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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랑, 복받는 가정의 기초

전도서 9: 9

김지철 목사

2013.05.26

여러 문제들로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부를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 중에서 부부싸움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혼자 있어도 자기와의 싸움이 있는데, 둘이 함께 있으니 어떻게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한 결혼 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 약 칠 백여 명을 대상으로 ‘결혼 후 부부싸움을 가장 많이 일으킬 것 같은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생활비, 적금 등 경제적인 문제가 45.2%로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의 관계(33%), 회사동료, 친구들과의 관계(11%)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답이 52.6%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금전적인 문제(30%)와 육아문제(13%)가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결혼했다가 별거하거나 이혼한 사람들은 결혼 생활에서의 다툼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지난 5월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기혼 여성의 이혼과 별거 사유’에 따르면, 첫 번째가 경제적인 문제(26%)였습니다. 요사이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조사 대상자가 여자였음을 감안했을 때 남편의 문제로 보이는 배우자의 외도(24%), 성격차이(22%), 학대와 폭력(13%)이 뒤를 이었습니다.
또한 결혼 생활 기간에 따라 사유가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한 여성들에게는 경제문제가 가장 큰 이혼사유였고, 10년 미만의 여성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것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sbs의 한 퀴즈쇼에서 ‘50대 남편이 부부싸움 후 화해하는 방법 1위는?’이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보기는 세 가지였습니다. 1번, 적극적으로 아내의 집안일을 돕는다. 2번, 현찰을 주어서 아내의 화를 가라앉힌다. 3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답은 3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말 한 마디라도 하면 아내의 화를 더 돋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렸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있는 아내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곪아 터질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보다 우선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랑의 원칙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둔 것이 있습니까? 부부 사이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엇인가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식이 끼어들고, 부모가 끼어듭니다. 때로는 돈이, 취미가, 친구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부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자식을 돌본다고 하면서 남편을 두 번째로 밀어내면 모든 남편들은 섭섭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아무리 자식이 소중해도 아내가 자식만 쳐다보고 남편을 바라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직장을 핑계로 아내가 무시되고 소홀하게 여겨지면 아내는 속이 탑니다. 낚시, 골프 등의 취미가 아내나 남편보다 더 앞서게 되고, 게임에 미쳐서 친구를 따르거나 혹은 혼자만의 세계 속에 빠져들게 되면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신앙조차도 그렇습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봉사할 때에는 괜찮지만, 아내나 남편이 홀로 교회봉사를 하면서 상대방을 소홀하게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하나님이 첫 번째인 것은 분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 생애의 우선적인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교회일을 한다고 하면서 아내를 돌보지 않고, 남편에게 소홀히 하고 가정일을 미루게 되면, 그때는 신앙도 상하게 되고, 가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함께 믿으면서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 모두의 우선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갈등이 전혀 없어야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행복에는 8:2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10점을 만점으로 봤을 때, 행복에 대한 만족이 9점, 10점인 사람보다 오히려 7점이나 8점을 기록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며 교육과 성취 수준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조금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이 더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긍정과 부정의 황금비율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 비율이 3:1일 때 삶이 축복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즉, 부정적인 정서를 한 번 경험할 때, 세 번 정도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삶이 축복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은 불행이 곁든 행복이, 작은 불만이 있는 만족이 우리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서 약간의 다툼이 있는 것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 “여보, 내 의견은 이런데 당신은 어때요?”라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러한 작은 다툼이 건전하고 건강한 부부의 삶을 파괴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여러분은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100점을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60점을 받으면 꽤 괜찮은 남편, 꽤 괜찮은 아내 아닐까요? 상대방에게 70점 혹은 80점까지 줄 수 있다면, 나머지 모자란 부분들은 서로 격려하고 도우면서 부부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인생은 허무하다. 헛되고, 헛되니 도대체 해 아래에서 새것이 어디 있나. 모든 것이 헛되다.”고 소리쳤던 전도서 기자가, 그래도 인생에 낙(樂)이 몇 가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하나가 바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면서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도서 9:9)

전도서 기자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함께 즐거워하면서 살아라. 그것이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몫이니, 놓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혹시 옆에 아내가 있다는 것이 부담입니까? 도무지 어쩔 수 없어서 남편과 같이 살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의 많은 축복 중 하나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젊을 때의 열정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 열정과 설렘은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사랑의 호르몬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 사랑의 호르몬만으로 우리가 상대편을 사랑하려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잘못된 기대가 부부 사이를 흔듭니다.

종종 젊은 부부들이 다투는 경우를 봅니다. 그들 각자는 모두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자녀들입니다. 아내의 경우,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딸입니다. 얼마나 복을 받은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남편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아버지처럼 날 사랑하지 못하느냐고,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했는데 도대체 당신의 사랑은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남편에게 다그칩니다.
또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내에게 요구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위해 헌신했는지 아느냐고, 이제 당신이 나를 위해서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내리사랑이 아닙니다. 일방통행의 사랑도 아닙니다. 그것은 쌍방의 사랑입니다. 즉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섬기는 사랑이 부부의 사랑인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똑같이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의 힘이 소진되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충전이 필요한데 충전이 되지 않아서 아내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싶어도 마음이 동하지를 않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듯 어디에 갖다 붙여 놓기면 하면 자동으로 충전이 되면 좋을 텐데, 도대체 이 사랑의 마음이란 것은 충전이 잘 되지 않아서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에로스적인 뜨거운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헌신해야 되는데 헌신하기가 싫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싫고, 그저 귀찮습니다.
또 상대방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생각도 알고, 말도 알고, 습관, 몸, 어느 것 하나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에 설렘이 사라지고 신선함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너무 피곤합니다. 남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무엇부터 할까요? tv를 켜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스포츠, 게임 등을 켜 놓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남자들의 대체적인 습관입니다.
아내들은 또 어떠합니까? 가정주부는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에 싫증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부부가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젊을 때의 알콩달콩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넉넉한 사랑으로 내 아내와 남편을 포용할 수 있을까요?

행동이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부부의 사랑이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연인의 사랑에서 친구의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사랑에서 공감적인 사랑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금세 저기에 내 아내, 내 남편이 있구나 알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만족감이 차오릅니다. 여기까지 내 옆에 함께 있어준 것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생떽쥐베리는,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친구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젊을 때는 마주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마주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대신 함께 같은 곳을 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같은 비전과 꿈, 목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로는 마주보기도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부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랑스러워야 사랑할 수가 있지, 느낌이 오지 않는다며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는 그냥 보기만 하면 사랑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살아나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는 사랑하겠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40년, 50년 부부생활을 하신 분들은 무조건 존경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한 남자, 한 여자와 40년, 50년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때때로 그 분들께 묻습니다. 어떻게 40년, 50년의 긴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까? 인생의 거친 파도가 높이 치고, 무서운 바람이 불기도 했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때로는 상처주고, 상처 받은 적이 없습니까? 자녀의 양육문제로 다툰 적은 없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위기를 겪은 적은 없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는 한결같은 대답이 있습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요, 내가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이요”라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 함께 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울 때도 고울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약속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헌신 속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남편들에게 부탁합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결혼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잠언서 18장 22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 18:22)

결혼하여 아내를 얻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들에게 다시 아내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하면, ‘아니 마음도 안 생기는데 무슨 사랑을 하냐, 마음에도 없으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건 위선이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잠그고 물러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느낌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움직이지 않아도 남편들이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의 행동을 해 보면, 느낌과 감정까지 동반되어 내 것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 때도,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고 전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역사가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내를 위해서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도 해 보고, 청소도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들어간 선물을 준비해 보십시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아내의 손을 만지고 아내 등을 두드리면서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고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그러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부부관계를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내 말에 동의한다’ 생각하면서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이 담겨진 언어로 고맙다고 해 보십시오.

가정의 회복이 모든 복의 시작입니다.

성경에는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마구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종처럼 부리라는 뜻도 결코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몸을 내건 것처럼 아내를 위해서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아내가 그러한 남편을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지킬 거야. 내가 당신과 함께할게.’라는 마음으로 아내를 붙잡으세요. 그래야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첫째, 남편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모든 남자들은 자존감 하나 붙잡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남편의 자존감을 긁어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남편을 최고의 남편, 소중한 남편으로 알고 남편을 세워주세요. 남편이 용기를 갖도록 살펴주는 것이 지혜로운 아내의 일입니다.
또 하나 부탁을 드리자면 잔소리를 너무 길게 하지 마세요. 잔소리 좋아하는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잔소리 대신 감정을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여보, 오늘 내 마음이 슬퍼. 내 마음이 아파.” 그래서 남편이 이유를 물어보도록 감정을 짤막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남편을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세요. ‘이 사람, 내가 아니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십시오. 때로는 큰 아들처럼 가슴에 안으세요. 가장 권위적인 남편도 때로는 아들처럼 안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들을 안듯이 다독다독 해 주기만 해도 남편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서로를 초청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남편들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하고 아내를 초청해 보십시오. 또 아내들은 그동안 열심히 장 보면서 아껴두었던 돈으로 남편을 초청해 보십시오. 남편들도 아내에게 초청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나와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고 고백하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 복을 받아야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가정이 복을 받아야 우리 공동체가 복을 받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가정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모든 가정에 이 놀라운 사랑의 복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축복을 함께 나누는 우리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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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9: 9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여러 문제들로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부를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 중에서 부부싸움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혼자 있어도 자기와의 싸움이 있는데, 둘이 함께 있으니 어떻게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한 결혼 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 약 칠 백여 명을 대상으로 ‘결혼 후 부부싸움을 가장 많이 일으킬 것 같은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생활비, 적금 등 경제적인 문제가 45.2%로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의 관계(33%), 회사동료, 친구들과의 관계(11%)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답이 52.6%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금전적인 문제(30%)와 육아문제(13%)가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결혼했다가 별거하거나 이혼한 사람들은 결혼 생활에서의 다툼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지난 5월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기혼 여성의 이혼과 별거 사유’에 따르면, 첫 번째가 경제적인 문제(26%)였습니다. 요사이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조사 대상자가 여자였음을 감안했을 때 남편의 문제로 보이는 배우자의 외도(24%), 성격차이(22%), 학대와 폭력(13%)이 뒤를 이었습니다.
또한 결혼 생활 기간에 따라 사유가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한 여성들에게는 경제문제가 가장 큰 이혼사유였고, 10년 미만의 여성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것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sbs의 한 퀴즈쇼에서 ‘50대 남편이 부부싸움 후 화해하는 방법 1위는?’이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보기는 세 가지였습니다. 1번, 적극적으로 아내의 집안일을 돕는다. 2번, 현찰을 주어서 아내의 화를 가라앉힌다. 3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답은 3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말 한 마디라도 하면 아내의 화를 더 돋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렸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있는 아내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곪아 터질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보다 우선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랑의 원칙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둔 것이 있습니까? 부부 사이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엇인가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식이 끼어들고, 부모가 끼어듭니다. 때로는 돈이, 취미가, 친구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부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자식을 돌본다고 하면서 남편을 두 번째로 밀어내면 모든 남편들은 섭섭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아무리 자식이 소중해도 아내가 자식만 쳐다보고 남편을 바라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직장을 핑계로 아내가 무시되고 소홀하게 여겨지면 아내는 속이 탑니다. 낚시, 골프 등의 취미가 아내나 남편보다 더 앞서게 되고, 게임에 미쳐서 친구를 따르거나 혹은 혼자만의 세계 속에 빠져들게 되면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신앙조차도 그렇습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봉사할 때에는 괜찮지만, 아내나 남편이 홀로 교회봉사를 하면서 상대방을 소홀하게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하나님이 첫 번째인 것은 분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 생애의 우선적인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교회일을 한다고 하면서 아내를 돌보지 않고, 남편에게 소홀히 하고 가정일을 미루게 되면, 그때는 신앙도 상하게 되고, 가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함께 믿으면서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 모두의 우선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갈등이 전혀 없어야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행복에는 8:2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10점을 만점으로 봤을 때, 행복에 대한 만족이 9점, 10점인 사람보다 오히려 7점이나 8점을 기록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며 교육과 성취 수준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조금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이 더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긍정과 부정의 황금비율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 비율이 3:1일 때 삶이 축복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즉, 부정적인 정서를 한 번 경험할 때, 세 번 정도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삶이 축복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은 불행이 곁든 행복이, 작은 불만이 있는 만족이 우리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서 약간의 다툼이 있는 것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 “여보, 내 의견은 이런데 당신은 어때요?”라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러한 작은 다툼이 건전하고 건강한 부부의 삶을 파괴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여러분은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100점을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60점을 받으면 꽤 괜찮은 남편, 꽤 괜찮은 아내 아닐까요? 상대방에게 70점 혹은 80점까지 줄 수 있다면, 나머지 모자란 부분들은 서로 격려하고 도우면서 부부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인생은 허무하다. 헛되고, 헛되니 도대체 해 아래에서 새것이 어디 있나. 모든 것이 헛되다.”고 소리쳤던 전도서 기자가, 그래도 인생에 낙(樂)이 몇 가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하나가 바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면서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도서 9:9)

전도서 기자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함께 즐거워하면서 살아라. 그것이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몫이니, 놓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혹시 옆에 아내가 있다는 것이 부담입니까? 도무지 어쩔 수 없어서 남편과 같이 살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의 많은 축복 중 하나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젊을 때의 열정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 열정과 설렘은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사랑의 호르몬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 사랑의 호르몬만으로 우리가 상대편을 사랑하려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잘못된 기대가 부부 사이를 흔듭니다.

종종 젊은 부부들이 다투는 경우를 봅니다. 그들 각자는 모두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자녀들입니다. 아내의 경우,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딸입니다. 얼마나 복을 받은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남편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아버지처럼 날 사랑하지 못하느냐고,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했는데 도대체 당신의 사랑은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남편에게 다그칩니다.
또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내에게 요구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위해 헌신했는지 아느냐고, 이제 당신이 나를 위해서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내리사랑이 아닙니다. 일방통행의 사랑도 아닙니다. 그것은 쌍방의 사랑입니다. 즉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섬기는 사랑이 부부의 사랑인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똑같이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의 힘이 소진되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충전이 필요한데 충전이 되지 않아서 아내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싶어도 마음이 동하지를 않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듯 어디에 갖다 붙여 놓기면 하면 자동으로 충전이 되면 좋을 텐데, 도대체 이 사랑의 마음이란 것은 충전이 잘 되지 않아서 고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에로스적인 뜨거운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헌신해야 되는데 헌신하기가 싫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싫고, 그저 귀찮습니다.
또 상대방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생각도 알고, 말도 알고, 습관, 몸, 어느 것 하나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에 설렘이 사라지고 신선함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너무 피곤합니다. 남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무엇부터 할까요? tv를 켜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스포츠, 게임 등을 켜 놓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남자들의 대체적인 습관입니다.
아내들은 또 어떠합니까? 가정주부는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에 싫증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부부가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젊을 때의 알콩달콩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넉넉한 사랑으로 내 아내와 남편을 포용할 수 있을까요?

행동이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부부의 사랑이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연인의 사랑에서 친구의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사랑에서 공감적인 사랑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금세 저기에 내 아내, 내 남편이 있구나 알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만족감이 차오릅니다. 여기까지 내 옆에 함께 있어준 것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생떽쥐베리는,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친구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젊을 때는 마주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마주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대신 함께 같은 곳을 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같은 비전과 꿈, 목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로는 마주보기도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부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랑스러워야 사랑할 수가 있지, 느낌이 오지 않는다며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는 그냥 보기만 하면 사랑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살아나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는 사랑하겠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40년, 50년 부부생활을 하신 분들은 무조건 존경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한 남자, 한 여자와 40년, 50년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때때로 그 분들께 묻습니다. 어떻게 40년, 50년의 긴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까? 인생의 거친 파도가 높이 치고, 무서운 바람이 불기도 했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때로는 상처주고, 상처 받은 적이 없습니까? 자녀의 양육문제로 다툰 적은 없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위기를 겪은 적은 없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는 한결같은 대답이 있습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요, 내가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이요”라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 함께 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울 때도 고울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약속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헌신 속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남편들에게 부탁합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결혼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잠언서 18장 22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 18:22)

결혼하여 아내를 얻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들에게 다시 아내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하면, ‘아니 마음도 안 생기는데 무슨 사랑을 하냐, 마음에도 없으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건 위선이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잠그고 물러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느낌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움직이지 않아도 남편들이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의 행동을 해 보면, 느낌과 감정까지 동반되어 내 것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 때도,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고 전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역사가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내를 위해서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도 해 보고, 청소도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들어간 선물을 준비해 보십시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아내의 손을 만지고 아내 등을 두드리면서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고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그러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부부관계를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내 말에 동의한다’ 생각하면서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이 담겨진 언어로 고맙다고 해 보십시오.

가정의 회복이 모든 복의 시작입니다.

성경에는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마구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종처럼 부리라는 뜻도 결코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몸을 내건 것처럼 아내를 위해서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아내가 그러한 남편을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지킬 거야. 내가 당신과 함께할게.’라는 마음으로 아내를 붙잡으세요. 그래야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첫째, 남편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모든 남자들은 자존감 하나 붙잡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남편의 자존감을 긁어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남편을 최고의 남편, 소중한 남편으로 알고 남편을 세워주세요. 남편이 용기를 갖도록 살펴주는 것이 지혜로운 아내의 일입니다.
또 하나 부탁을 드리자면 잔소리를 너무 길게 하지 마세요. 잔소리 좋아하는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잔소리 대신 감정을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여보, 오늘 내 마음이 슬퍼. 내 마음이 아파.” 그래서 남편이 이유를 물어보도록 감정을 짤막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남편을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세요. ‘이 사람, 내가 아니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십시오. 때로는 큰 아들처럼 가슴에 안으세요. 가장 권위적인 남편도 때로는 아들처럼 안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들을 안듯이 다독다독 해 주기만 해도 남편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서로를 초청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남편들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하고 아내를 초청해 보십시오. 또 아내들은 그동안 열심히 장 보면서 아껴두었던 돈으로 남편을 초청해 보십시오. 남편들도 아내에게 초청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나와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고 고백하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 복을 받아야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가정이 복을 받아야 우리 공동체가 복을 받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가정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모든 가정에 이 놀라운 사랑의 복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축복을 함께 나누는 우리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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