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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제2계명

출애굽기 20: 2 ~ 6

김지철 목사

2009.01.25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유인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를 처음 믿고 십계명을 읽었을 때 제 2계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미련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이외의 형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하면 인정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더 편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을 겁주는 협박의 말씀이 아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을 때 십계명의 2계명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선물이며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게 하지 않는 놀라운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을 협박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1계명을 통해서 참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 2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참된 방식으로 섬기라고 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4-5)

여기에 세 가지 동사 ‘만들라’, ‘절하라’, ‘섬기라’는 것과 이것을 모두 뒤집는 부정 명령어가 나옵니다. 섬기고 예배한다는 것은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귀속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근원은 바로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을 내가 예배드리는 것에서 다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아야 진정한 예배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교감되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생물들은 먹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산해진미를 주어 배가 불러도, 비단이불을 덮고 자도, 큰집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아도, 마음속에 영적인 교감이 없으면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를 다른 무엇으로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아닌 대체물로 그 공간을 채웁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정신세계의 이데올로기로, 어떤 사람은 다른 종교로 대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통해서 영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영적인 공허감을 맛보려고 합니다. 불안과 좌절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고 애쓰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에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혐오하십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정말 우상숭배하는 것이 싫다. 그것 좀 하지 말라. 내 심장을 뒤틀리게 하지 말라. 난 그것만 보면 열불이 난다. 난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질투가 난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상숭배는 인간들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의 영혼이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세상 만물보다도 더 귀하다는 자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놀라운 인간이 자신들보다 훨씬 못한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이 신이라고 숭배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도저히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만드셨는데, 다른 형상을 만들어 절하는 것은 우리가 더 못한 피조물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내 자녀가 다른 사람의 자녀보다 훨씬 훌륭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른 자녀보다 내 자녀가 못하다고 하면 화가 납니다. 내 자녀가 소중하기에 열심히 공부시키고 때로는 해외유학도 보냅니다. 내 자녀를 세상의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상 숭배하는 것은 내 자녀를 다른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동물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에 탄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슬퍼하며 말씀하십니다. “인간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데 다른 피조물 앞에 절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받아들이느냐? 말도 안 된다. 그것은 너를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를 최고의 존재로 만든 나를 모독하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인간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만들고, 상대적 가치를 최고의 절대적 가치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분을 죽은 것과 비교하고,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이는 세계의 것으로 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분을 몇 가지로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면서 다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우상숭배를 금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로 교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상숭배를 왜 금하셨을까요? 우상숭배는 인간들의 가장 이기적인 행위로 그 속에 교만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우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를 향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너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행위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중의 하나가 금송아지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애굽기 32:1)

여기에 ‘우리를 위하여’라는 중요한 말이 십계명 제 2계명에 나옵니다.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빙자해서 새로운 신을 만들었습니다. 형태 없는 금송아지를 하나 만들고 나서 아론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것이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다.” 성경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이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씀은 거꾸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로 인간을 만들었기에 세상의 어떤 피조물로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지 말라. 인간을 그렇게 욕되게 하지 말라. 인간을 만든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라.”

우상에는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 자기 자랑이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인간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진노의 불길을 퍼부으십니다. “너희들은 배반자며 은혜를 모르는 자다. 너희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었더니 그것을 껍데기로 만들어 다시 노예가 되게 하려는 구나.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의 뒤를 가만히 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려는 완악한 모습이 있다.”
여러분, 구약에 나타나는 사울과 다윗왕의 차이가 있다고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은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기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먼저 세웁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갈멜에서 기념비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15:12).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힘이나 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직분을 맡게되면 자기가 최고라고 착각하고 스스로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인간의 악한 모습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배경에는 자기애착과 자기 자랑, 자기 교만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마지막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우상을 만드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높아지려는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신앙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신앙의 첫째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 자기 자랑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과 지식도 들어 있습니다. 우상은 때로는 아내와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중의 가장 무서운 우상은 자기 자신의 우상입니다. 우상 속에는 이기적인 내 자아, 나의 욕심과 쾌락과 야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우상을 이곳저곳에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내게 좀 달라. 네 사랑을 내게 좀 달라.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도 너를 온전히 사랑한다. 그렇다면 너도 나를 좀 사랑해라.”
사랑이 갖고 있는 독점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34:14)

이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질투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일찍 포기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다시 세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다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추적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많은 분들의 마지막 고백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추적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추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따라오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 배우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축복하며 사랑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죄악은 조금 여유가 있고 다른 죄악은 금방 갚으신다는 말씀을 자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본문에 보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자녀의 삼사 대까지 징계하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숭배하면 자녀의 천대까지 축복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께서 자녀에게까지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숭배하는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지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우상을 숭배하면 자녀들도 동일한 죄를 범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사랑을 드리는 것을 보면 자녀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들게 됩니다. 올바른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부모들이 가져야할 삶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아갑니다. 우상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숭배하면 영적인 능력이 다 사라지고 사탄의 억압 속에 빠져들어 욕심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처럼 생명과 자유의 역사로 새로워집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

우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우상처럼 형편없는 무력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알기에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지 말고 거기에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만일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의 영혼도 미워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요청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부터 자유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의 환경과 피조물에 억압당하거나 위축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위축당하게 하는 것에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도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집착하게 하는 피조물로부터 나는 자유자가 되었다고 선포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에 빠진 현대인들의 우상을 깨드리기 원하십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우상은 바로 돈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와 금융의 위기에 부딪쳤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맘몬니즘에 빠진 현대인들의 우상을 깨뜨리고 탐욕 속에서 돈만 추구하며 집착할 때 생기는 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우리의 집착이 되면 우리의 삶이 피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물질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우선해야 됩니다. 물질의 만족보다 영혼의 만족이 더 우선되어야 인간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이 기뻐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유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환경의 축복도 주십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영적인 세계는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명백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탐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우리를 얽어매고 억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참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다 맡겨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주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축복에만 먼저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우상으로 여길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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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 2 ~ 6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유인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를 처음 믿고 십계명을 읽었을 때 제 2계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미련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이외의 형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하면 인정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더 편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을 겁주는 협박의 말씀이 아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을 때 십계명의 2계명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선물이며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게 하지 않는 놀라운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을 협박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1계명을 통해서 참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 2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참된 방식으로 섬기라고 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4-5)

여기에 세 가지 동사 ‘만들라’, ‘절하라’, ‘섬기라’는 것과 이것을 모두 뒤집는 부정 명령어가 나옵니다. 섬기고 예배한다는 것은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귀속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근원은 바로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을 내가 예배드리는 것에서 다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아야 진정한 예배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교감되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생물들은 먹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산해진미를 주어 배가 불러도, 비단이불을 덮고 자도, 큰집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아도, 마음속에 영적인 교감이 없으면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를 다른 무엇으로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아닌 대체물로 그 공간을 채웁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정신세계의 이데올로기로, 어떤 사람은 다른 종교로 대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통해서 영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영적인 공허감을 맛보려고 합니다. 불안과 좌절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고 애쓰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에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혐오하십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정말 우상숭배하는 것이 싫다. 그것 좀 하지 말라. 내 심장을 뒤틀리게 하지 말라. 난 그것만 보면 열불이 난다. 난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질투가 난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상숭배는 인간들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의 영혼이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세상 만물보다도 더 귀하다는 자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놀라운 인간이 자신들보다 훨씬 못한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이 신이라고 숭배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도저히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만드셨는데, 다른 형상을 만들어 절하는 것은 우리가 더 못한 피조물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내 자녀가 다른 사람의 자녀보다 훨씬 훌륭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른 자녀보다 내 자녀가 못하다고 하면 화가 납니다. 내 자녀가 소중하기에 열심히 공부시키고 때로는 해외유학도 보냅니다. 내 자녀를 세상의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상 숭배하는 것은 내 자녀를 다른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동물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에 탄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슬퍼하며 말씀하십니다. “인간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데 다른 피조물 앞에 절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받아들이느냐? 말도 안 된다. 그것은 너를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를 최고의 존재로 만든 나를 모독하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인간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로 만들고, 상대적 가치를 최고의 절대적 가치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분을 죽은 것과 비교하고,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이는 세계의 것으로 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분을 몇 가지로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면서 다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우상숭배를 금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로 교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상숭배를 왜 금하셨을까요? 우상숭배는 인간들의 가장 이기적인 행위로 그 속에 교만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우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를 향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너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행위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중의 하나가 금송아지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애굽기 32:1)

여기에 ‘우리를 위하여’라는 중요한 말이 십계명 제 2계명에 나옵니다.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빙자해서 새로운 신을 만들었습니다. 형태 없는 금송아지를 하나 만들고 나서 아론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것이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다.” 성경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학자들이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씀은 거꾸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로 인간을 만들었기에 세상의 어떤 피조물로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지 말라. 인간을 그렇게 욕되게 하지 말라. 인간을 만든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라.”

우상에는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 자기 자랑이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인간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진노의 불길을 퍼부으십니다. “너희들은 배반자며 은혜를 모르는 자다. 너희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었더니 그것을 껍데기로 만들어 다시 노예가 되게 하려는 구나.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의 뒤를 가만히 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려는 완악한 모습이 있다.”
여러분, 구약에 나타나는 사울과 다윗왕의 차이가 있다고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은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기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먼저 세웁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갈멜에서 기념비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15:12).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힘이나 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직분을 맡게되면 자기가 최고라고 착각하고 스스로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인간의 악한 모습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배경에는 자기애착과 자기 자랑, 자기 교만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마지막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우상을 만드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높아지려는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신앙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신앙의 첫째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 자기 자랑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과 지식도 들어 있습니다. 우상은 때로는 아내와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중의 가장 무서운 우상은 자기 자신의 우상입니다. 우상 속에는 이기적인 내 자아, 나의 욕심과 쾌락과 야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우상을 이곳저곳에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내게 좀 달라. 네 사랑을 내게 좀 달라.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도 너를 온전히 사랑한다. 그렇다면 너도 나를 좀 사랑해라.”
사랑이 갖고 있는 독점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34:14)

이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질투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일찍 포기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다시 세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다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추적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많은 분들의 마지막 고백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추적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추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따라오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 배우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축복하며 사랑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죄악은 조금 여유가 있고 다른 죄악은 금방 갚으신다는 말씀을 자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본문에 보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자녀의 삼사 대까지 징계하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숭배하면 자녀의 천대까지 축복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께서 자녀에게까지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숭배하는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지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우상을 숭배하면 자녀들도 동일한 죄를 범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사랑을 드리는 것을 보면 자녀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들게 됩니다. 올바른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부모들이 가져야할 삶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아갑니다. 우상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숭배하면 영적인 능력이 다 사라지고 사탄의 억압 속에 빠져들어 욕심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처럼 생명과 자유의 역사로 새로워집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

우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우상처럼 형편없는 무력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알기에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지 말고 거기에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만일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의 영혼도 미워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요청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부터 자유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의 환경과 피조물에 억압당하거나 위축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위축당하게 하는 것에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도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집착하게 하는 피조물로부터 나는 자유자가 되었다고 선포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에 빠진 현대인들의 우상을 깨드리기 원하십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우상은 바로 돈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와 금융의 위기에 부딪쳤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맘몬니즘에 빠진 현대인들의 우상을 깨뜨리고 탐욕 속에서 돈만 추구하며 집착할 때 생기는 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우리의 집착이 되면 우리의 삶이 피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물질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우선해야 됩니다. 물질의 만족보다 영혼의 만족이 더 우선되어야 인간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이 기뻐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유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환경의 축복도 주십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영적인 세계는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명백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탐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우리를 얽어매고 억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참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다 맡겨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주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축복에만 먼저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우상으로 여길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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