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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의 영, 감사의 영? – 성령과 악령 22 –

창세기 28: 15 ~ 22

김지철 목사

2017.11.19

감사하면 기쁨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본당 앞쪽에 ‘감사의 나무’가 세워져 있습니다. 로비 바깥 양편에 게시했는데,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제목을 써 붙일 수 있습니다. 아직 써 붙이지 못하셨다면, 예배 후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그러나 반대도 가능합니다. 감사하면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기쁨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다보니 영혼에 기쁨이 솟구치는 것도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목사인 저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러 괴로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책임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게 힘들고 어렵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말 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어떤 말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낙심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해 가는 여정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그 상황과 시간을 이겨 나가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수학을 잘하는 비결 중 하나가 공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수학 공식을 외우고 있으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삶에도 영적인 공식들이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공식 하나가 ‘영적 부등호 공식’입니다. 이것은 무슨 공식일까요? 다음과 같은 공식입니다. 살다 보면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데, 이것들은 단순하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근심과 걱정보다 더 큰 기쁨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스트레스 역시 쉽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보다 더 큰 평안이 있으면 스트레스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억울함과 불평, 원망 등이 찾아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분노와 불평, 원망이 틈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기쁨이 생기는 것일까요? 어떻게 내 마음에 평안이 깃들까요? 어떻게 해야 포용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요? 단연코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 기쁨과 평안이 우리 마음에 찾아옵니다. 내 마음에 감사가 생기면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행복을 만듭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낙관주의자입니다.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을 붙들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인도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기에, 언제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몸과 마음도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기적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감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수많은 감사의 내용을 허락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셨고, 새 희망을 주셨으며, 기쁨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노래를 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게 허락된 것들을 당연시합니다. 내게 주신 것들을 욕망 안에 가두고, 내게 없는 것에 대해서만 불평합니다. 이는 감사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허락하려 하시는데, 우리는 늘상 불평만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될까요?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될 때, 내게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욕망의 자리가 비워질 때 하나님이 그 자리에 들어오실 수 있고, 우리 인생에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이 딱 그랬습니다. 야곱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가 꽉 붙잡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상실자가 된 야곱, 바로 그때 야곱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돌을 베개 삼고 하늘을 천장 삼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를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당시 야곱의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야곱이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혔을 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 어머니의 신앙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몰랐을 뿐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벧엘 체험을 우리는 어디서 경험할까요? 예수님을 통해 경험합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내 속의 모든 절망과 아픔을 받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가 기쁨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입니다. 도망자, 방랑자, 패배자, 그것이 그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실한 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 환상이 임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중 12절 말씀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세기 28:12)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단절돼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장면입니다.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사다리가 이어지는데, 거기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구나!’
우리 삶의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인생이 그저 나에서 끊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것, 그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것도 창조주이자 구원자, 약속의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 바로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 영혼은 감사로 뛰놀게 됩니다.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구나.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존재가 바로 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영혼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눈으로만 이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귀로도 들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세기 28:13)

아브라함에게 위와 같은 언약을 해 주셨고, 이삭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주셨는데, 마침내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이 언약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합니다.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행동하시며, 자신의 뜻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칭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이 말씀을 깨닫게 되는 건, 내 인생이 정말 수고로울 때입니다. 내 인생에 무거운 짐이 있고 사는 것이 힘들 때,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정신을 회복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안식일이란 무슨 날입니까? 쉼의 날, 평안의 날입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안식일 법 준수에만 목을 맸습니다. 안식일 법으로 사람들을 협박했습니다. “안식일 안 지켰느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며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이셨습니다. 안식일에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치유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몸도 쉬고 영혼도 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누리는 날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면 무엇이든지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그동안 억눌려 있었습니다. 내 안에 응어리진 것이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습니다. 내 모습을 내가 압니다. 내 못난 모습, 탐욕스런 모습, 정욕에 찌든 모습, 이기심, 교만, 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것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근심과 걱정이 나를 억누르고 있사오니 하나님의 평안을 허락해 주옵소서. 내가 짊어지고 있는 영혼의 짐, 마음의 짐, 육체의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습니다. 주께서 치유해 주시고 은총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면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하면서 알게 됩니다. 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왜 고난당하시며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는지…. 십자가 속에 우리의 모든 죄악이 있습니다. 우리의 짐, 탄식, 신음, 고통, 질병, 모든 것이 주님의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새 생명, 자유와 감사의 은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늘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이 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우리에게 복입니다. 감사가 충만한 분들도 이런 고백을 하십니다. “제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감사는 했어도 형식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나서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도 감사하고, 푸른 하늘도 감사하며,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심장이 뛰는 것도 감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감사하고,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토해 내시고 인생을 마감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지막 말은 하나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 주님 앞에 서겠노라고 고백할 것 같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 홍인종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감사의 노래를 작사하셨습니다. 그 가사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송>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하실지라도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까? 야곱은 선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그분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다음과 같이 약속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22)
야곱은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십의 일조란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감사를 받으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십일조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감사,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이끄는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기쁨과 영원한 축복이 임합니다. 이 감사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길, 또 감사로 충만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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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 15 ~ 22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감사하면 기쁨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본당 앞쪽에 ‘감사의 나무’가 세워져 있습니다. 로비 바깥 양편에 게시했는데,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제목을 써 붙일 수 있습니다. 아직 써 붙이지 못하셨다면, 예배 후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그러나 반대도 가능합니다. 감사하면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기쁨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다보니 영혼에 기쁨이 솟구치는 것도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목사인 저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러 괴로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책임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게 힘들고 어렵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말 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어떤 말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낙심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해 가는 여정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그 상황과 시간을 이겨 나가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수학을 잘하는 비결 중 하나가 공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수학 공식을 외우고 있으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삶에도 영적인 공식들이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공식 하나가 ‘영적 부등호 공식’입니다. 이것은 무슨 공식일까요? 다음과 같은 공식입니다. 살다 보면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데, 이것들은 단순하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근심과 걱정보다 더 큰 기쁨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스트레스 역시 쉽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보다 더 큰 평안이 있으면 스트레스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억울함과 불평, 원망 등이 찾아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분노와 불평, 원망이 틈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기쁨이 생기는 것일까요? 어떻게 내 마음에 평안이 깃들까요? 어떻게 해야 포용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요? 단연코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 기쁨과 평안이 우리 마음에 찾아옵니다. 내 마음에 감사가 생기면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행복을 만듭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낙관주의자입니다.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을 붙들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인도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기에, 언제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몸과 마음도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기적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감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수많은 감사의 내용을 허락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셨고, 새 희망을 주셨으며, 기쁨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노래를 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게 허락된 것들을 당연시합니다. 내게 주신 것들을 욕망 안에 가두고, 내게 없는 것에 대해서만 불평합니다. 이는 감사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허락하려 하시는데, 우리는 늘상 불평만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될까요?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될 때, 내게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욕망의 자리가 비워질 때 하나님이 그 자리에 들어오실 수 있고, 우리 인생에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이 딱 그랬습니다. 야곱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가 꽉 붙잡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상실자가 된 야곱, 바로 그때 야곱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돌을 베개 삼고 하늘을 천장 삼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를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당시 야곱의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야곱이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혔을 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 어머니의 신앙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몰랐을 뿐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벧엘 체험을 우리는 어디서 경험할까요? 예수님을 통해 경험합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내 속의 모든 절망과 아픔을 받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가 기쁨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입니다. 도망자, 방랑자, 패배자, 그것이 그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실한 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 환상이 임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중 12절 말씀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세기 28:12)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단절돼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장면입니다.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사다리가 이어지는데, 거기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구나!’
우리 삶의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인생이 그저 나에서 끊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것, 그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것도 창조주이자 구원자, 약속의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 바로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 영혼은 감사로 뛰놀게 됩니다.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구나.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존재가 바로 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영혼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눈으로만 이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귀로도 들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세기 28:13)

아브라함에게 위와 같은 언약을 해 주셨고, 이삭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주셨는데, 마침내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이 언약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합니다.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행동하시며, 자신의 뜻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칭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이 말씀을 깨닫게 되는 건, 내 인생이 정말 수고로울 때입니다. 내 인생에 무거운 짐이 있고 사는 것이 힘들 때,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정신을 회복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안식일이란 무슨 날입니까? 쉼의 날, 평안의 날입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안식일 법 준수에만 목을 맸습니다. 안식일 법으로 사람들을 협박했습니다. “안식일 안 지켰느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며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이셨습니다. 안식일에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치유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몸도 쉬고 영혼도 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누리는 날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면 무엇이든지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그동안 억눌려 있었습니다. 내 안에 응어리진 것이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습니다. 내 모습을 내가 압니다. 내 못난 모습, 탐욕스런 모습, 정욕에 찌든 모습, 이기심, 교만, 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것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근심과 걱정이 나를 억누르고 있사오니 하나님의 평안을 허락해 주옵소서. 내가 짊어지고 있는 영혼의 짐, 마음의 짐, 육체의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습니다. 주께서 치유해 주시고 은총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면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하면서 알게 됩니다. 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왜 고난당하시며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는지…. 십자가 속에 우리의 모든 죄악이 있습니다. 우리의 짐, 탄식, 신음, 고통, 질병, 모든 것이 주님의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새 생명, 자유와 감사의 은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늘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이 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우리에게 복입니다. 감사가 충만한 분들도 이런 고백을 하십니다. “제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감사는 했어도 형식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나서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도 감사하고, 푸른 하늘도 감사하며,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심장이 뛰는 것도 감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감사하고,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토해 내시고 인생을 마감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지막 말은 하나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 주님 앞에 서겠노라고 고백할 것 같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 홍인종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감사의 노래를 작사하셨습니다. 그 가사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송>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하실지라도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까? 야곱은 선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그분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다음과 같이 약속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22)
야곱은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십의 일조란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감사를 받으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십일조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감사,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이끄는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기쁨과 영원한 축복이 임합니다. 이 감사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길, 또 감사로 충만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11월 1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불평의 영, 감사의 영”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98장, 29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28:15-22 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예배당 앞에 감사의 나무를 세웠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감사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감사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붙이지 못하신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공 때문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틀리지 않습니다. 즉, 감사하기 때문에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설교의 요약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잠을 잡니다. 무엇인가를 먹습니다. 멍을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학 공식과 같이 삶의 공식이 있습니다. 바로 부등호입니다.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크다는 공식입니다. 근심과 걱정보다 기쁨이 더 크면 , 스트레스보다 평안한 마음이 더 크면 됩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치유도 행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받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주시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면합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봅시다. 야곱은 자신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일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야망, 자신의 욕심으로 꽉 움켜잡았던 것들을 다 놓아버리자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이미 야곱의 인생을 지켜보셨습니다(16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그동안 몰랐을 뿐입니다. 야곱에게는 벧엘이라는 삶의 체험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는 예수체험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베드로가 되었고,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바울도, 혈루병 앓은 여인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내 삶에 찾아오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종교주의자들은 안식일을 죄로 협박받는 날, 삶을 위협하는 억압의 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였습니다(마11:28). 그래서 주일이란, 몸과 영혼이 쉼을 얻는 날,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로서의 명예와 권리를 주셨습니다. 종이 아니라 자녀처럼 평안을 누리며 당당하게 살라고 우리에게 생명의 에너지, 부활의 에너지를 부으셨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분들을 보면, 많은 것을 갖고 있을 때는 잘 감사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에 정말 감사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은 본래 벌거벗고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우리 인생을 마감합니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감사하면서 살았는가?’ 이 뿐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홍인종 교수님이 작사한 아주 흥미있는 노래가 있어 소개합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 하실지라도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 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감사는 생명입니다. 감사는 기쁨입니다. 감사는 은혜입니다. 감사는 치유입니다. 감사는 축복입니다. 감사는 믿음입니다. 감사할 줄 알면 사랑할 줄도 압니다. 감사는 사랑의 시작이고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변했나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22절). 야곱은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예물, 십일조를 드립니다. 십일조란 감사하는 자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누기

1.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평소 나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나요?

2. 2017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감사한 일(승리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3. 2017년 비록 감사의 형편은 아니지만, 심지어는 고난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결단한다면, 무엇을 놓고 감사를 결단하시겠습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제는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 또 감사하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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