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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누가복음 4: 16 ~ 21

김지철 목사

2018.05.20

성령은 새 역사를 일으키는 분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기독교 공동체가 새롭게 태어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성령’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간절히 원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입니다. 나아가 우리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란 어떤 분일까요? 성령이 하시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령’ 하면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되어 잘 포착되지가 않습니다. 손으로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자 예수님’에 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어서 그분의 삶과 생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당혹스러워 합니다.
저 역시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었을 때 많이 헛갈렸습니다. ‘도대체 성령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짜릿한 영적인 혹은 감정적인 경험일까? 성령 충만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두근대는 것일까? 성령 충만하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성령에게 사로잡히는 것일까? 그래서 내가 말하기 싫어도 내 입에서 방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게 때론 두렵고 무서운 현상처럼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어떤 분입니까?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인격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하시고 시작하게 하는 영입니다.
모세 뒤를 이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사명을 받은 여호수아를 가리키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안수하라.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겠다. 이 새로운 일을 그에게 맡겨라.” 그리고 주의 성령이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민수기 27장 18,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역사는 공동체와 민족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과 능력을 성령께서 부어 주십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13만5천 명과 싸워 이길 때도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재했습니다. 당시 모든 백성은 낙담했습니다. “아, 이제 적군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그때 성령이 새로운 용기를 허락하셨고, 상황을 전복시켰습니다. 사사기 6장 3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사사기 6:34)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새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울 왕의 시대가 끝나고 다윗 시대를 열었던 능력도 성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상 16:13 중)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감동시키니 그의 삶이 새로워집니다. 이어지는 구절 14절에는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났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사울은 지도자적 자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다윗은 하나님이 쓰실 만한 인물로 성장합니다.

성령은 창조와 변화, 생명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출발의 영’입니다. 우리의 삶이 무너졌을 때,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다시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주저앉아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 생명이 남아 있느냐? 네 눈이 지금 보고, 네 귀가 듣고 있느냐? 네 손과 발이 아직 움직이고 있느냐?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생명의 기운, 창조의 기운,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와 담대함이 생긴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놀랍게도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 때도 동행하신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모든 게 혼동과 무질서 상태였습니다. 그 카오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물러가고 혼돈이 사라지며,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창조의 영이시고 생명의 영이시며, 변화와 조화의 영,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영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게 흐트러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우울해질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성령님을 향해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시여, 내 마음을 채워 주소서. 나를 터치 하소서. 내게 임재하소서. 내게 말씀하시면서 나로 하여금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와 동행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찾아오시고 임재하시며, 삶에 간섭하십니다. 내 속에서 나를 억눌렀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나라의 새 일을 시작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해 보십시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도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받았고, 성령을 통해 그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이르셨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 하나로 모인 장면이 바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합니다. 성령 안에서 자신이 왜 이 땅에 왔는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을 선포하십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이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성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내 이사야의 글을 찾으시곤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중 18절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누가복음 4:18)

이사야 61장 말씀을 선포하시며, 당신의 자의식과 사명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해방과 자유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기름 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왕으로 선택될 때입니다. 혹은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세움 받을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너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세움 받았다는 뜻입니다.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으로 선택된 것은 공동체를 살리는 사명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오늘날에 대입해 보면, 지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리더 곧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는다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이제는 너만을 위한 인생에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펼쳐가라. 이제는 교회를 위한 인생을 펼쳐가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인생을 열어가라. 너 자신만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주저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이웃’입니다. 연약한 자, 고난당하는 자, 슬퍼하는 자, 아파하는 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우리의 시각이 변화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주의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란 누구입니까?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자비와 긍휼을 원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전해졌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고 선포하십니다. 또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성경은 해방의 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해방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죄의 세력에 억압당하다 풀려납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해방됩니다. 영원한 부활 생명을 누리면서 자유를 되찾고 해방을 경험합니다. 이 모든 게 성령의 임재를 통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치유자가 되시며,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참 자유를 얻습니다.

성령의 교회는 자기 밖으로 나가는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게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성령께서 관심 가지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눈여겨보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어떤 사람을 눈여겨보시는 하나님입니까? 이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시는 하나님입니다. 고통 받는 자, 버겁게 살아가는 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 희망을 잃어버리고 낙담한 자를 하나님이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자들을 찾아가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이 갖는 것에 관심이 있고, 부와 재물을 누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이제 하나님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을 위해 인생을 열어 가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뵈며 예배를 드립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도 알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끼리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장벽을 쌓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밖으로 나서라고 하십니다. 안으로 닫힌 공동체는 기독교 공동체가 아니며, 성령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선을 실천하는 것, 오지까지 선교적 마음을 갖고 찾아가 전도하는 것, 외지고 버려지고 소외된 변두리를 찾아가는 삶이 성령의 공동체며, 성령의 역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 이유도 이 모든 삶을 전하며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성령 오심의 목적을 밝히십니다. 누가복음 4장 19절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9 중)

주의 은혜가 이 땅에 나타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구약적인 용어로 이야기한다면, ‘희년’을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이 희년이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희년은 기쁨의 해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통해 쉼과 평안을 누리게 하셨듯이 안식년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6년 동안 수고했으면 좀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과 업적에 눌려 살았던 것에서 좀 풀려나라는 것입니다. 이 안식년에서 7을 곱하는 해인 49년에서 다음해인 50년이 될 때 희년을 선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 규정은 레위기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채무자의 빚도 다 탕감해 주라고 말씀합니다. 억압받던 노예들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내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도 총제적인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 희년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이 희년이 당신을 통해 선포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희년이 종말론적 메시아를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20~21절입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20~21 중)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입니다. 기다림의 시기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이 기다림을 성취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서가 끊임없이 지시하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사건, 자유의 사건, 죄 용서의 사건이 일어났으며, 장차 부활과 생명의 사건이 나타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성령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후반전을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인은 현재를 삽니다. 또 그 현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이요, 치유자이시자 회복자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며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구합니다. “하나님, 내 속에 억눌린 것이 있습니다. 내 속에 회색빛 같이 나를 절망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슬픔이 있습니다. 내 속에서 걱정과 근심이 나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모든 어둠을 쫓아내 주옵소서.”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성령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 그동안 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바득바득 악착같이 산 것도 조금 더 내 것을 축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자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내려놓겠습니다. 주께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옵소서.” 그동안 전반전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 새롭게 후반전을 맞이해 봅시다. 내 삶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고와 생각,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 공동체를 위한 삶으로 나아가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너 자신 속에 가둬 두지 말라. 너는 너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너는 너와 이웃과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존재다. 내가 너에게 허락한 소명을 따라 살길 바란다.”
이 삶은 예수님을 믿는 삶 가운데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가능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여, 내게 임하옵소서. 내게 보는 눈을 주옵소서.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힘과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의 성령이 이미 내 안에 임재하십니다. 이제는 성령님과 더불어 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해서 내 눈을 열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주님의 뜻이 아니면 거절하는 거룩한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 나만을 위해 살았던 내 인생에 성령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그분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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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 16 ~ 21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성령은 새 역사를 일으키는 분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기독교 공동체가 새롭게 태어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성령’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간절히 원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입니다. 나아가 우리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란 어떤 분일까요? 성령이 하시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령’ 하면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되어 잘 포착되지가 않습니다. 손으로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자 예수님’에 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어서 그분의 삶과 생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당혹스러워 합니다.
저 역시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었을 때 많이 헛갈렸습니다. ‘도대체 성령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짜릿한 영적인 혹은 감정적인 경험일까? 성령 충만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두근대는 것일까? 성령 충만하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성령에게 사로잡히는 것일까? 그래서 내가 말하기 싫어도 내 입에서 방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게 때론 두렵고 무서운 현상처럼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어떤 분입니까?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인격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하시고 시작하게 하는 영입니다.
모세 뒤를 이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사명을 받은 여호수아를 가리키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안수하라.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겠다. 이 새로운 일을 그에게 맡겨라.” 그리고 주의 성령이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민수기 27장 18,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역사는 공동체와 민족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과 능력을 성령께서 부어 주십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13만5천 명과 싸워 이길 때도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재했습니다. 당시 모든 백성은 낙담했습니다. “아, 이제 적군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그때 성령이 새로운 용기를 허락하셨고, 상황을 전복시켰습니다. 사사기 6장 3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사사기 6:34)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새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울 왕의 시대가 끝나고 다윗 시대를 열었던 능력도 성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상 16:13 중)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감동시키니 그의 삶이 새로워집니다. 이어지는 구절 14절에는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났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사울은 지도자적 자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다윗은 하나님이 쓰실 만한 인물로 성장합니다.

성령은 창조와 변화, 생명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출발의 영’입니다. 우리의 삶이 무너졌을 때,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다시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주저앉아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 생명이 남아 있느냐? 네 눈이 지금 보고, 네 귀가 듣고 있느냐? 네 손과 발이 아직 움직이고 있느냐?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생명의 기운, 창조의 기운,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와 담대함이 생긴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놀랍게도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 때도 동행하신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모든 게 혼동과 무질서 상태였습니다. 그 카오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물러가고 혼돈이 사라지며,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창조의 영이시고 생명의 영이시며, 변화와 조화의 영,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영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게 흐트러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우울해질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성령님을 향해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시여, 내 마음을 채워 주소서. 나를 터치 하소서. 내게 임재하소서. 내게 말씀하시면서 나로 하여금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와 동행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찾아오시고 임재하시며, 삶에 간섭하십니다. 내 속에서 나를 억눌렀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나라의 새 일을 시작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해 보십시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도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받았고, 성령을 통해 그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이르셨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 하나로 모인 장면이 바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합니다. 성령 안에서 자신이 왜 이 땅에 왔는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을 선포하십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이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성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내 이사야의 글을 찾으시곤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중 18절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누가복음 4:18)

이사야 61장 말씀을 선포하시며, 당신의 자의식과 사명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해방과 자유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기름 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왕으로 선택될 때입니다. 혹은 선지자나 제사장으로 세움 받을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너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세움 받았다는 뜻입니다.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으로 선택된 것은 공동체를 살리는 사명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오늘날에 대입해 보면, 지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리더 곧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는다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이제는 너만을 위한 인생에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펼쳐가라. 이제는 교회를 위한 인생을 펼쳐가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인생을 열어가라. 너 자신만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주저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이웃’입니다. 연약한 자, 고난당하는 자, 슬퍼하는 자, 아파하는 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우리의 시각이 변화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주의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란 누구입니까?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자비와 긍휼을 원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전해졌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고 선포하십니다. 또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성경은 해방의 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해방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죄의 세력에 억압당하다 풀려납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해방됩니다. 영원한 부활 생명을 누리면서 자유를 되찾고 해방을 경험합니다. 이 모든 게 성령의 임재를 통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치유자가 되시며,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참 자유를 얻습니다.

성령의 교회는 자기 밖으로 나가는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게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성령께서 관심 가지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눈여겨보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어떤 사람을 눈여겨보시는 하나님입니까? 이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시는 하나님입니다. 고통 받는 자, 버겁게 살아가는 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 희망을 잃어버리고 낙담한 자를 하나님이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자들을 찾아가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이 갖는 것에 관심이 있고, 부와 재물을 누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이제 하나님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을 위해 인생을 열어 가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뵈며 예배를 드립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도 알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끼리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장벽을 쌓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밖으로 나서라고 하십니다. 안으로 닫힌 공동체는 기독교 공동체가 아니며, 성령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선을 실천하는 것, 오지까지 선교적 마음을 갖고 찾아가 전도하는 것, 외지고 버려지고 소외된 변두리를 찾아가는 삶이 성령의 공동체며, 성령의 역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 이유도 이 모든 삶을 전하며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성령 오심의 목적을 밝히십니다. 누가복음 4장 19절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9 중)

주의 은혜가 이 땅에 나타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구약적인 용어로 이야기한다면, ‘희년’을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이 희년이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희년은 기쁨의 해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통해 쉼과 평안을 누리게 하셨듯이 안식년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6년 동안 수고했으면 좀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과 업적에 눌려 살았던 것에서 좀 풀려나라는 것입니다. 이 안식년에서 7을 곱하는 해인 49년에서 다음해인 50년이 될 때 희년을 선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 규정은 레위기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채무자의 빚도 다 탕감해 주라고 말씀합니다. 억압받던 노예들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내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도 총제적인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 희년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이 희년이 당신을 통해 선포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희년이 종말론적 메시아를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20~21절입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20~21 중)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입니다. 기다림의 시기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이 기다림을 성취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서가 끊임없이 지시하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사건, 자유의 사건, 죄 용서의 사건이 일어났으며, 장차 부활과 생명의 사건이 나타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성령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후반전을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인은 현재를 삽니다. 또 그 현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이요, 치유자이시자 회복자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며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구합니다. “하나님, 내 속에 억눌린 것이 있습니다. 내 속에 회색빛 같이 나를 절망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슬픔이 있습니다. 내 속에서 걱정과 근심이 나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모든 어둠을 쫓아내 주옵소서.”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성령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 그동안 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바득바득 악착같이 산 것도 조금 더 내 것을 축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자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내려놓겠습니다. 주께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옵소서.” 그동안 전반전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 새롭게 후반전을 맞이해 봅시다. 내 삶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고와 생각,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 공동체를 위한 삶으로 나아가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너 자신 속에 가둬 두지 말라. 너는 너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너는 너와 이웃과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존재다. 내가 너에게 허락한 소명을 따라 살길 바란다.”
이 삶은 예수님을 믿는 삶 가운데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가능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여, 내게 임하옵소서. 내게 보는 눈을 주옵소서.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힘과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의 성령이 이미 내 안에 임재하십니다. 이제는 성령님과 더불어 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해서 내 눈을 열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주님의 뜻이 아니면 거절하는 거룩한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 나만을 위해 살았던 내 인생에 성령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그분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8년 5월 2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262, 18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눅 4:16~2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2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지 50일 째 되는 오순절바로 이 날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초대교회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가 새롭게 태어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믿고 교회 나오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성령입니다그렇다면 성령이란 누구일까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며성령을 어떻게 받는 것일까?

설교의 요약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것을 시작하시는 영이십니다모세(27:18), 기드온(6:34), 사울(삼상16:13) –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을 입은 사람들입니다하나님의 영이란 우리의 모든 것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출발의 영입니다우리의 모든 것이 망가졌을 때다른 것에 기대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이 성령이십니다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실 때도 성령이 함께 계셨습니다(1:2). 창조와 생명의 영이시며 변화와 조화의 영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충만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성령의 역사는 예수님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탄생 2)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3)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오실 때 4)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이르기까지 성령 안에서 시작하셨습니다성령 안에서 내가 왜 이 땅에 왔는지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그것을 선포하시게 됩니다그것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임하셔서 기름을 붓는다고 합니다구약에서 왕선지자제사장을 위임할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29:7, 삼상10:1, 왕상19:16).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실 때새로운 자의식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연약한 자고난당하는 자이 땅에 슬퍼하는 자아파하는 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성령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시며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그리고 다시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오심에 목표를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것은 바로 희년을 네 삶에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어둡고 절망이 가득할 때다시 새롭게 시작하시는 성령의 영을 기다리십시오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음을 기억하며성령으로 제 2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성령이여 내게 임하소서나에게 보는 눈을 주옵소서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누기

1.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시 시작하고 도전해야할 모습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2.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시며하나님을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머물러 있는 삶의 자리는 어느 곳입니까함께 나눠보세요.

3. 성령 충만함으로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희년을 선포할 수 있도록 서로를 축복하며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받을 때주님의 그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인생의 후반전에는 성령의 역사에 우리를 맡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우리의 삶이 쓰임 받게 하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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