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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신‧구약 성경필사에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18개 지구의 성도님들이 함께해 주셨고, 중‧고등부 학생들도 신약성경을 우리말과 영어로 필사했습니다. 대학부와 청년부, 청년플러스도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성경필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치를 성취하신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다’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성경필사 도중 일어난 에피소드 중에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 성도님은 스가랴서를 열심히 필사하셨습니다. 본문을 다 작성한 후 제일 윗칸에 ‘스가랴’라고 책 이름을 쓰는 것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스바냐’로 잘못 쓰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스가랴를 필사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성경필사를 끝낸 후 필사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구역모임에 가져가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이 돌아서다 그만 컵을 치고 말아 물이 그 위에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도 처음부터 다시 필사를 하셨습니다. 그밖에 다음과 같은 고백도 이어졌습니다.
교회창립40주년 기념으로 성경필사를 하며, 15년 전 고3인 나를 위해 1년 동안 성경 한 권을 필사하신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수능을 앞둔 딸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순간들. 1년 후 성경을 건네주시며 “얘야, 말씀이 힘이 되어 그 시간을 견디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평생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해라.”라고 격려하셨던 편지가 기억납니다. 엄마가 쓴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지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며 약속인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성경 쓰는 것을 보며 “손가락 안 아파? 그걸 왜 써” 하던 딸이 나중엔 스스로 “나도 써볼게.”라고 말해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남편도 제가 쓴 필사를 감수하면서 저보다 더 또박또박 성경을 읽어 나가니 정말 좋았습니다. 아들 딸 모두가 줄자를 대가며 틀린 글자를 찾느라 애쓰는 모습, “잘 썼네” 하던 칭찬들, 다 감사하고 뿌듯한 순간입니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한 번 써 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엄지손가락과 손목에 통증을 느끼며 어깨는 수차례 침을 맞아가며 필사를 끝냈습니다. 끝내고나니 후련함과 동시에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어깨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네가 정성을 다했구나.’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종이를 버리고 또 버리며 같은 내용을 반복해 써 내려갈 때면 성경에서 오는 은혜로 평안을 얻기보다 팔목의 시큰함에 괴로웠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은 종이를 검토하다 틀린 글자를 발견할 때면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틀릴수록, 다시 쓸수록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워졌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느끼며,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하며 대화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매일 수업 듣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하나님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자습시간을 활용해 필사를 시작하고부터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넬 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온유’를 갖춘 사람의 모습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써야 했기에, 아마 고단한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규칙을 두고 성경필사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많은 노고와 헌신이 있었는가를 되새겨 보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정성껏 성경을 필사하며 생명을 걸고 말씀을 지켰기에, 우리가 이 귀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그 마음을 깨닫길 바라면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교인이 성경필사에 동참했습니다.
아직 성경필사를 해 보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소망교회 홈페이지에 ‘온라인 성경필사’란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재까지 여섯 분이 신‧구약을 다 쓰셨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이런 고백을 하신 분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필사하면서 통독과 필사를 같이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처음에는 시편, 잠언만 필사하려고 시작했는데 전권 필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1년이든 5년, 10년이든 기한을 잡아 성경필사를 실천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혹시 지금껏 한 번도 새벽기도에 참여해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새벽기도에 참석하자.’라고 결단하시면 좋겠습니다. 집이 먼 분들은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고 묵상하시며 신앙의 기쁨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읽는 책입니다.
성경은 참 신비로운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옛날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다른 책과 크게 구별되지도 않는 책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책이며, 신약은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우리가 성경을 이토록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이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초청하시는 초청장이 바로 성경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이천년 전에 쓰인 단순한 고대문서가 아닙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도 활자로 쓰인 문자 서적 정도로 보입니다. 다른 고대문학 작품처럼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읽을수록 살아 움직이는 책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한 문학 작품도, 역사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도 체험하게 됩니다. 그분과 대화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성경 속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음의 눈을 열어야 성경의 역사도 받아들일 수 있고, 말씀도 바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지혜의 영과 계시의 영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에베소서 1:17~18 중)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 영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또, 그 영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도 알게 해 줍니다.
여기에 ‘마음의 눈’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며 깨닫게 된 사실이 바로 이와 관련됩니다. 성경은 제게 감탄하는 능력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 성경에 이런 것도 있구나! 성경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도 있구나!’ 성경을 읽을수록 이렇게 감탄하며 감동하게 됩니다. 읽을수록 새로운 책, 읽고 또 읽고 싶은 책, 도대체 성경 말고 어떤 책이 이런 마음을 줍니까?
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합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도 보게 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아하!’라는 탄성도 터집니다. 이른바 ‘아하!’ 경험입니다. 놀람과 감탄의 경험입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존의 사고도 전복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은혜도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아하!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고백하게 되는 책이 성경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릴 때 말씀의 깊이도 더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깨달음이 어디서부터 얻어지는 것일까요? 바로 ‘마음’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마음’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이성’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성’이란 단어는 신약 시대에 와서야 헬라 문화와 접촉하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이성’ 즉 ‘누스’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마음’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인식론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가 마음입니다. 인간의 지성, 정서, 의지 전체가 동반된, 생각과 느낌과 영적인 갈망이 있는 그 자리가 마음입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번의 창조를 행하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흑암과 깊음 가운데 있는 이 우주에 빛이 있으라고 했던 ‘빛의 창조’입니다. 이를 통해 그 다음의 모든 창조도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창조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역사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어디에 비추어 주셨다고 합니까? 바로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어디에 비추셨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에도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변적인 것으로 멈춰 설 수 없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인식론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보적인 지식을 얻는 신앙의 차원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인격적인 만남의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이 내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 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처음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쭉 설명하시며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호통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24장 45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복음 24:45)
즉 마음이 열리니, 성경 말씀도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사랑’이 있다면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은 언제 열릴까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열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나오면, 마음 문이 열려 성경 전체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놓으신 것,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 그것은 인간이 더 이상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심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성령의 역사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을 미련한 것이라고 여기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뒤에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훼방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사실을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4 중)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혼동시킵니다.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성령이시여! 내게 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0)
‘성령’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비밀까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성경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지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 속에 내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안에 불순종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 속에도 내가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며 나갔던 믿음의 모습이 오늘 내게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때론 야곱처럼 이기적인 야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상도 내게 있습니다. 다윗을 그토록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았던 사울왕의 못난 모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처음엔 듣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말년엔 이방신을 섬기며 권력을 남용한 솔로몬의 모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 모든 성경인물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내 모습 속에 베드로의 모습이 있고,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도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도 있고, 마리아와 마르다 같은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으며, 혈루병을 앓은 여인처럼 간절한 소망과 연약함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의 사건과 사람을 통해 내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렇게 성경이 나의 책이 됩니다. 성경이 우리들의 책이 됩니다. 성경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죄악이 용서되는 경험도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병이 치유됩니다.
성경의 목표는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삶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신앙은 자라날 수 없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목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삼는 사람들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올해도 절반이 지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결심하길 원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더 사랑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뜻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선포하며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2: 12 ~ 16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신‧구약 성경필사에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18개 지구의 성도님들이 함께해 주셨고, 중‧고등부 학생들도 신약성경을 우리말과 영어로 필사했습니다. 대학부와 청년부, 청년플러스도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성경필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치를 성취하신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습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다’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성경필사 도중 일어난 에피소드 중에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 성도님은 스가랴서를 열심히 필사하셨습니다. 본문을 다 작성한 후 제일 윗칸에 ‘스가랴’라고 책 이름을 쓰는 것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스바냐’로 잘못 쓰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스가랴를 필사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성경필사를 끝낸 후 필사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구역모임에 가져가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이 돌아서다 그만 컵을 치고 말아 물이 그 위에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도 처음부터 다시 필사를 하셨습니다. 그밖에 다음과 같은 고백도 이어졌습니다.
교회창립40주년 기념으로 성경필사를 하며, 15년 전 고3인 나를 위해 1년 동안 성경 한 권을 필사하신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수능을 앞둔 딸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순간들. 1년 후 성경을 건네주시며 “얘야, 말씀이 힘이 되어 그 시간을 견디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평생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해라.”라고 격려하셨던 편지가 기억납니다. 엄마가 쓴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지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며 약속인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성경 쓰는 것을 보며 “손가락 안 아파? 그걸 왜 써” 하던 딸이 나중엔 스스로 “나도 써볼게.”라고 말해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남편도 제가 쓴 필사를 감수하면서 저보다 더 또박또박 성경을 읽어 나가니 정말 좋았습니다. 아들 딸 모두가 줄자를 대가며 틀린 글자를 찾느라 애쓰는 모습, “잘 썼네” 하던 칭찬들, 다 감사하고 뿌듯한 순간입니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한 번 써 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엄지손가락과 손목에 통증을 느끼며 어깨는 수차례 침을 맞아가며 필사를 끝냈습니다. 끝내고나니 후련함과 동시에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어깨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네가 정성을 다했구나.’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종이를 버리고 또 버리며 같은 내용을 반복해 써 내려갈 때면 성경에서 오는 은혜로 평안을 얻기보다 팔목의 시큰함에 괴로웠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은 종이를 검토하다 틀린 글자를 발견할 때면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틀릴수록, 다시 쓸수록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워졌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느끼며,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하며 대화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매일 수업 듣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하나님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자습시간을 활용해 필사를 시작하고부터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넬 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온유’를 갖춘 사람의 모습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써야 했기에, 아마 고단한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규칙을 두고 성경필사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많은 노고와 헌신이 있었는가를 되새겨 보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정성껏 성경을 필사하며 생명을 걸고 말씀을 지켰기에, 우리가 이 귀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그 마음을 깨닫길 바라면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교인이 성경필사에 동참했습니다.
아직 성경필사를 해 보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소망교회 홈페이지에 ‘온라인 성경필사’란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재까지 여섯 분이 신‧구약을 다 쓰셨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이런 고백을 하신 분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필사하면서 통독과 필사를 같이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처음에는 시편, 잠언만 필사하려고 시작했는데 전권 필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1년이든 5년, 10년이든 기한을 잡아 성경필사를 실천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혹시 지금껏 한 번도 새벽기도에 참여해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새벽기도에 참석하자.’라고 결단하시면 좋겠습니다. 집이 먼 분들은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고 묵상하시며 신앙의 기쁨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읽는 책입니다.
성경은 참 신비로운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옛날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다른 책과 크게 구별되지도 않는 책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책이며, 신약은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우리가 성경을 이토록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이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초청하시는 초청장이 바로 성경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이천년 전에 쓰인 단순한 고대문서가 아닙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도 활자로 쓰인 문자 서적 정도로 보입니다. 다른 고대문학 작품처럼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읽을수록 살아 움직이는 책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한 문학 작품도, 역사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도 체험하게 됩니다. 그분과 대화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성경 속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음의 눈을 열어야 성경의 역사도 받아들일 수 있고, 말씀도 바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지혜의 영과 계시의 영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에베소서 1:17~18 중)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 영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또, 그 영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도 알게 해 줍니다.
여기에 ‘마음의 눈’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며 깨닫게 된 사실이 바로 이와 관련됩니다. 성경은 제게 감탄하는 능력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 성경에 이런 것도 있구나! 성경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도 있구나!’ 성경을 읽을수록 이렇게 감탄하며 감동하게 됩니다. 읽을수록 새로운 책, 읽고 또 읽고 싶은 책, 도대체 성경 말고 어떤 책이 이런 마음을 줍니까?
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합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도 보게 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아하!’라는 탄성도 터집니다. 이른바 ‘아하!’ 경험입니다. 놀람과 감탄의 경험입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존의 사고도 전복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은혜도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아하!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고백하게 되는 책이 성경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릴 때 말씀의 깊이도 더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깨달음이 어디서부터 얻어지는 것일까요? 바로 ‘마음’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마음’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이성’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성’이란 단어는 신약 시대에 와서야 헬라 문화와 접촉하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이성’ 즉 ‘누스’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마음’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인식론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가 마음입니다. 인간의 지성, 정서, 의지 전체가 동반된, 생각과 느낌과 영적인 갈망이 있는 그 자리가 마음입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번의 창조를 행하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흑암과 깊음 가운데 있는 이 우주에 빛이 있으라고 했던 ‘빛의 창조’입니다. 이를 통해 그 다음의 모든 창조도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창조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역사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어디에 비추어 주셨다고 합니까? 바로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어디에 비추셨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에도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변적인 것으로 멈춰 설 수 없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인식론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보적인 지식을 얻는 신앙의 차원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인격적인 만남의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이 내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 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처음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쭉 설명하시며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호통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24장 45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복음 24:45)
즉 마음이 열리니, 성경 말씀도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사랑’이 있다면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은 언제 열릴까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열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나오면, 마음 문이 열려 성경 전체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놓으신 것,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 그것은 인간이 더 이상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심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성령의 역사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을 미련한 것이라고 여기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뒤에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훼방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사실을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4 중)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혼동시킵니다.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성령이시여! 내게 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0)
‘성령’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비밀까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성경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지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 속에 내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안에 불순종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 속에도 내가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며 나갔던 믿음의 모습이 오늘 내게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때론 야곱처럼 이기적인 야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상도 내게 있습니다. 다윗을 그토록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았던 사울왕의 못난 모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처음엔 듣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말년엔 이방신을 섬기며 권력을 남용한 솔로몬의 모습도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 모든 성경인물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내 모습 속에 베드로의 모습이 있고,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도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도 있고, 마리아와 마르다 같은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으며, 혈루병을 앓은 여인처럼 간절한 소망과 연약함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의 사건과 사람을 통해 내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렇게 성경이 나의 책이 됩니다. 성경이 우리들의 책이 됩니다. 성경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죄악이 용서되는 경험도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병이 치유됩니다.
성경의 목표는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삶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신앙은 자라날 수 없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목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삼는 사람들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올해도 절반이 지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결심하길 원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더 사랑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뜻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선포하며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7년 7월 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무지의 영, 깨달음의 영?”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59, 20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고전 2:12-16 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성경필사를 하면서 성도님들에게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15년 전, 고3인 딸을 위해 1년 동안 성경 한권을 필사하신 어머니가 떠오른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성경을 다시 써야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다시 써라’가 아니라 ‘말씀을 되새기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감사하며 다시 쓴 분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던 딸이 스스로 ‘나도 써 볼게요’하는 말을 들었다는 성도님도 있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다가, 자습시간을 활용해 필사를 하면서 매 순간마다 주님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는 왜 성경을 읽고 써야 할까요?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천년 전에 쓰인 고대 문서로 멈추어 있는 책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활자에 불과하고 그냥 문학적 작품에 그치지만, 성경을 읽고 쓰면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느덧 정보가 담겨있는 3인칭적인 대상에서 ‘나와 너’의 관계인 2인칭적 대상으로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이러한 성경은 마음으로 읽는 책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엡1:16-17). 마음의 눈은 어떻게 열릴까요? 사랑하면 열려집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놀람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있었구나.’ 내가 질문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질문하고 있으셨습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먼저 사랑을 받았구나. 히브리어에는 ‘이성’이란 단어가 따로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이성과 느낌과 영적인 갈망을 다 망라한 뜻입니다(고후4:6 ; 롬5:5).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정보적 지식에서 인격적 만남으로 나가야 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눅24:45). 하지만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육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고전2:14). 여기에는 영적 존재인 사탄의 훼방이 있습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방해하고 왜곡합니다(고후4:4).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써야합니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입니다(고전2:10).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속의 인물들이 곧 나의 모습이 됩니다. 글자로 쓰여 진 성경책이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됩니다. 성경 속에 내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속에 내가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했고 숨었습니다.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 다윗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야곱의 모습이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처음에는 바르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올라간 순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만한 모습이 내 안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베드로, 소경이었던 바디매오, 마리아와 마르다, 혈루병을 앓은 여인처럼 주님께 엎드립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예수님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말씀하시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고 쓰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누기
1. 성경을 일고, 필사하면서 받은 은혜의 에피소드들을 나누어 봅시다.
2. 성경을 읽고, 필사하면서 가장 감명 깊게 느낀 성경구절과 그 이유를 나누어 봅시다.
3. 성경이 무엇인지 나의 언어로 표현해 봅시다. “성경은 00이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책을 펴서 읽게 하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며 그 속에서 나를 다시 경험하며 주님 앞에 서게 하시옵소서. 말씀을 대할 때, 머리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가슴으로 내려가 마음의 문을 열어 새롭게 깨달으며 감사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