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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자 같이

로마서 6:8~14

김경진 목사

2024.04.07

<이 땅에는 아직 눈물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자 어느 신문에 조금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女 26명 살해하고 돼지 먹이로 준 ‘최악의 연쇄 살인마’, 가석방될까?”(서울신문, 2024. 2. 27.)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캐나다의 ‘로버트 픽턴’(74세)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최소한 26명의 여성을 살해하였고 시신을 돼지 먹이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2002년에 체포되었고 2007년에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고받을 당시에 종신형을 선고받기는 했지만, 2027년에는 가석방할 수 있는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아직 3여 년 동안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가 가석방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이 담긴 기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어느 곳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26명을 죽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사실은 49명을 죽였고 원래는 50명을 죽이려고 했는데 아직 한 명이 모자라다.” 그래서 캐나다 국민들이 아마 많이 두려워 떨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마는, 참으로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보이스 피싱’이라는 용어들이 있지요. 또한 ‘스미싱’과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을 통해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갈취하는 범죄입니다. 작년인 2023년 통계를 보니 보이스 피싱을 통해서 손해를 본 사람들의 피해 총액이 1,965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1,965억 원의 재산이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나눠 보니 1인당 1,700만 원씩 정도의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10만 원, 100만 원도 아니고 1,700여만 원씩을 손해 보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것도 악한 거짓말에 의해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정말 사람들 중에는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의 돈을 몰래 빼돌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일을 잘하려고 했지만, 어쩌다가 피해를 준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계획하여 사람을 속일 생각을 하고, 거짓말로 돈을 빼앗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시대마다 독재자들이 존재하곤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전쟁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선진국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영국이라든지,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들도 그들의 역사를 보면 어떠했습니까? 과거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처참한 피해를 줬던 역사들이 고스란히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희 소망교회의 교역자들은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전통적으로 교역자 수련회를 가곤 합니다. 이번에 제가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 일본의 나가사키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그마한 사료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Nagasaki Museum for Human Rights and Peace)’이라는 센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일본의 한 목사님께서 평생동안 모아 오신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을 일본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고발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열어 놓은 사료관입니다. 그곳에 가서 보니 정말 참혹한 사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 악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관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보았는데, 작두에 사람의 머리를 대고 있는 등의 참혹한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머리로 보이는 것들이 지역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고 몸은 따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떤 일본 군인이 정장을 한 채로 잘린 머리를 들고 마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 것처럼 크게 웃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있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같은 인간을 이렇게 잔혹하게 죽일 수 있을까요? 수련회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 옆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제 총선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죠. 어떻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분들도 꽤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지원하고 선거하고 싶은 분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저는 도리어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별히 총선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또 이번 총선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거짓과 악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서로 죽이고 이기려고 거짓말도 불사하며 선동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저 소란하다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악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겠죠. 그리고 그 악을 당한 사람들, 거짓말로 모함을 당한 사람들은 억울함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거짓과 악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억울했던 경험들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악을 저지르고서도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멀쩡히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도리어 권력을 거머쥐고 영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참담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선하게 살아야 될 이유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악이 승리하는 세상, 악이 도리어 선을 누르고 지배하는 상황 같아 보입니다. ‘이 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일입니다. 그곳에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교수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키가 자그맣고 인자하신 분이셨는데, 그분과 길거리에서 만나면 대화도 나누고 이런 저런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이라는 분이셨는데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이분이 쓴 책 중에 『나이트(Night)』(1956; 프랑스어 판 1958; 영어 판 1960, 2006; 한글 판 2023)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문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셨는데 『나이트』라는 이 책은 그가 나치 아래에서 감옥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삶을 자전적으로 소설화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여러분께서 많은 목사님으로부터 한두 번쯤 이야기를 들으셨을 이야기입니다. 나치의 포로로 잡혀 있는 수용소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잘못된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나치들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장대 위에 매달아 죽이곤 했다고 합니다. 장대 세 개가 항상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들을 걸어 놓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장대 중앙에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죽지 않고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밑에 있는 수용소의 포로들은 그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말에 반응하듯이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것이냐?”라고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엘리 비젤에게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바로 여기 계시지. 그는 바로 저 아이와 함께 죽어가고 계신다.” 그것을 그가 본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죽어 가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이 관점은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었습니다. 악인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자리에 예수님도 함께하신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 진리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인간 중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죄가 없으신 분 아닙니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겸손하게 낮아지신 분이셨습니다. 선하셨으며 작은 자들과 병자들, 힘없는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으면서 살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 없는 그분을 붙잡아서 십자가 위에 처형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이 십자가는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어찌 보면 악의 승리요, 세상의 승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지금도 악은 선을 지배하죠. 세상을 호령합니다. 악한 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선한 이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살해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부활의 소식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한다면 ‘죽임당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들어 올려 다시 살려 내셨다. 무덤을 헤치시고 다시 살려 내셨다.’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사건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사망 이후 마지막 날에 우리도 주님과 더불어서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지요. 이것이 부활의 첫 번째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39~40)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가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부활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의 신앙은 장례식장에서 빛을 발하지요.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우리가 함께 다시 만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희망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부활의 신앙은 아닙니다. 부활의 신앙은 이것을 넘어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아날 것이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도리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럼 그렇지 도저히 악을 이길 수는 없어!

진리를 지키고 선을 행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야!”

그렇게 말했지.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악이 승리한 것 같지만 진리는 살아났다.

진리가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의는 살아 있다.

결코 진리는 죽일 수 없다. 정의는 땅에 묻을 수 없다.

 

이것이 부활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은 악한 세상에 선이 승리하는 것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진리와 정의는 살아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라고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엘리 비젤의 『나이트』에서 장대 위에 함께하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 옆에서 악을 저지르면서 비웃고 있는 사람들, 마치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 옆에도 부활하고 심판하실 주님께서 서 계신다는 사실을 보는 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아직은 세상의 권세가 더 크게 보입니다. 우리의 눈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의 자리에서는 끝인 것 같은 상황에도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합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8)

 

이 말씀은 종말적인 부활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는 말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이런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닌 다른 차원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서 ‘죽었다’라는 말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0~11)

 

무엇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입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살아났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났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달리 표현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신다. 십자가는 죄를 죽이는 자리이고 부활의 자리는 의를 살려 내는 자리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관점에서부터 부활의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십자가 위에서 정욕과 욕심, 거짓, 욕망, 악함, 더러움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자리에서 정의와 선함, 진리가 살아 났다는 말씀입니다.

언젠가 저의 선친께서 주셨던 조언의 말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죽었다고 생각하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어려운 시간을 이길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 여전히 끓어오르는 정욕과 악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서 이렇게 되뇌어 보는 것입니다. “너는 죽었지 않니? 욕망, 악한 생각, 정욕들, 그리고 너는 이미 십자가에 죽었다. 너는 이미 죽었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다시 말씀드려 봅니다. 여전히 세상은 악한 이들이 득세하고 마치 온 세상이 악함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살아 있어. 정의는 사라지지 않았어. 진리는 부활하였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선의 승리와 정의의 노래를 꿈꾸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의의 도구로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2~13)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새 존재로 태어나는 것, 의의 도구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 생명입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마다 부르는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찬송가 585장이죠.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노래입니다. 종교개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노래이지요. 물론 마틴 루터가 작사ㆍ작곡한 노래이니까 종교개혁 때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마는, 내용만 보면 부활의 의미가 가득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어느 종교개혁주일에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서 마지막 찬송으로 이 585장을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얼마 남지 않아서 목사님께서 “1절만 부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새찬송가 585장, 1a절)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아멘.” (새찬송가 585장, 1b절)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합니다. 목사님께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시간이 모자라지만 3절을 더 부르자고 해서 3절을 불렀습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새찬송가 585장, 3절)

 

그때서야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하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사건을 표현합니다. 마치 마귀가 이긴 것 같습니다. “이 마귀를 누가 감당할 수 있으랴.” 이것이 우리 현실처럼 보입니다. 절망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3절이 필요합니다.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이것이 바로 부활 믿음입니다. 진리와 정의는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고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앞이 깜깜하게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는 ‘이 땅에 진리가 있다. 그리고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기도하겠습니다.

 

As Those Who Have Been Resurrected

(Count Yourselves Alive)

 

Romans 6:8-14

 

“Will ‘the most notorious serial killer’who murdered 26 women and fed them to pigs get parole?” This was the title of an article published in the Seoul Shinmun Daily on February 27, 2024. Controversy is expected as Canadian serial killer Robert Pickton (75), who brutally murdered at least 26 women and fed them to pigs,may get parole.

 

In 2002 Pickton, a pig farmer, was arrested for heinous crimes. After abducting and killing female prostitutes, he cut up their bodies and fed them to his pigs. Police investigations at the time revealed that he had killed at least 26 women. Later, however, he is known to have confessed to an undercover agent acting as his prison cellmate that he had actually killed 49 women and had wanted to kill one more to make the number 50. In 2007 he received a life sentence with no chance of parole until 2027.

 

In 2023 alone, voice phishing damage in Korea was massive. Losses rose by 35.4% compared to the previous year, and the total damage amounted to 196.5 billion won. The shocking part is that the average loss per victim was 17 million won. (“Global Steps to Economic Freedom,”https://wisdom-1000.tistory.com/75)

 

I was told another shocking story. An elderly man, who was unable to move freely or use the bathroom himself and had to lie in bed for hours because of his panic disorder medication, hired a female caregiver.The woman nursed him 24/7. But she was wicked. She used his phone to send lewd pictures to herself, forged papers giving her the right to manage his assets, and even made him sign false papers when he was unconscious. When the family found out and fired her, she claimed that she was sexually assaulted and submitted “evidence” to the police. The family was shocked and in disbelief. They later found out from the police that such crimes wereactually quite common.

 

There really are a lot of evil people in this world. How can it be? We hear about criminals defrauding people of hundreds of millions of won, deceivingothers, stealing company assets, and going into hiding. There truly are many wicked people in this world.

 

These people do not cause damage accidentally, but commit evil with intent.

 

Is this all? Even as we speak, countless people in this world are dying unjust deaths. How many have perished, and continue to perish, under dictators?

 

The history of mankind has been one of endless killing. Consider the past of advanced nations today such as the United Kingdom, France, and other European nations.How manywere killed, unjustly and brutally, in religious wars and power struggles?

 

During the ministers’ retreat, pastors of Somang Church went to Nagasaki. There, we visited the Nagasaki Museum for Human Rights and Peace.There were exhibits onJapanese atrocities collected by a Japanese pastor. Photos showed how the Japanese massacred ethnic Koreans during the Great Kanto Earthquake of 1923: a man was chopping off the head of a Korean with a big cutter; mutilated heads were rolling on the ground; and a Japanese soldier was smiling brightly with a severed head in his hand. The cruelty of man!

 

In three days, Korea will hold its general elections. How much deceit will there be in the process? How much evil? Candidates will stop at nothing to bring each other down and beat their opponents, deceiving and inciting the public. The public may think they are just making a row, but the perpetrators and victims of evil will know the truth.

 

Even now, the Israel-Hamas war and the Russo-Ukrainian war are ongoing. The desires of evil leaders continue to take countless innocent lives.

 

I have also had many unjust experiences. But what puzzles me is how such evildoers can live normal—even good—lives on earth. They seize power and are even glorified.

 

Must I be good, then, even in such circumstances? Must I do good even when I am being utterly wronged? Where is God? Is He dead? God is dead!!!

 

Evil seems to prevail in this world. It seems to have defeated good. Is there hope in this world then?

 

Professor Ellie Wiesel (1928-2016) of Boston University wrote Night (1958, 1950, 2006), a novel based on his experiences in the Nazi German concentration camps. Wiesel received the Nobel Peace Prize in 1986.

 

In his book he writes that Jews were executed by hanging in his camp. Three poles were set up, as if to remind them of Jesus’ crucifixion on Golgotha.

 

Once, Wiesel witnessed a young boy being hanged. Most tragically, the boydied more slowly than adults, leading to horrible suffering. The Jews watching this were tormented. One of them cried out, “Where is God?” Wiesel writes:

 

“Behind me, I heard the same man asking: Where is God now?

And I heard a voice within me answer him: … Here He is—He is hanging here on this gallows.”

 

This perspective of Jesus Christ, the Savior who is with the dying and the suffering,opened up a new viewpoint to many. It made people see that Jesus is at the very scene of injustice and iswith the countless people killed brutally by the wicked.

 

Was there ever a man who suffered injustice as Jesus? He was without sin. He came to earth for humans as the Son of God. He was good and comforted the weak, the sick, and the powerless. He healed them and cast out evil spirits. Yet they crucified him.

 

The death of Jesus on the Cross wasevil’s victory. His death was the culmination of the world’s victory. As always, evil prevailed over good. Evil rules the world. The wicked do not vanish; they instead make the good bear the cross and murder them.

 

But Jesus rose from the dead in three days. To be more precise, God brought Jesus, who was murdered, back from the dead. This was the resurrection of Jesus.

 

What does this event tell us? How did the resurrection of Jesus happen?

 

The resurrection of our Lord signals that good has been brought back to life, despite evil’s victory. This incident proclaims that truth has been resurrected.

 

People nailed Jesus, the Truth, to the Cross and killed Him. And they buried Him in darkness. They thought this crime would forever be forgotten. But God opened up the tomb, rolled away the stone at the entrance, and resurrected Jesus. The truth was resurrected.

 

Therefore, Christ’s resurrection is the resurrection of the truth, good, and justice.

 

So when we confess our faith in Jesus’resurrection, it goes beyond a faith in ourresurrection after death. This latter faith is, of course, also very precious. Our Lord said:

 

“And this is the will of him who sent me, that I shall lose none of all those he has given me, but raise them up at the last day. For my Father’s will is that everyone who looks to the Son and believes in him shall have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them up at the last day.” (John 6:39-40)

 

Therefore, Jesus’ resurrection testifies and declares that we too will be raised to life after we die—like Jesus. To believe in this is to have a “resurrection faith.” Therefore, theresurrection faith of Christians shines in funerals.

 

But the resurrection faith goes beyondthat. The resurrection of our Lord is not merely confined to our hope that we will live at the end. This is the resurrection faith speaking to us today:

 

“When Jesus died on the Cross, you thought evil could not be beaten! You thought this world was ruled by evil. So you said guarding the truth andgood was foolish! Far from it! Jesus was resurrected. Evil appeared to have won, but the truth is still alive. Truth seems to have been destroyed, but justice is still alive. Truth can never be killed. Justice can never be buried. Therefore, a resurrectionfaith is to confess that truth, justice, and God are alive—even in this evil, harsh world where good does not seem to prevail one bit.”

 

As Wiesel saw Jesus crucified hanging in the gallows with the boy inNight, I hope we will be able to see our risen Jesus, the Lord who will come in judgement, in the very scene where evil seems to have prevailed, where the wicked are seen smiling after committing heinous acts.

 

After the resurrection of Jesus, justice entered this world, the truth prevailed, and God’s righteousness was revealed. Although the world’s powerseems overwhelming and confuse us, Christ’s resurrection has declared that God’s Kingdom has come on earth.

 

The resurrection faith is to live,knowingthis,and to live out this faith in our lives.

 

Now let’s look at today’s Scripture with this perspective.

 

Today’s text states: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Romans 6:8)

 

We can easily know that these words are notreferring to our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The phrase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does not refer to the fact that we will be resurrected at the last day—because this is what it says at the beginning of the sentence: “if we died with Christ.”

 

In this text, “we” are still alive. Those that“we” are referring to have not yet experienced physical death. In other words, “we died with Christ” refers not to a physical death, but to a death of another dimension. Then what have we died to in this verse?

 

“The death he died, he died to sin once for all; but the life he lives, he lives to God.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Romans 6:10-11)

 

We have died to “sin.” And what have we been made alive to? To “God.”

 

This is how Peter expresses it: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cross,’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1 Peter 2:24)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At the Cross, sins are killed; and at the resurrection, righteousness is made alive.

 

Now let’s summarize what a resurrection faith is. This is how the Cross and Jesus’resurrection draw near to us: At the Cross, all your desires, greed, deceit, lust, evils, and impurities have been killed. You must consider them dead. At the resurrection, justice, goodness, and truth have been made alive. You must count them alive.

 

As I mentioned before, my father used to tell me, “Consider yourself dead,”wheneverI felt that things were hard and unfair. These words sustained me.

 

Today I would like to link these words to today’s Scripture. Whenever we feel evil thoughts, desires, and lusts erupting within us, let’s say to ourselves, “You’re dead. You died at the Cross.”

 

Also I want to say this in connection to today’s text. Whenever it appears that the world is full of evil, that the wicked are powerful, let’s try saying this: “The truth is still alive! The truth has not disappeared. Justice still lives. The truth has been resurrected.” This is the resurrection faith.

 

The resurrection faith is to be sure of God’s victory even in a world full of evil. It is to not despair and to dream of good’s victory and justice being done—even when everything seems to be over. This is the resurrection faith.

 

It is to live as instruments of righteousness. The Bible says:

 

“Therefore do not let sin reign in your mortal body so that you obey its evil desires. Do not offer any part of yourself to sin as an instrument of wickedness, but rather offer yourselves to God as those who have been brought from death to life; and offer every part of yourself to him as an instrument of righteousness.”(Romans 6:12-13)

 

Being born as a new creation, becoming an instrument of righteousness—this is our resurrection.

 

There is a hymn that we sing every Reformation Sunday: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Martin Luther, the reformer, is known to have writtenand composed it.

 

One Reformation Sunday, a pastor sang this hymn at the end of the service. To end on time, he proposed that they sing just the first verse. So the congregation sang together: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A Bulwark never failing;

Our Helper He amid the flood

Of mortal ills prevailing:

For still our ancient foe

Doth seek to work us woe;

His craft and power are great,

And, armed with cruel hate,

On earth is not his equal.”

(Verse 1,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On earth is not his equal!” When the song ended on this note, the pastor was flustered. So he led the song to the end:

 

“And though this world, with devils filled,

Should threaten to undo us,

We will not fear, for God hath willed

His truth to triumph through us:

Let g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th still,

His Kingdom is forever.”

(Verse 3,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Now there was peace.

 

That’s right. Verse 1 sings of the Cross and the death of Jesus. The devil seems to have prevailed, that he has no equal on earth. Verse 1 sings of how we mightdespair.

 

That is why we absolutely needverse 3:

 

“We will not fear, for God hath willed

His truth to triumph through us:

Let g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th still,

His Kingdom is forever.”

(Verse 3,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God’s truth abideth still,His Kingdom is forever.”Truth, justice, and the Kingdom of God still abide. They are still here on earth… This is our resurrection faith. Furthermore, we have been called to build the Kingdom of God on earth with this resurrection faith.

 

“We will not fear, for God hath willed

His truth to triumph through us:

Let g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th still,

His Kingdom i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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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8~14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 땅에는 아직 눈물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자 어느 신문에 조금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女 26명 살해하고 돼지 먹이로 준 ‘최악의 연쇄 살인마’, 가석방될까?”(서울신문, 2024. 2. 27.)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캐나다의 ‘로버트 픽턴’(74세)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최소한 26명의 여성을 살해하였고 시신을 돼지 먹이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2002년에 체포되었고 2007년에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고받을 당시에 종신형을 선고받기는 했지만, 2027년에는 가석방할 수 있는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아직 3여 년 동안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가 가석방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이 담긴 기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어느 곳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26명을 죽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사실은 49명을 죽였고 원래는 50명을 죽이려고 했는데 아직 한 명이 모자라다.” 그래서 캐나다 국민들이 아마 많이 두려워 떨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마는, 참으로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보이스 피싱’이라는 용어들이 있지요. 또한 ‘스미싱’과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을 통해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갈취하는 범죄입니다. 작년인 2023년 통계를 보니 보이스 피싱을 통해서 손해를 본 사람들의 피해 총액이 1,965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1,965억 원의 재산이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나눠 보니 1인당 1,700만 원씩 정도의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10만 원, 100만 원도 아니고 1,700여만 원씩을 손해 보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것도 악한 거짓말에 의해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정말 사람들 중에는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의 돈을 몰래 빼돌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일을 잘하려고 했지만, 어쩌다가 피해를 준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계획하여 사람을 속일 생각을 하고, 거짓말로 돈을 빼앗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시대마다 독재자들이 존재하곤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전쟁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선진국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영국이라든지,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들도 그들의 역사를 보면 어떠했습니까? 과거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처참한 피해를 줬던 역사들이 고스란히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희 소망교회의 교역자들은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전통적으로 교역자 수련회를 가곤 합니다. 이번에 제가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 일본의 나가사키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그마한 사료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Nagasaki Museum for Human Rights and Peace)’이라는 센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일본의 한 목사님께서 평생동안 모아 오신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을 일본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고발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열어 놓은 사료관입니다. 그곳에 가서 보니 정말 참혹한 사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 악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관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보았는데, 작두에 사람의 머리를 대고 있는 등의 참혹한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머리로 보이는 것들이 지역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고 몸은 따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떤 일본 군인이 정장을 한 채로 잘린 머리를 들고 마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 것처럼 크게 웃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있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같은 인간을 이렇게 잔혹하게 죽일 수 있을까요? 수련회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 옆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제 총선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죠. 어떻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분들도 꽤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지원하고 선거하고 싶은 분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저는 도리어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별히 총선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또 이번 총선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거짓과 악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서로 죽이고 이기려고 거짓말도 불사하며 선동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저 소란하다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악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겠죠. 그리고 그 악을 당한 사람들, 거짓말로 모함을 당한 사람들은 억울함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거짓과 악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억울했던 경험들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악을 저지르고서도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멀쩡히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도리어 권력을 거머쥐고 영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참담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선하게 살아야 될 이유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악이 승리하는 세상, 악이 도리어 선을 누르고 지배하는 상황 같아 보입니다. ‘이 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일입니다. 그곳에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교수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키가 자그맣고 인자하신 분이셨는데, 그분과 길거리에서 만나면 대화도 나누고 이런 저런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이라는 분이셨는데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이분이 쓴 책 중에 『나이트(Night)』(1956; 프랑스어 판 1958; 영어 판 1960, 2006; 한글 판 2023)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문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셨는데 『나이트』라는 이 책은 그가 나치 아래에서 감옥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삶을 자전적으로 소설화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여러분께서 많은 목사님으로부터 한두 번쯤 이야기를 들으셨을 이야기입니다. 나치의 포로로 잡혀 있는 수용소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잘못된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나치들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장대 위에 매달아 죽이곤 했다고 합니다. 장대 세 개가 항상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들을 걸어 놓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장대 중앙에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죽지 않고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밑에 있는 수용소의 포로들은 그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말에 반응하듯이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것이냐?”라고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엘리 비젤에게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바로 여기 계시지. 그는 바로 저 아이와 함께 죽어가고 계신다.” 그것을 그가 본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죽어 가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이 관점은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었습니다. 악인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자리에 예수님도 함께하신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 진리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인간 중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죄가 없으신 분 아닙니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겸손하게 낮아지신 분이셨습니다. 선하셨으며 작은 자들과 병자들, 힘없는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으면서 살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 없는 그분을 붙잡아서 십자가 위에 처형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이 십자가는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어찌 보면 악의 승리요, 세상의 승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지금도 악은 선을 지배하죠. 세상을 호령합니다. 악한 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선한 이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살해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부활의 소식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한다면 ‘죽임당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들어 올려 다시 살려 내셨다. 무덤을 헤치시고 다시 살려 내셨다.’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사건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통해 사망 이후 마지막 날에 우리도 주님과 더불어서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지요. 이것이 부활의 첫 번째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39~40)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가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부활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의 신앙은 장례식장에서 빛을 발하지요.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우리가 함께 다시 만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희망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부활의 신앙은 아닙니다. 부활의 신앙은 이것을 넘어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아날 것이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도리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럼 그렇지 도저히 악을 이길 수는 없어!

진리를 지키고 선을 행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야!”

그렇게 말했지.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악이 승리한 것 같지만 진리는 살아났다.

진리가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의는 살아 있다.

결코 진리는 죽일 수 없다. 정의는 땅에 묻을 수 없다.

 

이것이 부활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은 악한 세상에 선이 승리하는 것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진리와 정의는 살아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라고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엘리 비젤의 『나이트』에서 장대 위에 함께하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 옆에서 악을 저지르면서 비웃고 있는 사람들, 마치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 옆에도 부활하고 심판하실 주님께서 서 계신다는 사실을 보는 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아직은 세상의 권세가 더 크게 보입니다. 우리의 눈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의 자리에서는 끝인 것 같은 상황에도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합니다.>

 

이 관점에서 오늘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8)

 

이 말씀은 종말적인 부활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는 말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이런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닌 다른 차원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서 ‘죽었다’라는 말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0~11)

 

무엇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입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살아났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났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달리 표현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신다. 십자가는 죄를 죽이는 자리이고 부활의 자리는 의를 살려 내는 자리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관점에서부터 부활의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십자가 위에서 정욕과 욕심, 거짓, 욕망, 악함, 더러움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자리에서 정의와 선함, 진리가 살아 났다는 말씀입니다.

언젠가 저의 선친께서 주셨던 조언의 말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죽었다고 생각하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어려운 시간을 이길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 여전히 끓어오르는 정욕과 악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서 이렇게 되뇌어 보는 것입니다. “너는 죽었지 않니? 욕망, 악한 생각, 정욕들, 그리고 너는 이미 십자가에 죽었다. 너는 이미 죽었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다시 말씀드려 봅니다. 여전히 세상은 악한 이들이 득세하고 마치 온 세상이 악함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살아 있어. 정의는 사라지지 않았어. 진리는 부활하였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선의 승리와 정의의 노래를 꿈꾸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의의 도구로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2~13)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새 존재로 태어나는 것, 의의 도구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 생명입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마다 부르는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찬송가 585장이죠.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노래입니다. 종교개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노래이지요. 물론 마틴 루터가 작사ㆍ작곡한 노래이니까 종교개혁 때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마는, 내용만 보면 부활의 의미가 가득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어느 종교개혁주일에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서 마지막 찬송으로 이 585장을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얼마 남지 않아서 목사님께서 “1절만 부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새찬송가 585장, 1a절)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아멘.” (새찬송가 585장, 1b절)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합니다. 목사님께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시간이 모자라지만 3절을 더 부르자고 해서 3절을 불렀습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새찬송가 585장, 3절)

 

그때서야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하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사건을 표현합니다. 마치 마귀가 이긴 것 같습니다. “이 마귀를 누가 감당할 수 있으랴.” 이것이 우리 현실처럼 보입니다. 절망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3절이 필요합니다.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이것이 바로 부활 믿음입니다. 진리와 정의는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고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앞이 깜깜하게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는 ‘이 땅에 진리가 있다. 그리고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4월 7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다시 살아난 자 같이” (롬 6장 8~14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70장, 17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롬 6장 8~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4월 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세상에는 정말 못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억의 사기를 치고, 사람들을 속이고, 회사의 재산을 몰래 빼돌리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설교의 요약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을 위해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선하셨고, 작은 자들, 병든 자들, 힘없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분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악의 승리요, 이 세상 승리의 결정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살해당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바로 부활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악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선이 다시 살아났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진리가 다시 살아났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죽었을 때 부활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을 넘어섭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8).

 

이것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에 대하여 살아났다는 말인가요? 바로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는 죄를 죽이는 자리이고 부활은 의를 살리는 자리입니다. 우리 안에서 끓어 오르는 악한 생각들, 정욕들, 욕망들이 있을 때, 그 때마다 이렇게 말해보는 것입니다. “너는 죽었잖아! 너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어.” 여전히 이 세상이 악함으로 가득하고, 악한 이들이 득세하고, 힘을 발휘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진리는 살아있다, 진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정의는 사라지지 않았어, 진리는 부활하였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선의 승리, 정의의 도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인생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의의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 부활신앙인입니다. 새 존재로 태어나는 것, 의의 도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활입니다.

 

 

나누기

 

  1. 지금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국가들을 보며 그들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었던 거짓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주변에서 악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마무리 기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이 부활의 신앙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전히 죽음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 하지만, 주님의 부활은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을 심었습니다. 진리는 살아서 영원하리라, 이 믿음으로 척박한 현실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갖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땅에 정의와 진리를 심고 세워감으로 부활의 소망을 나누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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