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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을 받은 사람은 아쉬움 때문에 행복과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올림픽 경기에 최선을 다해 땀 흘린 선수들에게 우리는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야구가 전승을 하면서 세계 최강인 쿠바를 이겨 우승을 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 본 모든 국민의 마음에 시원함이 있었습니다. 우승하고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에게 행복도와 만족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금메달을 딴 사람이 제일 기쁨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도와 만족도의 순서가 금-은-동이 아니라 금-동-은이었습니다.
수영과 레슬링, 체조와 육상경기에서 은메달 리스트와 동메달 리스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스포츠와 무관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누가 더 행복해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동메달을 딴 사람이 은메달을 딴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경기 직후에 소감을 물을 때에도 은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늘 회고형의 답변을 합니다. ‘내가 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임했더라면 꼭 금메달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동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금메달 받은 선수들과 비슷한 만족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은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메달권 밖에 있는 5위 선수의 얼굴표정과 느낌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은메달 리스트들은 왜 자신의 메달에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금메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자책했기 때문에 얼굴에 기쁨이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은메달을 획득한 것도 굉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하마터면 메달을 전혀 받지 못할 상황과 비교하여 마음에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기쁨보다는 힘들 때가 더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할지 생각합니다. 우리도 매번 금메달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의 금메달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피나는 훈련과 땀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메달을 따지 못하고 돌아가는 선수들과 임원들 같은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인생의 금메달만을 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한 면에서는 금메달을 받은 사람도 다른 면에서는 인생의 꼴지 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인생은 한 분야에만 매진하는 인생이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인생의 조건과 관심 분야가 우리의 삶에 다양하게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건강, 가족, 공부, 직업, 명예, 인간관계 외에도 수없는이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함수관계로 수십 개, 수백 개의 관계들로 얽혀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면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메달을 따지 못하는 인생으로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 잘될 때에는 잠시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금방 나보다 더 잘 난사람,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뒤틀려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때로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 스스로 탄식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꾸었던 인생의 목표가 달성이 안 되면 스스로 깊은 절망의 나락 속에 빠져드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자신을 되돌아봐도 이런 경험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깨닫습니다. 어떨 때는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해 건강의 상실이 다가올 때 너무나 큰 아픔을 느낍니다. 좋았던 직장에서 사직하거나 은퇴하고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받게 되는 박탈감이란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떠나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갖는 아픔 등 우리 인생에서 느끼는 고달픈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메마른 광야와 아름다운 동산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뭐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서 인생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동산, 에덴과 같은 기쁨의 동산입니다. 우리 삶은 늘 이 두 가지 삶의 모습 앞에 놓여 있습니다. 힘들 때 인생은 사막과 바람이 부는 광야와 같습니다. 잘되고 좋은 때는 꽃이 만발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동산과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 건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그런 분들에게 물어보면 결코 인생은 쉽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열심히 산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동산이기 보다는 척박한 사막이라고 합니다. 벌판과 광야 같은 외로움 속에서 시달린 인생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엄청나게 수고하고 땀 흘렸는데도 아무 메달도 따지 못하고 빈손으로 오는 선수들처럼 가슴에 아픔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삶은 우리 자신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시간과 정열을 성실하게 쏟아 붓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일을 시도하면 할수록 실패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목표한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포기합니다. 조금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모든 것을 땅에 묻고 조그만 안전판 하나 동그랗게 그려놓고 거기에 안주하는 삶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신앙의 인생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인생은 시도하다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실패하기 때문에 다음에 또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겪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안고 달려가라고 격려해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같은 삶에서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눈물과 순환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고난의 길을 간 백성이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사막과 광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애굽 땅에서 사막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이는 거대한 제국 밑에서 예루살렘은 다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거기서 무려 70년 동안이나 고난의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사막과 광야를 경험하면서 마음속의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회복의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곳은 폐허가 된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복음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모든 삶의 의미를 다 내려놓고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 실망하고 낙담할지라고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며 찾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기억시키면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식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사람들에게 과거를 기억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의 슬픔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탄식하며 지나간 슬픔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아픈 추억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하면서 응어리진 것을 그대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난 받고 외로울 때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생명의 말씀으로 위로하며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약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가련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빈손이었던 나, 거대한 바위 속에서 떨어뜨려져 나온 돌덩이와 같은 나, 흙구덩이 속에서 파낸 진흙과 같은 나를 불려주셔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로 허락해주셨다는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문제 속에서도 한 걸음 앞을 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보라” (이사야 51:1)
이것은 과거에는 자신들이 돌덩이와 진흙 속에서 끄집어낸 진흙덩어리였음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 아브라함과 사라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75세 때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아무 소망도 없고 죽은 자와 같았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망이 끊어졌을 때 찾아오십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자녀를 풍성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꿈과 비전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이사야 51:2)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야 속에서 혼자만 남아있고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주시고 복을 주시며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신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초청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절대 고독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희망이 없을 어느 순간에도 절대로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자신이 미약하고 가능성이 없으며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에도 살아있는 자체만으로 인생은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기를 약속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하나님만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부르심 앞에 나아가십시오.
헨리 나우웬이 쓴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작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군인이 전쟁포로로 잡혀가서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이송되어 붙잡혀 있었습니다. 낯익은 곳에서부터 떨어져 있는 그는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족은 살아있는지 고국 상황은 어떤지 마음속에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을 때 뜻밖의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몇 달에 걸려서 수용소까지 온 것이어서 봉투 귀퉁이가 찢어지고 손때가 가득 묻어있었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는 다 좋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말 한마디에 그는 모든 낙담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던 인생을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용기로 바꾸었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리 숙이고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면서 오라고 초청하시는 말씀 때문에 인생의 장애물이 있어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며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오기를 기다린다. 네 모습 그대로 내게 나오너라. 내가 너를 맞이하겠다. 나의 쉼과 평화와 생명을 네게 주겠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금메달보다 더 큰 축복을 누리십시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며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복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이사야 51:3)
하나님께서 황폐한 곳에서 사람들을 위로해주십니다. 그리고 사막을 에덴동산같이 만들고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같이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황폐한 것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막을 에덴동산과 하나님의 동산처럼 바꿔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와 원망이 우리를 넘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를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노래하게 되고 춤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역사를 이룩할 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라” (이사야 51:1)
모든 것에 낙담할 때에도 이 한 가지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내게 얼굴을 비춰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심 속에 회복시켜주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이란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바라봄의 법칙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부족하더라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을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막과 광야를 하나님의 동산같이 바꿔주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 땅위에서 하나님과 같이 창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낙담하여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의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쁨과 생명의 근원되시는 주님께서 사막을 동산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시고 복을 주시며 생명과 기쁨을 얻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다시 출발하게 하옵소서. 다시 도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사야 51: 1 ~ 6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은메달을 받은 사람은 아쉬움 때문에 행복과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올림픽 경기에 최선을 다해 땀 흘린 선수들에게 우리는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야구가 전승을 하면서 세계 최강인 쿠바를 이겨 우승을 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 본 모든 국민의 마음에 시원함이 있었습니다. 우승하고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에게 행복도와 만족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금메달을 딴 사람이 제일 기쁨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도와 만족도의 순서가 금-은-동이 아니라 금-동-은이었습니다.
수영과 레슬링, 체조와 육상경기에서 은메달 리스트와 동메달 리스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스포츠와 무관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누가 더 행복해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동메달을 딴 사람이 은메달을 딴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경기 직후에 소감을 물을 때에도 은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늘 회고형의 답변을 합니다. ‘내가 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임했더라면 꼭 금메달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동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금메달 받은 선수들과 비슷한 만족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은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메달권 밖에 있는 5위 선수의 얼굴표정과 느낌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은메달 리스트들은 왜 자신의 메달에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금메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자책했기 때문에 얼굴에 기쁨이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은메달을 획득한 것도 굉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하마터면 메달을 전혀 받지 못할 상황과 비교하여 마음에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기쁨보다는 힘들 때가 더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할지 생각합니다. 우리도 매번 금메달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의 금메달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피나는 훈련과 땀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메달을 따지 못하고 돌아가는 선수들과 임원들 같은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인생의 금메달만을 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한 면에서는 금메달을 받은 사람도 다른 면에서는 인생의 꼴지 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인생은 한 분야에만 매진하는 인생이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인생의 조건과 관심 분야가 우리의 삶에 다양하게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건강, 가족, 공부, 직업, 명예, 인간관계 외에도 수없는이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함수관계로 수십 개, 수백 개의 관계들로 얽혀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면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메달을 따지 못하는 인생으로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 잘될 때에는 잠시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금방 나보다 더 잘 난사람,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뒤틀려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때로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 스스로 탄식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꾸었던 인생의 목표가 달성이 안 되면 스스로 깊은 절망의 나락 속에 빠져드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자신을 되돌아봐도 이런 경험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깨닫습니다. 어떨 때는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해 건강의 상실이 다가올 때 너무나 큰 아픔을 느낍니다. 좋았던 직장에서 사직하거나 은퇴하고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받게 되는 박탈감이란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떠나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갖는 아픔 등 우리 인생에서 느끼는 고달픈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메마른 광야와 아름다운 동산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뭐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서 인생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동산, 에덴과 같은 기쁨의 동산입니다. 우리 삶은 늘 이 두 가지 삶의 모습 앞에 놓여 있습니다. 힘들 때 인생은 사막과 바람이 부는 광야와 같습니다. 잘되고 좋은 때는 꽃이 만발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동산과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 건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그런 분들에게 물어보면 결코 인생은 쉽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열심히 산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동산이기 보다는 척박한 사막이라고 합니다. 벌판과 광야 같은 외로움 속에서 시달린 인생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엄청나게 수고하고 땀 흘렸는데도 아무 메달도 따지 못하고 빈손으로 오는 선수들처럼 가슴에 아픔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삶은 우리 자신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시간과 정열을 성실하게 쏟아 붓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일을 시도하면 할수록 실패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목표한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포기합니다. 조금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모든 것을 땅에 묻고 조그만 안전판 하나 동그랗게 그려놓고 거기에 안주하는 삶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신앙의 인생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인생은 시도하다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실패하기 때문에 다음에 또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겪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안고 달려가라고 격려해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같은 삶에서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눈물과 순환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고난의 길을 간 백성이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사막과 광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애굽 땅에서 사막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이는 거대한 제국 밑에서 예루살렘은 다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거기서 무려 70년 동안이나 고난의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사막과 광야를 경험하면서 마음속의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회복의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곳은 폐허가 된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복음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모든 삶의 의미를 다 내려놓고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 실망하고 낙담할지라고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며 찾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기억시키면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식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사람들에게 과거를 기억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의 슬픔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탄식하며 지나간 슬픔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아픈 추억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하면서 응어리진 것을 그대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난 받고 외로울 때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생명의 말씀으로 위로하며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약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가련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빈손이었던 나, 거대한 바위 속에서 떨어뜨려져 나온 돌덩이와 같은 나, 흙구덩이 속에서 파낸 진흙과 같은 나를 불려주셔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로 허락해주셨다는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문제 속에서도 한 걸음 앞을 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보라” (이사야 51:1)
이것은 과거에는 자신들이 돌덩이와 진흙 속에서 끄집어낸 진흙덩어리였음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 아브라함과 사라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75세 때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아무 소망도 없고 죽은 자와 같았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망이 끊어졌을 때 찾아오십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자녀를 풍성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꿈과 비전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이사야 51:2)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야 속에서 혼자만 남아있고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주시고 복을 주시며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신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초청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절대 고독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희망이 없을 어느 순간에도 절대로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자신이 미약하고 가능성이 없으며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에도 살아있는 자체만으로 인생은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기를 약속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하나님만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부르심 앞에 나아가십시오.
헨리 나우웬이 쓴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작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군인이 전쟁포로로 잡혀가서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이송되어 붙잡혀 있었습니다. 낯익은 곳에서부터 떨어져 있는 그는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족은 살아있는지 고국 상황은 어떤지 마음속에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을 때 뜻밖의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몇 달에 걸려서 수용소까지 온 것이어서 봉투 귀퉁이가 찢어지고 손때가 가득 묻어있었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는 다 좋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말 한마디에 그는 모든 낙담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던 인생을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용기로 바꾸었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리 숙이고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면서 오라고 초청하시는 말씀 때문에 인생의 장애물이 있어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며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오기를 기다린다. 네 모습 그대로 내게 나오너라. 내가 너를 맞이하겠다. 나의 쉼과 평화와 생명을 네게 주겠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금메달보다 더 큰 축복을 누리십시오.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며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복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이사야 51:3)
하나님께서 황폐한 곳에서 사람들을 위로해주십니다. 그리고 사막을 에덴동산같이 만들고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같이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황폐한 것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막을 에덴동산과 하나님의 동산처럼 바꿔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와 원망이 우리를 넘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를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노래하게 되고 춤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역사를 이룩할 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라” (이사야 51:1)
모든 것에 낙담할 때에도 이 한 가지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내게 얼굴을 비춰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심 속에 회복시켜주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이란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바라봄의 법칙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부족하더라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을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막과 광야를 하나님의 동산같이 바꿔주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 땅위에서 하나님과 같이 창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낙담하여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의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쁨과 생명의 근원되시는 주님께서 사막을 동산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시고 복을 주시며 생명과 기쁨을 얻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다시 출발하게 하옵소서. 다시 도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