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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벧엘은? -야곱 이야기 5-

창세기 28: 10 ~ 19

김지철 목사

2012.07.29

가장 바라던 것을 얻은 순간, 야곱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이야기 5번째입니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야곱은 어떤 인물입니까? 첫째가 되고자 했지만 둘째가 되고 말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둘째로서의 운명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형 발뒤꿈치라도 붙잡아야 했습니다. 늘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때로는 주눅이 들기도 했고, 반면에 악착같은 집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야곱은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형 에서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잠시였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야곱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형 에서의 살기어린 위협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장자권에 대한 집착 때문에 벌어진 이 사건은, 야곱이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첫째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순전히 자기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야곱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하고 억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가족을 잃어버리고 도망자가 된 이후, 다시는 어머니 리브가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고향을 잃었습니다. 쫓겨나다시피 나왔기에 정든 땅을 언제 보게 될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만약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있었다면 부모의 재산을 1/3은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것도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결정적인 상실이었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출생의 비밀에 대해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야곱아,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형 에서가 너를 섬기게 되고, 너는 형 에서보다 더 큰 자가 될 거란다.” 뿐만 아니라, “엄마만 네 편이 아니라 하나님도 네 편이란다.”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는 야곱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야말로 파산이었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그렇게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었던 아버지 이삭도, 오직 자신에게만 매달려온 어머니 리브가도 그의 옆에 없었습니다. 그가 향하는 외삼촌 라반의 집은 800~900km나 떨어진 아주 먼 곳이었고, 그 길은 위험했습니다. 어둠이 깔리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언제 날짐승이 덮칠지, 도둑들에게 강탈을 당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추위와 함께 환경의 낯섦까지 겹쳐왔습니다. 다가오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다 불투명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두려움 속에서 야곱은 첫날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곳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것입니다. ‘내 신세가 이게 뭘까? 이제 내 인생은 무엇인가..’ 그에게는 무겁고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밤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 정말 진실한 겁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 분입니까?” 그는 그렇게 질문하며 땅에 널려있는 돌조각 하나를 들어 베개로 삼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여러 번 만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아들인 요셉에게는 직접 나타나신 적이 없습니다. 야곱은 수없이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던 반면, 요셉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난의 길을 넘어서면서 지도자의 길을 가게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날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또 한 번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그에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때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와 아들들이 있었고, 재산은 물론 종들까지 있었습니다.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이 현실적으로는 이토록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두 번의 만남 모두 실존적으로는 야곱이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가 없을 때였습니다. 혼자 있음에, 그 고독함에 전율하고 있던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생의 파산을 경험하고,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밑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도 나를 지켜보는 이가 없다고 여겼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도 비슷합니다. 내 인생의 파산을 경험하기 전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그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어도 내가 의지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의지하고, 내 아내, 내 남편, 자식들을 의지하고, 돈과 명예, 권력 등을 의지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드리셔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장면이 아주 절묘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났을 때,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고 여겨질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야곱은 바로 그곳, 모든 것을 상실한 곳에서 환상을 봅니다. 야곱이 본 환상은 이러합니다. 그 밤에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사닥다리가 걸쳐있고, 그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계시의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본 것만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 이삭에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십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창세기 28:13)

“아브라함의 하나님, 어디 갔습니까? 이삭의 하나님, 어디 갔습니까?” 하고 투정부리고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보여주시며, 그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해주셨던 약속, 이삭에게 해주셨던 약속을 되풀이 하십니다. 첫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네가 누워있는 그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다. 너는 남의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바로 그 땅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는 지금 네가 혼자라고 낙심하지만, 앞으로 네 자녀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가 또 자녀를 낳게 되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는 축복을 전함의 약속입니다. “땅의 많은 족속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약속입니다. 오직 야곱에게만 주신 특별한 약속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약속, 즉 하나님 임재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동행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너와 함께 움직이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15)

야곱은 그동안 보이는 것, 즉 장자권 하나만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그 집념들이 모두 헛것이었다는 사실을 이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야곱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구나. 여기까지 따라오셨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구나. 내가 그렇게 추구했던 그것이 결국 나를 얽어매고 있었구나. 아버지로부터 눈에 보이는 축복을 받기 위해 거짓을 행했던 것, 얼마나 가증한 일이었는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에 맹종했던 것, 얼마나 왜곡된 삶이었는가?’ 그는 비로소 그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어머니의 시선 속에 갇혀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축복권 속에 묻혀서 살고 있었습니다. 포장된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인생이 좌, 우로 흔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참된 모습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 어머니의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바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경험했던 신앙, 아버지가 경험했던 신앙에서 내가 무릎 꿇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으로 바뀌어져야 신앙의 기쁨과 자유와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소중한 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해 주신 분들이며, 인생의 노하우를 가르쳐주신 분들입니다. “너는 이렇게 살아라.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라.”라고 우리에게 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의 생각,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의 신앙으로부터 탈출해야 됩니다. 그리고 도약해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살 거야” 라는, “나 자신이 바로 나야.” 라는 선언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부모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날 낳아주셨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매이지 않아야 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도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아야 자녀들을 바르게 키울 수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얽어매면 맬수록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떠나가길 원합니다. 간섭받기 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로부터 탈출할까?’ 늘 생각하며, 때로 그 마음이 부모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자녀들에게 존경 받는 부모가 되려면, 자녀들에게 매인 마음으로부터 떠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부모도, 자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선언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친구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누가 되었든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는 인생은, 남의 인생입니다. 남의 시선에 갇혀진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시간에 야곱을 찾아오신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야곱아 너는 너다. 너는 너답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라. 너는 부모님의 눈길과 부모님의 가치관에 갇혀 살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네 인생을 새롭게 열어 가라”고 초청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여태까지 아버지 눈치, 어머니의 말,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진정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 홀로 있게 되었을 때, 그를 찾아오시고 야곱을 변화시키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손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강제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자발적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 변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는 강제적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도저히 그 매인 것에서 풀려날 수 없었기에 그런 홀로됨의 환경으로 하나님께서 몰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의 인생은 너 자신의 것이다. 너는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자.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그 때서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서 만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만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받으면서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17)

그가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과거의 우상들을 훌훌 털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두려워졌습니다. ‘내가 두려워할 존재는 오직 이 분이구나’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하며 지난 밤 베고 잤던 돌베개를 가져다 기둥을 삼아 거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 이었습니다. 자기가 누워 잤던 그 땅이 바로 ‘벧엘’ 이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복, 장자권만을 향해서 가고 있던 그에게 “네가 소유하고 있는 것, 거기에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복이다. 네가 복의 근원이다. 네가 복의 통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네가 밟는 땅, 그것이 복 받은 자리이다. 네가 만진 그 물건들이 복 받은 물건들이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너를 이곳까지 이끌어주겠다.” 임마누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야곱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버려진 자가 아니며, 단순한 도망자도, 가치없는 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누구보다 소중한 자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벧엘을 회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나의 벧엘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돈, 그래도 하나님 보다 두 번째이지.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내 부모님,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이것도 하나님 보다 두 번째이지.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내 생명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위로자이시지.’ 이렇게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무릎 꿇었던 나의 벧엘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못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야곱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미 경험한 사람들도 매일 이것을 새롭게 경험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온 것도 이곳이 바로 나의 벧엘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제가 의지했던 것 다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 근심, 걱정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랑했던 모든 것, 다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 가족들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축복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니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가 가진 것이 복이 아니라, 너 자신이 복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써 나갈 것을 초청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복된 사람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시는 것을 막고 있었던 내 인생의 문제들은 무엇인지, ‘나’라고 생각했던 거짓된 포장들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런 것들 하나하나를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내게 다가오셔서 “네가 내게 가장 소중한 자다. 이제 네 모습을 회복하라. 그리고 네가 세상에 나아갈 때 도망자로 나가지 말고 축복의 통로로 나아가라. 네가 밟는 땅을 축복하라. 그러면 나도 그 땅을 축복하겠다. 네가 만나는 사람을 축복해라. 그러면 나도 네가 만나는 사람을 축복해 주겠다.”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 왜소한 모습, 누추한 모습, 완악한 모습, 못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복된 시간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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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 10 ~ 19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가장 바라던 것을 얻은 순간, 야곱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이야기 5번째입니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야곱은 어떤 인물입니까? 첫째가 되고자 했지만 둘째가 되고 말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둘째로서의 운명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형 발뒤꿈치라도 붙잡아야 했습니다. 늘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때로는 주눅이 들기도 했고, 반면에 악착같은 집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야곱은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형 에서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잠시였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야곱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형 에서의 살기어린 위협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장자권에 대한 집착 때문에 벌어진 이 사건은, 야곱이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첫째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순전히 자기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야곱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하고 억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가족을 잃어버리고 도망자가 된 이후, 다시는 어머니 리브가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고향을 잃었습니다. 쫓겨나다시피 나왔기에 정든 땅을 언제 보게 될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만약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있었다면 부모의 재산을 1/3은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것도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결정적인 상실이었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출생의 비밀에 대해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야곱아,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형 에서가 너를 섬기게 되고, 너는 형 에서보다 더 큰 자가 될 거란다.” 뿐만 아니라, “엄마만 네 편이 아니라 하나님도 네 편이란다.”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는 야곱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야말로 파산이었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그렇게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었던 아버지 이삭도, 오직 자신에게만 매달려온 어머니 리브가도 그의 옆에 없었습니다. 그가 향하는 외삼촌 라반의 집은 800~900km나 떨어진 아주 먼 곳이었고, 그 길은 위험했습니다. 어둠이 깔리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언제 날짐승이 덮칠지, 도둑들에게 강탈을 당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추위와 함께 환경의 낯섦까지 겹쳐왔습니다. 다가오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다 불투명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두려움 속에서 야곱은 첫날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곳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것입니다. ‘내 신세가 이게 뭘까? 이제 내 인생은 무엇인가..’ 그에게는 무겁고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밤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 정말 진실한 겁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 분입니까?” 그는 그렇게 질문하며 땅에 널려있는 돌조각 하나를 들어 베개로 삼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여러 번 만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아들인 요셉에게는 직접 나타나신 적이 없습니다. 야곱은 수없이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던 반면, 요셉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난의 길을 넘어서면서 지도자의 길을 가게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날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또 한 번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그에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때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와 아들들이 있었고, 재산은 물론 종들까지 있었습니다.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이 현실적으로는 이토록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두 번의 만남 모두 실존적으로는 야곱이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가 없을 때였습니다. 혼자 있음에, 그 고독함에 전율하고 있던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생의 파산을 경험하고,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밑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도 나를 지켜보는 이가 없다고 여겼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도 비슷합니다. 내 인생의 파산을 경험하기 전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그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어도 내가 의지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의지하고, 내 아내, 내 남편, 자식들을 의지하고, 돈과 명예, 권력 등을 의지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드리셔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장면이 아주 절묘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났을 때,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고 여겨질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야곱은 바로 그곳, 모든 것을 상실한 곳에서 환상을 봅니다. 야곱이 본 환상은 이러합니다. 그 밤에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사닥다리가 걸쳐있고, 그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계시의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본 것만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 이삭에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십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창세기 28:13)

“아브라함의 하나님, 어디 갔습니까? 이삭의 하나님, 어디 갔습니까?” 하고 투정부리고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보여주시며, 그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해주셨던 약속, 이삭에게 해주셨던 약속을 되풀이 하십니다. 첫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네가 누워있는 그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다. 너는 남의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바로 그 땅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는 지금 네가 혼자라고 낙심하지만, 앞으로 네 자녀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가 또 자녀를 낳게 되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는 축복을 전함의 약속입니다. “땅의 많은 족속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약속입니다. 오직 야곱에게만 주신 특별한 약속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약속, 즉 하나님 임재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동행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너와 함께 움직이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15)

야곱은 그동안 보이는 것, 즉 장자권 하나만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그 집념들이 모두 헛것이었다는 사실을 이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야곱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구나. 여기까지 따라오셨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구나. 내가 그렇게 추구했던 그것이 결국 나를 얽어매고 있었구나. 아버지로부터 눈에 보이는 축복을 받기 위해 거짓을 행했던 것, 얼마나 가증한 일이었는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에 맹종했던 것, 얼마나 왜곡된 삶이었는가?’ 그는 비로소 그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어머니의 시선 속에 갇혀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축복권 속에 묻혀서 살고 있었습니다. 포장된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인생이 좌, 우로 흔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참된 모습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 어머니의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바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경험했던 신앙, 아버지가 경험했던 신앙에서 내가 무릎 꿇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으로 바뀌어져야 신앙의 기쁨과 자유와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소중한 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해 주신 분들이며, 인생의 노하우를 가르쳐주신 분들입니다. “너는 이렇게 살아라.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라.”라고 우리에게 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의 생각,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의 신앙으로부터 탈출해야 됩니다. 그리고 도약해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살 거야” 라는, “나 자신이 바로 나야.” 라는 선언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부모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날 낳아주셨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매이지 않아야 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도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아야 자녀들을 바르게 키울 수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얽어매면 맬수록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떠나가길 원합니다. 간섭받기 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로부터 탈출할까?’ 늘 생각하며, 때로 그 마음이 부모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자녀들에게 존경 받는 부모가 되려면, 자녀들에게 매인 마음으로부터 떠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부모도, 자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선언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친구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누가 되었든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는 인생은, 남의 인생입니다. 남의 시선에 갇혀진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시간에 야곱을 찾아오신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야곱아 너는 너다. 너는 너답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라. 너는 부모님의 눈길과 부모님의 가치관에 갇혀 살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네 인생을 새롭게 열어 가라”고 초청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여태까지 아버지 눈치, 어머니의 말,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진정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 홀로 있게 되었을 때, 그를 찾아오시고 야곱을 변화시키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손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강제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자발적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 변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는 강제적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도저히 그 매인 것에서 풀려날 수 없었기에 그런 홀로됨의 환경으로 하나님께서 몰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의 인생은 너 자신의 것이다. 너는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자.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그 때서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서 만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만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받으면서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17)

그가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과거의 우상들을 훌훌 털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두려워졌습니다. ‘내가 두려워할 존재는 오직 이 분이구나’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하며 지난 밤 베고 잤던 돌베개를 가져다 기둥을 삼아 거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 이었습니다. 자기가 누워 잤던 그 땅이 바로 ‘벧엘’ 이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복, 장자권만을 향해서 가고 있던 그에게 “네가 소유하고 있는 것, 거기에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복이다. 네가 복의 근원이다. 네가 복의 통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네가 밟는 땅, 그것이 복 받은 자리이다. 네가 만진 그 물건들이 복 받은 물건들이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너를 이곳까지 이끌어주겠다.” 임마누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야곱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버려진 자가 아니며, 단순한 도망자도, 가치없는 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누구보다 소중한 자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벧엘을 회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나의 벧엘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돈, 그래도 하나님 보다 두 번째이지.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내 부모님,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이것도 하나님 보다 두 번째이지.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내 생명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위로자이시지.’ 이렇게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무릎 꿇었던 나의 벧엘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못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야곱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미 경험한 사람들도 매일 이것을 새롭게 경험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온 것도 이곳이 바로 나의 벧엘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제가 의지했던 것 다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 근심, 걱정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랑했던 모든 것, 다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 가족들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축복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니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가 가진 것이 복이 아니라, 너 자신이 복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써 나갈 것을 초청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복된 사람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시는 것을 막고 있었던 내 인생의 문제들은 무엇인지, ‘나’라고 생각했던 거짓된 포장들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런 것들 하나하나를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내게 다가오셔서 “네가 내게 가장 소중한 자다. 이제 네 모습을 회복하라. 그리고 네가 세상에 나아갈 때 도망자로 나가지 말고 축복의 통로로 나아가라. 네가 밟는 땅을 축복하라. 그러면 나도 그 땅을 축복하겠다. 네가 만나는 사람을 축복해라. 그러면 나도 네가 만나는 사람을 축복해 주겠다.”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 왜소한 모습, 누추한 모습, 완악한 모습, 못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복된 시간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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