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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 성경주제 11 : 감사 –

골로새서 3: 15 ~ 17

김지철 목사

2013.11.17

감사를 잃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감사하십니까? 누구에게 특별히 감사하십니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시겠습니까? 먼저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간을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땅, 자연 만물, 우리 삶의 모든 자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감사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이 땅에 사시사철이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시간을 기대하며 내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것인가를 감사하게 됩니다. 또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따뜻한 손으로 만져보며 ‘아,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주셔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배란 무엇일까요?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고, 행위입니다. 내 속에 감사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가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 예물은 헛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인물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며 감사하는 사람, 아니면 하나님을 무시하며 불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인물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감사가 결여된 인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생각해 보면 천 가지, 만 가지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에 그들은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불만과 불평의 순간에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기회를 엿보았다가 그들을 유혹하고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평했던 아담과 하와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고 만 것입니다.
가진 것을 감사하기도 바쁜데, 갖지 못한 것을 불평하며 인생을 낭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가 망가집니다. 내 얼굴이 삐뚤어집니다. 마음이 이미 망가져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부터 보라고 종종 말씀을 드립니다. 내 얼굴이 얼마나 푸석푸석한가? 주름살이 늘었는가? 흰머리가 몇 개 더 생겼는가? 살펴보셔야죠. 그러나 우리가 정말 보아야 할 것은 눈동자입니다. 맑고 밝은지 아니면 몽롱한지, 따뜻한지 아니면 차가운지, 사랑스러운지 아니면 미움과 분노가 차 있는지 우리는 살펴봐야 합니다. 내 마음이 내 얼굴에, 내 얼굴이 내 눈동자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에 불평이 자라납니다.

우리는 가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가인은 동생 아벨을 따라서 예물을 드렸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4장은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세기 4:5∼6)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아벨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아벨의 모습을 보며 형식만 차렸습니다. 동생 아벨의 모습을 그저 따라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아벨이 먼저 나오고, 가인이 나중에 나옵니다. 형이 늦게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감사 없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탓하며 자신을 돌아봐야 했을 텐데, 오히려 분노하면서 동생을 시기했고, 심지어 동생을 죽이는 첫 번째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만이라는 바이러스가 번식하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인간의 오만과 거만이 꿈틀거리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바로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모든 불만족과 원망이라는 세균이 자라나는 자리는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20세기에 나타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에 하나를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고 합니다.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왜냐하면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기능을 저하시키고,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것은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하는 전염병으로, 신체의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조그만 질병이 들어도 합병증으로 사망케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이런 면역결핍증이 몸에만 나타날까요? 인간의 정서와 마음, 인간의 영혼에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인 면역결핍증에 걸리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나쁜 세균들을 잡아먹는 백혈구처럼 힘이 있지만, 감사가 사라지면 우리 마음은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가 사라지는 곳에는 불평이 자라나고, 그렇게 자라난 불평은 감사를 잡아먹습니다. 한 마디로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천국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나 지옥은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남의 탓만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를 배웁니다. “하나님, 예배드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입니다.”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해서 누릴 이 감사의 잔치를 미리 끌어 당겨 오늘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자다. 가장 부유한 사람은 만족할 줄 아는 자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자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감사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환경보다 더 큰 것이 감사이고, 영혼의 감사가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것인데, 우리는 환경에 억눌려서 감사의 영혼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날 때도 있고, 때로 남의 탓을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무기력증을 느끼면서 좌절하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섭니다. ‘하나님, 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성령으로 하나하나 스캔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나를 그대로 들여다보면, 나의 나된 것이 모두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만큼의 건강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만큼의 할 일을 주신 것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직책을 주신 것도,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니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탓을 하거나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감사의 고백이 나올 뿐입니다.
그러면 불평하던 내 영혼이 확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늘과 땅이, 내게 주어진 시간 하나하나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복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영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감사는, 나를 바꾸고 공동체를 바꿉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세 절입니다. 그런데 한 절에 한 번씩 감사하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5절 …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절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17절 … 그(예수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감사하며 살겠다고 결정하면, 감사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평 좀 해야겠다 생각하면, 감사할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라는 말을 들으면 속에서 이런 항의하는 듯한 질문이 생깁니다. ‘감사하라고? 아니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에 있는데.. 상대방을 누르고 앞서가야 이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아가? 감사하라고? 요즘은 자기 PR시대인데, 뽐내기도 하고 과시하기도 하고 교만도 떨고 자랑도 해야 인기가 생기는 것 아니야? 감사하라고? 지도자가 되려면 강력한 지시와 명령이 동반되는데 감사하면서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정말 그럴까요?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춘(Fortune)지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발표합니다. 한국에서도 한국의 기업들 중 100대 기업을 발표하곤 합니다. 어떤 기업이 일하기 좋은 기업일까요? 일하기 좋은 기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일하기 좋은 기업을 GWP라고 합니다. Great Work Place의 약자로 ‘행복한 일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첫 번째는 pride입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trust, 신뢰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fun, 즐거움입니다. 이것들이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하고 나의 존재 자체에 긍지를 느끼도록 그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동료와 회사를 신뢰하는가? 일하는 것이 내게 즐거움이 되는가?’ 하는 부분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 자부심이 있습니까? 내 아버지의 아들, 내 어머니의 딸인 것이 내게 자부심입니까? 내 아들, 내 딸을 생각하면 소중합니까? 내 아내, 내 남편이 귀하게 여겨집니까? 이러한 자부심과 긍지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신뢰하고, 아들과 딸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서로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또 가정에 즐거움이 있습니까? 서로를 만나면 즐겁습니까? 그 즐거움이 없어서 세상에 나가 이리저리 헤매며 쾌락 속에 빠져 있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에 온다면, 가정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자존감이 있는가, 신뢰성이 있는가, 참여하는 즐거움이 있는가’ 하는 것은 기업이나 가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늘 그것을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몇 사람들이 앞장서서 벌인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운동’입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인 기업이 감사운동을 한다니, 조금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포스코라는 기업에서, 삼성중공업에서 이것을 했습니다. 또 다른 기업들이 따라가고 있고 군부대에서도 시범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감사운동의 예를 보여주는 두 가지 책이 있습니다. 유지미가 쓴 『100감사로 행복해진 지미 이야기』와 손욱이 쓴 『나는 당신을 만나 감사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들은 개인과 기업에서 감사의 일들을 일기로 쓰고, 감사의 내용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그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칙은 이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일터가 행복하고, 일터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내와 남편에게 감사하고,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동료가 있는 것이 감사하고, 심지어 내 책상과 의자, 내가 만지는 기계에 감사했더니 능률이 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기계도 고장률이 감소되더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하나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요? 하나님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주신 것,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사시사철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것, 많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우리에게 시간을 주신 것, 어제를 회상할 줄 알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오늘이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한 종말론적인 하루임을 아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산다면 참으로 멋진 인생 아니겠습니까?
김현승이라는 시인이 ‘아침식사’라는 짧은 시를 썼습니다.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아침식사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主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두신
主여.

主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시여.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앞에 놓은 가난한 식사이지만, 햇살이 이 빵 조각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주신 것과 아침식사를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감사를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삶의 여건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면 불평할 것은 빨리 떠오르는데, 감사할 것은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3장 1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말할 때나 행동할 때나 직장에 있을 때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나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할 때에 전천후로 감사가 충만하게 되고 내 삶이 회복이 됩니다.
시편 3편 5절에는 가장 쉬운 것, 일상의 일들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여기에 보면 ‘눕다, 자다, 깨다’라는 세 가지 동사가 등장합니다. 어제 저녁에 눕지 않으신 분, 잠들지 못하신 분, 그리고 아침에 못 깨신 분 계십니까? 이것들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 아닙니까? 그런데 시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주님께서 나를 붙드셨기에 누울 수 있었고, 잠들 수 있었고, 아침에 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디디면서 “하나님, 내게 이만큼 디딜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먹은 것들이 소화가 되고 잘 배설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내게 주어진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감사를 느낄 줄 아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갖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감사가 삶의 내용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감사하는 사람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까? 어머니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아내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친구입니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가지고 계신 핸드폰을 다 꺼내셔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십시오.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동안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전하세요.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 아버지가 되셔서 고마워요. 네가 내 아들이어서 참 감사하다.’라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나도 기쁘고, 상대방도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수많은 축복이 있지만 감사하는 축복만큼 큰 것도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은, 인생을 힘 있게 사는 것이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이고, 기쁘게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믿음의 사람을 내 옆에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감사하면서 평생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문자를 보내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복 받게 하는 길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을 축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복된 믿음의 사람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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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 15 ~ 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를 잃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감사하십니까? 누구에게 특별히 감사하십니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시겠습니까? 먼저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간을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땅, 자연 만물, 우리 삶의 모든 자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감사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이 땅에 사시사철이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시간을 기대하며 내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것인가를 감사하게 됩니다. 또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따뜻한 손으로 만져보며 ‘아,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주셔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배란 무엇일까요?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고, 행위입니다. 내 속에 감사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가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 예물은 헛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인물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며 감사하는 사람, 아니면 하나님을 무시하며 불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인물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감사가 결여된 인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생각해 보면 천 가지, 만 가지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에 그들은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불만과 불평의 순간에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기회를 엿보았다가 그들을 유혹하고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평했던 아담과 하와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고 만 것입니다.
가진 것을 감사하기도 바쁜데, 갖지 못한 것을 불평하며 인생을 낭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가 망가집니다. 내 얼굴이 삐뚤어집니다. 마음이 이미 망가져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부터 보라고 종종 말씀을 드립니다. 내 얼굴이 얼마나 푸석푸석한가? 주름살이 늘었는가? 흰머리가 몇 개 더 생겼는가? 살펴보셔야죠. 그러나 우리가 정말 보아야 할 것은 눈동자입니다. 맑고 밝은지 아니면 몽롱한지, 따뜻한지 아니면 차가운지, 사랑스러운지 아니면 미움과 분노가 차 있는지 우리는 살펴봐야 합니다. 내 마음이 내 얼굴에, 내 얼굴이 내 눈동자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에 불평이 자라납니다.

우리는 가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가인은 동생 아벨을 따라서 예물을 드렸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4장은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세기 4:5∼6)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아벨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아벨의 모습을 보며 형식만 차렸습니다. 동생 아벨의 모습을 그저 따라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아벨이 먼저 나오고, 가인이 나중에 나옵니다. 형이 늦게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감사 없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탓하며 자신을 돌아봐야 했을 텐데, 오히려 분노하면서 동생을 시기했고, 심지어 동생을 죽이는 첫 번째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만이라는 바이러스가 번식하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인간의 오만과 거만이 꿈틀거리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바로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모든 불만족과 원망이라는 세균이 자라나는 자리는 감사를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20세기에 나타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에 하나를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고 합니다.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왜냐하면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기능을 저하시키고,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것은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하는 전염병으로, 신체의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조그만 질병이 들어도 합병증으로 사망케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이런 면역결핍증이 몸에만 나타날까요? 인간의 정서와 마음, 인간의 영혼에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인 면역결핍증에 걸리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나쁜 세균들을 잡아먹는 백혈구처럼 힘이 있지만, 감사가 사라지면 우리 마음은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가 사라지는 곳에는 불평이 자라나고, 그렇게 자라난 불평은 감사를 잡아먹습니다. 한 마디로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천국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나 지옥은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남의 탓만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를 배웁니다. “하나님, 예배드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입니다.”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해서 누릴 이 감사의 잔치를 미리 끌어 당겨 오늘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자다. 가장 부유한 사람은 만족할 줄 아는 자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자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감사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환경보다 더 큰 것이 감사이고, 영혼의 감사가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것인데, 우리는 환경에 억눌려서 감사의 영혼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날 때도 있고, 때로 남의 탓을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무기력증을 느끼면서 좌절하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섭니다. ‘하나님, 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성령으로 하나하나 스캔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나를 그대로 들여다보면, 나의 나된 것이 모두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만큼의 건강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만큼의 할 일을 주신 것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직책을 주신 것도,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니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탓을 하거나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감사의 고백이 나올 뿐입니다.
그러면 불평하던 내 영혼이 확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늘과 땅이, 내게 주어진 시간 하나하나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복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영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감사는, 나를 바꾸고 공동체를 바꿉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세 절입니다. 그런데 한 절에 한 번씩 감사하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5절 …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절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17절 … 그(예수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감사하며 살겠다고 결정하면, 감사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평 좀 해야겠다 생각하면, 감사할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라는 말을 들으면 속에서 이런 항의하는 듯한 질문이 생깁니다. ‘감사하라고? 아니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에 있는데.. 상대방을 누르고 앞서가야 이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아가? 감사하라고? 요즘은 자기 PR시대인데, 뽐내기도 하고 과시하기도 하고 교만도 떨고 자랑도 해야 인기가 생기는 것 아니야? 감사하라고? 지도자가 되려면 강력한 지시와 명령이 동반되는데 감사하면서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정말 그럴까요?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춘(Fortune)지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발표합니다. 한국에서도 한국의 기업들 중 100대 기업을 발표하곤 합니다. 어떤 기업이 일하기 좋은 기업일까요? 일하기 좋은 기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일하기 좋은 기업을 GWP라고 합니다. Great Work Place의 약자로 ‘행복한 일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첫 번째는 pride입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trust, 신뢰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fun, 즐거움입니다. 이것들이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하고 나의 존재 자체에 긍지를 느끼도록 그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동료와 회사를 신뢰하는가? 일하는 것이 내게 즐거움이 되는가?’ 하는 부분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 자부심이 있습니까? 내 아버지의 아들, 내 어머니의 딸인 것이 내게 자부심입니까? 내 아들, 내 딸을 생각하면 소중합니까? 내 아내, 내 남편이 귀하게 여겨집니까? 이러한 자부심과 긍지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신뢰하고, 아들과 딸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서로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또 가정에 즐거움이 있습니까? 서로를 만나면 즐겁습니까? 그 즐거움이 없어서 세상에 나가 이리저리 헤매며 쾌락 속에 빠져 있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에 온다면, 가정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자존감이 있는가, 신뢰성이 있는가, 참여하는 즐거움이 있는가’ 하는 것은 기업이나 가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늘 그것을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몇 사람들이 앞장서서 벌인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운동’입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인 기업이 감사운동을 한다니, 조금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포스코라는 기업에서, 삼성중공업에서 이것을 했습니다. 또 다른 기업들이 따라가고 있고 군부대에서도 시범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감사운동의 예를 보여주는 두 가지 책이 있습니다. 유지미가 쓴 『100감사로 행복해진 지미 이야기』와 손욱이 쓴 『나는 당신을 만나 감사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들은 개인과 기업에서 감사의 일들을 일기로 쓰고, 감사의 내용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그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칙은 이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일터가 행복하고, 일터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내와 남편에게 감사하고,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동료가 있는 것이 감사하고, 심지어 내 책상과 의자, 내가 만지는 기계에 감사했더니 능률이 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기계도 고장률이 감소되더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하나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요? 하나님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주신 것,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사시사철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것, 많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우리에게 시간을 주신 것, 어제를 회상할 줄 알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오늘이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한 종말론적인 하루임을 아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산다면 참으로 멋진 인생 아니겠습니까?
김현승이라는 시인이 ‘아침식사’라는 짧은 시를 썼습니다.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아침식사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主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두신
主여.

主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시여.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앞에 놓은 가난한 식사이지만, 햇살이 이 빵 조각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주신 것과 아침식사를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감사를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삶의 여건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면 불평할 것은 빨리 떠오르는데, 감사할 것은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3장 1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말할 때나 행동할 때나 직장에 있을 때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나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할 때에 전천후로 감사가 충만하게 되고 내 삶이 회복이 됩니다.
시편 3편 5절에는 가장 쉬운 것, 일상의 일들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여기에 보면 ‘눕다, 자다, 깨다’라는 세 가지 동사가 등장합니다. 어제 저녁에 눕지 않으신 분, 잠들지 못하신 분, 그리고 아침에 못 깨신 분 계십니까? 이것들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 아닙니까? 그런데 시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주님께서 나를 붙드셨기에 누울 수 있었고, 잠들 수 있었고, 아침에 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디디면서 “하나님, 내게 이만큼 디딜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먹은 것들이 소화가 되고 잘 배설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내게 주어진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감사를 느낄 줄 아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갖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감사가 삶의 내용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감사하는 사람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까? 어머니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아내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친구입니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가지고 계신 핸드폰을 다 꺼내셔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십시오.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동안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전하세요.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 아버지가 되셔서 고마워요. 네가 내 아들이어서 참 감사하다.’라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나도 기쁘고, 상대방도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수많은 축복이 있지만 감사하는 축복만큼 큰 것도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은, 인생을 힘 있게 사는 것이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이고, 기쁘게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믿음의 사람을 내 옆에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감사하면서 평생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문자를 보내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복 받게 하는 길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을 축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복된 믿음의 사람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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