‘남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뛰고 싶어도 달리기가 잘 안 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발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늘 우울한 아이들도 있고, 늘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남들도 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늘 고생하며 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태어나 ‘세상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배고픔에 익숙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는 소망부 친구들이 있고, 베데스다와 그룹홈에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누구도 완전함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이가 많아 ‘노환’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난’이라는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암’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고, 어떤 이는 ‘비만’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노래가 안 되는 ‘음치’라는 장애를 가진 이가 있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치’라는 장애를 겪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 중에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희귀한 장애를 가진 이들만을 모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면, 늘상 스스로가 참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자기만 알고 있는 마음의 고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이 안 돼 보이고, 자신이 늘 애틋합니다.
< 무엇을 바라보고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
그런 관점에서 소정 양을 다시 보았더니,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한두 가지 장애와 문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소정 양은 당당히 이겨 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게 아닌, 이미 주어진 것을 생각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염려하며 걱정해 주는 마음이 참 예뻤습니다. “엄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는 감사한 게 참 많아. 빛은 알잖아. 빛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너무 크니까. 빛이라는 존재를 아예 모르는 시각장애인도 있잖아.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안 보인 것도 다행이다 싶어. 보이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더 무섭고 절망하고 적응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노래, 내겐 노래가 있잖아. 커서 뭘 하고 싶으냐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노래야.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노래는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
참 멋지지 않습니까? ‘소정 양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도 각자의 장애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들어 아픈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 이미 젊었을 때 행복한 시간을 가져 봤잖아.’ ‘암에 걸려 치료받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괜찮아. 나는 이미 건강을 가져 보았잖아.’ ‘난 차라리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 싶어. 잘 살다가 갑자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면, 나는 못 견뎠을 것 같거든.’ 이런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목사로서 소정 양의 이야기에서 믿는 사람들의 특권이랄까, 축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정 양은 빛을 느끼고 보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빛을 보는 것과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빛을 아는 것과 빛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다르다는, 매우 중요한 관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전해 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빛을 보고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이 빛을 알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4~5)
생명의 빛을 통해 우리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히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희미한 정도로만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른거리는 빛을 느끼는 정도일지라도, 그 영원한 생명의 빛의 존재를 알고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됩니다.
다시 소정 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보고 들으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의 마음으로 도전하는 멋진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이 소정 양을 그렇게 움직이게 해 주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소정 양은 보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불평하는 데 힘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습니다. “내게는 노래가 있잖아. 무슨 일을 하든지 노래는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 소정 양에게 노래가 있다는 것이 너무 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까지 빌려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귀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소정 양을 통해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래입니까? 춤입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관련하여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회자되었습니다. 취업난과 장기적인 불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다고 해서 ‘오포세대’라는 말도 등장했습니다. 이어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해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까지 회자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혜롭게 위기를 잘 극복하는 우리나라의 대처를 지켜보면서,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사실 그다지 크게 바뀐 상황은 없습니다. 도리어 코로나19로 인해 불황이 더 심해졌고, 경제적인 여건은 더 나빠졌습니다. 취업의 여건도 더 안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려움, 문제, 단점, 장애만 본다면, 우리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돌린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소정 양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노래하고, 노래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노래를 통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도 함께 응원해 주고, 함께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소정 양이 지금 이 예배당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금 후에 봉헌 찬양을 해 줄 것입니다. 소정 양의 아름다운 노래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으로 멋지게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단에서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미래도 잘 보이지 않고, 앞날도 캄캄합니다. 아무리 일해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 청년뿐이겠습니까? 우리의 문제와 상황을 살펴본다면, 참으로 비관적인 자리에 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눈이 잘 안 보이는 것만으로 말한다면, 소정 양은 약자고 장애인입니다.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또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소정 양은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찾고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함께 걷는 길에서 희망의 삶이 꽃핍니다. >
또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소정 양이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소정 양과 늘 함께하는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언뜻 소정 양을 보면, 시각장애인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나도 어떤 때는 네가 안 보인다는 것을 깜빡해.”라고 엄마가 농담할 정도라고 합니다. 모든 게 엄마의 노력과 섬세한 돌봄 덕분일 것입니다.
소정 양은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을까? 사람들이 나한테 ‘엄마 닮았네.’ 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 그런데 내가 진짜로 엄마를 닮았는지 너무 궁금해. 내게 바람이 있다면, 내 가족이나 친구 같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딱 한 번만이라도 보는 거야. 그럼 기억해 놓을 수가 있잖아. 그중에서도 나는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어. 엄마, 기억나? 내가 생각나는 가장 어린 시절, 세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 엄마랑 이불 속에서 불빛 찾기 놀이를 했던 것 말이야.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시력이 나았으니까. 그런 내게 조금이라도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하려던 것이었겠지? 엄마는 그때부터 늘 내 옆에 있어 줬지. 내게 세상을 알려준 것도 엄마야. 뭐든지 만지게 하면서 생김새를 알려주고, 내가 익힐 수 있게 도왔어. 초록은 숲의 색, 하늘색은 시원한 느낌, 빨강은 뜨거운 느낌. 나는 그런 감각으로 세상을 보잖아. 엄마,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짜증 부렸던 것 기억나? 언젠가부터 엄마가 계단이 나타나도 말을 안 해 주더라고. 엄마를 잡고 걸으니까 넘어지진 않더라도 갑자기 발이 툭 떨어지니까 얼마나 무서워.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내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내가 안 보이는 것 알면서 왜 계단이라고 미리 말 안 해 주는 거야?’라고 했지?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말을 안 해도 옆에서 걷는 느낌으로 “계단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도록 훈련시키려고 그런 거야. 그래야 시각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 다닐 때, 일일이 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다치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거든.’ 그때 ‘엄마가 그런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엄마의 마음은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깊구나.’ 싶어서 감동 받았어.”
저는 소정 양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소정 양의 어머니가 다시 보였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소정 양의 어머니가 참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의 소정 양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좌절하고,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는 소정 양을 일으켜 세워 주고, 희망을 주고, 격려해 주었기에, 소정 양이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여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연약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가 많아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한 사람도 행복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늪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소정 양의 어머니 같은,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적인 사랑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 장애인들이 일어서고, 실망한 이가 회복되고, 비탄에 빠진 사람이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존재를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천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소정 양은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베데스다와 그룹홈의 부모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아이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어떤 사람에게 이 아이를 맡기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연약한 아이를 맡기면 책임감 있게 키워 줄까?’라며 살펴보시고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러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우의 부모님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경외심이 생깁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연약한 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며, 하나님을 보게 되는 까닭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8,10)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은 때로는 사건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돕는 손길을 통해 나타나고, 사람들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돕는 자들 뒤에는, 모든 도움의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각자 약함을 가진 장애인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홀로 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함이나 약함을 불평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약함이 크게 보이고 부족함이 우리를 덮어 버려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들을 찾아내는 것, 우리를 돕는 엄마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연약한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에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 너머에는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배경으로 계십니다. 좋은 의도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뒤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소정 양의 엄마가 소정 양이 계단을 내려갈 때 말해 주지 않은 이유를 엄마로서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 하나님도 가까이에 계시면서도 마치 계시지 않는 듯 일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조차 하나님의 좋은 마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소정은 이 정도면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행복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물으니 ‘마카롱을 먹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마카롱을 앞에 밀어주자 소정은 더듬더듬 손으로 집어 하나를 쥐더니 마카롱의 향부터 맡았다. 한 입 베어 문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행복하고요.’”
2020년 5월 1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함께 걸어가는 길” (사 41:8-13)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7장, 38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사 41:8-13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이소정양은 이제 16살이 되었습니다. 레베르 시신경 위축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빛을 보고 느낄 수는 있지만, 사물을 구분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지금보다 나아서 빛을 차단하는 고글을 쓰면, 큰 글씨는 볼 수도 있었다는데, 점점 눈이 더 나빠져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교의 요약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없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다 넓은 범주로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다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환이라는 장애, 가난이라는 장애, 암이라는 장애, 비만이라는 장애 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정양은 자신이 빛을 느끼고 보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보는 사람들이지요(요 1:4-5).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 영원한 빛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어려움, 단점, 문제, 장애만을 본다면 우리는 비관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돌린다면, 우리는 긍정적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교단적으로 청년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요즈음 청년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미래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 청년뿐이겠습니까? 나의 상황만을 본다면 참으로 비관적인 그런 자리에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늪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소정양의 엄마와 같은,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적인 사랑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천사들입니다. 소정양은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우리 소망교회의 소망부 선생님들과, 베데스다 그리고 그룹홈의 부모님들도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이들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그들을 도울 천사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보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8, 10).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약함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홀로 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우리 너머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 우리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누기
1. 나에게는 어떤 약함이 있으신가요?
2. 나에게는 소정양의 엄마와 같이 나를 돕는 분이 계신가요? 그런 하나님의 대리자, 천사가 있나요? 혹시 나는 누구에게 그런 도움을 주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그런 천사가 되어주고 있나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모두는 약합니다. 약한 이들에게 천사들을 보내 주시고, 늘 뒤에서 함께 걸으시며 돌보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참 빛 되신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