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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받으라

디모데전서 4: 1

김지철 목사

2009.11.15

우리 인생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미 콜롬비아대 경영학과 학생들과 대담을 나눈 내용이 기사에 실렸습니다. 핵심은 인생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입니다. 버핏은 최악의 투자는 돈을 현금으로 쌓아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투자와 인생 최대의 결단은 자기에게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버핏은 성공비결을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빌 게이츠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고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라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돈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기에 우리의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최근에 한국의 어떤 재벌그룹 회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 이 세 나라는 이익을 추구할 때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갖고 있다. 이익보다 의를 앞서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환경, 노동, 인권, 반부패의 국제 표준 도입의 토양이 될 것이다.” 의로움이 사회책임 경영에 해법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보이는 세계인 물질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공자 또한 논어의 옹야편에서 “지지자는 불여호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호지자는 불여낙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즐거워하고 싶어도 나에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규칙을 만듭니다. 업적과 목표를 정합니다. 보이는 돈에 매력을 느끼며 달려갑니다. 돈이 있어야 인생의 참 즐거움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 없는 사람보다 행복할까요? 자녀에게 더 많은 돈과 기회와 여건을 제공해준 부모가 자녀에게 효도를 받을까요? 아닙니다. 통계는 그 반대로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더 내는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보다 더 큰 소유를 가진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불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없을 때는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들이 부모의 유산이 많아지면 서로 고함치며 싸우고, 심지어는 법정다툼까지 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고 있습니다.

바울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감사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이 5가지 질문에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면 3점,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2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1점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몇 점을 받았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1. 나는 내 인생에서 감사할 일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2.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내 눈에 아주 많이 보인다.
3.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4.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는 사건, 부딪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점점 더 감사하게 된다.
5.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는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다.

몇 점이 나왔습니까? 15점이 나왔다면 정말 복 받은 분입니다. 10점 이상이 나왔다면 긍정적인 삶의 길이 열려있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은 감사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점 미만이신 분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가? 무엇이 내가 감사할 제목들을 빼앗아가고 있는가? 나에게 왜 불평과 불만이 생겨나는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잠을 못 자고 굶주렸습니다. 추위에 떨었으며 돌과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파선으로 인한 죽음의 위험 앞에도 섰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온갖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가서도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내가 기뻐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깊은 샘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3~4)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고, 어떤 사람도 버릴 것 없는 모두가 소중하고 값진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먹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마시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고난에 처하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이만큼 살게 하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바울을 세상의 그 어느 것이 말릴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감사의 노래를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사람의 인생은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생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불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이고, 생각함으로 모든 것에 질문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깨달아갈 수 있다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불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것은 화를 내고, 남을 비난하며 원망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고달픈 삶이며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인생은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감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러한 인생은 삶의 순간순간이 감사합니다. 내가 발을 디디는 자리가 감사의 자리입니다. 내가 만나는 인간관계가 축복받은 관계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바울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불평이 우리의 존재이유입니까? 아니면 감사가 존재이유입니까? 100% 감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0% 불평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50의 불평과 50의 감사가 우리 속에 늘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항상 서로 충돌합니다. 이럴 때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단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기억하면서 불평을 과감하게 감사의 내용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감사도 자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사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일 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건강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혈압을 재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통해서 지금의 건강상태를 알아봅니다. 또한 심전도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내 몸에 연약한 곳이 없는지 조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건강은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을까요? 내 영혼이 건강한지 아닌지는 무엇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나오는가?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구치고 있는가?’ 그렇다면 건강한 영혼입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마음속에 분노가 있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병든 영혼이란 감사하지 않는 영혼입니다. 병든 문화란 감사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병든 사회란 감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왜 축복일까요? 감사해보십시오. 감사하게 되면 나의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좋은 점과 장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할 때는 없는 것을 보며 한탄했는데, 감사하기 시작하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감추인 보화들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내가 감사하면 내 이웃들이 행복해집니다.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십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감사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맛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감사하면 억눌렸던 것에서부터 해방되기 시작합니다. 감사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가 주는 축복입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근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슬픔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태도가 전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때로는 불쾌한 일, 고통스러운 일, 어렵고 힘든 일이 나를 향해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감사한 사람, 마음속에 감사의 영이 솟아나는 사람들은 세상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데니스라는 사람은 불평 속에서 어떻게 감사의 이유를 찾는지를 다음의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구석에 쌓여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하고, 창문을 갈아야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앉아있는데 뒷자리에서 찬송의 음정이 엉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나오는 앞부분의 일들만 가지고 불평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불평의 제목을 조금만 뒤집어보면 그것 하나하나가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언어와 마음을 바꾸어보십시오. 불평할 이유를 감사할 이유로 바꾸어 대입해보십시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한 사진작가가 서울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렌즈에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컨셉트(concept)를 정했습니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 그는 이 회색빛 도시에 무엇이 괜찮은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렌즈에 잡혔습니다. 낯선 거리지만 그 모습이 다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상점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상품들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남녀들이 웃으면서 데이트하는 모습도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척박한 아스팔트 위를 걷던 중 그 옆으로 삐지고 나온 들풀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사진기와 같은 눈이라는 렌즈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겠습니까? 불평의 눈으로 세상의 어둡고 화나는 것들만 들여다보실 것입니까? 아니면 이 땅에 아직도 약동하는 자리, 희망의 자리, 치유 받는 자리를 들여다보실 것입니까? 때로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그때는 렌즈를 다른 각도로 돌리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스러운 것이 계속 찍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 가슴으로 내려오기 전에 영상들을 하나하나 지워버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 내게 주신 축복의 장인 것을 확인하면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불평할 때는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고 나는 엑스트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이끌고 가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와 함께 뛰자! 나와 함께 놀자! 네 영혼과 네 육체가 나와 함께 춤추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이 땅위에서 주님과 더불어 마음껏 뛰노는 복된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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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 1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우리 인생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미 콜롬비아대 경영학과 학생들과 대담을 나눈 내용이 기사에 실렸습니다. 핵심은 인생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입니다. 버핏은 최악의 투자는 돈을 현금으로 쌓아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투자와 인생 최대의 결단은 자기에게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버핏은 성공비결을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빌 게이츠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고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라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돈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기에 우리의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최근에 한국의 어떤 재벌그룹 회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 이 세 나라는 이익을 추구할 때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갖고 있다. 이익보다 의를 앞서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환경, 노동, 인권, 반부패의 국제 표준 도입의 토양이 될 것이다.” 의로움이 사회책임 경영에 해법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보이는 세계인 물질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공자 또한 논어의 옹야편에서 “지지자는 불여호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호지자는 불여낙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즐거워하고 싶어도 나에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규칙을 만듭니다. 업적과 목표를 정합니다. 보이는 돈에 매력을 느끼며 달려갑니다. 돈이 있어야 인생의 참 즐거움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 없는 사람보다 행복할까요? 자녀에게 더 많은 돈과 기회와 여건을 제공해준 부모가 자녀에게 효도를 받을까요? 아닙니다. 통계는 그 반대로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더 내는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보다 더 큰 소유를 가진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불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없을 때는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들이 부모의 유산이 많아지면 서로 고함치며 싸우고, 심지어는 법정다툼까지 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고 있습니다.

바울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감사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이 5가지 질문에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면 3점,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2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1점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몇 점을 받았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1. 나는 내 인생에서 감사할 일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2.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내 눈에 아주 많이 보인다.
3.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4.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는 사건, 부딪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점점 더 감사하게 된다.
5.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는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다.

몇 점이 나왔습니까? 15점이 나왔다면 정말 복 받은 분입니다. 10점 이상이 나왔다면 긍정적인 삶의 길이 열려있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은 감사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점 미만이신 분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가? 무엇이 내가 감사할 제목들을 빼앗아가고 있는가? 나에게 왜 불평과 불만이 생겨나는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잠을 못 자고 굶주렸습니다. 추위에 떨었으며 돌과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파선으로 인한 죽음의 위험 앞에도 섰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온갖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가서도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내가 기뻐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깊은 샘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3~4)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고, 어떤 사람도 버릴 것 없는 모두가 소중하고 값진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먹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마시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고난에 처하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이만큼 살게 하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바울을 세상의 그 어느 것이 말릴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감사의 노래를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사람의 인생은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생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불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이고, 생각함으로 모든 것에 질문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깨달아갈 수 있다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불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것은 화를 내고, 남을 비난하며 원망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고달픈 삶이며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인생은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감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러한 인생은 삶의 순간순간이 감사합니다. 내가 발을 디디는 자리가 감사의 자리입니다. 내가 만나는 인간관계가 축복받은 관계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바울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불평이 우리의 존재이유입니까? 아니면 감사가 존재이유입니까? 100% 감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0% 불평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50의 불평과 50의 감사가 우리 속에 늘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항상 서로 충돌합니다. 이럴 때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단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기억하면서 불평을 과감하게 감사의 내용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감사도 자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사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일 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건강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혈압을 재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통해서 지금의 건강상태를 알아봅니다. 또한 심전도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내 몸에 연약한 곳이 없는지 조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건강은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을까요? 내 영혼이 건강한지 아닌지는 무엇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나오는가?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구치고 있는가?’ 그렇다면 건강한 영혼입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마음속에 분노가 있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병든 영혼이란 감사하지 않는 영혼입니다. 병든 문화란 감사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병든 사회란 감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왜 축복일까요? 감사해보십시오. 감사하게 되면 나의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좋은 점과 장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평할 때는 없는 것을 보며 한탄했는데, 감사하기 시작하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감추인 보화들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내가 감사하면 내 이웃들이 행복해집니다.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으십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감사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맛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감사하면 억눌렸던 것에서부터 해방되기 시작합니다. 감사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가 주는 축복입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근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슬픔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태도가 전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때로는 불쾌한 일, 고통스러운 일, 어렵고 힘든 일이 나를 향해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감사한 사람, 마음속에 감사의 영이 솟아나는 사람들은 세상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데니스라는 사람은 불평 속에서 어떻게 감사의 이유를 찾는지를 다음의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구석에 쌓여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하고, 창문을 갈아야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앉아있는데 뒷자리에서 찬송의 음정이 엉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나오는 앞부분의 일들만 가지고 불평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불평의 제목을 조금만 뒤집어보면 그것 하나하나가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언어와 마음을 바꾸어보십시오. 불평할 이유를 감사할 이유로 바꾸어 대입해보십시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한 사진작가가 서울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렌즈에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컨셉트(concept)를 정했습니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 그는 이 회색빛 도시에 무엇이 괜찮은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렌즈에 잡혔습니다. 낯선 거리지만 그 모습이 다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상점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상품들도 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남녀들이 웃으면서 데이트하는 모습도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척박한 아스팔트 위를 걷던 중 그 옆으로 삐지고 나온 들풀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사진기와 같은 눈이라는 렌즈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겠습니까? 불평의 눈으로 세상의 어둡고 화나는 것들만 들여다보실 것입니까? 아니면 이 땅에 아직도 약동하는 자리, 희망의 자리, 치유 받는 자리를 들여다보실 것입니까? 때로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그때는 렌즈를 다른 각도로 돌리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스러운 것이 계속 찍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 가슴으로 내려오기 전에 영상들을 하나하나 지워버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 내게 주신 축복의 장인 것을 확인하면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불평할 때는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고 나는 엑스트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이끌고 가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와 함께 뛰자! 나와 함께 놀자! 네 영혼과 네 육체가 나와 함께 춤추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이 땅위에서 주님과 더불어 마음껏 뛰노는 복된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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