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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청년

사도행전 10: 38

김지철 목사

2010.05.23

성경은 성령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친히 참여하신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성령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주어졌다가 사라지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령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동행하신 표적이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곧 성령의 능력이었고, 예수님의 성품은 곧 성령의 성품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성령님께서 동행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읽고 있노라면 성령의 충만한 교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교회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은 ‘성령’을 빼고서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그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령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재 하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지혜와 믿음, 용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초청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허락해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등장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 성품의 변화를 우리에게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성령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타임머신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공간을 꿰뚫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시간을 넘나드는 우주적이고 전천후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가장 감사한 것 중에 하나는 성령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힘과 용기와 믿음을 허락해주십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역사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성령은 종말론적인 영입니다. 다른 의미로 말하면 성령은 인생에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시간임인 알려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은 열정의 영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세 번째로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억압된 것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억누르고 있던 자리로부터 해방케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종말론적인 영입니다

먼저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지막을 늘 깨우치게 하시는 영입니다.
일본의 한 호스피스 전문의가 죽음을 앞에 둔 말기 암환자 1000여명을 돌보면서 그들이 마지막에 후회하는 모습을 25가지의 주제로 뽑아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25가지의 후회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 후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 ‘감사하오’라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입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 없이 살았고 불평하면서 살았습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후회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입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니 남의 강요에 의해서 살아와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후회는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입니다. 그동안 나 혼자 잘났다고 뽐내면서 독불장군이 되었습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겸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후회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입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남을 좀 더 배려하고, 넉넉히 대할 줄 아는 마음이 없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후회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입니다. 사람은 죄책감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마지막에 용서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일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후회할 것이 없겠습니까? 지금의 모습 이대로 괜찮습니까? 우리는 아직 인생은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을 앞둔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가 되어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은 후회가 적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후회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 인생이 열려질 것이라고, 내 인생이 창창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기독교 신앙은 종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결산이 있을 것을 알기에 오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오늘을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 내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으로 여기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삽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성령은 열정의 영입니다

「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고, 원제는 「free play」, 즉 자유로운 놀이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거움으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놀이하듯이 몰두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우리에게 재미있게 가르쳐줍니다. 책의 앞부분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기독교적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바하의 제자가 바하의 곡을 듣고는 감탄하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음정을 생각해내실 수가 있으십니까?” 그러자 바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라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네.”
이것은 음악의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곡조가 울려 나오기에 춤추는 것을 참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음악에 몰두한 사람의 말입니다. 이런 열정이 그의 위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예술은 즉흥 연주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즉흥연주입니다. 내 생각, 내 몸통에서 울려나오는 모든 것들이 나의 즉흥연주입니다.
여기서 ‘즉흥연주’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즉흥연주가 있고, 두 번째는 수정과 조정을 거쳐 다듬어진 즉흥연주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펜과 종이로 즉흥연주를 해냈던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펜이 움직이는 속도대로 음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악보는 고칠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몇 년이고 곡조를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가 틀을 잡고 수정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악보 위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악보에는 고친 부분들이 많이 있어 작곡하는 고뇌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음악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을 하는 것은 결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은 기쁘고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고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었기에, 그들은 내면에 담겨져 있던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토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언급되고 있는 인간을 개발시키는 창조성과 창의성에 관한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영성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영성이 담겨져 있는 열정이 창조성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영을 통해서 이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속에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우주의 한 모퉁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지혜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경험하면 세상의 열정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경험하면 세상의 영에 붙잡혀서 얻는 환희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청년의 열정을 허락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따분해지고 싫증날 때가 있습니다. 환경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나를 따분하게 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스스로가 나를 열정 없는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열정을 주십니다. 살아있는 청년의 열정을 허락해주십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열정을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시간을 쏟아 붓고 또 부어도 다시 쏟아 붓고 싶은 마음입니다. 늘 설레는 마음으로 싫증내지 않고 도전하는 순수함입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헤매는 것 같아도 다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순전함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서도 아픔 때문에 가슴이 응어리지지 않고 그 아픔을 망각 속으로 버릴 수 있는 힘입니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질문하며 세상을 향해서 다가서는 용기입니다.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몰입하는 에너지입니다. 한 번의 고뇌가 끝나면 또 다른 고뇌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령님과 더불어 오히려 그것을 즐거워하며 헤쳐 나가는 도전의식이 바로 거룩한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해 주시며 삶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들이 거룩한 열정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이셨습니다. 기독교는 청년의 영을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세계를 이 땅에 펼쳐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슬픔과 외로움이 있고, 여러 가지 삶의 방해물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면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뛰놀면서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십니다. 하늘의 신비를 매일 매일 맛보게 하십니다. 경탄의 시를 쓰게 하고, 영혼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마음껏 인생을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성령은 생명과 자유의 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이요, 자유요, 해방이요, 진리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 생명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인간을 억누르고 있는 어둠의 힘을 알면서 빛의 역사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성령님과 함께 힘 있고 능력 있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물질로만 만들어진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생명을 만드는 위대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속성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주문을 외웁니다. 그래서 우리의 용기를 무너뜨리려 하고 새로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사탄의 주문은 이렇습니다. “너는 본래 천재가 아니야. 너는 달란트가 없어. 너는 평범한 존재야. 너는 해봤자 소용없어. 그냥 그대로 주저 않아 살아.” 사탄은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묶여서 인생을 포기한 채로 살려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성령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내가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게 주옵소서. 내가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이제 주님과 더불어 내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새생명을 허락해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으로 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역사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늘의 영입니다. 세상의 영에 붙잡혀서도 즐거움을 갖는데, 하나님의 영에 붙잡힘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큰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놀라운 성령의 은총과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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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 38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경은 성령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친히 참여하신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성령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주어졌다가 사라지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령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동행하신 표적이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곧 성령의 능력이었고, 예수님의 성품은 곧 성령의 성품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성령님께서 동행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읽고 있노라면 성령의 충만한 교회,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교회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은 ‘성령’을 빼고서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그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령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재 하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지혜와 믿음, 용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초청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허락해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등장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 성품의 변화를 우리에게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성령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타임머신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공간을 꿰뚫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시간을 넘나드는 우주적이고 전천후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가장 감사한 것 중에 하나는 성령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힘과 용기와 믿음을 허락해주십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역사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성령은 종말론적인 영입니다. 다른 의미로 말하면 성령은 인생에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시간임인 알려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은 열정의 영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세 번째로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억압된 것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억누르고 있던 자리로부터 해방케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종말론적인 영입니다

먼저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지막을 늘 깨우치게 하시는 영입니다.
일본의 한 호스피스 전문의가 죽음을 앞에 둔 말기 암환자 1000여명을 돌보면서 그들이 마지막에 후회하는 모습을 25가지의 주제로 뽑아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25가지의 후회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 후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 ‘감사하오’라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입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 없이 살았고 불평하면서 살았습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후회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입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니 남의 강요에 의해서 살아와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후회는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입니다. 그동안 나 혼자 잘났다고 뽐내면서 독불장군이 되었습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겸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후회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입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남을 좀 더 배려하고, 넉넉히 대할 줄 아는 마음이 없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후회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입니다. 사람은 죄책감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마지막에 용서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일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후회할 것이 없겠습니까? 지금의 모습 이대로 괜찮습니까? 우리는 아직 인생은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을 앞둔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가 되어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은 후회가 적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후회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 인생이 열려질 것이라고, 내 인생이 창창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기독교 신앙은 종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결산이 있을 것을 알기에 오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오늘을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 내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으로 여기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삽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성령은 열정의 영입니다

「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고, 원제는 「free play」, 즉 자유로운 놀이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거움으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놀이하듯이 몰두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우리에게 재미있게 가르쳐줍니다. 책의 앞부분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기독교적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바하의 제자가 바하의 곡을 듣고는 감탄하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음정을 생각해내실 수가 있으십니까?” 그러자 바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라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네.”
이것은 음악의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곡조가 울려 나오기에 춤추는 것을 참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음악에 몰두한 사람의 말입니다. 이런 열정이 그의 위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예술은 즉흥 연주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즉흥연주입니다. 내 생각, 내 몸통에서 울려나오는 모든 것들이 나의 즉흥연주입니다.
여기서 ‘즉흥연주’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즉흥연주가 있고, 두 번째는 수정과 조정을 거쳐 다듬어진 즉흥연주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펜과 종이로 즉흥연주를 해냈던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펜이 움직이는 속도대로 음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악보는 고칠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몇 년이고 곡조를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가 틀을 잡고 수정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악보 위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악보에는 고친 부분들이 많이 있어 작곡하는 고뇌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음악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을 하는 것은 결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은 기쁘고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고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었기에, 그들은 내면에 담겨져 있던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토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언급되고 있는 인간을 개발시키는 창조성과 창의성에 관한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영성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영성이 담겨져 있는 열정이 창조성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영을 통해서 이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속에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우주의 한 모퉁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지혜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경험하면 세상의 열정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경험하면 세상의 영에 붙잡혀서 얻는 환희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청년의 열정을 허락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따분해지고 싫증날 때가 있습니다. 환경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나를 따분하게 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스스로가 나를 열정 없는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열정을 주십니다. 살아있는 청년의 열정을 허락해주십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열정을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시간을 쏟아 붓고 또 부어도 다시 쏟아 붓고 싶은 마음입니다. 늘 설레는 마음으로 싫증내지 않고 도전하는 순수함입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헤매는 것 같아도 다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순전함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서도 아픔 때문에 가슴이 응어리지지 않고 그 아픔을 망각 속으로 버릴 수 있는 힘입니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질문하며 세상을 향해서 다가서는 용기입니다.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몰입하는 에너지입니다. 한 번의 고뇌가 끝나면 또 다른 고뇌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령님과 더불어 오히려 그것을 즐거워하며 헤쳐 나가는 도전의식이 바로 거룩한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해 주시며 삶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들이 거룩한 열정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이셨습니다. 기독교는 청년의 영을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세계를 이 땅에 펼쳐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슬픔과 외로움이 있고, 여러 가지 삶의 방해물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면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뛰놀면서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십니다. 하늘의 신비를 매일 매일 맛보게 하십니다. 경탄의 시를 쓰게 하고, 영혼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마음껏 인생을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성령은 생명과 자유의 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이요, 자유요, 해방이요, 진리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 생명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인간을 억누르고 있는 어둠의 힘을 알면서 빛의 역사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성령님과 함께 힘 있고 능력 있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물질로만 만들어진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생명을 만드는 위대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속성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주문을 외웁니다. 그래서 우리의 용기를 무너뜨리려 하고 새로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사탄의 주문은 이렇습니다. “너는 본래 천재가 아니야. 너는 달란트가 없어. 너는 평범한 존재야. 너는 해봤자 소용없어. 그냥 그대로 주저 않아 살아.” 사탄은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묶여서 인생을 포기한 채로 살려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성령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내가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게 주옵소서. 내가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이제 주님과 더불어 내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새생명을 허락해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으로 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역사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늘의 영입니다. 세상의 영에 붙잡혀서도 즐거움을 갖는데, 하나님의 영에 붙잡힘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큰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놀라운 성령의 은총과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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