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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이 이르는 곳에 주님의 복이! -야곱 이야기 8-

창세기 30: 25 ~ 31

김지철 목사

2012.08.19

‘인복’은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리는 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복이 있다면, ‘인복’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복이 많다. 인복이 터지다’는 말은 참 자랑스러운 말입니다. 반대로 ‘인복이 없다’는 것은 혀를 차고 탄식할 만한 말입니다.
인간관계는 우리가 겪는 모든 스트레스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삶의 자리도 바로 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내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 삶의 마이너스 인물입니다. 이들은 나를 이용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나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려 들고, 때로는 공갈을 치고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처럼 다룹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그들이 부리는 교활한 속임수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생각할 때 인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인복이 없는 사람입니까? 내게는 마이너스 인물이 많습니까, 플러스 인물이 많습니까? 아마도 떠올려지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두 가지 대답이 교차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야곱 이야기에 나온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야곱에게 전형적인 마이너스 인물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이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외삼촌’이라는 관계적 위치를 이용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 윗사람이라는 것,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야곱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려 들었습니다.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 속임수와 야비함은, 예전에 탈취하는 것을 즐겼던 야곱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또한 라반은 야곱이 자기의 둘째 딸인 라헬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교활하게 이용하였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동안이나 보수를 받지 않고 수고하고 땀을 흘린 야곱을 그는 속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야곱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의 신혼 첫날밤에 라반은 라헬을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라헬 대신 그는 그의 첫째 딸인 레아를 신혼 방에 들여보냈습니다. 야곱은 그 여인이 라헬이라고 생각하고 뜨거운 사랑의 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과 밤을 보낸 여인은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었습니다.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레아에게도 속은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레아는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마치 동생 라헬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야곱은 펄펄 뛰며 외삼촌에게 항의를 합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세기 29:25)

격렬하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야곱은 또다시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해서, 한 여인을 얻고자 무려 14년 동안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자기의 돈과 재물을 챙겼습니다. 단 한 번의 결혼식으로 두 딸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을 그저 착하고, 만만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갖고 놀아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야곱의 증언에 의하면, 외삼촌 라반은 레아를 라헬로 속인 것뿐만이 아니라 야곱의 품삯을 10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이 받을 몫을 빼앗아 자기 몫으로 챙겼습니다. 한 마디로, 아주 사기성이 농후하고 교활한 라반에게 야곱이 걸려 든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착하다고 조종하거나 겁주지 말아야 됩니다. 속이지 말아야 됩니다. 가치 없는 존재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향해 ‘순전하다, 착하다,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그러나 이 말처럼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기 쉬운 말도 또한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착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크게 저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적이 없었습니까? 남이 내게 비난을 퍼붓고 잘못을 하는데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리면 그저 침묵을 지킵니다. 화가 치밀어도 그저 속으로 삭입니다.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달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내가 참아야지, 내가 당해야지.”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선하다는 것은 입 딱 봉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를 벌컥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느낌과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나도 내 마음의 상태를 반드시 표현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지금 상처를 받고 있다. 나는 그런 소리를 싫어한다. 나를 가볍게, 만만하게 보지 말라. 나는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싫다”고 말입니다.
불의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고통을 받으며 그것 때문에 끙끙 앓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 꺾이는 것은 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야곱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기를 당한 야곱이 외삼촌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셨습니까? 내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왜 나를 속였습니까?”라고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던 것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축복의 통로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늘 고향땅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들의 숫자가 1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라헬,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라헬에게서 11번째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요셉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요셉을 얻고 나니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세기 30:25)

외삼촌 라반에게 고향땅으로 가겠다고 말은 했으나, 야곱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얻었지만,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외삼촌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은 단지 외삼촌의 재산을 늘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의 변화입니다. 어느덧 그는, 자신의 손은 텅 비어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복을 가져다주는 플러스의 인물이 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남의 것을 탈취하기만 했던 야곱이 이제는 놀랍게도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라반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이 됩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창세기 30:27)

라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이 아니라 야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동안 야곱을 속여 왔던 외삼촌 라반도, 복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또한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빼앗아 가시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야곱도 명백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고백을 듣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창세기 30:30)

야곱은 말합니다. “내가 발로 머무는 곳 마다, 내 발이 이르는 곳 마다, 내가 존재하는 그곳 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 야곱을 통해 외삼촌에게 복을 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20년 동안을 한 마음으로 충성한, 외삼촌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온 야곱의 마음에는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외삼촌을 바라보면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는 그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를 복주고, 너를 축복의 통로로 삼고, 내가 너를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하셨던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야곱은 기다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그에게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 그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남의 것을 어떻게든 빼앗으려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 여인이 14년 아니 20년 동안의 수고와 땀보다 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지 않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야곱을 통해서 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외삼촌 라반이라는 사실입니다. 야곱 때문에 라반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남의 복을 빼앗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남에게 복을 베풀어 줄줄 아는 사람입니까? 세상에는 남의 약점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들춰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말을 해서 남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가지고 남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위로해 주고, 남에게 용기를 줍니다. 상대방의 명예를 세워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가 되고,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이 아니라, 플러스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 삶에 지쳐서 탈진한 사람들,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구원의 메시지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손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만은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밟는 곳,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자리인 것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모두 그런 존재가 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밟는 땅이 복 받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이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이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 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내가 축복입니다. 내가 밟는 땅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장소가 되게 하시옵소서” 기도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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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 25 ~ 31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인복’은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리는 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복이 있다면, ‘인복’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복이 많다. 인복이 터지다’는 말은 참 자랑스러운 말입니다. 반대로 ‘인복이 없다’는 것은 혀를 차고 탄식할 만한 말입니다.
인간관계는 우리가 겪는 모든 스트레스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삶의 자리도 바로 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내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 삶의 마이너스 인물입니다. 이들은 나를 이용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나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려 들고, 때로는 공갈을 치고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처럼 다룹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그들이 부리는 교활한 속임수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생각할 때 인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인복이 없는 사람입니까? 내게는 마이너스 인물이 많습니까, 플러스 인물이 많습니까? 아마도 떠올려지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두 가지 대답이 교차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야곱 이야기에 나온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야곱에게 전형적인 마이너스 인물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이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외삼촌’이라는 관계적 위치를 이용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 윗사람이라는 것,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야곱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려 들었습니다.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 속임수와 야비함은, 예전에 탈취하는 것을 즐겼던 야곱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또한 라반은 야곱이 자기의 둘째 딸인 라헬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교활하게 이용하였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동안이나 보수를 받지 않고 수고하고 땀을 흘린 야곱을 그는 속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야곱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의 신혼 첫날밤에 라반은 라헬을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라헬 대신 그는 그의 첫째 딸인 레아를 신혼 방에 들여보냈습니다. 야곱은 그 여인이 라헬이라고 생각하고 뜨거운 사랑의 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과 밤을 보낸 여인은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었습니다.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레아에게도 속은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레아는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마치 동생 라헬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야곱은 펄펄 뛰며 외삼촌에게 항의를 합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세기 29:25)

격렬하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야곱은 또다시 7년 동안 무보수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해서, 한 여인을 얻고자 무려 14년 동안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자기의 돈과 재물을 챙겼습니다. 단 한 번의 결혼식으로 두 딸을 야곱에게 팔아넘긴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을 그저 착하고, 만만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갖고 놀아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야곱의 증언에 의하면, 외삼촌 라반은 레아를 라헬로 속인 것뿐만이 아니라 야곱의 품삯을 10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이 받을 몫을 빼앗아 자기 몫으로 챙겼습니다. 한 마디로, 아주 사기성이 농후하고 교활한 라반에게 야곱이 걸려 든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착하다고 조종하거나 겁주지 말아야 됩니다. 속이지 말아야 됩니다. 가치 없는 존재라고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향해 ‘순전하다, 착하다,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그러나 이 말처럼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기 쉬운 말도 또한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착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크게 저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적이 없었습니까? 남이 내게 비난을 퍼붓고 잘못을 하는데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리면 그저 침묵을 지킵니다. 화가 치밀어도 그저 속으로 삭입니다.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달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내가 참아야지, 내가 당해야지.”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선하다는 것은 입 딱 봉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를 벌컥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느낌과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나도 내 마음의 상태를 반드시 표현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지금 상처를 받고 있다. 나는 그런 소리를 싫어한다. 나를 가볍게, 만만하게 보지 말라. 나는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싫다”고 말입니다.
불의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고통을 받으며 그것 때문에 끙끙 앓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 꺾이는 것은 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야곱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기를 당한 야곱이 외삼촌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셨습니까? 내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왜 나를 속였습니까?”라고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던 것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축복의 통로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늘 고향땅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들의 숫자가 1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라헬,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라헬에게서 11번째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요셉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요셉을 얻고 나니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세기 30:25)

외삼촌 라반에게 고향땅으로 가겠다고 말은 했으나, 야곱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얻었지만,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외삼촌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은 단지 외삼촌의 재산을 늘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의 변화입니다. 어느덧 그는, 자신의 손은 텅 비어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복을 가져다주는 플러스의 인물이 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남의 것을 탈취하기만 했던 야곱이 이제는 놀랍게도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라반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이 됩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창세기 30:27)

라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이 아니라 야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동안 야곱을 속여 왔던 외삼촌 라반도, 복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또한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빼앗아 가시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야곱도 명백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고백을 듣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창세기 30:30)

야곱은 말합니다. “내가 발로 머무는 곳 마다, 내 발이 이르는 곳 마다, 내가 존재하는 그곳 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 야곱을 통해 외삼촌에게 복을 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20년 동안을 한 마음으로 충성한, 외삼촌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해온 야곱의 마음에는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외삼촌을 바라보면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는 그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를 복주고, 너를 축복의 통로로 삼고, 내가 너를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하셨던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야곱은 기다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그에게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 그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남의 것을 어떻게든 빼앗으려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 여인이 14년 아니 20년 동안의 수고와 땀보다 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지 않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야곱을 통해서 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외삼촌 라반이라는 사실입니다. 야곱 때문에 라반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남의 복을 빼앗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남에게 복을 베풀어 줄줄 아는 사람입니까? 세상에는 남의 약점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들춰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말을 해서 남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가지고 남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위로해 주고, 남에게 용기를 줍니다. 상대방의 명예를 세워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가 되고,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이 아니라, 플러스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 삶에 지쳐서 탈진한 사람들,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구원의 메시지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손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만은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밟는 곳,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자리인 것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모두 그런 존재가 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밟는 땅이 복 받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이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이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 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내가 축복입니다. 내가 밟는 땅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장소가 되게 하시옵소서” 기도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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