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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0: 1 ~ 5
김지철 목사
2018.11.18
감사는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감사가 내 영혼을 감싸고 있는지, 혹시 감사보다는 불평과 분노가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삶에는 불평과 분노, 시기와 질투만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절망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감사로부터 비롯됩니다. 감사를 놓치면 인생의 모든 축복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대학입시 수능고사가 있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한마음이 되어 기도했고, 우리 교인들도 함께 중보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전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네가 우리 아들이라는 게 정말 기쁘구나. 너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심에 참으로 감사한단다. 너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네가 요즘 입시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조금은 알 것 같구나. 그러나 아들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네가 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에 먼저 합격하면 어떻겠니? 그런 후 너의 시험도 하나님께 맡기자꾸나. 우리 하나님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분이니까.” – 사랑하는 엄마가-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에 먼저 합격하면 어떻겠니?’라는,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아들도 이 한마디에 마음의 평화를 찾고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요?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요? 수많은 시험과 난관,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때로는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에 합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눈 대화가 있습니다. 야외에 나가 손자와 놀아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있는 게 너무 좋았고, 손자에게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오늘 재밌었어요.”
“아니야, 나도 즐거웠단다.”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가 빨리 안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재밌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거든요.”
아마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손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을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사랑한다’, ‘감사한다’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좋은 말입니다. 삶의 인간관계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한다고 이야기하고,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겠다고 고백하면, 하나님도 너무 즐거워하시며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자꾸 냉혹해지고 있습니다. 감사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움과 불신, 못된 마음이 자꾸만 커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우리 삶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로마서 1:21 중)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를 지적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해 보이려는 수많은 시도들로 가득합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이 가득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감사가 있습니까?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아내와 남편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자녀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최고의 감사로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 시편 100편 3절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감사 고백을 외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이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 100:3)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며 목자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시인이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언이 등장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나님이 우리를 지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또 이어지는 구절 4절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사야 43:4 중)
하나님의 눈에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아끼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고백과 선언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대신 가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것을 놓쳐도 일어설 수 있지만 감사를 놓치면 우리 인생은 파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에도 커다란 축복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소망교회에서 보낸 16년간의 목회 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처음 신학공부를 했을 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신학자가 되어 교수가 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전도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깨닫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내가 믿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생명이라도 걸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소중한 것들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길이며 진리요, 부활과 생명이고, 해방과 지혜, 평안을 허락해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저는 아마추어 전도자가 아닌 프로패셔널(professional)한 전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을 전도자의 길로 헌신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증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믿음의 친구들과 새벽마다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독일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와서도 총장님께 생활관장을 맡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신학생들과 새벽기도를 하기 위함입니다. 소망교회에서 사역하면서도 원 없이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소망교회 강단에 오른 숫자를 대략 세어 보니, 거의 만 번에 가까웠습니다. 눈만 뜨면 설교했습니다. 때로는 부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다시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새벽예배가 저를 살렸고, 말씀 증거를 통해 저 자신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서도 가장 큰 기쁨이자 하나님께 드리는 큰 감사의 내용입니다.
한편 소망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은 제게는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교회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돌아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혜였습니다. 단에 올라설 때마다 두렵고 떨렸습니다. ‘과연 내가 소망교회 담임목회자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16년 동안 물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참모 역할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소망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소망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저는 참모일 뿐입니다.”
나아가 소망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기쁨이자 자랑이었습니다. 좋은 부목사님들과 함께했습니다. 또 멋진 교회학교 교역자들도 보내주셨습니다. 목회 사역은 담임목사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곳곳에서 맡겨진 사역에 충성을 다하는 교역자들이 있었기에 소망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 주신 교회 직원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소망교회를 통해 큰 사랑과 인복도 경험했습니다.
또 하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저는 소망교회에 와서 너무 많은 인복을 받았습니다. 귀한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기도하고 기도 받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늘 감격이었습니다. 소중한 장로님들도 만났고, 귀한 권사님들, 집사님들도 만났습니다.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소망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는 그분들의 헌신을 보며 소망교회와 한국 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성도님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제게 허락하신 인복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교회 각 처소에서 헌신하는 분들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예배와 경조사에 헌신하는 권사님들, 새벽마다 일을 감당하는 권사님들, 경조부 실행위원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여전도회와 남선교회 분들, 기도와 이웃 봉사와 전도와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 각 제직회와 교회학교에 충성하며, 찬양대에서 충성하는 주님의 종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 한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사랑으로 감사하면서 헌신할 때 복 받는다는 사실을 소망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절감했습니다.
제가 받은 개인적인 복도 있습니다. 건강의 복, 가정의 복입니다. 신학교 교수 시절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며칠씩 앓아눕곤 했습니다. 하지만 소망교회에 와서는 사건, 사고 외에는 한 번도 앓아누워 하루를 넘긴 적이 없습니다. 놀랍게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수없이 계속되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시켜 주셔서 마지막까지 오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힘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도움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소망교회에 와서 제 아들과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늘 저는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아들과 딸을 낳게 되면서, 또 두 자녀가 소망교회에서 결혼을 하면서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이 되었고, 이제는 가족사진을 보면 10명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한 제목은 그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충성할 수 있을까요?” 늘 가슴에 묻던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소망교회 사역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임 목회자를 결정하는 데 장로님들과 온 성도님들이 잘 참여해 주셔서 김경진 목사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경진 목사님이 어느 날 저를 보면서 “목사님이 부럽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부럽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여기까지 소망교회가 한결같이 오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더 잘하실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믿음의 선한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감사, 감사, 또 감사할 때, 우리 삶이 풍성해집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이끄심이자 도움이었습니다. 제게 또 하나 큰 감사가 있다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때로는 취미를 가졌다가도 싫증이 나고, 하던 일이 귀찮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귀찮지도 싫증난 적도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증거할 때면 언제나 힘이 솟았습니다. 때로는 밤늦도록 말씀을 준비해야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말씀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담과 스트레스가 된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다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깨달음을 허락하시며 제게 다가오셨고, 그로 인해 제 영혼이 힘을 얻고 기뻐 뛰놀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가장 복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네 인생의 가는 길에 싫증나는 것이 이것저것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말씀 전하는 것에, 말씀 준비하고 증거하는 것에 싫증이 나면 네가 목사로서 돌파구가 없다. 그것은 끝이다. 네가 목회하면서 성도님들을 돌아보는 일에 싫증이 나면, 그 목회는 더 이상 목회가 아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면서 싫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싫증이 나면 우리의 믿음은 끝입니다. 말씀을 읽는 것에 싫증이 나면, 생명의 말씀이 나와 동행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싫증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에는 싫증나면 안 됩니다. 예배에 싫증이 나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싫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 그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이 얻는 삶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칩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불평하는 사람인가?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인가? 원망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열려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 중 4절과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4~5)
감사, 감사, 그리고 또 감사! 이것이 삶의 내용이 되고 핵심이 되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00: 1 ~ 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감사는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감사가 내 영혼을 감싸고 있는지, 혹시 감사보다는 불평과 분노가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삶에는 불평과 분노, 시기와 질투만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절망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감사로부터 비롯됩니다. 감사를 놓치면 인생의 모든 축복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대학입시 수능고사가 있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한마음이 되어 기도했고, 우리 교인들도 함께 중보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전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네가 우리 아들이라는 게 정말 기쁘구나. 너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심에 참으로 감사한단다. 너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네가 요즘 입시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조금은 알 것 같구나. 그러나 아들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네가 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에 먼저 합격하면 어떻겠니? 그런 후 너의 시험도 하나님께 맡기자꾸나. 우리 하나님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분이니까.” – 사랑하는 엄마가-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에 먼저 합격하면 어떻겠니?’라는,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아들도 이 한마디에 마음의 평화를 찾고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요?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요? 수많은 시험과 난관,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때로는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에 합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눈 대화가 있습니다. 야외에 나가 손자와 놀아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있는 게 너무 좋았고, 손자에게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오늘 재밌었어요.”
“아니야, 나도 즐거웠단다.”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가 빨리 안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재밌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거든요.”
아마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손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을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사랑한다’, ‘감사한다’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좋은 말입니다. 삶의 인간관계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한다고 이야기하고,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겠다고 고백하면, 하나님도 너무 즐거워하시며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자꾸 냉혹해지고 있습니다. 감사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움과 불신, 못된 마음이 자꾸만 커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우리 삶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로마서 1:21 중)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를 지적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해 보이려는 수많은 시도들로 가득합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이 가득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감사가 있습니까?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아내와 남편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자녀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최고의 감사로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 시편 100편 3절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감사 고백을 외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이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 100:3)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며 목자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시인이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언이 등장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나님이 우리를 지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또 이어지는 구절 4절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사야 43:4 중)
하나님의 눈에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아끼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고백과 선언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대신 가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것을 놓쳐도 일어설 수 있지만 감사를 놓치면 우리 인생은 파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에도 커다란 축복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소망교회에서 보낸 16년간의 목회 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처음 신학공부를 했을 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신학자가 되어 교수가 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전도자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깨닫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내가 믿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생명이라도 걸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소중한 것들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길이며 진리요, 부활과 생명이고, 해방과 지혜, 평안을 허락해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저는 아마추어 전도자가 아닌 프로패셔널(professional)한 전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을 전도자의 길로 헌신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증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믿음의 친구들과 새벽마다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독일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와서도 총장님께 생활관장을 맡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신학생들과 새벽기도를 하기 위함입니다. 소망교회에서 사역하면서도 원 없이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소망교회 강단에 오른 숫자를 대략 세어 보니, 거의 만 번에 가까웠습니다. 눈만 뜨면 설교했습니다. 때로는 부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다시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새벽예배가 저를 살렸고, 말씀 증거를 통해 저 자신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서도 가장 큰 기쁨이자 하나님께 드리는 큰 감사의 내용입니다.
한편 소망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은 제게는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교회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돌아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혜였습니다. 단에 올라설 때마다 두렵고 떨렸습니다. ‘과연 내가 소망교회 담임목회자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16년 동안 물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참모 역할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소망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소망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저는 참모일 뿐입니다.”
나아가 소망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기쁨이자 자랑이었습니다. 좋은 부목사님들과 함께했습니다. 또 멋진 교회학교 교역자들도 보내주셨습니다. 목회 사역은 담임목사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곳곳에서 맡겨진 사역에 충성을 다하는 교역자들이 있었기에 소망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 주신 교회 직원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소망교회를 통해 큰 사랑과 인복도 경험했습니다.
또 하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저는 소망교회에 와서 너무 많은 인복을 받았습니다. 귀한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기도하고 기도 받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늘 감격이었습니다. 소중한 장로님들도 만났고, 귀한 권사님들, 집사님들도 만났습니다.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소망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는 그분들의 헌신을 보며 소망교회와 한국 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성도님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제게 허락하신 인복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교회 각 처소에서 헌신하는 분들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예배와 경조사에 헌신하는 권사님들, 새벽마다 일을 감당하는 권사님들, 경조부 실행위원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여전도회와 남선교회 분들, 기도와 이웃 봉사와 전도와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 각 제직회와 교회학교에 충성하며, 찬양대에서 충성하는 주님의 종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 한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사랑으로 감사하면서 헌신할 때 복 받는다는 사실을 소망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절감했습니다.
제가 받은 개인적인 복도 있습니다. 건강의 복, 가정의 복입니다. 신학교 교수 시절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며칠씩 앓아눕곤 했습니다. 하지만 소망교회에 와서는 사건, 사고 외에는 한 번도 앓아누워 하루를 넘긴 적이 없습니다. 놀랍게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수없이 계속되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시켜 주셔서 마지막까지 오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힘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도움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소망교회에 와서 제 아들과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늘 저는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아들과 딸을 낳게 되면서, 또 두 자녀가 소망교회에서 결혼을 하면서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이 되었고, 이제는 가족사진을 보면 10명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한 제목은 그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충성할 수 있을까요?” 늘 가슴에 묻던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소망교회 사역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임 목회자를 결정하는 데 장로님들과 온 성도님들이 잘 참여해 주셔서 김경진 목사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경진 목사님이 어느 날 저를 보면서 “목사님이 부럽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부럽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여기까지 소망교회가 한결같이 오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더 잘하실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믿음의 선한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감사, 감사, 또 감사할 때, 우리 삶이 풍성해집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이끄심이자 도움이었습니다. 제게 또 하나 큰 감사가 있다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때로는 취미를 가졌다가도 싫증이 나고, 하던 일이 귀찮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귀찮지도 싫증난 적도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증거할 때면 언제나 힘이 솟았습니다. 때로는 밤늦도록 말씀을 준비해야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말씀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담과 스트레스가 된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다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깨달음을 허락하시며 제게 다가오셨고, 그로 인해 제 영혼이 힘을 얻고 기뻐 뛰놀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가장 복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네 인생의 가는 길에 싫증나는 것이 이것저것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말씀 전하는 것에, 말씀 준비하고 증거하는 것에 싫증이 나면 네가 목사로서 돌파구가 없다. 그것은 끝이다. 네가 목회하면서 성도님들을 돌아보는 일에 싫증이 나면, 그 목회는 더 이상 목회가 아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면서 싫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싫증이 나면 우리의 믿음은 끝입니다. 말씀을 읽는 것에 싫증이 나면, 생명의 말씀이 나와 동행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싫증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에는 싫증나면 안 됩니다. 예배에 싫증이 나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싫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것, 그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이 얻는 삶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칩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불평하는 사람인가?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인가? 원망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열려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 중 4절과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4~5)
감사, 감사, 그리고 또 감사! 이것이 삶의 내용이 되고 핵심이 되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 [20181118] 2018년 11월 18일 주일말씀 구역(가정)예배 교안.hwp
2018년 11월 18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감사, 감사, 또 감사!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6장, 42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100: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1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추수감사절을 보내면, 여러분의 삶의 감사가 넘쳐나고 있습니까?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오직 불평과 분노뿐입니다. 서로 이간질하는 시기와 질투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우리 삶에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을 놓치면 모든 축복을 상실하게 됩니다.
설교의 요약
지난 주 목요일(15일)은 수험생 어머니가 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이 정말 기쁘구나. 너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란다.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가정에 보내 주신 것을 너무 감사한단다. 너로 인하여 엄마와 아빠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단다. 네가 입시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나도 조금 알 것 같구나.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다. 네가 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하면 어떠하겠니? 그런 후에 너의 시험도 하나님께 맡기자꾸나. 우리 하나님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으로 지켜주시니까! 사랑하는 엄마가...”
대학입시에 합격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삶에 합격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아들은 그 말 한마디에 다시 마음의 평화를 갖고 용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먼저 감사하는 일에 합격하면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집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소망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 시대는 감사가 사라지고, 미움과 불신과 투쟁이 가득한 곳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롬1:21)”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인간은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시100:3).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목자이십니다. 시편23편의 말씀처럼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 분에게 소속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였습니다. 우리 몸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요, 피로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 감사,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나의 감사 제목은 무엇입니까? 서로의 감사의 제목을 함께 나눠보세요.
2.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나는 날마다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3. 나에게 감사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감사가 빠진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도록 서로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입술에 불평과 불만, 원망의 탄식들은 사라지게 하시고, 날마다 삶의 자리에서 감사의 제목들을 찾고 만들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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