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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축복하라 – 축복의 삶 1 –

고린도후서 6: 1 ~ 2

김지철 목사

2014.06.29

하나님의 창조는, 복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식물과 동물, 새와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하신 것은 그들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하신 것 또한 인간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여기에서 ‘그들’은 아담과 하와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후 “이 모든 것들은 다 너희를 위해서 만들었다. 이 하늘과 땅, 이 식물과 동물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으니 너희가 이것을 다스리고 이것을 이끌어 가라.”고 말씀하시며 하늘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쉬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시며 그날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 2:3)

하나님은 시간을 축복하셨고 공간을 축복하셨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해 이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도 다른 피조물을 축복하며 살아야합니다.
앞으로 네 번에 걸쳐서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우리도 피조물을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 시간인 오늘은 시간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 주일은 공간과 환경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그 다음 주일은 내가 나 자신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을 향한 축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입니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춘하추동.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는 공간과 환경입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생물 중에 식물과 동물, 그리고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만드셨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나’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로서의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시간, 공간, 인간에는 똑같은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한자어 ‘사이 간(間)’입니다. 모든 것들은 관계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서로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잘났다고 살 수 있는 존재들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시간 속에 담겨 있는 삶의 발자취들을 우리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곧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공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과 저곳으로 구분합니다.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와 너라는 실존의 관계로 묶여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은 먼저 시간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축복하셨는지 확인해야 우리가 시간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신 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 참여하셨습니다. 시간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시간의 시작을 ‘태초’라는 말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태초에는 땅이 혼돈했습니다. 형태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저 공허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시면서 “빛이 있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카오스라는 무질서와 공허, 흑암 속에서 하나님이 빛을 선포하시면서 카오스가 코스모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질서에서 질서가 생겼습니다. 모양 없음에서 아름다운 조화가 생겼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만드시고 축복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창조를 향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창조에 대한 동기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인간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즉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하여 시간을 일곱 날로 나누시고 각 날에 창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말씀으로 하나하나 창조하시며 마지막 목표는 인간에게 두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피곤해서, 힘들어서 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쉬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을 쉼의 날로 삼고 누려라.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쉬어라. 너의 인생에는 쉼표가 있다. 일중독에 빠져서 그저 앞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쉼을 누려라.”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시간과 공간을 보시면서 감탄하셨습니다. 하루를 만드시고 그 끝에선 늘 “보기가 좋구나.” 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감탄사를 말씀하시며 자기가 하신 일에 깊이 감탄하셨습니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이 시간을 축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에 우선권을 주어야 할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25시간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23시간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양적인 크기는 똑같은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사람마다 시간에 대해 갖는 질적인 의미와 그 사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도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입니다. 이것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처럼 객관적인 크기로써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카이로스입니다. 의미가 있고 사건이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하루는 동일하게 24시간이지만, 놓치면 안 되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놓치면 인생이 나락에 빠지고, 꽉 붙잡으면 새로운 도약이 가능한 시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간관계를 할 때도 모두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카이로스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여 우선권을 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중요한 것에 우선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시간이 곧 점심시간이고, 점심시간이 곧 저녁시간이고, 그 시간이 그 시간이면 시간은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시간 안에서 우선권을 사용할 줄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선택을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먼저 기도하고 먼저 말씀 듣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내 삶이 질서 있게 조화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에 대한 것은 예수님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실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먹고 마시는 일생 속에 먼저 해야 될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이 모든 것’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 일상적인 삶에서 필요한 모든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먼저 구해야 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먼저 구하고, 보이는 피조물보다 이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seek first’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중요성에 시간적인 우선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축복할 수 있는 비결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중요성에 우선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바로 볼 줄 알고, 무엇보다 시간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알면, 그때부터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축복받은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시간으로, 소중한 시간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른 목적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시간을 축복하시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창조의 이유와 동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확인되니 즐거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 동기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빛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셨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식물과 동물 그것이 그저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 만드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인간이 나와 대화하고 나와 사랑하고 나와 함께 이 피조물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즐거우셨던 것입니다.
축복과 즐거움은 함께합니다. 축복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면서 축복하고, 또한 즐거운 사람만이 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에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빛을, 그리고 하늘과 땅을, 그 다음에 식물과 동물을,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면서 이 최고의 걸작품 앞에서 좋아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창세기 1장 3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세계를 보시며 좋아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무엇을 하며 내 인생을 열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난 바빠서 그런 생각 못해 봤어요. 아니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데 인생의 목표와 계획이라니요. 그런 건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저 마음으로 살게 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크로노스적인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적인 삶의 기쁨을, 감사함을 선포하는 시간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일에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배울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면서 무엇보다 즐거움의 에너지로 충만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는 일에 즐거움이 있습니까? 가정에 있을 때,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영혼에 즐거움의 에너지가 가득합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거룩한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짧은 3년의 세월에 삶 전체를 드렸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병든 자가 치유 되고, 죄 많은 자가 용서받고, 억눌린 자가 자유하게 되고 해방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즉, 죄로 인해서 상처 난 인간, 존엄성이 파괴된 인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열망이 예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켜 버린 인간의 죄악들과, 인간을 죄악으로 몰아간 모든 악한 세력들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거룩한 분노를 갖고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도전하고 때로는 저항하셨습니다. 종교적 집단인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왜 그렇게 야단을 치셨을까요? “너희는 사람을 종교적 교리로 묶는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인간을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얽어매고 억누르고 있구나. 이 따위 종교는 사이비종교다! 이 따위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맞서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파괴시키고 억압하는 귀신의 세력을 쫒아내셨습니다. “이 귀신아. 네가 왜 사람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느냐! 나가라!”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잘못된 세력을 향해 “아니다!”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질병을 고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사람을 두렵게 하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평안의 특권을 왜 놓치게 만드느냐?” 하시며 예수님은 아픈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창조의 에너지, 즐거움의 에너지, 거룩한 에너지를 갖고 감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통해서 축복하신 시간,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이 세상의 닫혀진 세계가 열렸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의 역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다. 이제는 새로운 용서의 시대다.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다음부터 항상 우리는 ‘지금’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의 시간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인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으니 우리도 축복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다. 하나님의 파트너다’라는 자의식,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 (고린도후서 6:1)

우리는 하나님의 파트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하신 이 시간과 공간을 우리도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우리가 시간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때로 지루해하고 권태감을 느낄까요? 내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내가 속한 상황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목적을 잃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지루하고 싫증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고, 해야 할 사명이 있을 때 시간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복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우리는 그저 끌려가게 됩니다. 누가 와서 저리로 가자 하면 따라가고, 또 누가 와서 여기로 가야해 하면 또 그리로 갑니다. 그리고는 저녁 때가 되어 ‘아, 오늘 나는 계획대로 아무것도 못 했어.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면서 시간을 낭비했구나.’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시간을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나를 통해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으로 쉼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동안에 성공했으면 감사하십시오. 만약 그동안에 실패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다시 주님과 함께 시간을 축복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지금입니다. 지금. 그래서 주님 안에서 사는 인생에는 늦은 날이 없습니다. 지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이 넘치는 창조의 즐거움을 갖고 인생을 계획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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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 1 ~ 2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창조는, 복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식물과 동물, 새와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하신 것은 그들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하신 것 또한 인간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여기에서 ‘그들’은 아담과 하와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후 “이 모든 것들은 다 너희를 위해서 만들었다. 이 하늘과 땅, 이 식물과 동물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으니 너희가 이것을 다스리고 이것을 이끌어 가라.”고 말씀하시며 하늘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쉬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시며 그날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 2:3)

하나님은 시간을 축복하셨고 공간을 축복하셨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해 이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도 다른 피조물을 축복하며 살아야합니다.
앞으로 네 번에 걸쳐서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우리도 피조물을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 시간인 오늘은 시간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 주일은 공간과 환경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그 다음 주일은 내가 나 자신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을 향한 축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입니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춘하추동.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는 공간과 환경입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생물 중에 식물과 동물, 그리고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만드셨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나’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로서의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시간, 공간, 인간에는 똑같은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한자어 ‘사이 간(間)’입니다. 모든 것들은 관계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서로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잘났다고 살 수 있는 존재들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시간 속에 담겨 있는 삶의 발자취들을 우리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곧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공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과 저곳으로 구분합니다.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와 너라는 실존의 관계로 묶여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은 먼저 시간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축복하셨는지 확인해야 우리가 시간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신 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 참여하셨습니다. 시간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시간의 시작을 ‘태초’라는 말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태초에는 땅이 혼돈했습니다. 형태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저 공허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시면서 “빛이 있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카오스라는 무질서와 공허, 흑암 속에서 하나님이 빛을 선포하시면서 카오스가 코스모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질서에서 질서가 생겼습니다. 모양 없음에서 아름다운 조화가 생겼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만드시고 축복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창조를 향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창조에 대한 동기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인간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즉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하여 시간을 일곱 날로 나누시고 각 날에 창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말씀으로 하나하나 창조하시며 마지막 목표는 인간에게 두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피곤해서, 힘들어서 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쉬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을 쉼의 날로 삼고 누려라.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쉬어라. 너의 인생에는 쉼표가 있다. 일중독에 빠져서 그저 앞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쉼을 누려라.”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시간과 공간을 보시면서 감탄하셨습니다. 하루를 만드시고 그 끝에선 늘 “보기가 좋구나.” 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감탄사를 말씀하시며 자기가 하신 일에 깊이 감탄하셨습니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이 시간을 축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에 우선권을 주어야 할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25시간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23시간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양적인 크기는 똑같은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사람마다 시간에 대해 갖는 질적인 의미와 그 사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도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입니다. 이것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처럼 객관적인 크기로써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카이로스입니다. 의미가 있고 사건이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하루는 동일하게 24시간이지만, 놓치면 안 되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놓치면 인생이 나락에 빠지고, 꽉 붙잡으면 새로운 도약이 가능한 시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간관계를 할 때도 모두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카이로스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여 우선권을 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중요한 것에 우선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시간이 곧 점심시간이고, 점심시간이 곧 저녁시간이고, 그 시간이 그 시간이면 시간은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시간 안에서 우선권을 사용할 줄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선택을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먼저 기도하고 먼저 말씀 듣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내 삶이 질서 있게 조화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에 대한 것은 예수님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실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먹고 마시는 일생 속에 먼저 해야 될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이 모든 것’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 일상적인 삶에서 필요한 모든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먼저 구해야 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먼저 구하고, 보이는 피조물보다 이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seek first’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중요성에 시간적인 우선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축복할 수 있는 비결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중요성에 우선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바로 볼 줄 알고, 무엇보다 시간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알면, 그때부터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축복받은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시간으로, 소중한 시간으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른 목적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시간을 축복하시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창조의 이유와 동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확인되니 즐거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 동기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빛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셨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식물과 동물 그것이 그저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 만드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인간이 나와 대화하고 나와 사랑하고 나와 함께 이 피조물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즐거우셨던 것입니다.
축복과 즐거움은 함께합니다. 축복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면서 축복하고, 또한 즐거운 사람만이 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에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빛을, 그리고 하늘과 땅을, 그 다음에 식물과 동물을,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면서 이 최고의 걸작품 앞에서 좋아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창세기 1장 3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세계를 보시며 좋아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무엇을 하며 내 인생을 열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난 바빠서 그런 생각 못해 봤어요. 아니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데 인생의 목표와 계획이라니요. 그런 건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저 마음으로 살게 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크로노스적인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적인 삶의 기쁨을, 감사함을 선포하는 시간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일에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배울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면서 무엇보다 즐거움의 에너지로 충만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는 일에 즐거움이 있습니까? 가정에 있을 때,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영혼에 즐거움의 에너지가 가득합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거룩한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짧은 3년의 세월에 삶 전체를 드렸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병든 자가 치유 되고, 죄 많은 자가 용서받고, 억눌린 자가 자유하게 되고 해방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즉, 죄로 인해서 상처 난 인간, 존엄성이 파괴된 인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열망이 예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켜 버린 인간의 죄악들과, 인간을 죄악으로 몰아간 모든 악한 세력들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거룩한 분노를 갖고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도전하고 때로는 저항하셨습니다. 종교적 집단인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왜 그렇게 야단을 치셨을까요? “너희는 사람을 종교적 교리로 묶는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인간을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얽어매고 억누르고 있구나. 이 따위 종교는 사이비종교다! 이 따위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맞서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파괴시키고 억압하는 귀신의 세력을 쫒아내셨습니다. “이 귀신아. 네가 왜 사람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느냐! 나가라!”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잘못된 세력을 향해 “아니다!”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질병을 고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사람을 두렵게 하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평안의 특권을 왜 놓치게 만드느냐?” 하시며 예수님은 아픈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창조의 에너지, 즐거움의 에너지, 거룩한 에너지를 갖고 감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통해서 축복하신 시간,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이 세상의 닫혀진 세계가 열렸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의 역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다. 이제는 새로운 용서의 시대다.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다음부터 항상 우리는 ‘지금’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의 시간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인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으니 우리도 축복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다. 하나님의 파트너다’라는 자의식,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 (고린도후서 6:1)

우리는 하나님의 파트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하신 이 시간과 공간을 우리도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즐거움의 에너지를 갖고 우리가 시간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때로 지루해하고 권태감을 느낄까요? 내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내가 속한 상황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목적을 잃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지루하고 싫증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고, 해야 할 사명이 있을 때 시간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복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우리는 그저 끌려가게 됩니다. 누가 와서 저리로 가자 하면 따라가고, 또 누가 와서 여기로 가야해 하면 또 그리로 갑니다. 그리고는 저녁 때가 되어 ‘아, 오늘 나는 계획대로 아무것도 못 했어.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면서 시간을 낭비했구나.’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시간을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나를 통해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으로 쉼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동안에 성공했으면 감사하십시오. 만약 그동안에 실패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다시 주님과 함께 시간을 축복하게 하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지금입니다. 지금. 그래서 주님 안에서 사는 인생에는 늦은 날이 없습니다. 지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이 넘치는 창조의 즐거움을 갖고 인생을 계획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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