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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한국 교회의 자랑이자 우리 신앙의 전통은 새벽기도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이 목회자들에게 큰 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목회자들은 도대체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사적 측면에서 보면 새벽기도를 처음 시작하신 분은 길선주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 새벽기도를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새벽기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새벽기도는 제 신앙의 출발점이었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기초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이제 예수님을 바르게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새벽 기도였습니다. 친구들, 후배들과 모여서 함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던 것도 이 새벽이었습니다. 이것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도 새벽기도는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번은, 논문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슬럼프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때였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당신 요새 기도를 하지 않는군요.” 하더니 그 길로 백화점에 가서 가로, 세로 1미터 자리 카펫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가 공부하는 책상 옆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명령하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와 같은 도움으로 독일에서의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새벽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 교수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하고 싶어서 당시 장신대 총장님에게 “제가 생활관 관장(기숙사원장)을 하겠습니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기숙사 학생들과 함께 새벽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신학교에서는 관례였습니다. 그것을 제가 인도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 때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전했던 말씀이 신앙의 선배들의 간증문이자 기도문이던 시편이었습니다. 제가 소망교회에 와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선택한 성경본문이 시편이었던 것도 그 시절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5년 정도만 봉직한 후, 교수의 자리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선교나 목회현장으로 나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 20년 동안 저를 신학교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 시간동안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기도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벽기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새벽기도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평생 새벽기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증거 할 수 있는 곳에서 제가 목회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소망교회에 오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소망교회는 전통적으로 담임목사가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일주일에 14번, 15번까지 설교를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때로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제가 이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마음껏 설교하는 곳에 보내 달라 하지 않았니? 네가 새벽 기도하는 곳에서 평생 목회하겠다고 하지 않았니?”라고 말입니다. 그 음성이 들려오면 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저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쁨으로 하겠습니다. 순종하면서 하겠습니다.’할 뿐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할 수 있는 것, 새벽마다 말씀을 전하는 그 자리가 제게는 축복의 현장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첫 걸음은 기도입니다. 무엇보다 새벽에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인 마가복음 1장 3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여기에는 몇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일어났다’, ‘나가다’, ‘한적한 곳으로 갔다’, ‘기도하셨다’ 등입니다. 이 동사들 사이 사이에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바로 ‘새벽에’, ‘아직도’, ‘해가 뜨기 전에’, ‘밝기 전에’ 등의 부사구들입니다. 또한 장소를 나타내는 말도 있습니다. ‘한적한 곳’이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새벽이란 어떤 시간입니까? 그것은 시간을 차단하는 자리입니다. 어제로부터 나를 구분하는 시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을 때, 그것으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럼 기도했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른 새벽에 사람을 만나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만나기를 열망했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벽기도가 갖고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란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번잡한 곳에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근심과 걱정, 탄식이 우리의 삶에 휘몰아치고 있습니까? 기도는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복잡한 것들 속에서, 단순하게 우리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해줍니다. 지금의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일하면서도 더 일해야 할 것 같은 일 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너무나 복잡하고 힘듭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세상으로 나가면 아무리 단순하게 살려고 해도 스스로의 힘으론 단순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입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끊어버리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내 일, 내 근심, 내 스트레스, 내 실패, 나의 절망, 나의 탄식을 향해서 “아니요”라고 말하고, “NO”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특권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YES”라고 말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께 붙잡히는 시간입니다.
새벽시간은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자존감이 회복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는, ‘아무도 나를 세뇌시킬 수가 없다.’, ‘아무도 나를 함부로 조종할 수 없다.’, ‘나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붙잡혀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보다 나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내가 근심하고 있는 환경보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새벽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이 쌓여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단절시키셨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와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지금 나서고 있습니다. 어디 가셨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번잡합니까? 인생에 절망이 많습니까? 인생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러한 복잡함과 절망, 근심 등은 단절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는 단절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신 하나님께 나의 전체의 모습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인 저도 사람들에게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온 마음을 휘감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울한 마음에 “아휴, 다 관두자.”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어두운 마음이 하루를 넘기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더 이상 이 어려움 속에 빠져있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 바로 새벽기도입니다. 이른 새벽, 하나님과 말씀 앞에 나의 근심과 걱정을 하나씩 아뢰기 시작합니다. 실수한 것, 실패한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쏟아놓습니다. 어제의 나의 모든 허물들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힘주시는 주님과 함께 다시 오늘을 시작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벽에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번잡한 곳에서 구별된 단순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수많은 근심과 걱정을 끊임없이 차단하면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기 원하십니까?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입니다.
새벽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둘째, 새벽기도는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힘을 줍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탁월성을 지니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물으면 비슷하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복해서 빈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남의 것을 모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의성의 자리까지 나아가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단순한 Technician이 아니라 Artist가 되려고 한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선수도, 연주가도, 정치가도, 기업가도, 대중 앞에 서는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편견을 없애고, 욕심을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아야지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비운다고 했는데 금방 내 마음속에 욕심이 생깁니다. 비운 순간 편견이 생기고 다른 잡념이 나를 붙잡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빈 마음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마음은 곧 하나님만을 열망하는 마음입니다. 수많은 가치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우선임을 확인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가 그의 것이 되는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지배하신다는 겁니다. 다른 세상이나 다른 욕심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빈 마음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빈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령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욕심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초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짐으로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옛날에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의 마중물을 기억하십니까? 물이 올라오지 않는 펌프에 마중물 한 바가지를 갖다 부으면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마치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펌프에 나의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부어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마중물은 하나님의 신선한 샘물과 연결되어 우리에게 흘러옵니다. 그 물은 맑은 생명의 물입니다. 우리를 힘 있게 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생수입니다. 그 생수를 맛보게 되면,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의 나의 고백이 됩니다.
새벽은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시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과 함께 새 창조를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특별히 새벽에 우리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천지창조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갈라 평지처럼 건너가게 하신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가서 하늘의 만나를 받았던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일곱 바퀴 돌아 성을 무너뜨렸던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5편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3)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8)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나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새벽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새벽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복잡한 자리에서 단순하게 내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새벽 제단을 하나님 앞에 쌓는 훈련을 하셔야 됩니다. 새벽은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또한 어제의 슬픔과 탄식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시간입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시간의 우선 순위, 소중한 것의 우선 순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게으름과 나태에서 탈출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절제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새벽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벽은 하늘의 지혜와 능력에 접목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나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과 접촉하는 시간입니다. 새벽기도의 마중물을 하나님의 펌프에 넣으므로 하늘의 샘물을 다 길어다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새벽을 사는 것, 하루 중에 말씀을 먼저 보고,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면 삶의 우선권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내 개인적인 바람들을 아뢰게 되면, 우리의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우리에게 넉넉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 35 ~ 39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한국 교회의 자랑이자 우리 신앙의 전통은 새벽기도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이 목회자들에게 큰 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목회자들은 도대체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사적 측면에서 보면 새벽기도를 처음 시작하신 분은 길선주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 새벽기도를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새벽기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새벽기도는 제 신앙의 출발점이었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기초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이제 예수님을 바르게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새벽 기도였습니다. 친구들, 후배들과 모여서 함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던 것도 이 새벽이었습니다. 이것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도 새벽기도는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번은, 논문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슬럼프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때였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당신 요새 기도를 하지 않는군요.” 하더니 그 길로 백화점에 가서 가로, 세로 1미터 자리 카펫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가 공부하는 책상 옆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명령하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와 같은 도움으로 독일에서의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새벽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 교수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하고 싶어서 당시 장신대 총장님에게 “제가 생활관 관장(기숙사원장)을 하겠습니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기숙사 학생들과 함께 새벽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신학교에서는 관례였습니다. 그것을 제가 인도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 때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전했던 말씀이 신앙의 선배들의 간증문이자 기도문이던 시편이었습니다. 제가 소망교회에 와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선택한 성경본문이 시편이었던 것도 그 시절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5년 정도만 봉직한 후, 교수의 자리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선교나 목회현장으로 나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 20년 동안 저를 신학교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 시간동안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기도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벽기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새벽기도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평생 새벽기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증거 할 수 있는 곳에서 제가 목회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소망교회에 오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소망교회는 전통적으로 담임목사가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일주일에 14번, 15번까지 설교를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때로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제가 이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마음껏 설교하는 곳에 보내 달라 하지 않았니? 네가 새벽 기도하는 곳에서 평생 목회하겠다고 하지 않았니?”라고 말입니다. 그 음성이 들려오면 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저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쁨으로 하겠습니다. 순종하면서 하겠습니다.’할 뿐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할 수 있는 것, 새벽마다 말씀을 전하는 그 자리가 제게는 축복의 현장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첫 걸음은 기도입니다. 무엇보다 새벽에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인 마가복음 1장 3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여기에는 몇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일어났다’, ‘나가다’, ‘한적한 곳으로 갔다’, ‘기도하셨다’ 등입니다. 이 동사들 사이 사이에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바로 ‘새벽에’, ‘아직도’, ‘해가 뜨기 전에’, ‘밝기 전에’ 등의 부사구들입니다. 또한 장소를 나타내는 말도 있습니다. ‘한적한 곳’이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새벽이란 어떤 시간입니까? 그것은 시간을 차단하는 자리입니다. 어제로부터 나를 구분하는 시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을 때, 그것으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럼 기도했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른 새벽에 사람을 만나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만나기를 열망했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벽기도가 갖고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란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번잡한 곳에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근심과 걱정, 탄식이 우리의 삶에 휘몰아치고 있습니까? 기도는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복잡한 것들 속에서, 단순하게 우리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해줍니다. 지금의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일하면서도 더 일해야 할 것 같은 일 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너무나 복잡하고 힘듭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세상으로 나가면 아무리 단순하게 살려고 해도 스스로의 힘으론 단순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입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끊어버리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내 일, 내 근심, 내 스트레스, 내 실패, 나의 절망, 나의 탄식을 향해서 “아니요”라고 말하고, “NO”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특권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YES”라고 말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께 붙잡히는 시간입니다.
새벽시간은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자존감이 회복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는, ‘아무도 나를 세뇌시킬 수가 없다.’, ‘아무도 나를 함부로 조종할 수 없다.’, ‘나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붙잡혀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보다 나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내가 근심하고 있는 환경보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새벽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이 쌓여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단절시키셨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와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지금 나서고 있습니다. 어디 가셨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번잡합니까? 인생에 절망이 많습니까? 인생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러한 복잡함과 절망, 근심 등은 단절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는 단절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신 하나님께 나의 전체의 모습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인 저도 사람들에게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온 마음을 휘감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울한 마음에 “아휴, 다 관두자.”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어두운 마음이 하루를 넘기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더 이상 이 어려움 속에 빠져있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 바로 새벽기도입니다. 이른 새벽, 하나님과 말씀 앞에 나의 근심과 걱정을 하나씩 아뢰기 시작합니다. 실수한 것, 실패한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쏟아놓습니다. 어제의 나의 모든 허물들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힘주시는 주님과 함께 다시 오늘을 시작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벽에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번잡한 곳에서 구별된 단순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수많은 근심과 걱정을 끊임없이 차단하면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기 원하십니까?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입니다.
새벽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둘째, 새벽기도는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힘을 줍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탁월성을 지니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물으면 비슷하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복해서 빈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남의 것을 모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의성의 자리까지 나아가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단순한 Technician이 아니라 Artist가 되려고 한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선수도, 연주가도, 정치가도, 기업가도, 대중 앞에 서는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편견을 없애고, 욕심을 내려놓고, 평정심을 찾아야지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비운다고 했는데 금방 내 마음속에 욕심이 생깁니다. 비운 순간 편견이 생기고 다른 잡념이 나를 붙잡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빈 마음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마음은 곧 하나님만을 열망하는 마음입니다. 수많은 가치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우선임을 확인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가 그의 것이 되는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지배하신다는 겁니다. 다른 세상이나 다른 욕심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빈 마음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빈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령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욕심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초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짐으로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옛날에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의 마중물을 기억하십니까? 물이 올라오지 않는 펌프에 마중물 한 바가지를 갖다 부으면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마치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펌프에 나의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부어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마중물은 하나님의 신선한 샘물과 연결되어 우리에게 흘러옵니다. 그 물은 맑은 생명의 물입니다. 우리를 힘 있게 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생수입니다. 그 생수를 맛보게 되면,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의 나의 고백이 됩니다.
새벽은 하나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시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하나님과 함께 새 창조를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특별히 새벽에 우리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천지창조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갈라 평지처럼 건너가게 하신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가서 하늘의 만나를 받았던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일곱 바퀴 돌아 성을 무너뜨렸던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5편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3)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8)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나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편 88:13)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새벽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새벽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복잡한 자리에서 단순하게 내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새벽 제단을 하나님 앞에 쌓는 훈련을 하셔야 됩니다. 새벽은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또한 어제의 슬픔과 탄식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시간입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시간의 우선 순위, 소중한 것의 우선 순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게으름과 나태에서 탈출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절제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새벽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벽은 하늘의 지혜와 능력에 접목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나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과 접촉하는 시간입니다. 새벽기도의 마중물을 하나님의 펌프에 넣으므로 하늘의 샘물을 다 길어다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새벽을 사는 것, 하루 중에 말씀을 먼저 보고,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면 삶의 우선권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내 개인적인 바람들을 아뢰게 되면, 우리의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우리에게 넉넉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