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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신앙, 나의 신앙

디모데후서 1: 3 ~ 8

김지철 목사

2014.05.11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건강의 복을 받으시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끄러운 마음이었고, 하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아, 내가 벌써 아버지가 되어도 되나. 내가 아버지 될 만한 자격이 있나. 내가 아버지 될 준비를 했나…’ 하는 생각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나와 닮은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나. 내게 주신 이 축복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생명의 소중함으로 인한 신기함과 자랑스러움이었습니다.
어린 아들과 딸이 옹알이를 하다가 조금 더 커서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나 혼자였기에 나는 소외된 존재라는 우울한 생각과 슬픈 마음들, 무언가 저 깊은 곳에 맺혀진 그러한 것들이 뻥하고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가 되는 기쁨 속에서 얻은 축복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통해서 내 영혼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는 감사함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버지는 우리의 어린 시절 늘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에는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다짐하게 되는 존재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아버지에게 이런 사랑이 있었구나…’ 하며 새롭게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고, 삶의 문제를 의논하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면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를 부르는 이름 안에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해서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살았던 적이 많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후계자이자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그를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이름을, 때로는 ‘내 아들’, ‘내 딸’이라는 호칭을 수없이 부릅니다.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요? 수백 번? 수천 번? 아닙니다. 수만 번 불렀을 것입니다. 그 부름이 우리 삶의 격려였고 용기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라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이렇게 자주, 많이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내 아들’, ‘내 딸’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뿐입니다. 내 이름이 ‘나’인 것처럼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나를 향한 인정이었고, 칭찬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부모님은 수없이 나를 인정했습니다. 나를 칭찬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를 안으며 내 이름을 불렀던 그곳에, 내 아들아, 내 딸아 불렀던 그곳에 부모님의 고백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얘야, 너는 필요한 사람이란다. 네가 거기 있으므로 내가 행복하단다. 너를 바라보기만 해도 부모인 우리는 기분이 좋단다. 너는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란다. 네가 존재함으로 우리 가족과 온 세상이 더 빛나고 행복해진단다.”
부모님이 부르시던 우리의 이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던 그 속에는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 축복이 담겨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오늘 디모데를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필요한 사람이란다. 네가 없으면 내 사역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는지 아느냐.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내 옆에 그냥 있어만 줘도 내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단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생의 성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재물이 인생의 목표인가요? 아니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들은 그저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 결과까지 가는 삶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자각시켜 주시고,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모로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르쳐야 자녀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앞으로 무슨 자리를 차지해라, 돈을 얼마만큼 벌어라, 어떤 기업에 들어가라 하는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란다. 너는 소중한 존재란다. 네가 있으므로 우리 가정이 기쁘고, 이 사회가 기쁘고, 우리 삶이 복을 받는단다.”
스스로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되면 어린 자녀들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 훈련을 할 줄 알고 인생의 비전과 꿈을 꾸며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소명을 받았다, 사명을 받았다’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없으면 내 가족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내가 없으면 내 직장이 무너지고 내 교회가 흔들리고 이 백성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소명이고 사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마다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마리아야, 마리아야” 이렇게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름 속에 사랑과 칭찬, 기대와 인정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소중한 존재라고, 필요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임을 경험하게 되면, 그때는 무슨 일을 해도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 세상의 복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세월을 허비했습니까? 잘못된 자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족의 짐이야. 그것도 버거운 짐짝과도 같이 팽개쳐도 좋을 짐이야. 내가 없었으면 내 가족이 더 편할 텐데…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은 더 풍족하게 살았을 텐데… 내가 없었으면 이 공동체가 더 좋아질 텐데…’ 이렇게 내 존재의 필요성과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내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까요? 돈이 많고, 명예가 있는데도 자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되어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평생 자녀의 이름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는 필요한 존재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자주 불러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노하우들은 그 다음 것입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다 두 번째, 세 번째 것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를 훈련시킬 줄 알게 됩니다. 인생의 꿈과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 것인지 물으며 답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왜 흔들릴까요? 왜 중요한 일들을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가 부모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공동체에서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니 때문에 자학하며 자기 연민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나 없어도 인생은 잘 돌아가겠지…’ 하고 자기를 못 살게 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디모데후서 1:3)

바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으로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쉬지 않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외에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 소리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또한 신앙 고백 속에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고, 늘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복음이고, 은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의 처지를 기억합니다.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디모데후서 1:4)

자녀들의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자녀들이 무엇으로 힘들어 하는지 부모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어떤 것 때문에 근심하는지, 어떤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언제 외롭다고 탄식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의 눈물과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네 눈물을 생각해 본다. 너를 보고 싶구나. 너는 내 기쁨이다.”
우리 인생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축복 아닙니까?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면 기쁜 사람, 만나면 격려가 되는 사람, 만나면 힘이 생기는 사람, 만나면 감사가 쏟아지는 사람, 만나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사람들이 인생에 주신 만남의 축복 아닙니까?
교회학교 교역자들에게 어머니, 아버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한 교역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집에만 들어오면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물으셨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가 누구지?” 그래서 자기 이름을 대면, “맞아. 네가 제일 예뻐!”하시며 매일 껴안았다는 것입니다. 한참 후에야 자신이 제일 예쁜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딸이구나.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예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왜 사라지고 있을까요? 누군가 우리에게 “넌 필요한 존재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부모님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즉,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가 잊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너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모의 마음으로 세 가지를 요청합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두 번째는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8)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조롱하지만, 너는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고통을 받게 될 때가 오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덧붙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어떠한 고난이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5)

“네 속에 믿음이 있구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이 있구나. 그렇다면 세상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가라.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네게 주신 믿음을 따라 행하며 나아가라.” 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오랫동안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를 왜 일찍 데려가셨습니까?” 아직 그 대답을 온전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아버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젠 나를 의지하고 나를 믿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버이주일을 맞아 육신의 부모님이 계시면 어렸을 때 엄마, 아빠라고 불렀던 것처럼 부모님을 부르며 따뜻하게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기도해 주신 것 참 감사해요.” 따뜻한 선물도 하나 드리고, 함께 식사하며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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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 3 ~ 8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건강의 복을 받으시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끄러운 마음이었고, 하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아, 내가 벌써 아버지가 되어도 되나. 내가 아버지 될 만한 자격이 있나. 내가 아버지 될 준비를 했나…’ 하는 생각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나와 닮은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나. 내게 주신 이 축복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생명의 소중함으로 인한 신기함과 자랑스러움이었습니다.
어린 아들과 딸이 옹알이를 하다가 조금 더 커서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나 혼자였기에 나는 소외된 존재라는 우울한 생각과 슬픈 마음들, 무언가 저 깊은 곳에 맺혀진 그러한 것들이 뻥하고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가 되는 기쁨 속에서 얻은 축복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통해서 내 영혼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는 감사함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버지는 우리의 어린 시절 늘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에는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다짐하게 되는 존재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아버지에게 이런 사랑이 있었구나…’ 하며 새롭게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고, 삶의 문제를 의논하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면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를 부르는 이름 안에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해서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살았던 적이 많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후계자이자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그를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이름을, 때로는 ‘내 아들’, ‘내 딸’이라는 호칭을 수없이 부릅니다.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요? 수백 번? 수천 번? 아닙니다. 수만 번 불렀을 것입니다. 그 부름이 우리 삶의 격려였고 용기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가라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이렇게 자주, 많이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내 아들’, ‘내 딸’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뿐입니다. 내 이름이 ‘나’인 것처럼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나를 향한 인정이었고, 칭찬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부모님은 수없이 나를 인정했습니다. 나를 칭찬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를 안으며 내 이름을 불렀던 그곳에, 내 아들아, 내 딸아 불렀던 그곳에 부모님의 고백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얘야, 너는 필요한 사람이란다. 네가 거기 있으므로 내가 행복하단다. 너를 바라보기만 해도 부모인 우리는 기분이 좋단다. 너는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란다. 네가 존재함으로 우리 가족과 온 세상이 더 빛나고 행복해진단다.”
부모님이 부르시던 우리의 이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던 그 속에는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 축복이 담겨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오늘 디모데를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필요한 사람이란다. 네가 없으면 내 사역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는지 아느냐.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내 옆에 그냥 있어만 줘도 내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단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생의 성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재물이 인생의 목표인가요? 아니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들은 그저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 결과까지 가는 삶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자각시켜 주시고,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모로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르쳐야 자녀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앞으로 무슨 자리를 차지해라, 돈을 얼마만큼 벌어라, 어떤 기업에 들어가라 하는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란다. 너는 소중한 존재란다. 네가 있으므로 우리 가정이 기쁘고, 이 사회가 기쁘고, 우리 삶이 복을 받는단다.”
스스로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되면 어린 자녀들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 훈련을 할 줄 알고 인생의 비전과 꿈을 꾸며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소명을 받았다, 사명을 받았다’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없으면 내 가족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내가 없으면 내 직장이 무너지고 내 교회가 흔들리고 이 백성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소명이고 사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마다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마리아야, 마리아야” 이렇게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름 속에 사랑과 칭찬, 기대와 인정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소중한 존재라고, 필요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임을 경험하게 되면, 그때는 무슨 일을 해도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 세상의 복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세월을 허비했습니까? 잘못된 자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족의 짐이야. 그것도 버거운 짐짝과도 같이 팽개쳐도 좋을 짐이야. 내가 없었으면 내 가족이 더 편할 텐데…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은 더 풍족하게 살았을 텐데… 내가 없었으면 이 공동체가 더 좋아질 텐데…’ 이렇게 내 존재의 필요성과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내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까요? 돈이 많고, 명예가 있는데도 자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되어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평생 자녀의 이름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는 필요한 존재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자주 불러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노하우들은 그 다음 것입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다 두 번째, 세 번째 것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를 훈련시킬 줄 알게 됩니다. 인생의 꿈과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 것인지 물으며 답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왜 흔들릴까요? 왜 중요한 일들을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가 부모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공동체에서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니 때문에 자학하며 자기 연민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나 없어도 인생은 잘 돌아가겠지…’ 하고 자기를 못 살게 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디모데후서 1:3)

바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으로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쉬지 않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외에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 소리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또한 신앙 고백 속에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고, 늘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복음이고, 은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의 처지를 기억합니다.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디모데후서 1:4)

자녀들의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자녀들이 무엇으로 힘들어 하는지 부모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어떤 것 때문에 근심하는지, 어떤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언제 외롭다고 탄식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의 눈물과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네 눈물을 생각해 본다. 너를 보고 싶구나. 너는 내 기쁨이다.”
우리 인생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축복 아닙니까?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면 기쁜 사람, 만나면 격려가 되는 사람, 만나면 힘이 생기는 사람, 만나면 감사가 쏟아지는 사람, 만나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사람들이 인생에 주신 만남의 축복 아닙니까?
교회학교 교역자들에게 어머니, 아버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한 교역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집에만 들어오면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물으셨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가 누구지?” 그래서 자기 이름을 대면, “맞아. 네가 제일 예뻐!”하시며 매일 껴안았다는 것입니다. 한참 후에야 자신이 제일 예쁜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딸이구나.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예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왜 사라지고 있을까요? 누군가 우리에게 “넌 필요한 존재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부모님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즉,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가 잊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너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모의 마음으로 세 가지를 요청합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두 번째는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8)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조롱하지만, 너는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고통을 받게 될 때가 오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덧붙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어떠한 고난이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5)

“네 속에 믿음이 있구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이 있구나. 그렇다면 세상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가라.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네게 주신 믿음을 따라 행하며 나아가라.” 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오랫동안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를 왜 일찍 데려가셨습니까?” 아직 그 대답을 온전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아버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젠 나를 의지하고 나를 믿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버이주일을 맞아 육신의 부모님이 계시면 어렸을 때 엄마, 아빠라고 불렀던 것처럼 부모님을 부르며 따뜻하게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기도해 주신 것 참 감사해요.” 따뜻한 선물도 하나 드리고, 함께 식사하며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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