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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전쟁의 연속입니다.
손녀딸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인 저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두세 주 전부터 탁자를 짚고 일어서면서, 손녀는 제게 걷는다는 의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과 다르게 사람을 걷게 하신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어서려고 합니다. 동물들은 땅으로 향하여 머리를 내리고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고, 땅을 내려 보며 살 수도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걸을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행위는 하나의 투쟁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어린 아이는 이제 막 인생이라는 투쟁의 장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아이가 이것, 저것을 집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애처롭고 기특하여 마음속으로 축복하며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얘야, 내가 평생 하나님을 향해서 예배드리려무나.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여라. 그러면 멋진 인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될 것이란다.’
아이가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하나님도 어쩌면 저를 보시면서 그런 마음이 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걸으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아 포기하고 있는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땅만 바라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싸우고, 전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전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삶속의 전쟁만큼이나 많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의 흔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승리로 이끄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역전의 용장처럼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그 승리를 뒤따라 왔습니다.
다윗은 격렬한 투쟁의 승리자입니다.
삶의 전투의 현장에서 우리는 가장 격렬한 전쟁의 주인공, 그러면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길을 갔던 주인공을 만납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들판에서 노래를 불렀던 시인이기도 합니다. 수금을 탈 줄 아는 음악인이었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대단한 권력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생애의 결정적인 신분은 무엇보다도 군인이었고 용감한 전사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일생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군대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커다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블레셋에서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키가 무려 3m에 이르고, 엄청난 크기의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투구를 썼고 옷에 갑옷을 입었습니다. 멀리서도 우렁찬 그의 고함소리는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떨게 했습니다. 그는 그 큰 목소리로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와서 40일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마저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겁을 먹었습니다.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에게 겁을 먹어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성경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조롱하며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사무엘상 17:9)
조롱 섞인 도전의 말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꿀 먹은 벙어리인 채로 적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용기 있게 대꾸하며 나올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라의 지도자였던 사울왕도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군대 장관들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자존감도 잃어버렸습니다. 잔뜩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려워 떨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압도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게 된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듣고 떨었다고 했고 또 다른 하나는 보고 떨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귀로 듣고 낙심했고, 눈으로 보고 절망했습니다.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상황들이 우리를 낙심하고 절망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귀로 들었기에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절망합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겁을 먹고 좌절합니다. 인생에는 도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좌절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한번 눈으로 힐끗 보고나서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고 좌절하고 도망칠 궁리만 합니다. 이것이 문제의 상황 앞에 선 우리의 인생, 곧 골리앗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듣는 것을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 도 있고, 실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보는 것을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보는 것 때문에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무엘상 17:11)
이스라엘과 모든 무리의 왕이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의 말 때문입니다. 성경은 조롱의 말을 듣고 그들과 지도자라는 사람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외쳐댑니다. ‘너희 중에 용기 있는 자가 있으면 나와 봐라. 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한번 다투어 보자. 너희가 기필코 나에게 져서 종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놀라 온 이스라엘과 그들의 지도자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습니다. 비웃음에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이나 왕으로서의 의연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도자인 왕이 이런 모양인데, 그 군대와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사무엘상 17:24)
그 장대한 사람, 칼과 창을 든 사람 그리고 갑옷을 입고 자신만만하게 다 이긴 것처럼 서 있는 골리앗을 보자마자 낙담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포기했습니다. 실패자로 전락하여 이미 항복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과 백성들도 심지어는 지도자도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쉽게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었을까요? 성경이 이스라엘의 마음 상태를 기록해둔 것처럼 보는 것, 들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치명적인 위협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그들의 지도자마저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좌절하고, 한두 가지를 보고 눈이 두려움에 멀어버려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장차 올 축복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할 때, 유일하게 두려움을 깨뜨리고 등장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두려움의 순간을 용기 있게 박차고 나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의 한 가운데를 향해 외치는 다윗은 우리가 보기에도,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 때, 다윗은 두려움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이런 모욕을 하나님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당하는 모욕과 수모를 참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지도자의 창피와 부끄러움을 떠안고 대신해서 앞서나갔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다윗에게는 투쟁의 기회였습니다.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다윗처럼 준비하십시오.
다윗은 사실 전쟁을 하기 위해 전쟁터에 온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형들이 전쟁터에서 먹을 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고 돌아가려했습니다. 고작 심부름꾼으로 전쟁터에 나온 소년이었습니다. 아직 20살이 되지 않아 전쟁에 징집되지도 않은 미숙아였습니다. 그는 전투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가 했던 인생의 유일한 전투란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맹수를 물매질로 쫓은 경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누군가를 이끌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그를 따랐던 무리는 양과 염소들뿐이었습니다.
투쟁의 기회에 다윗의 의로운 분노에 대하여 형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겁 없이 큰소리 뻥뻥 치는데, 너 이 녀석 전쟁을 구경하러 왔구나. 네 할 일을 잊고서 날뛰는 아주 교만한 놈이구나. 아주 못된 놈이구나.”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부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이 시골 소년이 기특해 보였습니다. 그 분노가 가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었던 갑옷이라도 입혀서 전쟁에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옷을 입혔더니 옷이 맞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금방 알았습니다. ‘이 갑옷은 내 갑옷이 아니다. 이것은 내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승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것을 찾았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경영컨설턴트였고 교수였던 피터 드러커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게 자기개발의 열쇠이다.”
다윗에게도 장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했을지 몰라도 그는 물맷돌을 잘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물매로 양들을 사나운 곰과 사자에게서 건져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감은 다윗이 갖고 있던 강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갑옷을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 하는 물맷돌과 양을 칠 때 들고 다니던 막대기 하나를 들고 거대한 장수 골리앗 앞에 나섰습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쥐죽은 듯 꼼짝 않던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한 인물이 드디어 싸움을 하겠다고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처럼은 아닐지라도 덩치 크고 힘센 장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소년인 아이가 나왔습니다. 이 때 골리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골리앗은 아마 태어나서 가장 모욕스러운 광경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존재로 골리앗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상대방이 아주 엄청난 장군인 것을 알았습니다. 칼과 창과 단창과 큰 방패와 갑옷을 입고 선 장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막대기와 물맷돌만 들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스스로 무시당했다고 느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골리앗은 다윗을 무시하며 폭언을 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사무엘상 17:43)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면 블레셋 군대를 이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골리앗을 쓰러뜨려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군대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하며 나갔습니다.
그래서 갑옷하나 챙겨 입지 않은 다윗은 전쟁에서 속도전을 택했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엄청난 무게의 갑옷 때문에 움직임이 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려갔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주머니에서 돌을 취해서 던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골리앗이 원래는 투구를 썼을 텐데 어린 다윗이 빨리 뛰는 것을 보면서 투구를 벗어 던졌을 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윗이 너무 가소로워서 골리앗이 껄껄껄 웃다가 투구가 위로 올라가서 이마가 보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간에 다윗은 빈 공간인 이마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늘 양들을 잡아 죽이는 맹수들과 이렇게 싸웠습니다. 맹수의 사나운 발톱을 피해서 빠르게 달리면서 물매를 던져 곰과 사자를 맞혀 쫓아냈습니다. 이 전투의 현장에서 다윗은 물매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양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는 골리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마에 물맷돌이 깊이 박히게 되었을 때 그 충격으로 골리앗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이제 장수가 아니라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 앞으로 가서 장수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의분이 있었기에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승리를 거두게 한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상대방의 기세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는 전투를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의로운 분노가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다. 승리하는 것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달려있다.’ 라는 자기 안의 고백이 그를 의로운 분노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절정부를 성경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17:45)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뢰의 마음을 골리앗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대와 적군까지 다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적들이 엄습하고 억누를 때가 있습니다. 다윗처럼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조롱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소외도 당하거나 편견 속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이끄시는 전투의 투쟁의 현장에서 다윗처럼 주인공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 승리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기회를 받을만한 그릇으로 준비하십시오. 준비하고 훈련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자기가 잘하는 강점을 열심히 훈련받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였으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이런 말을 합니다.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 가정과 직장과 기업에서 우리를 골리앗처럼 위협하는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나라의 정치적 분열이나 경제위기, 사회혼란, 북핵의 위협들이 어쩌면 거대한 골리앗일지 모릅니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위협 앞에서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어섭시다. 주저하지거나 포기하지 말고, 두려워하거나 이제 끝났다고 패배 당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용기 있게 나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넘어지고 힘들 때, 우리의 마음조차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세력, 우리를 압도하는 불의한 세력을 물리치며 주님을 향한 약속을 따라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사무엘상 17: 41 ~ 49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9
산다는 것은 전쟁의 연속입니다.
손녀딸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인 저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두세 주 전부터 탁자를 짚고 일어서면서, 손녀는 제게 걷는다는 의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과 다르게 사람을 걷게 하신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어서려고 합니다. 동물들은 땅으로 향하여 머리를 내리고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고, 땅을 내려 보며 살 수도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걸을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행위는 하나의 투쟁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어린 아이는 이제 막 인생이라는 투쟁의 장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아이가 이것, 저것을 집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애처롭고 기특하여 마음속으로 축복하며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얘야, 내가 평생 하나님을 향해서 예배드리려무나.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여라. 그러면 멋진 인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될 것이란다.’
아이가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하나님도 어쩌면 저를 보시면서 그런 마음이 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걸으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아 포기하고 있는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땅만 바라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싸우고, 전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전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삶속의 전쟁만큼이나 많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의 흔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승리로 이끄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역전의 용장처럼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그 승리를 뒤따라 왔습니다.
다윗은 격렬한 투쟁의 승리자입니다.
삶의 전투의 현장에서 우리는 가장 격렬한 전쟁의 주인공, 그러면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길을 갔던 주인공을 만납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들판에서 노래를 불렀던 시인이기도 합니다. 수금을 탈 줄 아는 음악인이었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대단한 권력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생애의 결정적인 신분은 무엇보다도 군인이었고 용감한 전사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일생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군대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커다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블레셋에서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키가 무려 3m에 이르고, 엄청난 크기의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투구를 썼고 옷에 갑옷을 입었습니다. 멀리서도 우렁찬 그의 고함소리는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떨게 했습니다. 그는 그 큰 목소리로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와서 40일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마저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겁을 먹었습니다.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에게 겁을 먹어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성경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조롱하며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사무엘상 17:9)
조롱 섞인 도전의 말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꿀 먹은 벙어리인 채로 적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용기 있게 대꾸하며 나올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라의 지도자였던 사울왕도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군대 장관들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자존감도 잃어버렸습니다. 잔뜩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려워 떨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압도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게 된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듣고 떨었다고 했고 또 다른 하나는 보고 떨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귀로 듣고 낙심했고, 눈으로 보고 절망했습니다.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상황들이 우리를 낙심하고 절망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귀로 들었기에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절망합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겁을 먹고 좌절합니다. 인생에는 도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좌절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한번 눈으로 힐끗 보고나서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고 좌절하고 도망칠 궁리만 합니다. 이것이 문제의 상황 앞에 선 우리의 인생, 곧 골리앗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듣는 것을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 도 있고, 실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보는 것을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보는 것 때문에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무엘상 17:11)
이스라엘과 모든 무리의 왕이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의 말 때문입니다. 성경은 조롱의 말을 듣고 그들과 지도자라는 사람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외쳐댑니다. ‘너희 중에 용기 있는 자가 있으면 나와 봐라. 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한번 다투어 보자. 너희가 기필코 나에게 져서 종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놀라 온 이스라엘과 그들의 지도자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습니다. 비웃음에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이나 왕으로서의 의연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도자인 왕이 이런 모양인데, 그 군대와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사무엘상 17:24)
그 장대한 사람, 칼과 창을 든 사람 그리고 갑옷을 입고 자신만만하게 다 이긴 것처럼 서 있는 골리앗을 보자마자 낙담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포기했습니다. 실패자로 전락하여 이미 항복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과 백성들도 심지어는 지도자도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쉽게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었을까요? 성경이 이스라엘의 마음 상태를 기록해둔 것처럼 보는 것, 들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치명적인 위협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그들의 지도자마저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좌절하고, 한두 가지를 보고 눈이 두려움에 멀어버려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장차 올 축복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할 때, 유일하게 두려움을 깨뜨리고 등장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두려움의 순간을 용기 있게 박차고 나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의 한 가운데를 향해 외치는 다윗은 우리가 보기에도,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 때, 다윗은 두려움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이런 모욕을 하나님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당하는 모욕과 수모를 참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지도자의 창피와 부끄러움을 떠안고 대신해서 앞서나갔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다윗에게는 투쟁의 기회였습니다.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다윗처럼 준비하십시오.
다윗은 사실 전쟁을 하기 위해 전쟁터에 온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형들이 전쟁터에서 먹을 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고 돌아가려했습니다. 고작 심부름꾼으로 전쟁터에 나온 소년이었습니다. 아직 20살이 되지 않아 전쟁에 징집되지도 않은 미숙아였습니다. 그는 전투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가 했던 인생의 유일한 전투란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맹수를 물매질로 쫓은 경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누군가를 이끌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그를 따랐던 무리는 양과 염소들뿐이었습니다.
투쟁의 기회에 다윗의 의로운 분노에 대하여 형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겁 없이 큰소리 뻥뻥 치는데, 너 이 녀석 전쟁을 구경하러 왔구나. 네 할 일을 잊고서 날뛰는 아주 교만한 놈이구나. 아주 못된 놈이구나.”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부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이 시골 소년이 기특해 보였습니다. 그 분노가 가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었던 갑옷이라도 입혀서 전쟁에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옷을 입혔더니 옷이 맞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금방 알았습니다. ‘이 갑옷은 내 갑옷이 아니다. 이것은 내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승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것을 찾았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경영컨설턴트였고 교수였던 피터 드러커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게 자기개발의 열쇠이다.”
다윗에게도 장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했을지 몰라도 그는 물맷돌을 잘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물매로 양들을 사나운 곰과 사자에게서 건져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감은 다윗이 갖고 있던 강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갑옷을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 하는 물맷돌과 양을 칠 때 들고 다니던 막대기 하나를 들고 거대한 장수 골리앗 앞에 나섰습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쥐죽은 듯 꼼짝 않던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한 인물이 드디어 싸움을 하겠다고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처럼은 아닐지라도 덩치 크고 힘센 장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소년인 아이가 나왔습니다. 이 때 골리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골리앗은 아마 태어나서 가장 모욕스러운 광경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존재로 골리앗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상대방이 아주 엄청난 장군인 것을 알았습니다. 칼과 창과 단창과 큰 방패와 갑옷을 입고 선 장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막대기와 물맷돌만 들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스스로 무시당했다고 느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골리앗은 다윗을 무시하며 폭언을 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사무엘상 17:43)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면 블레셋 군대를 이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골리앗을 쓰러뜨려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군대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하며 나갔습니다.
그래서 갑옷하나 챙겨 입지 않은 다윗은 전쟁에서 속도전을 택했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엄청난 무게의 갑옷 때문에 움직임이 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려갔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주머니에서 돌을 취해서 던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골리앗이 원래는 투구를 썼을 텐데 어린 다윗이 빨리 뛰는 것을 보면서 투구를 벗어 던졌을 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윗이 너무 가소로워서 골리앗이 껄껄껄 웃다가 투구가 위로 올라가서 이마가 보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간에 다윗은 빈 공간인 이마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늘 양들을 잡아 죽이는 맹수들과 이렇게 싸웠습니다. 맹수의 사나운 발톱을 피해서 빠르게 달리면서 물매를 던져 곰과 사자를 맞혀 쫓아냈습니다. 이 전투의 현장에서 다윗은 물매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양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는 골리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마에 물맷돌이 깊이 박히게 되었을 때 그 충격으로 골리앗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이제 장수가 아니라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 앞으로 가서 장수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의분이 있었기에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승리를 거두게 한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상대방의 기세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는 전투를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의로운 분노가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다. 승리하는 것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달려있다.’ 라는 자기 안의 고백이 그를 의로운 분노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절정부를 성경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17:45)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뢰의 마음을 골리앗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대와 적군까지 다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적들이 엄습하고 억누를 때가 있습니다. 다윗처럼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조롱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소외도 당하거나 편견 속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이끄시는 전투의 투쟁의 현장에서 다윗처럼 주인공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 승리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기회를 받을만한 그릇으로 준비하십시오. 준비하고 훈련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자기가 잘하는 강점을 열심히 훈련받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였으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이런 말을 합니다.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 가정과 직장과 기업에서 우리를 골리앗처럼 위협하는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나라의 정치적 분열이나 경제위기, 사회혼란, 북핵의 위협들이 어쩌면 거대한 골리앗일지 모릅니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위협 앞에서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어섭시다. 주저하지거나 포기하지 말고, 두려워하거나 이제 끝났다고 패배 당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용기 있게 나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넘어지고 힘들 때, 우리의 마음조차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세력, 우리를 압도하는 불의한 세력을 물리치며 주님을 향한 약속을 따라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