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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빛 같은 사람

사무엘하 23: 1 ~ 7

김지철 목사

2009.11.22

다윗은 자신을 높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아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춥고 시렸던 기억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초라하게 느끼는 어두운 자화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 보기에도 기특하고 대견하여 따뜻하게 다가오는 밝은 자화상입니다.
다윗은 어두운 자화상에서 밝은 자화상으로 변화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변화 받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자화상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자화상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자아상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스스로를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다윗의 칭호와는 대비되는 것이며 자기 스스로를 낮게 칭하는 칭호입니다. 사울 왕이 아들 요나단에게 다윗과 같은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했을 때, 사울은 다윗을 향해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나발이 다윗을 조롱하면서 멸시할 때 ‘이새의 아들 다윗’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불량배였던 세바가 다윗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다윗을 향하여 ‘이새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결코 명예로운 칭호가 아니라 그의 보잘 것 없고 비천함을 드러내는 칭호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미천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째 아들 중 막내였으며 형들의 그늘에 가려 들판에서 홀로 외롭게 양을 치던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였던 이새에게도 다윗은 기대할만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했던 그가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셔서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생각만 해도 감사합니다. 다윗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다윗은 나를 높여주신 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기름을 부어주신 분을 향하여 아름다운 노래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사무엘하 23:1)

부정적 자아상을 긍정적 자아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질문이 생깁니다. 다윗이 높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가? 아니면 찬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는가? 둘 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찬양하는 다윗을 높이셨고, 다윗은 높아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애를 생각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고난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그에게도 눈물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보아도 슬픔과 탄식의 노래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긍정적 자아상과 부정적 자아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는 부정적 자아상을 어떻게 긍정적 자아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내 안의 초라한 자화상을 어떻게 풍요로운 자화상으로 이끌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술주정뱅이요 손찌검을 잘하는 아버지 밑에 자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술 먹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심한 알콜 중독자가 되어 시궁창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요, 환경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면서 인생을 탄식했습니다.
또 다른 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아버지 밑에 있는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로 계속해서 다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알코올 중독을 치유하는 전문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는 타산지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두움이 그에게는 빛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아픔이 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유익한 자기후회와 자기비난은 사람을 성숙시킵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합니다. 그 중 하나는 후회하는 관문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관문입니다.
후회하는 것에는 두 가지 후회가 있는데, 좋은 후회가 있고 나쁜 후회가 있습니다. 좋은 후회는 내가 이렇게 했으면 잘되었을 것이라고 반성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과 언어를 마음속에 잠깐 떠올리고 금방 잊어버리는 후회입니다. 이것은 후회가 아닌 자기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후회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생각하면서 거기에 매달리는 후회입니다. 쓸 때 없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가슴에 쌓아둡니다. 이런 후회가 반복되면 자기연민과 불안과 우울증의 장애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후회를 하고 있습니까?
또한 성숙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비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도 유익한 비난이 있고 무익한 비난이 있습니다. 유익한 비난이란 변화시킬 수 있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비난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얼굴을 찌푸리는가?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내가 어찌하여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내가 어찌하여 용기와 담대함이 없어 도전할 생각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것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축복의 비난입니다.
나쁜 비난은 비난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자신의 형편과 성품, 근본적인 특성을 스스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해서는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너는 실패작이야. 너는 엉망이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기에 자기연민과 자기학대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유익한 자기비난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무익한 자기비난은 스스로를 더 억눌린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나 못된 성품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성품을 변화시키려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을 때 올바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은 어떤 자화상을 지녔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만 생각할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지혜로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붙잡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입을 통해서 가르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사무엘하 23:2)

지혜로운 자화상을 원하십니까? 하늘의 지혜를 보여주시는 성령께 나를 맡기십시오. 담대한 능력의 자화상을 원하십니까? 우리를 향해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십시오.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자가 되고 싶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은 생명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생명과 부활되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성령을 끊임없이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지혜와 하늘의 계시와 용기를 가르쳐주시고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시며 넉넉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도전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출발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누가복음 4:18)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구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자화상이 누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의존하지는 마십시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꿈을 주시는가, 내가 내 안에서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변화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우리는 올바른 자아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내 자아와 더 친밀해져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해야합니다. 나를 존중할 줄 알아야합니다. 나의 소중함을 세상을 향해서 선포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낙담할 때도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마가복음 1:11)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나를 향해서 말씀해주시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확인하고 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축복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의 확인을 받고, 잠들기 전에는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하면서 잠들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내 혀끝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답답하며 어떤 길을 가야할지 모를 때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말씀의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 이 말씀이 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우리의 억눌렸던 생각들을 다 떨쳐버리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 것을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형의 인간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사무엘하 23:3)

세상의 기업들은 인재를 발굴할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I자형 인간이 있습니다. I자형 인간은 자기 전문 분야에 탁월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I자형 인간에서 T자형 인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T자형 인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분야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인물을 말합니다. 또 어떤 CEO는 A자형 인재를 발굴한다고 합니다. A자형 인간이란 사람 인(人)자에다가 선을 그어 연결한 것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인간 네트워크를 할 수 있는 인물을 뜻합니다. 기업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뽑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까요? 그 해답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형의 인간입니다. T자형 인간은 위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의 인간은 어디를 향해서 올라갑니까?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하늘의 영, 하늘의 지혜, 하늘의 계시, 하늘의 풍성함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을 받습니다. 그리고 십자가형의 인간은 밑으로는 내면의 세계를 정리할 줄 알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십자가형의 인재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공의와 진리로 백성들을 이끌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침 햇빛 같은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십니다

우리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늘의 지혜와 능력, 하늘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구합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이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의 인물로 변화시켜주심에 감격하며 노래합니다.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사무엘하 23: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빛나는 얼굴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둠을 꿰뚫고 나오는 햇빛과도 같은 모습으로 밝게 하셨습니다. 화장품을 발라서 얼굴이 밝게 빛나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의 얼굴은 영원히 환하게 비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며 빛나는 일입니다. 이 말씀과 비슷한 것이 아가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 6:10)

여기서 말하는 당당한 여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신부인 우리들입니다. 영어로는 fair, beautiful, majestic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로 하여금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도 빛이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아침에 떠오르는 동녘의 햇빛처럼 빛나게 할 것이다.” 이 놀라운 축복을 이 땅위에서 마음껏 경험하고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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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3: 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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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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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신을 높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아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춥고 시렸던 기억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초라하게 느끼는 어두운 자화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 보기에도 기특하고 대견하여 따뜻하게 다가오는 밝은 자화상입니다.
다윗은 어두운 자화상에서 밝은 자화상으로 변화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변화 받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자화상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자화상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자아상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스스로를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다윗의 칭호와는 대비되는 것이며 자기 스스로를 낮게 칭하는 칭호입니다. 사울 왕이 아들 요나단에게 다윗과 같은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했을 때, 사울은 다윗을 향해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나발이 다윗을 조롱하면서 멸시할 때 ‘이새의 아들 다윗’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불량배였던 세바가 다윗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다윗을 향하여 ‘이새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결코 명예로운 칭호가 아니라 그의 보잘 것 없고 비천함을 드러내는 칭호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미천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째 아들 중 막내였으며 형들의 그늘에 가려 들판에서 홀로 외롭게 양을 치던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였던 이새에게도 다윗은 기대할만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했던 그가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셔서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생각만 해도 감사합니다. 다윗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다윗은 나를 높여주신 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기름을 부어주신 분을 향하여 아름다운 노래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사무엘하 23:1)

부정적 자아상을 긍정적 자아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질문이 생깁니다. 다윗이 높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가? 아니면 찬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는가? 둘 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찬양하는 다윗을 높이셨고, 다윗은 높아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애를 생각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고난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그에게도 눈물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보아도 슬픔과 탄식의 노래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긍정적 자아상과 부정적 자아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는 부정적 자아상을 어떻게 긍정적 자아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내 안의 초라한 자화상을 어떻게 풍요로운 자화상으로 이끌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술주정뱅이요 손찌검을 잘하는 아버지 밑에 자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술 먹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심한 알콜 중독자가 되어 시궁창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요, 환경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면서 인생을 탄식했습니다.
또 다른 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아버지 밑에 있는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로 계속해서 다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알코올 중독을 치유하는 전문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는 타산지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두움이 그에게는 빛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아픔이 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유익한 자기후회와 자기비난은 사람을 성숙시킵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합니다. 그 중 하나는 후회하는 관문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관문입니다.
후회하는 것에는 두 가지 후회가 있는데, 좋은 후회가 있고 나쁜 후회가 있습니다. 좋은 후회는 내가 이렇게 했으면 잘되었을 것이라고 반성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과 언어를 마음속에 잠깐 떠올리고 금방 잊어버리는 후회입니다. 이것은 후회가 아닌 자기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후회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생각하면서 거기에 매달리는 후회입니다. 쓸 때 없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가슴에 쌓아둡니다. 이런 후회가 반복되면 자기연민과 불안과 우울증의 장애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후회를 하고 있습니까?
또한 성숙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비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도 유익한 비난이 있고 무익한 비난이 있습니다. 유익한 비난이란 변화시킬 수 있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비난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얼굴을 찌푸리는가?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내가 어찌하여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내가 어찌하여 용기와 담대함이 없어 도전할 생각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것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축복의 비난입니다.
나쁜 비난은 비난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자신의 형편과 성품, 근본적인 특성을 스스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해서는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너는 실패작이야. 너는 엉망이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기에 자기연민과 자기학대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유익한 자기비난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무익한 자기비난은 스스로를 더 억눌린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나 못된 성품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성품을 변화시키려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을 때 올바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은 어떤 자화상을 지녔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만 생각할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지혜로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붙잡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입을 통해서 가르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사무엘하 23:2)

지혜로운 자화상을 원하십니까? 하늘의 지혜를 보여주시는 성령께 나를 맡기십시오. 담대한 능력의 자화상을 원하십니까? 우리를 향해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십시오.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자가 되고 싶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은 생명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생명과 부활되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성령을 끊임없이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지혜와 하늘의 계시와 용기를 가르쳐주시고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시며 넉넉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도전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출발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누가복음 4:18)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구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자화상이 누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의존하지는 마십시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꿈을 주시는가, 내가 내 안에서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변화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우리는 올바른 자아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내 자아와 더 친밀해져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이해해야합니다. 나를 존중할 줄 알아야합니다. 나의 소중함을 세상을 향해서 선포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낙담할 때도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마가복음 1:11)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나를 향해서 말씀해주시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확인하고 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축복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의 확인을 받고, 잠들기 전에는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하면서 잠들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내 혀끝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답답하며 어떤 길을 가야할지 모를 때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말씀의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 이 말씀이 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우리의 억눌렸던 생각들을 다 떨쳐버리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 것을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형의 인간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사무엘하 23:3)

세상의 기업들은 인재를 발굴할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I자형 인간이 있습니다. I자형 인간은 자기 전문 분야에 탁월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I자형 인간에서 T자형 인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T자형 인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분야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인물을 말합니다. 또 어떤 CEO는 A자형 인재를 발굴한다고 합니다. A자형 인간이란 사람 인(人)자에다가 선을 그어 연결한 것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인간 네트워크를 할 수 있는 인물을 뜻합니다. 기업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뽑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까요? 그 해답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형의 인간입니다. T자형 인간은 위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의 인간은 어디를 향해서 올라갑니까?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하늘의 영, 하늘의 지혜, 하늘의 계시, 하늘의 풍성함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을 받습니다. 그리고 십자가형의 인간은 밑으로는 내면의 세계를 정리할 줄 알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십자가형의 인재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공의와 진리로 백성들을 이끌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침 햇빛 같은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십니다

우리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늘의 지혜와 능력, 하늘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구합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이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의 인물로 변화시켜주심에 감격하며 노래합니다.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사무엘하 23: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빛나는 얼굴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둠을 꿰뚫고 나오는 햇빛과도 같은 모습으로 밝게 하셨습니다. 화장품을 발라서 얼굴이 밝게 빛나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의 얼굴은 영원히 환하게 비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며 빛나는 일입니다. 이 말씀과 비슷한 것이 아가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 6:10)

여기서 말하는 당당한 여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신부인 우리들입니다. 영어로는 fair, beautiful, majestic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로 하여금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도 빛이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아침에 떠오르는 동녘의 햇빛처럼 빛나게 할 것이다.” 이 놀라운 축복을 이 땅위에서 마음껏 경험하고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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