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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마음이 리더십이다

열왕기상 3: 4 ~ 13

김지철 목사

2009.08.16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서경(書經)에 천시자아민시(天視自我民視) 천청자아민청(天聽自我民聽)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백성의 귀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곧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의 생각과 시각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라는 말입니다.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도 정치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합니다. “어찌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정치요 백성의 고통 받는 것을 차마 못 보는 것이 정치”라고 말해줍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연약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자리를 보살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옛 현인들도 지도자로써 가장 중요한 덕으로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화 전문가들은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늘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듣는다는 말은 성경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들음은 곧 우리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뜻이고, 우리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듣는 것을 못하게 되는 순간 곧 우리의 목이 뻣뻣해지고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의 영적인 세계는 뒷전으로 물러가고 영혼은 쉽게 물질적인 세계에 잠식당하기 시작합니다. 듣기를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을 앞세우고 남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듣는 마음이 리더십입니다.
듣는다는 말에는 공감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듣겠다는 것은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지도자의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듣기’를 꼽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던 듣기란 바로 백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심각하게 받아드리겠다는 참 지도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뇌하는 지도자, 아파하는 지도자, 함께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 지도자가 듣는 마음을 갖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듣는 마음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조차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경험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소통하고 설득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님의 말씀을 잘 듣던 자녀들도 스무 살이 넘어서면 대화가 단절됩니다. 우리가 듣는 마음이 없을 때 소통의 부재, 대화의 부재가 더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듣는 마음은 자기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듣는 마음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 들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벗어나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는 알지 못하는 고정관념, 선입견에 싸여있습니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상황과 환경을 판단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전부 옳다거나 모든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많은 선입견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편리하기는 하지만 반면에 많은 실수를 내재하고 있고, 더 큰 세계, 더 넓은 관점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둡니다. 예전부터 해온 것들은 다 중요하고 가치 있지만, 새로운 어떤 것도 의미 있거나 좋은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본다면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의 편안함 속에 갇힌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늘 놀랍고 새로운 창조의 현장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 곧 교회의 본질을 의심케 하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써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믿음의 핵심을 기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늘 안주하고 있는 모든 현실에 대한 과감한 도전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응답으로써 헌신하며 섬기는 성도들의 일상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조금은 더 피곤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정관념은 그저 편리한 척도로 둘 수는 없어집니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한 방법일 뿐, 그것이 경건함과 믿음생활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깨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새로움의 축복입니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은 일상 궤도를 벗어나서 다른 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듣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궤도를 찾는 것이고, 곧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은 배우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배우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배움은 변화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잘 배우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함이 듣는 마음입니다. 배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들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들으려는 사람은 자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자기는 아직도 진리 앞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의 비어있는 곳에 채우려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 듣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을 세상의 관점으로 말하면 전문가의 마음입니다. 전문가의 마음은 갈등을 조장해서 같이 망해가도록 하는 마음이 아니라, 평화를 이끌어 내어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마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있습니까? 그때마다 우리 속에 있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식으로 마지막까지 갑니다. 마지막까지 망하려눈 곳울 우리가 듣는 마음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사회전체가 뒤 흔들리고 어둠을 향해서 달려갈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힘을 갖은 권력자에게 듣는 마음은 가장 소중한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 의해서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릅니다. 그때 나이가 정확히 얼마 정도 됐는지는 몇 가지 추정이 필요하지만 이십대 내외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 기대와 설레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기브온에 올라가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의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일천 번을 제사를 드렸다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사의 양 천 마리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됐는데 그 정도의 제물을 드렸다면, 쉬지 않고 계속 드려도 아마 7~8일 동안 제사가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와 같이 온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5)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왕이 되었는데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물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무엇을 주면 좋겠냐고 물으실 때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든 원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순간에 놀랍게도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듣는 마음을 구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듣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그가 듣는 마음을 구했다는 사실과 이것을 구하기 전에 그가 한 말들을 볼 때 그는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듣는 마음을 가진 자답게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먼저 달라고 구하기 전에 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자기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함으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열왕기상 3:6)

내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내 아버지도 은혜를 받았고 나도 은혜를 받아서 왕위에 오르게 되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받은 은혜와 아들로써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만 감사할 뿐이라 먼저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할 때 대부분 간구하는 것 자체에만 관심이 있지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서는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먼저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듣는 마음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또 한 나라의 왕이 된 솔로몬을 여전히 겸손하게 지키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었음에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얼마나 능력이 모자란 존재인지 겸손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열왕기상 3:7~8)

솔로몬은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 어떻게 이 백성을 이끌어 나가야 할런지 나는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어찌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내게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내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진정으로 구하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듣는 마음입니다.
보통 자기 존재가 한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때쯤 듣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서야 하나님 앞에 가서 요청을 합니다.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3:9)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무엇을 듣는 마음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마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마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요청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면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열왕기상 3:10)

솔로몬의 구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 자녀들이 와서 ‘아버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부모의 요구를 들으려한다면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보통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 나 돈 주세요.’ ‘아버지 나 무엇을 하는데 좀 해주세요.’하면서 아쉬운 소리를 할 때만 찾아오는데,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들으려는 자녀들이 있다면 참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솔로몬이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겠습니다. 백성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구하는 지도자의 간구는 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듣는 마음은 권력자의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왜 듣는 마음이 소중할까요? 다른 자질이나 축복보다 왜 듣는 마음이 우선일까요? 권력자의 위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내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듣는 마음을 갖는다는 말은 권력을 가진 자기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권력자가 알 때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백성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들으신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권력자의 자리는 참으로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가진 솔로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열왕기상 3:11-12)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듣는 성도들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복 64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도 하나님의 뜻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국민들이 어떤 소리를 하는지를 경청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지도자입니다. 가정의 지도자, 직장의 지도자, 공동체의 지도자,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가 된 우리 모두에게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국민으로서, 성도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지도자의 마음을 들으면서 협력해 나가는 것이 이 땅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듣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공동체의 소리를 듣고, 지도자의 꿈을 듣고, 국민들의 생각을 듣는 소중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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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 4 ~ 13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13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서경(書經)에 천시자아민시(天視自我民視) 천청자아민청(天聽自我民聽)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백성의 귀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곧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의 생각과 시각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라는 말입니다.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도 정치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합니다. “어찌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정치요 백성의 고통 받는 것을 차마 못 보는 것이 정치”라고 말해줍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연약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자리를 보살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옛 현인들도 지도자로써 가장 중요한 덕으로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화 전문가들은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늘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듣는다는 말은 성경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들음은 곧 우리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뜻이고, 우리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듣는 것을 못하게 되는 순간 곧 우리의 목이 뻣뻣해지고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의 영적인 세계는 뒷전으로 물러가고 영혼은 쉽게 물질적인 세계에 잠식당하기 시작합니다. 듣기를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을 앞세우고 남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듣는 마음이 리더십입니다.
듣는다는 말에는 공감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듣겠다는 것은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지도자의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듣기’를 꼽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던 듣기란 바로 백성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심각하게 받아드리겠다는 참 지도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뇌하는 지도자, 아파하는 지도자, 함께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 지도자가 듣는 마음을 갖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듣는 마음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조차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경험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소통하고 설득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님의 말씀을 잘 듣던 자녀들도 스무 살이 넘어서면 대화가 단절됩니다. 우리가 듣는 마음이 없을 때 소통의 부재, 대화의 부재가 더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듣는 마음은 자기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듣는 마음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 들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벗어나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는 알지 못하는 고정관념, 선입견에 싸여있습니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상황과 환경을 판단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전부 옳다거나 모든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많은 선입견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편리하기는 하지만 반면에 많은 실수를 내재하고 있고, 더 큰 세계, 더 넓은 관점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둡니다. 예전부터 해온 것들은 다 중요하고 가치 있지만, 새로운 어떤 것도 의미 있거나 좋은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본다면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의 편안함 속에 갇힌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늘 놀랍고 새로운 창조의 현장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 곧 교회의 본질을 의심케 하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써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믿음의 핵심을 기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늘 안주하고 있는 모든 현실에 대한 과감한 도전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응답으로써 헌신하며 섬기는 성도들의 일상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조금은 더 피곤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정관념은 그저 편리한 척도로 둘 수는 없어집니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한 방법일 뿐, 그것이 경건함과 믿음생활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깨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새로움의 축복입니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은 일상 궤도를 벗어나서 다른 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듣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궤도를 찾는 것이고, 곧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은 배우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배우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배움은 변화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잘 배우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함이 듣는 마음입니다. 배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들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들으려는 사람은 자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자기는 아직도 진리 앞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의 비어있는 곳에 채우려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 듣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을 세상의 관점으로 말하면 전문가의 마음입니다. 전문가의 마음은 갈등을 조장해서 같이 망해가도록 하는 마음이 아니라, 평화를 이끌어 내어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마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있습니까? 그때마다 우리 속에 있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식으로 마지막까지 갑니다. 마지막까지 망하려눈 곳울 우리가 듣는 마음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사회전체가 뒤 흔들리고 어둠을 향해서 달려갈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힘을 갖은 권력자에게 듣는 마음은 가장 소중한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 의해서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릅니다. 그때 나이가 정확히 얼마 정도 됐는지는 몇 가지 추정이 필요하지만 이십대 내외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 기대와 설레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기브온에 올라가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의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일천 번을 제사를 드렸다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사의 양 천 마리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됐는데 그 정도의 제물을 드렸다면, 쉬지 않고 계속 드려도 아마 7~8일 동안 제사가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와 같이 온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5)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왕이 되었는데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물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무엇을 주면 좋겠냐고 물으실 때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든 원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순간에 놀랍게도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듣는 마음을 구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듣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그가 듣는 마음을 구했다는 사실과 이것을 구하기 전에 그가 한 말들을 볼 때 그는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듣는 마음을 가진 자답게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먼저 달라고 구하기 전에 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자기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함으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열왕기상 3:6)

내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내 아버지도 은혜를 받았고 나도 은혜를 받아서 왕위에 오르게 되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받은 은혜와 아들로써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만 감사할 뿐이라 먼저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할 때 대부분 간구하는 것 자체에만 관심이 있지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서는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먼저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듣는 마음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은 또 한 나라의 왕이 된 솔로몬을 여전히 겸손하게 지키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었음에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얼마나 능력이 모자란 존재인지 겸손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열왕기상 3:7~8)

솔로몬은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 어떻게 이 백성을 이끌어 나가야 할런지 나는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어찌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내게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내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진정으로 구하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듣는 마음입니다.
보통 자기 존재가 한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때쯤 듣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서야 하나님 앞에 가서 요청을 합니다.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3:9)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무엇을 듣는 마음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마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마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요청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면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열왕기상 3:10)

솔로몬의 구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 자녀들이 와서 ‘아버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부모의 요구를 들으려한다면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보통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 나 돈 주세요.’ ‘아버지 나 무엇을 하는데 좀 해주세요.’하면서 아쉬운 소리를 할 때만 찾아오는데,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들으려는 자녀들이 있다면 참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솔로몬이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겠습니다. 백성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구하는 지도자의 간구는 참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듣는 마음은 권력자의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왜 듣는 마음이 소중할까요? 다른 자질이나 축복보다 왜 듣는 마음이 우선일까요? 권력자의 위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내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듣는 마음을 갖는다는 말은 권력을 가진 자기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권력자가 알 때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백성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들으신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권력자의 자리는 참으로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가진 솔로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열왕기상 3:11-12)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듣는 성도들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복 64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도 하나님의 뜻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국민들이 어떤 소리를 하는지를 경청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지도자입니다. 가정의 지도자, 직장의 지도자, 공동체의 지도자,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가 된 우리 모두에게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국민으로서, 성도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지도자의 마음을 들으면서 협력해 나가는 것이 이 땅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듣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공동체의 소리를 듣고, 지도자의 꿈을 듣고, 국민들의 생각을 듣는 소중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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