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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사 │이창기
상사 │최한권 남기훈
중사 │김태석 박경수 문규석 강 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하사 │임재엽 문영욱 손수민 이상준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병장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88년생) 이상민(89년생)
상병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일병 │강태민 김선호 조지훈 나현민
이병 │정태준 장철희
11년 전, 서해안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전사한 천안함 용사 46명입니다. 마지막으로 불린 이병 장철희는 당시 나이 19살이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통일 선교 주일을 보내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경상북도 영덕군에는 장사리라는 해변이 있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해변 한쪽에는 큰 군함 하나가 정박해 있고, 그 부근에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국군 병사들이 상륙하는 장면을 형상화해서 만든 조각상입니다.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세상에 다시 알려진 장사리 전투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곽경택 감독이 만든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1950년 9월 14일. 평균 나이 17세, 단 2주의 훈련 기간을 거친 772명의 학도병과 군인으로 구성된 유격대가 다음날 있을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문산호를 떠나 장사리 상륙 작전을 시도합니다. 적을 교란시키려는 작전이었기 때문에 주력 부대가 아닌 총알받이와 같은 학도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만큼 참전한 용사들이 군번도 받지 못한 채 떠난 전투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학도병이 목숨을 잃은 대가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학도병으로 지원했을 당시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열일곱 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그들이 목숨까지 포기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무엇인가를 많이 알아서 목숨을 내어 놓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옆에 있는 가족들, 가까운 이웃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 나의 나라를 다시는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학도병과 같은 이들이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군인들이 구경 한 번 하지 못한 낯선 땅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며 지켜 준 나라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지금 소망풍경에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이 나라를 지켜 주었습니다. 호국보훈의 6월을 보내면서, 그리고 6·25 한국전쟁 71주년을 보내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살아 계시다면 이 자리에 80, 90대의 모습으로 앉아 계실 분들입니다. 나라를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키려 한 이 나라를 귀하게 여기며, 우리 또한 지켜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은 왜 희생하는가? 인간의 희생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우리는 희생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합니다. 이틀 전 일어난 쿠팡 물류 센터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119 구조 대장이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김동식 소방경은 늘 앞서서 화재 현장의 어려운 자리로 들어가고, 나올 때도 가장 늦게 나오던 분이었답니다. 그의 나이 52세, 연륜과 경험이 최고에 달했을 그는 이 날도 대원들을 모두 탈출시키고 마지막까지 뒤를 지키다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희생의 근원에는 언제나 살리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희생할까요?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서만 살지 않고 다른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포착될 수 없는, 파악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리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포기하는 용기, 다시 말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다른 피조물에게도 주어진 능력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는 분명 희생의 모습이 있습니다. 인간은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전쟁 중에 죽어 가는 엄마가 품에 안긴 아기가 목말라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혈관을 끊어서 아이에게 먹여 엄마는 죽고 아이는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감동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본능이라고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위해 삶을 포기하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희생을 가능케 하는 원인을 알고 계실 줄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희생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요한일서 4장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장 7~8절)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시는 모습,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
그러므로 희생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선물입니다. 희생과 사랑은 쌍둥이와 같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생이 가능합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 케이블카 추락 사고가 있었지요. 14명이 사망한 큰 사고였습니다. 그곳에 타고 있던 일가족이 죽었는데 5살 아들만 살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추락의 순간에 아이를 감싸 안은 아버지 덕분에 아이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지는 그 순간, 그런 행동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의 마음 안에 담겨 있던 아이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이고, 희생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나아가서 희생하는 사람은 살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희생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타나고 자신을 내어 줌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살려 냅니다. 그래서 희생의 결과에는 언제나 살림이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이가 있고, 살아난 사람이 있고, 생명력을 얻게 된 조직이나 공동체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사리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운 학도병들의 희생의 결과는 번영하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희생한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장 9절)
우리를 살리시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희생을 몸소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생의 결과에는 은혜가 따릅니다. 희생의 혜택을 입은 누군가, 무엇인가가 존재합니다. 희생은 살리는 행동입니다. 엄마의 희생 후에, 아빠의 희생 후에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킨 이들의 희생 뒤에 번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삶과 목숨을 내어 놓은 사람들의 희생 뒤에 구원받은 백성들,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은 살리는 행위입니다.
<사랑으로 가능한 희생은 또한 소망을 낳습니다.>
추락하는 케이블카에서 아들을 살린 아버지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날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 소망 안에서 몸을 감싸 아이를 덮었습니다. 희생의 근저에 아이가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희망은 소망을 낳습니다. 겨우 3일 분의 식량, 보급품, 소총 하나와 2주간의 훈련이 전부였던 학도병들은 자신의 죽음과 희생으로 동생, 아버지, 어머니가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이 건재하여 번영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으로 그들은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은 소망입니다. 희생은 사랑의 행동이며, 살리는 행동이며, 소망의 행동인 것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을 통하여 사랑이 드러나고 만물을 살려내는 멋지고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희생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에베소서 5장은 희생의 밑바탕에 예수님의 희생,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5장 1~2절)
이 말씀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희생의 정신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보고 스스로 결단하여, 그 사랑 가운데 희생하기를 권면한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줌으로 세상을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모든 인류를 살리시는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 세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희생입니다.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수치스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온 인류는 구원을 얻는 멋진 결과를 얻었습니다.
학도병들의 희생은 작게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이어지던 전투의 상황을 반전시킨 계기이자,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하게 한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크게는 2021년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이 그렇고, 세속적 문화와 북한의 존재로 인해 계속되는 이념의 논쟁이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빈부 격차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희생을 감수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멋진 미래를 꿈꾸며 자신을 내어 놓을 때에 이 민족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이 나라는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필요합니다.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놓았던 순국선열들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 그리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을 사람들 또한 필요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소망이 되어 마침내 이 땅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주님은 오늘도 모든 이를 위로하시며 희생의 삶을 권면하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을 따라 스스로를 내어 놓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희생의 삶이란 어떤 삶이겠습니까? 물론 순교, 순국, 순직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나라와 민족,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에베소서 5장 15~17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너희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롭게 판단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내어 놓으며 희생할 수 있을지 지혜롭게 판단하라는 권면이셨습니다. 이어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을 향한 권면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생은 저 멀리, 어떤 위대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알려 줍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의 관계 속에서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 희망이 열리고, 소망이 열리고,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김동식 소방관, 그는 참으로 귀한 일꾼이었습니다. 27여 년 동안 소방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 냈습니다. 며칠 전 있었던 화재의 장소에서 그만 목숨을 내어 놓았지만, 그 한 번만이 그에게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희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여 년 동안 화재를 진입하고자 그는 늘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희생의 과정을 통해 며칠 전 화재의 현장에서 진정한 희생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순국할 것인가? 언제 순교할 것인가? 나의 목숨을 내어 놓을 때는 언제인가? 생각만 하며 희생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주어진 삶 속에서 희생을 반복하고 희생을 연습하고 희생을 실행해 나가는 일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사람들을 살리고 사회를 살려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희생되는 사람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삶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희생의 삶만 살다가 행복하지 못한 채로 죽어 가야 합니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한 가지 사실을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은 믿는 이들과 제자들을 향해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이요 희생의 교본이지만,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내어 주고 세상을 살리고 떠난 이들이 참 많습니다. 꽃다운 나이 젊음과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로 쓰러져 간 많은 학도병이 있습니다. 2010년 서해에서 북한군과 대치 중에 세상을 떠난 천안함의 46명 군인들이 있습니다. 6·25 한국전쟁 중 여전히 기억되지 못하는 어떤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흔적도 발견되지 못한 채 숨진 국가 유공자들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죽은 의인들도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하다가 자신은 희생된 의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누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자리, 고통의 자리, 부끄러움의 자리, 절망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요, 우리에게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서 희생의 자리로 나아간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위로이며 은혜입니다. 그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주님은 그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어 주시며, 자신을 내어 주고 생을 마감하는 모든 영혼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억지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위로입니다. 배반당하고, 모함당하고, 벌거벗겨지고, 수치를 당하며, 살해된 희생양 예수님은 33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이들, 죽임을 당하고 살해당하는 이들과 연대하시며 함께해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따라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천안함 사건이 있은 지 11년이 지난 올 3월, 19살 김해나 양이 군사안보학교 제복을 입고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사였던 김태석 원사의 첫째 딸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8살 아이였던 그가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을 보면서도 나라를 지키는 일에 나선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이들로 인해, 그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위대한 나라, 복을 나누어 주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The Value of Sacrifice
Ephesians 5:1-2
• Master Chief Petty Officer: Lee Chang-gi
• Senior Chief Petty Officer: Choi Han-kwon, Nam Gi-hoon
• Chief Petty Officer:Kim Tae-suk, Park Kyung-su, Moon Kyu-suk, Kang Joon, Kim Kyung-su, Park Suk-won,An Kyung-hwan,Shin Sun-joon,Kim Jong-hun,Choi Jung-hwan,Min Pyung-gi, Jeong Jong-yul
• Petty Officer First Class:Im Jae-yub,Sohn Soo-min, Shim Young-bin, Jo Jung-kyu, Bang Il-min,Jo Jin-young, Cha Kyun-suk, Park Bo-ram, Moon Young-uk,Lee Sang-jun, Jang Jin-sun, Seo Seung-won, Park Sung-kyun,Seo Dae-ho, Kim Dong-jin
• Petty Officer Second Class: Lee Sang-hee, Lee Yong-sang,Lee Jae-min, Lee Sang-min (born 1988), Lee Sang-min (born 1989),Kang Hyun-ku
• Petty Officer Third Class: Jung Bum-ku, Kim Sun-myung, Park Jung-hoon,An Dong-yeob
• Seaman: Kang Tae-min,Kim Sun-ho,Jo Ji-hoon, Na Hyun-min
• Seaman Apprentice: Jung Tae-joon, Jang Chul-hee
These are the names and ranks of the fallen in the Cheonan sinking 11 years ago. Jang Chul-hee, the last soldier on the list, was only 19 years old at the time. We cannot but honor them this month as we celebrate Memorial Day and commemorate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e are here today thanks to the countless patriots who gave their lives for this nation.
Jangsari is a beach in Youngduk County, Gyeongsang Province. Now a tranquil place, there is a large battleship on display on its shore and a sculpture of Korean soldiers bravely landing on the shore on one side of the beach. This was where the Battle of Jangsari took place during the Korean War—a battle once forgotten but rediscovered in the late 1990s. The movie “The Battle of Jangsari” directed by Kwak Kyung-taek was filmed at this very location.
On September 14, 1950, a guerilla unit—composed of 772 student soldiers whose average age was only 17 with just 2 weeks of training—boarded the Moonsan to land on Jangsari Beachwith the aim of diverting the enemy’s attention from the Incheon Landing which was to take place the next day. Since it was an operation intended to confuse the enemy, the unit was not composed of main-force units but of mostly student soldiers ready to become human shields. No one could guarantee the success of the operation. The student soldiers were not even given service numbers.Hundreds of boys gave their lives to successfully block the enemy’s supply route.
What was in the hearts of these brave men? At just seventeen, what were they thinking? My heart aches at these questions. What were they trying to protect? What did they want to guard with their lives? Their sacrifices make me ponder. They may not have had clear idea or a great knowledge when they gave their lives. Perhaps they just desperately wanted to protect their family, their loved ones, and their country.
The Republic of Korea was built on the blood of countless patriots. We are now living in a prosperous land thanks to the fallen who gave their lives during the Korean War. Therefore, we have a duty to cherish and guard the freedom that they so wanted to preserve.
This year marks the 71st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and June is the month in which we remember and honor Korea’s patriots. If they were still living, they—in their 80s and 90s—would be sitting here with us today. Their willing sacrifice became a fertile ground for Korea.
I often wonder, ‘Why do humans make sacrifices? How are they possible?’ We see many acts of sacrifice around us. Just two days ago, a firefighter named Kim Dong-sik got trapped in a blazing Coupang warehouse after going in to extinguish the flames. Sadly, it was reported yesterday that his remains were found. The news article said that Kim was usually the first one to go in and the last to come out. At 52, Kim, a veteran in the the climax of his career, sacrificed himself by being the last to remain on the scene, making sure that all his teammates had escaped.
Who do we make sacrifices?
That man lives not for himself alone but can give his life for others is an unfathomable mystery. A life-giving sacrifice is having the courage to abandon oneself despite knowing thatone’s entire existence would end.
How is this possible?
Where does that power come from? Although it is unclear whether other animalspossess a similar trait, it is clear that man has this ability to sacrifice. Where did it come from?
We say it’s instinct, but how is it possible that a mother abandons her life for her child? We are stirred by such stories of a dying mother cutting her veins to feed her dehydrated baby. How can such a thing be possible?
We make sacrifices because of love. We can do it because God placed His character, love, in us. The Bible clearly says that God is love.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1 John 4:7-8)
God’s love is manifested through sacrifice, the giving of his So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1 John 4: 10)
Therefore, sacrifice is God’s character and a blessed gift to us from God. Love and sacrifice are like twins. Sacrifice is found where love is. Where there is sacrifice there is love.
A cable car accident happened in Italy last May—a tragic event that killed 14 people. An entire family died, except for a five-year-old boy whose father who wrapped himself around him. How could the father have done such a thing? How could he decide to do such a thing? Love makes live-giving sacrifices possible.
Therefore, those who sacrifice themselves have in them the character of God. They know the heart of God. They are the ones who save the world, the ones who make this world a beautiful place.
Furthermore, those who sacrifice themselves are saving people. Sacrifice which begins in loves results in saving others through abandoning oneself. Therefore, sacrifice always brings salvation. It results in a person receiving grace, a man saved, and a community or an organization revitalized.
The student soldiers who gave their lives at the Battle of Jangsari are the ones who built this prosperous nation. They are the ones who established a free Republic of Korea. Through their sacrifices this country received the gift of free democracy.
Why did Jesus come to earth and give Himself? The Bible says, “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among us: He sent his one and only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1 John 4: 9) Jesus suffered on the cross for us. He sacrificed Himself and gave Himself up so that we might live.
The consequence of sacrifice is grace. When a sacrifice is made, there is always someone or something that has benefited from it. That is why sacrifice is a saving act.
When a mother or father makes sacrifices, a happy home is built. Following the sacrifices of the patriots who guarded their country in a time of crisis, there is a prosperous nation. When God’s people sacrifice themselves for the gospel, even giving their lives, souls are saved, sinners are liberated from their sin, and many become God’s children.
Therefore, sacrifice produces hope. Those who sacrifice themselves do so with a hope.
The father who wrapped himself around his son in the cable car did so with the hope that he would live. With that hope he shielded his son. At the bottom of sacrifice there is hope—a hope to save.
With just one rifle,a three-day supply, and two weeks of training, the student soldiers at Jangsari fought with the hope that their sacrifice and deaths would save their brothers, sisters, mothers, and fathers. They hoped that their nation would stand and prosper. They hoped that Korea would become strong. Therefore, sacrifice is hope. It is an act of hope.
Therefore sacrifice is an act of love, an act of saving, and an act of hope. Love manifests itself through sacrificing people who save all things and create beautiful results. A sacrificing person has hope.
Today’s passage from Ephesians chapter 5 tells us clearly that at the bottom of such sacrifice lie Jesus’ sacrifice and God’s love: “Follow God’s example, therefore, as dearly loved children and walk in the way of love, just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Ephesians 5: 1-2)
These words teach us that God’s children who know the love and sacrifice of Christ must go beyond man’s inherent sacrificial spirit and walk in the way of His love and sacrifice.
Giving oneself in love to save the world! This is the way of life that God showed us through Jesus Christ. By giving Himself as a sacrifice, Jesus completed the great salvation plan for mankind. His sacrifice resulted in the salvation of all mankind, including not just his present generation but all generations to come.
Christ’s sacrifice became the power of God to save all mankind. Therefore, His sacrifice was the greatest one in the history of mankind. The Son of God came to earth to be condemned and crucified on the cross, and, as a result, mankind was saved.
The sacrifices of the student soldiers during the Korean War not only turned the tide in the fierce but tedious battle to occupy the River Nakdong, but also served as a steppingstone for the successful Incheon Landing. But from a broader perspective they served as a foundation for the great ROK that we have come to witness in 2021.
Now the ROK has entered a new phase—one marked by the pandemic, an extremely secular culture, an ideological debate over North Korea, and a dir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Today we need sacrificing people, too. When someone lays down their self, dreaming of a beautiful future, Koreans will live again through that sacrifice and Korea will regain hope. We need that person. We need people who will dedicate themselves to and sacrifice themselves for this country and its people—just as our patriotic martyrs did for Korea. Furthermore, we need people who will give themselves for God’s kingdom, the gospel, and the Church. The future they dream of will become our hope, reviving this land.
Then what does it mean to give ourselves as Jesus did and to follow the example of God? What does it mean to live a life of sacrifice? It may, of course, be dying for one’s country or becoming a martyr for the gospel. At times, we may have to sacrifice our lives for this nation, this people, or the gospel. But let’s look at what Ephesians says: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not as unwise but as wise,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Ephesians 5: 15-17)
After these words, Ephesian goes on to teach how husbands, wives, parents, children, servants, and masters should behave. A sacrificial life that follows Jesus is not grandiose or out of our reach, butclose to us. It is found in our everyday lives.
It is a firefighter doing his job as best he can with a sacrificial heart. In sodoing, he may face critical moments that require great sacrifices. When that time comes, he accepts it happily. This is the life of true sacrifice and the life that Jesus demands from us.
There remains one question, however. Isn’t it a bit unfair to those whohave been sacrificed? Their lives have been cut short in their prime. What about that?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must remember one thing. Christ’s sacrifice and giving on the cross is both a model for His disciples and believers and God’s consolation to all.
Countless people have given themselves to save the world. The righteous are many. There are student soldiers who gave their lives in their youth. Forty-six soldiers fell in the West Sea in 2010 as they confronted the North Korean army. Korea’s boys died trying to protect their country.
There are also many hidden figures who gave their lives during the Korean War but have yet to be discovered or remembered. There are those righteous who give their lives to save a drowning man. There are also people who die trying to save someone on the subway tracks.
Such sacrifices gave life to this country. But who will comfort them? Who will console their pain?
Our Lord Jesus Christ descended to the cross, coming to the place of pain, shame, and despair. And He is with these people who made sacrifices, who need His comfort. This is our comfort and grace.
The cross is a comfort and grace to those who have given themselves at the invitation of God, at the calling of Christ. God, who comes down and stands by them, gives comfort to all the righteous who suffer pain and sacrifice their lives. He bears the cross with them.
The cross also gives comfort to those who have been forced to sacrifice themselves as well as scapegoats. Jesus, the Sacrificial Lamb, who was betrayed, slandered, stripped, shamed, and slaughtered at the age of 33, unites with and befriends those who are killed and murdered and those who live like Him.
Therefore, following His example, we must also bear the cross of self-sacrifice. When we bear the cross, live a life of sacrifice, build up our nation, people, community, and homes, our Lord will be with us and will comfort us. And He will lead us through with the hope of resurrection.
Eleven years after the Cheonan incident,Kim Hae-na attended the memorial service for the fallen Cheonan soldiers last March, wearing her military school uniform. Kim Hae-na, aged 19, is the oldest daughter ofthen Chief Petty Officer Kim Tae-suk, one of the fallen. She was 8 when her father died, but now she is following in her father’s footsteps to become a servicewoman herself. We see hope in her decision to protect her country as a soldier, even after seeing her father give his life in a dangerous land. The Republic of Korea will become a country that blesses others thanks to such people and God who loves and protects it.
Sacrifice is born from love. Sacrifice is, therefore, always a saving act that comes from God—an act of hope. Through people who sacrifice themselves, our homes, communities, country, and people live. Jesus Christ who is always at the side of the wrongfully sacrificed provides comfort and hope. Today, there are still many who sacrifice themselves. God’s work is done through them.
에베소서 5: 1 ~ 2
1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사 │이창기
상사 │최한권 남기훈
중사 │김태석 박경수 문규석 강 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하사 │임재엽 문영욱 손수민 이상준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병장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88년생) 이상민(89년생)
상병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일병 │강태민 김선호 조지훈 나현민
이병 │정태준 장철희
11년 전, 서해안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전사한 천안함 용사 46명입니다. 마지막으로 불린 이병 장철희는 당시 나이 19살이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통일 선교 주일을 보내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경상북도 영덕군에는 장사리라는 해변이 있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해변 한쪽에는 큰 군함 하나가 정박해 있고, 그 부근에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국군 병사들이 상륙하는 장면을 형상화해서 만든 조각상입니다.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세상에 다시 알려진 장사리 전투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곽경택 감독이 만든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1950년 9월 14일. 평균 나이 17세, 단 2주의 훈련 기간을 거친 772명의 학도병과 군인으로 구성된 유격대가 다음날 있을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문산호를 떠나 장사리 상륙 작전을 시도합니다. 적을 교란시키려는 작전이었기 때문에 주력 부대가 아닌 총알받이와 같은 학도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만큼 참전한 용사들이 군번도 받지 못한 채 떠난 전투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학도병이 목숨을 잃은 대가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학도병으로 지원했을 당시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열일곱 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그들이 목숨까지 포기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무엇인가를 많이 알아서 목숨을 내어 놓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옆에 있는 가족들, 가까운 이웃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 나의 나라를 다시는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함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학도병과 같은 이들이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군인들이 구경 한 번 하지 못한 낯선 땅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며 지켜 준 나라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지금 소망풍경에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이 나라를 지켜 주었습니다. 호국보훈의 6월을 보내면서, 그리고 6·25 한국전쟁 71주년을 보내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살아 계시다면 이 자리에 80, 90대의 모습으로 앉아 계실 분들입니다. 나라를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키려 한 이 나라를 귀하게 여기며, 우리 또한 지켜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은 왜 희생하는가? 인간의 희생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우리는 희생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합니다. 이틀 전 일어난 쿠팡 물류 센터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119 구조 대장이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김동식 소방경은 늘 앞서서 화재 현장의 어려운 자리로 들어가고, 나올 때도 가장 늦게 나오던 분이었답니다. 그의 나이 52세, 연륜과 경험이 최고에 달했을 그는 이 날도 대원들을 모두 탈출시키고 마지막까지 뒤를 지키다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희생의 근원에는 언제나 살리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희생할까요?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서만 살지 않고 다른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포착될 수 없는, 파악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리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포기하는 용기, 다시 말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다른 피조물에게도 주어진 능력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는 분명 희생의 모습이 있습니다. 인간은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전쟁 중에 죽어 가는 엄마가 품에 안긴 아기가 목말라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혈관을 끊어서 아이에게 먹여 엄마는 죽고 아이는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감동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본능이라고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위해 삶을 포기하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희생을 가능케 하는 원인을 알고 계실 줄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희생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요한일서 4장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장 7~8절)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시는 모습,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
그러므로 희생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선물입니다. 희생과 사랑은 쌍둥이와 같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생이 가능합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 케이블카 추락 사고가 있었지요. 14명이 사망한 큰 사고였습니다. 그곳에 타고 있던 일가족이 죽었는데 5살 아들만 살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추락의 순간에 아이를 감싸 안은 아버지 덕분에 아이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지는 그 순간, 그런 행동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의 마음 안에 담겨 있던 아이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이고, 희생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나아가서 희생하는 사람은 살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희생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타나고 자신을 내어 줌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살려 냅니다. 그래서 희생의 결과에는 언제나 살림이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이가 있고, 살아난 사람이 있고, 생명력을 얻게 된 조직이나 공동체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사리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운 학도병들의 희생의 결과는 번영하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희생한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장 9절)
우리를 살리시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희생을 몸소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생의 결과에는 은혜가 따릅니다. 희생의 혜택을 입은 누군가, 무엇인가가 존재합니다. 희생은 살리는 행동입니다. 엄마의 희생 후에, 아빠의 희생 후에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킨 이들의 희생 뒤에 번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삶과 목숨을 내어 놓은 사람들의 희생 뒤에 구원받은 백성들,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은 살리는 행위입니다.
<사랑으로 가능한 희생은 또한 소망을 낳습니다.>
추락하는 케이블카에서 아들을 살린 아버지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날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 소망 안에서 몸을 감싸 아이를 덮었습니다. 희생의 근저에 아이가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희망은 소망을 낳습니다. 겨우 3일 분의 식량, 보급품, 소총 하나와 2주간의 훈련이 전부였던 학도병들은 자신의 죽음과 희생으로 동생, 아버지, 어머니가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이 건재하여 번영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으로 그들은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은 소망입니다. 희생은 사랑의 행동이며, 살리는 행동이며, 소망의 행동인 것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을 통하여 사랑이 드러나고 만물을 살려내는 멋지고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희생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에베소서 5장은 희생의 밑바탕에 예수님의 희생,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5장 1~2절)
이 말씀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희생의 정신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보고 스스로 결단하여, 그 사랑 가운데 희생하기를 권면한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줌으로 세상을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모든 인류를 살리시는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 세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희생입니다.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수치스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온 인류는 구원을 얻는 멋진 결과를 얻었습니다.
학도병들의 희생은 작게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이어지던 전투의 상황을 반전시킨 계기이자,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하게 한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크게는 2021년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이 그렇고, 세속적 문화와 북한의 존재로 인해 계속되는 이념의 논쟁이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빈부 격차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희생을 감수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멋진 미래를 꿈꾸며 자신을 내어 놓을 때에 이 민족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이 나라는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필요합니다.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놓았던 순국선열들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 그리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을 사람들 또한 필요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소망이 되어 마침내 이 땅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주님은 오늘도 모든 이를 위로하시며 희생의 삶을 권면하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을 따라 스스로를 내어 놓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희생의 삶이란 어떤 삶이겠습니까? 물론 순교, 순국, 순직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나라와 민족,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에베소서 5장 15~17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너희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롭게 판단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내어 놓으며 희생할 수 있을지 지혜롭게 판단하라는 권면이셨습니다. 이어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을 향한 권면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생은 저 멀리, 어떤 위대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알려 줍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의 관계 속에서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 희망이 열리고, 소망이 열리고,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김동식 소방관, 그는 참으로 귀한 일꾼이었습니다. 27여 년 동안 소방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 냈습니다. 며칠 전 있었던 화재의 장소에서 그만 목숨을 내어 놓았지만, 그 한 번만이 그에게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희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여 년 동안 화재를 진입하고자 그는 늘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희생의 과정을 통해 며칠 전 화재의 현장에서 진정한 희생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순국할 것인가? 언제 순교할 것인가? 나의 목숨을 내어 놓을 때는 언제인가? 생각만 하며 희생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주어진 삶 속에서 희생을 반복하고 희생을 연습하고 희생을 실행해 나가는 일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사람들을 살리고 사회를 살려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희생되는 사람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삶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희생의 삶만 살다가 행복하지 못한 채로 죽어 가야 합니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한 가지 사실을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은 믿는 이들과 제자들을 향해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이요 희생의 교본이지만,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내어 주고 세상을 살리고 떠난 이들이 참 많습니다. 꽃다운 나이 젊음과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로 쓰러져 간 많은 학도병이 있습니다. 2010년 서해에서 북한군과 대치 중에 세상을 떠난 천안함의 46명 군인들이 있습니다. 6·25 한국전쟁 중 여전히 기억되지 못하는 어떤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흔적도 발견되지 못한 채 숨진 국가 유공자들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죽은 의인들도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하다가 자신은 희생된 의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누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자리, 고통의 자리, 부끄러움의 자리, 절망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요, 우리에게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서 희생의 자리로 나아간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위로이며 은혜입니다. 그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주님은 그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어 주시며, 자신을 내어 주고 생을 마감하는 모든 영혼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억지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위로입니다. 배반당하고, 모함당하고, 벌거벗겨지고, 수치를 당하며, 살해된 희생양 예수님은 33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이들, 죽임을 당하고 살해당하는 이들과 연대하시며 함께해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따라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천안함 사건이 있은 지 11년이 지난 올 3월, 19살 김해나 양이 군사안보학교 제복을 입고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사였던 김태석 원사의 첫째 딸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8살 아이였던 그가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을 보면서도 나라를 지키는 일에 나선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이들로 인해, 그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위대한 나라, 복을 나누어 주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2021년 6월 2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희생의 가치” (엡 5:1-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95장, 461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엡 5:1-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6월 2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호국보훈의 달에 맞는 통일선교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안함에서 전사한 46명의 용사들과 장사리에서 죽어간 772명의 학도병들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생각하는 6월을 보내면서, 그리고 625 한국전쟁 71주년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억합니다. 이날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은 왜 남을 위해 희생하는가?’
설교의 요약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먼저, 우리가 희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7-8). 그리고 그 하나님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요일 4:10). 그러므로 희생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선물입니다. 그리고 희생하는 사람은 살리는 사람입니다. 희생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 나타나고, 자신을 내어 줌으로 다른 이를 살리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희생의 결과에는 언제나 ‘살림’이 있습니다. 이렇듯 희생은 소망을 낳습니다. 희생하는 이들은 소망 안에서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은 사랑의 행동이며, 살리는 행동이며, 소망의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5장은 이러한 희생의 밑바탕에 예수님의 희생,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엡 5:1-2).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줌으로 세상을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서 있습니다. 오늘의 상황(코로나 19, 이념 논쟁, 극단적 빈부 격차 등)은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 놓았던 순국선열들처럼,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가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을 위해 희생할 것을 권면(엡 5-6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런 희생은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희생은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들의 억울함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자리, 고통의 자리까지 내려 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풀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요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집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나라와 민족, 그리고 공동체와 가정을 세워 나갈 때, 우리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나누기
1. 나는 평소,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하는 분들에 대해 어떤 감사를 갖고 있나요?
2. 이번 주, 예수님의 희생정신으로 나의 일상(가정, 일터, 교회 등)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희생은 무엇인가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희생의 가치를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된 희생과 사랑을 다시 기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참된 제자 되게 하시옵소서. 사랑이 동반된 희생을 통하여 생명을 낳게 하시고, 세상을 살리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하였듯, 우리도 이 민족을 살리는 복된 주님의 제자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