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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수고하느냐?

이사야 55: 1 ~ 5

김지철 목사

2008.08.03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인생의 열쇠를 찾으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 열쇠를 잃어버려 마당의 잔디 사이를 뒤지며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제자들이 집에 도착하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네.”
“그럼, 저희도 좀 도와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
그들은 한참을 잔디밭을 손가락으로 휘저으면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열쇠를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그랬더니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안에서 잃어버렸지.”
“아니 그런데 왜 집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찾고 계십니까?”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바깥이 더 밝지 않느냐?”
여러분, 이 선생님은 미련한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집 열쇠를 잃어버린 후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그리고는 인생의 열쇠가 없어졌다고 낙심하며 실망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에게 열쇠를 찾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인생의 열쇠를 찾습니다. 그리고는 곧 세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열쇠를 잃어버린 자와 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려도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텅 빈 가슴으로 방황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참된 음식이 되지 못할 것을 위하여 돈을 낭비했습니다. 헛된 것을 얻기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며 애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2)

하나님께서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를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찾아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우리를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찾지 않고 세상 속에서 찾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경고하며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목이 말라 갈급한 인생인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목마른 자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배고픈 자, 목마른 자만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혼의 목마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의 배고픔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은 인생입니다. 영혼이 목말라 애타는 자만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혼의 목마름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뜻입니다. 육체만으로 사는 동물은 영혼의 목마름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짐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배고프고 영혼의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변화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이 채워질 수 있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타는 목마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오는 것은 영혼의 목마름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꽉 차 있고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영혼의 목마름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며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목마름을 갖고 있는 사람을 지금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나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마르면 누구나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다 하나님께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도 괜찮습니다. 돈 없이 와서 선물로 받으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더 확대한다면 우리 민족과 나라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인 목마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봅시다. 20세기를 살았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목마름을 지니며 살았던 민족입니다. 이 땅은 36년간 일본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육체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만 올라가도 가난의 현장을 경험하지 않은 분들이 없습니다. 1960년대까지 모든 백성들이 먹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난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북한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국방력과 경제력에 있어서 북한을 넘어서 역전된 때는 1970년대 중반입니다.
이 민족, 이 나라는 가난을 뼈아프게 체험한 백성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활력을 얻기 위해서 해외 노동자로 나가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노동자들과 기업가들이 땀과 눈물을 쏟아 부으면서 경제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놀랍게도 경제적인 목마름, 육체적 목마름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에게 영적인 목마름까지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인 것을 고백했던 축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6.25전쟁 이후에도 독재의 아픔 속에서 온 백성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치적인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목마름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때로는 고통도 있었고 억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자유와 인권과 민주화를 향한 우리 백성의 간구는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정의를 위한 투쟁 속에 아픈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이때 우리 백성들이 정치적인 자유, 인권이 존엄성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중보기도하며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이런 동력을 일으킬만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지주가 취약했습니다. 수많은 우상숭배의 나라였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샤머니즘의 나라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만 생기면 점집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백성의 가슴속에 파고들었습니다. 그 속에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배가되어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사회적인 변화의 가치를 주도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 20세기의 일이였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즐거움을 얻으십시오.

그런데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염려하고 계십니다. 교회에 위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위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탄식소리가 들려옵니다. “오호라. 정말 문제구나. 너희들을 보니 배가 불렀구나. 헛배가 불렀구나. 물질의 가난이 해결되니까 육체가 배부르고 영적인 것도 배부른 것으로 착각하는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망각하는 백성이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모르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구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워나가지 못하는 백성이 되었구나. 너희들이 다시 미신을 찾고 우상을 따라가면서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고 하나님을 버리고 있구나.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구나. 양식 아닌 것을 먹고 헛배를 두드리며 참된 생수를 먹지 않고 다른 음료를 먹으면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고 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꾸중하시며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탄식하며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예레미야 2:13)

첫 번째,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예레미야 2:13)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 외의 생수를 얻어 보려고 웅덩이와 우물을 팠는데 그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 웅덩이일 뿐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가졌다고, 무언가를 누린다고, 무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웅덩이와 우물을 파서 수고하고 땀 흘리며 노력해도 방향이 틀리면 헛것입니다. 목표가 틀리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요 기쁨이시며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는 생수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다른 것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며 돈과 재물을 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신으로 삼으며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셨는데 그 축복이 오히려 영적인 화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영혼의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모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로 인해서 바쁩니까? 무슨 일로 인해서 수고하고 있습니까? 무슨 일로 인해서 땀 흘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과 정렬과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음란한 것들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3)

우리의 영혼이 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이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배고픔을 느끼며 목마름으로 애타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참된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올바른 영성을 갖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목마름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게는 하나님을 향하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영혼의 사모함이 있습니다.” 참된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하면 충분하지. 이만큼 하면 내 영이 가득 찬 거야.” 그러나 오히려 그때는 신앙이 타락될 때입니다. 교회가 타락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갈망을 요청하십니다. 돈과 재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망, 육체의 즐김에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 권력의 요구에도 시원해지지 않는 영혼의 갈망이 있습니다. 문화적인 취미 활동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 지식을 축적하고 배워도 가슴으로 채울 수 없는 영혼의 목마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어찌하여 수고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치 배고픈 갓난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그리워하면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에 믿음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사슴이 벌판을 다니다가 헐떡거리며 시냇물 한 방울이라도 먹고 싶어서 갈급함같이 영혼이 주님을 향해서 갈급하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편 143:6)

마른땅이 비를 사모하듯이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전보다 더 큰 축복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증이 잘 안 생깁니다. 인간은 낙심과 슬픔, 실패의 아픔을 경험해야 갈증이 생깁니다. 육체의 질병이 들어야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깨닫습니다. 내 실존의 물음에 대한 허무와 고독을 느껴야 갈증을 느낍니다. 그 순간은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려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의 축복, 성공의 축복, 풍요의 축복, 이 땅에 살면서 누려보지 못한 축복,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누리지 못한 최고의 축복을 이 시대에 주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만 생겨도 불평합니다. 원망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된 이 땅과  우리에게 주신 삶의 여건들을 감사하면서 나아갑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더 가질수록, 더 누릴수록 영적인 목마름이 있다면 축복받은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살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리의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향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이는 세계의 땅까지 축복해주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이는 세계, 땅의 세계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육체적인 만족에만 시간과 정렬을 쏟으면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도 상실하는 위기에 빠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개인에게 주신 축복, 가정에 주신 축복, 교회에게 주신 축복, 이 사회와 우리의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한 번 감사합시다.
“하나님, 내 영혼이 목마릅니다. 주님 말씀만이 나를 살아있게 하십니다. 다만 나는 감사하며 누릴 뿐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목마름으로 주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확정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여기까지 올수가 없었던 교회이고 민족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영혼의 목마름을 가지게 하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셔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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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 1 ~ 5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인생의 열쇠를 찾으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 열쇠를 잃어버려 마당의 잔디 사이를 뒤지며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제자들이 집에 도착하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네.”
“그럼, 저희도 좀 도와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
그들은 한참을 잔디밭을 손가락으로 휘저으면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열쇠를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그랬더니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안에서 잃어버렸지.”
“아니 그런데 왜 집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찾고 계십니까?”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바깥이 더 밝지 않느냐?”
여러분, 이 선생님은 미련한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집 열쇠를 잃어버린 후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그리고는 인생의 열쇠가 없어졌다고 낙심하며 실망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에게 열쇠를 찾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인생의 열쇠를 찾습니다. 그리고는 곧 세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열쇠를 잃어버린 자와 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려도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텅 빈 가슴으로 방황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참된 음식이 되지 못할 것을 위하여 돈을 낭비했습니다. 헛된 것을 얻기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며 애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2)

하나님께서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를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찾아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우리를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찾지 않고 세상 속에서 찾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경고하며 부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목이 말라 갈급한 인생인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목마른 자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배고픈 자, 목마른 자만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혼의 목마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의 배고픔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은 인생입니다. 영혼이 목말라 애타는 자만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혼의 목마름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뜻입니다. 육체만으로 사는 동물은 영혼의 목마름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짐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배고프고 영혼의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변화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이 채워질 수 있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타는 목마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오는 것은 영혼의 목마름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꽉 차 있고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영혼의 목마름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며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목마름을 갖고 있는 사람을 지금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나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마르면 누구나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다 하나님께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도 괜찮습니다. 돈 없이 와서 선물로 받으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더 확대한다면 우리 민족과 나라가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인 목마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봅시다. 20세기를 살았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목마름을 지니며 살았던 민족입니다. 이 땅은 36년간 일본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육체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만 올라가도 가난의 현장을 경험하지 않은 분들이 없습니다. 1960년대까지 모든 백성들이 먹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난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북한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국방력과 경제력에 있어서 북한을 넘어서 역전된 때는 1970년대 중반입니다.
이 민족, 이 나라는 가난을 뼈아프게 체험한 백성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활력을 얻기 위해서 해외 노동자로 나가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노동자들과 기업가들이 땀과 눈물을 쏟아 부으면서 경제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놀랍게도 경제적인 목마름, 육체적 목마름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에게 영적인 목마름까지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인 것을 고백했던 축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6.25전쟁 이후에도 독재의 아픔 속에서 온 백성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치적인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목마름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때로는 고통도 있었고 억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자유와 인권과 민주화를 향한 우리 백성의 간구는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정의를 위한 투쟁 속에 아픈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이때 우리 백성들이 정치적인 자유, 인권이 존엄성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중보기도하며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이런 동력을 일으킬만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지주가 취약했습니다. 수많은 우상숭배의 나라였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샤머니즘의 나라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만 생기면 점집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백성의 가슴속에 파고들었습니다. 그 속에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배가되어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사회적인 변화의 가치를 주도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 20세기의 일이였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즐거움을 얻으십시오.

그런데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염려하고 계십니다. 교회에 위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위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탄식소리가 들려옵니다. “오호라. 정말 문제구나. 너희들을 보니 배가 불렀구나. 헛배가 불렀구나. 물질의 가난이 해결되니까 육체가 배부르고 영적인 것도 배부른 것으로 착각하는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망각하는 백성이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모르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구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워나가지 못하는 백성이 되었구나. 너희들이 다시 미신을 찾고 우상을 따라가면서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고 하나님을 버리고 있구나.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구나. 양식 아닌 것을 먹고 헛배를 두드리며 참된 생수를 먹지 않고 다른 음료를 먹으면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고 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꾸중하시며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탄식하며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예레미야 2:13)

첫 번째,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예레미야 2:13)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 외의 생수를 얻어 보려고 웅덩이와 우물을 팠는데 그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 웅덩이일 뿐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가졌다고, 무언가를 누린다고, 무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웅덩이와 우물을 파서 수고하고 땀 흘리며 노력해도 방향이 틀리면 헛것입니다. 목표가 틀리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요 기쁨이시며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는 생수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다른 것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며 돈과 재물을 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신으로 삼으며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셨는데 그 축복이 오히려 영적인 화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영혼의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모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로 인해서 바쁩니까? 무슨 일로 인해서 수고하고 있습니까? 무슨 일로 인해서 땀 흘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과 정렬과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음란한 것들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3)

우리의 영혼이 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이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배고픔을 느끼며 목마름으로 애타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참된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올바른 영성을 갖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목마름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게는 하나님을 향하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영혼의 사모함이 있습니다.” 참된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하면 충분하지. 이만큼 하면 내 영이 가득 찬 거야.” 그러나 오히려 그때는 신앙이 타락될 때입니다. 교회가 타락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갈망을 요청하십니다. 돈과 재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망, 육체의 즐김에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 권력의 요구에도 시원해지지 않는 영혼의 갈망이 있습니다. 문화적인 취미 활동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 지식을 축적하고 배워도 가슴으로 채울 수 없는 영혼의 목마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어찌하여 수고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치 배고픈 갓난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그리워하면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에 믿음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사슴이 벌판을 다니다가 헐떡거리며 시냇물 한 방울이라도 먹고 싶어서 갈급함같이 영혼이 주님을 향해서 갈급하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편 143:6)

마른땅이 비를 사모하듯이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전보다 더 큰 축복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증이 잘 안 생깁니다. 인간은 낙심과 슬픔, 실패의 아픔을 경험해야 갈증이 생깁니다. 육체의 질병이 들어야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깨닫습니다. 내 실존의 물음에 대한 허무와 고독을 느껴야 갈증을 느낍니다. 그 순간은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려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의 축복, 성공의 축복, 풍요의 축복, 이 땅에 살면서 누려보지 못한 축복,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누리지 못한 최고의 축복을 이 시대에 주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만 생겨도 불평합니다. 원망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된 이 땅과  우리에게 주신 삶의 여건들을 감사하면서 나아갑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더 가질수록, 더 누릴수록 영적인 목마름이 있다면 축복받은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살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리의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향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이는 세계의 땅까지 축복해주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이는 세계, 땅의 세계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육체적인 만족에만 시간과 정렬을 쏟으면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도 상실하는 위기에 빠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개인에게 주신 축복, 가정에 주신 축복, 교회에게 주신 축복, 이 사회와 우리의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한 번 감사합시다.
“하나님, 내 영혼이 목마릅니다. 주님 말씀만이 나를 살아있게 하십니다. 다만 나는 감사하며 누릴 뿐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목마름으로 주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확정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여기까지 올수가 없었던 교회이고 민족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영혼의 목마름을 가지게 하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셔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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