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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인생에 저항하는 법

전도서 3:12~13

김경진 목사

2025.11.16

<인간의 삶을 돌아본 지혜자의 고백 속에서 진정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할 추수감사주일에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전도서의 본문은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사라는 주제와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말씀은 조금 더 솔직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감사의 조건들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오늘의 설교는 자신을 지혜자로 소개하는 어떤 사람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의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였을까요? 그 지혜자는 무엇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지혜자가 찾은 감사는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전도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1)

 

자신을 전도자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솔로몬왕입니다. 히브리어로 ‘전도자’(קהלת[qoheleth], preacher)는 ‘설교자 또는 교사’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끌었던 왕입니다. 큰 부와 높은 명예, 명성을 누리며 지혜로운 자로 유명하였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모두 경험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전하는 지혜가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는 말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그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인간의 삶을 조망하면서 ‘헛되다’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합니다. ‘헛되다’라는 단어는 헤벨(הבל[hebel], emptiness or vanity, breath, 헛되다)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모든 것을 다 해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전하는 인생의 결론은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그의 첫마디가 ‘헤벨, 헛되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왜 헛되다고 말할까요?

 

<모든 사람의 인생은 유한성과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허무한 것입니다.>

 

첫째로 그가 인생을 회고하며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유한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죽음 앞에 있는 인간입니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전 2:16)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진 자도, 적게 가진 자도, 지혜로운 사람도, 우매한 자도 결국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2장에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소출을 풍성히 거두고 곳간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던 부자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전도자는 이러한 인간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결국 죽음은 모든 것을 허무로 만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헤벨, 허무하다’라고 외칩니다.

두 번째로 전도자는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생각합니다. 히브리어 ‘헤벨’은 ‘안개 혹은 숨결’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고 통제할 수 없으며 곧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자는 인생을 ‘헤벨’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한다고 해서 예상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전 9:11)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절감하고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들과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일어나는 경우들을 흔히 경험합니다. 애써 돈을 모아 큰 부자가 되었는데, 정작 그는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고 모은 재산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자리에 올라서 소원을 성취했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순간의 일탈과 실수로 명예를 잃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모습도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인생은 허무하다, 헤벨이다’라고 외칩니다.

 

<허무한 삶이기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허무한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죽음이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불확실성이 언제나 인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을까요? 씨를 뿌리고,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도리어 “헤벨, 인간의 허무함을 인지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인생은 어차피 헛된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염세주의를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은 헛된 것이니 포기하고 욕망을 따라 마음껏 방탕하게 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쾌락주의로도 나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짙은 안개와 같고 허무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은 전도자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놀라운 신앙의 유턴을 감행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 3:14)

 

지혜자는 ‘헤벨, 인간의 허무’가 우리에게 경외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헤벨은 “세상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지 않은 분을 붙잡아야 한다”라는 신앙의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헛되고 허망한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소소한 이야기로 전해 줍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2~13)

 

전도자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전도자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시간, 오늘이라는 현실,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말합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고 누리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더 세부적으로, 음식을 나누고 커피를 마시며 출퇴근할 때 누리는 작은 보람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역설적 메시지입니다. “헤벨, 이 세상의 삶은 허망하고 안개와도 같다. 그러니 어떡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일상과 오늘의 현실에 중심을 두라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도리어 헛되다고 말하는 일상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킵니다. 생각해 봅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짙은 안개, 헤벨 속을 우리가 걷고 있습니다. 성공도, 건강도, 재물도 내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내 손에 쥐어진 따뜻한 빵 한 조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옵니까? 그것은 짙은 안개 속에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실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안개와도 같은 불확실함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쥐고 있는 이 빵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오늘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 오늘의 나입니다. 헤벨을 깨닫는다는 것은 내가 오늘 숨을 쉬고, 밥맛을 느끼며, 땀을 흘려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나의 권리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에게 감사는 많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내가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합격했기 때문에, 성공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오늘도 내가 여전히 현재에 살아 있어서 드리는 존재의 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의 현재, 나의 존재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의 지루한 일상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기적의 현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제목이 이미 있습니다. 오늘 나의 현재가 있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며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오늘을 최선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살아 있음으로 드리는 존재의 감사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전도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허무한 인생, 안개와 같은 인생, 헤벨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현재를 기쁘게 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서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쁨을 누리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욕망들을 성취하거나, 때로는 순간의 쾌락에 탐닉하며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쁨으로 이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쾌감이나 즐거움은 종종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 사람들의 조언 중에는 극단적인 쾌락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참으로 피폐할 뿐입니다. 전도자는 권면합니다. “네가 사는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기쁘게 살아라. 그런데 그 기쁨을 선한 일을 하는 데서 찾아라.” 인생을 기쁘게 살되, 좋은 일을 하면서 기쁨을 얻으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한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선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에 중심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전도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많이 해 봤을 것입니다.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시도해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외칩니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다.” 그는 왜 이렇게 고백할까요? 그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 육체를 위한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여 얻은 기쁨은 하늘의 삶과 연결됩니다. 전도자는 헤벨의 세상에서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사람들을 돕는 기쁨을 누리며 살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일로 기쁨을 누리며 현재를 살아 내라는 지혜자의 일성입니다. 이것이 허망한 세상, 헤벨을 극복하는 길이며, 헛된 인생에 저항하는 길입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먹고 마시며 생명을 이어 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기에 감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 먼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조건입니다. ‘먹고 마신다’라는 말에는 우리의 ‘생명이 살아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감사는 먹고 마심에 있습니다.

둘째로 ‘먹고 마신다’는 말에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저 소박한 ‘일상의 삶’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사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의미를 교환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식구들 또는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눕니다. 넷째로 결핍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식탁도 먹고 마시는 또 다른 의미의 식탁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들을 대접하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조건이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전도자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물은 몇 톤의 금이나 은, 혹은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것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같은 것도 아닙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소소한 식탁입니다. 나의 생명을 이어 가게 만드는 식탁, 일터로 나가기 전에 먹는 국밥 한 그릇, 저녁에 식구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김치찌개 한 그릇,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도시락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의 의미를 알고 감사해야 한다고 전도자는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헛된 안개 같은 삶에서 수고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주어진 감사의 제목입니다.>

 

전도자는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여기서는 “수고함으로 낙을 누린다”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의미는 수고해서 얻은 열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두어들인 성과가 아니라, 수고로운 노동의 과정 그 자체를 말합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게 된 기회, 조건을 의미합니다. 내가 수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감사입니다. 수고할 수 있는 건강과 여건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노동하고 일할 기회가 있음이 감사한 일입니다.

종종 저는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기업은 이윤을 목표로 하고 있죠. 그러나 혹시라도 기업의 이윤이 많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혹시 이윤을 못 내더라도 괜찮습니다. 이윤이 적고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봅시다. 손해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기업의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직원들과 가족들이 노동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을 돌볼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얼마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로는 수많은 직원의 가정을 돌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존재 자체로도 이미 잘한 일입니다. 그 기업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우선 일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사이에 내가 먹고 살 수 있었고, 나의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손해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감사입니다. 허무한 헤벨의 세상입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추수감사주일, 여러분의 형편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까요? 남들보다 많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더 큰 복을 받기 위하여 조건으로 드리는 감사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본질은 헛됨과 안개 같은 곳일 뿐입니다. 그러나 허무 때문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며, 밥을 먹고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자리에서 수고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헤벨, 허무하고 안개와 같은 인생, 결국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다. 불투명한 미래도 걱정하지 맙시다. 오직 오늘을 기쁘게 삽시다. 선한 일을 행하며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함으로 여기며 살아갑시다. 일할 기회 주셨음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오늘 우리는 지독히도 현실주의자 같은 전도자가 찾은 단단한 감사의 조건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신학적 현실주의자의 단단한 감사가 헤벨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귀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How to Resist a Futile Life

 

Ecclesiastes 3:12-13

 

Today is Thanksgiving Sunday. It may seem inappropriate to read from Ecclesiastes, a book that talks about the futility of life, on a day filled with joy, gratitude, and thankfulness. It feels distant from the theme of gratitude.

 

However, the words from Ecclesiastes make us honestly reflect on our lives. They confront us with the reality we face. And within that reality, they help us see the true conditions for gratitude once again.

 

We observe Thanksgiving Sunday once a year. It’s the day when we hear the word “thankful” most often. We count our blessings and seek reasons and conditions for which we should be thankful from various perspectives by coining phrases such as “therefore be thankful,” “nevertheless be thankful,” and “be thankful for everything.”

 

Since we are told to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it is fitting for us as believers to find reasons for gratitude regardless of conditions and situations. In this sense, today’s sermon is also about finding reasons for gratitude.

 

I want to begin today’s sermon with a confession from a person known to be a little wiser than us. I will examine today’s text from Ecclesiastes as if consulting this sage, asking him what he discovered in life, what made him happy, and what gratitude means to him.

 

Ecclesiastes begins like this:

 

“The words of the Teacher,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Ecclesiastes 1:1 NIV)

 

The person calling himself the “Teacher” is clearly Solomon. He explicitly states he is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He describes himself as the “Teacher,” a Hebrew word (קֹהֶלֶת, qoheleth) meaning “teacher” or “preacher.”

 

As we know, Solomon was the most powerful king in Israel’s history. He enjoyed great wealth, honor, and fame. He was renowned for his wisdom and experienced all worldly pleasures and delights.

 

He experienced most of what we all wish to enjoy at least once in this life. Ecclesiastes is the very book that conveys the wisdom he wishes to impart as he wraps up his life.

 

What is the wisdom Solomon conveys to us? He says:

 

“‘Meaningless! Meaningless!’ says the Teacher.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Ecclesiastes 1:2 NIV)

 

As he reflects on his life and observes human existence, he repeats the word “meaningless” five times. The Hebrew word for meaningless, “הֶבֶל (hebel),” means “vanity, emptiness, or breath.”

 

The Teacher has experienced everything under the sun—the heights of wisdom, pleasure, and wealth. Yet, the conclusion he shares about life is shocking: All is meaningless.

 

Why does he say it’s meaningless? First, he realized the finite nature of man—in other words, death:

 

“For the wise, like the fool, will not be long remembered; the days have already come when both have been forgotten. Like the fool, the wise too must die!” (Ecclesiastes 2:16 NIV)

 

No matter how much we possess, we cannot own everything forever. Whether we have little or much, whether we are wise or foolish, we are all headed down the same path—death.

 

Jesus also illustrated this in Luke 12. He told a parable about a rich man who thought he would tear down his barns, build larger ones, and store all his crops and goods there. But God said to him, “You fool! This very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from you. Then who will get what you have prepared for yourself?”

 

The Teacher sees this very reality. Death renders everything meaningless.

 

Second, the Teacher recognizes the uncertainty of life. The Hebrew word hebel also means “fog” or “breath.” It is something intangible, uncontrollable, and fleeting.

 

Why does the Teacher call life hebel? It is because life is fundamentally uncontrollable. Things don’t go the way we want, no matter how hard we try. They don’t go as we predict:

 

“I have seen something else under the sun: The race is not to the swift or the battle to the strong, nor does food come to the wise or wealth to the brilliant or favor to the learned; but time and chance happen to them all.” (Ecclesiastes 9:11 NIV)

 

As we live, we all realize this human reality. Even if we are not wise, we see these things happening in our lives. Having the greatest competence doesn’t guarantee victory in the end; high education or degrees don’t necessarily lead to high positions; and analyzing the market and reading the times skillfully doesn’t make us rich through stocks or investments. We often experience that unpredictable factors and uncontrollable variables play a decisive role.

 

We see men work hard and become rich, only to leave all that wealth to others after falling ill and passing away. We also see people rejoice after fulfilling their wishes and getting to a coveted position, only to lose all that honor and position due to a momentary misbehavior. Life is truly unpredictable, thus, meaningless.

 

So, how should we live in the face of such a futile reality?

 

Death is right in front of us, and uncertainty constantly blocks our path. Should we not harvest what we can, and just live? Is there no need to work hard? Should we not sow seeds? Is there no need to study diligently?

 

Having recognized this futility of man, hebel, how should we live? The Teacher does not tell us, “Life is meaningless, so just give up.” Neither does he say, “Life is futile, so indulge and follow your desires to the fullest.” He does not lean toward pessimism, nor toward hedonism.

 

Realizing that this world is hebel, like a thick fog full of futility, the Teacher does not push us to the brink and tell us to give up. Instead, he makes an astonishing turn of faith, heading in a direction no one expects.

 

“I know that everything God does will endur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and nothing taken from it. God does it so that people will fear him.” (Ecclesiastes 3:14 NIV)

 

The Teacher realizes that all this hebel in the life of man ultimately aligns with God’s purpose—to make us fear Him. Therefore, the Teacher’s realization of life’s hebel guides us to the place of faith: since all is meaningless, we must hold on to the One who is not meaningless.

 

In today’s passage, the Teacher shares little stories about how we can live with gratitude and hope in this futile and meaningless life.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people than to be happy and to do good while they live. That each of them may eat and drink, and find satisfaction in all their toil—this is the gift of God.” (Ecclesiastes 3:12-13 NIV)

 

In verse 12 the Teacher says, “while they live.”

 

Indeed, our lives are ultimately futile. Hebel. Our death is near, and uncertainty is always present in our lives. Nothing truly goes according to our wishes. In the end, we are merely finite beings that will be forgotten by everyone. For us living such lives, the Teacher emphasizes that we must focus on the very moment we are in—today, the present reality.

 

The Teacher, who saw through the futility of life, discovered life’s daily moments and scenes. He saw the significance of our ordinary daily lives. He talks about our everyday routine of eating, drinking, working and enjoying small pleasures. This will include sharing food, drinking coffee, going to work, getting off work, and feeling a sense of reward within such a life.

 

This is the great paradox of Ecclesiastes. Hebel does not destroy the value of our daily life, but amplifies it explosively.

 

Think about it. We are walking through a thick fog, hebel, uncertain of what tomorrow will bring. Nothing, including success, health, and wealth, is guaranteed. Tomorrow may never come to us. In such a life, how would it feel to hold a warm piece of bread? It cannot be taken for granted. That bread would represent the clear existence of God who holds us in this thick fog. The fog, hebel, is uncertain, but this bread is certain.

 

Recognizing hebel means confessing that simple facts—such as breathing, eating, and sweating each day—are not the result of our efforts or our right; they are purely God’s gifts and grace beyond our understanding and control.

 

Therefore, for the Teacher, gratitude does not flow from having much. He gives thanks not because he has risen to a high place. Thanksgiving comes not from success or passing a test. He gives thanks on an existential level—for simply being alive today.

 

The moment we realize this astonishing reality, the fact that life is a gift from God, our banal life becomes the very scene of God’s miracles. Therefore, everyone who has breath should thank God.

 

Now, let us think more deeply about this gratitude for mere existence, for being alive.

 

The Teacher continues: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people than to be happy and to do good while they live.” (Ecclesiastes 3:12 NIV)

 

Living in this vain, foggy world, hebel, today is crucial; but living joyfully today is what matters most.

 

In short, we must live life happily—with joy. How can we live happily? There are various ways to live joyfully. Eating what I like, doing what I enjoy, wearing clothes I like—all these can bring happiness. Fulfilling our pleasures and desires may also delight us.

 

Sometimes people interpret the advice to enjoy life as extreme hedonism. But such pleasures often only leave us drained and hollow.

 

The Teacher urges us. Live joyfully in this reality called today. But he advises us to find joy in doing good. Live happily, but let that happiness come from good deeds: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people than to be happy and to do good while they live.”

 

Why? Because God exists. And God will judge us.

 

The joy we find for our flesh, temporary happiness in this world, will fade away, but the joy we get from doing good is connected to our reward in heaven. So do not indulge in personal pleasures in this world of hebel, but rejoice in helping others. Live today feeling happiness from doing good deeds.

 

This is the way to overcome this empty world, hebel, and to resist the futility of life.

 

The Teacher continues with more concrete words:

 

“That each of them may eat and drink, and find satisfaction in all their toil—this is the gift of God.” (Ecclesiastes 3:13)

 

In this wisdom of the Teacher, we find two important perspectives on why we should thank God.

 

“That each of them may eat and drink.” First, we must be grateful for the very fact that we can eat and drink.

 

The expression “to eat and drink” holds many meanings. First, it means to sustain and maintain life. Eating and drinking is primarily an act of prolonging life. Therefore, it implies gratitude for our very existence.

 

Second, when we say, “to eat and drink,” it also means living a simple life without excessive greed or worries. We often describe our peaceful daily life as eating and drinking.

 

Third, “to eat and drink” also refers to sharing meals with others. It signifies fellowship and companionship. We eat and drink with family, friends, and loved ones. In doing so, we build a community of love.

 

Fourth, eating and drinking can also mean giving charity to those in need and the vulnerable. It symbolizes a table of generosity that shares food and drink with our neighbors in need.

 

The Teacher confesses that all these acts of eating and drinking are gifts from God.

 

Our everyday lives—sharing meals with family and loved ones, welcoming neighbors in need—are all gifts from God. This is precisely the condition for which we should be grateful. Since we’ve received such gifts, shouldn’t we be thankful?

 

In the eyes of the Teacher, God’s gifts are not tons of gold and silver, experiencing heavenly mysteries, or miracles like the parting of the Red Sea. The real gift, from the Teacher’s perspective, is the simple table that God sets before us today. It’s the meal that sustains our life—like the soup we eat before heading to work in the morning, the kimchi stew shared with family over dinner, or the free lunchboxes given out to our needy neighbors.

 

Being able to do these things is a gift from God. These are the conditions for gratitude.

 

The Teacher also speaks of another gift from God:

 

“[…] find satisfaction in all their toil—this is the gift of God.” (Ecclesiastes 3:13 NIV)

 

To “find satisfaction in their toil” does not mean to reap fruits or results gained through effort. It does not mean how much we have achieved.

 

Rather, to “find satisfaction in their toil” refers to the very process of hard work itself. It is not talking about the outcome of our work, but about the opportunity to work and the conditions that allow us to work.

 

It means that having the opportunity to toil is, in itself, a gift from God. We must be grateful for being able to, and having been able to, work. We must be thankful for the health, circumstances, and opportunities that allow us to toil. We give thanks not for the size of results, but for the fact that we had the chance to work and labor. This is another way of expressing gratitude for being alive, for existence itself.

 

This is what I often tell business owners. A business aims for profit. But even if the business does not make a profit, that’s okay. Even if there is a loss this year, that’s okay. Even so, that company still has value. Because dozens, hundreds, thousands, or even tens of thousands of employees and their families had the opportunity to work there. They could support their families because of it.

 

Don’t be disappointed if you worked hard all year and have nothing left. First of all, be thankful simply for the opportunity to work. You were able to provide for yourself and your family. Isn’t that something to be grateful for?

 

Being able to work and toil is a gift from God. It is a reason to be thankful. It’s okay if you incur losses. You can still be grateful because you are eating, drinking, and living today. Even if what you have is not enough, that’s okay. You are still working. The future may be uncertain, but that’s okay. We are thankful because we are alive today. God will lead our future in this futile world of hebel—for that we are grateful.

 

Dear friends, what circumstance are you in this Thanksgiving Sunday of 2025?

 

What are we thankful for? I am not talking about thanksgiving that comes from comparing ourselves to others and observing what we have more than others. Nor should we give thanks for conditions that allow greater blessings. The world is inherently hebel—futile and fleeting.

 

But it is precisely because of hebel that we realize that our ordinary daily life is a miraculous gift from God. Waking up in the morning, breathing, eating, talking with loved ones, working diligently in our respective positions—these are things to be thankful for.

 

In this futile life that disappears like fog, let us not focus on what we have, things we cannot take with us. Let’s not worry about an uncertain future either. Let’s live today joyfully. Let’s be thankful that we can eat, drink, and live together. Let’s thank God for the opportunity to work.

 

Today, we looked at the firm conditions of gratitude that the Teacher, a true realist, discovered in life. I pray that this firm gratitude of the theological realist will be the confession of us all as we live in this world of he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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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2~13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인간의 삶을 돌아본 지혜자의 고백 속에서 진정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할 추수감사주일에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전도서의 본문은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사라는 주제와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말씀은 조금 더 솔직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감사의 조건들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오늘의 설교는 자신을 지혜자로 소개하는 어떤 사람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의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였을까요? 그 지혜자는 무엇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지혜자가 찾은 감사는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전도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1)

 

자신을 전도자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솔로몬왕입니다. 히브리어로 ‘전도자’(קהלת[qoheleth], preacher)는 ‘설교자 또는 교사’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끌었던 왕입니다. 큰 부와 높은 명예, 명성을 누리며 지혜로운 자로 유명하였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모두 경험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전하는 지혜가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는 말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그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인간의 삶을 조망하면서 ‘헛되다’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합니다. ‘헛되다’라는 단어는 헤벨(הבל[hebel], emptiness or vanity, breath, 헛되다)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모든 것을 다 해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전하는 인생의 결론은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그의 첫마디가 ‘헤벨, 헛되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왜 헛되다고 말할까요?

 

<모든 사람의 인생은 유한성과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허무한 것입니다.>

 

첫째로 그가 인생을 회고하며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유한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죽음 앞에 있는 인간입니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전 2:16)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진 자도, 적게 가진 자도, 지혜로운 사람도, 우매한 자도 결국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2장에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소출을 풍성히 거두고 곳간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던 부자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전도자는 이러한 인간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결국 죽음은 모든 것을 허무로 만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헤벨, 허무하다’라고 외칩니다.

두 번째로 전도자는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생각합니다. 히브리어 ‘헤벨’은 ‘안개 혹은 숨결’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고 통제할 수 없으며 곧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자는 인생을 ‘헤벨’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한다고 해서 예상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전 9:11)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절감하고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들과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일어나는 경우들을 흔히 경험합니다. 애써 돈을 모아 큰 부자가 되었는데, 정작 그는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고 모은 재산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자리에 올라서 소원을 성취했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순간의 일탈과 실수로 명예를 잃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모습도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인생은 허무하다, 헤벨이다’라고 외칩니다.

 

<허무한 삶이기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허무한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죽음이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불확실성이 언제나 인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을까요? 씨를 뿌리고,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도리어 “헤벨, 인간의 허무함을 인지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인생은 어차피 헛된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염세주의를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은 헛된 것이니 포기하고 욕망을 따라 마음껏 방탕하게 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쾌락주의로도 나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짙은 안개와 같고 허무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은 전도자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놀라운 신앙의 유턴을 감행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 3:14)

 

지혜자는 ‘헤벨, 인간의 허무’가 우리에게 경외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헤벨은 “세상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지 않은 분을 붙잡아야 한다”라는 신앙의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헛되고 허망한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소소한 이야기로 전해 줍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2~13)

 

전도자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전도자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시간, 오늘이라는 현실,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말합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고 누리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더 세부적으로, 음식을 나누고 커피를 마시며 출퇴근할 때 누리는 작은 보람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역설적 메시지입니다. “헤벨, 이 세상의 삶은 허망하고 안개와도 같다. 그러니 어떡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일상과 오늘의 현실에 중심을 두라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도리어 헛되다고 말하는 일상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킵니다. 생각해 봅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짙은 안개, 헤벨 속을 우리가 걷고 있습니다. 성공도, 건강도, 재물도 내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내 손에 쥐어진 따뜻한 빵 한 조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옵니까? 그것은 짙은 안개 속에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실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안개와도 같은 불확실함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쥐고 있는 이 빵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오늘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 오늘의 나입니다. 헤벨을 깨닫는다는 것은 내가 오늘 숨을 쉬고, 밥맛을 느끼며, 땀을 흘려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나의 권리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에게 감사는 많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내가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합격했기 때문에, 성공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오늘도 내가 여전히 현재에 살아 있어서 드리는 존재의 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의 현재, 나의 존재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의 지루한 일상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기적의 현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제목이 이미 있습니다. 오늘 나의 현재가 있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며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오늘을 최선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살아 있음으로 드리는 존재의 감사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전도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허무한 인생, 안개와 같은 인생, 헤벨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현재를 기쁘게 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사서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쁨을 누리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욕망들을 성취하거나, 때로는 순간의 쾌락에 탐닉하며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쁨으로 이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쾌감이나 즐거움은 종종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 사람들의 조언 중에는 극단적인 쾌락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참으로 피폐할 뿐입니다. 전도자는 권면합니다. “네가 사는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기쁘게 살아라. 그런데 그 기쁨을 선한 일을 하는 데서 찾아라.” 인생을 기쁘게 살되, 좋은 일을 하면서 기쁨을 얻으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한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선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에 중심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

 

전도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많이 해 봤을 것입니다.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시도해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외칩니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다.” 그는 왜 이렇게 고백할까요? 그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 육체를 위한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여 얻은 기쁨은 하늘의 삶과 연결됩니다. 전도자는 헤벨의 세상에서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사람들을 돕는 기쁨을 누리며 살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일로 기쁨을 누리며 현재를 살아 내라는 지혜자의 일성입니다. 이것이 허망한 세상, 헤벨을 극복하는 길이며, 헛된 인생에 저항하는 길입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먹고 마시며 생명을 이어 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기에 감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 먼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조건입니다. ‘먹고 마신다’라는 말에는 우리의 ‘생명이 살아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감사는 먹고 마심에 있습니다.

둘째로 ‘먹고 마신다’는 말에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저 소박한 ‘일상의 삶’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사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의미를 교환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식구들 또는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눕니다. 넷째로 결핍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식탁도 먹고 마시는 또 다른 의미의 식탁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들을 대접하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조건이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전도자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물은 몇 톤의 금이나 은, 혹은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것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같은 것도 아닙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소소한 식탁입니다. 나의 생명을 이어 가게 만드는 식탁, 일터로 나가기 전에 먹는 국밥 한 그릇, 저녁에 식구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김치찌개 한 그릇,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도시락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의 의미를 알고 감사해야 한다고 전도자는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헛된 안개 같은 삶에서 수고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주어진 감사의 제목입니다.>

 

전도자는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여기서는 “수고함으로 낙을 누린다”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의미는 수고해서 얻은 열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두어들인 성과가 아니라, 수고로운 노동의 과정 그 자체를 말합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게 된 기회, 조건을 의미합니다. 내가 수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감사입니다. 수고할 수 있는 건강과 여건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노동하고 일할 기회가 있음이 감사한 일입니다.

종종 저는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기업은 이윤을 목표로 하고 있죠. 그러나 혹시라도 기업의 이윤이 많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혹시 이윤을 못 내더라도 괜찮습니다. 이윤이 적고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봅시다. 손해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기업의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직원들과 가족들이 노동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을 돌볼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얼마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로는 수많은 직원의 가정을 돌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존재 자체로도 이미 잘한 일입니다. 그 기업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우선 일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사이에 내가 먹고 살 수 있었고, 나의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손해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감사입니다. 허무한 헤벨의 세상입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추수감사주일, 여러분의 형편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까요? 남들보다 많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더 큰 복을 받기 위하여 조건으로 드리는 감사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본질은 헛됨과 안개 같은 곳일 뿐입니다. 그러나 허무 때문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며, 밥을 먹고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자리에서 수고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헤벨, 허무하고 안개와 같은 인생, 결국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다. 불투명한 미래도 걱정하지 맙시다. 오직 오늘을 기쁘게 삽시다. 선한 일을 행하며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함으로 여기며 살아갑시다. 일할 기회 주셨음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오늘 우리는 지독히도 현실주의자 같은 전도자가 찾은 단단한 감사의 조건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신학적 현실주의자의 단단한 감사가 헤벨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귀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헛된 인생에 저항하는 법” (전3:12~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93, 588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이번 주에 일상 속에서 경험한 작은 기쁨이나 감사한 순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솔로몬은 지혜, 부, 권력, 쾌락 등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깨달은 인생의 허무함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불확실성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허무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전도자는 염세주의나 쾌락주의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신앙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이 모든 인간의 헤벨(안개와 같은 인생)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세상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지 않은 분을 붙잡으라는 신앙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라며 말문을 엽니다. 죽음이 코앞에 있고 불확실성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헤벨 때문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따뜻한 빵 한 조각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안개 속에서 나를 붙드시는 분명한 선물입니다.

전도자는 두 가지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첫째,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이 이어지는 것, 소소한 일상을 평안히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는 것,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는 노동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자는 오늘을 기쁘게 살되, 그 기쁨을 선한 일을 행하는 데서 찾으라고 말합니다. 나의 쾌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이 허망한 세상을 극복하는 길이며 헛된 인생에 저항하는 방법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는 많이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살아있음 그 자체에 대한 존재의 감사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며 밥을 먹고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일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기적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누기>

1.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중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선물”로 깨닫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고백을 나누어 봅시다.

2.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존재의 감사, 살아있음의 감사를 나누고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의 영혼에 새겨 놓습니다. 헤벨과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날마다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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