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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영적 여정

창세기 47: 7 ~ 10

김지철 목사

2016.07.31

인생은 여행과도 같습니다.

7월과 8월은 여름 휴가철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이미 여행을 다녀오신 분도 있을 것이고, 8월 중에 떠날 계획인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의 여행과 인생의 긴 여정을 비교하면 비슷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행이 단거리 경주라면, 우리의 삶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거리와 속도는 다르지만, 쉬지 않고 걸음을 떼야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여행에는 출발과 도착이라는,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인생에도 그러한 단계가 있습니다. 연령으로 구분해 보면, 어릴 때가 있고, 청년의 때가 있고, 장년의 때가 있고, 노년의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아닌 성숙의 과정으로 구분한다면, 성장할 때가 있고, 퇴보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성공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기도 하고,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하며, 반대로 친구의 우정을 맛보기도 합니다. 아플 때가 있는가 하면 건강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역경을 만나 고통을 받기도 하고, 모든 것이 잘 풀려 탄탄대로를 달려 보기도 합니다. 삶이란 육체와 정신의 여정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인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과 모세는 인생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노년의 야곱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나이가 몇이냐?”는 바로 왕의 질문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담담히 고백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47:9)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세 가지로 축약하여 이야기합니다. 첫째, 내 인생은 나그네의 길, 순례자의 길이었습니다. 둘째, 백삼십 년을 살았지만 내 선조들에 비하면 짧은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은 마치 일장춘몽과도 같습니다. 인생초로(人生草露)입니다. 셋째, 힘들고 험악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9∼10)

인생은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지나가는데, 되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세월을 보낼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노년의 야곱도,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도 인생이 화살처럼 날아가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젊은 시절에는 어른들이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보니 일장춘몽, 인생초로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그네 길과도 같은 인생을 어떻게 지나왔습니까? 인생의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 부르실지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짐을 내려놓아야 즐거운 인생이 됩니다.

여행을 갈 때나 인생의 순례 과정에서 좋은 길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여행을 가면서 집을 옮기듯 모든 것을 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잠깐 머물다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문에 ‘여행 중’이라고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내와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짐을 줄이도록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하다 보면, “그거 안 가지고 왔어?” 하고 아내에게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 필요한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줄이는 것이 여행의 기본 원칙입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맨발과 맨손으로, 아무것도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가볍든 무겁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아버지로서의 짐, 어머니로서의 짐, 남편으로서의 짐, 아내로서의 짐, 직장에서 맡은 자리의 짐 등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짐도 있습니다. 분노의 짐, 미움의 짐, 슬픔의 짐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성에 대한 짐이 있습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짐이 있습니다. 내가 품은 비전을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는 짐도 있고, 죄책감의 짐도 있습니다.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지 못한 죄악의 짐이 매일매일 가슴을 억누르기도 합니다.
목사인 제게도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늘 바르게 서 있는가? 어떻게 하면 소망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매일매일 성장할 수 있을까?’ 날마다 묻고 기도하게 만드는 짐입니다.
기독교는 인생에 짐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무거운 짐이 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험악한 세월을 살 수밖에 없고, 삶의 아픔에 짓눌리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인생의 짐이 무거워 쓰러질 것 같은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쉼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것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내게로 가지고 오라” 하시는 주님의 초청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과 쉼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내 인생의 짐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짐을 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인생의 아픔을 더 많이 경험하신 분입니다. 나보다 더 외로우셨고, 나보다 더 절망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과 허물, 질병의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짐을 지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져 본 적 있느냐? 나보다 더 슬퍼해 본 적이 있느냐? 십자가에 달린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적 있느냐? 나보다 더 억울해 본 적 있느냐?” 그 물음 앞에서 저의 대답은 늘 “아니요. 어떻게 주님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럼 됐다. 너 혼자 짐을 지고 그렇게 쩔쩔매면서 가지 말라. 이제 나와 함께 가자.”
인생의 짐을 혼자 지고 외롭게 가려고 마음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맡기세요.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영원히 함께할 동행자가 있을 때 외롭지 않습니다.

두 번째, 동행자가 중요합니다. 누구와 함께인가에 따라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괴로운 여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습니까? 싫어하는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즐거운 여행은 무엇입니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함께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와도 마음이 맞지 않아 여행 중에 다툴 때가 있습니다. 신혼여행을 가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면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습니다. 최근 홀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어쩌면 마음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큰 복은 사람의 복입니다. 그래서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혼자야. 인생의 동반자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친구가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 친구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축복이고 자랑스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일까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와 동행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친구로 다가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구로 다가오시고, 그들과 대화하시며, 그들보다 앞서가셔서 그들의 걸음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에서 인도하시며, 옆에서 동행하시고, 뒤에서 지지하고 밀어 주신다’는 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을 누구와 함께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님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도 나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히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생명의 집이 있습니다.

세 번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합니다. 여행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합니다. 나그네와 방랑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방랑자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떠나온 곳도 모르지만 앞으로 가야할 곳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목적지 없이 자기 기분대로 떠도는 것이 방랑자의 인생입니다. 그러니 동행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랑자는 늘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야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순례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가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어, 이제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영원한 생명의 집, 본향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이가 들고 죽는다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당당하고, 죽음 앞에 섰을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생을 끝마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시민권이 사라지게 될 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한복음 14:2)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셔서 제자들이 올 자리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늘 시민권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짧은 여행도 짐이 가볍고, 좋은 친구가 있고, 돌아올 집이 있어야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친구가 없어서 외롭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 되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이 두렵고 불안합니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인생을 돈과 권력에 집착하고, 내가 가진 것에 욕심내며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친구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당당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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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 7 ~ 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인생은 여행과도 같습니다.

7월과 8월은 여름 휴가철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이미 여행을 다녀오신 분도 있을 것이고, 8월 중에 떠날 계획인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의 여행과 인생의 긴 여정을 비교하면 비슷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행이 단거리 경주라면, 우리의 삶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거리와 속도는 다르지만, 쉬지 않고 걸음을 떼야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여행에는 출발과 도착이라는,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인생에도 그러한 단계가 있습니다. 연령으로 구분해 보면, 어릴 때가 있고, 청년의 때가 있고, 장년의 때가 있고, 노년의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아닌 성숙의 과정으로 구분한다면, 성장할 때가 있고, 퇴보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성공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기도 하고,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하며, 반대로 친구의 우정을 맛보기도 합니다. 아플 때가 있는가 하면 건강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역경을 만나 고통을 받기도 하고, 모든 것이 잘 풀려 탄탄대로를 달려 보기도 합니다. 삶이란 육체와 정신의 여정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인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과 모세는 인생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노년의 야곱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나이가 몇이냐?”는 바로 왕의 질문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담담히 고백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47:9)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세 가지로 축약하여 이야기합니다. 첫째, 내 인생은 나그네의 길, 순례자의 길이었습니다. 둘째, 백삼십 년을 살았지만 내 선조들에 비하면 짧은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은 마치 일장춘몽과도 같습니다. 인생초로(人生草露)입니다. 셋째, 힘들고 험악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9∼10)

인생은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지나가는데, 되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세월을 보낼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노년의 야곱도,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도 인생이 화살처럼 날아가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젊은 시절에는 어른들이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보니 일장춘몽, 인생초로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그네 길과도 같은 인생을 어떻게 지나왔습니까? 인생의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 부르실지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짐을 내려놓아야 즐거운 인생이 됩니다.

여행을 갈 때나 인생의 순례 과정에서 좋은 길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여행을 가면서 집을 옮기듯 모든 것을 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잠깐 머물다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문에 ‘여행 중’이라고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내와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짐을 줄이도록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하다 보면, “그거 안 가지고 왔어?” 하고 아내에게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 필요한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줄이는 것이 여행의 기본 원칙입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맨발과 맨손으로, 아무것도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가볍든 무겁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아버지로서의 짐, 어머니로서의 짐, 남편으로서의 짐, 아내로서의 짐, 직장에서 맡은 자리의 짐 등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짐도 있습니다. 분노의 짐, 미움의 짐, 슬픔의 짐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성에 대한 짐이 있습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짐이 있습니다. 내가 품은 비전을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는 짐도 있고, 죄책감의 짐도 있습니다.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지 못한 죄악의 짐이 매일매일 가슴을 억누르기도 합니다.
목사인 제게도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늘 바르게 서 있는가? 어떻게 하면 소망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매일매일 성장할 수 있을까?’ 날마다 묻고 기도하게 만드는 짐입니다.
기독교는 인생에 짐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무거운 짐이 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험악한 세월을 살 수밖에 없고, 삶의 아픔에 짓눌리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인생의 짐이 무거워 쓰러질 것 같은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쉼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것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내게로 가지고 오라” 하시는 주님의 초청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과 쉼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내 인생의 짐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짐을 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인생의 아픔을 더 많이 경험하신 분입니다. 나보다 더 외로우셨고, 나보다 더 절망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과 허물, 질병의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짐을 지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져 본 적 있느냐? 나보다 더 슬퍼해 본 적이 있느냐? 십자가에 달린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적 있느냐? 나보다 더 억울해 본 적 있느냐?” 그 물음 앞에서 저의 대답은 늘 “아니요. 어떻게 주님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럼 됐다. 너 혼자 짐을 지고 그렇게 쩔쩔매면서 가지 말라. 이제 나와 함께 가자.”
인생의 짐을 혼자 지고 외롭게 가려고 마음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맡기세요.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영원히 함께할 동행자가 있을 때 외롭지 않습니다.

두 번째, 동행자가 중요합니다. 누구와 함께인가에 따라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괴로운 여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습니까? 싫어하는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즐거운 여행은 무엇입니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함께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와도 마음이 맞지 않아 여행 중에 다툴 때가 있습니다. 신혼여행을 가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면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습니다. 최근 홀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어쩌면 마음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큰 복은 사람의 복입니다. 그래서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혼자야. 인생의 동반자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친구가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 친구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축복이고 자랑스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일까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시면서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와 동행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친구로 다가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구로 다가오시고, 그들과 대화하시며, 그들보다 앞서가셔서 그들의 걸음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에서 인도하시며, 옆에서 동행하시고, 뒤에서 지지하고 밀어 주신다’는 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을 누구와 함께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님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도 나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히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생명의 집이 있습니다.

세 번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합니다. 여행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합니다. 나그네와 방랑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방랑자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떠나온 곳도 모르지만 앞으로 가야할 곳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목적지 없이 자기 기분대로 떠도는 것이 방랑자의 인생입니다. 그러니 동행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랑자는 늘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야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순례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가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어, 이제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영원한 생명의 집, 본향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이가 들고 죽는다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당당하고, 죽음 앞에 섰을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생을 끝마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시민권이 사라지게 될 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한복음 14:2)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셔서 제자들이 올 자리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늘 시민권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짧은 여행도 짐이 가볍고, 좋은 친구가 있고, 돌아올 집이 있어야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친구가 없어서 외롭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 되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이 두렵고 불안합니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인생을 돈과 권력에 집착하고, 내가 가진 것에 욕심내며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친구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당당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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