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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그림자(3), 권력욕

사무엘하 15: 1 ~ 6

김지철 목사

2018.08.12

권력욕이 압살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은 ‘리더십의 그림자’라는 제목 아래 세 번째로 ‘권력욕’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권력욕이란 인간의 가장 뿌리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보존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더 커지면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됩니다. 때문에 아주 격렬한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갈등과 다툼의 뒷면에는 권력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권력욕은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이끌어 가는 욕망 중 하나입니다. 두 사람만 만나도 시작되는 것이 권력욕의 충돌입니다. 특히 남성분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을 많이 해 왔습니다. 누가 더 큰지, 더 힘이 센지, 더 빨리 달리는지 경쟁하는 힘의 논리를 체득하며 자라납니다. 때로는 부부조차 ‘누가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는가’라는 문제로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한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행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반하고 반역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아들에게는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그 감정이 교차되면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압살롬입니다. 그는 다윗이 낳은 여러 아들 중 가장 잘난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정수리부터 발바닥에 이르기까지 흠이 없었다고, 다른 누구의 아름다움도 그와 비교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난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아들이 되고 맙니다.
압살롬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누이 다말이 이복 오빠 암논에게 겁탈 당하게 되면서 그의 분노는 하늘로 치솟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이 사건에 침묵했고, 압살롬으로서는 암논을 징계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왜 암논을 벌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암논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일이 압살롬의 더 큰 분노와 복수를 일으킨 계기가 됩니다. 결국 압살롬은 모략을 짜 형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도피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압살롬과 얼굴을 맞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징계를 주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왕위를 물려받을 만한 자질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압살롬은 더욱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며, 저항심을 품게 됩니다. 압살롬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났고, 더는 다윗을 아버지로 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서서히 반역의 길에 들어선 압살롬입니다. 아버지를 쫓아내려는, 그리고 아버지의 왕위마저 차지하려는 권력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압살롬이 군사력을 확보하며, 이미지 정치를 시작합니다.

압살롬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합니다. 권력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힘이 있어야 권력이 보장됩니다. 압살롬도 이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특히 무력이 있어야 권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군사력 확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병거와 말, 호위병을 어떻게 하든 많이 모으려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운동을 일으킨 모택동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힘없는 권력이란 상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중 1절을 살펴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사무엘하 15:1)

병거와 말, 호위병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국가 권력은 그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삼권 분립 형태의 정치 체제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삼권 분립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중심에 ‘국민’이 놓여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상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이미 이 사실을 정치를 하면서 터득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 권력자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백성에게 “나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지도자입니다. 백성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지도자이자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지도자입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뛰어난 정치 전략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와 비슷합니다. 압살롬은 백성이 자주 드나드는 성문 곁으로 나아갔습니다. 특히 억울한 문제를 왕에게 송사하러 나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사무엘하 15:2 중)

압살롬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층에서 금방 도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 역시 일찍 일어나 성문 곁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그는 스스로를 정치적 인물로 세워 갔습니다. 또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해 갔습니다.
권력자가 추구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비스러운 매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친절과 배려’ 이미지입니다. 과거 독재자들은 신비한 매력에 정치권력의 방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두 번째 이미지인 친절과 배려를 더욱 강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백성과 소통할 줄 알고 대화하는 지도자 상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압살롬 역시 왕자로서의 신비한 매력에서 친절함의 이미지로 변신합니다. 그는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사무엘하 15:5)

사람들이 압살롬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를 친구처럼 대하며 입을 맞춥니다. 이처럼 능숙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 자기편으로 만든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기존 권력을 분열시키며 자기 입지를 세웁니다.

이후 그가 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정치 권력자들을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적을 만들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사무엘하 15:2~3 중)

억울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말하며 왕을 이간질하는 압살롬입니다. 마치 왕이 무능한 것처럼, 백성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말을 흘립니다. 이렇게 압살롬은 다윗 왕과 백성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치적 선동가들의 언어를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서 다른 편의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정치 선동가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분란과 분열을 조성합니다. 그래서 못된 지도자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이 이간질과 적대자 형성입니다. 북한의 지도자가 그렇습니다. 나 혼자만 진리와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듯 말합니다. 어느 비판이나 비난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북한의 연약한 모습이며, 무지한 모습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진영논리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정치적인 진영논리 곧 ‘좌와 우’라는 프레임으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처사입니다. 왜 우리 인생이 이 두 가지 길밖에 없겠습니까? 또한 경제적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나누는 것, 세대를 나누며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 남성과 여성 사이에 혐오 감정을 키우는 것, 종교 간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나누는 것 등은 매우 협소하고 건강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진영논리가 거세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을 행합니다. 상대방을 적대하는 논리가 곳곳에서 득세합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이런 어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 안에 목사파가 있고, 장로파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은 우리가 더 큰 목표를 놓치고 있을 때,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국가에서 우선하는 것은 국민입니다. 교회에서 우선하는 것은 성도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목사가 세워졌고 장로도 세워졌습니다. 목사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너희를 지배하려고 지도력을 가졌지만,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 이는 이 세상의 왜곡된 지도력을 뒤바꾸시겠다는 예수님의 깊은 뜻이 담긴 말씀입니다.

압살롬은 민심을 이용해 ‘자기를 위한’ 권력을 쌓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중간 중간 가로챘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무능한 자로 만들고 비판했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다윗에게로 향하는 민심을 자신에게로 돌린 압살롬입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사무엘하 15:6)

다윗에게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일종의 여론 정치를 행했습니다. 그런 뒤 그는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이스라엘 왕이라고 선언합니다. 아버지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그곳, 헤브론으로 가서 이제부터는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민심이란 소중하지만, 여론 정치에 매달리면 어느 순간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여론은 지도자들이 늘 살펴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권력자가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표지가 바로 여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더 근본적인 국가 정책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뛰어난 정치 권력자였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인물도 좋았습니다. 정치적 권력 욕망도 컸습니다. 다른 이들을 아우를 줄 알고, 민심의 방향도 가늠할 줄 알았습니다. 정치적 아량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에겐 기다림이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2인자로서 해야 할 본분을 상실하고 맙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반역한 아들, 자기 역할을 등한히 여긴 아들로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압살롬이 가진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압살롬의 본심이 드러나는 성경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1절에 등장한 ‘자기를 위하여’라는 구절입니다. 1절 말씀 전반부를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사무엘하 15:1)

자기를 위해 권력을 쌓게 되면, 결국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런 지도자는 자신의 외적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권력을 남용합니다. 정치적 야망 역시 자기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면 금방 돌변합니다. 자신을 위해,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야망을 위해 권력을 세우면, 공동체가 위기 속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구약의 사울 왕에게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꾸중을 받는 그 순간에도 일시적 승리해 도취해 백성 앞에 자신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용사며, 얼마나 멋진 왕이고 괜찮은 지도자인지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사무엘상 15:12 중)

권력자가 살아 있을 때 기념탑과 동상을 만드는 것은 독재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를 위하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독재자들이 이런 모습을 가졌고, 결국은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의 1인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도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선택할 때 공동체에게 맡긴다는 큰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지도자가 오래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지도자에게 자기반성의 기회를 줍니다. 백성들이 지도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특히 지도자를 선택하실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택하시는 것이지 결코 지도자 한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2편에서도, 하나님은 교만한 세상 권력자를 향해 비웃으십니다.
여러분, 지도자로서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항상 1인자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반면 압살롬은 자신을 1인자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멋있는 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오만과 교만이 그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가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정치계에, 어떤 분은 경제계에, 또 어떤 분은 교육계에서 자리를 잡고 계십니다. 또 그 분야에서 권력을 쥐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때 1인자가 아닌 2인자 의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1인자가 되는 그 순간에도 ‘나는 2인자에 불과하다.’라는 의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1인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1인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바닥 인생에 놓여 있을 때도 예수님이 나의 1인자이심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올해로 우리는 해방 73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북녘에 사는 백성들은 독재자의 억압 아래 살아갑니다. ‘어떤 지도자를 세워야 하는지’, 또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자와 정의를 지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과 공동체를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지도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공동체의 기쁨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과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와 나라, 공동체를 위해 쓰임 받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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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5: 1 ~ 6

1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권력욕이 압살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오늘은 ‘리더십의 그림자’라는 제목 아래 세 번째로 ‘권력욕’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권력욕이란 인간의 가장 뿌리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보존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더 커지면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됩니다. 때문에 아주 격렬한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갈등과 다툼의 뒷면에는 권력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권력욕은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이끌어 가는 욕망 중 하나입니다. 두 사람만 만나도 시작되는 것이 권력욕의 충돌입니다. 특히 남성분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을 많이 해 왔습니다. 누가 더 큰지, 더 힘이 센지, 더 빨리 달리는지 경쟁하는 힘의 논리를 체득하며 자라납니다. 때로는 부부조차 ‘누가 가정에서 주도권을 잡는가’라는 문제로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한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행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반하고 반역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아들에게는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그 감정이 교차되면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압살롬입니다. 그는 다윗이 낳은 여러 아들 중 가장 잘난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정수리부터 발바닥에 이르기까지 흠이 없었다고, 다른 누구의 아름다움도 그와 비교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난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아들이 되고 맙니다.
압살롬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누이 다말이 이복 오빠 암논에게 겁탈 당하게 되면서 그의 분노는 하늘로 치솟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이 사건에 침묵했고, 압살롬으로서는 암논을 징계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왜 암논을 벌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암논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일이 압살롬의 더 큰 분노와 복수를 일으킨 계기가 됩니다. 결국 압살롬은 모략을 짜 형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도피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압살롬과 얼굴을 맞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징계를 주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왕위를 물려받을 만한 자질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압살롬은 더욱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며, 저항심을 품게 됩니다. 압살롬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났고, 더는 다윗을 아버지로 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서서히 반역의 길에 들어선 압살롬입니다. 아버지를 쫓아내려는, 그리고 아버지의 왕위마저 차지하려는 권력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압살롬이 군사력을 확보하며, 이미지 정치를 시작합니다.

압살롬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합니다. 권력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힘이 있어야 권력이 보장됩니다. 압살롬도 이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특히 무력이 있어야 권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군사력 확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병거와 말, 호위병을 어떻게 하든 많이 모으려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운동을 일으킨 모택동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힘없는 권력이란 상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중 1절을 살펴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사무엘하 15:1)

병거와 말, 호위병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국가 권력은 그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삼권 분립 형태의 정치 체제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삼권 분립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중심에 ‘국민’이 놓여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상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이미 이 사실을 정치를 하면서 터득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 권력자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백성에게 “나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지도자입니다. 백성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지도자이자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지도자입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뛰어난 정치 전략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와 비슷합니다. 압살롬은 백성이 자주 드나드는 성문 곁으로 나아갔습니다. 특히 억울한 문제를 왕에게 송사하러 나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사무엘하 15:2 중)

압살롬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층에서 금방 도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 역시 일찍 일어나 성문 곁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그는 스스로를 정치적 인물로 세워 갔습니다. 또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해 갔습니다.
권력자가 추구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비스러운 매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친절과 배려’ 이미지입니다. 과거 독재자들은 신비한 매력에 정치권력의 방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두 번째 이미지인 친절과 배려를 더욱 강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백성과 소통할 줄 알고 대화하는 지도자 상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압살롬 역시 왕자로서의 신비한 매력에서 친절함의 이미지로 변신합니다. 그는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사무엘하 15:5)

사람들이 압살롬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를 친구처럼 대하며 입을 맞춥니다. 이처럼 능숙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 자기편으로 만든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기존 권력을 분열시키며 자기 입지를 세웁니다.

이후 그가 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정치 권력자들을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적을 만들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사무엘하 15:2~3 중)

억울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말하며 왕을 이간질하는 압살롬입니다. 마치 왕이 무능한 것처럼, 백성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말을 흘립니다. 이렇게 압살롬은 다윗 왕과 백성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치적 선동가들의 언어를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서 다른 편의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정치 선동가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분란과 분열을 조성합니다. 그래서 못된 지도자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이 이간질과 적대자 형성입니다. 북한의 지도자가 그렇습니다. 나 혼자만 진리와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듯 말합니다. 어느 비판이나 비난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북한의 연약한 모습이며, 무지한 모습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진영논리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정치적인 진영논리 곧 ‘좌와 우’라는 프레임으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처사입니다. 왜 우리 인생이 이 두 가지 길밖에 없겠습니까? 또한 경제적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나누는 것, 세대를 나누며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 남성과 여성 사이에 혐오 감정을 키우는 것, 종교 간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나누는 것 등은 매우 협소하고 건강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진영논리가 거세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을 행합니다. 상대방을 적대하는 논리가 곳곳에서 득세합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이런 어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 안에 목사파가 있고, 장로파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은 우리가 더 큰 목표를 놓치고 있을 때,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국가에서 우선하는 것은 국민입니다. 교회에서 우선하는 것은 성도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목사가 세워졌고 장로도 세워졌습니다. 목사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너희를 지배하려고 지도력을 가졌지만,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 이는 이 세상의 왜곡된 지도력을 뒤바꾸시겠다는 예수님의 깊은 뜻이 담긴 말씀입니다.

압살롬은 민심을 이용해 ‘자기를 위한’ 권력을 쌓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중간 중간 가로챘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무능한 자로 만들고 비판했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다윗에게로 향하는 민심을 자신에게로 돌린 압살롬입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사무엘하 15:6)

다윗에게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일종의 여론 정치를 행했습니다. 그런 뒤 그는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이스라엘 왕이라고 선언합니다. 아버지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그곳, 헤브론으로 가서 이제부터는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민심이란 소중하지만, 여론 정치에 매달리면 어느 순간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여론은 지도자들이 늘 살펴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권력자가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표지가 바로 여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더 근본적인 국가 정책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뛰어난 정치 권력자였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인물도 좋았습니다. 정치적 권력 욕망도 컸습니다. 다른 이들을 아우를 줄 알고, 민심의 방향도 가늠할 줄 알았습니다. 정치적 아량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에겐 기다림이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2인자로서 해야 할 본분을 상실하고 맙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반역한 아들, 자기 역할을 등한히 여긴 아들로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압살롬이 가진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압살롬의 본심이 드러나는 성경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1절에 등장한 ‘자기를 위하여’라는 구절입니다. 1절 말씀 전반부를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사무엘하 15:1)

자기를 위해 권력을 쌓게 되면, 결국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런 지도자는 자신의 외적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권력을 남용합니다. 정치적 야망 역시 자기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면 금방 돌변합니다. 자신을 위해,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 야망을 위해 권력을 세우면, 공동체가 위기 속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구약의 사울 왕에게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꾸중을 받는 그 순간에도 일시적 승리해 도취해 백성 앞에 자신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용사며, 얼마나 멋진 왕이고 괜찮은 지도자인지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사무엘상 15:12 중)

권력자가 살아 있을 때 기념탑과 동상을 만드는 것은 독재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를 위하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독재자들이 이런 모습을 가졌고, 결국은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의 1인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도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선택할 때 공동체에게 맡긴다는 큰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지도자가 오래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지도자에게 자기반성의 기회를 줍니다. 백성들이 지도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특히 지도자를 선택하실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를 택하시는 것이지 결코 지도자 한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2편에서도, 하나님은 교만한 세상 권력자를 향해 비웃으십니다.
여러분, 지도자로서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항상 1인자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반면 압살롬은 자신을 1인자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멋있는 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오만과 교만이 그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가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정치계에, 어떤 분은 경제계에, 또 어떤 분은 교육계에서 자리를 잡고 계십니다. 또 그 분야에서 권력을 쥐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때 1인자가 아닌 2인자 의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1인자가 되는 그 순간에도 ‘나는 2인자에 불과하다.’라는 의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1인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1인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바닥 인생에 놓여 있을 때도 예수님이 나의 1인자이심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올해로 우리는 해방 73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북녘에 사는 백성들은 독재자의 억압 아래 살아갑니다. ‘어떤 지도자를 세워야 하는지’, 또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자와 정의를 지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과 공동체를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지도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공동체의 기쁨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과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와 나라, 공동체를 위해 쓰임 받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8월 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리더십의 그림자(3), 권력욕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20장, 44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삼하 15:1~6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8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권력욕이란 가장 깊이 뿌리박은 인간의 욕망으로 자기 보존의 욕망입니다이것이 더 커지면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됩니다모든 갈등과 다툼에는 이런 권력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권력욕이란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말씀은 권력의 욕망이 가득한 아들이 아버지를 모반하고반역하는 이야기입니다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되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압살롬은 동생 다말이 암몬에 의해 겁탈을 당하자 그를 죽이고 도피생활에 들어갔습니다다윗은 도피 중이었던 아들 압살롬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렀지만 만나주지 않았습니다일종의 징계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하지만 그 때부터 압살롬은 아버지를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는 권력욕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압살롬은 무엇을 준비했습니까첫 번째로 힘을 축적(군사력)했습니다그래서 권력의 바탕이 되는 병거말 호위병을 확보하였습니다(1). 둘째로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그는 백성들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지도자요백성의 문제를 깊게 인식하는 지도자요길거리에서도 시장에서도 백성들이 있는 곳이면 나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는 지도자(2)”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세 번째로 정치 권력자를 이간질하였습니다적을 만들어내고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이끌어 들이는 작업입니다(2~3). 마지막으로 압살롬이 이렇게 행하였던 이유는 민심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그는 왕에게 나아가서 재판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다윗을 무능한 자로 비판하였으며자신은 능력이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그리고 압살롬은 헤브론으로 가서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다고 선언합니다.

    압살롬은 다른 사람보다 잘났고정치권력의 욕망도 컸으며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정치적 아량도 뛰어났습니다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는데그것은 바로 그에게는 기다림이 없었습니다. 2인자로서 해야 할 자기 본분을 상실했습니다그는 아버지를 반역한 아들자기 역할을 등한히 한 아들로 멈추었습니다본문 1절의 자기를 위하여라고 기록합니다압살롬은 국력군사력만심 등이 자기를 위하여 소유하였습니다철저하게 준비하였지만, ‘자기를 위하여자기의 목적을 위하여자기의 야망을 위한 권력이 되면 그 순간에 공동체는 위기 속에 빠져드는 것입니다사울 왕도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쌓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15:12). 다윗은 하나님의 눈에 합한 자였지만압살롬은 사람들의 눈에 멋있는 자로 남았습니다우리는 세상에서 1인자가 되기보다충성스러운 2인자 의식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왜냐하면 우리의 1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해방 73주년을 맞이하며 어떤 지도자를 세우며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겸손한 모습으로 예수님은 나의 Boss롤 섬기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나의 마음속에 있는 권력욕은 무엇입니까권력욕에 대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함께 나눠보세요.

2. 압살롬은 철저하게 자기를 위하여자기의 목적과 야망을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갔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하여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3. 세상에서 1인자 보다 충성스러운 2인자 의식을 지니며 살아가야 합니다이유가 무엇입니까?

     2인자 의식을 소유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며 서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우리에게 권력을 허락하였습니다이 권력이 나를 위한 권력이 아니라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의 보스이심을 고백하며겸손히 주님께 묻고 순종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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