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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발로 밟는 곳마다

신명기 11: 22 ~ 25

김지철 목사

2008.06.01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5월 12일에 발생한 중국의 대지진으로 지금까지 10만 명의 사망자와 35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집도 다 허물어져서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의 숫자도 약 천만 명에 이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중국의 재난을 가슴아파하며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소망봉사단에서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현지 마을을 직접 찾아가 약 1,000여 가정에게 직접 구호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것이지만, 현장에 간 소망봉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고 합니다. 약 열흘정도 먹고 생활할 수 있는 쌀과 라면과 음료와 기름 등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작은 물품이었지만 봉사자들과 중국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봉사단이 고통 받고 피해 받은 가정교회 성도님들도 만나보았는데, 그곳의 몇몇 성도들은 오히려 우리 봉사단에게 귀한 간증도 들려주었습니다.
지진이 나던 순간, 오십 여명이 되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나서 급히 교회 밖으로 나오자 이미 자신들이 살던 집은 다 무너졌는데 기도하던 교회만은 무너지지 않아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정교회 성도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섬김을 보면서 자신들도 피해지역을 위해서 돕는 사랑의 실천을 하겠다고 작정했다고 합니다.
이재민 천만 명 가까운 숫자 중에서 고작 천 가정만 도왔다는 것은 비율로 따져보면 만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사랑을 통해서 그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이 새롭게 일어났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모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일은 축복의 역사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신명기 11:22-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청난 약속을 해주십니다. 이렇게 강력한 말씀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혹시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 이것은 내 땅이라고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단순한 정복주의적인 사고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앞을 향해 나가 적을 초토화시키라는 말씀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때로는 아주 빨리 쉽게 축복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런 상상력을 가지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으로 나가서 쉽게 이길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차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본문 말씀이 시작되는 배경을 연상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헤매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팠고 목말랐던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땅에 완전히 올라가기 전까지 넘어가야할 관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견고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이 성을 무너뜨리고 점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했습니다. 매일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고 엿새 동안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을 앞세우고 나팔을 불 때 모든 백성들이 큰소리로 외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성을 통과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갔습니다.
여리고 성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만사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가 있을까요? 칠일동안만 수고를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어요?”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속에 어느 정도 의혹을 가지며 이야기를 듣지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면 무너진다고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한 바퀴를 도는 수고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 헛된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괜히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불가능한 말이 아닐까? 비이성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아예 도전도 안 해보는 것이 우리의 의심입니다. 우리는 아예 쓸모없는 것이라고 배제하기도 합니다.

앞을 향해 발을 디디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맛보지 못한 채 살아오면서 반복하는 문제점은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될까?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은총을 받는 것일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현실 세계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미리 낙심하고 포기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의심 때문에 신앙의 역사,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맛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앞을 향해 발을 디디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발로 밟는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두면 의심은 자꾸 증폭됩니다.
아무 집이나 아무 땅이나 만져보지 않고 다 자동적으로 내 것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쩌면 문자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왜곡된 정복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나쁜 심보가 삶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그것보다 앞서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먼저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눈을 믿음의 눈으로 바꿔야 합니다.
민수기 13장에서 모세는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가면서 먼저 각 지파 중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뽑아냅니다. 그들은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정탐꾼 12명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보고하는데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땅의 사람들이 너무 거대해서 들어가기 어렵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 그 땅을 우리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것을 10명과 2명이 서로 다르게 볼 수 있었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 다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 땅은 위험하고 어려운 땅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험악하고 장대한 사람들이어서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10명도 어려웠고 2명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면 두 가지로 나뉩니다. 문제는 다 있는데 그래도 문제없는 것을 찾아가려면 공동묘지로 가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에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포기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사는 한 갈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문제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루를 사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할 수 없겠다고 인생을 포기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문제가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딪쳐 극복해 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후자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으면 문제없는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면서 부딪쳐나가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수기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시면 우리 능력으로 안 되는 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로 부딪치는 장벽이 너무 높아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의 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더 컸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부딪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에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능성이 없고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믿음이 있습니다.

걸림돌이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성숙과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거침돌이 주춧돌이 되어 민족의 장래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실패가 있지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위해서,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를 위해서, 공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노동자와 기업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 국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세워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현실의 위험성에만 붙잡혀서 그 이상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넘어서  나아갑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과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좋고 축복받은 것에 별로 감사할 줄 모릅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목숨을 걸고 사납게 달려듭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자리는 다 비슷합니다. 평생 당하는 고난과 어둠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고난의 아픔과 역경도 비슷하게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여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할 때마다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습니다. 어찌 인생에서 한두 번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은 실패를 과정으로 생각하고 실패하면 한 번 더 부딪쳐 보려고 합니다. 또 한 번 부딪쳐서 어느 날 성공하면 그 사람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가 됩니다. 그럴 때 모든 일을 용감하게 부딪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일에 부딪쳐 나가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한번 실패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믿어봤자 소용없다고 스스로 실패자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인생의 실패와 아픔이 있습니다. 거대한 고난의 장벽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두려움이 전혀 없을까요? 예수 믿는다고 고통 받지 않을까요? 예수를 믿는다고 걱정과 근심이 없을까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아픔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려움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최고의 두려움이기 때문에 다른 두려움을 다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토저라는 목사님이 ‘세상과 충돌하라’는 책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진리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를 감옥에 가둔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의 재산을 강탈한다고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돌아다니면서 나를 비방한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의 목을 자른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떼어놓는 것만이 나를 해치는 것이다. 바로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이 있지만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7)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것이 축복과 감사입니다. 또한 보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면 일단 한번 부딪쳐 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 앞에 서야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목표는 거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의 내용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 예수 믿고 얼마나 부자 되었느냐? 너 예수 믿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 권력을 차지했느냐?”라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너 예수 믿는다고 했는데 내 아들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좋구나. 나도 내 아들 예수를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십니다. 이 마음만 있으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밟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를 의지하면 앞을 향해 발을 디디라. 그러면 너와 동행할 것이다. 네가 밟는 땅을 너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정이 축복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직장이 축복받습니다. 여러분이 거하는 문화예술, 의료과학, 사회 법률, 교육, 경제, 정치의 자리가 하나님 주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담당해야 할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고, 때로는 가기 힘든 장벽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앞을 향해서 한 걸음 기대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두려워 도망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오니 우리와 동행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가 밟는 땅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는 현장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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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1: 22 ~ 25

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5월 12일에 발생한 중국의 대지진으로 지금까지 10만 명의 사망자와 35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집도 다 허물어져서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의 숫자도 약 천만 명에 이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중국의 재난을 가슴아파하며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소망봉사단에서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현지 마을을 직접 찾아가 약 1,000여 가정에게 직접 구호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것이지만, 현장에 간 소망봉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고 합니다. 약 열흘정도 먹고 생활할 수 있는 쌀과 라면과 음료와 기름 등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작은 물품이었지만 봉사자들과 중국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봉사단이 고통 받고 피해 받은 가정교회 성도님들도 만나보았는데, 그곳의 몇몇 성도들은 오히려 우리 봉사단에게 귀한 간증도 들려주었습니다.
지진이 나던 순간, 오십 여명이 되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나서 급히 교회 밖으로 나오자 이미 자신들이 살던 집은 다 무너졌는데 기도하던 교회만은 무너지지 않아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정교회 성도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섬김을 보면서 자신들도 피해지역을 위해서 돕는 사랑의 실천을 하겠다고 작정했다고 합니다.
이재민 천만 명 가까운 숫자 중에서 고작 천 가정만 도왔다는 것은 비율로 따져보면 만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사랑을 통해서 그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이 새롭게 일어났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모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일은 축복의 역사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신명기 11:22-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청난 약속을 해주십니다. 이렇게 강력한 말씀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혹시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 이것은 내 땅이라고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단순한 정복주의적인 사고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앞을 향해 나가 적을 초토화시키라는 말씀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때로는 아주 빨리 쉽게 축복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런 상상력을 가지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으로 나가서 쉽게 이길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차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본문 말씀이 시작되는 배경을 연상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헤매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팠고 목말랐던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땅에 완전히 올라가기 전까지 넘어가야할 관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견고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이 성을 무너뜨리고 점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했습니다. 매일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고 엿새 동안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을 앞세우고 나팔을 불 때 모든 백성들이 큰소리로 외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성을 통과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갔습니다.
여리고 성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만사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가 있을까요? 칠일동안만 수고를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도 그렇게 하겠어요?”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속에 어느 정도 의혹을 가지며 이야기를 듣지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면 무너진다고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한 바퀴를 도는 수고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 헛된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괜히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불가능한 말이 아닐까? 비이성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아예 도전도 안 해보는 것이 우리의 의심입니다. 우리는 아예 쓸모없는 것이라고 배제하기도 합니다.

앞을 향해 발을 디디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맛보지 못한 채 살아오면서 반복하는 문제점은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될까?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은총을 받는 것일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현실 세계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미리 낙심하고 포기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의심 때문에 신앙의 역사,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맛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앞을 향해 발을 디디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발로 밟는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두면 의심은 자꾸 증폭됩니다.
아무 집이나 아무 땅이나 만져보지 않고 다 자동적으로 내 것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쩌면 문자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왜곡된 정복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나쁜 심보가 삶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그것보다 앞서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먼저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눈을 믿음의 눈으로 바꿔야 합니다.
민수기 13장에서 모세는 가나안 복지를 향해 들어가면서 먼저 각 지파 중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뽑아냅니다. 그들은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정탐꾼 12명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보고하는데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땅의 사람들이 너무 거대해서 들어가기 어렵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 그 땅을 우리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것을 10명과 2명이 서로 다르게 볼 수 있었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 다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 땅은 위험하고 어려운 땅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험악하고 장대한 사람들이어서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10명도 어려웠고 2명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면 두 가지로 나뉩니다. 문제는 다 있는데 그래도 문제없는 것을 찾아가려면 공동묘지로 가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에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포기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사는 한 갈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문제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루를 사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할 수 없겠다고 인생을 포기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문제가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딪쳐 극복해 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후자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으면 문제없는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여기면서 부딪쳐나가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수기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시면 우리 능력으로 안 되는 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로 부딪치는 장벽이 너무 높아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의 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더 컸습니다.
장벽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부딪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에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능성이 없고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믿음이 있습니다.

걸림돌이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성숙과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거침돌이 주춧돌이 되어 민족의 장래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실패가 있지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위해서,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를 위해서, 공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노동자와 기업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 국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세워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현실의 위험성에만 붙잡혀서 그 이상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넘어서  나아갑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과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좋고 축복받은 것에 별로 감사할 줄 모릅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목숨을 걸고 사납게 달려듭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자리는 다 비슷합니다. 평생 당하는 고난과 어둠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고난의 아픔과 역경도 비슷하게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여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할 때마다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습니다. 어찌 인생에서 한두 번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은 실패를 과정으로 생각하고 실패하면 한 번 더 부딪쳐 보려고 합니다. 또 한 번 부딪쳐서 어느 날 성공하면 그 사람은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가 됩니다. 그럴 때 모든 일을 용감하게 부딪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일에 부딪쳐 나가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한번 실패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믿어봤자 소용없다고 스스로 실패자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인생의 실패와 아픔이 있습니다. 거대한 고난의 장벽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두려움이 전혀 없을까요? 예수 믿는다고 고통 받지 않을까요? 예수를 믿는다고 걱정과 근심이 없을까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아픔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려움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최고의 두려움이기 때문에 다른 두려움을 다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토저라는 목사님이 ‘세상과 충돌하라’는 책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진리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를 감옥에 가둔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의 재산을 강탈한다고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돌아다니면서 나를 비방한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나의 목을 자른다 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떼어놓는 것만이 나를 해치는 것이다. 바로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이 있지만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7)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것이 축복과 감사입니다. 또한 보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면 일단 한번 부딪쳐 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 앞에 서야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목표는 거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의 내용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 예수 믿고 얼마나 부자 되었느냐? 너 예수 믿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 권력을 차지했느냐?”라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너 예수 믿는다고 했는데 내 아들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좋구나. 나도 내 아들 예수를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십니다. 이 마음만 있으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밟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를 의지하면 앞을 향해 발을 디디라. 그러면 너와 동행할 것이다. 네가 밟는 땅을 너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정이 축복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직장이 축복받습니다. 여러분이 거하는 문화예술, 의료과학, 사회 법률, 교육, 경제, 정치의 자리가 하나님 주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담당해야 할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고, 때로는 가기 힘든 장벽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앞을 향해서 한 걸음 기대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두려워 도망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오니 우리와 동행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가 밟는 땅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는 현장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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