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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의 마른 길은 지름길이 아니다

민수기 33:1~8, 38~39

김경진 목사

2024.09.08

<‘홍해’가 민수기에서는 여러 노정 중의 하나로 무미건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조금 지루하고 건조한 본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기까지 머물렀던 지역의 명칭들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민 33:1)

그러고 나서 출발지인 애굽의 라암셋에서부터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요단강과 모압 평지까지 그들이 거쳐 갔던 지역들의 이름이 하나씩 거명됩니다. “라암셋, 숙곳, 에담, 비하히롯, 믹돌, 애담 광야, 마라, 엘림, 홍해, 신 광야” 이렇게 이름이 이어집니다. 대략 세워 보니 약 40개의 지명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했으니, 대략 1년에 한 번씩은 짐을 싸고 거처를 옮겼을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무름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조금 긴 머무름의 시간도 있었겠지요. 40년 동안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가 40곳이나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하나씩 읽어 가던 중에 ‘이 문장에서 무슨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곳에 저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깊은 인상이 제 마음속에 박혔습니다. 그 본문은 홍해와 관련된 본문이었습니다. 첫째, 지명의 이름을 순서대로 보면 ‘홍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오늘의 본문은 홍해의 이야기를 대단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아주 평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33장이 홍해와 관련해서 전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진을 치고 (민 33:10~11)

이게 다입니다. 홍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 쉽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만한 내용입니다. 물론 지명들을 거명하고 있는 것이니까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홍해 사건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홍해 사건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자 엄청난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끊임없이 기억했고요. 다양한 성경 본문과 찬송 속에서 그들은 이 내용을 기억하며 함께 노래했습니다. 그중에 시편에 많은 본문들이 있고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본문이 시편 136편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3~15)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홍해에서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기억하고 노래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신약에서도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 11:29)

신약은 홍해의 사건을 믿음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명으로만 나열되어서 그렇지, 홍해의 기적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놀라운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며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뒤로는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 말을 탄 기마병들이 달려오고 있고 많은 군사가 칼과 창을 들고 그들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전진하려니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 그들은 오갈 데 없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모두 죽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든지 아니면 칼과 창에 맞아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보지 못했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상상할 수도 없던 길을 환하게 열어 주셨습니다. ‘바다에도 길이 있는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바다에 길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혀 있을 수 없었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바다에도 길이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열린 바닷길은 진흙탕 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마른 땅’이라고 말합니다. 달려갈 수도 있고 뛰어갈 수도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적 사건이었습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마른 길로 건넜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옛날 1962년에 개봉한 “십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라진 길로 걷고 뛰어갑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길을 마른 길이 아니라 진흙탕 길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데 사람들은 진흙을 걸어가면서 힘겹게 바닷길을 건너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또 수레바퀴가 진흙에 빠져서 끌어내느라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돕는 모습이 아주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영화에서 보여 준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의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의 장면이 저에게 너무나도 인상 깊어서 그랬는지, 저에게는 ‘마른 땅’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진흙 길을 걸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성경을 볼 때마다 ‘마른 땅’이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마른 땅’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으로, 진흙탕이야 맞다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은 현실적인가?’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더 깊어지면서 ‘마른 땅이 맞겠구나. 마른 땅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까 그 사건이 정말 있었겠구나.’라는 확신이 제 마음에 몰려왔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땅과 물의 경계를 나누신 기적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셨죠. 그리고 창조를 하실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물의 경계를 나누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에 두시고는 창조 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은 갈라지고 땅은 땅으로, 물은 물로 나누어지라”(창 1:9; 출 14:16)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물이 나뉘라고 했으니 물기도 함께 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이 임하였다면 진흙은 수분조차도 담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은 물로, 그리고 땅은 땅으로 완전히 나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묵상하는 중에 “마른 땅으로 건넜다”라는 말씀이 정말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을 더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의 사색이나 철학적인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경험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건넜는데 ‘마른 땅’을 건넙니다. 당시에는 왜 마른 땅인지 이유를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마른 땅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른 땅’으로 건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경험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홍해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종착점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출애굽기 15장은 모세와 이어지는 미리암의 노래로 우리에게 이 사건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모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콧김으로 물이 쌓이고, 파도는 언덕처럼 일어서며, 깊은 물은 바다 한가운데서 엉깁니다. (출 15:8, 새번역)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너고, 다시 홍해가 애굽의 군대를 덮치는 모습을 봅니다. 모든 백성이 홍해 주변의 어느 언덕에 서서 대단했던 애굽의 군대가 모두 수장되는 모습을 내려다봅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홍해를 건널 때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며 여러 가지 혼란스러웠던 모든 일들이 점차 잠잠해집니다. 홍해가 다시 물을 품고 잠기면서 햇볕이 비추고 평온한 바다의 물결이 다시 넘실거립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제 살았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고, 우리에겐 더 이상 어떤 위협도 없다.’라는 안도감에 함께 축하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민수기가 보여 주는 그들의 노정은 다시 살펴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도리어 홍해에서의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많은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던 많은 사람이 민수기 33장의 노정을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큰 실망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은 끊임없는 연속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때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 같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낫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고요.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되던 순간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 성공하는 놀라운 경험할 수도 있고요. 간절하던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홍해의 경험이 그런 경험이었죠. 그런 경험을 하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합니까? 모세나 미리암처럼 노래를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홍해 이야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홍해 이야기는 종착점이 아니었습니다. 홍해의 기적은 도착지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약속의 땅은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신앙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아마 파편처럼 저의 인생의 부분들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젠가 신체검사를 하고 군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때 발견되었던 병이 폐결핵과 심장병이었습니다. 그때 병을 발견했기에 의료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치료를 받고 결국은 모두 낫는 축복의 여정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낫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 지병을 계속 안고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잘 낫게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참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제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게 맞나? 아니면 약이 고친 것인가? 아니면 의료진들이 고쳐 준 것인가? 이것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제 마음에 조금 모험 정신이 생겼는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 목회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이 정도의 표적 갖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센 걸 주십시오. 보이는 증거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잘못된 기도였던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즉각 들어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희가 집에서 탕수육을 집에서 해 먹었습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부엌 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가가 보니 튀김을 튀긴 다음에 불을 끄지 않아서 그만 기름에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뜨거운 온도가 느껴졌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큰 온도였습니다. 불은 이미 천장으로 옮겨붙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이 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려가서 불이 붙은 기름을 들고 바깥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찬 공기가 다가가니까 불이 제 얼굴 쪽으로 와서 불이 저를 상하게 했고요. 아프다 보니까 한쪽으로 기울이게 되어서 기름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팔도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결국 3도 화상을 당하고 어려운 국면에 처하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을 된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진을 하나 찍어둔 게 하나 있습니다. 이때쯤 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 한 장을 찍어 남겼습니다. 제가 성형 수술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기적입니다. 저에게는 이 사건이 홍해를 건넌 사건과도 같습니다. 얼굴이 다 상할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왔을까요? 좋은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또 다른 과제와 또 다른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눈물과 또 다른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훈련의 과정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출애굽기가 홍해의 사건을 아주 놀랍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직후 찬송으로 끝난 후에 다음의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출 15:22~23, 새번역)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 땅으로 건너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물을 먹게 되었는데, 그 물이 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경험을 하고 첫 번째로 그들이 마신 물이 쓴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빠른 길이 아닌 믿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홍해의 마른 길은 종착점이 아니라 도리어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이 길은 돌아가는 ‘우회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의 길을 마른 땅으로 열어 주셨을 때, 백성들은 이 길을 달려가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 길은 지름길일 거다. 이 길로 달려가면 성공의 길로 가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달려갑니다. 그들은 언덕에 올랐고, 애굽의 군사는 다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빠른 길을 주셨구나.’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3장입니다.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을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출 13:17-18a, 새번역)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열어 주셨던 홍해의 길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우회로’였습니다. 바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쉽고 더 빠른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회로로 돌리셨습니다. 그들의 상황과 형편, 체력을 고려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체질과 능력, 그들의 한계와 믿음의 크기를 고려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우회로로 바꾸셔서 인도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회로를 통하여서 홍해로 이끄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죠.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여시고 그 길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면서 그 바닷길을 다시 묻어 버리셨습니다. 그 길을 아주 닫아 버리셨습니다. 홍해의 길은 열렸다가 닫힌 길이었습니다. 다시 닫힌 그 길은 이제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마음먹으면 돌아갈 수 있던 길입니다. 그 길을 홍해가 가로막고, 기적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홍해로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기적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 때문에 나의 모든 문제가 다 끝났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지름길로 인도하시는구나.’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과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회로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막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의 사건입니다. “이제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에게 보여 준 이 기적은 너를 향한 나의 초청이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내 손을 붙잡고 이제 함께 걸어가자.”라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안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길입니다. 하지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내할 것입니다. 홍해 가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홍해의 바닷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대단한 기적이기는 하였지만, 그 기적에 몰입해서 기적만 붙잡고 눌러앉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해 가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뒤로 하고 마라의 쓴물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곳, 한 곳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0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11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진을 치고
12 신 광야를 떠나
13 돕가에 진을 치고 돕가를 떠나 알루스에 진을 치고
14 알루스를 떠나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더라
15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
16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을 치고
17 기브롯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에 진을 치고
18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
19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
20 림몬베레스를 떠나 립나에 진을 치고
21 립나를 떠나 릿사에 진을 치고
22 릿사를 떠나 그헬라다에 진을 치고 (민 33:10~22)

그리고 또 이어집니다. 또 다른 곳, 또 다른 곳, 그리고 또 다른 곳. 우리는 그 길을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자 우리의 삶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Dry Path of the Red Sea is Not a Shortcut

Numbers 33:1-8, 38-39

Once after worship at a cell group meeting, a church member asked me,“Pastor I’m a baby Christian. But I heard a song at a funeral‘There’s a land that is fairer than day.’ The lyrics go, ‘In the sweet by and by / We shall meet on the beautiful shore / In the sweet, by and by / We shall meet on the beautiful shore.’ Are these lyrics really based on the Bible?”

The senior deaconess, the cell group leader, blocked any further questionsby saying, “Well, what hymn would not be based on the Bible? Of course it’s based on the Bible.” She probably wanted to help me out in case I was taken aback by the question.

I was a bit flustered. If I said, “The lyrics are not exactly taken from the Bible,” the senior deaconess would beembarrassed; but if I said, “Yes, it is in the Bible,” it would be an inaccurate answer. So I pondered.

I said, “I remember learning something about this. I’ll get back to you after checking it.”

Decades have passed since then. Finally I am giving the answer today. The Bible does not directly mention anything about us crossing the Jordan river or meeting on “that beautiful shore” after we die. The reason such lyrics were written is that many Christians thought their life journey resembled the story of the Israelites who escaped Egypt and conquered Canaan. In short, they interpreted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as analogous to their own life journey, their own pilgrimage.

Seen in this light, entering Canaan is to enter the Promised Land. And, for us, entering the Promised Land is to enter the Kingdom of God, which can be interpreted as entering heaven. That is why Christians came to sing,“We shall meet on the beautiful shore” when they parted with their loved ones who have passed away.

That is, the expression “to cross the Jordan after death” is an analogy taken from the Bible.

Just as we today bid farewell to our loved ones who have gone to the Lord by singing, “We shall meet on the beautiful shore,” the Israelites’Exodus in the Old Testament is a groundbreaking event and great lesson not just to the Israelites but to all who believe in God.

Even today, we continue to meditate on the Israelites’Exodus, interpreting its meaningto our faith and seeking our path of faith through the story.

One day, as I was meditating Numbers 33, our Scripture for today, many thoughts crossed my mind.

Today’s text appears rather meaningless and dry. It lists the geographical names of the places that the Israelites passed through during their journeyout of Egypt into Canaan. It describes in detail the path that the Israelites traveled for 40 years.

The passage starts like this:

“Here are the stages in the journey of the Israelites when they came out of Egypt by divisions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and Aaron.”(Numbers 33:1)

Then the text lists all the geographical names of the places that the Israelites passed by, starting from Rameses, Egypt to the plains of Moab by the Jordan.

Rameses – Succoth – Etam – Pi Hahiroth – Migdol – the plains of Etam – Marah – Elim – the Red Sea – the Desert of Sin

The list goes on. About 40 geographical names are mentioned. Since the story spans a period of 40 years, the Israelites appears to have traveled to a new place every year. In some places they would spenda short time, while in others a longperiod.

As I read down the list, my eyes rested on the Red Sea. Two thoughts crossed my mind.

First, the miracle at the Red Sea is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the Exodusstory.

Second, today’s text from Numbers does not describe this miracle as something extraordinary, but treats it as something rather ordinary. The description of the Red Sea incident in Numbers 33 is as follows:

“They left Elim and camped by the Red Sea.They left the Red Sea and camped in the Desert of Sin.”(Numbers 33:10-11)

As you can see, the miracle at the Red Sea is treated rather blandly. Of course, since the main focus of this passageis geographical names, it may be possible that the writer exercised moderation and listed only the names; but its brevity would be disappointing to anyone familiar with the miracle.

In fact, the Red Sea incident was a seminal event in history for the Israelites. They never forgot it.

Whenever they sang a psalm, they remembered this miracle in theirExodus and praised God:

“to him who divided the Red Sea asunder His love endures forever.and brought Israel through the midst of it, His love endures forever.but swept Pharaoh and his army into the Red Sea; His love endures forever.to him who led his people through the desert, His love endures forever.”(Psalm 136:13-16)

Even Hebrews in the New Testament recalls it:

“By faith the people passed through the Red Sea as on dry land; but when the Egyptians tried to do so, they were drowned.”(Hebrews 11:29)

Although today’s passage in Numbersmerely lists the geographical names, the miracle at the Red Sea is something that can never be glossed over.

The Egyptian army was at their heels trying to kill them. Imagine those soldiers with powerful weapons riding great horses. But in front of the Israelitesthere was the Red Sea. At that moment, they thought they would either all drown in the sea or be slaughtered by the Egyptian army.

At this life-and-death moment, God opened up a way, a path that was totally invisible to them. A path in the sea. In God’s eyes, there was a path even under the sea.

Furthermore, that path was not even muddy. It was dry ground. God made a path in the sea on which they could walk and run.

As I mentioned before, I couldn’t understand how this path could have been dry as I read the Bible. In 1962 the film Ten Commandments was released.

In the movie’s scenes, the ground that appears after the parting of the Red Sea is not dry but muddy. Asthey are being chased by the Egyptian army, the Israelitesstruggle to escape due to the muddy ground. In the movie, they struggle to push their carts forward because their wheels are mired in the mud.

This scene was so deeply imbedded in my memory that it was hard to properly understand the Bible’s words, “they passed through the Red Sea as on dry land.” They were puzzling to me.

‘Dry land? Unrealistic. Surely, it would have been muddy.’ This is what I thought.

But one day I realized something after quiet meditation. ‘Of course it would have been dry land! Because the Bible says it was, it really would have been dry!’

In the miracle at the Red Sea, God made boundaries between waters and made the sea stand back. God had already done such things during creation. He parted the water under the vault from the water above it. This was God’s work of creation.

So when God commanded the Red Sea to separateground from water, even the components of water would have left the ground—if God’s word is true and powerful. So even the moisture in the mud would have separated itself from the ground. That is why the Bible states that the Israelites passed through the Red Sea as on dry ground.

This miracle was not achieved bymeditation or philosophy. It was an actual event experienced by the Israelites. At the time it happened,they did not understand how the ground could be dry. They just experienced it. That is why it was dry ground.

How amazing! In Exodus 15 Moses and Miram sing a song. Moses sings of that amazing experience:

“By the blast of your nostrils the waters piled up. The surging waters stood firm like a wall; the deep waters congealed in the heart of the sea.”(Exodus 15:8)

What an amazing experience! What would they have felt when they crossed the Red Sea as on dry ground, when they saw the raging waters drown the Egyptian army, and when they sang praises to God after reaching safety?

‘Ah! We are safe! All is over. It’s a happy ending! We are safe now.’Wouldn’t they have thought this?

Yet according to the account of Numbers, this miracle was only the beginning of their journey. They had a long, long journey ahead of them.

If the crossers of the Red Sea had seen in advance their future journey as described in Numbers 33, how would they have felt? If they had traveled 40 years into the future and had seen what lay ahead of them, what would they have felt?

In life there are times when we experience God’s great grace. There are times when we experience God’s amazing presence and His providence.

We recover from terminal illnesses; we achieve great success after a total collapse; we witness miracles of having our prayers answered in amazing ways. We experience what the Israelites experienced at the Red Sea.

How astonished we are when we experience such things! How grateful are we? Like Moses and Miriam, we too create and sing praises to God, giving thanksgiving sacrifices. But the important thing to remember is that this is not the end.

The miracle at the Red Sea is not a destination. Itisnot the end point. It is not the Promised Land. The Promised Landis still far away.

We mustcontinuously strive to enter the Promised Land; we must wrestle in faith.

Exodus describes the events that happen after Miram’s song:

“Then Moses led Israel from the Red Sea and they went into the Desert of Shur. For three days they traveled in the desert without finding water.When they came to Marah, they could not drink its water because it was bitter. (That is why the place is called Marah. )”(Exodus 15:22-23)

“Marah” means “bitter.” After the Red Sea incident, the Israelites tasted bitterness. This is life. This is our journey of faith.

Let’s think about one more thing.

The dry path under the Red Sea was not a destination; it was in fact a long, roundabout way. That is, the path that God opened up for the Israelites after a great miracle was not a shortcut.

We may think that the path God opens up for us after a miracle would surely be a shortcut. But God’s thoughts are different.

The Bible lets us in on them:

“When Pharaoh let the people go, God did not lead them on the road through the Philistine country, though that was shorter. For God said, ‘If they face war, they might change their minds and return to Egypt.’So God led the people around by the desert road toward the Red Sea.”(Exodus 13:17-18a)

The road God opened up for the Israelites after the Red Sea miracle was a roundabout way. After crossing the Red Sea, God closed the path behind them. After the Red Sea parted, they crossed. But after crossing that path, the waters buried it.

We must deeply meditate on this part. On one hand, the incident at the Red Sea was an event that completely blocked the path they had previously taken. Now they had no choice but to take a roundabout way.

They can no longer return to Egypt. The waters have blockedthe returning path altogether. Now they cannot even choose the path to Philistine that lay north of Egypt. The Red Sea was blocking it.

Dear Church, have you crossed the Red Sea? Have you experienced an amazing miracle, God’s powerful hand? You must not remain there. That amazing grace, that miracle at the Red Sea is God’s sign forbidding you to return to Egypt. At the same time, it is God’s invitation to walk with Him.

We have yet a long way to go to our destination. But that path is safe. Because God is with us. It will be a path in the wilderness. But God’s pillars of cloud and fire will guide us.

If the Israelites had remained at the Red Sea, they would never have been called God’s people. Although the miracle of the parting of the Red Sea was a truly great one, the Israelites would nothave received Canaan as their Promise Land if they had just clung to that miracle.

Therefore, we must leave the Red Sea and set out, once again, on ourpilgrimage:

“They left Elim and camped by the Red Sea.
They left the Red Sea and camped in the Desert of Sin.
They left the Desert of Sin and camped at Dophkah.
They left Dophkah and camped at Alush.
They left Alush and camped at Rephidim, where there was no water for the people to drink.
They left Rephidim and camped in the Desert of Sinai.
They left the Desert of Sinai and camped at Kibroth Hattaavah.
They left Kibroth Hattaavah and camped at Hazeroth.
They left Hazeroth and camped at Rithmah.
They left Rithmah and camped at Rimmon Perez.
They left Rimmon Perez and camped at Libnah.
They left Libnah and camped at Rissah.
They left Rissah and camped at Kehelathah.”(Numbers 33:10-22)

At the end of our pilgrimage, we will cross the Jordan and finally reach our Promised Land, Can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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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3:1~8

1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3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진을 치고

6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7

에담을 떠나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치고

8

하히롯 앞을 떠나 광야를 바라보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 에담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마라에 진을 치고

민수기 33:38~39

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39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

<‘홍해’가 민수기에서는 여러 노정 중의 하나로 무미건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조금 지루하고 건조한 본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기까지 머물렀던 지역의 명칭들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민 33:1)

그러고 나서 출발지인 애굽의 라암셋에서부터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요단강과 모압 평지까지 그들이 거쳐 갔던 지역들의 이름이 하나씩 거명됩니다. “라암셋, 숙곳, 에담, 비하히롯, 믹돌, 애담 광야, 마라, 엘림, 홍해, 신 광야” 이렇게 이름이 이어집니다. 대략 세워 보니 약 40개의 지명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했으니, 대략 1년에 한 번씩은 짐을 싸고 거처를 옮겼을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무름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조금 긴 머무름의 시간도 있었겠지요. 40년 동안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가 40곳이나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하나씩 읽어 가던 중에 ‘이 문장에서 무슨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곳에 저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깊은 인상이 제 마음속에 박혔습니다. 그 본문은 홍해와 관련된 본문이었습니다. 첫째, 지명의 이름을 순서대로 보면 ‘홍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오늘의 본문은 홍해의 이야기를 대단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아주 평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33장이 홍해와 관련해서 전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진을 치고 (민 33:10~11)

이게 다입니다. 홍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 쉽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만한 내용입니다. 물론 지명들을 거명하고 있는 것이니까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홍해 사건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홍해 사건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자 엄청난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끊임없이 기억했고요. 다양한 성경 본문과 찬송 속에서 그들은 이 내용을 기억하며 함께 노래했습니다. 그중에 시편에 많은 본문들이 있고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본문이 시편 136편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3~15)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홍해에서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기억하고 노래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신약에서도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 11:29)

신약은 홍해의 사건을 믿음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명으로만 나열되어서 그렇지, 홍해의 기적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놀라운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며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뒤로는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 말을 탄 기마병들이 달려오고 있고 많은 군사가 칼과 창을 들고 그들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전진하려니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 그들은 오갈 데 없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모두 죽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든지 아니면 칼과 창에 맞아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보지 못했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상상할 수도 없던 길을 환하게 열어 주셨습니다. ‘바다에도 길이 있는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바다에 길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혀 있을 수 없었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바다에도 길이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열린 바닷길은 진흙탕 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마른 땅’이라고 말합니다. 달려갈 수도 있고 뛰어갈 수도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적 사건이었습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마른 길로 건넜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옛날 1962년에 개봉한 “십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라진 길로 걷고 뛰어갑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길을 마른 길이 아니라 진흙탕 길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데 사람들은 진흙을 걸어가면서 힘겹게 바닷길을 건너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또 수레바퀴가 진흙에 빠져서 끌어내느라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돕는 모습이 아주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영화에서 보여 준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의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의 장면이 저에게 너무나도 인상 깊어서 그랬는지, 저에게는 ‘마른 땅’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진흙 길을 걸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성경을 볼 때마다 ‘마른 땅’이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마른 땅’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으로, 진흙탕이야 맞다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은 현실적인가?’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더 깊어지면서 ‘마른 땅이 맞겠구나. 마른 땅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까 그 사건이 정말 있었겠구나.’라는 확신이 제 마음에 몰려왔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땅과 물의 경계를 나누신 기적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셨죠. 그리고 창조를 하실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물의 경계를 나누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에 두시고는 창조 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은 갈라지고 땅은 땅으로, 물은 물로 나누어지라”(창 1:9; 출 14:16)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물이 나뉘라고 했으니 물기도 함께 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이 임하였다면 진흙은 수분조차도 담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은 물로, 그리고 땅은 땅으로 완전히 나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묵상하는 중에 “마른 땅으로 건넜다”라는 말씀이 정말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을 더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의 사색이나 철학적인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경험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건넜는데 ‘마른 땅’을 건넙니다. 당시에는 왜 마른 땅인지 이유를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마른 땅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른 땅’으로 건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경험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홍해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종착점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출애굽기 15장은 모세와 이어지는 미리암의 노래로 우리에게 이 사건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모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콧김으로 물이 쌓이고, 파도는 언덕처럼 일어서며, 깊은 물은 바다 한가운데서 엉깁니다. (출 15:8, 새번역)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너고, 다시 홍해가 애굽의 군대를 덮치는 모습을 봅니다. 모든 백성이 홍해 주변의 어느 언덕에 서서 대단했던 애굽의 군대가 모두 수장되는 모습을 내려다봅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홍해를 건널 때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며 여러 가지 혼란스러웠던 모든 일들이 점차 잠잠해집니다. 홍해가 다시 물을 품고 잠기면서 햇볕이 비추고 평온한 바다의 물결이 다시 넘실거립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제 살았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고, 우리에겐 더 이상 어떤 위협도 없다.’라는 안도감에 함께 축하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민수기가 보여 주는 그들의 노정은 다시 살펴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도리어 홍해에서의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많은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던 많은 사람이 민수기 33장의 노정을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큰 실망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은 끊임없는 연속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때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 같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낫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고요.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되던 순간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 성공하는 놀라운 경험할 수도 있고요. 간절하던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홍해의 경험이 그런 경험이었죠. 그런 경험을 하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합니까? 모세나 미리암처럼 노래를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홍해 이야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홍해 이야기는 종착점이 아니었습니다. 홍해의 기적은 도착지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약속의 땅은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신앙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아마 파편처럼 저의 인생의 부분들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젠가 신체검사를 하고 군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때 발견되었던 병이 폐결핵과 심장병이었습니다. 그때 병을 발견했기에 의료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치료를 받고 결국은 모두 낫는 축복의 여정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낫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 지병을 계속 안고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잘 낫게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참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제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게 맞나? 아니면 약이 고친 것인가? 아니면 의료진들이 고쳐 준 것인가? 이것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제 마음에 조금 모험 정신이 생겼는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 목회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이 정도의 표적 갖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센 걸 주십시오. 보이는 증거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잘못된 기도였던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즉각 들어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희가 집에서 탕수육을 집에서 해 먹었습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부엌 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가가 보니 튀김을 튀긴 다음에 불을 끄지 않아서 그만 기름에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뜨거운 온도가 느껴졌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큰 온도였습니다. 불은 이미 천장으로 옮겨붙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이 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려가서 불이 붙은 기름을 들고 바깥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찬 공기가 다가가니까 불이 제 얼굴 쪽으로 와서 불이 저를 상하게 했고요. 아프다 보니까 한쪽으로 기울이게 되어서 기름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팔도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결국 3도 화상을 당하고 어려운 국면에 처하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을 된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진을 하나 찍어둔 게 하나 있습니다. 이때쯤 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 한 장을 찍어 남겼습니다. 제가 성형 수술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기적입니다. 저에게는 이 사건이 홍해를 건넌 사건과도 같습니다. 얼굴이 다 상할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왔을까요? 좋은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또 다른 과제와 또 다른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눈물과 또 다른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훈련의 과정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출애굽기가 홍해의 사건을 아주 놀랍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직후 찬송으로 끝난 후에 다음의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출 15:22~23, 새번역)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 땅으로 건너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물을 먹게 되었는데, 그 물이 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경험을 하고 첫 번째로 그들이 마신 물이 쓴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빠른 길이 아닌 믿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홍해의 마른 길은 종착점이 아니라 도리어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이 길은 돌아가는 ‘우회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의 길을 마른 땅으로 열어 주셨을 때, 백성들은 이 길을 달려가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 길은 지름길일 거다. 이 길로 달려가면 성공의 길로 가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달려갑니다. 그들은 언덕에 올랐고, 애굽의 군사는 다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빠른 길을 주셨구나.’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3장입니다.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을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출 13:17-18a, 새번역)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열어 주셨던 홍해의 길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우회로’였습니다. 바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쉽고 더 빠른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회로로 돌리셨습니다. 그들의 상황과 형편, 체력을 고려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체질과 능력, 그들의 한계와 믿음의 크기를 고려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우회로로 바꾸셔서 인도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회로를 통하여서 홍해로 이끄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죠.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여시고 그 길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면서 그 바닷길을 다시 묻어 버리셨습니다. 그 길을 아주 닫아 버리셨습니다. 홍해의 길은 열렸다가 닫힌 길이었습니다. 다시 닫힌 그 길은 이제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마음먹으면 돌아갈 수 있던 길입니다. 그 길을 홍해가 가로막고, 기적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홍해로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기적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 때문에 나의 모든 문제가 다 끝났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지름길로 인도하시는구나.’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과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회로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막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의 사건입니다. “이제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에게 보여 준 이 기적은 너를 향한 나의 초청이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내 손을 붙잡고 이제 함께 걸어가자.”라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안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길입니다. 하지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내할 것입니다. 홍해 가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홍해의 바닷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대단한 기적이기는 하였지만, 그 기적에 몰입해서 기적만 붙잡고 눌러앉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해 가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뒤로 하고 마라의 쓴물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곳, 한 곳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0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11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진을 치고
12 신 광야를 떠나
13 돕가에 진을 치고 돕가를 떠나 알루스에 진을 치고
14 알루스를 떠나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더라
15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
16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을 치고
17 기브롯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에 진을 치고
18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
19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
20 림몬베레스를 떠나 립나에 진을 치고
21 립나를 떠나 릿사에 진을 치고
22 릿사를 떠나 그헬라다에 진을 치고 (민 33:10~22)

그리고 또 이어집니다. 또 다른 곳, 또 다른 곳, 그리고 또 다른 곳. 우리는 그 길을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자 우리의 삶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9월 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홍해의 마른 길은 지름길이 아니다” (민 33장 1-8, 38-39)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53장, 37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민 33장 1-8, 38-39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9월 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의 은혜를 기적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큰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지이자 종착점일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거쳐 갔던 여정이 지명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략 40개의 지명이 등장하는데 40년 동안의 여정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어딘가로 이동한 듯 보입니다. 여러 지명의 목록을 읽으면서 홍해라는 지명에서 두 가지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홍해의 큰 기적이 출애굽 이야기의 초반부에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의 본문이 홍해의 이야기를 대단하게 묘사하기보다는 평범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사건은 길이길이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고 앞에는 넘실거리는 홍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주셨고 그들은 마른 땅을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가 보여주는 그들의 노정을 훗날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와 섭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아직도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까지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고 신앙의 씨름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홍해의 마른 길은 먼 길을 돌아가는 우회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은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신호인 동시에 이제 나와 함께 가자는 하나님의 초청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길이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홍해 가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은 대단한 기적이지만 그 기적만 붙잡고 살았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해 가에서 일어나서 다시 순례를 떠나야 합니다. 순례의 마지막에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를 것입니다.

 

나누기

  • 하나님의 큰 은혜를 기적적으로 체험했던 적이 있나요? 각자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기적을 경험한 이후에 신앙생활이라는 지속적인 여정에서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깨닫게 된 바가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찬양합니다. 놀라운 기적의 자리, 홍해 가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손 붙잡고 광야로 나아가 그 광야의 학교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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