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희생으로 이룬 정의
<사람은 누구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여러분 정의가 무엇일까요? 너무 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논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주제가 결코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정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Justice’는 로마 신화의 정의를 담당하는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세상 법정에 가면 법정의 중앙이나 앞부분에 유스티티아의 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스티티아의 상은 천칭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두 번쯤은 보셨을 법한 모습입니다. 이 천칭저울은 죄에 합당한 무게를 재는 도구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인간에게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라는 것은 매우 확연한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정의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우리의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 있는 마치 본성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상대적이기도 하고 서로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모든 것이 정의롭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의를 말해 본다면, 모든 사람이 분배나 기회, 절차,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받는 형벌에 있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조건 혹은 상태를 일반적인 정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거칠지만 일반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언어로 정의를 표현해 본다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것, 바르고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상태나 조건을 ‘정의’라고 말하거나 ‘정의롭다’라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여정 속에서 정의를 갈구할 때가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정의의 문제를 신 존재의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의롭지 못한 것을 볼 때면 신을 원망하죠. 그렇게 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또한 우리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보면서 신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제자는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 바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던 중에 그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연히 젊은 나이셨습니다. 너무나도 열심히 사셨던 어머니, 사랑으로 가득했던 어머니, 정말로 하나님을 잘 섬기시고 흠이 없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아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신단 말인가? 이것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상황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반항하는 마음이 생겨나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자리로도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이 창조된 본래 목적을 담고 있으나, 모든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정의에 대한 인간의 갈구는 강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입니다. 정의를 ‘인간의 생각 범위 안에서의 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 바르고, 옳고,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옳은 것, 마땅한 것, 즉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정의가 인간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같은 것일까요? 인간이 모든 조건 안에서 공평하게 대우를 받는 것, 어떤 기회나 배분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 같은 것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의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조건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근육의 양도 다르고, 키도, 역할도, 크기도, 모양도, 성도 다릅니다. 아담의 후예 중에는 건강한 자도 있지만 왜소하고 약한 자도 있습니다. 하와의 후예 중에는 예쁜 외모로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못생긴 이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가정의 아이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 또한 유럽이나 아프리카, 심지어 북한에서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들이 우리 삶에는 많이 널려 있습니다. 얼마든지 항의할 수도 있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시고 각자의 자리와 형편에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마땅한 것,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에게 마땅한 것, 하나님의 의는 그가 지으신 인간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마땅한 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모든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찬송하며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된 목적을 알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사뭇 다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0~12, 16~18)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인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파멸의 길이 널려 있음에도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 이어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라는 말씀의 뜻은 ‘모두가 도덕적인 흠결이 있다’라거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처지에 있다’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이 말씀의 본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땅함,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라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인간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아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원죄’라고 표현합니다. 찬송하는 존재로 만든 창조의 목적에 우리가 부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땅하지 못한 상태가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류가 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증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면 내가 너희와 함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알겠다”라고 인정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율법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를 허락하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때 제사를 통해 회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마음을 표현하며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매일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며 그토록 원하셨던 인간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십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몸을 입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길을 걷게 하십니다. 한 인간의 대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해 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빌립보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인 순종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며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까지 인간의 대표를 자임하면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하나님께서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세우신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이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또 다른 하나님의 의,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정의롭지 못한 십자가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본다면, ‘인간의 끊임없는 불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순종으로 상쇄시키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번에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롬 3:25, 새번역)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는 인간과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한 후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죄를 간과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포함하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다른 의입니다.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 믿음으로 얻는 이 구원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우신 의, 정의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신 날을 기억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독립을 꿈꾸며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예수님을 통해 그들의 나라가 독립하기를 바라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을 열방의 압제하에서 건져 낼 영웅으로 생각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독립은 그들의 꿈이자,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유를 찾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독립하여 자주권을 지키고 다른 나라에 세금을 빼앗기지 않으며, 피지배 민족으로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자!’ 이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사람들이 정의라고 여기는 것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를 완성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완전하게 지켜 내셨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 십자가의 자리,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이루어 내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이 비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은 죄덮는제물(화목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죄 덮음은 믿음을 통해 얻어지며 그분의 피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저지른 죄들을 못 본 체해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 하신 것입니다. (롬 3:25, 새한글성경)
이제 하나님의 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친밀함과 순종을 이루신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며, 다른 이들이 저지른 죄를 못 본 체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죠. 인간적으로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십자가형을 받는 것이 정의이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죽임당하신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불공평해 보이는, 정의롭지 못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저 희생양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희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의 관점을 넘어선 곳에 존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범주 안에서만 정의를 논한다면, 우리는 자칫 진정한 하나님의 의를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이 겪으신 불행한 일, 예수님의 희생을 하나님의 의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희생의 길을 예수님께서 올라가셨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열어 보여 주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수난주간으로 들어섭니다. 철저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신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된 예수님의 수난의 길,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의 길을 우리의 마음에 다시 새기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일,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 안에서 이것은 마땅하다’라는 마음으로 나의 현실을 다시 볼 수 있는 귀한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Justice Fulfilled Through Sacrifice
Romans 3:23-26
What is justice? I am not trying to start a scholarly discussion. As the debate over whether justice can be defined or not has yet to be concluded, it is clear that this question is by no means an easy one.
The English word “justice” is known to have derived from Justitia, the Greek goddess of justice. Atmany entrances of secular courts, we can easily spot statues of this Greek goddess. Notably, Justitia is depicted holding scales. The scales represent the tool which weighs the gravity of sin.
Although justice is hard to define, it is evident that mencrave it. All men do. Man’s desire for justice is like a hidden instinct engraved in our deepest bones.
Although men’s definition of justice may differ depending on the issue, all men hope that everything will be done justly.
From a common sensical point of view, justice may refer to a state orcondition where everyone exists peacefully becausethey are treated equally in terms of distribution, process, and punishment for crimes.
A more general, but rather rough, explanation of justice would perhaps be a state or condition that seems right, just, and fitting to people and to me.
Interestingly, many associate the problem of justice with the existence of God. When peoplesee injustice, they tend to blame God, which leads to denying God.
Often, we see people deny and turn from God because of unjust circumstances and incidents they face.
One of my students saw his mother pass awayimmediately after enteringseminary. She died suddenly of cancer. He could not come to terms with her death because she had lived so energetically and had served God faithfully. How could God do this to hisfamily? He thought it was unjust and felt rebellious,which led to quittingseminary and apparently leaving God.
Man’s desire for justice is that powerful.
But there is another concept in the Bible,which is similar to, but distinct from,justice: the righteousness of God.
While justice may be said to be righteousness within the scope of human though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justice from God’s perspective. Righteousness refers to the state which God considers right, just, righteous, and fitting.
What is right and fitting from God’s perspective? From God’s perspective, would justice be defined as the state where men are treated fairly in all conditions?
The Bible says God created man. But God created man and woman. He made them possess different conditions. He gave them different amounts of muscle and different roles and created them in different shapes and sizes.
Among Adam’s descendants, there have been healthy men as well as small, weak men. Among Eve’s descendants, there have been pretty women and uncomely women. You may be born rich or poor. You may be born in Europe or in Africa. You may even be born in countries like North Korea. These varying conditions are ample grounds for protesting to God that it’s not fair. Yet this is how God made man.
Yet there is a reason God created man in such a way. The Bible says: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Isaiah 43:21)
What is right and fitting in the eyes of God is that men, His creation, should praise Him and walk in close fellowship with Him. This is just in God’s sight. That is, God’s righteousness is that all men created by Him should know God, praise Him, and have fellowship with Him.
God’s righteousness and the justice we believe to be right are, therefore, different. The former is God’s justice.
That is why Paul states in Romans 3: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there is no one who understands; there is no one who seeks God. […] ruin and misery mark their ways,and the way of peace they do not know.There is no fear of God before their eyes.’”(Romans 3:10-11, 16-18)
Man does not seek God.He does not fear God. Therefore, Paul says: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Romans 3:23)
That all have sinned does not mean that all men have moral defects. Neither does it mean that all have failed to observe the Law.
It means that all men have failed to reach the righteousness, the justice of God. It means that men have failed to live according to their original purpose, that is, to obey God’s will, praise Him and have close fellowship with Him.
Men turned from God from the very beginning when Adan and Eve left God. This is why we instinctively, innately, and inevitably turn from God. A more difficult term for this is original sin.
We have failed to reach our creation purpose, to praise God. We men are in an unjust state. That is why God’s righteousness has yet to be fulfilled; that is why we are all sinners. The Bible testifies that all of mankind has been trapped in sin ever since Adan and Eve.
So God makes a new plan for men. He sends His Son Jesus Christ to earth to obey Him and to follow His will and to go the path of praising Him only. For Adam’s descendants, this was an impossible task; so God had no choice but to send His own Son, who was without, sin to do it.
Through Jesus, God tried to fulfill His original purpose of creating man. He desired to see this one Man who would trust Him only,align His whole will with that of God’s, andobey God unto death. God desired to see this one Man who would fulfill His purpose for creating man, that one Man who would follow His heart completely, that one Man who would fulfill God’s justice.
Jesus carried out that very task. Being both the Son of God and human in the flesh, Jesus fulfilled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perfect obedience. By doing the right thing, the just thing in God’s sight, Jesus createdthe right relationship with God.
This is how Philippians describes Jesus: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used to his own advantage;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 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Philippians 2:6-8)
This obedience pleased God. The justice that God envisioned was fulfilled. In Christ, the right and just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God was accomplished.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and every tongue acknowledge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Philippians 2:9-11)
The reason God exalts Jesus as our Lord is becauseJesus is the only One who fulfilled God’s righteousness. And through Jesus God plans to save all mankind. This is God’s will. Therefore, the salvation of mankind through Jesus is God’s righteousness.
Therefore, although the statementthat Jesus carried all our sins may be interpreted in many ways, in the context of what I have been explaining till now, it means that Jesus canceled and wiped out man’sendless disobediencethrough His single act of obedience on the Cross. It also means that God received this single sacrifice of Jesus as the eternal sacrifice of atonement and sin offering.
Therefore, today’s Scripture testifies to us:
“God presented Christ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the shedding of his blood—to be received by faith.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Romans 3:25)
Therefore,God’s righteousness that has been manifested sinceJesus’ sacrificeis this: “redemption gained in Christ.” This is the righteousness, the justice of God. This is what is right and just before God.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ll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Romans 3:23-24)
Today is Palm Sunday, a day to remember Jesus’ entry into Jerusalem to bear the Cross. People shouted, “Hosanna! Deliver us!” It is likely they shouted these words, dreaming about political independence from Rome.
They probably shouted“Hosanna!”,believing Jesus to be the hero who would deliver Israel from the oppression of surrounding powers.
At the time, national independence was the dream and desire of the people of Israel; it would have been the justice they craved. ‘Being under the rule of anothercountry is unjust. We, too, must achieve independence, guard our sovereignty, prevent external powers from taking our taxes, and fight discriminationas a colonized people. This is to achieve justice.’ This was probably what the people were thinking as they shouted, “Hosanna!”
But Jesus did not go up to Jerusalem to achieve the justice that the people were envisioning. He went to fulfill the righteousness of God, the justice of God.
As the One who showed perfect obedience to God’s will, as a Man who perfectly fulfilled God’s law to love God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and as a Man who obeyed God unto death on the Cross, Jesus sought to fulfill the righteousness of God.
By doing so, Jesus wanted to save whoever followed Him.
The New Living Translation explains this secret as such:
“For God presented Jesus as the sacrifice for sin. People are made right with God when they believe that Jesus sacrificed his life, shedding his blood. This sacrifice shows that God was being fair when he held back and did not punish those who sinned in times past,for he was looking ahead and including them in what he would do in this present time. God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for he himself is fair and just, and he declares sinners to be right in his sight when they believe in Jesus.”(Romans 3:25-26, NLT)
By giving His body and offering Himself as a sacrifice, Jesus achieved the righteousness, the justice of God.
The fact that Jesus, a Man without sin, bore the Cross would not be justic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If a sinner or a thief who committed a great crime was crucified, this may be justice. But the execution of Jesus by crucifixion can never be justice.
Yet Jesus fulfilled the righteousness, the justice of God by bearing the Cross that was unfairly given to Him. By becoming completely obedient to God’s will, Jesus glorified God. The sacrifices we make may not seem just in the world’s eyes, but they become God’s righteousness.
God’s righteousness is found beyond the justice envisioned by man. We must not view justice from the scope of human thought or from that of the world. We must be able to see God’s righteousness from God’ perspective.
Only then do unfortunate incidents like Christ’s crucifixion become justice. Even that unjust sacrifice becomes justice. Jesus, who entered Jerusalem and bore the Cross, shows us this very path.
Passion Week starts today. As we meditate on the Passion of our Lord who became fully obedient to God’s will and advanced toward the Cross, may we again engrave in our hearts the path of Jesus who became God’s joy and righteousness.
And may our eyes of faith be opened so that we will be able to see all the pain and misfortune occurring in our lives in a new light.
로마서 3:23~26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사람은 누구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여러분 정의가 무엇일까요? 너무 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논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주제가 결코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정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Justice’는 로마 신화의 정의를 담당하는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세상 법정에 가면 법정의 중앙이나 앞부분에 유스티티아의 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스티티아의 상은 천칭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두 번쯤은 보셨을 법한 모습입니다. 이 천칭저울은 죄에 합당한 무게를 재는 도구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인간에게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라는 것은 매우 확연한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정의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우리의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 있는 마치 본성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상대적이기도 하고 서로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모든 것이 정의롭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의를 말해 본다면, 모든 사람이 분배나 기회, 절차,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받는 형벌에 있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조건 혹은 상태를 일반적인 정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거칠지만 일반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언어로 정의를 표현해 본다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것, 바르고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상태나 조건을 ‘정의’라고 말하거나 ‘정의롭다’라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여정 속에서 정의를 갈구할 때가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정의의 문제를 신 존재의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의롭지 못한 것을 볼 때면 신을 원망하죠. 그렇게 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또한 우리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보면서 신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제자는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 바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던 중에 그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연히 젊은 나이셨습니다. 너무나도 열심히 사셨던 어머니, 사랑으로 가득했던 어머니, 정말로 하나님을 잘 섬기시고 흠이 없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아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신단 말인가? 이것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상황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반항하는 마음이 생겨나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자리로도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이 창조된 본래 목적을 담고 있으나, 모든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정의에 대한 인간의 갈구는 강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입니다. 정의를 ‘인간의 생각 범위 안에서의 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 바르고, 옳고,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옳은 것, 마땅한 것, 즉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정의가 인간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같은 것일까요? 인간이 모든 조건 안에서 공평하게 대우를 받는 것, 어떤 기회나 배분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 같은 것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의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조건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근육의 양도 다르고, 키도, 역할도, 크기도, 모양도, 성도 다릅니다. 아담의 후예 중에는 건강한 자도 있지만 왜소하고 약한 자도 있습니다. 하와의 후예 중에는 예쁜 외모로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못생긴 이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가정의 아이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 또한 유럽이나 아프리카, 심지어 북한에서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들이 우리 삶에는 많이 널려 있습니다. 얼마든지 항의할 수도 있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시고 각자의 자리와 형편에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마땅한 것,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에게 마땅한 것, 하나님의 의는 그가 지으신 인간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마땅한 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모든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찬송하며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된 목적을 알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사뭇 다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0~12, 16~18)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인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파멸의 길이 널려 있음에도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 이어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라는 말씀의 뜻은 ‘모두가 도덕적인 흠결이 있다’라거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처지에 있다’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이 말씀의 본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땅함,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라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인간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아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원죄’라고 표현합니다. 찬송하는 존재로 만든 창조의 목적에 우리가 부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땅하지 못한 상태가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류가 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증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면 내가 너희와 함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알겠다”라고 인정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율법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를 허락하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때 제사를 통해 회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마음을 표현하며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매일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며 그토록 원하셨던 인간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십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몸을 입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길을 걷게 하십니다. 한 인간의 대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 일을 감당해 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빌립보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인 순종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며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까지 인간의 대표를 자임하면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하나님께서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세우신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이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또 다른 하나님의 의,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정의롭지 못한 십자가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본다면, ‘인간의 끊임없는 불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순종으로 상쇄시키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번에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롬 3:25, 새번역)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는 인간과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한 후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죄를 간과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포함하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다른 의입니다.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 믿음으로 얻는 이 구원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우신 의, 정의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신 날을 기억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독립을 꿈꾸며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예수님을 통해 그들의 나라가 독립하기를 바라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을 열방의 압제하에서 건져 낼 영웅으로 생각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독립은 그들의 꿈이자,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유를 찾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독립하여 자주권을 지키고 다른 나라에 세금을 빼앗기지 않으며, 피지배 민족으로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자!’ 이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사람들이 정의라고 여기는 것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를 완성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완전하게 지켜 내셨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 십자가의 자리,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이루어 내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이 비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은 죄덮는제물(화목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죄 덮음은 믿음을 통해 얻어지며 그분의 피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저지른 죄들을 못 본 체해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 하신 것입니다. (롬 3:25, 새한글성경)
이제 하나님의 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친밀함과 순종을 이루신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며, 다른 이들이 저지른 죄를 못 본 체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죠. 인간적으로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십자가형을 받는 것이 정의이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죽임당하신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불공평해 보이는, 정의롭지 못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저 희생양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희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의 관점을 넘어선 곳에 존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범주 안에서만 정의를 논한다면, 우리는 자칫 진정한 하나님의 의를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이 겪으신 불행한 일, 예수님의 희생을 하나님의 의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희생의 길을 예수님께서 올라가셨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열어 보여 주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수난주간으로 들어섭니다. 철저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신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된 예수님의 수난의 길,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의 길을 우리의 마음에 다시 새기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일,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 안에서 이것은 마땅하다’라는 마음으로 나의 현실을 다시 볼 수 있는 귀한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희생으로 이룬 정의” (롬3:23~2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54장, 15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의한 일에 피해를 입은 경험을 이야기해 봅니다.
<설교의 요약>
인간에게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분배나 절차에 있어서, 죄에 대한 형벌에 대해서, 동등하고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조건이 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의라는 말이 인간이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의 의라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는 그가 지으신 인간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철저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옳은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의 순종으로 인간의 끊임없는 불순종을 소멸시키셨습니다. 영원한 희생제사,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을 기억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사람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 독립을 꿈꾸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은 세상적으로는 정의롭지 않은 일이지만, 그 희생이 하나님의 의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같은 불행한 일도 정의가 되고, 억울한 희생도 정의가 됩니다. 수난주간,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의 길을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나누기>
-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어떤 말씀과 모습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 고난주간을 시작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내가 주님 앞에 순종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 십자가에서 절규하시면서도, 그 뜻에 순복하신 예수님의 길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땅에서 보기에는 불행한 일이요,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 십자가와 죽음,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것을 다시 기억하며 마음에 새깁니다. 희생과 순종을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며, 우리의 삶도 다시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현실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우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큰 뜻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고난이 또렷이 새겨지며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수난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