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
감사는 내 신앙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재단을 쌓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1년을 돌아봅니다. 아니,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우리의 신앙을 한 번 돌아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신앙인가 아닌가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감사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까?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니,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원망의 마음만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더욱 감사하는 자로 성숙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사의 마음은 사라지고 영혼이 피폐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시간 짧은 영상을 보며 우리 자신을 잠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상 함께 보기 –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어르신까지, 각자의 삶에서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니다. 내가 얻은 것,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출발해서 점차 나 자신의 존재 자체로 감사의 내용들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종 말씀드렸습니다만, 탈무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감사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소유에 대한 감사입니다. 즉, 내가 무언가를 얻어서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용돈을 달라, 선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용돈이나 선물을 주면, 자녀들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조건적인 감사이지만, 감사의 배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 걸음마 수준의 이 감사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받게 됨으로, ‘인생은 내 것이 아니구나.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감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비교를 통한 감사입니다. 이것은 삶을 멋지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개인의 실존이 어제의 상황보다 오늘 더 나아질 때, 가진 것이 오늘 더 풍성하게 되었을 때, 본래의 못된 품성 때문에 때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오늘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감사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 감사가 되다가도,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 감사가 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를 통한 감사는 불평이 혼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의 시점과 기준은 나 자신의 원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단계인 존재자체로 하는 감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 원점을 기억하는 감사입니다. 그냥, 내 모습 이대로 감사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내 삶에 습관처럼 다가오면 매우 복된 일입니다.
감사는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는 감사를 부모님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치는 부모는 최고의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감사를 통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감사가 사라지면 삶이 풍요롭지 않습니다. 기쁘지 않고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속에 감사가 있으면 그 인생은 풍요로워집니다.
소유가 아닌 감사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가 없다는 것은, ‘나는 마땅히 가져야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는 존재다’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교만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 될 때 인생의 모든 것이 본래부터 내 것이 아닌, 받은 선물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을 향해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 목표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에만 집착하는 삶에서는 감사가 어렵습니다. 상황 속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고, 내 삶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고,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감사의 시작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행복해져야 감사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가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집니다. 즉, 감사를 시작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얼굴은 밝습니다. 따뜻합니다. 그 모습에 기쁨이 있고, 그 영혼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속에는 인생을 사는 비밀과 신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때로 우리의 상황이 너무 괴로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어렵게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가? 고통을 받았어도 감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감사의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는 놀랍게도 깊은 고난에 처했을 때 감사의 노래를 시작합니다. 요나는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도망가기로 작정했던 못된 인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따르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백성이 회개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 내가 니느웨에 갑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인데, 그 백성이 회개하면 그것은 우리 이스라엘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저 놈들은 다 쳐서 죽여야 됩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를 향해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 (요나 1:17)
“너 어디로 도망을 가는 것이냐? 네가 땅 끝으로 간다한들 내가 가지 못하겠느냐? 네가 땅 속에 들어갔다고 내가 너를 못 찾겠느냐? 네가 나를 피해 갈 때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이미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는 요나를 추적하셔서 그에게 다시금 감사하는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새로운 사명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여 영혼의 기쁨을 되찾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나가 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은 바로 이 고난으로부터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에 들어가니까 기도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난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도를 잘 안합니다. 고난에 들어가지 않으면, 실제로 내 인생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감사들이 있었는지,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밖에 없는 인생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인생을 뒤흔드십니다. 잘나갈 때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해지고 완악해지는 우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 비로소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2)
스올의 뱃속은 지옥의 뱃속이라는 뜻입니다. 고난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것이 곧 구원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슬픔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작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금같이 단단하고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외로운 밤을 지냈습니까? 고통스러운 질병을 겪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환란과 역경이 있었습니까? 때로는 사람들이 나를 잘못 이해해서 누명을 쓰기도 하고, 그 억울한 마음에 눈물의 밤을 보낸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실패하고 좌절해서 비통의 탄식을 했던, 믿었던 친구가 나를 버리고 배신했던, 그 밤의 터널을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때,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그 고난이 구원의 시작임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요나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바닷물 속에 빠진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로 내 잘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이 잘못 속에서도 내게 가까이 찾아오고 계셨구나.’ 요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요나 2:3)
요나는 ‘주님의 파도와 주님의 물결’이 자신을 둘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그냥 파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요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무려 삼일 동안 그는 물고기 뱃속의 어둠 안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포기하고 싶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적으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절망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이었고, 그랬을 때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나는 그 고통과 어둠의 자리가 역전의 자리가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 2:5~6)
오랫동안 나를 막았으나, 이 세상의 장애와 고통이 나를 억압했으나 결국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67)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내 속에 감사가 없었으나 고난을 통해 감사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수많은 것을 가졌어도 영혼에 기쁨이 없었지만, 고난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기뻐해야할 제목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요나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 2:8~9)
영어성경을 보면, ‘감사하는 목소리로’라는 표현이 ‘with a song of thanksgiving’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모든 상황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형편없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소망하며 내 마음과 입술로, 내 삶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회복됩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감사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도 감사를 통해 치유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육체적으로 힘이 드십니까? 그럼 오늘부터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감사의 내용들을 써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지금까지의 삼십 평생, 오십 평생, 칠십,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제 삶에 감사해야할 것들을 다시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시면서 받은 축복들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슬픔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치유약입니다. 내 속에 도사리는 절망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소망이 감사 속에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게 감사의 제목들이 있는가?’ 하는 것과 ‘화가 나는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빨리 감사의 마음으로 돌이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화가 나면, 그 다음에 감사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이 걸립니까? 하루가 걸립니까? 일주일, 혹은 일 년이 걸립니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감사보다 분노가 더 자주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요나는 고난 가운데 감사의 마음을 찾는 데 삼일이 걸렸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화가 날 때, 슬플 때, 탄식할 때, 이것을 감사의 기도로 바꾸는데 하루가 넘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네 분노를 해가 지기 전까지 풀라”고 말입니다. 요나는 삼일이 걸렸지만 우리는 더 단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감사절을 맞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감사,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길이고, 내 인생이 치유되는 복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감사를 시작하십시오. 감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 내 인생을 감사로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시고, 그 결심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요나 2: 1 ~ 10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감사는 내 신앙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재단을 쌓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1년을 돌아봅니다. 아니,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우리의 신앙을 한 번 돌아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신앙인가 아닌가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감사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까?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니,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원망의 마음만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더욱 감사하는 자로 성숙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사의 마음은 사라지고 영혼이 피폐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시간 짧은 영상을 보며 우리 자신을 잠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상 함께 보기 –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어르신까지, 각자의 삶에서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니다. 내가 얻은 것,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출발해서 점차 나 자신의 존재 자체로 감사의 내용들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종 말씀드렸습니다만, 탈무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감사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소유에 대한 감사입니다. 즉, 내가 무언가를 얻어서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용돈을 달라, 선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용돈이나 선물을 주면, 자녀들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조건적인 감사이지만, 감사의 배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 걸음마 수준의 이 감사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받게 됨으로, ‘인생은 내 것이 아니구나.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감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비교를 통한 감사입니다. 이것은 삶을 멋지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개인의 실존이 어제의 상황보다 오늘 더 나아질 때, 가진 것이 오늘 더 풍성하게 되었을 때, 본래의 못된 품성 때문에 때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오늘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감사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 감사가 되다가도,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 감사가 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를 통한 감사는 불평이 혼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의 시점과 기준은 나 자신의 원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단계인 존재자체로 하는 감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 원점을 기억하는 감사입니다. 그냥, 내 모습 이대로 감사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내 삶에 습관처럼 다가오면 매우 복된 일입니다.
감사는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는 감사를 부모님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치는 부모는 최고의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감사를 통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감사가 사라지면 삶이 풍요롭지 않습니다. 기쁘지 않고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속에 감사가 있으면 그 인생은 풍요로워집니다.
소유가 아닌 감사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가 없다는 것은, ‘나는 마땅히 가져야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는 존재다’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교만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 될 때 인생의 모든 것이 본래부터 내 것이 아닌, 받은 선물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을 향해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 목표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에만 집착하는 삶에서는 감사가 어렵습니다. 상황 속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고, 내 삶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고,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감사의 시작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행복해져야 감사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가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집니다. 즉, 감사를 시작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얼굴은 밝습니다. 따뜻합니다. 그 모습에 기쁨이 있고, 그 영혼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속에는 인생을 사는 비밀과 신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때로 우리의 상황이 너무 괴로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어렵게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가? 고통을 받았어도 감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감사의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는 놀랍게도 깊은 고난에 처했을 때 감사의 노래를 시작합니다. 요나는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도망가기로 작정했던 못된 인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따르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백성이 회개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 내가 니느웨에 갑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인데, 그 백성이 회개하면 그것은 우리 이스라엘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저 놈들은 다 쳐서 죽여야 됩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를 향해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 (요나 1:17)
“너 어디로 도망을 가는 것이냐? 네가 땅 끝으로 간다한들 내가 가지 못하겠느냐? 네가 땅 속에 들어갔다고 내가 너를 못 찾겠느냐? 네가 나를 피해 갈 때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이미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는 요나를 추적하셔서 그에게 다시금 감사하는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새로운 사명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여 영혼의 기쁨을 되찾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나가 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은 바로 이 고난으로부터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에 들어가니까 기도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난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도를 잘 안합니다. 고난에 들어가지 않으면, 실제로 내 인생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감사들이 있었는지,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밖에 없는 인생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인생을 뒤흔드십니다. 잘나갈 때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해지고 완악해지는 우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 비로소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2)
스올의 뱃속은 지옥의 뱃속이라는 뜻입니다. 고난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것이 곧 구원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슬픔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작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금같이 단단하고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외로운 밤을 지냈습니까? 고통스러운 질병을 겪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환란과 역경이 있었습니까? 때로는 사람들이 나를 잘못 이해해서 누명을 쓰기도 하고, 그 억울한 마음에 눈물의 밤을 보낸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실패하고 좌절해서 비통의 탄식을 했던, 믿었던 친구가 나를 버리고 배신했던, 그 밤의 터널을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때,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그 고난이 구원의 시작임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요나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바닷물 속에 빠진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로 내 잘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이 잘못 속에서도 내게 가까이 찾아오고 계셨구나.’ 요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요나 2:3)
요나는 ‘주님의 파도와 주님의 물결’이 자신을 둘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그냥 파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요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무려 삼일 동안 그는 물고기 뱃속의 어둠 안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포기하고 싶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적으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절망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이었고, 그랬을 때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나는 그 고통과 어둠의 자리가 역전의 자리가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 2:5~6)
오랫동안 나를 막았으나, 이 세상의 장애와 고통이 나를 억압했으나 결국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67)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내 속에 감사가 없었으나 고난을 통해 감사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수많은 것을 가졌어도 영혼에 기쁨이 없었지만, 고난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기뻐해야할 제목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요나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 2:8~9)
영어성경을 보면, ‘감사하는 목소리로’라는 표현이 ‘with a song of thanksgiving’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모든 상황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형편없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소망하며 내 마음과 입술로, 내 삶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회복됩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감사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도 감사를 통해 치유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육체적으로 힘이 드십니까? 그럼 오늘부터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감사의 내용들을 써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지금까지의 삼십 평생, 오십 평생, 칠십,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제 삶에 감사해야할 것들을 다시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시면서 받은 축복들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슬픔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치유약입니다. 내 속에 도사리는 절망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소망이 감사 속에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게 감사의 제목들이 있는가?’ 하는 것과 ‘화가 나는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빨리 감사의 마음으로 돌이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화가 나면, 그 다음에 감사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이 걸립니까? 하루가 걸립니까? 일주일, 혹은 일 년이 걸립니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감사보다 분노가 더 자주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요나는 고난 가운데 감사의 마음을 찾는 데 삼일이 걸렸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화가 날 때, 슬플 때, 탄식할 때, 이것을 감사의 기도로 바꾸는데 하루가 넘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네 분노를 해가 지기 전까지 풀라”고 말입니다. 요나는 삼일이 걸렸지만 우리는 더 단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감사절을 맞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감사,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길이고, 내 인생이 치유되는 복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감사를 시작하십시오. 감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 내 인생을 감사로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시고, 그 결심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