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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3), 믿음을 굳게 지키라!

요한계시록 2: 12 ~ 17

김지철 목사

2018.09.16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자 정신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서머나 교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서머나라는 도시 중심에는 폴리캅교회가 있습니다. 그 벽면에는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후 168년에 순교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로마총독이 그를 향해 “네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라. 그를 저주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예수님을 섬겼고, 그분은 내게 결코 잘못 대하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왕이요 구주이신 그분을 내가 저주하겠는가!” 이로써 폴리캅은 화형 당하길 주저하지 않고 순교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교회로 버가모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도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2:13 중)

주님이 버가모 교회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사탄이 유혹하고 위협하는 순간에도 너는 내 이름을 붙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 또한 저버리지 않았다. 안비다라는 사람이 순교의 길을 갈 때도 그리했다.” 예수님은 이 안디바를 향해 “내 충성된 증인이다. 그는 신실하다. 버가모 교회도 이런 순교의 영성을 갖고 믿음을 굳게 지켰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 그들에게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안에서 죽어도 살 수 있다는 부활 신앙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도 순교의 피와 헌신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는 늘 우리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일제강점기에 누구보다 앞장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님입니다. 1938년 2월, 주 목사님 나이 41세 때 ‘국가 질서 문란 죄’라는 죄목으로 1차 투옥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4차례나 투옥되는데, 약 7년 간 옥중 생활을 하며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44년 4월 21일, 48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의 설교문을 읽어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잠시 풀려나 1939년 2월 첫 번째 주일에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시는데, 이때 자신이 아무래도 죽음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란 기도문을 고백하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해 주옵소서.” 이는 순교를 각오하는 기도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백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한들 그 무슨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저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제가 어찌 죽음을 무서워 주님 모르는 체 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둘째, “오랜 기간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주 목사님은 이제 감옥에서 오랫동안 당할 고난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각오를 다지며 간구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감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자는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세 번째는 나이 드신 어머니와 아내, 자녀들과 교우들을 위재 주님께 부탁의 말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구구도생 피할 줄이 있겠습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 예의 동방의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내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다.”

다섯 번째 기도도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하셨던 그 마지막 기도를 주 목사님도 순교 직전에 하셨습니다. 1944년 봄 4월 21일, 오정모 사모님과 마지막 면회를 하게 됩니다. 그때 오 사모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은 꼭,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결단코 살아서는 이 붉은 문 밖을 나올 수 없습니다.” 주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그렇소. 내 살아서 이 붉은 벽돌 문 밖을 나갈 것을 기대하지 않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오. 내 오래지 않아 주님 나라에 갈 거요. 내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당신한테 부탁하오. 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산정현교회와 조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소. 내 이 죽음이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서 조선 교회를 구해 주기를 바랄 뿐이오.” 면회가 끝나려는 순간 오 사모님이 주 목사님에게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때 주 목사님이 이런 마지막 말씀을 합니다. “여보,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이 먹고 싶소.”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 내가 목마르다.” 했던 그 말씀과 같이, 차디찬 감옥에서 숭늉,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날 밤, 평양형무소에서 주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는 마흔 여덟 살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그분들의 순교와 헌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풍요로운 축복과 감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투쟁에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자들도 있었지만, 주님께 꾸중을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2:14 중)

여기서 ‘발람’이란 인물은 구약 민수기 22~24장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돈을 주고 선지자 발람을 유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저주해라. 그래야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충동질하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발람의 교훈’이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우상과 우상의 풍습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타협의 종교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성적으로 부도덕한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을 저버리는 신앙적 태도,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며 꾸중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도 섬기느냐?”라는 지적입니다. 오늘 우리말로 바꿔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다음날에 점집에 찾아갈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자기 탐욕을 채우는 데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자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 영적으로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그 부분을 지적하시며, 그것은 가짜 신앙이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16절에서 이렇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요한계시록 2:16)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주님은 양 날개를 가진 검이라고,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엄한 징계가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것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돈을 섬기고, 하나님을 숭배하면서 권력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세상 쾌락을 동시에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적 투쟁에서 중간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사탄을 섬기는지 둘 중 하나입니다. 주님도 이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십니다.
혹시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잘못된 우상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다시 기억하고 본받으려는 이유와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생명을 걸고 신앙을 붙들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에 목숨을 걸고 좇아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순교 정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가면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순교자들의 사진과 삶의 이야기가 게시돼 있습니다. 또한 큰 돌에 요한복음 15장 13~14절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마저 내 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따라야 할 순교의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순교를 연구하는 분들이 순교에는 세 가지 순교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적색 순교’입니다. 이는 피의 순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순교의 첫 원형입니다. 신앙 때문에 피의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북녘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다 발각되면 피의 순교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백색 순교’입니다.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절제하고 금욕하며 금식하고 노동하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금욕주의적인 수도승들의 삶의 모습이 백색 순교의 대표 모델입니다.
세 번째는 ‘녹색 순교’입니다. 이는 푸른 나무처럼 자기 삶의 자리에서 깊이 뿌리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적인 삶이 순교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자아를 매일매일 죽이면서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내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하는 것, 직장 생활하는 것, 또 사회에서 활동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웃을 섬기며 헌신하는 것을 녹색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적색 순교를 통해 백색 순교까지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순교의 준비가 다 돼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건 순교적 정신입니다. ‘내가 매일 죽노라’라는 바울의 정신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매일매일 새 생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마침내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 말씀 중 17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요한계시록 2:17 중)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영적 투쟁에서 이기라고 선언합니다. 중간지대에 서서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과 내 욕심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와 자세를 타파하라는 것입니다. 넘어서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을 이기고 죽음의 권세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분을 믿는 우리도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사랑이란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의 권세를 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 무엇과도 하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돈, 권력, 쾌락,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기는 자가 되며,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자가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무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양자택일하는 삶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예수님을 믿고, 교회 문을 떠나면 예수님은 마치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신앙적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듯 세상에서도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가정으로 가는 것이며, 직장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와 의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버가모 교회가 한편으로는 흔들렸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우리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오로지 주님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음을 넘어가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승리자가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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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 12 ~ 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자 정신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서머나 교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서머나라는 도시 중심에는 폴리캅교회가 있습니다. 그 벽면에는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후 168년에 순교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로마총독이 그를 향해 “네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라. 그를 저주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예수님을 섬겼고, 그분은 내게 결코 잘못 대하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왕이요 구주이신 그분을 내가 저주하겠는가!” 이로써 폴리캅은 화형 당하길 주저하지 않고 순교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교회로 버가모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도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2:13 중)

주님이 버가모 교회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사탄이 유혹하고 위협하는 순간에도 너는 내 이름을 붙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 또한 저버리지 않았다. 안비다라는 사람이 순교의 길을 갈 때도 그리했다.” 예수님은 이 안디바를 향해 “내 충성된 증인이다. 그는 신실하다. 버가모 교회도 이런 순교의 영성을 갖고 믿음을 굳게 지켰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 그들에게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안에서 죽어도 살 수 있다는 부활 신앙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도 순교의 피와 헌신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는 늘 우리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일제강점기에 누구보다 앞장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님입니다. 1938년 2월, 주 목사님 나이 41세 때 ‘국가 질서 문란 죄’라는 죄목으로 1차 투옥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4차례나 투옥되는데, 약 7년 간 옥중 생활을 하며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44년 4월 21일, 48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의 설교문을 읽어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잠시 풀려나 1939년 2월 첫 번째 주일에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시는데, 이때 자신이 아무래도 죽음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란 기도문을 고백하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해 주옵소서.” 이는 순교를 각오하는 기도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백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한들 그 무슨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저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제가 어찌 죽음을 무서워 주님 모르는 체 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둘째, “오랜 기간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주 목사님은 이제 감옥에서 오랫동안 당할 고난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각오를 다지며 간구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감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자는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세 번째는 나이 드신 어머니와 아내, 자녀들과 교우들을 위재 주님께 부탁의 말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구구도생 피할 줄이 있겠습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 예의 동방의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내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다.”

다섯 번째 기도도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하셨던 그 마지막 기도를 주 목사님도 순교 직전에 하셨습니다. 1944년 봄 4월 21일, 오정모 사모님과 마지막 면회를 하게 됩니다. 그때 오 사모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은 꼭,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결단코 살아서는 이 붉은 문 밖을 나올 수 없습니다.” 주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그렇소. 내 살아서 이 붉은 벽돌 문 밖을 나갈 것을 기대하지 않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오. 내 오래지 않아 주님 나라에 갈 거요. 내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당신한테 부탁하오. 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산정현교회와 조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소. 내 이 죽음이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서 조선 교회를 구해 주기를 바랄 뿐이오.” 면회가 끝나려는 순간 오 사모님이 주 목사님에게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때 주 목사님이 이런 마지막 말씀을 합니다. “여보,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이 먹고 싶소.”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 내가 목마르다.” 했던 그 말씀과 같이, 차디찬 감옥에서 숭늉,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날 밤, 평양형무소에서 주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는 마흔 여덟 살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그분들의 순교와 헌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풍요로운 축복과 감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투쟁에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자들도 있었지만, 주님께 꾸중을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2:14 중)

여기서 ‘발람’이란 인물은 구약 민수기 22~24장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돈을 주고 선지자 발람을 유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저주해라. 그래야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충동질하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발람의 교훈’이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우상과 우상의 풍습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타협의 종교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성적으로 부도덕한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을 저버리는 신앙적 태도,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며 꾸중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도 섬기느냐?”라는 지적입니다. 오늘 우리말로 바꿔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다음날에 점집에 찾아갈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자기 탐욕을 채우는 데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자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 영적으로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그 부분을 지적하시며, 그것은 가짜 신앙이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16절에서 이렇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요한계시록 2:16)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주님은 양 날개를 가진 검이라고,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엄한 징계가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것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돈을 섬기고, 하나님을 숭배하면서 권력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세상 쾌락을 동시에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적 투쟁에서 중간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사탄을 섬기는지 둘 중 하나입니다. 주님도 이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십니다.
혹시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잘못된 우상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다시 기억하고 본받으려는 이유와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생명을 걸고 신앙을 붙들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에 목숨을 걸고 좇아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순교 정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가면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순교자들의 사진과 삶의 이야기가 게시돼 있습니다. 또한 큰 돌에 요한복음 15장 13~14절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마저 내 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따라야 할 순교의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순교를 연구하는 분들이 순교에는 세 가지 순교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적색 순교’입니다. 이는 피의 순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순교의 첫 원형입니다. 신앙 때문에 피의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북녘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다 발각되면 피의 순교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백색 순교’입니다.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절제하고 금욕하며 금식하고 노동하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금욕주의적인 수도승들의 삶의 모습이 백색 순교의 대표 모델입니다.
세 번째는 ‘녹색 순교’입니다. 이는 푸른 나무처럼 자기 삶의 자리에서 깊이 뿌리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적인 삶이 순교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자아를 매일매일 죽이면서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내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하는 것, 직장 생활하는 것, 또 사회에서 활동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웃을 섬기며 헌신하는 것을 녹색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적색 순교를 통해 백색 순교까지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순교의 준비가 다 돼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건 순교적 정신입니다. ‘내가 매일 죽노라’라는 바울의 정신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매일매일 새 생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마침내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 말씀 중 17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요한계시록 2:17 중)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영적 투쟁에서 이기라고 선언합니다. 중간지대에 서서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과 내 욕심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와 자세를 타파하라는 것입니다. 넘어서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을 이기고 죽음의 권세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분을 믿는 우리도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사랑이란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의 권세를 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 무엇과도 하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돈, 권력, 쾌락,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기는 자가 되며,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자가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무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양자택일하는 삶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예수님을 믿고, 교회 문을 떠나면 예수님은 마치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신앙적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듯 세상에서도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가정으로 가는 것이며, 직장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와 의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버가모 교회가 한편으로는 흔들렸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우리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오로지 주님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음을 넘어가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승리자가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9월 1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교회(3),  믿음을 굳게 지키라!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251, 25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계 2:12~17절을 읽고 나눕니다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1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주후 168년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순교했을 때 그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로마 총독이 그를 향해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하라고 명령했지만폴리캅은 내가 86년 동안 예수님을 섬겼고그 분은 내게 결코 잘못 대하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 분을 내가 저주하겠는가라고 대답하며화형(순교)을 선택하였습니다.

설교의 요약

    버가모 교회는 실제로 순교자가 나왔습니다성도들은 순교의 영성을 지니고 신앙을 지켰습니다(13).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향해 너희도 이런 순교의 영성을 갖고 믿음을 굳게 지켰다고 칭찬하였습니다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며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 때문에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1938년 2월 주목사의 나이 41살 때, ‘국가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죄목으로 1차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그리고 네 차례약 7년간의 옥중생활을 하면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셨고, 1944년 4월 21일 감옥에서 48세의 나이에 순교하셨습니다의성경찰서에서 7개월 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풀려난 1939년 2월 첫째 주일에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행한 마지막 설교 – “5종목의 나의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째 장기(長期)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셋째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또 다른 교인들 – 예수님의 꾸중을 받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14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을 버렸던 사람들입니다(22~24장 바람의 교훈).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겼던 사람들입니다그러나 결코 신앙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16). 믿음의 선배들이 갔던 순교의 길이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의 표지입니다.

    순교에는 ① 적색 순교(예수님 믿는 신앙 때문에 피의 순교를 당함② 백색순교(피를 흘리지는 않지만자발적인 고난에 참여함) ③ 녹색순교가(매일 일상적인 삶에서 순교의 영성을 사는 삶). 믿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란 순교의 영성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매일 죽지만 매일 사는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17).  영적투쟁에는 결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매일매일 하나님에 속해 있는가아니면 사탄에게 속해 있는가?’ 선택하는 것입니다적색순교도 백색순교도 못하지만우리가 할 수 있는 녹색순교입니다내 몸을 살아 있는 산 제물로 드리려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믿음을 지키고신앙을 간직하기 위해서 포기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함께 나눠보세요.

2. 어느 때순교자의 신앙과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까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3. 버가모 교회는 죽음의 위협이 있는 상황(13)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고순교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축복하며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이제 우리의 생명을 걸고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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