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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지혜

느헤미야 2: 1 ~ 10

김지철 목사

2010.06.27

신뢰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을 썼던 스티븐 코비의 아들인 스티븐 M. R 코비가 「신뢰의 속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신뢰(Trust)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경제학의 중심 개념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신뢰의 경제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의 명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인간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떨어지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한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면 목표를 향한 속도는 더 빨라지고 비용은 점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신은 대단한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가 신용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용도가 높을 때는 돈을 빌릴 수 있고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용도가 떨어지면 어느 나라도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 파산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새롭고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서도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직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용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신뢰를 강화하는 데에는 기술과 더불어 10년 동안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CEO의 말입니다. “신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신뢰는 성공하기 위해 얻으려고 노력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부부관계이든, 친구관계이든, 혹은 사회적인 관계이든, 신뢰 없이 성공하는 인간관계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기업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매일매일 경험합니다. 신뢰가 깨어지면 회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뢰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것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신뢰를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신뢰를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도 신뢰를 의심 받을 만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조국이 고통 받고 자기 백성이 피폐해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모든 것을 아뢰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슬픔 속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왕이 먼저 느헤미야의 표정에서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은 위기였습니다.
상하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평안의 원칙은 밑의 사람이 위의 사람의 심기를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람이 먼저 밑의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흥을 돋아야 할 신하가 연회장에서 슬픈 얼굴로 분위기를 망쳐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칫하면 왕에 대한 안목적인 도전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평소에 느헤미야는 늘 명랑했고 밝았습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왕을 모시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왕은 느헤미야가 슬픔과 근심이 많은 얼굴로 있는 것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헤미야 2:2)

느헤미야는 그의 마음이 들켰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성경은 느헤미야가 왕이 자신을 오해할까봐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왕의 명령에 거스르는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 2:5)

원래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사업은 느헤미야가 오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짓게 되면 페르시아 왕국에 대해서 저항할 것이라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 왕은 즉위하자마자 곧장 성벽 쌓는 것을 중단시킨 것이 에스라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느헤미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일로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야겠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명령에 대한 번복이었습니다.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목숨을 걸고 이것을 왕에게 요청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때 왕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는 몇 가지 좋은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왕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우리 삶에 신뢰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이 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없는 사람이 잘못을 하면 그 잘못은 크게 확대되어 비난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신뢰에는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품입니다. 그 사람이 신실한가? 일관성이 있는가? 그와 오랫동안 사귀어봤는데 괜찮은가? 이것이 신뢰를 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입니다. 성품이 신뢰할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맡겨진 일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수행하는가에 따라 신뢰가 쌓입니다. 느헤미야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왕이 옆에서 지켜보니 그의 모든 행동에 의심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느헤미야가 수심에 찬 모습을 보면서도 의심하는 말이 아니라 신뢰하는 말을 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 2:4)

왕은 느헤미야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원하는 것, 네가 요청하는 것을 들어줄 테니 다 말해보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 2:6)

또한 왕이 느헤미야에게 말합니다. “너와 함께 있음이 나에게 든든하구나. 어쩔 수 없이 네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만 빨리 돌아오너라. 네가 옆에 있어야 나는 좋단다.” 느헤미야를 오래 동안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섭섭해 하는 왕의 태도가 여기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왕이 신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충성스러운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왕에게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혜로운 말을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 느헤미야가 지니고 있었던 귀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느헤미야 2:3)

그는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왕에게 호소합니다. 이때 자신이 가야 할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 않고,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면 정치적, 종교적 도시가 됩니다. 그는 가능하면 자신의 왕 앞에서 정치적 이슈를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을 그리워하며 바르게 모시려는 효성의 마음으로 왕의 마음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읍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졌음에 안타까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의 대화법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대화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너-대화법이 있는가 하면 나-대화법이 있습니다. 너-대화법이란 상대방을 중심으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느 날 늦게 들어왔습니다. 부모가 화가 치밀어서 자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왜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 오냐? 너는 왜 맨 날 이 모양이냐? 너는 부모 말을 콧등으로 듣고 있느냐?” 자녀를 향해서 야단과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것이 너-대화법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나-대화법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엄마는 네가 늦게까지 안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자녀가 늦게 들어옴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아픈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갑자기 화를 내는 부모님을 향해 같이 화를 냅니다. 그러나 후자는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부부의 대화 가운데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일찍 집에 들어올 것을 요청할 때, “여보, 오늘은 집에 일찍 좀 들어오세요.”라고 하는 방법이 너-대화법입니다. 그러나 나-대화법은 “여보, 내가 오늘 당신이 좋아하는 식사를 맛있게 준비했으니까 들어보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대화법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때 공감대가 점점 넓어집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것이 바벨론 탓이요 페르시아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 백성이 아파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아프다며 왕을 향해 나아갔을 때 왕도 충분히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느헤미야가 갖고 있던 세 번째 지혜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자기의 본분을 알았습니다. 왕의 모습을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가 있었습니다.
3절에 보면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하며 왕의 이름을 높입니다. 5절에서는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종이요 왕이 허락해야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왕의 권한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6절과 7절에서도 나타납니다.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 2:6)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느헤미야 2:7)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자신의 직분을 알고, 왕의 배려 하에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왕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옛날처럼 계급사회는 아닙니다. 모든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들어가면 명령해야할 위치에 서있을 때가 있습니다. 동료로서 함께 의논해야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위의 상사의 말을 순종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명령하는 위치에 서서 모든 일들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먼저 종으로서 왕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왕 앞에 나아가 지혜로운 말로 왕의 환심을 사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가지고 왕 앞에 섰을 때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순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 2:4)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면 되겠느냐? 청하면 내가 다 들어주겠다.” 이때 놀랍게도 느헤미야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셨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깨닫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순간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묵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눈을 뜨고 기도했을까요? 눈을 감고 기도했을까요? 눈을 뜨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눈을 감았다면 왕이 또 다시 걱정했을 것입니다. 아마 1~2초, 길어야 3~4초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제게 할 말을 주세요! 제게 지혜를 주세요! 제게 용기를 주세요! 제게 담대함을 주세요! 하나님, 지금 왕의 마음이 움직이게 해주세요!’ 그는 이렇게 순간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화살기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화살기도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다가도 드라이브를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에도 화살기도를 해보십시오. 내가 무언가를 급하게 결정해야 할 때에도 화살기도를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움직이고 계신다! 하나님이 저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 역사를 인도하고 계신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화살기도를 드리십시오.
느헤미야는 왕이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바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화살기도를 드렸습니다. 자녀가 급할 때, “엄마야!”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하나님께 순간적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기 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기도보다 더 강력한 기도입니다. 화살을 쏘듯이 짧지만 강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을 때 담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도울 것이다!’ 그래서 왕을 향해서 말합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에 있는 저 성읍에 나를 보내주십시오! 이것을 허락하신다면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조서를 써 보내서 나를 무사하게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삼림감독에게 조서를 써 보내서 성문을 쌓고 내 집을 짓는데 저 나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느헤미야는 자신이 준비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왕 앞에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이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종이 왕의 은혜를 받았다고 왕이 여기시거든.” 이때 왕은 예전에 자신이 한 번 결정한 사항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모든 요청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 2:8)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애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내가 들어주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이 기도는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느헤미야에게는 있었습니다. “하나님, 왕이 저를 보내도록 해주세요! 제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해주세요!” 그에게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 구했습니다.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오직 이것 하나만 구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참 좋구나! 네가 내 마음을 알았구나! 나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말을 듣는 마음을 가졌으니 너는 참된 지도자다! 내가 은과 금과 장수와 명예와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이것만은 내게 주세요!”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소원이어야 합니다. 이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 기도를 제게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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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 1 ~ 10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신뢰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을 썼던 스티븐 코비의 아들인 스티븐 M. R 코비가 「신뢰의 속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신뢰(Trust)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경제학의 중심 개념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신뢰의 경제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의 명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인간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떨어지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한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면 목표를 향한 속도는 더 빨라지고 비용은 점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신은 대단한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가 신용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용도가 높을 때는 돈을 빌릴 수 있고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용도가 떨어지면 어느 나라도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 파산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새롭고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서도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직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용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신뢰를 강화하는 데에는 기술과 더불어 10년 동안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CEO의 말입니다. “신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신뢰는 성공하기 위해 얻으려고 노력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부부관계이든, 친구관계이든, 혹은 사회적인 관계이든, 신뢰 없이 성공하는 인간관계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기업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매일매일 경험합니다. 신뢰가 깨어지면 회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뢰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것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신뢰를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신뢰를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도 신뢰를 의심 받을 만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조국이 고통 받고 자기 백성이 피폐해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모든 것을 아뢰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슬픔 속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왕이 먼저 느헤미야의 표정에서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은 위기였습니다.
상하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평안의 원칙은 밑의 사람이 위의 사람의 심기를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람이 먼저 밑의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흥을 돋아야 할 신하가 연회장에서 슬픈 얼굴로 분위기를 망쳐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칫하면 왕에 대한 안목적인 도전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평소에 느헤미야는 늘 명랑했고 밝았습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왕을 모시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왕은 느헤미야가 슬픔과 근심이 많은 얼굴로 있는 것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헤미야 2:2)

느헤미야는 그의 마음이 들켰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성경은 느헤미야가 왕이 자신을 오해할까봐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왕의 명령에 거스르는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 2:5)

원래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사업은 느헤미야가 오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짓게 되면 페르시아 왕국에 대해서 저항할 것이라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 왕은 즉위하자마자 곧장 성벽 쌓는 것을 중단시킨 것이 에스라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느헤미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일로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야겠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명령에 대한 번복이었습니다. 왕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목숨을 걸고 이것을 왕에게 요청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때 왕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는 몇 가지 좋은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왕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우리 삶에 신뢰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이 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없는 사람이 잘못을 하면 그 잘못은 크게 확대되어 비난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신뢰에는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품입니다. 그 사람이 신실한가? 일관성이 있는가? 그와 오랫동안 사귀어봤는데 괜찮은가? 이것이 신뢰를 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입니다. 성품이 신뢰할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맡겨진 일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수행하는가에 따라 신뢰가 쌓입니다. 느헤미야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왕이 옆에서 지켜보니 그의 모든 행동에 의심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느헤미야가 수심에 찬 모습을 보면서도 의심하는 말이 아니라 신뢰하는 말을 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 2:4)

왕은 느헤미야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원하는 것, 네가 요청하는 것을 들어줄 테니 다 말해보라고 말합니다.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 2:6)

또한 왕이 느헤미야에게 말합니다. “너와 함께 있음이 나에게 든든하구나. 어쩔 수 없이 네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만 빨리 돌아오너라. 네가 옆에 있어야 나는 좋단다.” 느헤미야를 오래 동안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섭섭해 하는 왕의 태도가 여기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왕이 신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충성스러운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왕에게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혜로운 말을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 느헤미야가 지니고 있었던 귀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느헤미야 2:3)

그는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왕에게 호소합니다. 이때 자신이 가야 할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 않고,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면 정치적, 종교적 도시가 됩니다. 그는 가능하면 자신의 왕 앞에서 정치적 이슈를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을 그리워하며 바르게 모시려는 효성의 마음으로 왕의 마음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읍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졌음에 안타까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의 대화법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대화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너-대화법이 있는가 하면 나-대화법이 있습니다. 너-대화법이란 상대방을 중심으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느 날 늦게 들어왔습니다. 부모가 화가 치밀어서 자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왜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 오냐? 너는 왜 맨 날 이 모양이냐? 너는 부모 말을 콧등으로 듣고 있느냐?” 자녀를 향해서 야단과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것이 너-대화법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나-대화법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엄마는 네가 늦게까지 안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자녀가 늦게 들어옴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아픈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갑자기 화를 내는 부모님을 향해 같이 화를 냅니다. 그러나 후자는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부부의 대화 가운데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일찍 집에 들어올 것을 요청할 때, “여보, 오늘은 집에 일찍 좀 들어오세요.”라고 하는 방법이 너-대화법입니다. 그러나 나-대화법은 “여보, 내가 오늘 당신이 좋아하는 식사를 맛있게 준비했으니까 들어보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대화법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때 공감대가 점점 넓어집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것이 바벨론 탓이요 페르시아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 백성이 아파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아프다며 왕을 향해 나아갔을 때 왕도 충분히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느헤미야가 갖고 있던 세 번째 지혜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자기의 본분을 알았습니다. 왕의 모습을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가 있었습니다.
3절에 보면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하며 왕의 이름을 높입니다. 5절에서는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종이요 왕이 허락해야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왕의 권한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6절과 7절에서도 나타납니다.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 2:6)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느헤미야 2:7)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자신의 직분을 알고, 왕의 배려 하에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왕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옛날처럼 계급사회는 아닙니다. 모든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들어가면 명령해야할 위치에 서있을 때가 있습니다. 동료로서 함께 의논해야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위의 상사의 말을 순종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명령하는 위치에 서서 모든 일들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먼저 종으로서 왕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왕 앞에 나아가 지혜로운 말로 왕의 환심을 사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가지고 왕 앞에 섰을 때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순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 2:4)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면 되겠느냐? 청하면 내가 다 들어주겠다.” 이때 놀랍게도 느헤미야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셨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깨닫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순간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묵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눈을 뜨고 기도했을까요? 눈을 감고 기도했을까요? 눈을 뜨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눈을 감았다면 왕이 또 다시 걱정했을 것입니다. 아마 1~2초, 길어야 3~4초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제게 할 말을 주세요! 제게 지혜를 주세요! 제게 용기를 주세요! 제게 담대함을 주세요! 하나님, 지금 왕의 마음이 움직이게 해주세요!’ 그는 이렇게 순간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화살기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화살기도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다가도 드라이브를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에도 화살기도를 해보십시오. 내가 무언가를 급하게 결정해야 할 때에도 화살기도를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움직이고 계신다! 하나님이 저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 역사를 인도하고 계신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화살기도를 드리십시오.
느헤미야는 왕이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바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화살기도를 드렸습니다. 자녀가 급할 때, “엄마야!”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하나님께 순간적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기 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기도보다 더 강력한 기도입니다. 화살을 쏘듯이 짧지만 강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을 때 담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도울 것이다!’ 그래서 왕을 향해서 말합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에 있는 저 성읍에 나를 보내주십시오! 이것을 허락하신다면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조서를 써 보내서 나를 무사하게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삼림감독에게 조서를 써 보내서 성문을 쌓고 내 집을 짓는데 저 나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느헤미야는 자신이 준비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왕 앞에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이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종이 왕의 은혜를 받았다고 왕이 여기시거든.” 이때 왕은 예전에 자신이 한 번 결정한 사항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모든 요청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 2:8)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애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내가 들어주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이 기도는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느헤미야에게는 있었습니다. “하나님, 왕이 저를 보내도록 해주세요! 제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해주세요!” 그에게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 구했습니다.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오직 이것 하나만 구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참 좋구나! 네가 내 마음을 알았구나! 나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말을 듣는 마음을 가졌으니 너는 참된 지도자다! 내가 은과 금과 장수와 명예와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이것만은 내게 주세요!”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소원이어야 합니다. 이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 기도를 제게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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