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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름의 리더십, 바나바

사도행전 9: 26 ~ 31

김지철 목사

2018.07.01

바나바는 신뢰 받는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6‧25 전쟁을 기억하며 ‘애통함의 리더십’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소망교회 제3대 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가 열리는 주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름의 리더십’이란 제목 아래 바나바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람이 때로는 너무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좋기도 합니다. 사람 때문에 복을 받는 경우도 있고, 사람 때문에 화를 만나고 불행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만날수록 기분이 언짢아지고 에너지를 앗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술궂은 사람,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 남을 함부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삶의 질서와 에너지가 흐트러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들이며, 이들을 만나면 새로운 기쁨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나바며, 또 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에서 매우 소중하고 귀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동역자이자, 특히 ‘아우름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우리는 간혹 사람 만나기를 싫어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은 그나마 예측이 가능한데, 사람은 예측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겁을 먹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나바란 인물은 다른 이들은 무서워할 때도, 오히려 사람을 소중히 여긴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초대 교회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많은 성도들이 피신하고 도망갔는데, 그곳이 안디옥이었습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들도 함께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가 커져 갔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에 이 소식이 들렸고,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누군가를 파송해야겠다고 결의한 후 바나바란 인물을 파송합니다.
이로 볼 때, 바나바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신뢰하던 인물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같은 지도자들이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는 바나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 곧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기도와 사랑을 쏟아 부은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들여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헌신한 인물입니다. 사도행전 4장 3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 4:37)

이처럼 바나바는 시간과 정성만 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재물까지 사도들 앞에 내 놓고 교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헌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말로만 헌신하기가 쉽습니다. 때때로 시간을 내고 손과 발을 움직여 헌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물을 내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이 모든 것을 다 쏟아 하나님의 일에 전념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초대 교회 사도들도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동역 가운데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탁월한 중재자입니다.

바나바 다음으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울이라고도 불리고 바울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입니다. 사울은 바울의 유대 이름이며, 바울은 사울의 로마식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바울은 아주 직선적인 사람입니다. 매우 강인한 성품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회심 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 26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도행전 9:26)

누구도 바울의 회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 사람인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예루살렘을 핍박했던 주역도 바울이었던 까닭입니다. 회심 전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에 열심을 내며, 그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굉장히 박해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변화되었던 다메섹 도상 역시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려고 가던 길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며, 예수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회심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귀에 들려온 것인데, 사도들은 의심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니 그를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 곧 예수님과 함께 3년이나 동고동락한 제자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과 동역하며, 복음을 전하는 게 바울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이 있는 인간관계에 바로 바나바가 들어선 것입니다. 이후 그는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 사이를 연결합니다.
여러분도 중재자 역할을 해 보신 적 있습니까? 서로의 의견이 다르고, 충돌합니다. 그때 중재자가 필요한데, 중재자에게 중요한 요소는 바로 ‘좋은 성품’입니다. 이쪽에서도 신뢰 받는 사람이어야 하고, 저쪽에서도 믿음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양쪽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아야 중재자 역할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재자로 서게 된 바나바도 양자를 만납니다.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토해내도록 돕습니다. 오늘 본문 중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도행전 9:27)

바나바는 바울에 대한 모든 정보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예루살렘교회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고, 그러면서 그 관계를 아우르려 애썼습니다.

바나바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품이 넓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함께 가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가도록 애쓰며, 함께 가도록 중재자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아우름의 리더십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상대의 가능성을 보는 눈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불가능 가운데서도 가능성을 찾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도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기분이 좋아집니까? 내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습니까, 내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습니까? 전자의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고, 그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반면 내 속의 가능성과 강점을 알려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그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는 어떻습니까? 남편의 좋은 점을 자꾸 드러내는 아내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남편의 약점만을 끄집어내는 아내입니까? 또한 아내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면을 드러내는 남편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짜증과 꾸중을 자주 발설하는 남편입니까? 이러한 마음과 언어 태도는 인간관계 전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직장에서 일할 때도, 세상에서 네트워킹을 넓혀갈 때도 중요한 태도입니다. 상대의 감추어진 좋은 면을 끌어낼 수 있어야 그것이 우리 삶에도 축복의 역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에게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신하고 의심할 때도, 바나바는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 나아가 하나님의 눈을 가질 때 그러한 역사가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연약함을 맡기고, 예수님이 이끌어 주시는 선한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에게 있던 마음은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논쟁하고 갈등하며 다투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또한 다툴 때도 “나와 다르므로 너는 나의 적이야.”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만남을 거절하게 하며, 동역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사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라 보완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서로를 북돋우는 놀라운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선한 경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가 틀어집니까? 때로는 직장에서, 때로는 교회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마주합니다. 그때 자신이 마치 비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품이 넓고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예루살렘 공동체에 소개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뛰어난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바울이 초대 교회 공동체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바나바의 모습은 정말 위대합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즉 바나바가 바울보다 신앙의 선배였던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먼저 들었던 인물입니다. 나이도 바울보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귀하고 존중히 여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옳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류사는 어떻습니까? 갈등의 역사가 곧 인류사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미묘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도 갈등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높은 점을 귀히 여기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자신보다 걸출한 인물을 용납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마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1인자가 되려고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반면 내가 2인자가 되려고 할 때 비로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특히 남성들은 결단할 때, 늘 두 가지 요소 앞에 서게 됩니다.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크고 많고 권력이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 앞에 섭니다. 이 둘 중 남성들은 보통 어떤 것을 택할까요? 남성들의 본능은 권력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본성 자체가 그렇습니다. 반면 옳은 것을 택하려면 결단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보다 크고 많고 힘이 센 곳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큰 것, 많은 것, 권력이 있는 자리도 좋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옳은 것’이란다.” 물론 옳은 것을 선택하다 보면, 손해를 볼 수 있고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신뢰할 만한 친구도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 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 선택 사이에서 ‘옳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바울이란 동역자를 만났고, 결국 예루살렘교회에 바울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후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3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31)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는 것에서 우리 신앙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믿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이웃이 함께 예수님을 믿고, 교제하며,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더불어의 길입니다.
소망교회 목사로서 여러분과 동역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또 귀한 동역자로 여러분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3대 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올 연말이면 소망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내년부터 제3대 목사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실 것입니다. 3대 목사님으로 청빙 절차 중에 계신 김경진 목사님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아는 한, 아주 좋은 성품을 지닌 분이십니다. 겸손한 성품을 지니셨고, 교회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열망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또한 후배들과 오랫동안 말씀 사역을 나눈 분이기도 합니다. 또 사람을 따뜻하게 이끄는 성품과 지도력을 지니셨으며, 무엇보다 공동체를 아우를 줄 아는 넉넉한 품격도 지니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공동의회에 함께 참여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이 땅에 하나님나라와 의를 세우는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교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축복을 함께 나누며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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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 26 ~ 31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바나바는 신뢰 받는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6‧25 전쟁을 기억하며 ‘애통함의 리더십’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소망교회 제3대 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가 열리는 주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름의 리더십’이란 제목 아래 바나바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람이 때로는 너무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좋기도 합니다. 사람 때문에 복을 받는 경우도 있고, 사람 때문에 화를 만나고 불행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만날수록 기분이 언짢아지고 에너지를 앗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술궂은 사람,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 남을 함부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삶의 질서와 에너지가 흐트러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들이며, 이들을 만나면 새로운 기쁨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나바며, 또 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에서 매우 소중하고 귀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동역자이자, 특히 ‘아우름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우리는 간혹 사람 만나기를 싫어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은 그나마 예측이 가능한데, 사람은 예측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겁을 먹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나바란 인물은 다른 이들은 무서워할 때도, 오히려 사람을 소중히 여긴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초대 교회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많은 성도들이 피신하고 도망갔는데, 그곳이 안디옥이었습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들도 함께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가 커져 갔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에 이 소식이 들렸고,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누군가를 파송해야겠다고 결의한 후 바나바란 인물을 파송합니다.
이로 볼 때, 바나바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신뢰하던 인물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같은 지도자들이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는 바나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 곧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기도와 사랑을 쏟아 부은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들여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헌신한 인물입니다. 사도행전 4장 3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 4:37)

이처럼 바나바는 시간과 정성만 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재물까지 사도들 앞에 내 놓고 교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헌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말로만 헌신하기가 쉽습니다. 때때로 시간을 내고 손과 발을 움직여 헌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물을 내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이 모든 것을 다 쏟아 하나님의 일에 전념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초대 교회 사도들도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동역 가운데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탁월한 중재자입니다.

바나바 다음으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울이라고도 불리고 바울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입니다. 사울은 바울의 유대 이름이며, 바울은 사울의 로마식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바울은 아주 직선적인 사람입니다. 매우 강인한 성품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회심 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 26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도행전 9:26)

누구도 바울의 회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 사람인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예루살렘을 핍박했던 주역도 바울이었던 까닭입니다. 회심 전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에 열심을 내며, 그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굉장히 박해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변화되었던 다메섹 도상 역시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려고 가던 길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며, 예수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회심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귀에 들려온 것인데, 사도들은 의심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니 그를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 곧 예수님과 함께 3년이나 동고동락한 제자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과 동역하며, 복음을 전하는 게 바울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이 있는 인간관계에 바로 바나바가 들어선 것입니다. 이후 그는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 사이를 연결합니다.
여러분도 중재자 역할을 해 보신 적 있습니까? 서로의 의견이 다르고, 충돌합니다. 그때 중재자가 필요한데, 중재자에게 중요한 요소는 바로 ‘좋은 성품’입니다. 이쪽에서도 신뢰 받는 사람이어야 하고, 저쪽에서도 믿음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양쪽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아야 중재자 역할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재자로 서게 된 바나바도 양자를 만납니다.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토해내도록 돕습니다. 오늘 본문 중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도행전 9:27)

바나바는 바울에 대한 모든 정보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예루살렘교회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고, 그러면서 그 관계를 아우르려 애썼습니다.

바나바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품이 넓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함께 가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가도록 애쓰며, 함께 가도록 중재자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아우름의 리더십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상대의 가능성을 보는 눈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불가능 가운데서도 가능성을 찾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도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기분이 좋아집니까? 내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습니까, 내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습니까? 전자의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고, 그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반면 내 속의 가능성과 강점을 알려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그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는 어떻습니까? 남편의 좋은 점을 자꾸 드러내는 아내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남편의 약점만을 끄집어내는 아내입니까? 또한 아내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면을 드러내는 남편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짜증과 꾸중을 자주 발설하는 남편입니까? 이러한 마음과 언어 태도는 인간관계 전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직장에서 일할 때도, 세상에서 네트워킹을 넓혀갈 때도 중요한 태도입니다. 상대의 감추어진 좋은 면을 끌어낼 수 있어야 그것이 우리 삶에도 축복의 역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에게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신하고 의심할 때도, 바나바는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 나아가 하나님의 눈을 가질 때 그러한 역사가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연약함을 맡기고, 예수님이 이끌어 주시는 선한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에게 있던 마음은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논쟁하고 갈등하며 다투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또한 다툴 때도 “나와 다르므로 너는 나의 적이야.”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만남을 거절하게 하며, 동역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사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라 보완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서로를 북돋우는 놀라운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선한 경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가 틀어집니까? 때로는 직장에서, 때로는 교회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마주합니다. 그때 자신이 마치 비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품이 넓고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예루살렘 공동체에 소개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뛰어난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바울이 초대 교회 공동체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바나바의 모습은 정말 위대합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즉 바나바가 바울보다 신앙의 선배였던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먼저 들었던 인물입니다. 나이도 바울보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귀하고 존중히 여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옳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류사는 어떻습니까? 갈등의 역사가 곧 인류사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미묘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도 갈등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높은 점을 귀히 여기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자신보다 걸출한 인물을 용납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마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1인자가 되려고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반면 내가 2인자가 되려고 할 때 비로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특히 남성들은 결단할 때, 늘 두 가지 요소 앞에 서게 됩니다.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크고 많고 권력이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 앞에 섭니다. 이 둘 중 남성들은 보통 어떤 것을 택할까요? 남성들의 본능은 권력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본성 자체가 그렇습니다. 반면 옳은 것을 택하려면 결단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보다 크고 많고 힘이 센 곳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큰 것, 많은 것, 권력이 있는 자리도 좋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옳은 것’이란다.” 물론 옳은 것을 선택하다 보면, 손해를 볼 수 있고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신뢰할 만한 친구도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 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 선택 사이에서 ‘옳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바울이란 동역자를 만났고, 결국 예루살렘교회에 바울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후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3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31)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는 것에서 우리 신앙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믿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이웃이 함께 예수님을 믿고, 교제하며,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더불어의 길입니다.
소망교회 목사로서 여러분과 동역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또 귀한 동역자로 여러분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3대 목사님을 청빙하는 공동의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올 연말이면 소망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내년부터 제3대 목사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실 것입니다. 3대 목사님으로 청빙 절차 중에 계신 김경진 목사님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아는 한, 아주 좋은 성품을 지닌 분이십니다. 겸손한 성품을 지니셨고, 교회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열망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또한 후배들과 오랫동안 말씀 사역을 나눈 분이기도 합니다. 또 사람을 따뜻하게 이끄는 성품과 지도력을 지니셨으며, 무엇보다 공동체를 아우를 줄 아는 넉넉한 품격도 지니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공동의회에 함께 참여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이 땅에 하나님나라와 의를 세우는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교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축복을 함께 나누며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8년 7월 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아우름의 리더십, 바나바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6장, 54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행9:26~3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인간관계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러나 사람이 때로는 너무 무섭고, 너무 좋아서 우리의 평생에 사람 때문에 복을 받는 경우도 혹은 불행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의 기분과 에너지가 업(up)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만나는 것으로 내게 있는 에너지가 다 빼앗기는 다운(down)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삶에 에너지가 넘치는 두 사람(바나바와 바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신뢰하는 동역자였으며, 아우름의 리더십을 지녔습니다.

설교의 요약
바나바라고 하는 인물은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할 때 오히려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사도들이 신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도행전 11장 24절을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간과 정성, 돈과 재물을 아낌없이 교회를 위해 쓰여지도록 사도들에게 드렸습니다. 헌신이란 우리가 가진 시간, 돈, 달란트와 정성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 때문에 전념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동역이란 신뢰와 신뢰가 진행 될 때에 가능합니다.
또 다른 인물 ? 사울이라고도 하고,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직선적인 인물이며, 아주 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제일 처음 알기 전에는 바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가장 앞섰던 선두주자였기 때문입니다(행9:26). 비록 다메섹으로 가다가 살아계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던 선배 제자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배우고, 함께 동역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의 변화를 의심하였고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을 연계했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고 충돌할 때에 바나바가 중재자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바나바가 갖고 있었던 이런 동역하는 아우름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바나바에게는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에게 감추어진 가능성을 들어낼 줄 아는 그런 복된 마음입니다. 둘째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바울이라고 하는 인물을 소중한 동역자로 봤고, 예루살렘 교회에 바울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역사를 허락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정의 부부이며, 결혼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혼자 예수 믿는 것,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족이 함께 믿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와서 다른 성도들로 함께 교제하고 나누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더불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함께 가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나누기
1. 함께 행함으로 기뻐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함께함에 기쁨은 무엇인지 함께 나눠보세요.
2. 함께 행하는 기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나바의 모습을 기억하며 함께 나눠보세요.
3. 바나바는 아우름의 마음(사람에게 감춰진 가능성을 바라보는 마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보완하려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우름의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서로를 아우를 줄 알고, 동역할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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