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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있는 살인자 – 제6계명-

출애굽기 20: 13

김지철 목사

2009.02.22

많은 사람들이 자살과 살인 충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에 두 종류의 상이한 죽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카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입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죽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죽음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이웃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의 큰 축복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마음속에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 준 죽음입니다. 흉악범에 의해 헛되이 죽은 사람들의 죽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업신여기고 연약한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사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위험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미디어에서 대학생 621명을 상대로 죽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최근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더니 대학생들의 약 60%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취업난 때문에가 20%, 성적과 학점이 잘 안 나와서가 19%, 이성 친구 문제 때문에가 14%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학생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위기 속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빡빡하고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33%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 충동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한 충동을 느꼈는지 물었더니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밉기 때문에가 무려 68%였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에가 14%, 이유 없이 사람이 그냥 미워서가 7%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해본다면 인간관계의 갈등과 아픔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충동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가장 생명이 약동하고 활력이 넘쳐야하는 대학생들에게 오히려 죽음과 살인의 문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절망이 그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십계명 후반부는 ‘하지 말라’는 금령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거절해라. 죽음을 거부해라. 그리고 생명을 택하라.” 10계명 중 후반부인 6계명~10계명까지는 금령입니다. 소위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통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을 통해서 부부의 정조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정이 소중한가를 말씀하십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통해서 인간이 수고하고 땀 흘려 받는 돈과 재산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9계명을 통해서 내 명예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명예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이웃의 집과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10계명을 통해서 이웃의 인격과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부정적인 명령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이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뜻합니다. “인간들아, 네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네가 인생 전체의 주인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이 아니다.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너에게 명령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시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명령을 하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자유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네 자유 의지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안 된다.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너는 창조주가 아니라 경배하고 섬겨야 할 분이 계시다. 이것을 깨닫고 순종하라.” 이것은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창조된 세계를 마음껏 누리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은총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살인하려는 충동적인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인간생명이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진,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이기에 자기 스스로 죽을 권리, 다른 사람을 죽일 권리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 자살, 낙태, 아동학대, 배우자 폭력은 살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피를 흘리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리면 그 피의 대가를 그에게서 찾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세기 9:6)

다른 사람의 생명이 내 생명과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종종 우리와 상관없는 명령이 아닙니까? 내가 언제 다른 사람을 해하였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 한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싸이코패스의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명령이 아닙니까?”
육체적인 살인에 이르기 전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살인을 먼저 시작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살인하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먼저 모욕과 비난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싸이코패스적인 충동적 살인의 요소가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매일 미움과 분노의 살인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반사회적인 범죄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이 사람들에 의해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보는 사이코패스적인 사람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중심적입니다. 과장이 아주 심합니다. 모든 세계는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야합니다. 내 방식대로 살아야 좋은 것입니다.
둘째, 죄의식이 결여되어있습니다. 별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끔찍한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보면서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셋째, 공감능력이 부족합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도 없습니다.
넷째, 충동적입니다. 결과의 옳고 그름을 검토하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모욕하고 경멸할 때는 즉각적인 반응을 표현합니다. 과도하게 민감하고 다른 사람을 위협합니다. 욕설을 퍼붓고 폭력적입니다. 아주 쉽게 화를 내다가도 금방 그칩니다. 언제 화를 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금방 되돌아갑니다.
여섯째, 일상적인 삶을 지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반복적인 것을 금방 지루해합니다 그래서 극도의 자극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한정된 것일까요? 우리 안에도 이런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내 안에 붙잡혀서 둥지를 틀고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때 우리가 이런 잘못된 사고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와 자기통제훈련이 필요합니다.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범한 사형수들의 공통적인 정서가 있음을 이들을 인터뷰한 사람들이 지적합니다. 그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냉대를 받고 사회로부터 비난과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사회가 자기를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듣습니다. “너는 쓸데없는 인간이야. 너는 없어도 괜찮은 인간이야. 네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돼.”

마음속에 생기는 미움과 분노는 살인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냉대와 비난을 받으면서 그것이 내적인 영혼 속까지 뿌리박히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쓴 뿌리가 내 속에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과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미움의 분노가 솟구칩니다. 마음속에 증오심이 나타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나는 홀로 외로운 사람이야. 나도 세상을 향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나도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해.” 그러면서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마음의 폭력은 언어적인 폭력으로 바뀝니다. 언어적인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과 살인으로 상승됩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속에 생기는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스스로 통제하고 긍정적인 사랑과 도전과 믿음으로 바꿀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시는 은총을 통해서 이 변화를 누려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입으로 튀어나온 말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육체적인 살인은 안했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살인했다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1-22)

형제의 인격을 모독하고 그를 조롱하며 비난하고 못된 욕지거리를 하게 되면 그것은 형제를 살인하는 것과 같고 지옥 불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생기는 미움이 그만큼 우리의 삶 전체를 썩어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육체적인 폭력과 언어적인 폭력의 뿌리는 같습니다. 그 뿌리는 마음의 뿌리, 미움의 뿌리, 분노의 뿌리, 증오심의 뿌리, 적대감의 뿌리입니다. 긍휼 없는 인간의 마음, 자비 없는 인간의 마음이 독처럼 들어와 있습니다. 독사의 독은 자기를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독은 먼저 나부터 죽입니다.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분노의 독이 있으면 육체가 움츠러듭니다. 쓸데없는 긴장을 하고 얼굴에 모습이 찌그러들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무너집니다. 다른 사람이 파괴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파괴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살인의 독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못된 킬러가 있는 것을 스스로 통제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언어의 폭력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무너지고 넘어지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을 해하는 살인의 악함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를 사랑과 긍휼로 바꿉시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혀)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야고보서 3:9-10)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형제를 비방하고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한 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도 아닙니다. 예배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움의 분노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때로 분노가 필요합니다. 분노는 우리를 도전하게 하고 경쟁하여 성숙하게 합니다. 자기를 계발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움의 분노가 되어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면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보복, 복수를 요구합니다. 내가 받은 데로 다른 사람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더 큰 것으로 파괴되기를 바랍니다. 분노의 감정이 내속에 가득 차게 되면 통제력을 잃습니다. 자기절제가 불가능합니다. 분노의 감정이 들어오면 머리로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이 끊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안에 분노가 생길 때 사람에게 토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세요. 하나님께 토하며 아뢸 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용서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도록 결단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기도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학적인 조사 보고에 의하면 사람이 분노하고 화를 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면역력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각종 질병에 들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화를 낼 때 내 심장과 마음이 서로 투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화를 자주 내지 않는 사람보다 무려 7배나 높다고 합니다. 화는 조기사망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살인의 독을 제거하고 사랑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요한일서 4:20)

미움의 영성, 분노의 영성, 죽음의 영성, 살인의 영성이 아니라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영성, 사랑의 영성, 치유의 영성, 회복의 영성으로 바뀔 때 먼저 내가 살아나 평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을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 한 분, 한 분이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영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 속에 악과 불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이런 못된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아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며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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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 13

13

살인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자살과 살인 충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에 두 종류의 상이한 죽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카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입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죽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죽음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이웃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의 큰 축복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마음속에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 준 죽음입니다. 흉악범에 의해 헛되이 죽은 사람들의 죽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업신여기고 연약한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사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위험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미디어에서 대학생 621명을 상대로 죽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최근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더니 대학생들의 약 60%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취업난 때문에가 20%, 성적과 학점이 잘 안 나와서가 19%, 이성 친구 문제 때문에가 14%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학생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위기 속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빡빡하고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33%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 충동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한 충동을 느꼈는지 물었더니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밉기 때문에가 무려 68%였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에가 14%, 이유 없이 사람이 그냥 미워서가 7%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해본다면 인간관계의 갈등과 아픔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충동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가장 생명이 약동하고 활력이 넘쳐야하는 대학생들에게 오히려 죽음과 살인의 문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절망이 그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십계명 후반부는 ‘하지 말라’는 금령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거절해라. 죽음을 거부해라. 그리고 생명을 택하라.” 10계명 중 후반부인 6계명~10계명까지는 금령입니다. 소위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통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을 통해서 부부의 정조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정이 소중한가를 말씀하십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통해서 인간이 수고하고 땀 흘려 받는 돈과 재산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9계명을 통해서 내 명예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명예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이웃의 집과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10계명을 통해서 이웃의 인격과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부정적인 명령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이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뜻합니다. “인간들아, 네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네가 인생 전체의 주인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이 아니다.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너에게 명령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시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명령을 하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자유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네 자유 의지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안 된다.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너는 창조주가 아니라 경배하고 섬겨야 할 분이 계시다. 이것을 깨닫고 순종하라.” 이것은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창조된 세계를 마음껏 누리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은총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살인하려는 충동적인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인간생명이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진,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이기에 자기 스스로 죽을 권리, 다른 사람을 죽일 권리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 자살, 낙태, 아동학대, 배우자 폭력은 살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피를 흘리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리면 그 피의 대가를 그에게서 찾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세기 9:6)

다른 사람의 생명이 내 생명과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종종 우리와 상관없는 명령이 아닙니까? 내가 언제 다른 사람을 해하였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 한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싸이코패스의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명령이 아닙니까?”
육체적인 살인에 이르기 전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살인을 먼저 시작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살인하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먼저 모욕과 비난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싸이코패스적인 충동적 살인의 요소가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매일 미움과 분노의 살인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반사회적인 범죄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이 사람들에 의해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보는 사이코패스적인 사람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중심적입니다. 과장이 아주 심합니다. 모든 세계는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야합니다. 내 방식대로 살아야 좋은 것입니다.
둘째, 죄의식이 결여되어있습니다. 별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끔찍한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보면서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셋째, 공감능력이 부족합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도 없습니다.
넷째, 충동적입니다. 결과의 옳고 그름을 검토하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모욕하고 경멸할 때는 즉각적인 반응을 표현합니다. 과도하게 민감하고 다른 사람을 위협합니다. 욕설을 퍼붓고 폭력적입니다. 아주 쉽게 화를 내다가도 금방 그칩니다. 언제 화를 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금방 되돌아갑니다.
여섯째, 일상적인 삶을 지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반복적인 것을 금방 지루해합니다 그래서 극도의 자극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한정된 것일까요? 우리 안에도 이런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내 안에 붙잡혀서 둥지를 틀고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때 우리가 이런 잘못된 사고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와 자기통제훈련이 필요합니다.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범한 사형수들의 공통적인 정서가 있음을 이들을 인터뷰한 사람들이 지적합니다. 그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냉대를 받고 사회로부터 비난과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사회가 자기를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듣습니다. “너는 쓸데없는 인간이야. 너는 없어도 괜찮은 인간이야. 네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돼.”

마음속에 생기는 미움과 분노는 살인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냉대와 비난을 받으면서 그것이 내적인 영혼 속까지 뿌리박히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쓴 뿌리가 내 속에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과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미움의 분노가 솟구칩니다. 마음속에 증오심이 나타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나는 홀로 외로운 사람이야. 나도 세상을 향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나도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해.” 그러면서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마음의 폭력은 언어적인 폭력으로 바뀝니다. 언어적인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과 살인으로 상승됩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속에 생기는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스스로 통제하고 긍정적인 사랑과 도전과 믿음으로 바꿀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시는 은총을 통해서 이 변화를 누려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입으로 튀어나온 말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육체적인 살인은 안했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살인했다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1-22)

형제의 인격을 모독하고 그를 조롱하며 비난하고 못된 욕지거리를 하게 되면 그것은 형제를 살인하는 것과 같고 지옥 불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생기는 미움이 그만큼 우리의 삶 전체를 썩어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육체적인 폭력과 언어적인 폭력의 뿌리는 같습니다. 그 뿌리는 마음의 뿌리, 미움의 뿌리, 분노의 뿌리, 증오심의 뿌리, 적대감의 뿌리입니다. 긍휼 없는 인간의 마음, 자비 없는 인간의 마음이 독처럼 들어와 있습니다. 독사의 독은 자기를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독은 먼저 나부터 죽입니다.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분노의 독이 있으면 육체가 움츠러듭니다. 쓸데없는 긴장을 하고 얼굴에 모습이 찌그러들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무너집니다. 다른 사람이 파괴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파괴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살인의 독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못된 킬러가 있는 것을 스스로 통제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언어의 폭력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무너지고 넘어지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을 해하는 살인의 악함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를 사랑과 긍휼로 바꿉시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혀)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야고보서 3:9-10)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형제를 비방하고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한 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도 아닙니다. 예배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움의 분노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때로 분노가 필요합니다. 분노는 우리를 도전하게 하고 경쟁하여 성숙하게 합니다. 자기를 계발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움의 분노가 되어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면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보복, 복수를 요구합니다. 내가 받은 데로 다른 사람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더 큰 것으로 파괴되기를 바랍니다. 분노의 감정이 내속에 가득 차게 되면 통제력을 잃습니다. 자기절제가 불가능합니다. 분노의 감정이 들어오면 머리로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이 끊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안에 분노가 생길 때 사람에게 토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세요. 하나님께 토하며 아뢸 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용서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도록 결단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기도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학적인 조사 보고에 의하면 사람이 분노하고 화를 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면역력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각종 질병에 들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화를 낼 때 내 심장과 마음이 서로 투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화를 자주 내지 않는 사람보다 무려 7배나 높다고 합니다. 화는 조기사망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살인의 독을 제거하고 사랑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요한일서 4:20)

미움의 영성, 분노의 영성, 죽음의 영성, 살인의 영성이 아니라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영성, 사랑의 영성, 치유의 영성, 회복의 영성으로 바뀔 때 먼저 내가 살아나 평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을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 한 분, 한 분이 주님의 사랑과 더불어 영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 속에 악과 불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이런 못된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아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며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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