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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배의 공동체!

창세기 35: 1 ~ 5

김지철 목사

2017.02.26

자주독립을 외쳤던 삼일절을 회상합니다.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한 삼일절도 이제 2년 후면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3‧1운동은 세계 역사 속에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대규모의 거국적인 저항운동이었습니다. 또한 광복과 해방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깃든 독립운동이었습니다. 동시에 일본제국이 이 땅에 행했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삼일절 노래’를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노래를 잠시 소개해 봅니다.

– 삼일절 노래 –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그날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는 경건히 삼일절을 보냅니다. 나라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신앙을 잃으면 영혼과 정신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나라를 잃게 되면 참담한 심정이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애국선열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애국선열과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민족의 자긍심을 지켰던 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와 주기철 목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순교에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분들 뒤에서 이 일을 가능케 했던 어머니와 아내, 곧 여성들이 있었음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먼저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를 보면 ‘이런 어머니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아들에게 ‘담대히 죽으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담대히 가거라.’라고 편지를 쓰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애가 탔을까요? 이런 어머니께 사형 판결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유서가 담긴 답장을 보냈습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 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이런 아들 또한 있지 않았겠습니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서른두 살이라는 젊고 젊은 나이에 순국의 길을 갔습니다.

나라를 사랑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동역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첫 번째 아내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이었던 오정모 사모가 그런 동역자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실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이 바로 오정모 사모님입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주 목사님이 몇 달 간 감옥살이를 한 뒤, 가석방이 되었을 때 일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남편에게 오 사모님이 건넨 첫마디가 “승리하셨습니까?”였다고 합니다. 감옥에서도 신앙생활을 저버리지 않고 이겨 나갔느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말이 “다시 감옥에 갈 준비를 하세요.”라고 합니다. 이후 주기철 목사님이 4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오랜 감옥 생활로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숱한 고문으로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을 때, 일본 경찰이 오 사모님에게 남편을 데리고 가라고 통지합니다. 그런데 그때 오 사모님이 거절을 합니다. 내 남편은 감옥에서 죽어야 한다며 거절한 것입니다. 주 목사님이 순교하시기 전 날, 오 사모님은 주 목사님을 면회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목사님은 순교하시오. 목사님이 순교하셔야 한국 교회가 삽니다.”
이렇게 자기 삶과 목숨을 내놓았던 애국자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 복음의 축복, 교회의 축복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후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을 지켜준 버팀목은 바로 오 사모님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으로 함께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주 목사님은 1944년 4월 20일 밤 담대히 순교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나이 마흔여덟이었습니다. 이후 주 목사님은 한국 교회 신앙의 대들보가 되셨고,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 목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에 전남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 내려가 목회를 하셨습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를 수용해 치료하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손 목사님은 사랑의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시며 지극정성으로 그들을 돌보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다 1940년 경 신사참배를 거부했단 이유로 체포를 당합니다. 그렇게 1945년 8‧15 광복이 되기까지 감옥에 갇혀 사십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1948년에 여순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때 목사님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당시 공산반란군 세력에 의해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이 일로 모든 애양원 가족들이 슬퍼하며 목사님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사님은 당시 다음과 같은 감사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렸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남, 차남을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臥席終身: 제명을 다하고 편안히 자리에 누워서 죽음)하는 것은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신애(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이 아버지가 얼마나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이런 감사의 제목을 찾아냈을지 생각해 봅니다. 또한 ‘내가 아버지로서 이런 일을 당하면 감사의 기도가 쉽게 나올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손 목사님 역시 1950년 6‧25전쟁 시, 공산군에 의해 마흔여덟의 나이로 순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사랑한 믿음의 선배들, 생명을 바친 신앙의 선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복을 받았고, 우리 역시 믿음의 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엎드릴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 이야기입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흔들리고 있느냐? 네 삶이 척박하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불확실한 가운데 있느냐?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께 엎드려라.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라. 다시 하나님께 예배드려라. 그러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 전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농락한 뒤입니다. 그는 집을 떠나 방랑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밤이 되어 길거리의 돌을 베개 삼아 누웠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벧엘에 누워 있던 야곱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늘에서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사닥다리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가 누워 있는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또 땅의 모든 족속이 그와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도 약속해 주셨습니다(창28:13~14). 그래서 그는 그곳에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 뒤, 그곳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에서 20여 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후 숙곳과 세겜에도 정착해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야곱아, 왜 벧엘을 잊었느냐? 너의 처음 시작을 왜 잊었느냐? 그래서 불안한 것 아니냐?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오늘 본문 중 1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세기 35:1)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그 자리를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늘 한 걸음 뒤늦게 깨닫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소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끝까지 붙드시며,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요동을 멈추고 다시 인생을 바르게 펴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이념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인 실상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무너지게 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대통령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고, 국민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불통하며 적대시하고 있는 국민의 현실 또한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애통하게 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다시 처음 그때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데올로기나 정권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국가 곧 나라가 아닙니까? 나라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이미 역사 속에서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정신과 신앙입니다. 나라를 잃었어도 정신과 신앙을 잃지 않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 속에서도 나라를 잃었지만 신앙을 잃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엔 나라를 되찾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촛불이라는 게 얼마나 따뜻하고 삶을 운치 있게 만드는 빛입니까? 또한 태극기가 얼마나 우리 대한민국의 사랑과 충성을 상징하는 깃발입니까? ‘보수’라는 말 또한 좋은 말입니다. 전통적인 가치를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진보’라는 말 역시 좋은 말입니다. 변화와 개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는 서로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 갈등입니다. 여야 정치권력 싸움이기도 합니다. 세대 간의 다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이데올로기보다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권력보다 강력한 힘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좌로 갈 수도 있고 우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닫히면 안 됩니다. 폐쇄적인 구도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닫힌 세계에 사는 저 북한 땅의 백성을 보십시오. 저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닫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계와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심지어 같은 민족인 대한민국과도 대화를 단절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자유롭다고 합니다. 정말 행복할까요? 자유로울까요? 한 사람의 정권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원인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수로 가도 막혀서는 안 됩니다. 진보로 가도 막히면 안 됩니다. 그러면 대화가 사라지고 폐쇄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부자간에 대화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들 세대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경험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경험을 존중해 줘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래야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제 탄핵소추의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마지막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모든 국민이 순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국민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역할도 발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적인 것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품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 믿음과 사랑,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합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거라. 일어서거라.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너를 이끌었는지 기억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알지 못하던 우리 백성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셨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일제 치하 36년간의 압제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입니다. 6‧25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백성을 이만큼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흔들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지금은 위기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이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와 도전, 회복의 시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나에게 다시 예배를 드려라.”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이 위기를 믿음과 사랑, 소망으로 이겨 나갈 것을 요청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또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위기를 담대히 극복해 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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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 1 ~ 5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자주독립을 외쳤던 삼일절을 회상합니다.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한 삼일절도 이제 2년 후면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3‧1운동은 세계 역사 속에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대규모의 거국적인 저항운동이었습니다. 또한 광복과 해방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깃든 독립운동이었습니다. 동시에 일본제국이 이 땅에 행했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삼일절 노래’를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노래를 잠시 소개해 봅니다.

– 삼일절 노래 –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그날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는 경건히 삼일절을 보냅니다. 나라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신앙을 잃으면 영혼과 정신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나라를 잃게 되면 참담한 심정이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애국선열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애국선열과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민족의 자긍심을 지켰던 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와 주기철 목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순교에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분들 뒤에서 이 일을 가능케 했던 어머니와 아내, 곧 여성들이 있었음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먼저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를 보면 ‘이런 어머니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아들에게 ‘담대히 죽으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담대히 가거라.’라고 편지를 쓰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애가 탔을까요? 이런 어머니께 사형 판결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유서가 담긴 답장을 보냈습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 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이런 아들 또한 있지 않았겠습니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서른두 살이라는 젊고 젊은 나이에 순국의 길을 갔습니다.

나라를 사랑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동역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첫 번째 아내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이었던 오정모 사모가 그런 동역자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실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이 바로 오정모 사모님입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주 목사님이 몇 달 간 감옥살이를 한 뒤, 가석방이 되었을 때 일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남편에게 오 사모님이 건넨 첫마디가 “승리하셨습니까?”였다고 합니다. 감옥에서도 신앙생활을 저버리지 않고 이겨 나갔느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말이 “다시 감옥에 갈 준비를 하세요.”라고 합니다. 이후 주기철 목사님이 4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오랜 감옥 생활로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숱한 고문으로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을 때, 일본 경찰이 오 사모님에게 남편을 데리고 가라고 통지합니다. 그런데 그때 오 사모님이 거절을 합니다. 내 남편은 감옥에서 죽어야 한다며 거절한 것입니다. 주 목사님이 순교하시기 전 날, 오 사모님은 주 목사님을 면회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목사님은 순교하시오. 목사님이 순교하셔야 한국 교회가 삽니다.”
이렇게 자기 삶과 목숨을 내놓았던 애국자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 복음의 축복, 교회의 축복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후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을 지켜준 버팀목은 바로 오 사모님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으로 함께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주 목사님은 1944년 4월 20일 밤 담대히 순교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나이 마흔여덟이었습니다. 이후 주 목사님은 한국 교회 신앙의 대들보가 되셨고,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 목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에 전남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 내려가 목회를 하셨습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를 수용해 치료하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손 목사님은 사랑의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시며 지극정성으로 그들을 돌보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다 1940년 경 신사참배를 거부했단 이유로 체포를 당합니다. 그렇게 1945년 8‧15 광복이 되기까지 감옥에 갇혀 사십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1948년에 여순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때 목사님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당시 공산반란군 세력에 의해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이 일로 모든 애양원 가족들이 슬퍼하며 목사님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사님은 당시 다음과 같은 감사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렸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남, 차남을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臥席終身: 제명을 다하고 편안히 자리에 누워서 죽음)하는 것은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신애(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이 아버지가 얼마나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이런 감사의 제목을 찾아냈을지 생각해 봅니다. 또한 ‘내가 아버지로서 이런 일을 당하면 감사의 기도가 쉽게 나올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손 목사님 역시 1950년 6‧25전쟁 시, 공산군에 의해 마흔여덟의 나이로 순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사랑한 믿음의 선배들, 생명을 바친 신앙의 선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복을 받았고, 우리 역시 믿음의 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엎드릴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 이야기입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흔들리고 있느냐? 네 삶이 척박하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불확실한 가운데 있느냐?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께 엎드려라.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라. 다시 하나님께 예배드려라. 그러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 전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농락한 뒤입니다. 그는 집을 떠나 방랑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밤이 되어 길거리의 돌을 베개 삼아 누웠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벧엘에 누워 있던 야곱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늘에서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사닥다리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하나님이 야곱에게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가 누워 있는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또 땅의 모든 족속이 그와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도 약속해 주셨습니다(창28:13~14). 그래서 그는 그곳에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 뒤, 그곳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에서 20여 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후 숙곳과 세겜에도 정착해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야곱아, 왜 벧엘을 잊었느냐? 너의 처음 시작을 왜 잊었느냐? 그래서 불안한 것 아니냐?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오늘 본문 중 1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세기 35:1)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그 자리를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늘 한 걸음 뒤늦게 깨닫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소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끝까지 붙드시며,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요동을 멈추고 다시 인생을 바르게 펴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이념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인 실상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무너지게 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대통령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고, 국민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불통하며 적대시하고 있는 국민의 현실 또한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애통하게 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다시 처음 그때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데올로기나 정권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국가 곧 나라가 아닙니까? 나라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이미 역사 속에서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정신과 신앙입니다. 나라를 잃었어도 정신과 신앙을 잃지 않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 속에서도 나라를 잃었지만 신앙을 잃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엔 나라를 되찾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촛불이라는 게 얼마나 따뜻하고 삶을 운치 있게 만드는 빛입니까? 또한 태극기가 얼마나 우리 대한민국의 사랑과 충성을 상징하는 깃발입니까? ‘보수’라는 말 또한 좋은 말입니다. 전통적인 가치를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진보’라는 말 역시 좋은 말입니다. 변화와 개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는 서로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 갈등입니다. 여야 정치권력 싸움이기도 합니다. 세대 간의 다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이데올로기보다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권력보다 강력한 힘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좌로 갈 수도 있고 우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닫히면 안 됩니다. 폐쇄적인 구도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닫힌 세계에 사는 저 북한 땅의 백성을 보십시오. 저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닫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계와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심지어 같은 민족인 대한민국과도 대화를 단절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자유롭다고 합니다. 정말 행복할까요? 자유로울까요? 한 사람의 정권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원인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수로 가도 막혀서는 안 됩니다. 진보로 가도 막히면 안 됩니다. 그러면 대화가 사라지고 폐쇄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부자간에 대화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들 세대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경험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경험을 존중해 줘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래야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제 탄핵소추의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마지막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모든 국민이 순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국민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역할도 발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적인 것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품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 믿음과 사랑,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합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거라. 일어서거라.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너를 이끌었는지 기억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알지 못하던 우리 백성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셨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일제 치하 36년간의 압제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입니다. 6‧25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백성을 이만큼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흔들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지금은 위기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이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와 도전, 회복의 시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나에게 다시 예배를 드려라.”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이 위기를 믿음과 사랑, 소망으로 이겨 나갈 것을 요청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또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위기를 담대히 극복해 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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