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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길

마가복음 1:14~20

김경진 목사

2024.04.2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하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여러분에게 익숙한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요청과 초청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 나라의 도래에 대하여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 다른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고 영원하지 않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악하며, 모순으로 가득하고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세상이며, 귀신 들려 고통스러워 절규하고 있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널려 있는 세상입니다. 악한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세상의 권력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희망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역 속에서 어떤 다른 철인들처럼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어떤 지혜자처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열 가지, 스무 가지 비결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주님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철인들이나 지혜자, 종교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특별한 말씀이며 계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b)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이고, 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는 결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돌아서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야말로 좋은 소식 아니겠습니까? ‘굿뉴스’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한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굿뉴스’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암 진단을 받았다면, 복음은 암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복음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처참한 현실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나의 관계, 인간의 관계가 뒤틀어져 있는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들이 뒤틀어져 버렸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으며 모든 것들이 불행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복음이란 이와 같은 현실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굿뉴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화해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다시 살아날 소망을 갖게 되었고, 이 땅이 아닌 영원한 나라에 살 수 있는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이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임재로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쩌면 이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지금도 이끌고 계시는 성령님, 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 어떤 희망을 갖게 되었는지, 그것을 한마디로 복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복음을 믿는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믿는다’라는 의미가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복음의 내용을 믿는 것에 대해서 저는 종종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인용하며 여러분께 말씀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문장을 한번 읽으면서 참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문 21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문 21.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대답은 이러합니다.

 

답.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확실한 지식이고, 동시에 온전한 신뢰로서 이것은 성령께서 복음으로 내 안에 창조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죄의 용서,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주셨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문21)

 

“믿음이란 지식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제시하신 모든 것이 참이라고 내 지식이, 내 지혜가, 나의 머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 번째 단계이죠.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두 번째 단계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온전한 신뢰”입니다. 머리로는 지식이, 마음으로는 신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신뢰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내가 공부해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신뢰는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복음으로 내 안에 창조하시는 것으로서” 모든 복음에 대한 내용이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죄의 용서,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주셨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주어진 순전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내가 스스로 이해하는 것으로는 믿음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창조하시는 전적인 신뢰가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믿음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전심으로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아, 나는 이러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어.’라고 생각하십니다. 또,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나는 이 모든 복잡한 내용들을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지 못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의 고백을 하실 때가 종종 있지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오늘 드리는 말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경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말씀으로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선언하실 때 과연 그 당시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순서상으로는 복음의 내용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막 시작하는 시점이지만, 복음의 내용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으며, 아직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의 내용이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음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가’라는 저자가 마가복음의 전체를 다 요약하는 말로서 이 모든 말씀을 믿으라는 의미로 예수님의 언어에 ‘복음을 믿으라’는 말을 담아 놓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적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말씀이 적당한 설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사람들 앞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말씀을 하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복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믿으라”라는 말씀의 뜻을 먼저 풀어 보겠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믿는다’라는 말은 ‘피스튜오’(πιστεύω, pisteuó)라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피스튜에테 엔’(πιστεύετε ἐν, pisteuete en)이라는 드문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진술에 대해서 동의한다, 어떤 진술을 신뢰한다’라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고 헌신한다’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믿으라”라는 이 말은 ‘복음의 내용에 동의하라’는 말보다는 ‘복음에 전적으로 몸을 던져라, 전적으로 헌신하라’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복음은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막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마가복음 1장 1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복음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인 나를 믿으라”라는 말씀으로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원어의 의미대로 보면 “예수님께 전심으로 헌신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던져 보아라.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보아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생애의 시작에서 세상의 종말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맡겨 보라고 말씀합니다.

 

<완성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복음을 믿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성경에서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회개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특별히 예수님께 복음을 믿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뭇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막 1:16~18)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겨 보아라, 헌신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그 사례를 이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모든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가 회개하는 것이며 복음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회개하는 일을 어떤 종교적인 예배의 행위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개의 문장을 올려놓고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기도문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도 사도신경이나 어떤 조문을 외우거나 동의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따라오라”라는 말씀에 따라서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것, 그냥 모험을 거는 것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모험의 길로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총체적인 구원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였죠. 적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성령에 세례를 받기까지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지, 복음의 내용이 어떻게 담기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잘못 이해하고 또다시 잘못 이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과정이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과정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은 완성된 모습으로 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나의 과정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찾아가서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내어 쫓으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많은 병자들을 찾아가시고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따라가면서 보았고 또다시 확인하고 경험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복음을 믿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었고,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 갔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보여 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말씀 한 자락 붙잡고 그저 따라갈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이 나에게 없다’라고 걱정하십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조차 나는 확실하게 믿기 어렵다. 지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 신뢰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믿으라”라는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이루신 다음에 선포하신 내용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어쩌면 이런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믿어 보아라. 나를 믿고 한번 따라와 보아라. 그러면 너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너는 눈치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를 한번 믿고 따라와 보아라.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일생일벗’이라는 큰 주제를 앞에 두고 노력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지요. 어떻게 하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벗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참 어렵습니다. ‘복음이 무엇이지?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지? 복음의 내용을 어떻게 잘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와 결과, 이것을 내가 어떻게 잘 설득하고 전해 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생길까?’를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걱정이 밀려옵니다. ‘나는 잘할 수 없어. 이 일을 이룰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한번 믿어 보아라. 복음을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서로 다른 두 말씀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개’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한 여인이 두 남자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를 잘 설득하고 돌려보내고, 그 후에 내가 선택한 남성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삶을 가지겠습니까? 두 남자가 함께 있다면 한 가지 행동만 하면 되지요.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남겨진 남자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도, 복음을 믿는 것도 한 덩어리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는 순간, 세상에서 살던 삶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어떻게, 어떤 내용을 회개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냥 나를 믿고 내 손을 한번 잡아 보아라.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자.”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말씀만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놓은 말씀을 한번 믿고 따라와 보렴. 내가 했던 말을 의지하고 너의 인생을 걸어 보렴. 그러면 너는 병자들이 낫고 귀신들이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재하는 모습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결국 복음을 믿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 붙잡고 그 길을 따라 나서는 것, 이것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의 참뜻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수많은 하늘나라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며, 신앙인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 어렵지 않지요? “복음을 믿으라”, 어렵지 않습니다. 복음의 내용, 복음의 고백, 이것들이 혹시라도 내게 부족하다고 여겨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한 자락 붙잡고 그저 따라가는 것, 이것이 복음을 믿는 길입니다. 이 길로 우리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을 가진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Road to Repentance and Believing the Good News

 

Mark 1:14-20

 

“The time has come.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Mark 1:15)

 

These were the first words spoken by Jesus when He started His public ministry. They may be said to be the first of His quotations. These words reveal the nature of His public ministry.

 

First of all, Jesus declares the coming of a new kingdom. “The time has come.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He is talking about an entirely different world or realm that is not of this world. Furthermore, He says that the time has come.

 

Jesus knew that the kingdom of this world was neither perfect nor everlasting. It is imperfect, evil, full of discrepancies, and ruled by unrighteousness. It is a place where people groan under illnesses and cry out in pain becausethey are possessed by demons.

 

Somepeoplequestion how this world can be so discrepant and unrighteous if God exists. But the Bible points out that the devastation and destruction of this world are the result of man’s desires and sins.

 

Then how shouldman live in this world?

 

Our Lord did not teach people to “know thyself” or to “control your minds with meditation.” Nor did He teach the “secrets to living a happy life on earth.”

 

So, what must we do as we await the Kingdom of God in this broken world? Our Lord says to us clearly,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Therefore, if there are two things Jesus wants from us, they are repentance and believing in the good news. The only way to have hope in this hopeless world is to repent and to believe the good news.

 

Then why does Jesus tell us to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As I mentioned earlier, it is because we have created this distorted, evil, discrepant, and hopeless world. Jesus’ call for repentance means that we must completely turn from our previous ways.

 

These days global warming has become a grave concern. Many people warn that if things go unchecked, humanity’s very survival will be threatened. Yet, we have not turned from our ways; we still lead selfish lives, pursuing greed. To solve the problem of global warming, we must each lay down our greed, but we cannot.

 

Jesus’ words to repent is not just a command to return to Him, but point to a broader and more fundamental problem of man.

 

Jesus is proclaiming that the way man has lived till now cannot make this world happy. A decent house gives us comfort. It seems coal, oil, and nuclear energy have benefited our lives. But at the end of such a life,there ultimately lies despair.

 

In the past it was hard to spot this hopeless future. Now it isn’t. It’s not just the climate. It also applies to the ways, customs, values, worldviews, and ideologies of this world. It appears that the world is advancing with scientific and medical progress; but the fact is, man’s evil nature is more powerfully at work.

 

Some countries encourage perverse cultures of sex and marriage, legalize drugs, and endorse evil customs in the name of equality and justice, throwing the world into a deeper mire.

 

Jesus’ words to repent is His command to return to Him; but at the same time it is His command and proclamation to man to return to where man ought to be, that is, whom God has created him to be.

 

Our Lord is telling us to return to man’s original place, the role that God gave us when He created the whole world and put us in charge of managing it. Our Lord is telling us to return to the place of God’s children whom He created lovingly.

 

In a word, this world has no hope as it is. Hope will appear only when families, societies, and nations completely turn from the way they have lived till now. This is repentance. We must repent.

 

Our Lord’s command to repent has two aspects. First, as mentioned earlier, repentance allows us an opportunity, delaying the destruction and judgement of this world. At the same time, it gives us the qualification to enter the new Kingdom of God. Only the one who has repented will enter the Kingdom of God. Only the one who has escaped his/her previous way of living and has transformed into a new being that leads a God-centered life and glorifies Him will be qualified to enter the new Kingdom.

 

Second, our Lord says, “believe the good news.”

 

This makes us ask, “What is the good news and what does it mean to believe it?”

 

First, brothers and sisters, what is the good news? The good news is not easy to define in one word. We come to cherish the good news when we deeply consider how utterly devastating our reality is. If we were diagnosed with cancer, the good news would be news that a drug that can cure our disease has been developed. An explanation on how we can be cured will be good news.

 

In short, the good news is the fact that we have been made righteous through the substitutionary death of Jesus Christ, been reconciled with God, and become God’s children.

 

The good news is the fact that although we were destined to die, we now have the hope of being raised from death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and have become a citizen of God’s eternal Kingdom.

 

Furthermore, the good news is that through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the presence of the Holy Spirit, God carries out His rule of salvation on earth. This is the good news to us.

 

In short, theApostles’ Creed that we often recite may be said to be the core of the good news.

 

Then what does it mean to “believe the good news”? We may define it as accepting the contents of the good news in our hearts and agreeing to it with our intellects. This will be the primary interpretation of believing the good news.

 

But somepeople find it difficult to confess this faith. They feel uncomfortable about confessing something they cannot fully accept orbelieve becauseit feels like lying. If you feel this way, I hope you will pay extra attention to today’s message.

 

First, let’s ask this question. Jesus declared “believe the good news” as His first words when He started His public ministry. But in terms of the order of events, it must be pointed out thatthe contents of the good news haveyet to be created—that i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good news as we know it.

 

Jesus has not been crucified yet; He has yet to be killed; neither has He beenresurrected. Yet Jesus commands the people to believe the good news.

 

There is also another point to consider. After His command to repent and tobelieve the good news, there is no mention in the Bible of anyone repenting or coming to believe the good news in the way that we understand repentance and the good news. Jesus’ words appear to be just some“pie in the sky.”

 

What then in the true meaning of Jesus command to “believe the good news”?

 

Before we try to define “the good news,” let’s first explore the meaning of “to believe.”

 

In the original Greek text, “to believe” is “πιστεύω(pisteuó).” A rare form of this verb, “πιστεύετε ἐν (pisteuete en),” is used, which means “to wholeheartedly commitoneself to the object of one’sfaith.”

 

Thus, the meaning of “to believe the good news”may be interpreted to mean“to wholeheartedly commit oneself to the good news.”

 

Then what is the good news? As mentioned earlier, at this stage, the good news has yet toinclude the whole contents of Jesus’ salvation; yet Jesus’ statement about the good news was the first words He spoke in His public ministry.

 

The answer can be found in Mark 1:1:

 

“The beginning of the good news about Jesus the Messiah, the Son of God, […]” (Mark 1:1)

 

The Gospel of Mark testifies tha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is Himself the good news.

 

Therefore, Jesus’ command to “believe the good news” is a command to “believe in Jesus Christ.” Jesus is telling us to wholeheartedly commit ourselves to Him.

 

Then what does it mean, specifically, to believe the good news, to believe Jesus? After telling the people to repent andto believe the good news, this is what Jesus says to Peter and the other disciples:

 

“As Jesus walked beside the Sea of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casting a net into the lake, for they were fishermen.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out to fish for people.’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Mark 1:16-18)

 

Believing the good news, Jesus, is to leave everything and to follow Jesus. The person who does this is the one who has repented and believes the good news. Mark does not explain repentance as a religious act or a certain act of worship. And when Jesus told the people to believe the good news, He did not mention anything about memorizing, intellectually agreeing to, or accepting a certain creed.

 

Jesus’ command to repent and to believe the good news is just one, simple message. It means to follow Jesus’ words into a path of adventure. It is to follow and obey His words simply because He has told us to follow Him.

 

In fact, according to Mark, the disciples had yet to see the whole picture of Jesus’ salvation. Well, at least, not until they saw His crucifixion. No, actually, not until they saw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to be precise.

 

In short, the disciples’ repentance and belief in the good news were a process.

 

After Jesus called His disciples, He cast out evil spirits. He also healed many sick anddemon-possessed people. To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is to follow Him and to witness what He does next to Him.

 

What the disciples did was to take part in Jesus’ ministry and experience a new world through it.

 

As they followed Jesus, they watched and experienced how the Kingdom of God came to earth through Christ. This was the repentance and belief in the good news displayed by the disciples.

 

Many people worry about their lack of faith. They are troubled about not being able to confess with certainty that they believeeverything in the Apostles’ Creed.

 

However, we must deeply consider the fact that Jesus did not declare the words,“believe the good news,”after accomplishing all that He came to do.

 

So His words mean this: ‘Just trust and follow Me. Then you will see for yourself. You will see what happens. Just hold My hand and follow Me. I will make you into a person you have never dreamed of.’

 

This is the very meaning of Jesus’command,“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Therefore, repentance is not something we can do with our own might. If we sincerely believe and follow Jesus, repentance will come naturally. Repentance and belief in the good news are two sides of a coin.

 

Let’s say a woman can’t decide between two men. But she has to pick one. The moment she holds the hand of one of those guys, she has nothing to do with the other; neither can she say anything to him. It is the same with us when we choose Jesus. The moment we grab His hand, we leave behind the world and hold onto the Kingdom of God. This repentance.

 

Today Jesus speaks to us,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Trust and follow Me, the good news itself and the beginning of the good news. You will see Me heal the suffering in this world. You will see those oppressed by evil spirits and by the powers of this world set free.

 

Believe in Me. Come with Me.

 

Dear Church, believing the good news and repenting is not as difficult as we think. It is to hold on to the word of our Lord and to follow that path. This is repentance, a transition to a new life. This is to believe in the good news, to believe in Jesus.

 

When we believe in Jesus, we will have countless experiences of the Kingdom of God. Jesus said the Kingdom of God is not in word, but in power. Likewise, we will experience the power of God that comes from believing in Christ. This is faith, the life of the believer.

 

It is the reason we believe in Christ as we live in thi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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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하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여러분에게 익숙한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요청과 초청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 나라의 도래에 대하여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 다른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고 영원하지 않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악하며, 모순으로 가득하고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세상이며, 귀신 들려 고통스러워 절규하고 있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널려 있는 세상입니다. 악한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세상의 권력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희망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역 속에서 어떤 다른 철인들처럼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어떤 지혜자처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열 가지, 스무 가지 비결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주님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철인들이나 지혜자, 종교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특별한 말씀이며 계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b)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이고, 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는 결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돌아서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야말로 좋은 소식 아니겠습니까? ‘굿뉴스’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한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굿뉴스’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암 진단을 받았다면, 복음은 암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복음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처참한 현실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과 나의 관계, 인간의 관계가 뒤틀어져 있는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들이 뒤틀어져 버렸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으며 모든 것들이 불행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복음이란 이와 같은 현실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굿뉴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화해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다시 살아날 소망을 갖게 되었고, 이 땅이 아닌 영원한 나라에 살 수 있는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이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임재로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쩌면 이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지금도 이끌고 계시는 성령님, 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 어떤 희망을 갖게 되었는지, 그것을 한마디로 복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복음을 믿는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믿는다’라는 의미가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복음의 내용을 믿는 것에 대해서 저는 종종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인용하며 여러분께 말씀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문장을 한번 읽으면서 참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문 21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문 21.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대답은 이러합니다.

 

답.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확실한 지식이고, 동시에 온전한 신뢰로서 이것은 성령께서 복음으로 내 안에 창조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죄의 용서,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주셨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문21)

 

“믿음이란 지식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제시하신 모든 것이 참이라고 내 지식이, 내 지혜가, 나의 머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 번째 단계이죠.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두 번째 단계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온전한 신뢰”입니다. 머리로는 지식이, 마음으로는 신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신뢰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내가 공부해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신뢰는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복음으로 내 안에 창조하시는 것으로서” 모든 복음에 대한 내용이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죄의 용서,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주셨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주어진 순전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내가 스스로 이해하는 것으로는 믿음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창조하시는 전적인 신뢰가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믿음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전심으로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아, 나는 이러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어.’라고 생각하십니다. 또,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나는 이 모든 복잡한 내용들을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지 못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의 고백을 하실 때가 종종 있지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오늘 드리는 말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경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말씀으로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선언하실 때 과연 그 당시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순서상으로는 복음의 내용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막 시작하는 시점이지만, 복음의 내용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으며, 아직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의 내용이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음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가’라는 저자가 마가복음의 전체를 다 요약하는 말로서 이 모든 말씀을 믿으라는 의미로 예수님의 언어에 ‘복음을 믿으라’는 말을 담아 놓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적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말씀이 적당한 설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사람들 앞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말씀을 하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복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믿으라”라는 말씀의 뜻을 먼저 풀어 보겠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믿는다’라는 말은 ‘피스튜오’(πιστεύω, pisteuó)라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피스튜에테 엔’(πιστεύετε ἐν, pisteuete en)이라는 드문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진술에 대해서 동의한다, 어떤 진술을 신뢰한다’라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고 헌신한다’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믿으라”라는 이 말은 ‘복음의 내용에 동의하라’는 말보다는 ‘복음에 전적으로 몸을 던져라, 전적으로 헌신하라’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복음은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막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마가복음 1장 1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복음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인 나를 믿으라”라는 말씀으로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원어의 의미대로 보면 “예수님께 전심으로 헌신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던져 보아라.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보아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생애의 시작에서 세상의 종말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맡겨 보라고 말씀합니다.

 

<완성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복음을 믿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성경에서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회개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특별히 예수님께 복음을 믿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뭇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막 1:16~18)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겨 보아라, 헌신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그 사례를 이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모든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가 회개하는 것이며 복음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회개하는 일을 어떤 종교적인 예배의 행위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개의 문장을 올려놓고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기도문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도 사도신경이나 어떤 조문을 외우거나 동의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따라오라”라는 말씀에 따라서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것, 그냥 모험을 거는 것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모험의 길로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총체적인 구원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였죠. 적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성령에 세례를 받기까지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지, 복음의 내용이 어떻게 담기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잘못 이해하고 또다시 잘못 이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과정이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과정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은 완성된 모습으로 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나의 과정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찾아가서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내어 쫓으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많은 병자들을 찾아가시고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따라가면서 보았고 또다시 확인하고 경험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복음을 믿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었고,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 갔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보여 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말씀 한 자락 붙잡고 그저 따라갈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이 나에게 없다’라고 걱정하십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조차 나는 확실하게 믿기 어렵다. 지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 신뢰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믿으라”라는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이루신 다음에 선포하신 내용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어쩌면 이런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믿어 보아라. 나를 믿고 한번 따라와 보아라. 그러면 너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너는 눈치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를 한번 믿고 따라와 보아라.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일생일벗’이라는 큰 주제를 앞에 두고 노력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지요. 어떻게 하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벗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참 어렵습니다. ‘복음이 무엇이지?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지? 복음의 내용을 어떻게 잘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와 결과, 이것을 내가 어떻게 잘 설득하고 전해 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생길까?’를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걱정이 밀려옵니다. ‘나는 잘할 수 없어. 이 일을 이룰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한번 믿어 보아라. 복음을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서로 다른 두 말씀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개’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한 여인이 두 남자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를 잘 설득하고 돌려보내고, 그 후에 내가 선택한 남성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삶을 가지겠습니까? 두 남자가 함께 있다면 한 가지 행동만 하면 되지요.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남겨진 남자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도, 복음을 믿는 것도 한 덩어리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는 순간, 세상에서 살던 삶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어떻게, 어떤 내용을 회개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냥 나를 믿고 내 손을 한번 잡아 보아라.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자.”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말씀만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놓은 말씀을 한번 믿고 따라와 보렴. 내가 했던 말을 의지하고 너의 인생을 걸어 보렴. 그러면 너는 병자들이 낫고 귀신들이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재하는 모습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결국 복음을 믿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 붙잡고 그 길을 따라 나서는 것, 이것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의 참뜻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수많은 하늘나라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며, 신앙인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 어렵지 않지요? “복음을 믿으라”, 어렵지 않습니다. 복음의 내용, 복음의 고백, 이것들이 혹시라도 내게 부족하다고 여겨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한 자락 붙잡고 그저 따라가는 것, 이것이 복음을 믿는 길입니다. 이 길로 우리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을 가진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4월 28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길” (막 1장 14~20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66장, 26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막 1장 14~20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4월 2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 말씀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말씀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한 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회개하는 일과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희망 없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먼저,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회개해야 할까요? 모순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우리 인간이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의미도 있지만, 보다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에서 완전히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결코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이 세상의 파멸과 심판을 늦추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동시에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이 되기도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음을 믿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복음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전심으로 헌신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모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하나이며 단순합니다. 제자들이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복음, 곧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믿고, 회개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길로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수많은 하늘나라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누기

 

  1. 우리는 모순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피폐함과 망가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2.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의 삶에서 완전히 돌아서야 한다면, 우리가 돌이켜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오늘 주님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 순례의 길을 떠나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이며, 복음을 믿는 길이며, 회개의 길임을 늘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며, 믿음의 신비를 늘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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