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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주님의 날이 탄생했습니다.
안식일은 쉼의 날입니다. 평안의 날이자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서 주일로, 쉼의 날 곧 평안의 날을 바꾸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당대 유대교와 초대 교회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억압을 받으며 포로로 붙잡혀 간 흩어진 유대인들이 말씀 공동체가 되어 회당을 만들고, 거기서 예배드리며 말씀을 읽었습니다. 물론 초대 교회 성도들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때문에 회당 공동체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도 선교 여행을 다니며 이 회당을 이용해 ‘유대인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증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회당 중심의 예배가 가정 교회 공동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회당에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가정을 개방합니다. 그러면서 가정이 예배처소로 변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초대 교회가 가정 교회 형태로 탈바꿈됩니다. 사도행전 11장에는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생겼다는 기록도 등장합니다. 사실 이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예수를 좇는 자들을 비하하며 부르는 별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쟁이인가 봐.”와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칭호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다른 점입니다.
이후 회당 중심의 안식일 예배가 주일 예배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예배를 승화시킵니다. 한 걸음 앞서 나간 것입니다. 물론 창조 행위를 하신 뒤 휴식을 취하신 하나님의 안식을 기독교 공동체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창조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며, 그날을 예배의 날로 바꾸었습니다.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 곧 주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주님의 날이란 ‘The Lord’s day’, 말 그대로 주님의 날입니다. 더 정확히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금요일입니다. 안식일엔 무덤에 갇혀 계셨습니다. 이후 안식 후 첫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날을 부활의 날, 새 창조의 날로 기념하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바꾸었습니다.
동시에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안식일 전통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요? 구약 성경을 확인해 보면, 안식일은 창조 신앙과 해방 신앙 전통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 활동을 하신 뒤 일곱째 날에 모든 창조를 마치고 쉬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록돼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8,11)
하나님도 창조 행위를 마치신 뒤 일곱째 날 쉬셨다고, 그러니 너희도 이 전통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안식일 준수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통이 나오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으로 고통 받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이를 기억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 5:15)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강력한 기억이 있습니다. ‘본래 우리 조상은 종이었다. 그것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종 된 신분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과 그분을 통한 해방을 기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으니, 우리가 그 날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토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 신앙과 해방 신앙 전통을 전수하며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꾸면서 고백하는 내용도 이와 같은 차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당하셨다. 또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새 생명의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우리가 사탄의 노예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방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자.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도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해방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님이십니다. 종이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노래하며 기쁘게 찬양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식일이 있기에 우리의 일상에 평온이 깃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안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셨을까요? 창조 행위를 하시고 힘드셔서 휴식을 취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창조물, 그 모든 피조세계를 바라보시며 기쁨으로 쉬신 것입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온 세계의 피조물들을 바라보시며 ‘참으로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임재를 느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을 통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쉼을 누리라는 게 안식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본의입니다.
아카드 하임(Akkad Heim)이란 한 유대인은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보존했다기보다 안식일이 유대인을 보존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유대인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었고, 매주 그들의 영적인 삶을 새롭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없었다면 유대인은 평일 동안의 침울한 경험을 계속 이어가며, 절망에 빠지고, 물질주의와 타락에 허우적대며 바닥까지 떨어졌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켰기에 6일 간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슬픔을 씻어낼 수 있었고, 다시금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며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으며 주일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날의 의미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은 ‘그치며’, ‘쉬는’ 날입니다.
또한 이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2)
우리말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 그리고 하던 모든 일을 그쳤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는데, ‘그쳤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제 좀 멈춰라.” 그리고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나도 창조 활동을 마치고 안식했다. 너도 이제 그만하고 멈춰라. 일중독에 빠지지 말라. 네 하던 일을 잠깐 멈추면 안 되겠니?” 하고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또 “너 왜 이렇게 분주하니? 그런 때일수록 네 자신을 돌아보아라. 하던 일을 그치고, 내가 네게 주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지 않겠니?”라고 권유하십니다. “소유하려는 욕망을 이제 그쳐라. 너는 소유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나의 사랑을 통해 너라는 존재가 여기 있는 것이다. 너는 나의 사랑을 받는 존재요,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긴다. 그 사실을 기억해라. 그동안 너무 긴장하며 인생을 살아왔지 않느냐? 이제는 내 앞에서 긴장을 풀어라. 내가 쉬었던 것처럼 너도 쉼을 누려라. 참 평안과 안식에 거하라.” 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얘야, 너는 하나님이 아니란다. 너는 인간이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네가 이 주일날 깨달으면 안 되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습니까? 그런데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더 즐겁고 기뻐야 하는데, 성취감과 보람 뒤에 이내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더 큰 압박감이 우리를 억누르며 업적주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쁩니다. 늘 쫓깁니다. 도망가고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근심과 염려가 나를 옭아맵니다. 무엇 때문인지 여유가 없습니다. 시험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일들로 두려워하면서 영혼의 기쁨과 평안을 상실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할래? 이제 나에게 나오지 않으련? 네가 가진 불안과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을 다 내려놓지 않으련?” 그런 뒤 하나님이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그쳤느냐? 그러면 이제는 쉬라. 내가 모든 창조를 마치고 쉼을 누렸듯이 너도 이 세계 속에서 쉼을 누려라.”
멈추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쉼의 시간, 평안의 자리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에 동참하면서 쉬라.”고 말입니다. 물론 육체노동을 많이 한 사람은 잠을 자면서 쉴 수 있습니다. 정신노동을 한 사람들은 산보를 하거나 운동을 하며 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육체와 영혼이 함께 정서적인 쉼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무의미한 내 생각에서 벗어날 때 참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만과 방자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죄악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물론 내 힘과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쉼을 누리려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쉼과 평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쉼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참 평안과 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안식의 기쁨을 누리며 새로운 내일을 열어 갑시다.
여러분, 창조의 절정은 쉼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혼의 쉼, 평안의 쉼을 누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예수님 안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는 비결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짐’이란 ‘죄’의 짐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짐입니다. ‘사탄’의 유혹과 공갈에 억눌리는 짐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근심하며 떠는 ‘불안’의 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입니다. 그분께 예배드리며 안식하는 날, 곧 주일을 통해 참 평안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배드림입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은 내 모습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토해내며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와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날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잔치의 날로 만들어라.”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 지시며 죽음의 자리에 드셨지만, 하나님이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생명의 날, 부활의 날입니다. 그날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의 날, 개척의 날, 능력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을 누릴 뿐만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생명의 힘을 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며 경탄하며 찬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경험하며, 치유의 역사를 맛보라고 말입니다. 나아가 성령님과 함께 새로운 능력으로 오늘을 축하하며, 오늘의 잔치를 벌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고!
우리 하나님은 땅과 하늘 곧 물질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에, 주일날 우리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영적으로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풍성해지듯이, 가족과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며 풍성한 사귐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이 땅에 사실 때 ‘먹고 마시는 자’라는 별명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전인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신명기 5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 축복을 함께 누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종들, 친지들, 가축들도 이 쉼의 평안을 누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의 이웃들, 특별히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생명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의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해방, 하나님의 새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일, 주님 앞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의 응답을 드립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축복을 누리며, 기쁨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며칠 뒤면 3•1절 99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해방된 후 그날을 기념해 안식일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 역시 조국을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땅에 억눌린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며,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초청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의 참여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여섯째 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첫 번째로 맞이한 날은 일곱째 날, 곧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일하고 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을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에 앞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식을 먼저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하나님이 허락하신 쉼과 평강을 맛본 뒤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능력이시고, 부활의 주이자 평강의 주이십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분께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고민, 염려, 불안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제는 생명의 주님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결단하며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창세기 1: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주님의 날이 탄생했습니다.
안식일은 쉼의 날입니다. 평안의 날이자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서 주일로, 쉼의 날 곧 평안의 날을 바꾸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당대 유대교와 초대 교회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억압을 받으며 포로로 붙잡혀 간 흩어진 유대인들이 말씀 공동체가 되어 회당을 만들고, 거기서 예배드리며 말씀을 읽었습니다. 물론 초대 교회 성도들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때문에 회당 공동체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도 선교 여행을 다니며 이 회당을 이용해 ‘유대인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증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회당 중심의 예배가 가정 교회 공동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회당에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가정을 개방합니다. 그러면서 가정이 예배처소로 변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초대 교회가 가정 교회 형태로 탈바꿈됩니다. 사도행전 11장에는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생겼다는 기록도 등장합니다. 사실 이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예수를 좇는 자들을 비하하며 부르는 별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쟁이인가 봐.”와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칭호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다른 점입니다.
이후 회당 중심의 안식일 예배가 주일 예배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예배를 승화시킵니다. 한 걸음 앞서 나간 것입니다. 물론 창조 행위를 하신 뒤 휴식을 취하신 하나님의 안식을 기독교 공동체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창조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며, 그날을 예배의 날로 바꾸었습니다.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 곧 주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주님의 날이란 ‘The Lord’s day’, 말 그대로 주님의 날입니다. 더 정확히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금요일입니다. 안식일엔 무덤에 갇혀 계셨습니다. 이후 안식 후 첫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날을 부활의 날, 새 창조의 날로 기념하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바꾸었습니다.
동시에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안식일 전통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요? 구약 성경을 확인해 보면, 안식일은 창조 신앙과 해방 신앙 전통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 활동을 하신 뒤 일곱째 날에 모든 창조를 마치고 쉬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기록돼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8,11)
하나님도 창조 행위를 마치신 뒤 일곱째 날 쉬셨다고, 그러니 너희도 이 전통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안식일 준수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통이 나오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으로 고통 받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이를 기억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 5:15)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강력한 기억이 있습니다. ‘본래 우리 조상은 종이었다. 그것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종 된 신분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과 그분을 통한 해방을 기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으니, 우리가 그 날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토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 신앙과 해방 신앙 전통을 전수하며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꾸면서 고백하는 내용도 이와 같은 차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당하셨다. 또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새 생명의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우리가 사탄의 노예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방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자.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도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해방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님이십니다. 종이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노래하며 기쁘게 찬양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식일이 있기에 우리의 일상에 평온이 깃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안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셨을까요? 창조 행위를 하시고 힘드셔서 휴식을 취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창조물, 그 모든 피조세계를 바라보시며 기쁨으로 쉬신 것입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온 세계의 피조물들을 바라보시며 ‘참으로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31)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임재를 느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을 통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쉼을 누리라는 게 안식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본의입니다.
아카드 하임(Akkad Heim)이란 한 유대인은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보존했다기보다 안식일이 유대인을 보존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유대인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었고, 매주 그들의 영적인 삶을 새롭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없었다면 유대인은 평일 동안의 침울한 경험을 계속 이어가며, 절망에 빠지고, 물질주의와 타락에 허우적대며 바닥까지 떨어졌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켰기에 6일 간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슬픔을 씻어낼 수 있었고, 다시금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며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으며 주일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날의 의미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은 ‘그치며’, ‘쉬는’ 날입니다.
또한 이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2)
우리말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 그리고 하던 모든 일을 그쳤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는데, ‘그쳤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제 좀 멈춰라.” 그리고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나도 창조 활동을 마치고 안식했다. 너도 이제 그만하고 멈춰라. 일중독에 빠지지 말라. 네 하던 일을 잠깐 멈추면 안 되겠니?” 하고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또 “너 왜 이렇게 분주하니? 그런 때일수록 네 자신을 돌아보아라. 하던 일을 그치고, 내가 네게 주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지 않겠니?”라고 권유하십니다. “소유하려는 욕망을 이제 그쳐라. 너는 소유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나의 사랑을 통해 너라는 존재가 여기 있는 것이다. 너는 나의 사랑을 받는 존재요,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긴다. 그 사실을 기억해라. 그동안 너무 긴장하며 인생을 살아왔지 않느냐? 이제는 내 앞에서 긴장을 풀어라. 내가 쉬었던 것처럼 너도 쉼을 누려라. 참 평안과 안식에 거하라.” 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얘야, 너는 하나님이 아니란다. 너는 인간이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네가 이 주일날 깨달으면 안 되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습니까? 그런데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더 즐겁고 기뻐야 하는데, 성취감과 보람 뒤에 이내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더 큰 압박감이 우리를 억누르며 업적주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쁩니다. 늘 쫓깁니다. 도망가고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근심과 염려가 나를 옭아맵니다. 무엇 때문인지 여유가 없습니다. 시험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일들로 두려워하면서 영혼의 기쁨과 평안을 상실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할래? 이제 나에게 나오지 않으련? 네가 가진 불안과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을 다 내려놓지 않으련?” 그런 뒤 하나님이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그쳤느냐? 그러면 이제는 쉬라. 내가 모든 창조를 마치고 쉼을 누렸듯이 너도 이 세계 속에서 쉼을 누려라.”
멈추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쉼의 시간, 평안의 자리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에 동참하면서 쉬라.”고 말입니다. 물론 육체노동을 많이 한 사람은 잠을 자면서 쉴 수 있습니다. 정신노동을 한 사람들은 산보를 하거나 운동을 하며 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육체와 영혼이 함께 정서적인 쉼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무의미한 내 생각에서 벗어날 때 참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만과 방자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죄악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물론 내 힘과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쉼을 누리려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쉼과 평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쉼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참 평안과 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안식의 기쁨을 누리며 새로운 내일을 열어 갑시다.
여러분, 창조의 절정은 쉼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혼의 쉼, 평안의 쉼을 누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예수님 안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는 비결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짐’이란 ‘죄’의 짐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짐입니다. ‘사탄’의 유혹과 공갈에 억눌리는 짐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근심하며 떠는 ‘불안’의 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입니다. 그분께 예배드리며 안식하는 날, 곧 주일을 통해 참 평안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배드림입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은 내 모습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토해내며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와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날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잔치의 날로 만들어라.”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 지시며 죽음의 자리에 드셨지만, 하나님이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생명의 날, 부활의 날입니다. 그날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의 날, 개척의 날, 능력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을 누릴 뿐만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생명의 힘을 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며 경탄하며 찬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경험하며, 치유의 역사를 맛보라고 말입니다. 나아가 성령님과 함께 새로운 능력으로 오늘을 축하하며, 오늘의 잔치를 벌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고!
우리 하나님은 땅과 하늘 곧 물질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에, 주일날 우리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영적으로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풍성해지듯이, 가족과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며 풍성한 사귐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이 땅에 사실 때 ‘먹고 마시는 자’라는 별명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전인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신명기 5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 축복을 함께 누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종들, 친지들, 가축들도 이 쉼의 평안을 누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의 이웃들, 특별히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생명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의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해방, 하나님의 새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일, 주님 앞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의 응답을 드립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축복을 누리며, 기쁨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며칠 뒤면 3•1절 99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해방된 후 그날을 기념해 안식일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 역시 조국을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땅에 억눌린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며,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초청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의 참여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여섯째 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첫 번째로 맞이한 날은 일곱째 날, 곧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일하고 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을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에 앞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식을 먼저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하나님이 허락하신 쉼과 평강을 맛본 뒤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능력이시고, 부활의 주이자 평강의 주이십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분께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고민, 염려, 불안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제는 생명의 주님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결단하며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안식일 : 하나님 사랑의 선물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9장, 30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1:31~2:3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2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안식일은 쉼의 날, 평안의 날, 해방된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안식일에서 주일로 그 쉼의 날, 평안의 날을 바꾸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유대교와 몇 가지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첫째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였지만, 초대교회는 회당을 떠나 가정교회 공동체로 탈바꿈합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생깁니다(행11장). 둘째로 안식일 예배에서 주일 예배로 바뀝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의 안식을 소중히 여겼지만, 하나님의 새 상조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로 안식일에서 주님의 날(The Lord’s Day), 주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은 구약의 안식일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전통은 창조신앙(출20:8; 11)과 해방신앙(신5:15)의 전통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에서 주일날로 바뀌는 것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하나님이 쉬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쉼은 힘들고 피곤해서가 아니라,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을 바라보시며 기쁨으로 쉬신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님 부활의 날로 우리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아 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만 멈추어라”고 말씀(창2;2)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일을 안식일에 그쳤던 것처럼 우리에게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맡기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면 기뻐해야 하는데, 현실은 바쁘고 쫓기며 도망쳐야만 합니다. 둘째 잠시 멈추었으며, 이제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와 정신이 함께 하면서 정서적인 쉼을 누려야 합니다. 무의미한 생각, 근심과 걱정, 교만함과 방자함으로부터의 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참된 쉼과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마11:28). 예수님 안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죄의 짐, 죽음과 불안, 근심의 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로 “이 날을 네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네가 나아갈 잔치의 날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날은 생명의 날, 부활의 날, 새로운 미래를 도전하고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을 누릴 뿐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생명의 힘을 갖고 예배드리며 잔치를 향해 나아가라고 부탁하십니다. 성령님과 함께 새로운 능력을 갖고, 오늘을 축하하고 오늘의 잔치를 벌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과 함께 누리라(신5장)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식일은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쁨, 부활의 능력을 누리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안식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주일은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하십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며,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해방, 하나님의 새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가 응답해야 합니다. 99주년을 맞이하는 3·1절도 같은 의미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킨 것처럼, 우리나라를 회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이웃사랑’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보면 인간이 첫 번째로 맞이한 날이 일곱 번째 날 ? 안식일입니다. 일하고 쉬는 것이 보통이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안식일을 먼저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쉼, 평강을 맛보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나누기
1. 창조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쉼이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2. 안식일 전통을 이어받아 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안식일(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안식의 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창조의 주님,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이 놀라운 잔치를 베풀어 주셨으니 기쁨과 감사함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삶이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